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눈물, 거듭남을 기약하는 물방울

 성경절 중에 가장 짧은 성경절은 요한 복음 11장 35절에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표준 새번역 성경)라는 구절이다. 영어로는 두 단어 Jesus wept이다.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셨던 인성을 쓰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실 때 우리처럼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우셨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많은 위안을 준다. 멀게 느껴지기 쉬운 예수님이, 우리 처럼 기쁨과 슬픔을 느끼시고, 우리처럼 눈물을 흘리시고, 우리와 똑같이 이 땅 흙 위를 걸으시고, 우리와 함께 삶을 호흡하시던 분이라니!...

눈물의 화학물질
 눈물은 아름답다. 참으려고 애를 쓰다가, 무너지기 싫은 자존심 때문에 버티다가,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자책감에 스스로를 벌주다가, 우리처럼 슬픔을 느끼시고, 우리처럼 우셨던, 그래서 우리를 도우실 줄 아시며, 모든 것을 이해하시는 예수님 앞에 다 포기하여 내려 놓고, 가장 가난한 마음이 되어 흘리는 눈물은 참으로 아름답다. 눈물을 흘리며 울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우리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그 눈물은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약속의 물방울이 된다.

 분석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눈물을 흘림으로써 카타르시스(정화작용)로 인한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사람이 강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그때 받은 스트레스가 몸에서 화학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특수 화학물질이 생기게 되며, 이것이 눈물에 섞여 분비된다고 한다. 따라서 눈물은 스트레스를 배출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울고 난 후에는 누구나 대개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것은 스트레스로 생긴 화학물질들이 체외로 분비되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구성하는 화학물질의 요소를 보면, 단백질, 프로락틴(황체 자극 호르몬), ACTH(부신피질 자극 호르몬), 엔돌핀의 중간체인 로이신 엔케팔린, 그리고 망간 등이다. 이 중 ACTH는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며, 로이신 엔케팔린은 고통을 없애는 뇌 속의 마약 물질이라고 알려진 엔돌핀의 중간체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겨서 면역계를 변화시킴으로써 불안, 발작 등의 신경반응을 없애주는 물질이다. 눈물의 화학작용을 통해, 사람이 너무 슬프거나 힘들 때, 고통스럽거나 괴로울 때, 눈물을 흘리며 울게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와 사랑은 정말 놀라우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물의 정화작용
 때때로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 같다. 눈물은 우리의 영혼이 씻음을 받기 위한 정화작용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그리고 이 정화작용을 통하여 새로운 거듭남이 피어나므로... 이런 이야기가 있다. 뇌종양으로 아홉 살짜리 큰 딸을 잃은 한 엄마가 있었다. 참혹한 슬픔을 당했지만, 아직 돌봐야 할 어린 두 아이가 있었으므로 마냥 어딘가로 빠져나가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참기가 힘들어 가끔씩 남아 있는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곤 했다.

 막내가 엄마를 울지 못하게 하려고 웃기는 재롱을 떨며 애쓰는 일이 잦아지자, 그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보호해 주고 자기를 웃게 하는 것이 그 아이의 임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을 청소하기 위해 눈물을 흘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래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언니를 잃었기 때문에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너도 알지?... 너 넘어져서 다치면 반창고 붙이기 전에 무엇을 하지? 씻어요. 맞아, 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울 때, 그건 하나님이 엄마의 마음을 씻어주시는 것과 비슷한 거란다. 그 다음 하나님이 반창고를 붙여 엄마가 나을 수 있게 도와주시거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를 눈물을 흘리며 울게 하신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져 있는, 가만히 놓아두면 곪아버릴 상처를 드러내시어 우리를 당황하게 하시며... 그래서 그 숨겨져 있던 것들이 발진으로 돋아나도록 하시며... 그렇게 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런 상황을 연출하신 주님이 야속해서 사람들은 운다. 그러나 드러난 자신의 진정한 형편 속에서 눈물을 흘리다간, 문득 그 눈물이 가슴 속 깊이 있는 건드려지기 싫어하던 상처를 파헤쳐 치료하는 하나님의 자비의 안약이었음을 알게 된다.

거듭남을 기약하는 눈물
 하나님께서는 슬픔을 당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 결코 무심하지 않으시다. 다윗이 감람산에 올라가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사무엘하 15장 30절)할 때, 하나님께서는 동정 어린 눈으로 그를 보고 계셨다. 베옷을 입은 다윗은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그의 눈물과 겉으로 나타난 겸손의 행동은 그의 회개를 증거 하였다. 다윗은 눈물을 흘리며 울먹이는 말로 자기의 사정을 하나님께 고백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는 다윗을 버리지 않으셨다. 아니, 다윗이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께 가장 사랑스러워 보인 때는 바로 그 때였다. 자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의 아들과 함께 반역에 가담한 원수들을 피해 도망가면서 마음에 찔림을 받은 그때... 마음에 가득 찬 회한과 슬픔이 눈물이 되어 그의 뺨에 흐른 그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이 다윗을 전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만들 전주곡임을 아셨기 때문에...

 생애의 모든 계획이 좌절되고, 삶이 자신이 의도했던 대로 꼴 지어지지 않고, 실패와 외로움과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과 죄됨에 눌리어 신음할 때, 눈물은 치료하기 위하여 눈에서 흘러나온다. 마음을 정화시키는 회개의 눈물에 의해 육신의 눈에 끼어있던 안개가 벗겨지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게 될 때, 그때, 사람들은 그 눈물 속에서 진정한 거듭남을 체험하게 된다. 그 다음 눈물이 걷힌 뒤에, 우리는 맑아진 눈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 많으심, 그리고 그분의 지혜로운 섭리와 계획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눈물
 예수님께서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히 5:7)다. 예수님의 눈물 속에는 우리를 위한 거듭남의 삶의 모본이 들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본성으로 인해 죄의 유혹들을 느끼셨으나, 마음으로나 생각으로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으셨다. 대신 그것들을 저항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죄 없는 삶을 사시기 위해, 그리하여 우리에게 흠 없는 모본을 남겨주시기 위해 심한 통곡과 눈물의 삶을 사셨다. 한없이 눈물을 쏟는 정화 작용과 자아가 죽는 장렬한 장례의식을 통해 진정한 새로운 삶이 탄생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우리처럼 우셨던 예수님께서는 눈물로 앞이 가리워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곁에 서 계신다. 예수님의 마음은 인간의 슬픔과 비애와 시련을 향하여 항상 열려 있다. 그분께서는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애로운 손길로 우리를 감싸 주시며,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을 얼른 해결해주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시련과 아픔을 통해 깨달아야 할 생애의 공과들을 다 배우고, 눈물을 흘리며 겸손하게 당신 앞에 굴복하기까지 기다리신다. 그리고 그 회개의 눈물의 치료의 역할을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맑고 명료해진 마음의 눈으로 늘 곁에 서 계셨던 예수님을 보게 된다.

