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떤 어머니의 편지


오늘로서 네가 19번째 생일을 맞는구나. 너는 지금 우리 곁을 떠나 있지만 아버지와 나의 사랑과 기도가 항상 너의 뒤를 따르고 있단다.

네 생애의 또 다른 한 해가 오늘 막을 올리고 있다. 너는 지나간 한해를 뒤돌아 보았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너의 생애는 경건하고 순결한 것이었니? 너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았니? 하나님이 말씀에 대한 흥미가 증가되었니? 너의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유혹에 대해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니? 영원 속으로 흘러 가버린 너의 지나간 생애의 기록이 용서와 승리를 통하여 깨끗하게 정리되었니?

아들아, 자신의 유익과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아라.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전해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넓고 평탄한 길을 걸어갈지라도, 너만은 좁을 길을 고집스럽게 걸어가라.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거룩한 감화를 줄 만큼 강력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항상 선을 선택하고, 약하고 연약한 자들을 도와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망설이지 말아라. 네가 양심적으로 믿고 있는 바를 용감하게 실천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가장 적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여 충실하고 철저해야한다.

아들아, 너는 아직도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충만하게 경험하고 있지 못하단다. 너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니?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너의 가장 큰 목적이 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네가 세우는 모든 목적, 네가 관계하는 모든 일, 네가 즐기는 모든 즐거움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가 되어야 한다. 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끌려 다니지 말고 세상을 이긴 자로서 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편에 있다고 공언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단다. 우리 자신들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니? 누가 우리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니? 우리의 생각은 누구에게 가 있니? 누구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니? 무엇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좋아하니? 누가 우리의 애정과 정열을 소유하고 있니? 만일 우리가 주님의 편에 서있다면, 우리의 생각은 그분에게 가 있을 것이며, 그분에 대한 생각이 가장 달콤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의 우정관계를 가지고 있지 말아야 한다. 너와 나는 모든 소유과 마음을 그분께 이미 드렸어야 한단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반사하며, 그분의 영을 호흡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소원해야 한단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아무도 오해하지 않을만큼 확고한 행동와 노선을 택해야 한다. 결단성이 없이는 세상에 유익하고 아름다운 영향을 끼칠 수 없단다. 비록 너의 결심이 진실한 것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너의 힘으로 삼고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전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너의 말과 행동과 생애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야 한다. 너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네가 전적으로 주님 편에 있지 않으면, 너는 원수의 편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라. 어떤 이들은 항상 흔들리며 결단을 내리지 아니하므로 신앙 생애에 있어서 실패한다. 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지만, 자신의 마음 전체를 주님께 드리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양심은 점차적으로 굳어지고 성령의 감동하심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되어서 결국에는 성령께서 근심하면서 떠나가게 된단다.

하나님을 위한 일을 네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하여라. 먼저 십자가에 가서 자아, 세상, 그리고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우상을 버려라. 온 생애가 주님께 완전히 헌신되지 않는한, 너는 세상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면서 힘차게 살아가라. 네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너는 자신에 대한 부족함과 헐벗음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네 자신을 보여달라고 성령께 열렬히 간구해야 한다.

영적인 사물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네 마음과 네 정신을 그쪽으로 기울일 때에만 그것을 얻을 수 있다. 실천력이 네게 필요하다. 세상을 위해서는 너의 두뇌와 뼈와 근육을 아낌없이 사용하면서, 왜 영원한 생명과 신앙에는 그렇게도 적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니? 너는 지금 세상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 사업에 있어서 그들이 열성과 힘을 다해서 일해왔기 때문에, 마침내 마음이 세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쉬워지게 된 것이란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참된 신앙 생활이 그렇게도 어렵고, 세상 생활이 그렇게 쉽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단다. 그들의 마음과 생활의 각 방면들이 세상적으로 생각하고 행하도록 길들여져 왔단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동의하고, 실제적인 생애에 적용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많이 있단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교육이 너무도 등한시 되고 있다. 옳고 의로운 일을 행하는“습관”이 결여되어 있다.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선한 행동은 있지만, 거룩함을 향하여 지속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너무도 무시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는 신앙이 생기지 않으며, 왠지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활발해지고 말이 많아지며 열심있는 관심을 나타낸다. 그러한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애를 통해서 세속적인 기질을 배양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기능이 발달된 것이다. 그들은 세상적으로는 거인일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난장이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수준보다 높고 고상하며 거룩한 가르침과 설교를 들을 때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아들아, 우리의 마음은 순결을 사랑하도록 훈련되고 교육받아야 한다. 선과 참된 거룩함에 대한 욕망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거기에서 그친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 고상한 목적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실행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그들의 희망이 생활 가운데서 실천되지 않기 때문에, 하늘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들아, 예수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보아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경건의 비밀이 감추어진 바 될 것이다. 그들은 경험적인 지식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분의 기적을 사모하지만,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며, 성령의 열매를 그들의 생활 가운데서 나타내는데 실패하고 있다. 세속적이고, 영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이 하늘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하늘의 영광과 거룩함과 기쁨과 순결함을 전혀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인 사물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하며, 둔감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아, 하늘의 언어와 음악을 배우도록 하여라. 또한“썩어질 것을 피하고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라. 영적인 활동과 봉사에 기쁨을 느끼도록 자신의 마음을 길들여 온 사람들은 하늘의 순결과 영광에 압도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예술에 대한 훌륭한 지식을 가질 수 있으며, 과학에 대한 높은 지식을 가질 수 있고, 어떤 일에 대해서 정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너를 하늘을 위해서 준비시키는 일과 어떤 관계가 있니? 그것들이 너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준비시키는 일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니? 조심해라. 오직 거룩한 생애를 사는 자들만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단다.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하고 허식이 없으며 사랑이 충만한 경건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그러므로 지금 시작하여라.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라. 하루 하루가 너와 하나님의 사이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단다. 하늘 집에서 하늘 합창대와 연합하고 싶거든 하늘의 마음을 지닌 자가 되어라.

네 생애의 어떤 면을 보아도 하늘의 천사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생애를 살아라. 너의 인생의 끝에 영원한 생애가 펼쳐져 있음을 잊지 말아라. 그날에는 오직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물질과 세욕과 이기심을 버리기로 선택한 사람들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아들아,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너를 사랑하는 나의 뜨거운 마음은 언제나 변치 않는단다. I Love You!
사랑하는 엄마가,

 

유혹

Saying No To Sexual Temptation

현대 사회는 성의 자유분방함을 주장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남녀들에게 도덕적인 순결을 요구하신다.

그 해 여름, 그는 자신의 생애가 부도덕한 것들로 가득차 있는 것을 깨닫고 도피처를 찾고 있었다. 그 청년은 같은 대학에서 함께 공부하던 몇몇 여대생들을 유혹했었다는 사실을 나에게 고백하였다. 그 청년은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였다. “나는 내 자신을 자제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흐느꼈다.

그 후, 나는 그 청년과 정규적으로 만나면서 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물론, 나에게는 그 청년의 속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성적인 욕망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아무런 능력도 없지만, 나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능력있는 한 분을 그에게 소개하고자 애썼다.

그 해 여름 내내, 나는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었으며, 젊은 여자들을 유혹하고자 하는 욕망을 극복하는데에 도움이 될만한 몇가지 원칙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 청년과 나는 만날 때마다 함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지금도 그의 번민에 찬 기도 소리를 잊을 수 없다. 마침내 나는 그 청년이 예수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의 생애에 실제적으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점차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가 자신의 생애를 승리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의 예절과 옷차림과 외모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그 청년의 생애를 압도하고 있던 더럽고 추한 습관을 제거해 주셨다.

교육자로서의 나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 볼 때, 그 청년은 요즘 세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의 모든 문제를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어떤 청년들이 오랜 세월 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여학생은 고등학생 때에 받았던 성적인 유혹에 쓰러졌던 아픈 경험을 몹시 후회하였으며, 한 청년은 데이트하던 여학생과 감정적인 유혹에 휘말려서 자신이 결코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감수해야만 하였다. 그 이후로 그 청년은 오랜 시간동안 후회와 낙망의 세월을 보내야만 하였다.

남성들에게 보내는 메세지

남성들이시여, 나는 그대들에게 곧바르고 정직한 말을 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남성들에게 모든 여성들의 고결함과 정숙함을 존중해야 하는 책임을 부여하셨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그러한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안목에서 볼 때, 여인들은 귀한 존재들이며,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야 한다. 여인들의 생애와 습관은 순결해야 하며, 정숙해야 한다. 이러한 여인들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어머니가 될 수 있고, 아내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수많은 여인들이 주변에 있는 남자들이 던지는 성적인 유혹과 압력에 의해서 희생되고 있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부여하신 책임은“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마태복음 22:39).

한 때, 정숙과 순결이 매우 고귀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생각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간에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그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를 나타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그것을 상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손바닥에 아직도 남아 있는 상처 자국이 그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남성들이시여, 그대들이 여인들을 유혹하고자 하는 본성을 극복하는 일에 있어서 실패한다면, 그대들의 인생은 비참한 종말을 가지고 올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여자들을 유혹한 부도덕한 성공담을 허풍을 떨면서 자랑하거든,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그 자리를 피하라. 그대를 사단에게 인도하는 친구들을 피하고, 영적인 감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라. 여인들에게 경박하거나 순결하지 않는 말을 하거나, 불순하게 손을 대는 일에서부터 사단의 시험은 시작된다. 사단은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 제어되지 않은채 나타나고 표현될 때, 자신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그럼 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인들이시여, 그대들의 품위를 잘 보존하시요. 남자가 그대를 유혹하도록 자극받을 만한 환경과 분위기 속에 그대 자신을 두지 말아야 한다. 물론 남자를 무뢰하거나 예의없이 대해서는 안되며, 결코 육체적인 애정을 허용해서도 안된다. 그대에게 접근해 오는 남자들에게 그대가 가볍거나 천박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라. 그대에게 순수하지 못한 방법으로 농담하는 남자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말라.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일들이 그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잘못된 것들을 그 남자에게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한다. 그 남자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라. 그 남자가 올바른 사고를 지닌 남자라면, 그대의 그러한 원칙을 매우 가치있고 고상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남자 친구가 그대의 요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잘못된 태도를 보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그대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그러한 종류의 남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가? 그대의 일평생을 그러한 남자와 동행하기를 원하는가?

