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오직 한 주인을 섬기는 비결

From the Mount of Blessing 에서 발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태복음 6:24.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말아야 된다고 말씀하는 대신에,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사랑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통하여 호소하시는 성령의 경고의 음성을 거절한채, 더 이상 넘어가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어 들어가서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만족시킨다. 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중앙으로, 한쪽에는 극기와 희생과 봉사로 자신의 생애를 채워가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유행에 앞장서고, 경박한 말과 행동을 즐기며, 성경이 금지하고 있는 오락들을 탐하고, 방종에 빠져 있는 자들이 있다. 성경은 참된 그리스도인은 선의 저 쪽 너머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도 중립적인 위치에 설 수 없다. 하나님도 섬기지 않고, 사단도 섬기지 않는 중간 계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종들의 마음에 거하셔서,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의 의지를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시키고 그분의 영이 양심 속에서 지시하는대로 선택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 그들이 사는 것은 그들이 사는 것이 아니요, 그들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갖게 되며, 그분과 같은 생애를 살게 된다.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되며, 성령의 음성이 아닌 다른 영의 음성을 들으면서 살게 된다. 하나님께 마음을 반만 바친 자들이야말로 사단이 가장 훌륭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단의 종이다. 입으로는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의 말과 생활을 통해 사단과 동맹한 삶을 산다면, 스스로 그리스도의 원수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해를 미치는 악은 버림받은 죄인이나 타락한 불량아의 부도덕한 생애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러한 부류의 사람을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덕망있고 존경할만하며 고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죄를 품고 있으며, 마음 깊숙한 곳에 이기적인 정신을 품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교회와 세상에게 가장 악하고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외적으로 경건하게 보이는 그리스도인을 존경한다. 큰 유혹을 받고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 은밀하게 투쟁하면서 절벽의 가장자리에서 떨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존경하는 어떤 그리스도인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그는 그 모습으로부터 죄에 대한 강력한 핑계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마음 속으로 “저렇게 신앙이 좋아보이는 사람도 저런 죄를 범하는 것을 보면, 나도 이런 죄쯤은 범해도 괜찮을 거야” 라고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키게 된다. 영원한 생명과 진리에 대한 고결한 사상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의도적으로 범하는 생활을 산다면, 그것은 그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죄와 세속에 대해서 가장 설득력 있는 미끼를 던지는 것이 된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관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충성과 사랑이 없는 반만 개심한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을 하나의 인간적인 윤리나 철학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교회 안에 있는 반만 개심한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사람들을 멸망의 절벽으로 끌어 갈 수 있는 강력한 사단의 대리자이다.

“누구든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한일서 2:15,16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태복음 5:30. 병이 온 몸에 퍼져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위급한 경우에 자신의 오른팔이라도 잘라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더우기 영적인 생명을 위급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더욱 과감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잘라 내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죄는 우리의 의지를 통해서 우리를 사로잡는다. 사람이 마음 속에서 들리는 성령의 음성에 자신의 뜻과 의지를 굴복시키는 것을, 성경은 눈을 빼버리거나 손을 자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에 굴복하는 것은 평생을 불구자나 절름발이로 보내기로 동의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병신이 되고, 상처를 입으며, 불구자가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 길을 택하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자신의 계획, 생각, 뜻을 버리는 것을 커다란 손해로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생각에 재난과 희생으로 생각되는 것이 최고의 유익에 이르는 길이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을 죄로써 더럽히기보다는 차라리 빈곤과 비난과 고독과 고난을 택하라. 그대 자신의 이기적인 고집과 의지를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굴복시켜라. 세상 사람들에게 부정직한 수치를 보이거나,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기보다는 차라리 손과 발을 끊어 버리는 아픔을 택하라. 자신의 영혼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순결함을 똑바로 쳐다보라. 시련, 고통, 가난과 같은 불평의 요소들이 오히려 자신을 순결하게 만들 수 있다. 교만과 이기심은 양심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눌러버린다. 세속과 탐욕은 하나님의 순결한 진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도록 우리의 눈을 가리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의지가 가지고 있는 참된 힘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것은 사람의 성격 가운데 있는 지배력, 곧 결정하고 선택하는 능력이다. 모든 일은 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하는데에 따라서 좌우된다. 사람이 선과 순결에 대한 욕망을 갖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서 그치면 그것은 아무런 유익도 줄 수 없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선과 순결함에 대한 소원과 욕망을 가진채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의지를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시키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섬기기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선택하는 경험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그들은 마음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은혜의 능력을 전혀 모른다. 그들은 기도하고 죄짓고, 또 기도하고 죄짓는 생애를 살면서, 부도덕과 속임과 질투와 시기와 자신를 사랑하는 정신으로 자신의 생애를 채워 간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만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난 생애는 살아 있지만 죽은 생애이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딤전 5:6. 우리의 마음 속에서 자아가 살아서 우리의 삶과 생애를 지배하는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애 속으로 들어오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나뉘어진 마음을 취하지 않으시며, 나뉘어진 보좌에 앉지 않으신다. 반드시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모든 우상을 버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마음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치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사망을 택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죄를 불사르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죄를 선택하고 죄로부터 분리되기를 거절하면, 우리는 죄를 불태우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의해서 죄와 함께 불살라 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일에는 언제나 희생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사단이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끝까지 따라갈 때에 반드시 감수해야 할 희생은 고상한 것을 위해서 저속한 것을 버리는 희생이며, 신령한 것을 위해서 세속적인 것을 버리는 희생이고, 영원한 것을 위해서 잠시 있다가 사라져 없어질 것을 버리는 희생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사단이 우리의 의지를 통하여 우리를 장악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의지를 통하여 우리를 지배하고자 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뜻과 의지를 존중해 주신다. 그분께서는 마음 속에 조용한 음성을 들려 주심으로써, 그분을 향한 우리의 선택과 결심을 받고자 하시지만, 결코 우리의 선택과 의지를 강요하지는 않으신다. 우리의 의지를 통해서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아름다운 당신의 성품을 만들어 내고자 하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의지를 통해서만 당신의 계획과 뜻을 이루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과 의지를 순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마음과 의지를 하나님 앞에 바쳐야만 한다. 바로 이것이 그분과 연결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뜻과 의지와 본능이 이끄는대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거하실 수 있겠는가? 강팍한 마음과 고집센 마음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의지를 굴복하는 일이 매우 쓰라지고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때때로 그들은 마음 속에서 속삭이시는 성령의 음성에 굴복하기 위해서,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받게 될 것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영생을 위해서 꼭 필요한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대는 어떤 아버지입니까?


구약 성경의 마지막 장인 말라기서 4:6 에는 예수께서 재강림하시기 직전에 사는 아버지들에게 보내는 기별이 나온다.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오늘날, 그리스도 교회 안에는 다음과 같은 두 종류의 아버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첫번째 종류의 아버지 모습 : 첫번째 종류는 세속적인 아버지의 모습으로써, 한 손은 세상을 향하여 힘있게 뻗고 있지만, 다른 한 손은 자신의 가족을 향하여 힘없이 뻗어 있다. 그들의 모습은 부자 청년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라사대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주라 ...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가니라.” 마 19:17~22. 그 청년은 실제로 그리스도를 존경하였으며, 그의 마음은 구세주께로 이끌렸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제시하는 자아희생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진리보다는 재물을 택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아버지들이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진리의 길을 따라가기 보다는 재물과 부를 선택한다. 그들은 자신과 가족의 절실한 영적 필요보다는 자신의 사업과 재물을 우위에 둔다. 그들은 가정에서 제사장으로서의 의무를 등한히 여기는 반면, 세상적인 경력과 부를 얻기 위해서는 온 마음과 정력을 기울인다.

두번째 종류의 아버지 모습 : 두번째 종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본을 세상과 가정에서 뚜렷하게 나타내는 아버지의 모습으로써, 한 손은 아내와 자녀들을 단호하고도 확실하게 보호하고 있으며, 다른 한 손은 가족들과 연합하여 생애를 변화시키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세상을 향하여 길게 뻗고 있다. 그들은 에녹이나 노아와 같은 아버지들이다. 그들은 잘 훈련되고 질서 정연한 가정을 통하여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녀들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교훈에 따라서 실제적으로 교육시킨다. 그들은 가족들에게 경건한 모본이 되며, 아내와 자녀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는 아버지들이다. 그들은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복음을 전파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는 복음대로 살아간다. 그들은 가족을 하늘로 인도하기 위해서 최고의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 구약 성경에 나오는 두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현대 아버지들에게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자;

1. 대제사장 엘리 : 사무엘상 2:12-36 에 나오는 엘리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모든 부모들은 귀중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엘리는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며, 사사(재판관)였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가장 높고 책임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엘리는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과 최고 재판권을 가진 자로서 모든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쳤지만, 자기 자신의 가족을 다스리는 일에는 철저하게 실패하였다.

엘리는 자녀들(홉니, 비느하스)을 너무나 귀여워 하였다. 그는 자비롭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자녀들의 악한 습관과 정욕을 시정하는 일에 있어서는 아버지의 권위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 그는 방종한 자녀를 나무라거나 벌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뜻에 굴복하여 그들 마음대로 하도록 방임하였다. 엘리가 비록 이스라엘의 제사장이요 사사였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자녀들을 제어하고 다스리는 의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자신의 의무를 피했던 이유는, 자신이 두 아들의 잘못을 교정해 주려고 할 경우에 두 아들과의 투쟁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을 피하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도록 내버려 두게 되었는데, 그 결과 두 아들은 하늘을 위하여 준비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삶을 위해서도 준비되지 못했다. 대제사장 엘리의 가정에서는, 엘리가 자녀들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아버지를 지배하였다. 두 아들의 성품이나 행동에 죄악과 방종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는 그것을 저지하거나 교정하는 일에 있어서 태만하였다.

엘리는 자신의 두 아들이 제사장의 직무에 전혀 합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소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성소에서 희생제물을 바치는 일에 대해서 매우 독특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이스라엘에게 주셨다. 그러나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께 제사와 예배를 드리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위를 주저하지 않았다. 성소의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지는 희생 제물인 양은 장차 이스라엘의 구세주로 오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으로서, 백성들의 마음에 구세주에 대한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서 특별히 제정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일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엄격하게 준수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엘리의 아들들은 이 상징적 예배의 엄숙성을 존중하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물을 통하여 저희들의 이기적인 만족을 구할까를 생각하였다. 성경은 그들의 죄에 대해서“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서 심히 컸”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사무엘상 2:17).

이제, 아버지로서의 엘리의 잘못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엘리가 자녀들의 악을 온화한 방법으로 제어하는 것이 실패하였을 때, 그는 보다 단호한 방법으로 자녀들을 지배해야만 하였다. 엘리는 자녀들의 죄를 책망하지 않았으며, 형벌을 주지도 않았다. 잘못을 책망할만한 도덕적 용기가 없는 자들이나, 나태함과 관심의 부족으로 인하여 가정이나 하나님의 교회를 순결하게 유지하는 일에 노력하지 않는 부모나 목사들은 자신의 의무를 태만히 여김으로써 초래된 악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엘리는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서 그의 가족을 다스리는 대신에, 자신의 감정이나 판단을 따라서 교육시켰다. 그는 자녀들이 성장하면 스스로 악한 성질을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두 아들이 범하는 잘못과 죄악을 묵과하였다. 오늘날에도, 엘리와 같은 잘못을 범하는 부모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이 아이들은 벌받기에는 너무 어리다. 저희가 커서 사리를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자녀들은 어린 시절에 습득한 잘못된 습관들이 제2의 천성으로 굳어질 때까지 방치된다.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올바른 제재를 받지 않고 자란다면, 그들의 결점은 평생동안 그들에게 저주가 될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들로 하여금 자기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보다 더 큰 저주는 없다. 그러한 자녀들은 부모의 권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며, 부모에 대한 존경심도 잃어버리게 되어서 사단이 이끄는대로 끌려다니게 된다.

엘리의 예를 우리 자신들에게 적용시켜 보자. 부모는 신앙 생활에 전념한다고 하면서, 자녀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방관 속에 내동댕이 쳐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보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멸시하게 된다. 부모의 신앙은 자녀들의 교육에서 드러나게 되며, 가정의 신앙은 부모와 자녀가 가정에서 어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가에 의해서 나타나게 된다. 만일 신앙 생활을 한다고 공언하면서, 질서있고 잘 훈련된 가정을 만들기 위하여 열렬하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며, 자녀들의 악하고 이기적인 욕망을 성경의 원칙에 입각하여 엄격하게 다스리지 않는 부모들은 엘리와 같은 부모인데, 그들은 자녀들이 멸망으로 들어가는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자녀 교육과 가정을 다스리는 면에 있어서 엘리의 잘못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두 아들이 가지고 태어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천성을 어린 시절에 올바로 교정하는 일을 실패하였다.
2) 가정의 지배자로서 갖는 부모의 위치를 두 아들에게 빼앗겼다.
3) 엘리 자신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었지만,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태만하였다.
4) 엘리는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격적인 결함을 고치는 일에 실패하였다.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을 가졌지만, 자녀의 죄와 부도덕한 행위를 단호하게 책망하고 처벌하지 않는 우유부단한 기질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성품 위에 원칙에 입각한 결단력 있는 성품을 건설하는 일에 실패하였다.
5) 엘리는 부모로서 자녀들의 악을 저지해야 하는 의무를 소홀히 여겼다.
6) 엘리는 자녀들의 비뚤어진 성격과 방종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지 않았다.