 눈물은 아름답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게 쏟아 놓으며 흘리는 회개의 눈물은 위대하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인 상한 심령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 흘리는 진정한 회개의 눈물은 치유를 약속하는 물방울, 거듭남을 기약하는 아름다운 물방울이 된다.

권두언

강병국 목사
 이 세상 역사에는 이름 없이 사라져간 위대한 인물들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후손들을 위하여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지만 미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 그러한 분들 말입니다. 특히 기독교회의 역사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하지요.

 중세기의 기나긴 기간 동안에 진리의 빛을 고수하며 또 전수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 일하며 살다가 간 이름 없는 믿음의 노독들이 많습니다. 순교자의 형틀에서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던 수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얼마나 이 사람들의 덕을 입었는지 결코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들은 이단으로 낙인 찍혔고, 저희의 동기는 비난을 당하고 그들의 품성은 비방을 받으며 저희의 저술은 압제를 당하고 와전되고 훼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굳건히 서서 저희 믿음을 순결하게 유지하여 후손들에게 물려 주려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성경에 대한 핍박이 너무도 가혹하여 어떤 때에는 단지 몇 부밖에 남지 않을 정도인 경우가 중세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완전히 멸절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영원히 감추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당신의 종들을 옥문과 굳게 닫힌 철문들을 열어 해방시켜 주신 것처럼 생명의 말씀도 쇠사슬에서 해방시키시었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감추인 보화를 찾듯 열심히 진리를 탐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발견한 진리를 고수하려고 유리 방황하며 쫓기는 환경 가운데서 살다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분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분들 때문에 종교개혁의 씨가 뿌려졌던 것입니다.

 이번 호는 그러한 이름 없이 살다간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호의 기사들을 읽으신 후에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도 그러한 선조들의 뒤를 따라가야겠다는 숭고한 결심들이 생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흔들리게 되는 과정

 한 개인이나 교회가 영적으로 무너져 가는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처음 신앙을 받아들이고 뜨거운 영적 경험을 했던 그리스도인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신앙이 식어가는 과정과 처음에 뜨거운 신앙을 가지고 시작된 교회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타협과 배도의 길을 걷는 과정은 대체적으로 유사하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예언은 십자가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를 일곱 교회의 시대로 구분하는데, 일곱 교회 예언 중에서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는 초대 기독교회를 상징한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 2:1~3,6.

 에베소 교회는 A.D.34~100년까지 즉 십자가 이후부터 마지막 사도가 죽을 때까지의 사도시대 교회를 뜻하는데 에베소라는 이름에는 바람직한, 흠모할 만한 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도들과 제자들이 생존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직접 설교를 들을 수 있었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을 체험하였으며 복음 전파를 위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교회이다. 에베소 교회는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의 핍박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열심과 수고를 다하여 일하는 교회였다. 또한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충성스러웠으며,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스스로 사도요 선생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성경 말씀으로 시험하였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계 2:3.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영지주의, Gnosticism)을 반대하였는데, 니골라당에 속한 사람들은 도덕률에 순종하기 위해서 구태여 육체의 욕구를 자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또한 물질과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기 때문에 육체의 방종이나 죄된 행위는 영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어떤 의미에서 니골라당은 현대 기독교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자유주의적인 가르침 즉, 그리스도를 지적으로 인정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으므로, 하나님의 계명과 진리의 말씀에는 순종할 필요가 없다라는 가르침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일어선 에베소 교인들을 칭찬하셨다.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 2:6절.

 이토록 순수하고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 시작된 초대 기독교회가 서서히 몰락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경험 속에서 중요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다. 지금부터 초기 기독교회 역사와 경험에 대하여 기록한 책인 The Act of the Apostles, 568페이지를 읽어보도록 하자.

그리스도교가 조직된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났다 & 그때까지 교인들은 감정과 행위가 하나가 되었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그들을 함께 묶은 금사슬이었다. 그들은 계속 주님을 더욱 더 완전히 알고자 하였으며 그들의 생활에는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화가 나타났다. 그들은 고통당하는 고아와 과부들을 방문하였고 자신들을 지켜 세속에 물들게 하지 않았으며, 이렇게 행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공언하는 바는 거짓이 되고 결국 그들의 구주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도시에서 사업은 추진되었다. 영혼들은 회개하였고 그들은 저희가 받은 바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보배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밝게 비춘 빛이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될 때까지 쉴 수 없었다. 많은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과오를 범한 자들, 추방당한 자들, 진리를 아노라고 공언하면서도 하나님보다 열락을 더 사랑하는 자들에게 따스하고 감명 깊은 개인적 호소를 하였다.

 교회가 세워진 후 처음 50여 년 동안 그들의 신앙은 정말 순수하고 뜨거웠다. 그들 가운데 사랑이 있었고 그에 따른 분명한 열매들이 있었다. 그들이 진리를 전할 때에는 정말 따스하고 감명 깊은 개인적 호소를 하였으며 그들의 신앙과 삶을 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소망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The Act of the Apostles 는 그들의 신앙이 무너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는데, 그들이 흔들리는 단계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단계: 그러나 얼마 후 신도들의 열심은 쇠해지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과 상호간의 사랑이 식어지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이후 5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서서히 지치고 무너져갔다. 반세기 동안 그들은 감정과 행위에 있어서 완전히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감정(사랑)이 먼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여전히 검소하게 살았고, 기도를 열심히 드렸고, 매 주일마다 예배 드렸고, 이웃을 돕는 행위가 꾸준하였지만, 그들 속에 사랑이 식어갔다. 어떤 개인이나 교회 역시 그들의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첫 번째 시작점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식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에베소 교인들을 다음과 같은 말로 책망하였던 것이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4. 그들 속에서 사랑이 식어가자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었다.