이제 조금 다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비록 그렇게 할 의도는 없었다고 할지라도, 너무도 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의 위험한 감정과 욕구를 자극하는 옷을 입으며, 자극적인 태도와 자세를 취하고, 자극적인 말을 한다.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여인들도 있다. 여인들로부터 나오는 의도적이거나 비의도적인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남자다운 남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 남자들은 그리스도께 얼마나 가까이 머물러 있어야 되겠는가?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베드로후서 2:9, 시편 119:9,11

순결함은 반드시 보전되어야 한다!

남자와 여자는 공히 순결함을 보존해야 한다. 바로 그러한 남자들과 여자들만이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로서 나설 수 있다. 자신의 행위나 성품에 부도덕한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전하는 기별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은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대에, 모든 남녀들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분명한 대답을 해야만 한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명하는 것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신명기 11:26-28.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여호수아 24:15
그대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도전을 받아들이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데이트를 통해서 그대를 훈련시킨다고 생각하는가?

한번은 어떤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는 고등학교의 부흥집회에서 순서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17살된 남학생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매우 불안정한 정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학생들은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비정상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위의 여러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매우 자주 불안정한 행동을 나타내었다. 나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여학생들과 데이트했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훨씬 넘는 숫자였다.

그의 경험은 그의 나이에 비해서 훨씬 깊고 심각한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수많은 남녀학생들이 이미 순결과 고상한 도덕심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의 상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교육자로서 나는 그와 같은 청년들을 생각할 때마다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된다. 많은 청년들과 심지어는 부모들까지도 결혼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서 여러 사람들과의 데이트와 연애를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계획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다! 다음과 같은 말은 충격적인 말처럼 들릴테지만, 분명한 진리이다. “데이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결혼을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다.”

한번은 어떤 미션스쿨로부터 초청을 받아서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성경 선생님에게 내가 졸업반 학생들에게 무슨 주제를 가지고 말을 해야될지 물어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우리는 그동안 결혼을 위한 준비에 관하여 생각해 왔었습니다. 스텐디쉬 박사님도 그 문제를 다루어 보시죠.”

졸업반 학생들 앞에서“결혼을 위한 준비”라는 주제로 강연하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다음과 같은 말로서 나의 강연을 시작하였다. “젊은이들이시여, 그대들은 데이트가 결혼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고개를 돌려서 성경 선생님을 쳐다 보았다. 아마 그 선생님은 나와는 다르게 가르쳤던 것같다. 강연을 마치는 시간이 되었을 때, 가장 전문적인 카사노바(바람둥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학생들은 결국 나의 말을 인정하게 되었다(적어도 지적으로는). 하나님의 방법은 데이트나 연애를 많이 하는 훈련을 통하여 결혼할 상대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나 졸업파티 역시 결혼을 위한 준비과정이 아니다. 인기있는 여학생은 남자들로부터 많은 신청을 거절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스스로 교만해지는 시험에 빠지기 쉽다. 또한 남학생으로부터 신청을 받지 못한 여학생은 깊은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그들은 자신을 무가치하고 비참하게 느낀다. 파티나 행사가 있는 날마다, 남학생들 역시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은 여학생으로부터의 거절을 두려워 하게 되며,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무서워 한다. 대다수의 어린 학생들에게 있어서, 불필요한 압력과 스트레스가 그들의 학창시절을 멍들게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종 파티나 사교회보다 훨씬 높은 것들을 위해서 젊은 남녀들을 부르고 계신다. 우리의 청년들에게 보다 높고 위대한 목적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데이트 신청을 많이 받는 여학생이 겪어야 하는 시험과 유혹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교만해지기 쉬우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더 높이고자 하는 시험을 받게 된다. 이러한 시험에 굴복한 여학생은 자신의 미에 대한 자존심을 하늘 끝까지 올려 보내게 된다. 이와 반면에, 신청을 많이 받지 못한 여학생에게도 시험은 마찬가지로 찾아온다. 그 여학생이 데이트 신청을 받아서 나갔을 때, 그녀는 데이트를 만족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순결과 고상한 품위을 보존해야 된다는 생각이 쉽게 흐트러지기 쉽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오늘날 청년들이 직면하고 있는 형편이다.

상대방에게 인기가 있기 때문에, 데이트를 많이 한 남녀 청년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그들 중의 어떤 청년들은 자신들의 매력에 굴복한 사람의 숫자에 대해서 흥분하면서 떠들어댄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의 어느날, 자신의 옆에 서있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자신의 애정과 사랑을 바칠 것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서약해야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비록 그들이 진실하게 서약했다고 할지라도, 결혼 1주년을 맞이하기도 전에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결혼 서약을 범하고 있다. 한 젊은 여인은 말하기를,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갔는데,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들을 힐끗 힐끗 쳐다보는 것을 보면서 혐오감을 느꼈다 라고 하였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다. 청년들이시여, 그대들이 어떠한 결혼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준비하였는가가 장래에 있을 그대의 결혼 생활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라. 결혼식이 그대들의 성격을 바꾸거나 굳어진 습관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그대의 마음을 굴복시킬 때에만 그대들은 변화될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계획과는 전혀 다르다. 그분께서는 우리들이 마지막 헌신과 서약을 서로 나누기 전까지는 감정적으로 격앙되지 말 것을 충고하고 계신다. 다음과 같은 말은 다시 한번 그대들에게 충격을 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을 할 수 있을 만큼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성숙하기 전까지는 연애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다.” 이 말은 적어도 대학을 졸업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대들은 이러한 말을 지금까지 전혀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충분하게 성숙해졌을 때까지, 연애는 그대 자신들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을 교육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어쩌면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왜 그러한 말씀을 하셨을까라고 의아해 할 것이다. 하나님의 충고를 부당하고 균형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좀 더 주의 깊이 생각해 보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이혼율이 비그리스도인들의 이혼율과 거의 비슷한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수많은 청년 남녀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복과 보호를 위해서 준비하신 단순한 원칙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생애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있다. 데이트, 연애, 그리고 어떤 종류의 이성관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남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훈계하고 계신다. “나의 법을 잊어 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1,2,5,6

참된 사랑이란?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귀한 선물이다. 순결하고 고결한 애정은 감정이 아니고 원칙이다. 참된 사랑에 움직이는 사람은 무뢰하거나 맹목적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성령의 지도를 받아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한다.

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은 일생의 운명을 함께 하려고 하는 상대방의 정서를 낱낱이 헤아리고, 성격이 표출되는 것을 일일이 주목해야 한다. 약혼에 이르는 모든 계단에는 겸손, 단순, 신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열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결혼은 이생에서 뿐만 아니라 내세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못하는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 한다.


 

콜레스테롤 때문에 고민하십니까?

아가타 트레쉬 의사

현대인들의 건강을 측정하는 기준치 중의 하나로서 사용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날, 혈관이나 심장에 관련된 질병(고혈압, 동맥 경화 등)이나, 신진대사의 장애로 인한 질병(당뇨, 저혈당 등)은 어떤 사람의 전체적인 건강도를 판단하는 기준치(?)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질병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다.

산업이 발달한 선진 사회에 사는 사람의 경우, 섭취하는 전체 칼로리 가운데 40-50%가 지방(fat)이며, 매우 많은 양의 정제된 탄수화물(refined carbohydrates)을 섭취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러한 사회를 산업과 의학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선진 사회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들 사회에서 발병되는 질병들을 살펴보면, 후진국보다도 낙후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국가나 사회가 산업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보하게 될 때, 질병의 종류는 오히려 심각하게 증가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산업이 발전된 선진국가일수록, 국민의 식생활이 균형을 잃어버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제된 지방과 정제된 설탕, 정제된 가공식품 등이 식탁을 점령함으로써, 사람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산업 후진국의 경우, 섭취하는 전체 칼로리 가운데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20% 정도이며, 정제되지 않은 탄수화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것으로 조사 보고 되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진국민들을 위협하는 각종 질병들이 후진국에서는 찾아 보기조차 힘들다. 지방과 정제된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할수록, 더 많은 종류의 성인병들이 찾아오게 된다. 지방의 총 섭취량을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는한, 현대 산업 사회에 찾아온 각종 질병들을 정복할 수 없다.

동물의 근육(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조개류), 특히 동물의 기관(간, 뇌, 콩팥 등)과 계란은 매우 해로운 물질을 우리 몸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데, 바로 이것이“콜레스테롤”이다. 우리 몸은 일정량의 콜레스테롤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양은 체내에서 자체 생산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 몸은 고기나 생선의 섭취와 함께 따라서 들어오는 어느 정도의 콜레스테롤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분의 콜레스테롤은 혈액과 조직에 저장된다. 체내에 저장된 콜레스테롤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서 위궤양을 일으키거나, 혈관 내벽에 찌꺼기(plaque)가 쌓이는 각종 농양(abscess)을 유발시키는데, 이것을 동맥경화라고 부른다.

고지방의 식생활을 계속해서 할 때, 젊은 사람들의 혈관에도 이러한 찌꺼기가 쌓이게 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찌꺼기가 점차적으로 누적되어서 결국에는 혈관이 좁아지는 현상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혈관 내면적의 축소 현상은 조직으로 흘러들어가는 혈액의 양을 감소시킨다. 이러한 경우, 심장은 일정한 양의 혈액을 조직에 공급하기 위해서 혈압을 올리게 되며, 결국에는 고혈압이라는 질병이 체내에서 자리잡게 된다.