2. 아브라함 : 아브라함의 식솔들은 모두 합해서 천명이 넘는 대가족이었다. 그가 자기 휘하에 있는 가족들에게 가장 힘써 가르쳤던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었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는 아버지가 가정의 지배자인 동시에 제사장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녀들이 결혼을 하여서 자신들의 가정을 가진 후에도, 신앙 문제에 관해서는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행사하였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가족제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보존하고자 하였다. 그 당시 매우 넓게 퍼져 있던 우상숭배를 막을 방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 전원을 하나로 묶는 것이 필요되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힘이 미치는 한 모든 수단을 다하여, 그의 가족들이 이방인들로부터 악한 영향을 받는 것을 막았다. 가족들이 세상의 죄악들에 익숙하게 될 경우, 자신들의 신앙과 원칙이 무너지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자녀들을 우상숭배자들과 격리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자녀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그토록 철저한 노력은 곧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였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그의 권속들에게 명”하였다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자녀들이 악에 기울어지려는 경향을 보았을 때,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자녀들의 잘못된 요구에 굴복함으로써, 부모로서의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버지들에게 보내는 기별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모본을 따르고 있는가? 너무나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미숙한 판단과 제어되지 못한 정욕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으면서, 장차 자녀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자제하게 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무책임하고 나태한 감상주의를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부모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러한 부모들은 자신들이 자녀들에게 가장 잔인한 사랑을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녀들을 텔레비젼과 불신자인 보모에게 맡긴채, 먹고 마시고 장사하는데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부모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부모의 방임과 무책임함이 자녀들로 하여금 가정에 대한 매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성장한 청년들은 부모에 대한 존경심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도 갖지 못하며, 진리가 요구하는 거룩한 원칙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 아브라함처럼 부모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말을 따르라고 명령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첫단계로서, 먼저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실행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가정 안에서도, 믿지 않는 자녀들이 생기고 있다. 부모가 자신들이 믿는 바를 가정 안에서 올바른 모본을 통하여 가르치지 않는다면, 자녀들은 부모가 원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세상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먼저, 부모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생애를 자녀들에게 보여 주는 일 없이, 자녀에게 부모의 명령을 따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한 부모들은 아직 자녀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못한 부모들이다. 그리스도인 가정 안에서 대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가정을 움직이는 철저한 원칙으로 세워져야 한다. 성경은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명령이라는 사실이 주지되어야 한다. 자녀들을 인내로서 교육시켜야 하며, 친절하고 정직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 아래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세상이 주는 어떠한 유혹과 불신과 회의론의 물결에도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기도와 가정 예배가 등한시 되고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너무나 바빠서 조석으로 예배를 드릴 시간조차 없다. 자신들의 가정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서로 감사의 표현을 나눌 시간도 없다. 거룩한 천사들의 보호와 그리스도의 임재를 초청하는 기도 소리가 가정에서 흘러 나오지 않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에 대하여 명상할 시간도 없이, 소나 말이 아침에 밭을 갈기 위해서 끌려 나가는 것처럼 바쁘게 일하러 나간다.

우리의 가정은 기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기 자신과 자녀들을 위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탄원하는 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머니와 자녀들은 함께 찬송을 부르는 시간을 가져야 하며,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가족 제단에 조석으로 희생을 드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가정이야말로 천사들과 예수께서 방문하셔서 머물기를 원하시는 가정이다.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으로부터 거룩한 빛이 흘러 나와야 한다.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사려깊은 친절과 너그럽고 이기심 없는 예절은 우리의 가정이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아침 기도가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서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가정에는 그분의 긍휼과 축복이 아침 이슬처럼 내려질 것이다. 질서 정연한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리스도 교회의 실체를 불신자들에게 보여주는 논박할 수 없는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지금, 세상은 하늘의 감화력을 통하여 변화된 그리스도인 가정을 보기를 갈망하고 있다.

“자녀들을 깊은 관심과 보호로 돌보아야 할 시대가 되었다. 왜냐하면 사단이 우리 자녀들의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 위해서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이야말로 세상의 끝이 다 되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의 하나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잘못 양육함으로써, 수많은 청년들이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부모들 스스로가 자녀들의 성품을 잘못 꼴지워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Testmony of Church Vol. 4

편두통,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가장 일반적인 통증이면서,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두통일 것이다. 두통은 매우 다양한 원인으로부터 발생되는데, 두통 자체는 질병이 아니라 증세이다.

몸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어 가고 있으므로 잘 보살필 필요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두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두통 자체를 치료하기 보다는 두통을 일어나게 만드는 원인을 찾아서 치료해야 한다. 머리가 아플 때, 아스피린을 먹는 것은 두통의 원인이 되는 질병 위에 보자기를 뒤집어 씌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아스피린은 두통을 일으키는 원인을 치료하기 보다는 증세만을 잠시 동안 가리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증을 없앤다고 해서 통증의 원인이 치료되지는 않는다.

대개 두통의 원인으로는 변비, 수면 부족, 음식 알러지, 스트레스, 수분 부족, 환기 부족, 약품의 부작용, 척추나 두뇌의 손상 등과 같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 두통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원인은 생활 습관을 올바르게 교정함으로써 치료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두통을 일으키는 6가지 요인을 든다면, 변비와 수분 부족, 음식 알러지, 저혈당증, 월경 그리고 스트레스(긴장, 우울)이다.

여자들의 경우, 월경, 배란, 폐경과 같이 홀몬이 변화되는 시기에는 편두통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입으로 먹는 피임약을 중단할 경우, 편두통이 놀라울 정도로 가라앉는다. 대개 편두통을 가진 부모의 자녀는 편두통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편두통 환자의 50% 이상이 자신의 부모 중 한쪽 또는 양쪽이 편두통으로 고생했다고 말한다.

천연 치료법

1. 편두통 환자의 25% 이상이 특정 음식물에 대한 민감한 알러지 반응 때문에 두통을 갖는다. 편두통과 관련이 있는 음식물에는 쵸코렛, 콜라, 옥수수, 돼지고기, 차, 커피, 소고기, 자당, 이스트, 튀김, 치즈, 술, 마늘, 해산물, 완두, 그리고 버섯 등이 있다. 환자들은 대개 한 종류 이상의 음식물에 알러지 반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편두통을 일으킨다고 생각되는 식품을 5일 동안 식단에서 빼고 식사를 한 다음, 5일 후에 단지 그 빼버렸던 음식물로만 한끼의 식사를 해봄으로써 자신에게 편두통을 일으키는 음식물이 무엇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피곤, 염려, 그리고 식사를 거르는 경우에도 편두통이 잘 발생된다.

2. 아미노산인 티로신의 분해 산물인 티라민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편두통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박테리아에 의해서 분해된 물질에는 다량의 티라민이 함유되어 있다. 치즈는 숙성 기간에 따라서 티라민의 함유량이 다양하며, 아보가도, 레즈베리(raspberry), 플럼(plums), 오랜지, 바나나 등에도 소량의 티라민이 들어 있다.

3. 500명의 편두통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 중의 18%의 환자들이 기름에 튀긴 음식이 자신에게 편두통을 가져온다는 대답을 하였다. 무지방 식사나 지방의 섭취량을 최소로 낮춘 식이 요법은 편두통 환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준다. 한번 사용했던 기름을 다시 사용하지 말라.

4. 흡연은 매우 심각한 편두통을 야기시킨다. 다른 사람이 피우는 담배 연기를 마셔도 편두통이 일어날 수 있다.

5. 쵸코렛은 편두통의 원인 중에서 큰 비율을 차지한다. 쵸코렛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당분은 몸에서 비타민 B를 빼앗아 가는데, 비타민 B의 결핍은 환자로 하여금 편두통으로 고생하게 만든다. 쵸코렛에 함유되어 있는 독성 알칼로이드도 종종 편두통의 원인이 된다.

6. 정제된 탄수화물(흰쌀, 흰밀가루 등)을 삼가할 것.

7. 카페인은 편두통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커피, 차, 콜라과 같이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는 식품을 피해야 한다. 편두통의 치료에 사용되는 약품 속에도 카페인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8. 인공 조미료에 들어 있는 sodium nitrite, sodium glutamate, tartrazine, monosodium glutamate 와 같은 식품 첨가물과 식초는 두통을 야기시킬 수 있다.

9. 어떤 편두통 환자들은 항생제를 복용할 경우 편두통의 빈도가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다. 알러지 치료를 위한 주사도 편두통을 야기시킬 수 있다.

10. 소금의 함유량이 많은 식사를 하는 사람은 편두통을 가질 확률이 높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특히, 위장이 비었을 경우에는, 소금에 절인 한 줌의 넛트나 감자칩도 편두통 환자에게는 두통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소금을 섭취한 후, 편두통의 증세가 나타나기까지 보통 6~12 시간이 걸린다.

11. 냄새가 편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 향수, 엔진의 배기 가스(특히, 디젤 엔진), 스모그, 페인트, 페인트 신나, 에어솔, 튀기는 냄새, 꽃, 클로린, 암모니아 등은 편두통의 원인으로 알려 졌다. 집안에 있는 먼지나 곰팡이, 꽃가루, 동물의 비듬 등도 편두통의 원인에 포함된다.

12. 냉기가 편두통을 야기시킬 수 있다.

13. 감정적인 스트레스나 분노는 심한 편두통을 야기시킬 수 있다.

14. 얼음 주머니를 머리 위에 얹고 어두운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다. 3분 이내에 통증과 멀미가 잠시 악화되지만, 곧 모든 증세가 사라지고 약간의 두통만이 남아 있게 된다.

15. 10~20분 동안, 종이 봉투 안에 얼굴을 대고서 호흡을 하면, 편두통이 사라질 수 있다.

16. 활기있는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편두통의 빈도가 50% 이하로 감소된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17. 뜨거운 물에 두 발을 찜질(hot foot bath)하면 두통이 사라진다. hot foot bath 를 하는 법 : 먼저, 편안한 의자, 화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물, 두 발이 완전히 들어갈 수 있는 깊은 대야나 물통, 그리고 타월 2장을 준비할 것.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두 발을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에 담근다. 이 때 물의 높이가 무릅 가까이까지 올라오면 더욱 좋다. 찬물 또는 얼음물에 담궜다가 짠 타월을 이마나 목 뒤에 댄다. 약 15분이 지나면, 발 부위의 혈관이 확장됨에 따라, 머리의 충혈된 혈관에 몰려 있던 혈액이 원활하게 순환되기 시작하면서 두통이 말끔하게 사라진다. 이 때, 주전자에 끓는 물을 준비해 두었다가 뜨거운 물을 발이 담겨진 대야에 부음으로써 물의 온도를 뜨겁게 유지시켜 주는 것이 좋으며, 또한 뜨거운 물을 마시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18. 뜨거운 물과 찬 물을 번갈아 가면서 샤워를 함으로써, 편두통을 해결할 수 있다. 이 때, 뜨거운 샤워는 피부가 빨갛게 될 때까지 해야 하며, 냉수 샤워는 온 몸이 떨릴 때까지 해야 한다.

19. 263명의 편두통 환자들을 대상으로 일광욕 실험을 한 결과, 그 중 30% 에게 편두통이 발생되었다. 햇빛이 화장한 날에 30분내지 1시간 동안 일광욕을 할 경우, 편두통이 일어날 수 있다. 편두통 환자들을 햇빛이 강한 날에는 그늘에서 쉬는 것이 바람직하다.

20.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라. 밤 늦게 자는 것, 잠을 더 잔다거나 덜 자는 것, 식사를 거르는 일과 같이 불규칙적인 생활은 편두통의 원인이 된다.

21. 관장은 초기 단계의 편두통을 멈추게 할 수 있다.

22. 머리를 붕대나 밴드로 단단히 감아 주면, 확장된 혈관을 압박함으로써, 초기 단계의 편두통을 해결할 수 있다.

23. 고동치는듯한 두통은 때때로 목의 동맥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제거할 수 있다. 목의 양쪽에 맥박이 뛰는 위치를 손가락으로 몇초 동안 가볍게 누른다.