두 번째 단계: 냉담함이 교회 안에 몰래 들어왔다. 어떤 이들은 저희가 진리를 받았던 기이한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사랑의 감정에 문제가 생기자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 진리를 받았던 기이한 경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첫 사랑의 단순한 심정을 잃어버리면 그 마음은 냉담함이 지배하게 된다. 사람에 대해서 냉담해지고, 진리에 대해서도 냉담해진다. 그리하여 처음에 기이한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복음을 받았던 경험까지 잊어버리게 된다. 계속해서 진행되는 그들의 흔들림을 살펴보도록 하자.

세 번째 단계: 한 사람 한 사람 연로한 기수들은 그들의 자리에 쓰러졌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재림의 약속을 그들에게 주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3. 열 두 제자들과 에베소 교인들은 예수께서 직접 주신 재림의 약속을 굳게 붙잡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하나씩 죽어갔다. 베드로가 죽고, 빌립이 죽고, 마태가 죽고 맨 나중에는 나이가 많이 든 사도 요한만이 남게 되었다. 에베소 교인들의 신앙은 시험을 받았고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그들의 신앙이 시험을 받아 흔들리고 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들의 경험을 살펴보도록 하자.

네 번째 단계: 이 개척자(열두 제자들과 사도)들의 짐을 분담하여 현명한 지도자의 임무를 위한 준비를 갖추었어야 할 젊은 일꾼들 중 어떤 이들은 반복된 진리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열두 제자들과 사도들로부터 진리를 들으면서 자랐던 젊은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해서 들었던 진리에 대해서 싫증을 느끼는 일이 발생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라난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가? 진리의 중요성을 가슴 깊이 새기고 그것을 위하여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설교와 말씀에 싫증을 느끼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하여 세상을 찾아 나가는가? 우리는 초대 기독교회의 경험 속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이제는 진리를 분명하게 들고 일어서는 젊은 종들의 모습을 거의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반복된 진리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은 결국 무엇을 하게 되는가? 다음에 이어지는 그들의 경험을 살펴보도록 하자.

다섯 번째 단계: 신기하고 놀라운 어떤 것들에 대한 갈망으로 그들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더욱 기쁘게 하는, 그러나 복음의 근본 원칙에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교리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자기 과신과 영적 맹목으로 그들은 이 궤변들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의 경험들을 의심하게 하고 혼란과 불신으로 인도하리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왜 초대 기독교회의 젊은이들은 무엇으로 그리고 어떻게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형태의 거짓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하였는가? 그것은 자기 과신과 영적 맹목으로 인하여 거짓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옛 신앙을 불신하는 지경에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젊은 청년들과 젊은 목사들 중의 어떤 이들은 옛 신앙을 버리고 새롭고 신기한 것을 추구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예수께서 가르치셨고 제자들이 전파했던 옛 진리를 회복하고 고수하기보다는 새 것을 가지고 교회를 채우느라고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지금 그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지금은 위기의 시간이다. 지금은 정말로 깨어 있어야 할 때이다.

여섯 번째 단계: 이 거짓 교리들이 주장되자 분열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눈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에게서 돌이켰다. 중요하지 않은 교리의 부분들에 대하여 토론하고 사람이 고안한 즐겁게 하는 우화들을 깊이 생각하는 일로 복음을 선포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 시간이 소비되었다. 충실하게 제시된 진리로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었던 많은 무리는 경고를 받지 못하였다. 경건은 신속히 쇠하여지고 사단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자들을 곧 지배할 것처럼 보였다.중요하지도 않고 성서적이지도 않지만, 사람들의 육적인 마음을 즐겁게 하고 만족시키는 복음이 들어오자 성경에 대한 깊은 지식과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교인들은 심하게 흔들리게 되었고, 이로써 교회 안에 존재하는 알곡과 가라지들 사이에 투쟁과 분열이 생기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믿기만 하면 쉽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짓 복음이 소개되자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순수한 성서적 복음을 믿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치열한 영적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거짓 복음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 기독교회는 참된 경건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마치 사단이 온 교회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지금까지 에베소 교회가 진리에 대한 그들의 첫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밧모섬으로 유배당하도록 허용하셨던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까? 계속해서 에베소 교회의 경험을 읽어보도록 하자.

교회의 역사에서 이와 같은 위기의 때에 요한은 추방 선고를 받고 밧모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지금처럼 그의 음성이 교회에 필요한 때는 결코 없었다. 목회 사업에서의 그의 이전 동료들은 거의 모두 순교를 당하였다. 남은 신도들은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었다. 모든 외관상으로 볼 때에 그리스도 교회의 원수들이 승리를 얻을 날이 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주님의 손길은 어두움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님의 섭리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에 대한 그리고 교회를 위한 거룩하고 놀라운 계시를 그에게 주실 수 있는 곳에 있게 되었다. 진리의 원수들은 요한을 유배시킴으로 하나님의 충실한 증인의 음성을 영원히 침묵시키고자 하였으나 밧모에서 요한은 그 감화가 세상 끝날까지 교회를 계속 강화시켜 줄 한 기별을 받았다.

 교회는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신실한 교인들과 사도 요한의 눈으로 볼 때 도무지 가망이 없어 보였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밧모섬으로 옮기셔서 그에게 계시를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결국에 기독교회가 환난과 투쟁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사도 요한과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끝까지 견딜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셨다.

 근세기에 새롭게 출발한 개신교회의 각 교파 역시 1세기에 출발했던 사도 시대 교회의 역사를 답습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뜨거운 열정과 성경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개혁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후예들은 선구자들의 개혁 운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교파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각 교단 사이에 높은 장벽을 세워놓았고 이로 인하여 교인들은 교단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서 우물 안의 개구리로 성장하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이 가졌던 첫 사랑이 식어갔고 냉담함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개신교회를 세운 초기의 선구자들이 하나씩 죽어가자 교회들은 심하게 흔들렸다. 새롭게 성장한 젊은 세대는 오랫동안 반복해온 단순한 진리의 말씀에 싫증을 느끼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서 방황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각 교회들은 선구자들이 세워놓은 진리의 기둥들을 하나씩 허물어뜨리기 시작하였다.