심장과 연결되어 있는 혈관이 찌꺼기에 의해서 좁아지게 될 때, 심장 근육에 산소가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심장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환자의 경우, 단거리를 뛰거나, 감정적으로 격해지거나, 단 한번의 과식이나 기름진 음식의 섭취에도 갑작스럽게 심한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지방이 어떻게 이러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방이 소화 흡수된 이후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알아야 한다. 지방은 작은 지방 알갱이의 형태로 혈액 속으로 들어간다. 이 알갱이들은 적혈구 세포에 달라 붙게 되는데, 이것에 의해서 매우 미세한 혈관에서는 혈액의 흐름이 지장을 받게 된다. 적혈구 세포들은 줄로 연결한 동전 꾸러미처럼 서로 뭉치게 된다. 그리하여 산소를 실어나르는 능력과 효율이 크게 저하된다.

산소가 혈관 내에서 효율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서, 콜레스테롤은 찌꺼기로 남게 되며, 이러한 찌꺼기는 동맥경화를 일으키게 된다. 혈액 중의 산소가 부족하게 되면,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점점 더 쉽게 혈관벽을 뚫고 침투하게 되기 때문에 찌꺼기가 점점 더 많이 혈관 내벽에 쌓이게 된다. 이러한 찌꺼기는 청력, 시력, 관절, 소화 기능을 약화시키며, 결국에는 극도로 쇠약하게 만든다.

식사를 올바로 개선하면, 찌꺼기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며, 거의 정상에 가까운 혈액의 순환을 회복할 수 있다. 지방의 전체 섭취량을 최소화 할 뿐 아니라 체내에 들어가서 트라이글리세라이드(혈중 지방의 한종류)로 전환되는 정제된 탄수화물(설탕, 꿀, 당밀 등)의 섭취량을 낮춤으로써, 혈중 지방을 낮출 수 있고, 당뇨병도 치료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관절염은 혈중 지방을 낮춤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운동: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한 방법 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쉬운 것은 운동일 것이다.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고 햇빛을 받으면서 하는 운동은 매우 효과적인 치료를 가져온다.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줄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다른 유익을 신체의 전체적으로 가져다 준다.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는 식이 요법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는 식이 요법은 매우 단순하다. 아래에 나열한 식품들을 마음껏 즐기면 된다.

1. 과일: 아보카도와 올리브를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과일. 신선한 과일을 통채로 먹으면 과일 쥬스를 마시는 것보다 6-10배의 섬유질을 더 많이 섭취할 수 있다. 섬유질은 콜레스테롤을 흡착하여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2. 채소: 모든 종류의 채소들, 특히 녹색과 노란색 채소류
3. 콩 종류: 완두콩, 편두콩, 갈반조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콩
4. 고구마, 감자
5. 곡식: 정제되지 않은 모든 종류의 곡식(현미, 현미 찹쌀, 통밀 등)
6. 넛(nut)과 씨앗: 월넛, 알몬드, 캐슈, 피칸, 그리고 씨앗 종류는 소량만 섭취해야 됨.

절제해야 할 식품들

1. 설탕, 시럽, 꿀, 당밀(molasses)
2. 각종 식용유, 마가린, 쇼트닝, 피넛 버터를 비롯한 각종 넛 버터
3. 고기와 생선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동물성 식품은 절대 금해야 함
4. 술과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수
5. 강한 자극성 양념, 소금

치료의 효과가 있는 식물

1. 월넛(walnuts): 하루에 두 수저의 월넛을 섭취함으로써,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데 있어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월넛이 함유하고 있는 오메가 3지방산이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는 역할을 한다.
2. 말린 자두(prunes):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팀은 하루에 12개의 말린 자두를 먹음으로써,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3. 씰리움 씨앗(psyllium seed): 한번에 1-3 티스푼씩, 하루에 2-3번 물에 타서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대장암도 예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천연적인 장청소제로 사용되고 있다. 약에 비해서 가격이 매우 싸고 부작용도 전혀 없으며, 효과도 매우 좋다.
4. 포도: 자주색 포도와 포도즙을 쥐에게 먹인 결과, 콜레스테롤이 낮아지는 실험 결과를 얻게 되었다. 건도포 역시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한순간에 큰 효과는 없을지 모르지만, 서서히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5. 숯가루: 활성화된 숯가루는 지질(lipid), 콜레스테롤, 트라이글리세라이드를 낮추어 준다. 영국의 저명한 의학지 LANCET 에 기재된 연구 보고에 의하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매우 높은 환자에게 숯가루를 물에 타서 일정 기간 동안 먹였더니, 전체 콜레스테롤이 25%나 감소 되었으며, LDL은 41%가 낮아졌다. 하루에 3번씩 활성화된 숯가루(1큰수저)를 환자에게 섭취시킨 결과,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6. 마늘: 지난 수십년에 걸쳐서, 수천가지의 실험을 한 결과, 마늘이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또한 당뇨병이나 심장 질환에도 매우 효과적인 치료 기능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늘을 섭취하면, 콜레스테롤과 트라이글리세라이드의 수치가 낮아지고,“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의 수치는 증가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다.
7. 약초: 호톤 베리, 튜머릭과 같은 약초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 있어서 도움을 줄 수 있다. 가루로 만들어진 약초를 뜨거운 물에 10분 동안 담그어 둔 후 마시면 좋다(하루에 두번씩).

닭고기와 소고기, 어느 것이 더 좋은가?

혹시 귀하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소고기 대신에 닭고기를 먹기로 결정하였습니까? 미국에서의 닭고기 연간 소비량이 1955년, 14파운드(6.3kg)에서 1993년, 69파운드(31kg)으로 크게 증가되었다. 무엇이 닭고기를 이토록 인기있게 만들었는가? 다음과 같은 영양학적 증거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 것이다.

지방 단백질 콜레스테롤
불에 구운 연한 소고기(100g) 56% 42% 70mg
닭고기(닭껍질 포함해서 100g) 51% 46% 88mg

결론: 한마디로 말해서, 소고기와 닭고기는 귀하의 건강에 동일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 식품입니다.

 

정말 콩에 대해서 아십니까?


윈스턴 J. 클레이그 (영향학 박사)

가장 싼 가격으로 암,심장질환, 골다공증에 대한 방위력을 증강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중국 사람들은 콩(soybean)이 여러가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에서는 콩을“타토우”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는“위대한 콩”이라는 의미이다. 콩은 아시아 지역에서 매우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온 식품이다. 일본인들은 일년에 평균 25파운드(약11.4Kg)의 두부를 먹는다. 서구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콩을 많이 섭취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건강 생활을 위하여 두부를 비롯하여 콩우유, 콩으로 만든 치즈, 콩으로 만든 고기 대용식품(밀고기, vegitarian meat), 신생아들을 위한 콩 우유, 두부로 만든 아이스크림 등을 식품점이나 건강식품에서 찾고 있다.

고기나 우유나 계란에서 얻는 단백질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는 단백질을 콩에서 얻을 수 있다는 과학적인 사실이 이미 오래 전에 입증되었다. 최근에는 콩에 들어 있는 성분들이 건강과 치료를 위해서 얼마나 유익한가에 대한 연구 붐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볼 때, 콩은 심장 질환, 암, 신장 질환, 골다공증 등과 같은 질병을 예방하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는 콩의 단백질

지난 20년 간의 연구 결과들을 통해서 볼 때, 콩 단백질을 섭취하면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약 20% 가량 낮출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정상적인 콜레스테롤 숫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콩을 섭취함으로써 혈액 중에 있는 지방에스테르를 낮추는 유익을 얻을 수 있다. 혈중 트라이글리세라이드 수치가 높을 경우에, 콩은 그것을 낮추어 주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유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양의 콩이나 밀고기를 먹어야 하는가? 일리노이 대학의 연구소로부터 이것에 대한 답변이 나왔다. 4주동안 매일 1-2온스의 콩 단백질을 섭취함으로써, 혈중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220mg/dl 이상이었던 사람의 콜레스테롤을 매우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체 식품으로서의 콩

소의 우유를 마시는 대신에 콩우유를 마심으로써, 혈중 콜레스테롤의 상승을 막을 수 있다. 32명의 건강한 사람들에게 0.5리터의 우유와 콩우유를 각각 섭취시킨 결과에 대한 연구 보고가 나왔다. 콩우유를 4주 동안 마신 사람들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6% 가량 저하되었으며,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9-19% 저하되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해서, 우리는 콩우유가 혈중 지방에스테르의 수치를 저하시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실험의 과정에서, HDL(“좋은”콜레스테롤)의 수치가 약간 상승되었고, 트라이글리세라이드의 수치가 저하되는 경향이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현격한 변화는 없었다. 콜레스테롤이 높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우유 대신 콩우유를 마셔라!

콩이 체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완전한 결론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콩이 함유하고 있는 이소플라본(isoflavone)은 체내에서 콜레스테롤의 합성을 막는 방지제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콩에 포함되어 있는 식물스테롤과 사포닌은 체내에 들어온 음식물이 함유하고 있는 콜레스테롤의 체내 흡수를 막으며, 콜레스테롤의 배출을 증가시킴으로써, 콜레스테롤 수치를 내리는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콩은 LDL 콜레스테롤의 산화현상을 방지하며, 덩어리로 뭉치는 현상을 방지하기 때문에, 심장 질환도 예방할 수 있다. 콩은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줄 뿐만 아니라, 콩에 포함되어 있는 지방(polyunsaturated fat)은 저콜레스테롤증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암과 싸우는 투사, 콩

암에 대한 26건의 실험 연구 결과, 콩이나 콩의 이소플레본 성분을 공급받은 동물들의 65%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발효되지 않은 콩으로 만든 식품(콩가루, 두부, 콩우유)은 암을 예방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콩을 발효시켜서 만든 식품은 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일본 사람들은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발병률이 낮은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콩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 알라바마 주에 있는 반 박사는 콩에 있는 이소플레본이 전립선이나 유방 암세포들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전립선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낮은 일본 남자들의 경우, 동물성 지방의 섭취량이 낮고, 콩의 섭취량이 높다는 통계 발표와 함께, 일본 남성의 혈장의 이소플레본 평균 수치가 핀랜드 남성에 비해서 7-110배가 높다는 사실도 발표되었다. 플레노이드류의 좋은 공급원인 곡류와 말린 과일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전립선 암의 발병률은 많이 저하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콩을 많이 섭취하는 아시아 여성의 경우, 서구 여성들보다 유방암의 발병률이 1/5 이하로 낮다는 사실이 발표되었으며,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률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의 연구소의 연구 보고에 의하면, 콩 단백질을 매일 섭취하는 여성들은 멘스 사이클이 2-3일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유방암 발병률의 저하를 가져오게 된다.