부엌 안에 있는 천연 치료제

Emphasis In Your Health 에서 발췌

우리 가정의 부엌 안에 여러가지 천연 치료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번 달에는 부엌 안에 있는 천연 치료제들을 지혜롭게 사용함으로써, 가족들의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변에 있는 꽃과 과일과 채소와 나무들 속에 매우 효과적인 치료제들을 넣어 두셨다. 어떤 것들이 무슨 질병에 유익하며, 또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이번 호와 다음 호에 계속해서 연재하기로 하겠다. 천연 치료제를 찾습니까? 부엌 안에서 찾아보세요! -생애의 빛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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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에 베라

화상 : 알로에 베라는 화상에 바르면, 통증이 멈추고 염증으로 발전될 위험이 감소되며 상처 자국이 줄어든다.

일반 상처 : 상처를 깨끗하게 씻은 다음에 알로에 베라 즙(젤리)를 바르고 붕대를 감아준다.

위와 장의 염증 : 위장과 장에 생긴 염증의 치료에 매우 효과적이다. 알로에 베라 잎의 껍질 내부를 긁어서 바나나 또는 파인애플 쥬스와 섞어서 하루에 1~2 수저씩 여러번 먹으면, 위나 장의 통증을 완화시킬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 알로에 베라 젤(gel)을 하루에 여러 차례 먹어도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대변을 정기적으로 배출시킴 : 알로에 잎의 전체(가시 부분은 제외)를 바나나와 파인애플 쥬스와 함께 믹서(blender)에 갈아서 마시면, 부드러운 대변을 정기적으로 배출시킬 수 있다.

비듬 : 알로에 쥬스 또는 알로에 잎의 껍질 내면에 있는 속살을 사용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먼저, 머리카락을 샴푸로 깨끗이 씻어낸 다음, 알로에를 머리카락과 두피에 골고루 바른 상태에서 5분~1시간 있다가 머리를 헹군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이러한 과정을 한달 동안 반복해 보라.

치질의 치료 : 알로에 잎의 껍질을 벗겨서 속살을 좌약(suppository) 모양으로 만든 다음, 냉동시켜서 단단하게 만든다. 알로에 젤을 좌약 모양으로 냉동시켜도 된다. 취침 시간에 냉동된 상태의 좌약 모양의 알로에를 항문에 밀어 넣고 잠자리에 든다. 대변이 배출되었을 때와 목욕 후,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알로에 젤을 항문 부위에 바른다.

위궤양의 치료 : 위궤양의 치료에 알로에를 사용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취침 전과 식사하기 30분 전마다 2~4 수저씩 알로에 젤을 먹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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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모니아

벌에 쏘였을 때 : 어떤 종류의 벌의 쏘임에도 매우 뛰어난 역할을 한다. 깨끗한 천조각을 암모니아수에 적신 후, 벌에 쏘인 부위를 골고루 닦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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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스 씨앗(Anise Seed)

갱년기(폐경기) : 먼저 물을 끓이는데, 일단 물이 끓으면 불을 끄고, 그 물에 씨앗을 넣어서(1 티스푼의 아니스 씨앗에 1컵의 물로 계산함) 30분 내지 1시간 동안 우려낸 다음에, 물을 따로 분리시켜서 보관한다. 하루에 1~3컵 정도를 마시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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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메스꺼움 : 수저로 사과를 긁어서 메스꺼워 하는 아기들에게 먹이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고혈압 : 고혈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3일 동안 물과 사과만을 먹는 과일 금식을 하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과 속에 천연적으로 혈압을 낮추는 성분을 넣어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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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킹 소다

햇빛에 입은 화상 : 베이킹 소다를 물과 섞어서 크림처럼 만들어서 환부에 바르면 통증이 가라앉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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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사마귀 : 바나나는 사마귀를 제거하는데 매우 좋다. 먼저 잘 익은 바나나를 고른 다음, 사마귀 위를 바나나 껍질의 안쪽 면으로 덮고서, 테입이나 붕대로 고정, 밀폐시킨다. 24시간 후, 사마귀는 부드러운 상태로 녹아서 저절로 떨어지든지, 아니면 쉽게 파낼 수 있는 상태로 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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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플렌틴(Banana Plaintain)

위궤양 : 바나나의 일종인 바나나 플렌틴은 위궤양의 치료에 매우 뛰어난 성붕을 가지고 있다. 녹색의 바나나 플렌틴을 얇은 조각으로 자른 다음, 오븐에서 낮은 온도로 잘 말린다. 잘 마른 바나나 플렌틴을 블랜더(blender)에 갈아서 가루 상태로 만들어 보관한다. 가루 상태의 바나나 플렌틴을 하루에 1수저씩 4번 먹어야 하는데, 식사 시에는 식사를 시작하기 5~10분 전에 먹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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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위궤양 : 1컵의 양배추 즙을 매 식사 15분 전에 마시는 것이 좋은데, 필요할 때마다 마셔도 된다.

관절의 고통 : 양배추로 폴티스(찜질용 반죽이나 팩)를 만들어서 통증이 있는 부위에 붙이면 좋다.

찜질용 반죽(팩, pack)을 만드는 법

건조한 상태의 재료(약초, 양배추, 등)를 짓이기거나 얇게 썰은 후, 거기에 물을 조금 부어서 축축하게 반죽(팩)을 만든 다음에, 적당한 넓이의 얇은 면 위에 반죽한 재료를 균일하게 펼쳐 놓은 후, 그것을 환부에 덮고 비닐로 면의 외부를 잘 밀폐시켜서 공기가 환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든 후, 붕대나 테입으로 면으로 싼 반죽(팩) 전체를 환부에 잘 고정시킨다. 찜질용 반죽을 만들 때에 주의할 사항은 반죽(팩)을 너무 질게 만들면, 반죽을 환부에 붙였을 때에 물이 흘러 내리기 때문에 너무 질지 않게 반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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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웨이 씨앗 (Caraway Seed)

복통, 배앓이 : 캐러웨이 씨앗은 아기들의 배앓이나 어린아이들의 복통에 매우 좋다. 먼저 물을 끓여야 하는데, 일단 물이 끓으면 불을 끄고, 끓인 물에 캐러웨이 씨앗을 넣어서(물 한컵에 씨앗 한 수저씩 계산함), 20~30분 정도 우려낸 다음에 물을 따로 분리시켜서 보관하는데, 필요할 때마다 마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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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롭(Carob)

배가 아플 경우(stomach upset) : 배가 아프거나, 토하거나, 메스꺼운 증세 등에 매우 효과적이다. 캐롭 가루에 물을 섞어서 피넛 버터와 같은 상태로 만들어서 수저로 퍼서 먹든지, 아니면 한 수저의 캐롭가루를 1/4컵의 물에 타서 배가 아프거나 메스꺼울 때에 마시면 좋다. 물론, 토하였을 경우에는 토한 다음에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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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리(Celery)

경련, 쥐가 날 경우 : 셀러리 쥬스를 마시라. 어린아이들의 다리에 쥐가 나거나 경련이 날 때, 셀러리 쥬스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지나치게 많은 운동을 해서 다리가 아프거나 쥐가 날 경우에도 셀러리 쥬스는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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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락스(Clorox; 표백제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상품)


포이즌 아이비(옻) : 클로락스와 물을 1:1의 비율로 섞어서 만든 용액을 환부에 바른 다음, 젖은 환부를 공기 중에서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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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랜베리 즙

방광염 : 방광염의 증세가 사라질 때까지, 매 시간마다 순수한 크랜베리 즙(또는 건강식품점에서 파는 농축된 크렌베리 쥬스, cranberry juice concentrate) 2수저를 1컵의 물에 섞어서 마신다. 일반 식품점에서 파는 크렌베리 쥬스는 설탕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치료제로 사용하기에는 부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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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기관지가 충혈되서 막혔을 경우 : 껍질을 벗긴 다량의 포도와 두 조각의 마늘을 블랜더에 넣고 잘 갈아서 즙을 만들어 마신다.

감기 : 껍질을 벗긴 포도, 마늘 6~8조각, 반 갤론(1.8 리터)의 물을 혼합한 다음에 블랜더에 잠시 갈아서 즙을 만든 다음, 그것을 30분 동안 끓인다. 이것을 4일 동안 4번에 걸쳐서 나누어 먹는다.

딸꾹질 : 포도알이나 감귤류를 천천히 입으로 빨아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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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귀가 아픈 경우 : 레몬으로 귀를 청소한다. 레몬 6방울에 물 6방울을 섞어서 귀에 넣은 다음에 4~5초 있다가 씻어낸다. 하루에 세번씩 이러한 치료를 하는데, 한번 할 때마다 레몬과 물의 혼합물을 귀에 떨어 뜨렸다가 씻어내는 일을 3~4번 반복해야 한다.

내장 청소제 : 아침에 일어나서 따뜻한 물 한컵에 레몬 1개를 잘 짜넣어서 마시면, 위장, 간, 콩팥을 청소해 주며, 장의 운동을 자극하여 장내의 불순물을 배출하는데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치료제, 공기

사라 닐리, N.D.

신선한 공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치료와 건강

몹시 추운 겨울, 밀폐된 방에서 난로불을 피워 놓고 잠을 잔 적이 있는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온 식구들이 산소 부족증으로 인하여 심한 피로감을 느낀 적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잠자고 있는 밤시간 동안에도, 우리의 몸은 신선한 산소의 공급을 필요로 한다. 밤 시간 동안 충분한 수면을 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에 피곤증을 느끼는 이유는 대개 밤 시간 동안에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 있어서, 공기는 음식과 같다. 날마다 신선한 음식물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는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면서 살아야 건강을 보존할 수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한번 먹었다가 내뱉은 음식은 결코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라는 음식물에 있어서는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사무실과 방같은 좁은 공간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내뱉은 더러운 공기를 계속해서 되풀이하여 호흡하면서도, 아무런 불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공기는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하늘의 선물이다. 살아있는 공기는 말할 수 없는 유익을 그대에게 가져다 준다.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는 신경을 안정시키고, 마음 속에 넉넉한 평화를 가져다 준다.

인체 내에 있는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한시간에 약 3000 입방 피트(90 입방미터)에 해당하는 신선한 공기를 필요로 한다. 집안에 환자가 있는 경우에는, 공기의 오염도가 증가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보다 더 많은 양의 신선한 공기를 계속적으로 공급받을 필요가 있다. 매 순간마다 생명력 있는 신선한 공기를 폐와 각 세포에 공급한다면, 우리의 건강과 치료에 매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성인의 경우, 하루에 2000 갤론의 공기를 50마일의 속도로 호흡하는데, 이 때 혈액 속에 포함된 유해한 개스가 신선한 산소로 교체된다. 신선하게 생명력을 포함하고 있는 산소는 미세한 혈관의 끝까지 공급되기 때문에, 인체에 활력과 생명력을 더해 준다.

어떻게 호흡해야 합니까?