 각 교파의 교회가 새롭게 세워졌다가 타락하고 망해가는 모습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되풀이된다. 루터의 후계자들이 루터교회를 세울 때 루터교회는 자신들만의 분명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었으며 매우 경건하고 영성이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루터교의 목사들과 신학자들 중에 자신의 가르침이 루터의 가르침과 신앙보다 새롭고 높은 경지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교회는 심하게 흔들리게 되었는데, 그 결과 루터교회는 서서히 가르침을 바꾸기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세속화되고 타락하고 말았다. 그들은 구원에 대한 루터의 교리를 바꾸었고,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지목한 루터의 예언 해석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선봉이었던 루터교는 더 이상 교황을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천주교회와 손을 잡고 종교 연합운동의 최선두에서 뛰고 있다.

 감리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한 웨슬리는 놀라운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의 신앙과 놀라운 성경 해석은 기독교회가 가지고 있는 성서적 구원론의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감리교회의 후예들 역시 반복되는 단순한 진리에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됨으로써 교회는 심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 결과 감리교회는 여러 분파로 나뉘게 되었고 더 이상 요한 웨슬리가 가르쳤던 것처럼 교황을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지목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개신교회 중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이고, 종교 연합운동에 가장 적극적인 교단 중의 하나로 변질되고 말았다. 오늘날의 감리교회는 더 이상 요한 웨슬리가 세운 감리교회가 아니다.

 지금은 알곡과 가라지가 분리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기의 시간이다. 알곡과 가라지는 어떻게 분리되는가? 성경은 바람에 흔들고 체질함으로 알곡과 가라지가 분리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흔들림의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매우 힘든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루하고 긴 광야 여행 속에서 성경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신앙을 가지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뜨거운 사막 속에서 쓰러져 죽게 될 것이다.

금식과 치료

질병의 원인: 노폐물
 금식은 몸에게 휴식을 주는 방법 중의 하나로 몸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치료제이다. 세포의 기능이 저하되고 정상 활동을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체에 쌓여 있는 노폐물이다. 사람들은 몸이 요구하는 음식보다 훨씬 더 많이 먹고 있다. 그러므로 몸 속에는 몸이 쓰고 남은 여분이 노폐물로 쌓이게 되고 이것이 인체의 활동에 방해를 일으키므로 여러 가지 병적 상태를 나타낸다. 이런 경우, 짧은 기간 금식해 줌으로 몸은 불결한 조직에서 벗어나는 생체 작용을 일으키고, 몸 속에 있는 노폐물을 처리하게 된다.

 몸은 몸 속에 있는 독소를 제거하여 몸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도와준다. 몸은 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일어나서 강한 힘으로 방해물을 물리치려고 한다. 그렇게 될 때 두통이 오고, 열이 오르고, 신경 쇠약, 마비, 통증, 또는 여러 가지 증상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것을 병이라고 한다. 이런 때에는 하늘이 주는 치료제인 신선한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며 그냥 그대로 두면 신속하고 안전하게 치료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몸이 방해물을 제거하고 몸 스스로가 몸의 소모된 힘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몸의 활동을 도와주는 것이다. 몸은 그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몸은 그가 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몸에게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하면 몸이 할 수 있는 일을 훌륭하게 해 낼 것이다.

 짐승들은 몸에 병이 생기면 먹지 않는다. 집에 기르는 강아지도 병이 나면 회복될 때까지 먹지 않고 쉰다. 많은 경우 사망에 이르는 질병들이 잘못된 식생활로 얻어진 결과이다. 이런 경우 의사의 지시를 받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자기 몸을 돌보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몸은 휴식을 통하여 재생하고 복구함으로 몸에 쌓인 노폐물을 청소한다. 다음의 금식하는 요령을 참고하여 각자에게 적용해 보기 바란다.

금식하는 방법
1) 물 금식: 아무것도 먹지 않고 두 시간 간격으로 깨끗한 생수를 마신다. 체중에 따라 짧은 기간 금식해 주면 회복하는 생체 작용에 의하여 노폐물이 배설된다.

2) 과일식: 하루 세 끼, 매 식사 때마다 다른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과일만 먹는다. 한 끼에 한 가지씩 먹되 세 끼에 서로 다른 세 가지를 차례로 먹는다. 과일 식사 두 시간 후에 물을 1-2컵 마신다. 과일의 단맛은 체내에 들어갔을 때 소화 기관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힘과 열을 내면서 영양 공급이 가능하며 이뇨 작용, 배설 작용을 원활하게 해 주므로 노폐물이 잘 배설된다. 정신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나, 소화 기능이 약한 사람, 질병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당뇨 환자들도 섬유질 채로 먹으면 고혈당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때 당뇨 환자는 약이나 인슐린 사용을 중단해도 된다.

3) 절제식: 지금까지 먹던 모든 음식을 다 금하고 건강식(본서를 참고할 것)으로 준비하여 평상시 먹던 양의 2분의 1정도만 매 식사 때 먹는다. 식사 2-3시간 후에 물 1-2컵을 마신다. 식사량을 줄이면 소화 시간이 단축되므로 약간의 남은 시간이 금식 효과를 준다.

 위의 세 가지 방법 중 한 가지를 선택하되 견딜 수 있는 기간 동안 한다. 단 하루를 해도 도움이 된다. 몸에 악성 종양, 물혹, 염증, 고혈압, 당뇨, 관절염, 비염, 아토피성 만성 피부 질환, 또 근육이 굳어지고 마비가 오는 등의 병을 가진 사람들은 한두 주일 과일식을 계속 해주면 증상이 완화된다. 이때 피가 깨끗해지므로 피가 더러워서 나타난 증상들이 없어진다. 특히 피부병, 무좀, 염증 그리고 각종 암이나 혹이 줄어든다. 혈관이 열리고 피가 맑아지므로 혈압이 정상화되고 맥박이 안정된다. 콜레스테롤이 낮아지고, 당뇨 환자는 혈당이 정상으로 조절되면서 몸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몸에 쌓인 노폐물이 배설되므로 복수가 빠지고 얼굴색이 맑고, 원활한 혈액 순환으로 혈색이 돌아온다.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각종 약물, 마약, 술, 담배, 자극적인 양념의 중독성이 빠지므로 몸에 세워 주신 절제 원칙이 회복되고 건강 식생활을 할 수 있는 몸으로 준비된다. 이때 반드시 마음에 쌓인 노폐물(죄)을 청소하기 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잘못된 인간관계 회복을 위하여 회개 기도를 드린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그리스도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몸과 마음이 함께 쉰다. 건강을 회복하는데 있어 몸과 마음을 분리시킬 수 없다.