콩에는 이소플레보노이드 외에도 항암 작용을 하는 여러가지 성분들이 꽤 많이 함유되어 있다. 콩에는 피틴산염이나 장내 세균과 싸우는 저항군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피토 캐미컬(항암 작용을 하는 화학물질)은 암과 광범위하게 싸우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물 실험을 한 결과, 에스트로겐(발정물질)은 유방 부위에 종양을 성장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콩에 들어 있는 이소플레본 게니스타인은 에스트로겐을 빨아들임으로써 종양 세포의 성장을 막는다. 콩에 함유되어 있는 게니스타인의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아무런 부작용 없이 여러가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콩이 주는 기타 유익들

동물성 단백질을 먹는 경우에 많은 칼슘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칼슘을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빠져나가는 칼슘을 막음으로써 칼슘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골다공증의 예방과 치료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하다. 콩 단백질을 섭취할 경우, 체내로부터 빠져나가는 칼슘의 양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신장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동물성 단백질 대신에 콩 단백질을 섭취함으로써, 신장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콩은 폐경기를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여러가지 증세들을 줄여 준다. 콩을 많이 섭취하는 아시아 여성들이 서구 여성들보다 폐경기의 증세를 적게 가지고 있다. 하루 2온스의 콩이나 콩으로 만든 식품을 섭취함으로써, 건강과 치료를 위한 놀라운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알아두면 좋은 상식

하루에 1-2온스의 콩을 섭취함으로써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콩을 이용해서 만든 여러가지 식품 중에서 콩 우유는 소 우유의 대용식품으로 매우 좋은 식품이다. 소 우유는 알저지와 소화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리스테리아 감염과 살모넬라 감염을 일으킬 수 있고,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콩 우유는 이러한 면들을 훌륭하게 보강할 수 있는 양질의 식품이다. 특히 채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식품이다. 모든 종류의 콩 식품에는 이소플레보노이드, 게니스타인, 다이아드제인과 같은 매우 유익한 성분들이 함유되어 있다.

소 우유 대신에 콩 우유를 사용하기로 선택했을 때, 콩 우유 속에 함유된 비타민 B12와 칼슘의 함유량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시중에서 판매하는 콩 우유 중에는 비타민 B12와 칼슘의 함유량이 매우 낮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콩을 먹었을 경우, 속이 거북해 짐을 느끼는데, 이것은 콩에 함유되어 있는 라피노스와 소화되지 않는 설탕 성분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나 콩의 가공 과정에서 이러한 성분들이 빠지게 되기 때문에 두부와 같은 가공 식품을 섭취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고기나 우유를 대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콩과 콩우유이다. 건강과 예방을 위해서 식생활의 개선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콩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식품이다.

최선의 선택

이 글은 Ministy of Healing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신체의 조직은 끊임없이 파괴되며, 각 기관이 움직일 때마다 소비되는데, 그 소비는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에 의해서 보충된다.

몸의 각 기관은 각 기능을 원할하게 수행하기 위한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뇌는 뇌가 필요로 하는 분량을 공급받아야 하며, 뼈와 근육과 신경 역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몫을 공급받아야 한다. 음식물이 소화과정을 거쳐서 혈액이 되고, 혈액이 신체의 모든 기능의 수행과 유지를 위하여 사용되는 것은 놀라운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모든 신경과 근육과 조직에 생명과 힘을 공급한다.

어떤 음식물을 선택해야만 하는가?

신체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요소를 가장 적절하게 공급해 줄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해야만 한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음식물을 선택하는 기준으로서 입맛과 식욕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건강과 치료를 위해서 안전한 지침이 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식생활 습관으로 인해서 잘못된 식욕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식욕이 요구하는대로 음식물을 선택하게 될 때, 우리는 건강을 헤치고 몸을 쇠약하게 만드는 음식물을 택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식욕 뿐만 아니라 잘못된 사회 풍습이나 전통에 의해서 우리의 식생활이 지도받을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도 신체의 건강과 치료를 위해서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 도처에 만연되고 있는 질병과 고통은 식생활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편견에 의해서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가장 좋은 음식인지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의 식생활을 위한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을 연구해야만 한다.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의 필요를 가장 잘 아시는 분께서 아담에게 음식물을 지정해 주셨다. 그분께서는“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창세기 1:29). 또한 인간이 범죄한 후 죄의 저주로 인하여 에덴동산을 떠나서 토지를 경작하여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을 때, 사람에게“밭의 채소”를 먹도록 허락하셨다.

곡식과 과실과 견과(nut)와 채소는 창조주께서 태초에 인류를 위하여 제정해 주신 음식물이다. 이러한 식물을 간단하고 천연적인 방법으로 요리하면, 가장 건강에 유익하고 우수한 영양분을 취할 수 있다. 이러한 식물은 복잡하고 자극적인 음식에서는 얻을 수 없는 힘과 인내력과 정신력을 우리에게 준다.

건강에 유익한 음식물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처한 환경과 직업과 기후에 따라서 잘 적용해야 한다. 우리의 식생활은 계절, 기후, 직업 등을 고려하여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심한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는 음식물이 앉아서 정신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경험과 건전한 판단을 통하여 자기의 필요에 가장 적합한 음식물을 선택해야 한다.

자극적이고 맵고 짠 음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신의 식욕이 비정상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평범하고 단순한 음식을 먹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들의 입맛과 식욕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위장이 그동안 받아 온 혹사에서 회복되는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계속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얼마 후에 단순하게 요리된 음식으로부터 천연적인 맛을 즐기게 될 것이다. 무엇이 가장 좋은 음식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은 단순하게 마련된 음식에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될 것이다. 건강을 회복하고 치료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식욕은 반드시 제어되어야 한다.

한끼에 너무 여러가지 음식물을 차려놓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과식을 조장하게 되고, 위에 부담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요리하여 먹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음식을 요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된다. 천연적인 방법으로 음식의 맛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음식물은 주의 깊게 선택되어야 하며, 지혜롭고 기술적으로 조리되어야 한다.

잘못 선택된 음식과 잘못 요리된 음식은 조혈기관을 약화시키므로 혈액의 질을 저하시킨다. 혈액의 질이 악화되면, 신체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며, 질병에 대하여 무력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 선택된 식품과 잘못 요리된 음식물에 의해서 희생되었다. 그들의 무덤 위에는“잘못된 선택과 잘못된 요리로 인해 사망함”이나“위장의 과로로 인하여 사망함”이라는 비석이 세워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위장과 두뇌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명민한 판단력과 이성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위장을 잘 관리해야만 한다. 중요한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나 영적인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은 예민한 감정과 예리한 관찰력을 소유해야만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음식에 절제하여야 한다. 지방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복잡하게 요리된 음식을 피해야 하며, 단순하고 신선하게 조리된 음식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소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먹고 마시면서 살아가서는 안된다. 건강의 법칙을 이해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몸을 위하여 세워놓으신 법칙을 준수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에 새겨 놓으신 건강의 원칙을 지키면서 사는 것을 우리 모두의 의무로 느껴야 한다. 우리가 건강의 원칙과 법을 범하였을 경우, 그것에 대한 결과로서 고통과 질병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습관과 선택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대답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질문은,“세상의 흐름과 경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아니고,“나는 한 개인으로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생명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고기는 인간을 위한 최선의 식품인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곡식과 야채를 간접적으로 먹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자신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곡식과 채소에서 섭취하기 때문이다. 곡식과 야채에 있던 생명력은 그것을 먹는 동물들에게 들어가고, 사람은 그 동물의 죽은 시체를 먹음으로써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최초에 지정하신 완전 식품은 동물에게 돌아가고, 사람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섭취하고 있다. 인간을 위한 최선의 식품을 직접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고기는 인간을 위한 최선의 식품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육식이 더욱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왜냐하면 동물의 질병이 너무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먹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만일 그들이 그 동물이 살아 있는 때의 모습을 본다면, 그리고 자신들이 먹고 있는 고기의 상태를 정확하게 안다면, 그들은 몸서리를 치면서 그것을 버리게 될 것이다. 각종 세균과 암 덩어리가 포함된 고기도 때때로 음식물로 둔갑하여 가게에 나오게 된다. 흔히 가축들은 사육장을 떠나서 덥고 먼지나고 괴로운 먼 길을 짐차 속에서 시달리면서 도살장까지 오게 된다. 짐짝처럼 가득 실린 가축들은 열이 나고 기진한 상태에서 여러 시간동안 먹거나 마시지 못한 상태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사람들은 육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알면서도 육식을 중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기의 맛을 잊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육식의 결과가 즉시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육식의 참된 위험을 소홀이 여긴다. 육식은 혈액의 질을 악화시키며,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여러가지 질병을 가져다 준다. 많은 사람들이 육식으로 인한 질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참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육식이 주는 피해는 육체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도덕적면에서도 심각하다. 무엇이든지 육체에 미치는 영향은 마음과 정신에도 영향을 준다는 과학을 이해해야만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동물에 대하여 우리가 나타내어야 할 친절을 생각해 보라.