신생아가 호흡하는 모습을 지켜 본적이 있는가? 신생아가 호흡할 때에 가슴과 갈비뼈와 복부가 팽창하였다가 수축하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호흡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1분에 16~20번 호흡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깊은 호흡은 체내에 있던 더러운 개스들이 완전히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심호흡을 할 때마다 복부와 가슴 사이에 있는 판막이 간과 다른 기관들을 마사지 해주는 유익을 얻게 된다. 자신이 호흡을 올바르게 하는지를 검사해 보라. 똑바로 누운 다음에 배 위에 책을 올려 놓고, 호흡을 해보라. 호흡을 할 때마다 책이 위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해야만 좋은 호흡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폐의 일부분만을 사용해서 호흡한다. 호흡할 때에 복부의 근육을 함께 움직이면서 호흡하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 복부의 근육을 사용하지 않는 호흡법은 위장, 간, 폐 그리고 뇌가 산소 부족으로 고통당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폐에 충분한 산소를 받아 들일 수 있도록 호흡을 깊게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는 운동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게 많은 양의 산소를 몸안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폐에 쌓여 있는 나쁜 개스들을 내보내고, 신선한 공기를 가득 들여마시는 호흡을 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른 아침과 저녁에 옥외에 나가서 10번 이상 심호흡 하는 것은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 코를 통하여 가능한한 많은 양의 공기를 들여 마신 상태에서 호흡을 몇초 동안 멈추었다가, 매우 천천히 숨을 입으로 내쉼으로써, 폐에 있는 더러운 개스들을 완전히 내보내야 한다. 이러한 호흡을 반복해서 연습 할 경우, 점점 자신의 호흡량이 증가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공기 오염이 가져온 재앙들

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호흡도 중요하시만, 피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호흡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피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호흡기들이 산재되어 있어서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의 피부를 완전히 밀폐시킨다면, 그는 질식 상태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숲 속에 있는 신선하고 맑은 공기를 폐와 온 몸으로 받아들이라. 놀라운 천연 치료제들이 그대의 몸 구석 구석까지 들어가서 화학 의약품들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기적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한가지 두려운 사실은, 오늘날 대부분의 도시 공기가 무서운 속도로 더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온 하바드 대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공기의 오염은 인간의 생명까지 단축시킨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더럽게 오염된 공기 때문에 병에 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쇠약해 지고 있다. 여러분 중에 “공기 오염증”이란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는가? “의사들을 위한 의약품 안내서” (Physician? Drug Manual) 라는 책을 쓴 알버트 라번 박사는 다음과 같은 증세에 “공기 오염증”이라는 병명을 붙혔다; “두통, 피로, 초조, 권태, 불면증, 눈이 피로하고 아픔,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움, 판단력 부족.” 물론, 라번 박사가 지적했듯이, 이 모든 증세들의 원인을 전부 공기 오염에만 국한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증세들의 많은 부분이 오염된 공기 때문에 생긴다는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잦은 소변, 이유없이 땀을 흘리는 것, 위장의 윗부분에 묵직함을 느끼는 것, 변비, 설사, 허리가 아픈 것, 성불능, 불감증”과 같은 증세들도 공기의 오염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호흡할 때에 공기와 함께 체내로 들어가는 다음과 같은 물질들은 여러가지 예기치 못한 증세들을 가지고 올 수 있다; “황산화물, 산화질소, 이산화질소, 일산화탄소, 오존과 먼지, 재와 같은 각종 미립자들. 대도시의 공기 가운데에 섞여 있는 이러한 물질들을 계산해 보았더니, 약 100톤 정도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 중에 떠돌아 다니는 물질들 중에서 비교적 무거운 것들은 낙하되어 땅에 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호흡할 때에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이크론 이하 단위의 매우 미세한 물질들은 공기 중에 그대로 남아서 떠돌아 다니게 되는데, 그러한 것들이야말로 인체의 건강에 매우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병리학자가 어떤 시체를 해부할 때에, 그 사람의 인체 내에 축적되어 있는 미세 물질들의 종류와 양을 근거로 해서, 그가 도시에 살았던 사람인지, 아니면 시골에 살았던 사람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도시인들이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시골에서 가능한한 많은 시간을 보내라. 대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도시인들이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깨끗한 공기를 얻기 위해서, 도시를 빠져나가 조용한 소도시나 시골로 이주할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실내에서도 공기가 오염된다

덥거나 춥다고 해서, 집안을 밀폐시킨채 생활을 할 경우, 집안의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할 수는 있지만, 실내에 있는 오염물질들이 밖으로 배출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집안에도 실내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요소들이 많이 있다. 담배 연기, 새 가구, 새 카펫, 인슐레이션, 페인트, 라돈, 살충제, 헤어 스프레이, 개스렌지에서 나오는 천연개스 및 각종 화학 약품에서 증발되어 나오는 증기 등은 가정 안에서 오염 물질들을 끊임없이 뿜어내고 있는 근원지이다. 그러므로 옥외의 공기가 가장 깨끗한 시간에 창문을 열어서 실내의 공기를 바꾸어 주는 일이 매우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기에 걸렸을 경우,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실내의 공기를 바꾸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폐는 언제나 깨끗한 산소를 필요로 한다. 특히, 폐나 위장과 같은 인체의 기관들이 병들었을 경우, 깨끗한 공기를 공기를 공급하여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밤시간 동안에 실내의 공기를 순환시키지 않을 경우, 일반적으로 피로감을 느끼게 되고 체온이 상승된다. 우리의 온 몸은 신선하고 생명력이 있는 공기를 필요로 한다. 가정과 학교와 교회에 적당한 환기 시설을 갖추지 않을 경우, 졸음이 오고 정신이 둔감해 진다. 실내의 각 방마다 공기가 순환되어야 하며, 햇빛이 들어와야 한다. 정체된 공기는 생명력을 잃어 버린다. 신선하고 맑은 공기는 우리가 알고 있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항상 신선한 공기가 집안의 곳곳을 채울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어야 한다.

환자들에게 보내는 메세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이 보존되어 있는 자연계로 나가라. 그곳에서 채소와 꽃들을 가꾸면서, 신선하고 맑은 공기 속에 그대의 온 몸을 씻어라. 생명력이 있는 공기를 심호흡하고, 호흡을 할 때에는 복부의 근육이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라. 환자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교훈이다.

환자에게 있어서 땅을 경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다. 꽃을 심고 씨를 뿌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잊어버리라. 자라나는 꽃을 보고,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그러한 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그분께 그대의 모든 슬픔과 고민을 맡기고, 그분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맛보라. 천연계 속에서 그대의 관심과 주의는 창조주께로 이끌리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 그대의 영혼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말씀을 들어보라.

하나님께서 펼쳐 놓으신 자연계 속에서 그대는 그분께서 창조하신 그대로의 공기를 흠뻑 마시면서, 그대의 몸과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눈은 다시 빛나게 될 것이며, 연약한 걸음걸이는 활력을 되찾을 것이고, 절망 대신에 희망이 솟구치게 될 것이다. 불평과 낙담은 사라지고, 기쁨과 만족이 그대의 마음을 물들이게 될 것이다.

별들이 선포하는 하나님

그분의 능력과 놀라운 인류를 위한 사랑

이번 호에서는 다니엘 7장에 나온 중요한 예언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니엘 7장에 관한 기사를 읽으시기 앞서, 온 우주와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리 각자의 인생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길 기원합니다.

나는 도시에서만 살다가 몇년 전에 시골로 이사 온 이후로 한가지 전격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늘의 별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일이었다. 도시의 밝은 불빛과 가로등 사이에서 살면서 오랫동안 하늘의 별들을 보지 못한 채 살아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골로 이사온 후 첫날 밤, 불빛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나는 탄성을 질렀는데, 하늘에 그렇게 별들이 많이 있으며 또한 그렇게 아음다운지를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다. 물론 수 많은 별들에 대하여 배워 왔으나 실제로 내게 그렇게 느껴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 세상은, 아니 이 우주는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이시다. 그래서 시편의 저자 다윗이 이렇게 말씀했던 것같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편 8:1,2-3). 저렇게 크고 웅장한 우주 속에서 이렇게 작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이 지구를 반역과 멸망에서 건져 내어 다시 원래의 궤도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에게로 내려 오셨다는 사실은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적마다 보잉 747 같은 육중한 쇳덩어리가 그 많은 승객들을 싣고 시속 약 600마일의 속도로 공중을 날아가는 사실에 늘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체의 움직임에 비교하면 그것은 전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선과 같다. 지구는 항상 초속 18.5마일 속도로, 그러니까 시속으로 약 66,000마일의 굉장한 속도로 우주 공간을 질주하며 달려 나가고 있다. 이 지구가 태양을 향하여 돌고 있는 궤도의 거리가 무려 600,000,000마일(6억 마일)이나 된다. 우리의 능력으로서는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거리가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빨리 달리고 있는 이 지구의 무게가 6,592,000,000,000,000,000,000 톤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 이 지구와 또한 다른 항성들이 들어 있는 우리의 태양계 그 자체가 은하계의 중심을 놓고 약 시속 670,000,000(6억 7천만) 마일의 속도로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은하계는 레몬 또는 계란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은하계의 길이는 광속(빛의 속도)으로 약 100,000(십만)년 동안 달려 가야 하는 크기를 가지고 있다. 빛이 일초에 186,000(18만 6천)마일을 달려 나간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볼 때, 그 크기는 이루 형용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우주에는 그렇게 큰 은하계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만든 우주선이나 로케트가 시속 2만 내지는 3만 마일의 속도로 달린다는 사실에 우리는 감탄하지마는 우리가 속해 있는 이 태양계는 우리들과 그 속에 있는 모든 항성들을 휘어 잡은 채 우주 공간을 향하여 시속 558,000(오십 오만 팔천)마일의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 앞에 우리는 그저 할 말을 잊어 버리게 되지 않는가!

그런데 과연 어떻게 저렇게 많은 별들이 각각 제 궤도를 정확하게 순종하며 돌고 있는 것인가? 고장나지도 않는가? 0.01도의 각도만 틀려져도 아니, 그 달려 나가는 속도의 차이가 조금만 생긴다고 할지라도 이 우주에는 엄청난 별들의 충돌들과 사고들이 일어 났을 것이며, 이 지구는 벌써 오래 전에 불덩이가 되었던지 아니면 산산 조각이 나서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과연 이 태양계를 아니 이 우주를 제궤도에 정확히 붙들어 매고 있는 것인가? 무슨 힘이 이렇게 광대하고 복잡한 우주와 그 속에 있는 헤아릴 수 없이 크고 작은 별들을 운행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큰 우주도 그러하지마는, 작은 우주계의 미생물과 세포들과 원자들의 세계에서도 그 신비한 하나님의 능력이 생명력을 붙들고 계신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어 오던 인류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서 코페르니쿠스의 연구 발표 이후에 지구가 스스로 자전하면서 태양을 향하여 66,000 마일의 속도로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첫번째로 두 렌즈를 연결하여 망원경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통하여 달에도 산과 계곡이 있다는 사실과 쥬피터(목성) 주위에는 작은 네개의 달들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게 되었다. 케플러는 더 나아가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때에 완전한 원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한 쪽을 돌 때에 그 다른 쪽 보다 태양을 조금 더 가까이 하여 돌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 내게 되었다. 그런데 무슨 힘이 이러한 항성들과 별들로 하여금 정해진 궤도를 돌도록 만들고 있는 것인가?

1666년도에 드디어 그 수수께끼가 풀리게 되었다. 성경을 공부하던 신학자였으며 동시에 과학을 공부하고 있던 이삭 뉴톤이 영국에 전염병이 돌게 되자 다니던 캠브리지 대학을 떠나서 집에 돌아와 독학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그가 사과 나무 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과 하나가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수천년 동안 인류가 똑같은 현상을 보아 왔지만, 그 날따라 그것은 뉴톤에게 인간의 지식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는 열쇠를 제공하였다. 뉴톤의 마음 속에는 왜 사과는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지 않고 항상 밑으로 떨어지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드디어 만유인력의 법칙과 중력의 원칙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중력의 신비를 풀 사람이 없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뉴톤은 중력이란 이 우주의 모든 원자(Atom)들이 다 그 원칙에 순종하고 있는 하나의 자연 법칙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을 뿐이다. 이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들은 서로 서로 끌어 당기는 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태양은 지구를 끌어 당기고 지구는 태양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는 것이다. 태양은 마치 커다란 자석과 같은 힘으로 지구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구가 태양에게로 빨려 들어가서 충돌하거나 불타 버리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지구가 적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각도의 궤도로 빠르게 질주하고 있기 때문에 태양이 끌어 당기는 엄청난 인력을 극복하면서 공전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강력한 인력은 지구가 우주의 어두움 속으로 팽개쳐져서 사라지지 않고 제 궤도를 돌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우주에 있는 모든 별들이 바로 이 만유인력의 법칙에 순종하고 있는 놀라운 사실을 이삭 뉴톤이 발견하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온 우주의 별들이 한가지 법칙에 의해서 주관을 받고 있다. 이러한 법칙을 만들고 디자인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지성인들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결코 부인 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 우연히 생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날마다 우리 주변의 자연계 속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가? 온 우주의 모든 물질들은 서로 서로 끌어 당기고 있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Attraction(어트랙션) 이라고 부른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어트랙션의 중심으로써 만물을 붙잡고 계신다. 엄청나게 크고 복잡한 은하계와 태양계가 정해진 법칙에 따라 정확하고 질서 정연하게 운행하는 모습, 그리고 하늘의 은하계 뿐만 아니라 미세하고 복잡한 물질 세계의 원자와 중성자와 분자들까지도 정확하고 질서있게 움직이는 모습은 이 우주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시편 8:3,4.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할 중요한 질문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 지구의 역사를 주관해 오셨으며, 우리들 개개인에게 깊은 관심을 쏟으시면서 지금도 돌보고 계신가에 대한 질문이다. 혹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해 놓으신 다음에, 마치 한번 태엽을 감아 놓은 시계가 자동적으로 돌아가듯이, 이 지구를 자연 법칙에 맡겨 놓으신 다음에 저 우주 다른 끝으로 가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성경은 이러한 질문과 의문에 대해서 분명하게 답하고 있다. 성경 자체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서 기록되고 보존되어 왔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약 40명의 저자들이 약 1500여년간(약 B.C.1500년부터 A.D 100년까지)이라는 긴 세월을 걸쳐서 기록된 것으로서,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의 배경과 문화와 교육과 개성들과 직업들이 각기 달랐으며,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각기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시종일관 동일한 진리와 동일한 하나님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구약은 39권, 그리고 신약은 27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66권의 책들이 한결같이 진리를 일치의 변질도 없이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만유 인력을 발견한 과학자 이삭 뉴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이 기록한 어떤 역사의 기록 보다도 성경이야말로 믿을수 있는 좌표이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들 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놀라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와 세상 역사에 관한 예언이다. 성경의 예언들은 어떤 것은 몇일 또는 몇년 앞두고 기록되었지만, 어떤 것들은 몇백년 아니 몇천년을 앞두고 기록해 놓은 것으로서, 그 자세한 묘사나 기술된 내용들이 정확하게 성취되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예언이 정해진 때에 정확하게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그분께 겸손히 무릎을 꿇게 된다. 성경은 우리 인류가 이 넓은 우주의 한 공간에 내 팽개쳐진 고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여 주고 있으며, 그분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항상 돌보시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 세상과 교회의 과거와 미래를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자상하심과 사려 깊은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도록 해주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평안과 확신을 가지고 어두운 미래를 직면하게 만들어 준다.