매일 지켜야 할 사항
Ï 금식 기간에는 복용하던 약물은 중지하되 고혈압 환자는 혹 정신적인 문제로 일시적으로 혈압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경우 위의 혈압이 180 이상이 되면 약을 다시 복용한다. 또한 심장 질환이나 호흡 장애로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몸이 회복되는 상태에 따라서 약을 점차로 줄인다. 특히 술, 담배, 커피 등을 금한다. 그러나 건강 법칙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약물을 중지하면 위험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Ï 매일 목욕하고 속옷을 갈아입는다.

Ï 방은 맑은 공기로 항상 바꾸어 준다.
Ï 적어도 하루에 15분 정도는 직사광선으로 일광욕을 한다.
Ï 매일 옥외에서 활발한 운동을 하되, 하루 한 시간 걷는 운동을 한다.
Ï 잠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저녁 9시 취침. 아침 5시 기상)
Ï 이불은 자주 빨고 햇볕을 쬔다.
Ï 매일 하나님의 처방을 받아들이고 실천한다.
Ï 이 일은 금식이 끝난 후에도 계속한다.

Ï 이때 몸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호전 반응이 일어난다. 현기증, 구토, 두통, 근육통, 설사, 오한 등 평소에 아팠던 부분이 아파진다.
이것은 하루 이틀 지나면 다 없어지는 것이므로 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아랫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는데 이때에 장벽에 붙어 있던 숙변이 나간다. 특히 장기간 약물을 사용했던 몸에서는 약의 독성이 배설되는 과정에서 피부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고 가려움을 동반하는 수도 있으나, 독성이 다 배설되면 다시 깨끗하게 된다.

Ï 당뇨 환자는 금식이나 과일식 기간에 인슐린을 사용하면 저혈당이 올 수 있으므로 인슐린 사용을 중지한다.
그럴지라도 혹 저혈당이 오면 꿀물을 마시거나 과일을 먹어주면 즉시 혈당이 조절된다.

회 복 식
Ï 금식이 끝나면 반드시 건강한 채식으로 회복식을 시작한다.
Ï 물 금식 후에는 금식한 일 수만큼 회복 기간을 잡는다. 처음 식사는 현미밥 한 숟가락을 죽이 되게 꼭꼭 씹어서 삼킨다. 그 다음 끼니부터 양을 조금씩 늘려 금식일 수만큼 지난 후에 정량으로 식사하되, 간식과 과식은 금물이다. 식간에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Ï 과일식 후에는 완전한 채식으로 식사하되 소량으로 먹기 시작한다.

Ï 절제식 후에는 양을 점점 늘려 정량으로 먹는다.
Ï 계속해서 영양을 잘 공급해주면 한두 달 지나면서 건강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Ï 간장 질환으로 복수가 있을 때에는 복수가 다 빠질 때까지 과일식으로 하되 체력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한다.
간은 몸에 쌓인 독소를 제거해 주고 적당한 영양 공급을 해주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 간 환자의 식생활은 독소가 쌓이지 않도록 먹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므로 스트레스와 독주를 금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단순하게 먹되 과식과 간식은 금물이다. 특히 활발한 운동을 해 줌으로 해독 작용을 도와준다. 저녁 식사는 반드시 금식이나 과일식으로만 한다.

Ï 위염, 위궤양 등 위장 질환으로 소화 장애를 가진 사람은 위가 편안한 정도의 소량으로 식사하되 저녁을 먹지 말고 물 한두 컵을 마신 후 30분 정도 지나서 올리브유 (2Ts) + 숯가루 (1ts)를 종이컵에 넣고 섞어서 마셔 준다
. 다음 날 아침 일어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 방법을 1주일 정도 계속 해 주면 위장 질환이 치료된다.

Ï 신부전으로 일주일에 2-3회 투석하는 환자는 며칠 간 체력에 맞게 과일식을 한 다음 건강식을 소량으로 하면 한 두 주일에 한번만 투석해도 요독이 차지 않는다.
신부전증 초기에는 전혀 투석하지 않아도 회복되는데 반드시 하나님의 모든 처방을 다 순종해야 한다.

Ï 각종 염증, 골수염, 관절염, 종기 등 몸에 염증으로 썩어 들어가는 부분이 있을 때는 염증이 다 치료되고 세포가 살아날 때까지 과일식을 하되 체력이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자연식(생식)으로 회복식을 한다.
(예: 잎채소. 뿌리채소, 열매채소, 각각 한 가지씩을 매 끼마다 번갈아 먹는다)

Ï 각종 아토피성 피부 질환은 사용하던 약물을 중단하고 과일식으로 한다.
2-3일째가 되면 더 심하게 나타나다가 일주일 정도 지나면 점점 약해지다가 계속 채식으로 식생활을 해 주면 완전히 없어진다.

Ï 모든 질병이 치료되는 과정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회복이 가능하며 초기의 암은 절식이나 단식으로도 없어진다.
반드시 먹어야 사는 음식이지만 음식을 잘못 먹으면 암과 같은 병이 들어 죽는것이 인체의 법칙이다.

Ï 수술 후 병원에서 주는 음식이나 약을 먹지 않고 일주일 정도 과일식을 하면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염증이 일어나지 않고, 강한 생체 작용에 의해 수술 부위가 빨리 아문다.
암 수술 경우도 방사선이나 항암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전이를 막아 주고, 과일식 후 건강한 채식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처방을 따르면 재발을 막아주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Ï 고기는 암이 먹고 사는 피를 만들므로 이때 다시 고기를 먹으면 암이 일어난다.
즉, 평상시의 비건강식으로 되돌아가면 다시 재발한다. 회복되는 단계에서 혹은 다 회복 된 후에라도 비건강 생활로 다시 돌아감으로 재발하고 생명을 잃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몇 년 전, 간암 말기의 삼십팔 세, 170cm 키에 85kg의 몸무게를 가진 건장한 남자가 천연 치료원에 왔다. 외모로 볼 때는 누가 보아도 건강해 보이는 그는 간암으로 한 달 생존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었다. 폐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중인 아버지를 문안 갔다가 혹시나 하고 건강 진단을 받은 결과, 간에 4cm 크기의 암과 그 외 몇 개 덩어리가 더 있는데 의사는 병원 치료가 불가능하다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를 물려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은 것이다. 같은 병원에 부자가 같이 입원을 하고 있다가 아버지는 방사선 치료가 가능하다 하여 계속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나 아들은 가망이 없다 하여 퇴원을 해야 할 무렵 친척 중 한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아직 병원에 있는 아들에게 책 한 권을 주었는데 굼벵이를 삶아 먹고 간암이 나았다는 글이 있었다. 급히 가족들에게 알리고 시골 친척들에게 부탁해서 굼벵이를 잡아오게 했다. 며칠 후 또 어떤 친구에게서 자연산 민물 갯장어가 좋다는 말을 듣고 갯장어를 고아 먹기 시작했다(고단백은 암의 양식). 얼마간 이런 것들을 달여 먹으면서 병원에서 주는 고단백 음식을 함께 먹었다. 얼굴에 윤기가 생기고 몸이 불어나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아진 듯했다. 퇴원을 하면서 행여나 암이 얼마나 치료되었는지 궁금하여 다시 사진을 찍었는데 암이 두 배로 커져 있다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온 집안은 초상집을 방불케 했다. 그때 천연 치료원에서 요양 중이던 친척 중 한 사람이 소식을 듣고 연락, 그 환자 분이 요양으로 가시게 되었다.

