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SOSTV, 강병국 목사

나를 어렵게 만드는 궁지

저는 세계 각지에 있는 수많은 우리 신실한 기독교인들과 사귈 기회를 가졌고, 여러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해 왔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교인이 영적인 문제들로 투쟁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고, 제 마음은 그들을 향한 동정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시대를 위한 예언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 때문에 짐승의 표 환난에서 핍박을 받게 될 사람들입니다. 비록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교인들을 라오디게아 교인들이라고 부르면서 지구 역사의 모든 교회 중에서 가장 심한 책망을 하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의 기독교회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존재하게 될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4- 18)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당신의 백성을 불러내실 때 사용하는 통로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사도 요한에 의해 아주 생생하게 묘사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특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는 사실만을 말하면서 요한계시록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주는 경고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이상한 영적 혼돈 속에서 깊은 잠을 자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설명하면서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이상하게 혼합된 교회라고 묘사했습니다. 영적 눈이 너무나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교회는 자신의 구역질 나고도 뜨뜻미지근한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헐벗은 상태이지만 가장 부요하다고 생각하며, 차지도 덥지도 않고 뜨뜻미지근하여 하나님께서 토하여 내치고 싶은 그런 상태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의 교회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진단

우리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미리 경고를 받아왔을 뿐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의 치명적인 상태를 치유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치료제 또한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먼 것을 보게 할 안약과 벌거벗은 것을 가릴 흰옷과 가난한 것을 부요하게 할 금을 제공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무도 뜨뜻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인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는 기별의 끝 부분에 다음과 같이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19,20) 이 성경 절에서 저를 가장 흥분케 하는 것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비록 자기기만에 빠지고 두 마음을 품은 봉사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모든 질병을 고쳐 줄 치료제를 받아들이라고 호소하십니다.

그분은 아주 평범하고 단순한 언어로 회개하라. 내가 그대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완전한 회복을 가져올 모든 처방을 얻는 길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분께서 의와 믿음과 성령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비참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우리를 당신의 보좌에 아버지와 나란히 함께 앉도록 하는 승리의 경험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문제의 핵심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에 달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깊은 마비 상태에 빠진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죄를 짓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부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미지근한 온도는 사람을 이완시켰다가 나중에는 무력하게 만듭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의 처절하고 잃어버려진 상태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네 곤고한 것과 &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바로 그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진짜 문제입니다. 이기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교인들이 내는 헌금과 봉사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다수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이런 지긋지긋한 죄들을 회개할 필요에 대해서 역설한 책과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더 악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회개의 기별이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눈이 멀었기 때문에 회개의 호소들도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그들은 죄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엇인지 정의되고 설명되어서, 죄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게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범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식의 설명으로는 그들을 더욱 깊이 잠자게 할 뿐입니다. 단순히 죄를 버리라고 설교하거나 글을 쓰면, 나머지 세밀한 것들은 성령께서 그들의 양심 속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해서 알려줄 것이라고 막연한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과 개혁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를 담대하게 지적하였으며 지도자와 백성의 죄를 분명하게 질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파수꾼들에게 분명한 경고의 나팔을 불도록 명하고 계십니다. 눈멀고 꾸벅꾸벅 조는 라오디게아 교인일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진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차리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곧 재림하시는 이 시대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분명한 소리로 나팔을 불어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크게 흔들어대며 깨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곧바른 설교에 반대하는 사람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의 죄를 지적받을 때 반대하여 일어섭니다. 간음과 거짓말은 십계명을 범하는 죄입니다.라는 말씀에 대항하여 일어설 교인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설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반대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에 대항하여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죄를 지적하는 회개의 호소가 교회 안에 있는 어떤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단순히 기쁜 소식으로 전하는 설교에는 어떤 사람도 일어나서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설교에는 아무런 저항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설교를 듣기 원합니다. 사람들의 그러한 요구에 굴복한 목사들은 성도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봐, 예의 바르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워서 진리의 표준을 낮추고 죄를 죄로 지적하지 않게 됩니다. 침례 요한은 비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죄를 견책하였습니다. 그는 왕들과 귀족들이 기별을 듣든지 거부하든지 간에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죄를 지적할 때에 개인적으로 말하였으며 노골적으로 말하였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의 신앙이 외식으로 가득 차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헤롯 왕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에 관하여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마 14:4).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설교와 가르침도 침례 요한의 기별처럼 단도직입적이어야 합니다.

분열을 일으키는 기별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불평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기별이 아닙니다. 만일 사람들이 설교와 말씀을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될 때까지 설교를 깎고 다듬는다면 그 말씀은 더 이상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참된 기별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의 특징은 기별을 듣는 사람 중 어떤 사람들이 분노하여 일어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참 기별은 때로는 교회의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골라서 분리해 내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기별을 주셔서 교회를 향하여 외치도록 하는데, 그때 탐욕과 이기심과 잘못된 복음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하여 일어서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죄에 대하여 곧바르게 경고하지만, 교회를 공격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투쟁하고 기도해 왔습니다.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확신은 나 자신의 평판과 인기를 포기하고,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뜨뜻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완전히 세상으로 빠져들었거나 차가워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거나 뜨거운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찬 것과 뜨거운 것이 반반씩 섞인 상태로 있는 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가장 큰 염려

저는 현대 기독교회가 세상과 타협한 모습과 그 타협의 진정한 원인을 밝히는 말씀을 전해 왔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비참하게 살아가게 한 신학적 이유는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복음입니다. 죄를 죄로 지적하지 않는 값싼 복음입니다.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이 섞인 복음 때문에 일반 성도들과 목회자 모두에게 엄청난 영적 재난이 닥쳐왔습니다. 가장 큰 염려는 제가 전하는 기별이 동료 목회자들을 향한 공격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기도는, 깊은 잠에 빠진 교회들을 흔들어서 깨울 수 있는 강력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제 동기와 목적을 오해하지 않게 되기를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SOSTV에서 나오는 모든 책자와 말씀들을 접하실 때,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 주신 교회의 문제에서 저와 같은 공감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 교파에 속한 교회와 지도자들 그리고 성도들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 재림을 통하여 하늘 왕국에 올라갈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눈동자이며, 이 세상에 있는 그분의 가장 큰 관심과 사랑의 대상입니다. 여러분이 SOSTV에서 발간하는 책자들과 설교들을 읽고 들으신 후에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 우리를 사랑하는 구세주에게서 분리시키는 죄들을 미워하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모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사단은 교회에 역사하여 교회 전체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큰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의 목적은 교회를 교리와 영적 경험 면에서 바벨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채가 되어야 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사단이 개발해 온 전략들은 무엇일까요? 사단은 자신의 목적을 이룩하고자 어떤 때는 사람들을 멋지게 홀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람들 마음속에 두려움을 심어 주기도 합니다. 사단이 이미 여러 곳에 잠식해 들어갔고, 진리를 얼마만큼 흐려놓는 데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가진 모든 지옥의 힘을 다하여 대항할지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들이 정통이라고 인정하는 특정 종파가 아니고, 조직이나 건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온 마음을 다하여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두세 사람이 신령과 진정으로 모여서 기도하며 말씀을 읽으면 그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교회를 결코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수많은 교회가 타락하고 사단의 편에 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참 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참 교회는 땅에 떨어진 진리를 회복시키는 자들이고, 쓰러질 수도, 쓰러지지도 않을 교회입니다. 사단의 최후 발악 때문에 교회가 마치 소멸할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참 교회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참 교회는 살아남을 것이며 승리할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의 경험을 통과하면서 충실하게 진리 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 교회와 함께 승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