이번 호에서 다루고 있는 다니엘 7장의 예언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욱 더 가까이 나아가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창조 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동일한 말씀의 능력으로 보존되어 가고 있다.

역사를 움직여 온 하나님의 손


성경 학자인 월 부르도(J.F. Wolvoord)는 다음과 같은 말로 다니엘서의 중요성을 요약하고 있다. “성경의 대예언서들 중에서 다니엘서가 가장 분명하고 광범위하게 세상 역사의 전개를 다루고 있다.

다니엘서는 세상 역사를 포괄적이고도 연대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역사와 예언을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세상 나라들의 흥망성쇠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진로를 함께 기록함으로써, 세상과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는 구약과 신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의 기초이다.

“다니엘서를 과거의 역사와 비교 검토해보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하여 주신 예언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적중해 왔다는 사실 앞에 숙연해지게 된다. 다니엘서는 과거의 역사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어떤 시점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으며, 인간 역사의 종말에 사는 우리들 앞에 어떤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조명해 준다.”

다니엘서 2장에 대한 간략한 복습

살아남는 이들 제3호에 실렸던 다니엘 2장에 대한 기사를 읽었던 분이라면, 다니엘서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더 많은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다니엘 7장에 펼쳐져 있는 하나님의 예언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니엘 2장과 7장은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코 없어서는 안될 기초석과 같다. 그러므로 인간 역사의 종말과 예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니엘 2장과 7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져야만 한다.

다니엘 7장에 대한 예언 해석을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다니엘 2장에 대한 요점을 살펴보자. 다니엘 2장은 다니엘의 나이가 20세를 갓 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바벨론의 왕이었던 느브갓네살 왕에게 한 꿈을 주셨다. 그 꿈은 매우 무섭고 괴로운 악몽이었으며,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흉몽이었다. 그런데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 것은 그 꿈이 매우 불길한 악몽이었던 사실은 생각나는데, 그 꿈의 내용을 도무지 기억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다니엘이 왕의 앞으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느브갓네살 왕이 꿈에 보았던 내용과 그 의미를 가르쳐 주셨다. 놀랍게도 그 꿈은 세계적인 대제국을 세우기 위해서 골몰해 있던 느브갓네살 왕이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세상의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였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드러난 미래의 세계사는 느브갓네살 왕의 야망을 산산조각내는 것이었다. 그가 꿈에 본 것은 바벨론의 멸망과 그것에 뒤이어 계속해서 나타날 세계적인 대제국들의 흥망성쇠에 대한 역사였다.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인 대제국들 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보여주심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의 운명과 고난과 그들의 진로를 가르쳐 주고자 하셨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도나 중국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거주하지 않았던 대제국들에 대한 예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이유이다.

느브갓네살 왕이 꿈에 보았던 것은 4종류의 각기 다른 금속으로 된 네 부분과 철과 흙이 이상하게 섞여있는 다섯번째 부분으로 만들어진 신상이었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돌이 날라와서 거대한 신상을 산산조각 냄으로써, 신상은 사라져버리고 돌들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영원한 번영을 누린다는 내용의 꿈이었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에게 꿈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왕은 금머리니이다”(단 2:38) 라는 말과 함께, “왕의 후에 ...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왕이 꿈에 보았던 신상은 느브갓네살 왕의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시작해서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제국들의 순서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었다. 또한 돌나라가 발부위를 쳐서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과 함께 끝나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였다.

다니엘 2장과 7장의 관계

다니엘 2장은 다니엘의 젊은 시절에 바벨론 제국의 왕의 꿈을 통하여 주어진 계시이지만, 다니엘 7장은 다니엘이 70세에 가까운 노인이 되었을 때에 자신의 꿈을 통하여 본인이 직접 받은 계시이다. 다니엘은 금머리인 바벨론에 관한 예언이 거의 성취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니엘 7장은 금머리의 시대가 거의 지나가고, 은으로 표상된 가슴과 팔의 제국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때의 이야기이다.

다니엘 7장은 다니엘 2장에 나타난 대제국들의 흥망성쇠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운명을 좀더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2장은 세상 역사에 대한 전체적인 예언이 나타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면서 마쳐진다. 7장에서는 동일한 역사적 기간이 다른 표상과 상징을 통하여 반복 설명되면서,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벌어지는 선과 악의 대쟁투로 촛점을 모아가고 있다. 7장과 그 뒤에 계속되는 예언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짐승으로 표상(상징)된 세상의 대제국들이 어떻게 선과 악의 대쟁투에 참여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며, 대제국들을 통하여 자신의 의도를 이루려고 시도하는 사단의 계획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 2장을 세계의 역사와 지구의 종말에 대한 전체적이고 개략적인 윤곽이라고 부른다면, 다니엘 7장은 2장의 장면을 더욱 구체화시키면서, 하나님과 사단의 계획을 함께 드러내는 다니엘서 2장의 속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다니엘 7장에 대한 연구야말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지침과 방향을 제시해 준다.

바다에서 나온 네 큰 짐승의 이야기(다니엘 7:3~8, 16~27)

네 짐승의 출현

16이 이야기는 바벨론의 벨사살 왕의 원년의 어느 깊은 밤에 시작된다(단 7:1). 그날 밤 다니엘은 꿈을 통하여 계시를 받았다. 먼저, 바다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바닷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하여 파도가 사납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의 눈길이 거친 파도 위를 배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전에 본 일이 없는 큰 짐승 넷이 하나씩 바다 위로 떠올랐다.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바다로 몰려 불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단 7:2~3.

첫번째로 올라 온 짐승(4절) : 독수리의 날개를 단 사자
두번째로 올라 온 짐승(5절) : 곰과 같은데 세 갈비뼈를 물었고, 몸 한편을 들었음
세번째로 나타난 짐승(6절) : 네 날개와 네 머리를 가진 표범
네번째로 나타난 짐승(7절) : 열뿔과 철 이빨을 가진 놀라운 짐승인데, 그 후에 다른 작은 뿔이 올라옴

계시에 대한 천사의 해석

계시를 통하여 이상한 장면을 보고 있는 다니엘은 자신이 보고 있는 이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이 매우 번민케 되었다. 그리하여 계시의 장면을 보여주고 계신 그리스도의 곁에서 수종을 들고 있는 한 천사에게 계시의 의미를 물어보았다.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니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단 7:16~17. 다니엘은 네 짐승은 장차 세상에서 일어날 국가들을 지배하는 왕들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니엘 2장에서 금신상을 통하여 계시되었던 대제국들의 역사적 순서가 7장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3절에서 다시 천사가 “네째 짐승은 땅의 네째 나라인데”라고 말한 것을 보아서도 네 짐승은 세상을 다스릴 네 제국들의 역사적 순서를 상징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네 짐승이 올라오는 배경 장면인 하늘의 네 바람과 바다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1) 하늘의 네 바람 : 성경에서 바람은 전쟁을 상징한다. 특히, 인간의 야망과 이해관계가 뒤엉켜서 일어나게 되는 정치적 소용돌이와 전쟁을 상징한다(렘 4:11-13, 25:32~33, 슥 7:14).

2) 큰 바다 : 성경에서 바다는 백성 또는 나라를 상징한다(사 17:12~13, 8:7~, 계 17:1,15). 바다는 인간들이 군집하여 바다 물결처럼 아우성치듯 살아가는 인간들의 기존 세계를 대표한다. 바다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고 그 결과로 파도가 높게 이는 것처럼, 세상 역사는 바다와 바람이 서로 각축을 벌이는 끊임없는 풍파의 연속이다.

결론적으로, 바다로 표상된 인간 세상에서 서로의 이해 관계가 뒤엉켜 한바탕의 정치적 소동과 전쟁이 휩쓸고 지나가면, 그 결과로 역사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나타나서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게 되는 흥망성쇠의 과정을 바람이 불고 있는 바다에서 네 짐승이 떠오르는 장면으로 묘사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에서 떠오르는 네 짐승은 역사적으로 어떤 국가들을 말하는 것인가?

첫 번째 짐승 : 바벨론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단 7:14.

## 고고학을 근거로 해서 볼 때, 바벨론은 사자를 국가의 상징물로 사용하였다. 2400년이 지난 지금도 바벨론의 성벽에는 사자가 조각되어 있으며, 거대한 돌사자가 앉아 있는 모양을 볼 수 있다. 다니엘 2장에서, 바벨론이 모든 금속 중의 왕인 금으로 표상되었던 것처럼, 7장에서는 바벨론이 모든 동물들의 왕인 사자와 모든 새들의 왕인 독수리로 상징되었다.

##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바벨론은 공격적이고 사납던 사자와 독수리의 기질을 잃어버리고, 연약한 “사람의 마음”을 지니게 된 이후,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실제로 느브갓네살 왕 이후의 바벨론 왕들은 모두 연약한 기질을 가진 왕들이었던 사실을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정치와 군사에 관심을 갖는 대신에 문화와 종교에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국가는 점점 쇠약해져만 갔다. 역사의 주인이 바뀌는 시간이 되자, 한 때 그토록 강력한 패권을 휘둘렀던 바벨론도 메데와 페르샤의 연합군에 의해서 힘없이 정복되고 말았다.

두 번째 짐승 : 메대와 페르샤(바사)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단 7:5. 사자의 위엄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끈질기고 물러설 줄 모르는 용맹과 잔인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곰은 메대와 페르샤를 대표하기에 적절하다. 한번 제정하면 영원히 변경할 수 없는 메대와 페르샤의 미련한 법의 성질은 곰의 특성에 잘 부합된다.

## “몸 한편을 들”고 있는 곰의 모습은 이 나라가 세력의 균형이 잡히지 않은 두 나라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2장에서 은빛 가슴과 팔로 표상되었던 메대-페르샤 왕국이 여기서는 몸의 한편을 들고 서 있는 곰으로 표상되었다. 메대와 페르샤는 둘다 인도-유럽계의 형제지간의 나라였다. 역사의 초기에는 메대가 주도권을 잡았으나, 페르샤의 고레스가 일어나면서 메대는 페르샤에게 흡수되고 말았다.

## 곰의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다”는 표현은 메대와 페르샤에 의해서 정복될 세나라 즉, 리디아, 바벨론, 이집트의 종말을 나타낸다.

## “많은 고기를 먹으라”는 명령은 페르샤가 서방나라의 대원정에서 바벨론보다 훨씬 더 많은 살륙을 저지르는 잔인한 전쟁을 치뤘던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하늘에서 정해진 시간이 되자, 헬라 문화 지역에서 놀라운 맹장이 세계의 재패를 꿈꾸며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알렉산더 대왕이다. 페르샤의 마지막 왕인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더의 침공을 대비하여 막강한 군사를 육성했으나 알렉산더와의 치열한 전투에서 참패함으로써, 그토록 강력한 힘을 가졌던 페르샤 제국도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세 번째 짐승 : 그리스(헬라)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가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단 7:6. 표범은 체구는 작지만 빠르고 용맹한 맹수이다. 게다가 신속한 행동을 표상하는 날개를 달았음은 그의 기민성이 매우 놀라왔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기민성은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마게도니아-그리스의 군대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넓은 땅을 점령했던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20대에 왕위에 오른 알렉산더는 삼만오천명의 기마부대와 70달란트 밖에 안되는 군자금과 일개월분의 군량만을 가지고 페르샤 제국과 소아시아를 정복하였다. 그는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점령하는 대제국을 이룩하였지만, 부절제한 생활과 열병으로 인하여 33세의 나이로 요절하게 되었다. 그는 동서남북을 새처럼 빠르게 움직이면서 가장 짧은 시간에 거대한 땅을 손안에 넣었다.