 체중이 너무 많은 관계로 두 주일은 물만 먹는 금식을 시키고, 한 주일은 과일식, 네 번째 주에 건강식으로 몸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처방을 따르면서 천연의 요소를 공급받고, 마음에 쌓인 노폐물을 청소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열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몸은 더욱 가뿐해지고 마음에서부터 희망이 생겼고 한 달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한 달 후에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만 살아가면 되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한 달 보름 만에 병원에 아버지 문안을 갔다가 다시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간에 암이 발견되지 않았다. 모든 검사에서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와 담당 의사들을 놀라게 했고 얼마 후 병원치료를 받던 아버지는 숨을 거두시고 아들이 아버지 장례를 치렀다. 현대 의학에서 보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 셈이다.

 건강 생활을 잘 했을 경우 몇 개월 사이, 혹은 일 년 안에 암이 없어졌다는 결과를 보게 되는데 그럴지라도 다시 비건강 생활로 돌아가면 암은 재발된다. 그 후 이 사람은 한두 해를 건강한 상태로 지냈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신이 암 환자였다는 사실을 잊어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마음이 해이해지면서 옛 생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업 관계로 자주 외식을 하고 술을 마시고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았고 바쁜 일정 속에서 뛰고 있었다. 하루는 그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우리 그이가 복수가 차서 다시 병원에 입원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면서 남편의 상태와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다 이야기했다. 나는 또 다시 이곳으로 와 보라고 권했으나 그는 다시 오지 않았고 그로부터 두 달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병은 불치도 완치도 없는 병이다. 자기 몸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언제나 상태는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병을 고치는 약은 아직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처방, 곧 올바른 생활 습관을 길들이고 몸이 받아야 할 혜택을 공급받으면 건강은 항상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병이 나타나는 증상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으나 치료의 원칙은 동일하다.

1부 - 왈덴스인들을 탄생시킨 종교 암흑시대

현대 왈덴스인들을 찾습니다!
 왈덴스인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왈덴스인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세기에 가해졌던 그 무서운 종교 핍박, 성서가 가르치는 바른 진리가 이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질 정도로 혹독하게 가해졌던 종교 핍박을 꿋꿋이 견딘 왈덴스인들! 인간이 만든 유전을 강요하고 성서에 배치되는 복음과 가르침을 전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의 세력에 생명을 바쳐 가면서까지 굳세게 항거하여, 결국에 그 위대한 종교개혁 운동의 씨를 뿌리고 발아시킨,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후대까지 보존시킨 왈덴스인들!

 왈덴스인들의 신앙과 진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밝은 성경의 진리를 가지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왈덴스인들의 신앙 때문에 탄생하게 된 위대한 종교개혁, 진리를 회복시키는 종교개혁 운동은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종교개혁 운동은 성경의 순수한 진리 그대로 믿고 사는 현대의 왈덴스인들에 의하여 세상 끝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신앙과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칠 현대의 왈덴스인들을 하나님께서는 지금 찾고 계십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왈덴스인들의 신앙의 역사를 고찰해 보기로 합니다. 부득이하게 역사를 다루다 보면 특정 종교의 과오를 들춰내거나 비난한다는 인상을 주기가 쉽지만, 성경의 바른 가르침과 진리를 조명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고 특정 종교를 비난할 목적이 아닌 것을 알아 주시기 바라며, 이 왈덴스인들의 신앙에 대한 기사들이 독자들의 신앙의 불길을 더욱 활활 타오르게 만들고, 또 여러분들을 현대 왈덴스인들로 만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실 -

 현대의 개신교인들은 성경과 진리가 어떤 희생과 눈물겨운 투쟁을 통하여 지금까지 보존되고 전달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별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성경의 진리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특권에 대하여도 별로 감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왈덴스인들의 신앙과 역사에 대하여 연구하고나면 아마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왜 그들이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를 읽고 나면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그 위대한 종교개혁의 불꽃이 점화되었고, 그 결과로 우리가 지금 이렇게 풍성한 진리의 홍수 속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왈덴스인들이 출현될 수 밖에 없었던 종교적 배경, 곧 이 지구에 존재했던 종교 암흑 시대에 대하여 연구해 보자.

1). 초기 그리스도교와 로마 제국
1.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시대 상황
 예수님의 부활 후 온전히 회개하고 다시 거듭난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큰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사명을 잘 감당해내었다. 그 결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기게 되었고, 그리스도교의 큰 성장이 뒤따르게 되었다. 사도시대 이래 처음 몇 세기 동안에는 그리스도교계에 현 시대 같은 여러 교파가 없었다. 1세기에는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들이 이러한 교회들을 다스렸고, 그 후에는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도 교부들이 일어나서 진리를 지켰다. 그런데 2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제국의 황제에 대한 예배가 강요되었고, 또 그리스도교가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제국의 다신교와 이교의 사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하기 시작하였다. 로마제국의 끔찍한 핍박은 2백 년 이상이나 계속되었지만 교회는 그래도 신앙의 순결을 유지하며 순교자들의 피를 씨앗으로 하여 로마제국 전역으로 세차게 번져 나갔다.