태초에 인간에게 지정된 음식물에는 육식이 포함되지 않았다. 홍수 후 지상의 모든 식물이 멸절될 때까지 인간에게는 육식이 허락되지 않았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을 위한 음식물을 선택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가장 좋은 식물인가를 보여주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동일한 교훈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앞서, 먼저 광야로 인도하셔서 교육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세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축복이 흘러나가게 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당신의 목적을 위하여 가장 적합한 식물을 공급하셨는데, 그것이 바로“만나”였다.

“하늘의 음식”인 만나는 육류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최선의 선택을 무시하고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하여서 불만과 불평을 터뜨렸다. 그들은 육식을 선택하였으며,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스스로 거두었다. 질병과 죽음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인류가 육식을 선택한 이후 인간의 수명은 급속히 감소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고결한 목적을 이해하는데 실패하였다.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여호와를 시험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은 파리하게 하셨도다.”시편 106:14

냉정하고 합리적인 마음으로 무엇이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최선의 음식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

 

 

건강과 예방을 위한 피라미드식 채식 생활

날마다 살아있는 영양을 공급하세요!

일주일의 식단을 어떻게 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까요?
피라미드를 보면서 귀하의 가정에 알맞는 식단을 꾸며보세요!

조심스럽게 절제!: 식물성 식용유, 설탕, 소금
적당하게 섭취: 콩우유, 두부 우유, 콩치즈
적당하게 섭취: 콩과 식물, 넛(nut)이나 씨앗(소량), 식물성 고기(소량)
충분하게 섭취: 모든 종류의 과일류, 마른 과일류
충분하게 섭취: 모든 종류의 채소류
자유롭게 섭취: 곡식류(오우트, 현미, 통밀빵, 보리, 조, 수수 등)

 

Life Line


채식 동물에게 고기를 먹이면?

광우병은 죽은 동물의 시체를 소의 사료로 사용한 후에 발생되었다는 사실이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식물을 먹고 살게 되어 있는 소에게 동물의 시체를 사료로 처리하여 준 결과, 광우병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광우병은 영국이 세계 최다 발생국인데, 영국에서는 동물의 시체를 섭씨 100 이하의 저온으로 처리해서 사료로 만들기 때문에 광우병 바이러스가 생존할 가능성이 더욱 높게 되었다. 광우병에 감염된 소의 뇌나 신경세포가 포함된 부위의 고기를 먹었을 경우, 광우병이 사람에게 점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 1996년 4월 3일자

병든 동물이 그대의 식탁에 올라오고 있다!

1972년 미국 농림부 집계 보고서 6페이지 서두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글이 있다. “각종 질병들에 감염되어 있는 동물의 시체 중에서 상한 부위를 제거한 후 식품으로 허용된 통계 숫자” 이 보고서에 의하면, 거의 모든 육용 가축이 병들어 있는데, 병들어 있는 부위만 제거한 후 식품으로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검사 대상이 된 가축 중에서 도합 50종 이상의 각종 질병이 발견되었지만, 그 중 대부분은 정육점으로 팔려갔다는 보고 내용이 실려 있었다. 도살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고기 식품 검사원으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채식주의자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고기의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든다. Disease of Food Animals by Owen Parrett M.D.

동물성 지방의 섭취량과 저항력의 함수 관계

백혈구의 일종인 자연 살해 세포(natural killer cell)는 암과 바이러스성 질병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지켜주는 방어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덴마크에 있는 한 연구소에서는 지방과 저항력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동물성 지방의 섭취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저항력이 약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심지어는 식물성 지방일지라도 , 너무 많은 양을 섭취할 경우 저항력이 저하되었다. 또한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지방의 섭취량을 최소로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Health & Healing Vol 18, No. 1

동물성 식품과 노인성 치매

노인성 치매(일명, 노망증)의 예방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미국에 있는 한 대학 연구소에서는 완전 채식주의자들(total vetarian)과 육식가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채식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2배 이상 치매에 대한 위험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두뇌는 채식을 통하여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Neuroepidemiology, 1993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가장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는가?

지난 10년 동안 여성들이 가장 많이 식생활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히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일수록 건강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지방의 섭취를 최소화하고 섬유질의 섭취를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식생활을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FASEB Feature Service

콜레스테롤과 관상동맥성 심장질환의 관계

콜레스테롤의 수치와 심장병의 발병위험에 대한 연관성이 통계로서 입증되었다. 혈중 콜레스테롤이 1% 증가함에 따라서, 심장병이나 혈관성 질환의 발병률이 3%씩 증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Berkeley Wellness Letter, Vol 7, Issue 9

 

성경은 미국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성경에는 인류 역사에 두각을 나타내는 대국들에 대한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여러 나라들의 흥망 성쇄에 대한 예언들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성취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며 곧 하늘 왕국을 이 땅 위에 세우실 것이라는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가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사람들에게서 듣곤 한다. “왜 중국과 같은 나라에 대한 예언은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습니까?” “동양은 전혀 성경에서 다루어 지고 있지 않는데 왜 그러한 가요?”

그 이유는 이러하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시고 구원하시는지에 대한 사실들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좋은 일과 나쁜 일들을 다 정직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가 이해해야 될 사실은, 성경은 단순한 역사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과 진리를 계시하시는 영감의 책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다루시는데 있어서 다른 나라들과 관계가 생길 때에는 그 관련이 생긴 나라에 대하여 그 운명과 심판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여 주신 것이다. 예를 들어서 바벨론과 같은 제국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포로들을 잡아 갔기 때문에 성경은 그들의 포로 기간이 얼마 동안이 될 것이며, 바벨론이 결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예언 하여 준 것이다.

로마제국은 1세기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정면으로 대항하며 하나님의 성도들을 핍박하였다. 로마는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사자들의 밥이 되어 죽게 하였고 화형대 위에 올려 놓고 불에 태워 죽였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로마가 열국으로 분열 될 것과 결국에는 그 독재적인 세력이 어떻게 멸망할 것에 대하여 성경에 예언하여 두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또한 당신의 백성들에 관계된 사실들에 국한하여서 기록하신 책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포함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인류 현대사에 가장 혁혁한 공헌을 세우고 또한 하나님의 복음 사업을 하는 일에 있어서, 현대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에 대하여 과연 성경은 잠잠하고 있을까? 이 세상 역사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거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이 시점에, 세계 정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에 대하여 과연 하나님께서는 잠잠하고 계신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북미 합중국인 이 미국에 대하여 분명하고도 정확한 예언을 이미 성경에 기록해 두시었다. 미국이 어떻게 시작될 것이며, 또한 어떻게 변모해 갈지에 대해서와 세상 끝에 가서 미국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에 대하여 성경은 미리 예언하여 두었다.

“주 여호와 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아모스 3:7) 으시다. 그 흥미진진한 예언을 이제 함께 연구해 보도록 하자.

성경의 요한 계시록 12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가 중세기에 크게 핍박을 당하여 새로운 대륙으로 피난하여 갈 것에 대하여 예언해 준 사실을 보게 된다.

요한 계시록 12:6은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성경에서 여자는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한다. 구약, 호세아 2:19,20; 이사야 54:1-8; 에스겔 16:8-14; 예레미야 6:2 에서 그리고 신약, 고린도 후서 11:2; 에베소 5:21-23을 통하여서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아내 혹은 여인으로 상징되어 있는 것을 보게된다. 그러므로 계시록 12장에서 여인이 쫓겨 다니는 예언은 하나님의 교회가 핍박을 받고 있는 장면을 미리 묘사해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계시록 12장 13절,14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예언 해 주고 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 지라”(옛뱀 곧 사단이 분노하여 인간을 구원할 남자-예수 그리스도를 상징-를 섬기며 전하는 교회를 미워하여 죽이려 한다는 뜻 -필자 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때를 양육 받으매.” 성경에서 “한 때”란 1년을 상징한다. 영어로 one time(한 때)이란 말도 옛날 영어로 일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니엘 11장 13절은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는데,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대군을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고 말씀한 것으로 보아 분명히 “한 때”란 일년을 가르키는 용어인 것을 알 수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한 때 두 때 반”, 즉 1년+2년+반년, 다시 말해서 3년 반 동안 핍박을 당하며 도망 다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요한 계시록 12장의 예언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보호 하시기 위하여 양육하실 장소를 마련하실 것라는 예언도 함께 곁들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기독교 역사는 이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는데, 중세기 종교 암흑시대 동안, 다시 말해서 종교 핍박시대 동안 왈덴스 인들이나 알비젠스인들, 그외에도 수 많은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이 광야나 산속(알프스 피에몽 골짜기 등등)으로 피신하여 가서 그들이 신봉하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도피의 생활을 영위하였던가! 계시록 13장 5,7절에는 같은 예언을 다음과 같이 말씀해 놓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여기에도 하나님의 성도들이 핍박 당하는 기간으로 42개월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기간은 바로 조금 전에 본 3년 반의 기간과 같은 기간이요, 또한 12장 6절에 교회가 광야로 도망하여 거하는 1천 2백 60일의 기간과 꼭 같은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유대력으로는 한달이 30일이기 때문에, “한때 두때 반때 -- 3년 반”의 기간과 “마흔 두달”의 기간과 “일천 이백 육십일”의 기간은 다 같은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써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여 쫓겨 다니는 기간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경에서 기간적인 예언을 말씀할 때는 1년을 1일이라고 말하는 상징어를 쓰고 있는데, 우리는 민수기 14:34 과 에스겔 4:6, 욥기 10:5 등등에서 그와 같은 예를 찾아 볼 수가 있다. 또한 성경 문맥을 통하여 우리는 그것이 상징적인 것인지 문자적인 것인지 헤아려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도들이 1260년이란 그 지루하고도 기나긴 기간 동안 핍박을 당하겠다는 사실을, 오히려 1260일 또는 42개월, 아니면 3년 반이라는 언어로 예언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중세기의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가 말하고 설명하였다. 그는 중세기의 종교 박해 기간이 바로 이 1260년의 예언 기간이라고 해석하였다. 루터가 태어 나기 이전에도 서기 1200년도에 벌써 플로라에 살던 수도승 요아킴은 요한 계시록 12장과 13장에 나타나는 3년 반의 기간은 로마교회의 교황권의 압제속에 성도들이 핍박 당하는 1260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였고, 1639년도에 미국 동북부의 뉴 잉글랜드 지역을 개척한 요한 캇튼 목사도 똑같이 적용하였으며, 1708년도에는 한 때 하바드 대학 초기의 총장이었던 인크리즈 매더즈 목사도 같은 해석을 하였으며, 1739년도에 프린스톤 대학의 총장이었던 죠나단 에드워드 박사도 3년반의 예언이란 성도들의 핍박 기간을 가르키는 일천 이백 육십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여 주었다.