## “머리 넷이 있”다는 표현은 무엇인가? 머리는 성경에서 수령 또는 지도자를 나타낸다(사 7:8~9, 엡 6:23). 이러한 표상은 실제로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에 그대로 실현되었다. 열병으로 임종을 앞둔 알렉산더에게 수하 장군들이 찾아와서 대제국의 장래를 물었을 때, 그는 “힘센 자가 차지하라”는 유명한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대로 대제국은 힘센 자들의 각축장이 되었는데, 결국 네 장군 즉, 캇산더, 리시마쿠스, 셀르쿠스, 탈레미에 의해서 알렉산더의 대제국이 4개의 왕국으로 분할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운명의 시간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네 장군에 의해서 분할 통치되던 4개의 왕국은 네번째 짐승인 로마 제국에 의해서 차례로 흡수되고 말았다.

네 번째 짐승 : 로마 제국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뿔이 있으므로.” 단 7:7. 이 나라의 출현에 대해서 하늘의 해석자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단 7:23.

## 다니엘 2장에서는 로마제국의 강력한 세력을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같이, 그 나라가 뭇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라고 묘사하였으며(단 2:20), 7장에서는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를 발로 밟았”다고 묘사하고 있다(7:7). 이태리 반도에서 일어난 라틴민족의 강철같은 의지는 여러 차례의 전쟁을 통하여 당대의 모든 문명 세계 즉, 남부 유럽, 프랑스, 잉글랜드, 네덜란드, 스위스, 남부 독일, 헝가리, 터어키, 소아시아 전역, 아프리카를 정복하였다. 그 당시, 로마의 강력한 통제와 군사력을 벗어나서 도망칠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로마에 대항하여 저항한다는 것은 곧 파멸을 의미하였다.

## 그런데, 앞에 나온 세 짐승의 경우에는 다니엘이 그 모습에 상당하는 짐승의 이름을 찾아서 묘사하였는데, 네번째 등장하는 짐승의 특징은 곰, 사자, 표범과 같이 특정한 동물의 이름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무섭고 놀라”운 짐승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번째 짐승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징이 다니엘을 그토록 무섭게 만들었을까? 왜냐하면 로마의 못과 망치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을 비롯하여, 야고보, 베드로, 바울 등과 같은 사도들이 로마의 탄압에 의해서 순교당했으며, 200년 이상 계속된 핍박을 통하여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재산과 생명을 잃어버리는 참혹한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사단의 핍박과 박해의 모습은 다니엘의 마음을 번민케 만들었다.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여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단 7:15.

## 다니엘은 네번째 짐승이 이전에 나온 모든 짐승과 다르다고 말하면서, 네번째 짐승에는 열뿔이 달려 있다고 말하였다.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뿔이 있으므로” 단 7:23. 앞에 나온 세 짐승은 계속해서 뒤에 나오는 짐승에 의해서 정복되었다. 예를 들면, 바벨론은 페르샤에게, 페르샤는 그리스에게, 그리고 그리스는 로마제국에게 멸망당했다. 그러나 네번째 짐승인 로마제국은 이전에 나온 짐승과는 달리 열개의 부족국가로 분열된다. 계속해서 나오는 24절에서, 천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열 뿔은 이 나라(로마제국)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단 7:24. 다니엘 2장에서 로마를 표상하던 철다리가 열 발가락으로 나뉜 것과 꼭 같이(단 2:41), 철 이빨을 가진 무서운 짐승 로마에게 열 뿔이 붙여짐으로써, 장차 로마로부터 분리되어 나올 열개의 독립국가들이 예언되었다. 다니엘 2장에 나온 열 발가락과 마찬가지로 열 뿔에도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로마 제국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올 독립국가들
2) 로마 제국의 영역 안에 세워질 나라들
3)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세워질 나라들
4) 세상 끝 즉,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존속하게 될 나라들

다니엘 2장에서는, 정치가인 느브갓네살 왕에게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의 세계사가 공개되었지만, 7장에서는 선지자인 다니엘에게 정치적인 면(1~7절)과 종교적인 면(8절 이후)이 함께 공개되고 있다. 다니엘은 열 뿔 사이에서 올라오는 한 작은뿔을 보면서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작은 뿔은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특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단 7:8. 다니엘이 보았던 이 계시의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열 뿔에 대해서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라고 설명해 주었던 천사가 다시 그 의미를 설명해 준다. “그 후에 또 하나(주: 작은 뿔)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단 7:24,25.

우리는 지금까지 네 짐승의 정체와 그들이 출현하는 역사적 순서가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정확하게 움직여졌던 사실을 확인하였다. 제국들이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어서 역사 속에 등장하였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위대함과 정확하심에 대해서 경탄하게 된다. 이제, 계속되는 제2부에서는 네번째 짐승의 말기에 나타나는 한 종교적인 세력에 대해서 면밀하게 살펴 보기로 하겠다. 왜냐하면 그 세력(작은 뿔)이 하나님의 교회와 그분의 진리에 입힌 상처는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까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작은 뿔의 9가지 특징


제1부의 후반부에서 살펴본 것처럼, 바다에서 올라 온 네 짐승 중에서 다니엘의 주의를 가장 많이 빼앗은 것은 네번째 짐승이었다. 다니엘서 7장은 네번째 짐승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를 두번씩이나 반복하여 묘사하고 있다.

7장 7~8절은 다니엘이 계시 중에 본 네째 짐승의 모습이고, 23~25절은 다니엘이 보았던 계시 중에서 보았던 네째 짐승과 거기에서 올라오는 작은 뿔의 정체를 설명해주는 천사의 해석이다.

다니엘이 본 계시 :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더니,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다니엘 7:7~8.

천사의 해석 :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들과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부숴 뜨릴 것이며,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 7:23~25.

로마 제국의 분열

7장 23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제1부에서 살펴 본 것처럼, 로마 제국임에 틀림없다. 로마제국을 표상하였던 네째 짐승의 머리에는 열뿔이 달려 있었는데(“이 짐승은 ... 열 뿔이 있으므로” 7절), 그것은 로마가 열개의 국가로 분열될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23절). 과연 그처럼 강력했던 로마제국도 정해진 운명의 시간이 되자, 열 조각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로마제국의 국력이 쇠약해지게 되자 유럽의 북쪽으로부터 게르만 계통의 부족들이 남하하여 서부 유럽을 휩쓸었으며, 그 결과 로마는 열 조각으로 분리되게 되었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로마의 멸망과 함께, 다니엘 2장에 나오는 거대한 신상의 열 발가락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로마의 멸망과 함께 열 조각으로 분열된 부족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앵글로 색슨, 프랑크, 알레마니, 벌건디언, 반달, 수에비, 동고트, 서고트, 헤룰리, 롬바르드.

그런데 7장 8절과 23절은 열 뿔 사이에서 작은 뿔이 일어나서 세 뿔을 뿌리채 뽑아버릴 것을 말하고 있다.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더니” 8절. “열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3절. 하나님의 예언 그대로, 열 부족 중에서 3부족은 작은 뿔의 세력에 의하여 역사의 장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며, 7부족만이 오늘날까지 유럽에서 강력한 현대 국가의 형태를 이루며 존재하고 있다(사라진 세부족: 헤룰리족, 반달족, 동고트족).

작은 뿔 = 적그리스도 세력

다니엘은 네째 짐승에 있는 뿔들의 동태를 유심히 살피던 중에 열 뿔 사이에서 올라오는 작은 뿔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8절. 다니엘 7장은 네 짐승 중에서 네째 짐승의 정체에 대해서 많이 말하고 있는데, 네째 짐승의 열뿔 가운데서 올라오는 작은 뿔의 정체와 그것이 하는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제, 작은 뿔의 정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성경절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다니엘이 본 계시 :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더니,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다니엘 7:7~8.

천사의 해석 :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 7:24~25.

우리는 여기에 나오는 성경절들을 매우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작은 뿔은 역사 속에서 활동해 온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 잘못이나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2부에서는 다니엘 7장 7~8절, 그리고 24~25절에 묘사되어 있는 작은 뿔의 9가지 특징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고, 다음에 계속되는 3부에서는 작은 뿔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견해를 찾아보기로 하자.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막연한 상상이나 추측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다니엘서 7장이 묘사하고 있는 작은 뿔의 역사와 정체는 아무도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의 창시자이며, 종교 개혁 운동의 선구자들이었던 마틴 루터, 요한 웨슬리, 요한 칼빈 등이 작은 뿔의 정체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빛과 해석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이제, 성경이 말하는 작은 뿔의 9가지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다니엘 7장이 말하는 작은 뿔의 9가지 특징

1. 서부 유럽에서 일어나는 작은 뿔 : 그것은 “네째 짐승”으로부터 올라왔다(8,24절). 작은 뿔이 등장하는 지리적인 위치는 로마제국이 자리잡고 있던 서부 유럽이다. “열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들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among them) 나더니” 단 7:8. 앞에서 배운 것처럼, 이 예언의 의미는 로마가 열나라로 나뉘어 지는데, 그 가운데서 작은 뿔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작은 뿔은 반드시 서부 유럽에서 일어난 세력이어야 한다.

2. 로마제국의 분열 이후에 강성해지는 작은 뿔 : 그것은 “열 뿔”이 나타난 이후에 생겼다(24절). 네째 짐승(로마제국)이 열 뿔(열 나라)로 나뉜 직후에 일어난다. 그렇다면 로마가 멸망하고 열나라로 분열되는 사건은 언제 일어났는가? 서기 476년. 그러므로 작은 뿔은 역사적으로 A.D. 476년 이후에 서부 유럽에서 세력을 얻으면서 부상하는 세력이어야 한다.

3. 세 뿔을 뿌리채 뽑아 버리는 작은 뿔 : 작은 뿔이 강성해지면서 먼저 있던 “뿔 중 셋이 그 앞에 뿌리채 뽑혔”다(8,24절). 그러므로 작은 뿔은 서기 476년 이후에 로마제국으로부터 분열된 열 나라 중에서 세 나라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데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세력이어야 한다.

4. 국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작은 뿔 : 작은 뿔도 열 뿔과 마찬가지로 뿔이므로 국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열 뿔은 ... 열 왕이요” 24절. 즉, 작은 뿔은 왕권과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어야 한다. “작은 뿔에는 사람(a man)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8절. 왕권과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a man)이 작은 뿔로 상징된 세력의 지도자로서 군림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작은 뿔은 왕권과 같은 중앙집권적인 조직을 가지고 있고, 한 사람이 조직의 지도자로 군림하는 군주국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5. 열 뿔과는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작은 뿔 : 다니엘은 작은 뿔이 다른 열 뿔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묘사하였다.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24절. 다니엘은 무엇이 어떻게 다르길래 작은 뿔을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라고 표현하였는가? 열 뿔은 단순히 정치적인 왕권을 가진 나라들이었지만, 작은 뿔은 정치적인 왕권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세력인 사실이 다음에 계속되는 여섯번째 특징에서 나타난다.

6. 종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작은 뿔 : 다니엘은 작은 뿔의 종교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압축하여 묘사하고 있다.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니라.” 8절.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25절. 지극히 높으신 자 즉,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입으로 큰 말을 하는 세력이 작은 뿔이다. 여기서 작은 뿔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말” 한다고 했는데, 어떤 말을 하는 것이 “큰 말”인가? 요한계시록 13장에는 용(사단)에게 권세를 받는 짐승으로 표상된 작은 뿔의 모습이 나오는데, 우리는 거기서 “큰 말”의 성경적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고.” 13:1~7. 성경에서, “큰 말”은 그 의미에 있어서 “참람된 말”과 함께 사용되는 낱말이다. 작은 뿔이 “큰 말”을 한다는 것은, 그 세력이 “참람된 말”을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참람된 말”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신약 성경에는 “참람”이라는 단어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첫째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고(눅 5:21), 둘째는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 놓는 것을 말한다(요10:33). 요한복음 10장에는, 예수께서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참람되다고 말하면서 그분을 향하여 돌을 던지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요 10:30~33). 또한 마가복음 2장에는 “참람”에 대한 또 다른 정의가 나온다. 예수께서 문둥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께서 가지고 계신 죄를 사하는 권세를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주님을 향하여 참람되다는 말을 하였다(막 2:5,6). 물론,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되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며,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어떤 사람이나 세력이 스스로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말을 하거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참람된 말” 즉, “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뿔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말을 하는데, 즉 스스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주장하며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특징을 가진 세력이다.

7. 하나님의 성도들을 핍박하는 작은 뿔 :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괴롭게 할 것이며.” 25절. 작은 뿔은 성도들을 핍박하고 그들에게 순교의 길을 걷도록 강요한 세력이어야 한다.

8. 때와 법을 변경시키는 작은 뿔 :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25절.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의해서 하나님의 때(시간)와 하나님의 법이 변경되는 일이 생길 것을 예언해 두심으로써, 당신의 백성들이 적그리스도의 기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예비해 두셨다. 작은 뿔은 하나님의 법과 그분의 시간을 변경시킨 세력이어야 한다.