2.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통합
 순교자의 피가 흘려진 곳마다 새로운 신자들이 생겨나고 가혹한 핍박하에서도 기독교인들의 숫자는 크게 증가되자, 정치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로마 황제는 기독교인들을 껴안음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로마 황제는 정책을 바꾸어 종교 자유를 허락하는 관용 정책을 통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313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는 종교 자유를 허락하는 밀란의 칙령을 내렸으며, 자신도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출신의 장로교 신학자 뵈트너 박사의 증언은 4세기 그리스도교의 진상에 대한 적절한 요약이다.

4세기 초, 서방을 다스리던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교에 호의를 베풀기 시작하고...324년,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로 만들었다. 결과로 신자가 되면 누릴 수 있는 특전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이교도들이 교회로 밀려 들어왔다. 화려한 이교 의식에 익숙한 이교도들에게 단순한 그리스도교 예배는 만족을 주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이교적인 신조와 종교 행사들을 끌어들였다. 사람들은 점점 성경의 진리를 소홀히 여기게 되었고, 진리에 대한 신자들의 무지로 인하여 교회는 점차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교회라기보다는 오히려 이교의 교회라고 불러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교의 행습을 본받아 교회 안에는 화려한 복장을 차려입고 제사를 드리는 사제와 화려한 의식, 돌과 나무로 새긴 각종 성상들, 성수, 분향, 수사들과 수녀들, 연옥의 교리, 구원은 은혜보다는 행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이교적 신앙이 일반 신자들과 성직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나갔다. (Liraine Boettne, Roman Catholicism, 11. The Prebyterian and Refomed pub-Iishing Co. 1979)

3. 불법의 비밀이 들어오다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Constantine) 황제의 이름뿐인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쁨을 불러일으켰으나, 사실 이것은 세상이 의(義)의 형식의 가면을 쓰고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교도인들과 그리스도교들의 통합을 통해 로마 국가의 번영과 통일을 꾀하려는 황제의 정책의 일환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교와 그리스도교회 사이의 타협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보다도 자기를 더 높이리라고 예언된 불법의 비밀의 발전을 초래하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로마 교황권의 확립을 초래할 큰 배도를 예언하였다. 그는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살후 2:3, 4)리라고 말하였다.

2). 종교 암흑시대의 도래
1. 교황권의 확립
 6세기에 교황권은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그의 권좌는 로마에 위치하게 되었고, 로마의 감독은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공포되었다. 이교는 그 세력과 지위를 교황에게 넘겨 주었고, 로마교회가 온 제국과 세계의 권세를 잡게 되었다. 이리하여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1260년간의 종교 암흑시대와 교황권의 박해가 시작되었다(단 7:25; 계 13:5-7 참조). 로마교의 권세가 더해 갈 적마다 영적인 암흑은 더욱 짙어졌다. 믿음과 진리는 진정한 기초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로마 교황에게로 옮겨 갔다. 사람들은 죄의 사유와 영원한 구원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의뢰하는 대신에 교황과 교황에게서 권세를 받은 신부나 주교에게 구하게 되었다. 교황은 세상에 있는 그들의 중보자이며, 그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또 교황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치에 서 있으므로 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사람들은 배웠다.

2. 교회에 들어 온 오류와 미신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진리와 믿음을 버리고 로마교의 의식과 예배를 받아들이든지, 지하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대와 화형(火刑)과 참형 집행자의 칼에 생명을 빼앗기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박해는 전에 없이 한층 더 격렬하게 신실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임하였으므로 세상은 하나의 큰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수백 년간 그리스도교회는 인가가 없는 궁벽한 곳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선지자는 이 일에 대하여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6)고 예언하고 있다. 복음은 잊혀졌고, 종교의 형식은 증가되었으며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가혹한 요구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그들은 교황을 그들의 중보자로 우러러보고, 죄를 속하기 위하여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고 그분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먼 길의 순례 여행, 고행, 유물 예배(遺物禮拜), 교회당과 제단과 수도원의 건립, 많은 돈의 헌납, 그 밖에 그와 유사한 일들을 행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3. 교황 무류설(無謬設)
 종교 역사를 보면 8세기에 교황의 권위가 절대적인 것으로 확립되었는데, 그에 더 나아가 11세기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ous f)는 로마교회가 완전하다고 선포하였다. 그의 주장 중의 하나는 성경에 의하면 교회는 한 번도 그릇된 일을 한 일이 없고, 또 장래에도 잘못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지지해 주는 성경상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그는 교회와 교황은 틀릴 수 없으며, 또한 황제들을 폐위시킬 권세가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자기가 선포한 선고는 아무도 폐지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교황은 전세계의 독재 군주가 되었다. 왕들과 황제들은 로마 교황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수백 년 동안 로마교의 교리들은 광범위하게 그리고 절대적인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그 의식들은 엄숙히 거행되고, 그 축제일들은 널리 준수되었다. 승려들도 존경을 받고, 풍족하게 살게 되었다. 아마 이때처럼 로마교가 위엄과 세력을 편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영적으로 세상의 한밤중이었다.

4. 이교의 교리가 스며들어 옴
 세기가 지나갈수록 그릇된 교리가 로마로부터 끊임없이 나왔다. 개종했노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들의 이교적 철학설을 주장하며 스스로 그것을 계속 연구할 뿐만 아니라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리하여 심각한 오류가 그리스도교 신앙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은 본래 불사불멸(不死不滅)의 본성을 가졌으므로 죽은 후에도 의식(意識)이 있다는 설은 그와 같은 오류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로마교회가 확립한 성도의 중보, 동정녀 마리아 숭배 같은 것이 다 이러한 교리를 기초로 생겼다. 또한 영원히 불타는 지옥, 연옥 등의 교리도 생기게 되었다. 지옥과 연옥의 교리는 미신적인 많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또 면죄부라는 것을 만들어, 무슨 죄를 짓을 했던지 돈으로 로마교회가 만든 이 면죄부를 사면 용서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법왕군(法王軍)에 속하여 그 영토를 넓히고, 교회의 적(敵)을 징벌하고, 교황의 영적 최상권을 부인하는 자들을 박멸하는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의 사유를 받고,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과 형벌에서 면죄된다고 약속되었다.

3). 왈덴스인들의 탄생
 참된 성경의 기초 위에서 신앙을 고수하고 진리의 성벽을 쌓던 소수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교리가 자기들의 일을 방해하기 때문에 혼란과 어려움을 느꼈다. 그들은 진리의 성벽을 건축하는 공사의 진행을 방해하기 위하여 자행되는 박해, 기만, 불법, 그 밖에 사단이 고안해 낼 수 있는 온갖 장애물과의 끊임없는 싸움으로 피곤하여져서 낙담해 버렸다. 그런 사람들은 마침내 생명의 안전과 재산의 보호를 위하여 참된 진리에서 물러갔다. 그러나 원수들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외치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신실한 사람들, 온갖 미신과 오류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진리를 전수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왈덴스인들이었다.