나폴레옹의 지휘하에 있던 버티어 장군이 로마로 부터 교황 피우스 6세를 잡아다가 파리의 감옥에 수감하여 교황을 감옥에서 죽게 하고, 불란서 혁명을 통하여 종교가 개인의 자유를 압제하는 일을 타파하는 정신이 세상에 퍼지게 되고, 독제 군주들이나 영주들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운동이 태동하는 것을 보고나서, 많은 종교 개혁자들과 성경 예언 연구가들은 드디어 1260년 기간인 핍박의 기간이 끝났다는 사실을 이해 하게 되었다. 성경 예언은 마치 지도와 같아서 그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이 지구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계획의 안내도를 조심스럽게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권 아래서 겪은 중세기의 핍박의 기간이 요한 계시록 12장과 13장의 예언 기간이라는 해석은 개신교의 정통적인 해석이다. 그것은 많은 종교 개혁자들이 부르짖고 가르쳤던 말씀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의를 집중하여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한다. 요한 계시록 12:15,16절은 흥미있는 사건 전개를 예언하여 주고 있는데,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 되어진 나라들은 한결같이 물이나 바다에 바람이 불 때에 올라온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데, 물은 요한 계시록17:15절의 천사의 해석에 근거해서 사람들 혹은 백성들을 상징하고, 바람은 예레미야 25;32,33; 49:36을 근거로 전쟁을 상징하는 말로서 이해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바다에 바람이 불고 짐승이 하나씩 올라 온다는 상징은 백성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서 나라가 하나씩 일어나게 되고 연이어 또 다른 나라가 등장한다는 성경적 상징 언어인 것이다. 요한 계시록 12장에서 교회가 핍박을 받는 장면에, 용 곧 사단이 입에서 물을 토하여 내어 여자를 떠내려 가게 하려고 하겠다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말씀은 사단이 사람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핍박하고 없애려 하고 아울러서 사람들이 가르치는 잘못된 오류의 가르침으로 교회를 타협 내지는 타락케 하려는 사실을 예언하여 준 것이다. 중세기에 많은 이교의 가르침들이 기독교 안에 들어와 성경의 가르침들이 많이 타협되었으며 변조되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 잘 주목하여 보자. 이 때에 “땅”이 여자를 도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땅”이 그 물을 삼켯다는 것은 용이 물로 교회를 떠 내려 가게 하려는 의도를 무효화 시켰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시는 것일까? 땅이 교회를 중세기의 핍박으로 부터 도왔는데, 그 “땅”이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마귀의 공격과 그 핍박으로 인하여 거의 멸망 직전에 이르게 된 교회를 도와 주어 다시 소생케 하는 세력이라면 우리는 그 정체를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이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계시록 13장에 가서 그 땅의 정체에 대하여 다시 반복하여 기록해 두셨다. 어떤 의미에서 성경 예언 해석은 암호문을 푸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언을 풀기 위한 모든 암호의 열쇄들을 성경들 속에 감추어 두셨다. 그리하여 진실되게 인내를 가지고 진리를 사모하고 찾는 영혼들에게 진리가 발견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또한 그림과 상징으로 말씀하여 두신 이유는 시대와 사회가 달라 진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록하시기 위하여 불변하는 상징 언어와 그림들 속에 진리를 감추어 두신 것이다. 계시록 13:11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다니엘서에서의 나라들과는 달리 이 짐승(짐승은 나라를 상징하는 것임-다니엘 7:17참고)은 바다에서가 아니라 땅에서 올라 오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별로 없는 땅, 즉 물과 정 반대되는 대조적인 형편에서 생겨 난다는 뜻이다. 바벨론과 그리스와 로마처럼 인구가 많은 유럽 지역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는 사람들이 드문 지역을 상징하는 땅에서 부터 올라오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이 나라는 12장에서 교회를 핍박에서 부터 피하게 도와 주는 국가로 이미 기록하여 주었다. 중세기의 종교 박해를 피하여 메이 플라워 호나 또 다른 많은 배들을 타고 이주하여 오는 청교도들과 수 많은 개신교도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여 주고, 다시는 종교의 핍박 없이 예배와 신앙의 자유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땅을 제공하여 준 나라가 과연 어느 나라였는가? 사람들이 많은 지역에서 전쟁을 통하여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인구가 별로 없는 황무지 같은, 즉 “땅”같은 대륙을 발견하고, 이주하고, 개발하여 세운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틀림없는 미국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 문제에 있어서 오해치 않게 하기 위하여 이 나라가 1260년 핍박이 지나가는 끝 무렵에 나타날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불란서 혁명은 1789년~1799년 동안 계속 되었다. 그 때에 중세기의 암흑 시대가 끝나게 된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란서 혁명 당시 전후를 시점으로 하여서 생겨나는 나라로서 교회를 도와 준 나라를 찾아야 이 성경 예언을 옳바로 푸는 것이 된다. 미국의 건국이 언제 였는가? 의심할 나위가 없다. 1776년에 드디어 미국은 독립을 선언했지 않는가! 이 나라가 일어나는 시기와 그 역활 그리고 지리적인 조건들에 대한 힌트들은 그 국가를 미국으로 이해하는 일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땅에서 올라오는 새끼 양같은 짐승은 바로 미국을 말하는 것이다. 양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이 아닌가? 기독교의 성격을 띄고 일어나는 국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초를 놓았으니 이제 다음의 기사 제 2부에서 미국의 운명과 활약상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보도록 하자!

 

미국의 출현과 운명


요한계시록 13:1-7에 나오는 짐승 설명

1. 모습: 다니엘 7장에 나오는 4가지 짐승 즉, 사자, 곰, 표범 그리고 무섭고 놀라운 짐승을 합쳐놓은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음. 즉, 사자의 입, 곰의 발, 표범의 몸, 일곱 머리, 열 뿔은 4가지 짐승의 특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함.

2. 일곱 머리의 구성: 사자(바벨론) 머리(1개)+곰(페르시아) 머리(1개)+표범(그리이스) 머리(4개)+무섭고 놀라운 짐승(로마) 머리(1개)=일곱 머리

3. 열 뿔의 위치: 다니엘 7장에 있는 무섭고 놀라운 짐승(로마)의 머리에 있던 열뿔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

4. 열 면류관의 위치: 열 뿔 위에 열 면류관이 있음

요약: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이 짐승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이스, 로마 제국들의 특성과 권세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는 한 세력을 뜻하는데, 4번째 짐승인 무섭고 놀라운 짐승의 머리의 열뿔 위에 면류관(왕관)이 씌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 복합적인 짐승이 출현하는 시기가 로마 제국이 멸망하여 열뿔(열 나라)로 나누어지는 때인 것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이 복합적인 짐승은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세력임.
(살아남는 이들 3호 - 다니엘 7장 참조)

제1부에서 우리는, 요한 계시록 12장이 말하고 있는 용의 핍박으로 부터 교회를 도와 주는 “땅”과, 또한 13장이 말하고 있는 땅에서 올라오는 새끼 양 같은 짐승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살펴 보았다. 이 사실을 더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계시록 13장의 예언을 좀 더 자세하게 살피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요한 계시록 13장은 한 짐승이 바다에서 부터 올라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 짐승은 표범의 몸과 곰의 발과 사자의 입을 가지고 있으며 용으로 부터 그 권세와 능력을 받는 괴상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짐승은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며 그 열 뿔 위에 면류관을 쓰고 있다고 상징되어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모든 성경 예언은 성경 자체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들이 이렇게 저렇게 해석한 설명들은 제 각기 다를 뿐더러 신빙성을 갖지 못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열쇄들을 발견해 냄으로 성경이 성경을 풀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구약 성경 중 다니엘서 7장은 이미 바다에서 부터 올라오는 사자와 곰과 표범같은 짐승들과 용과 같은 짐승에 대하여 예언하고 설명하여 두었다 (살아남는 이들 3호 참조). 그들은 바벨론과 메데 페르샤와 그리스와 로마 나라인 것을 성경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네 짐승들의 머리들을 세어 보면 모두가 합해서 일곱이었다. 바벨론을 상징했던 사자의 머리가 하나요, 페르샤를 상징했던 곰의 머리가 하나요, 그리스를 상징했던 표범의 머리는 나누어진 네 지역을 나타내기 위하여 네 개를 가지고 있었고, 네번째 로마를 상징하는 무서운 짐승의 머리가 하나, 그래서 도합 일곱이었다. 그런데 흥미있는 사실은 요한 계시록 13장에 출현하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머리가 입곱이요 네번째 로마 나라가 가졌던 열뿔도 같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열 뿔은 두달 전에 본 월간지(3호 참조)에 게재된대로 로마 제국이 열국으로 분열된 사실을 가르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상한 요한 계시록 13장의 짐승의 어느 머리중 하나에게가 아니라 바로 열뿔 위에 면류관이 씌어져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짐승의 출현 시기를 알려 주시는 비밀 암호로서 그것은 로마가 몰락하면서 열뿔로 나누여지는 과정과 시기에 시작한다는 뜻이다. 바벨론 시대가 아니고 페르샤나 헬라 시대나 로마의 전성기 시대도 아닌 열국 분열시기에 시작하는 세력인 것을 암시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이상한 짐승의 모습이 네 짐승의 복합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각 짐승들, 바벨론과 페르샤와 헬라와 로마의 부요함과 그 권력과 힘과,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했던 특성들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는 뜻이며, 그 모든 세력들이 지배했던 모든 지역을 다 포함하여 권세를 누릴 것에 대한 상징인 것이다.