9.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의 전성기를 갖는 작은 뿔 :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5절. 여기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예언적 기간을 나타낼 때에 사용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작은 뿔 세력이 지상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전성기를 누릴 것인지를 나타낸다. 작은 뿔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성도들을 압제하였던 세력이어야 한다.

결론 : 작은 뿔은 위에 열거한 9가지 특징을 모두 만족시키는 세력이어야 한다. 작은 뿔은 서기 476년 이후에 로마제국이 열나라로 분열된 사이에서 올라온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세력을 의미하는데, 그 세력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시하고, 스스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며, 하나님의 법을 변경시키고 중세기 때에 성도들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박해해온 세력을 의미한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예언적 기간에 대한 해석은 이미 살아남는 이들 제7호(기독교에 교파가 많은 이유, 26페이지)에서 다루었지만, 다시 한번 간략하게 복습하기로 하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 1260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얼마나 긴 기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와 있다. 요한계시록 12장 6절과 14절에는 여자로 표상된 하나님의 참 교회가 지상에 있는 사단의 세력이 가하는 핍박을 피하여 깊은 산과 계곡으로 피신하는 장면이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주: 사단)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계 12:14.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 12:6. 이 예언의 정확한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성경절이 동일한 사건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12:14절에서는 여자가 광야로 피신하여 있는 기간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말하였는데,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6절은 여자가 광야에 피신하여 있는 기간을 “일천 이백 육십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가 “일천 이백 육십일”과 동일한 기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 1260일). 그런데 성경에서 예언적 기간을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상징어인 “때(time)”와 “일(day)”은 실제적으로 얼마나 긴 기간을 의미하는가?

때(Time) : “때”에 대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열쇠가 다니엘 11:13에 담겨져 있다. “북방왕은 돌아가서 다시 대군을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time) 곧 몇 해(year)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이 성경절에서 “때(time)”는 “해(year)”를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년+2년+반년”으로 환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 1년+2년+반년 = 360일+360일+180일 = 1260일이 된다(성경에서 예언적인 기간을 상징하는 일년은 언제나 360일로 계수됨).

일(Day) : 성경에서 기간을 상징하는 예언에서 1일은 실제에 있어서 1년으로 환산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이해해야 한다(1일=1년). 우리는 에스겔 4:4에서 기간적 예언을 푸는 또 하나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네게 사십일을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민수기 14:34에도 동일한 원칙이 반복되고 있다.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러므로 1260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은 실제에 있어서 1260년으로 환산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기간적 예언을 해석해 내는 다음과 같은 등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 1년+2년+반년 = 1260일인데, 이것은 모두 실제에 있어서 1260년이라는 기간을 의미하는 상징어들이다.

I. 예언을 해석하는 3가지 원칙

1. 성경은 성경을 통해서 해석해야 한다. 알고자 하는 예언의 상징적 표현이나 비유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를 찾아보고, 기도와 합리적인 판단을 통하여 그 의미를 파악한다.
2. 예언을 나타내는 표현이 상징인지 또는 실제인지를 전후 문맥을 통해서 구별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상징일 경우에는, 그 의미를 풀어낼 수 있는 열쇠를 성경 안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3.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기간을 나타내는 예언은 하루가 일년을 상징한다. 그러나 한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1일=1년이라는 등식을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날짜에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날짜가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어로 사용될 경우에 한해서만 이러한 등식을 적용할 수 있다. 날짜가 기록된 성경절의 앞뒤 문맥을 잘 읽어보면, 그 날짜가 상징적으로 사용된 표현인지 또는 실제적인 기간을 나타내고 있는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언 해석 원칙이 올바로 적용되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성취된 예언이 역사 속에서 그 예언적 기간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II. 예언에 나오는 상징어와 그 의미

상징 의미 열쇠 성경절
여자(처녀, 시온의 딸) 하나님의 교회 호 2:19~20, 사 54:1~8, 고후 11:2
한 때 일년 단 11:34; 4:16,32
바람 전쟁 렘 25:32~33; 49:36
물 사람들, 백성들 계 17:15
짐승, 뿔 나라, 세력, 왕권 단 7:17,24

종교 개혁자들이 말하는 작은 뿔의 정체


제2부에서, 우리는 성경이 작은 뿔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9가지 특징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작은 뿔의 세력이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앞에서 살펴 본 9가지 특징을 모두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한 세력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는 매우 신중하고도 지혜로운 방법으로 이 중요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제3부에서는, 오늘날의 현대 개신교회를 태동시켰으며,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는 종교 개혁자들의 견해를 살펴 보기로 하겠다.

가장 권위 있는 백과사전 중의 하나인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증언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상이 루터와 다른 종교 개혁자들로 하여금 교황권에 대항하는 운동을 주도하게 만든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었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1962년도판 2권 61페이지. 어떠한 사상이 종교 개혁자들로 하여금 그토록 강력한 힘으로 종교개혁운동을 추진하도록 만들었는가? 그것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의 예언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천년 이상이나 계속되었던 종교 암흑시대의 종말을 가져온 종교 개혁운동. 어떻게 소수의 개혁자들에 의해서 시작된 개혁 운동이 수많은 서민들과 귀족들에게 번져나가고, 나아가서는 로마 교황권의 천년의 권세를 깨뜨리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물론, 그 당시 로마 교황권의 심각한 부패상이 종교 개혁자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게 만들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유럽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로마 교회에 대항하여 반기를 들고 일어설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되지 못했다.

중세기의 종교 개혁이 성공하게 된 두가지 중요한 이유는, 첫번째, 종교 개혁자들이 인간의 구원에 대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행함과 공로와 의식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수많은 민중들의 믿음을 로마서에서 비춰 나오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빛으로 옮기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과 생애를 바쳤다. 개혁자들이 소개하는 구원에 대한 가르침은 신자들의 양심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두번째, 개혁자들은 다니엘 7장이 말하는 작은 뿔의 세력이 무엇인지를 민중들에게 분명하게 말해 주었다. 이 두가지가 천년의 암흑시대를 끝내고 종교개혁시대의 아침을 열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 작은 뿔에 대해서 종교 개혁자들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들어보자;

1. 마틴 루터 : “바울이 데살로니가 후서 2장 3,4절에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고 기록하였던 그 존재가 여기에 있다. 적그리스도인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있는데, ... 그는 하나님의 법을 삭제하였으며, 하나님의 계명 위에 자신이 만든 계명을 높였다 ... 우리는 여기서 교황권이 진짜 적그리스도의 권좌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바이다.”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2, P.291,256
2. 요한 칼빈 : “나는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 그는 적그리스도이다- 나는 그가 교회의 머리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엡 5:23.” John Calvin Tracts, vol. 1, p. 219,220
3. 요한 낙스 : “수 세대에 걸쳐서 교회 위에 군림해 온 교황권이 바로 바울이 말한 적그리스도요 멸망의 아들이다.” The Zurich Letter, p. 199
4. 필립 멜랑톤 : 로마 교황권이 거대한 조직과 왕국을 가지고 있는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진리이다 ... 데살로니가 후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죄의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임으로써 교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였다.”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 2, pp. 296-299
5. 아이삭 뉴톤 : 교황권은 나머지 열뿔과는 다른 종류의 왕국이었다 ... 로마 교회는 선지자 노릇을 하였으며, 동시에 왕이었다.” 아이삭 뉴톤, Obserbation on the Prophecies, p. 75
6. 요한 웨슬리 : “로마 교황권이 바로 죄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바이다.” 요한 웨슬리, Antichrist and His Tem Kingdoms, 0. 110
7. 사무엘 리(17세기의 유명한 성직자) : “로마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영국에 있는 모든 주요 교단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르침이다.” 사무엘 리, The Cutting Off of Antichrist, p. 1

 




작은 뿔의 정체를 밝히는 9가지 증거

종교 개혁자들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했길래, 교황권이 바로 적그리스도라고 선언하였을까? 그들은, 우리가 제2부에서 살펴보았던 작은 뿔의 9가지 특징들을 어떻게 교황권에게 적용시켰을까?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의 9가지 특징들이 완전히 일치하는 세력이 오직 교황권 밖에 없는 것을까? 이제부터,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함께 찾아보기로 하자. 이 기사를 끝까지 읽고 나면, 다니엘 7장에 나타난 작은 뿔의 9가지 특징을 모두 만족시키는 세력은 오직 한 세력 밖에 없다는 개혁자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세와 편견없는 마음으로 작은 뿔의 정체를 연구하는 사람마다 모두 동일한 결론을 얻을 수 있도록 예언을 기록해 두셨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성경을 진지한 마음으로 연구하는 그리스도인마다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오직 로마 교황권 이외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종교나 정치 세력도 작은 뿔의 9가지 특징들을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없다.

이제, 현대 개신교회의 선구자들인 종교 개혁자들이 로마 교황권을 작은 뿔 세력으로 지목했던 9가지 증거들을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제2부에서 살펴보았던 작은 뿔의 9가지 특징들과 교황권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9가지 증거들을 비교 검토해 보도록 하자;

첫 번째 증거, 서부 유럽에서 일어난 교황권 :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들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among them) 나더니” 8절. 이 성경절은 로마제국이 열나라로 나뉘어지는데, 그 가운데서 작은 뿔이 나타난다는 의미로서, 작은 뿔이 등장하는 지리적 위치를 서부 유럽이라고 정해 주고 있다. 로마 교황권이 생성된 지리적 위치가 첫번째 특징과 정확하게 일치하는가? 그렇다. 로마 교황권은 서부 유럽에서 발생되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로마 제국의 심장부인 이태리 반도의 로마시에서 일어났다.

두 번째 증거, 로마의 분열 이후에 강성해지는 교황권 :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24절. 이 성경절과 바로 위에서 언급한 다니엘 7:8을 토대로, 우리는 작은 뿔 세력이 “열 뿔”이 나타난 이후에 강력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로마 교황권은 언제 일어났는가?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는 역사적인 연대가 이 두번째 특징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교황권은 로마제국이 열나라로 분열된 A.D. 476년 이후에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A.D. 538년에 저스티니안 황제는 로마교회에게 막강한 권세(종교, 정치, 군사권)를 주기로 선포하였는데, 이로서 교황권이 세상을 지배하는 종교암흑시대가 열리게 되었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수 많은 역사가들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 증거, 세 뿔을 뿌리채 뽑아 버린 교황권 : “먼저 있던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더니.” 8절. 로마제국이 분열되면서 일어난 열 나라 중에서 세 나라는 교황권을 매우 강력하게 견제하였는데, 그 세 나라는 교황권의 신앙과 상충되는 아리안주의를 신실하게 신봉하던 동고트, 헤룰리, 반달족이었다. A.D. 538년, 저스티니안 황제가 교황권에게 막강한 세력을 주는 포고령을 내린 이후, 로마 교황의 지상권을 가로막던 헤룰리, 반달, 그리고 동고트 족은 A.D. 493년, 534년, 그리고 538년에 각각 제거됨으로써,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더니”라는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로써, 로마제국이 분열된 결과로 생긴 열 나라 중에서 일곱 나라만이 오늘날까지 유럽에서 현대국가의 형태를 이루면서 존재하고 있다.

네 번째 증거, 국가적인 특성을 가진 교황권 : “열 뿔은 ... 열 왕이요” 24절. 열 뿔이 열 왕이라면, 작은 뿔도 같은 뿔이기 때문에 왕권과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피라밋 형태의 강력한 조직을 가지고 있는 교황권의 형태는 강력한 왕권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에 있어서도, 로마의 바티칸은 지금도 교황이 군주로서 군림하는 하나의 독립된 도시 국가인 동시에 절대적 군주 국가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 세상의 어떤 나라도 교회 자체가 국가로서 군림하는 형태는 없다.