이 표범과 같은 짐승이 하는 일과 그 성격을 살펴 보면 그 정체를 우리는 곧 파악 할 수 있게 된다.

1. 그는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용같은 나라로 상징된 이교 로마 나라로 부터 받는다 (요한 계시록 13:1,2).
2. 그가 경배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종교적인 세력인 것을 알 수 있고, 온 세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요한 계시록 13:3,4).
3. 참람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요한 계시록 13:5,6). 성경에서 참람됨이란 다음의 두 가지를 주장하는 것이다.
a. 자기가 죄를 용서 한다고 주장 하는것(누가복음 5:21).
b.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 하는 것(요한복음 10:33).
4. 이 세력은 42달, 즉 1260년 동안 지배하는 권세를 가진다 (요한 계시록 13:5).

*서기 538년에 로마의 저스티니안 황제가 로마의 교회 감독을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는 조서를 내리고 군대를 사용할 권한을 부여한 후 부터, 교회의 교황권은 1798년 불란서의 버티어 장군이 교황을 포로로 잡아 갔던 해까지 예언대로 1260년간 큰 권세를 행사 하였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 하였고 그 기간 동안 거의 일억에 가까운 숫자의 그리스인들이 순교를 당했다.
5. 이 세력은 하나님의 성도를 핍박한다 (요한 계시록 13:6,7).

위에 열거된 사실들을 미루어 보아, 그 세력은 다름이 아닌 로마 교회의 교황권임에 틀림이 없다. 말틴 루터를 포함하여 유수한 종교 개혁자들인 멜랑톤, 니콜라스 리들리, 쟌 베일, 라티머, 크래머, 쟌 낙스 등등 많은 개혁자들이 요한 계시록 13장의 첫 짐승은 다름아닌 교황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가르쳤었다. 그러나 로마 교회의 감독제로 시작되었던 교황권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장면에서 하나님께서는 교황 자기 자신도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삽입하여 두셨는데, 그것이 바로 1260년 박해 기간이 끝나던 해에 성취된 일이었다. 요한 계시록 13;10은 다음과 같이 예언 하였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 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그 예언대로 1798년에 교황 피우스 6세가 포로되어 가서 죽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교황권이 그대로 그렇게 끝날 것이 아니라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낫게 될 것이며 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 그를 따를 것이라고 예언하여 두었다 (요한 계시록 13:3). 우리는 너무나 놀라운 그 예언의 성취를 보고 있지 않는가! 1929년도의 라테란 조약을 기점으로 그 상처가 회복되면서 교황이 가는 곳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며 존경하며 환호하고 있는가! 그의 인기가 하늘을 충천하여 올라만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나도 정확한 성서 예언의 성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괄목할만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시점에, 다시 말해서 교황권이 상처를 받게 되는 그 시점에, 인구가 많지 않은 땅에서, 새끼 양같은 모습 곧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의 정신을 가지고 등장하는 다른 한 짐승이 올라 오고 있는 것이다. 이 짐승은 교회를 핍박으로 부터 도와 주는 모습으로 12장에서 언급되었던 그 세력이다.

이러한 부인 할 수 없는 지리적이고 시기적이며 특성적인 정확한 묘사와 암시들을 가지고서 우리가 어찌 계시록 13장 11절에 나타나는 새끼 양같은 짐승을 미국이 아니라고 말 할 수가 있겠는가? 지성과 양심을 가지고 편견없이 열린 마음으로 살피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성경에 나타난 미국에 대한 예언에 대하여 의심없이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의 출현에 대한 예언과 성취를 다시 요약하여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출현하는 위치: 성경은 이 짐승이 땅에서 올라온다고 하였다 (요한 계시록 13:11). 모든 다른 짐승들은 물에서 올라 왔는데, 요한 계시록 17:15은 물을 백성과 방언과 열국들이라고 해석해 주고 있다. 그 이전 제국들은 인구가 많이 밀집한 지역들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 짐승은 인구가 별로 없는 지역에서 일어 나는데, 땅은 물의 반대이므로 광야와 같이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는 곳을 상징한다.

이 짐승이 올라 온다는 말의 헬라어 원어를 살펴 보면 “자라나다”, 혹은 “식물처럼 솟아 올라오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씌어져 있다. “옛 세계를 새 세계와 비교함“이란 책 p.462에서 G. A. Townsend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국은 그 공허한 곳으로 부터 나아오는 신비함이 있고, 마치 씨앗이 조용히 자라 큰 제국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1850년도에 유럽의 알려진 신문이었던 The Dublin Nation지는 미국이 “서서히 조용한 땅에서 올라와 매일 그 힘과 세력을 더해 가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2 출현하는 시기: 이 짐승은 요한 계시록 13장 첫 부분에 나오는 표범처럼 생긴 짐승이 사로잡힘을 당하는 시기에 올라온다 (요한 계시록 13:10,11). 교황권이 1798년도에 불란서에 의하여서 깨어지는 일을 당했기 때문에 두번째로 올라오는 이 짐승이 1798년도를 전후로 일어 나야 하는데, 미국의 건국 시기는 이 예언을 적중 시키었다. 요한 웨슬레는 1760년도에 계시록 13장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가(새끼양같은 짐승) 아직 이르지 아니했지만, 그러나 올 날이 결코 멀지 않았다. 그는 첫번째 짐승의 42달 기간이 끝나는 시기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17th ed., 704). 얼마나 놀라운 해석이었는가!

3 출현하는 방법: 요한 계시록 13:11은 이 짐승이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새끼 양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우선 어리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력인 것을 말한다. 두 뿔을 가지고 있는데, 이 뿔들에는 왕관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왕권이 없는 나라이며 오히려 두 세력이 서로 조화되어 운영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 것은 사법 기관과 입법 기관이 서로 견제하며 통치하는 나라인 것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린 양은 천진난만함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전 유롭의 폭정과 핍박에 비추어 얼마나 대조적인가! 거기에는 압박과 독제가 없고 자유가 있는 것이다. 또한 양은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요한복음 1:29에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1:28).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밑에 기록되어 있는 Emma Lazarus 의 글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초청의 말씀과 아주 비슷한 내용인 것을 보게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 저곳을 쳐서 점령했던 그리스의 청동구리와 같은 모습이 아닌, 여기 바닷가 해지는 어구에, 불타는 횃불을 들고 서 있는 강력한 여인이 있으니 그 이름은 방황하는 자들의 어머니라. 그 여인의 등대같은 횃불은 온 세상을 환영하듯이 조명하고 있고, 그의 미소는 다리로 연결된 두 도시를 주장하고 있다. 그의 입술은 ‘고대의 나라들아 너희의 장식된 허세가 무엇이냐’라고 말하는 듯 하다. ‘너희의 지치고 가난하며 자유를 숨쉬기 위하여 갈망하는 자들을, 너희의 거절하여온 항구들로 부터 보내어 내게 달라. 집이 없는 자들을 물건너 내게 보내어라. 나는 내 횃불을 황금의 문 옆에 높이 들리라!”

어린양! 미국을 위한 얼마나 걸맞는 상징인가!

그러면, 1798년도를 전후로 하여 인구가 별로 없는 곳으로 부터 왕권이 없이 민주 공화정치를 구현하며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자유와 천진스러운 성격을 띄고 새끼 양처럼 일어 난 나라가 과연 어느 나라인가? 미국 이외에 또 어느 다른 나라가 이 예언에 들어 맞는 성격을 가지고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 핍박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구출하고 성경의 복음과 진리를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하여 미국을 세우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 미국의 운명을 성경에 미리 예언하여 두셨다.

그런데,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미국에 관한 성경 예언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미국이 새끼양처럼 올라왔는데, 용처럼 말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새끼양처럼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요한 계시록 13:11.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 미국이 양같은 정신을 버리고 옛날 유럽의 압박의 정신으로 돌아가 핍박하는 세력으로 결국은 변모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 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요한 계시록 13:12-17

엄청난 예언이 아닐 수가 없다. 바로 이 예언이 미국을 통하여서 이루어 진다는 말씀이다. 미국이 머지않은 장래에 종교의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강제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며, 먼저 나온 짐승을 위하여 일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은 미국의 국민들이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막기 위하여 스스로 원하여서 종교적인 강제성을 입법화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앞으로 다시 중세기의 핍박이 이 세상에서 잠간 동안 재현 될 것이며, 바로 미국이 그 선봉세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밝은 약속이 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20

미국이 미래에 행할 일들에 관하여 다음 기회에 다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이번호는 여기에서 끝을 맺기로 하자.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남는 길은 성경, 오직 성경대로만 믿고 사는 길이다. 그리스도께서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이 종말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특별히 함께하시도록 기도하여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969년 전에 예고된 홍수


오늘날, 교회를 다니든지 다니지 않든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은 노아 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오기 969년 전부터 홍수를 경고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또한 왜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보내셨으며, 홍수가 올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왜 홍수에 대비한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 역시 많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37.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노아의 때에 대해서 연구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이후 세상은 급속도로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지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 인간은“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습니다(창 5:1,3). 인류의 시조의 죄의 결과는 그들의 첫 아들이 살인죄를 범함으로써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담이 930세에 죽을 때까지 거의 1천년 동안, 그는 자신이 범한 죄의 결과를 목격하면서 그의 후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악의 조류를 막아보려고 무진 애를 썼을 겁니다. 그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아담은 비탄과 겸비와 통회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언하신 죽음의 선고로 인하여 처음에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약 1천년 동안 죄악의 결과를 보면서, 그는 자신의 고통과 슬픔의 생애를 끝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고를 깊은 자비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비록 홍수 이전의 세상이 사악하기는 하였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무지야만의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완전한 육체와 정신을 주셨는데, 그들은 그러한 아담의 몸과 정신을 유산으로 이어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체가 매우 건강하였을 뿐 아니라 두뇌도 매우 명석하였습니다. 아담과 그의 10대손까지는 평균 912세의 장수를 누렸기 때문에, 그들은 지식과 지혜를 끝없이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온갖 자연계와 물질 세계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 주셨던 아담과 함께 수백년 동안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창조의 역사를 배웠으며, 9세기 동안에 걸쳐서 일어난 사건들과 경험을 자손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에게는 책이나 기록이 필요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지적 능력이 매우 우수하여 기억력이 뛰어났으므로 모든 지식과 경험을 보존하고 전수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수백년 동안 7대의 사람들이 함께 살며 서로의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수세기 동안 함께 대화할 수 있었던 홍수 이전의 사람들만큼 창조주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 시대는 종교적 암흑시대가 아니라 광명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율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아해 할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죗된 길을 걸었으며, 세속적 번영과 향락에 자신들의 온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창세기 5장 4, 7, 13절에 나오는“800, 815, 840 ... 년을 지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라는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수백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아이를 계속해서 생산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어떤 인구학자는 홍수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수세기 동안에 한 부부당 20명의 자녀를 생산하였다고 가정할 경우, 아담의 10대손인 노아의 때에 지구의 인구는 약 20억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추산하였습니다. 인구의 이토록 급격한 증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와 말씀이 전파되는 대신에, 죄악과 도덕적 타락이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에녹의 생애를 보고 그의 경고의 기별을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과 생애의 방향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삼백년 동안 교제하는 동안, 그는 영원의 문어귀까지 이르게 되어습니다. “에녹은“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창세기 5:22-24. 에녹이 갑자기 없어진 결과가 사람들에게 느껴졌습니다. 날마다 들려오던 경고와 교훈의 음성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에녹의 승천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히 11:6).

에녹과 같은 경건한 사람들의 경고와 교훈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죄악과 타락함이 극에 달하자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의미가 담긴 의미심장한 예언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주셨습니다.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6:3. 에녹이 65세가 되던 해에 한 아이를 낳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부르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므두셀라의 이름을 통해서, 처음으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므두와 셀라라는 두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므두”의 의미는“보내다(to send)”이고“셀라”의 의미는“그가 죽을 때에(at his death)”이므로, 므두셀라 라는 전체 이름의 뜻은“그가 죽을 때에 그것이 보내질 것이다”(When he dies, it will be sent) 입니다(크루던스 성경주석, 709-718과 알프레드 존스의 구약시대의 이름들 을 참조할 것). 과연, 므두셀라가 죽는 해에 심판이 내릴까요? 혹시, 므두셀라가 죽는 해에 홍수가 내리지는 않을까요? 이 문제는 잠시 후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하여튼, 에녹은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부름으로써,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확실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최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가 죽을 해에 하나님의 심판이 지상에 닥칠 것을 믿었습니다.

세월은 흘러서,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고, 라멕은 노아를 낳았습니다. 노아의 나이 480세가 되면서 세상의 죄악이 그 한계점에 이르자,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죗된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심판을 언급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창세기 6:5. 사람들의 죄악이 온 세상에 퍼져있을 뿐 아니라, 그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함을 보시면서, 한탄하시고 근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세상이 창조되고 사람들의 족보가 불과 10대에 이르기도 전에, 인간 사회의 부정과 타락상은 매우 깊고 넓게 퍼졌습니다. 그들의 부패와 악한 생각은 그들이 가진 능력과 두뇌의 명민함에 비례하여 상상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부르셔서 구체적인 심판의 계획을 발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창세기 6:13.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노아의 모습이 히브리서 11:7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언제쯤 홍수가 내릴 것이라고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홍수가 내리는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했지만, 홍수의 심판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나아갔습니다. 비록 노아는 그 때까지 한번도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와 심판을 알리는 전도자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노아는 이미 일반화된 죄악 가운데서도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보존하였으며, 도덕적 죄악의 흐름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두려움없는 죄의 책망자가 되어야만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악행과 도덕적 타락을 지적하면서, 그것들을 버리라고 간청하였을 뿐 아니라, 다가오는 홍수의 심판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아의 경고를 거절하였습니다. 그 당시, 아직도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주셨던 축복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수명은 백년을 단위로 헤아렸으며, 먹을 것을 어디서나 풍요롭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최상의 풍요로움 속에서 마음대로 먹고 마시면서, 육감적인 만족을 채우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마태복음 24:38.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죄악이 공공연하게 나타났습니다. 공의는 짓밟힌 바되고 학대받는 자들의 원성은 하늘에 상달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믿음으로 노아는 ...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히 11:7). 노아는 자신의 소유 전체를 방주를 짖는데 바쳤을 것입니다. 그가 바짝 마른 땅 위에 굉장한 크기의 배를 짓기 시작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상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노아의 진지한 설교와 배를 짓는 망치소리 하나 하나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기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노아의 경고를 받아들여서 방주 짓는 일을 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루한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둘씩 떠나갔습니다.

긴 세월이 지나면서, 하늘에서 비가 내려서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의 기별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노아를 조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죄악이 보편화 됨에 따라서,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율법은 더 이상 효력을 발하지 못하며, 형벌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위배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으며, 노아의 경고를 위험한 광신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노인이 된 노아 할아버지를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한번도 비를 본적이 없던 그 당시의 과학자들과 지식인들은 하늘에서 물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자연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노아의 경고를 정신나간 노인의 어리석음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들이 알고 있던 자연의 법칙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연법칙과 만물은 그것을 만드신 조물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용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들은 이해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노아의 나이 600세가 되던 해, 노아가 홍수의 기별을 전파한지 120년이 되던 해, 드디어 홍수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리던 그 날, 오직 8명의 노아 가족만 방주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노아의 전도 사업은 철저하게 실패하였지만, 자신과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뿐만 아니라 땅 속에서도 물이 솟구쳐 올라옴으로써, 거대한 지각 변동이 발생되었습니다. “노아가 육백세가 되던 해 ...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세기 7:11.

그런데 므두셀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므두셀라는 홍수가 내리던 그 해에 죽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므두셀라가 187세가 되었을 때, 아들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으므로, 므두셀라가 그의 손자, 노아를 보았을 때의 나이는 369세(187세+182세) 였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나이가 600세가 되던 해에 홍수가 내렸으므로, 그 해에 므두셀라의 나이는 969세(369세+600세) 였습니다. 심판의 기별을 이름에 품고서 태어난 므두셀라는 홍수가 나던 해에 죽음으로써, 969년 간에 걸친 그의 사명을 마쳤습니다.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창세기 5:27. 이로써, 하나님께서 므두셀라의 이름 속에 넣어두신 심판의 예언은 정해진 때에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므두셀라: 그가 죽을 때에, 그것이 보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홍수의 심판이 내리기 969년 전부터 심판의 기별을 사람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므두셀라가 죽기 120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부르셔서 경고의 기별을 전하면서 방주를 짓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노아는 므두셀라가 나이들고 몸이 노약해지면서, 홍수의 임박성을 더욱 더 강력하게 경고하였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직 노아만이 그 때를 위한 기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재림의 때에도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태복음 24:37-38. 그 날과 그 시를 아무도 모를지라도, 므두셀라가 죽었을 때에 홍수가 내렸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심판은 정확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경은 심판이 와서 모두 멸할 때까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가 마지막 때를 위한 하나님의 기별을 가지고 있습니까? 누가 사람들에게 심판과 경고의 기별을 전하고 있습니까? 노아의 때처럼, 사람들은 노아와 같은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스스로 기만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베드로후서 3:4). 매일 정해진 시간에 뜨고 지는 해와 달을 보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여전히 피고 지는 꽃을 보면서, 사람들은 세상이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해서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베드로후서 3:6-7).

노아의 때에 홍수를 969년 전부터 경고하셨던 하나님께서, 마지막이 가까운 지금 불의 심판을 경고하고 계십니다. 과연, 누가 그분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까요?

만일 그대가 택함을 받았다면


만일 그대가 택함을 받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고난과 수치의 생애로 이끄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대로 하여금 훌륭해 보이는 일이나,
세상에서 인정받을 만한 일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대가 성공과 인기를 위하여 가끔씩 묘책과 꾀를 부릴지라도,
그대는 처참한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깊은 회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서 자만할 만한 실적과 결과를 얻지만,
그대는 치욕의 수렁 속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되씹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돈벌이에 성공하거나 많은 유산을 물려받기도 하겠지만,
그대는 십중팔구 가난 속에서 값진 교훈을 배우며,
보이지 않는 하늘 창고로부터
매일의 만나를 얻어먹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명예와 지위를 얻게 될 것이지만,
그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초라하고 볼품없는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을 것이지만,
그대는 그늘 속에서 미래에 대한 아무런 약속도 없이,
계속적인 수고와 짐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
그대에게는 너무도 큰 양심의 가책거리가 되어 고뇌를 안겨 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허영과 유행과 돈뭉치 속에 자신의 생애를 팔아버릴 것이지만,
그대는 참된 가치와 행복,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찾아
외로운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너무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들이 적은 길로 몰고 다닐 것이다. 
 
그대는 그분의 그러한 섭리와 계획을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끝까지 그분의 뒤를 따르기로 선택할 것이다.
 
만일 그대가 택함을 받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