다섯 번째 증거, 열 뿔과는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교황권 :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24절. 이전의 열나라는 모두 정치적 군주국가였지만, 교황로마는 정치적 절대 군주국가이면서 동시에 종교적 군주국가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이전의 왕국들은 사람의 몸을 다스렸지만, 교황로마는 사람의 영혼까지 다스린다.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영토 내에 있는 백성들만 다스리지만, 교황 로마는 영토와 민족을 초월하여 다스리는 범세계적인 세력이다.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다(단 7:8). 교황권은 통찰력 있는 눈을 통하여 세계 정치와 종교계를 감독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섯 번째 증거, 하나님께 대적하며 “큰 말”을 하는 교황권 : 작은 뿔의 정체를 드러내는 결정적 단서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니라.” 8절.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25절. 제2부에서 살펴 본 바대로, 작은 뿔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시 하고,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큰 말” 즉, “참람된 말”을 하면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과연 교황권은 스스로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말하며, 인간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로마의 바티칸에서 공식적으로 발행된 책들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교황만이 가장 거룩하다고 불릴 수 있으며 ... 거룩한 군주, 지고한 황제, 그리고 왕중왕이라고 불릴 수 있다. 교황은 그토록 큰 위엄과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동일한 심판을 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교황이 행한 바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발해진 것처럼 여김을 받는다.” Pope, Perraris, Ecclesiastical Dictionary.
“우리(주: 교황들)는 이 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Pope Leo XIII, Encyclical Letter, 7/20,1894.
“교황은 너무나 위엄이 있고 지고하기 때문에 그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인 동시에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다. 교황은 지상의 하나님이시며, 왕중의 왕이시고, 최고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 Prompta Bibliotheca, vol. VI, p. 25-29.
“성경에서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모든 명칭들과 그분의 최상권에 관한 모든 것들은 교황에게도 적용된다.” Bellarmin, On the Authority og Councils Vol. 2.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의 대관식 때에, 교황의 머리에 삼층관을 얹으면서 드린 오타비아니 추기경의 기도에서도 위와 같은 사상이 전혀 변치 않고 전승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세 관으로 꾸며진 이 삼층관을 받으소서. 당신은 군주들과 제왕들의 아버지이며, 세계의 주교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임을 생각하소서. 주의 명예와 영광이 영원하실지어다.” 이 외에도 성경이 “큰 말” 또는 “참람된 말”이라고 선언하는 수많은 주장들이 교황권의 공식 출판물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선지자 다니엘이 묘사한 작은 뿔의 모습에 대해서, 사도 바울과 요한은 좀더 구체적으로 그 정체를 밝히고 있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살후 2:4.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계 13:5,6(여기서 마흔 두달은 42달x30일=1260일, 즉 1260년이라는 기간을 상징한다. 제2부에서 배운 바와 같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 1년+2년+반년 = 42달 =1260일은 모두 1260년이라는 예언적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어들이다).

일곱 번째 증거, 하나님의 성도들을 핍박하였던 교황권 :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핍박할 것이며” 25절. 우리는 지나간 중세기의 역사 속에서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순교시켰던 역사의 장면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중세기의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지성인이라면,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종교재판을 통해서 이단이라는 죄목 하에 잔혹하게 죽어간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로마 교황은 자신이 양심적으로 믿는 신앙 때문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로마교회의 우상숭배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성서를 높이 쳐들며, 생명의 죽음도 불사하고 죄를 대항하여 피로서 항거한 5천만의 남녀들을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살상한 것으로 추산된다.” H.G. 게이네쓰, 시대의 임박한 종말, 204.

여덟 번째 증거, 때와 법을 변경시킨 교황권 :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경하고자 할 것이며.” 25절. 작은 뿔에 대한 이 예언을 교황권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카톨릭 교회는 자신들의 교리문답과 교리책에서 두번째 계명을 삭제하였는데, 그 이유는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는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두번째 계명은 그들이 숭배하는 마리아 상이나 각종 성자들의 상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계명을 빼버리는 대신에 열번째 계명을 둘로 나눔으로써, 10개의 계명을 가진 십계명의 형태를 유지시켰다. 이렇게 십계명을 변경시킴으로써,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십계명에는 우상숭배에 대한 계명이 없고, 탐심에 대한 계명이 두개로 중복되어 있다. 또한 네번째 계명인 제칠일 안식일을 제일일로 변경하여 준수하기 시작하였다. 천년 이상 동안이나 교황권은 하나님의 법과 때를 변경시키고자 노력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한 백성들을 통하여 당신의 법을 보존해 오셨다. 하나님의 법에 대한 사단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마 5:18).

여기서 잠깐, 교황권이 하나님의 법을 변경시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살아남는 이들 제14호 22페이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교도였던 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였는데, 이것을 기점으로 해서 수많은 이교도들이 황제를 따라서 그리스도 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부터 교회는 새로 개종한 이교도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국가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많은 진리들을 타협하거나 변경시키기 시작하였다. 다음에 나오는 교회 역사가 본 모쉐임의 증언은 그 당시의 교회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회의 감독들은 이전에 희랍과 로마의 이방 종교를 믿던 사람들이 자신의 신들에게 존경과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마련하였던 종교 의식들과 제도들을 조금씩 고쳐서 그리스도 교회 안으로 끌여 들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새로 개종한 이교도들은 자신들의 조상 때부터 전래되어 온 의식들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그리스도와 순교자들도 자신들이 섬기던 신들과 같은 방법으로 숭배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수많은 이교도들이 좀더 쉽게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교회 지도자들은 생각하였다 ... 이교도였던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자마자, 곳곳에 굉장한 성전들이 즐비하게 서게 되었는데, 성전마다 여러가지 그림들과 조각된 우상들로 단장함으로써, 외관상으로나 내면적으로 이교도들의 신전과 흡사한 것이 되었다.” J. L. Von Mosheim, Ecclesiastical History, I, 369.

실제로, 8세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카톨릭 교회들이 각종 성상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이것들에 입맞추고 기도하며, 분향하고, 절하는 일이 극에 달해서, 오히려 우상을 섬기지 않는 회교도들로부터 우상숭배자라는 조롱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배도의 길을 걷던 로마교회는 결국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둘째 계명을 하나님의 법에서 삭제한 다음에 천주 십계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십계명

1.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
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3.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도적질하지 말라.
9. 네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
10. 네 이웃의 재물이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천주교 십계(천주교 교리 제1권, 제28절)

1.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 위에 공경하여 높이고,
2. 천주의 기룩하신 이름을 불러 헛 맹세를 발하지 말고,
3. 주일을 지키고,
4. 부모를 효도하여 공경하고,
5. 사람을 죽이지 말고,
6. 사음을 행하지 말고,
7. 도적질을 말고,
8. 망령된 증참을 말고,
9. 남의 아내를 원치 말고,
10.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교황권은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변경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믿는 신학적 배경을 카톨릭 백과사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여 두었다.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주: 교황을 뜻함)들은 교훈이나 금지에 관한 율법을 부가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음과 아울러, 이러한 율법들로부터 면제해 주는 권세도 있고, 필요하다면 폐지시키는 권세도 있다 ... 이러한 사법상의 권한은 심지어 죄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포함하고 있다.” Pope,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XII, 265, col. 2.

16아홉 번째 증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의 전성기를 갖는 교황권 : “성도가 그의 손에 붙인 바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5절. 제2부에서 공부한 바와 같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260년이라는 긴 기간을 의미한다. 교황권이 중세기의 천년 이상 동안 전성기를 누리며, 하나님께 대적하고, 그분의 성도들을 핍박하며, 율법을 유린할 것에 대한 예언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7번이나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께서는 1260년 동안 성도들을 핍박하는 작은 뿔의 모습을 여러가지 모습으로 성경에 기록하여 두심으로써, 그분을 진정으로 따르고자 하는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을 작은 뿔의 기만으로부터 보호하고자 계획하셨다.

1. 다니엘 7:25 :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 다니엘 12:7 :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
3. 요한계시록 11:2 : “저희가 거룩한 성을 42달 동안 짓밟으리라.”
4. 요한계시록 11:3 :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5. 요한계시록 12:6 :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 있더라.”
6. 요한계시록 12:14 : “그 여자가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7. 요한계시록 13:6 :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42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

위에 언급한 7개 성경절은 모두 동일한 사건이 동일한 기간 동안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7개의 성경절 모두, 여자로 표상된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작은 뿔(짐승)의 권세를 피하여 깊은 산이나 계곡으로 숨어들어가 하나님의 진리를 보존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예언하고 있는데, 실제로 중세기의 역사가 그 사실을 너무나 명백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

작은 뿔에 대한 마지막 아홉번째 증거도 교황권에게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이루어졌는가? 그렇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중세기의 역사를 들추어 보아야 한다. 1260년의 기간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마쳐지는 기간인가? 먼저, 작은 뿔이 언제, 어디서 일어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로마제국이 열나라로 분열한 이후, 즉 서기 476년 이후에 작은 뿔 세력이 강성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476년 이후 어느 때에 로마교회가 권세를 장악하는 계기가 만들어 졌는가? 서기 533년은 매우 의미심장한 해이다. 이 해에, 저스티니안 황제는 로마 교황권에게 강력한 권세를 준다는 조서를 반포함으로써, 교황권이 교회의 머리로서 모든 성도들을 장악할 수 있는 권한을 공인해 주었는데, 우리는 이 사실을 바로 그 다음 해(서기 534년)에 편찬된 저스티니안 법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1260년의 시간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교황권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운동을 만나게 되었고, 프랑스 혁명의 여파를 통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1260년이라는 운명의 기간이 끝마쳐지는 시간인 1798년에 이르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당시 프랑스 혁명정부의 명령을 받은 버티어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로마 교황청으로 쳐들어가서 교황 피우스 6세를 그의 권좌로부터 끌어내리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교황 피우스 6세는 말할 수 없는 수모 속에서 로마로부터 프랑스의 감옥으로 압송되어 투옥된 후, 감옥 속에서 병으로 옥사하였으며, 교황권의 모든 재산은 압류되었는데, 바로 그 해가 1260년의 종점인 1798년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서기 538년에 교황권의 권세가 확립됨으로써 시작된 1260년의 예언은 1798년에 교황권과 로마교회가 붕괴됨으로써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결론

1,2,3부에 걸친 기사들을 통하여, 우리는 다니엘 7장이 말하고 있는 작은 뿔의 9가지 특징이 모두 교황권의 역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히틀러나 모슬렘 교회 또는 컴퓨터를 작은 뿔의 세력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 중 어떤 것도 다니엘 7장이 보여주고 있는 작은 뿔의 9가지 특징을 모두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오직 한 세력만이 9가지 특징을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교황권이다.

마틴 루터, 요한 칼빈, 요한 웨슬리, 요한 낙스와 같은 개혁자들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의 예언이 바로 그들의 세대에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어떤 사람도 그들이 제시하는 예언해석에 도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러한 해석은 너무나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사실 위에 세워졌으며, 합리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의 정체를 파헤친 개혁자들의 해석은 매우 놀라운 빛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종교연합운동이라는 물결 때문에 작은 뿔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해석이 빛을 잃어가고 있지만, 우리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변화되든지 간에 하나님의 진리는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서 변하지 않는다.

이 기사는 어떤 특정 교파를 공격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져서는 안된다. 우리가 믿는 것은, 모든 교파 안에 자신이 양심적으로 이해하고 믿는 진리의 빛에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참 백성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니엘 7장을 통하여 작은 뿔의 기만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주신 이 기별이 진리일진대,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이 기별 가운데서 자신이 받아야 할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빛을 어떻게 자신의 신앙 생활 속에서 적용시킬 것인지를 개인적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을 스스로 연구하고, 자신의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그것이 마지막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까지 이 기사를 읽은 독자들 중에 어떤 분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작은 뿔은 과거에 흘러가 세력이 아닌가?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왜 지나간 과거를 들추는가?” 왜냐하면 작은 뿔에 관한 하나님의 예언은 다니엘 7장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니엘 7장의 속편이라고 불리워 지는 요한계시록 13장에는 짐승으로 표상된 작은 뿔 세력이 미국과 함께 지구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다시 엄청난 세력으로 부상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요한계시록 13:3.

두 길


천국으로 가는 길은 지위가 높은 자들이나 재물을 뽐내는 자들이 당당하게 활보하기에는 너무나 좁고,
야심을 펴기에는 너무나 협소하며,
교만과 자존심을 가지고 기어오르기에는 너무나 비탈지고 험한 길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감당하셨던 것이 노고, 인내, 자아 희생, 비난, 궁핍, 모욕, 핍박이라면,
인간이 우리가 하늘 낙원에 들어가고자 할 때에 치러야 할 몫도 이러한 것들이 되지 않겠는가?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에는
고통과 양심의 가책, 슬픔과 실망이 있으며, 불행과 허무함이 있다.
그 길은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넓고 평탄한 길로서 안일함과 탐욕 속에서 걷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자들을 통하여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말하는 경고를 보내신다.
길의 끝을 보지 않고 달려가는 이기적이고 세속적이며, 경솔하고, 완악한 자들이여,
그대들이 패망에 이르지 않도록 절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라.

영생으로 인도하는 좁은 오르막 길에는
그 길을 걷는 자들이 받는 상처와 피로를 씻어 주는 기쁨과 보람의 샘들이 있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의 임재가 그 길을 걷고 있는 각 사람들의 마음에 계시기 때문에,
그들의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자만,
눈은 빛나고 입가엔 확신에 찬 미소가 흐른다.

여기, 그대 앞에 놓여진 두 길이 있다.
하나는 좁은 길, 다른 하나는 넓은 길.
하나는 영생의 길, 다른 하나는 멸망의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복음 7: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