 제일 앞장 서서 로마교회 교황권의 침입을 저항한 사람들 중에는 왈덴스(Waldenses)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리를 보존하는 사람들 중 최선봉에 섰던 사람들이다. 왈덴스인들은 교황의 지위가 확립되어 있는 바로 그 나라에 살면서도 그 오류와 허위와 부패를 꿋꿋이 저항하였다. 수세기 동안에 피에몽(Piedmonte; 이태리의 북서부 지방, 알프스 산 부근)의 교회들은 독립을 유지해 왔으나 마침내 로마가 그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게 되었다. 로마의 압제에 대하여 무력한 저항을 해본 후에 마침내 그 여러 교회의 지도자들은 거의 온 세계가 존중하는 교황의 최상권을 마지못해 인정하였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교황과 주교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그들의 믿음의 순결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결심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두 갈래로 서로 갈라졌다. 여전히 과거의 믿음을 굳게 지키는 사람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이제 고향인 알프스를 뒤에 두고 외국으로 가서 진리의 깃발을 꽂게 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깊은 산골짜기나 험준한 산 속으로 피해 가서 거기서 자유로이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이렇게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산골짜기나 험한 산으로 들어가 교황권에 저항한 믿음의 선조들을 역사는 왈덴스인들, 또는 왈덴스 교도들이라고 부른다.

왈덴스 교도들이 몇 세기 동안 가르쳐 온 신앙은 교황권으로부터 나온 오류로 꾸며진 교리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들의 종교적 신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인의 참 제도에 기초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새롭게 받은 믿음이 아니었다. 그들의 종교적 신조는 그들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고, 그것은 사도 교회의 신앙인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 3)였다. 세계의 도시에 거창하게 자리잡고 있는 교권 교회가 아닌 이 광야 교회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나누어 주라고 당신의 백성에게 맡기신 진리의 보화를 잘 간수하고 있던 그리스도의 참 교회였다.

2부 - 왈덴스인들의 생활

1). 왈덴스인들의 출현
 하나님의 눈에 사랑스럽던 광야의 교회 , 하나님의 참 교회였던 왈덴스인들은 교황권의 거짓 교리와 오류와 미신의 가르침들을 저항하고 성경의 진리와 교리에 기초된 참된 신앙의 길을 걷기 위하여 초래되는 박해를 피해 궁벽하고 험한 산골짜기에서 그들의 삶을 시작하였다.  이 사람들은 여기 저기서 교황권의 박해를 피해 참 신앙을 지키려고 함께 모여 살게 되었다. 이렇게 참된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안락한 집과 생계수단과 안일한 삶을 버리고 험한 산골짜기로 피신하여 살던 사람들을 왈덴스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신실한 사람들이 역사에서 가지게 된 왈도파, 혹은 왈덴스인라는 이름은 그들의 지도자 피터 왈도에게서 유래한다. 왈도는 리옹의 부한 상인이었는데, 그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전도하였다. 그는 가장 성서적이고 그리스도의 원래의 가르침에 맞는 복음대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왈도에게는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다. 그와 그의 설교자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도록 권면하였고 그들을 성직자에게 데려오기보다는 오히려 구원으로 인도하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성서로 돌아오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 말이 전해지자 교황은 어떤 사람도 자기에게 먼저 그 특권을 받지 않고는 설교할 수 없다고 금지하는 명령을 보냈다. 그러나 왈도는 나는 사람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복종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것 때문에 그는 곧 출교당해 이단자가 되었고,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범법자로 여겨졌다. 로마 교황은 그런 무리들을 파괴하고 없애는 것은 크리스챤 교회가 전체적으로 나서서 협조할 의무라고 공포하고, 그들을 괴롭히고 박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정들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자, 그는 더 나아가 가지각색의 파문과 법규와 율령을 선포하였으므로 왈도파는 그 정부하에서는 어디에서고 안전을 기약받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였던 이 왈덴스인들은, 예언에 기록된 것처럼, 로마 교황권이 진리를 땅에 내어 던지고 (단 7장 참조), 또 사람이 만든 유전과 관습을 성경의 가르침보다 높이며, 또 하나님의 계명을 변조하고 하나님의 법을 짓밟는 것을 보고, 성경과 맞지 않는 로마 교황권의 교리와 신조에 동의 하지 않기로 하여, 힘을 다하여 그들의 선조들이 물려주었던 신앙을 지키고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고수하며 교황권에 저항하기로 한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진리를 위하여 안일하고 평화로웠던 삶을 포기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2). 왈덴스인들의 신앙과 삶
 그들이 삶의 정착지로 선택한 알프스 산의 첩첩이 싸인 산악들의 높은 성채들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박해를 받고 압박을 받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왈덴스인들은 거기서 은신처를 얻었다. 이곳에서 중세기의 암흑을 뚫고 진리의 횃불이 계속하여 타올랐다. 이곳에서 천여 년 동안 진리의 증인들은 옛날부터 물려받은 믿음을 지켜왔다. 비록 궁색하고 불편한 삶이었지만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 산과 골짜기들은 그들에게 포근한 안식처가 되었다. 그 신실한 유랑인들에게는 산들이 여호와의 변하지 않는 의에 대한 표상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 머리 위에 높이 솟아 불변의 위엄을 지니고 있는 산들을 자녀들에게 가리키면서 언제나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또 그 말씀이 영구히 서 있는 산처럼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은 고생스러운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았고, 궁벽한 산중에 외로이 있으면서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의 분노와 핍박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경배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하였다. 때때로 원수들의 추격을 받았지만 험준한 그 산들이 견고한 산성이 되었다. 그들은 높은 절벽 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지만 로마의 군대들은 그들의 감사의 찬미를 침묵시킬 수 없었다.

 왈덴스인들은 험한 땅을 개간하고 열심히 일하여 수확을 얻어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였다. 왈덴스인들은 진리를 위하여 세속적 번영과 유익을 다 버리고 어려운 산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고 꾸준한 인내로써 그들의 양식을 얻기 위해 수고하였다. 깊은 산골짜기에서도 경작할 만한 토지를 발견하면 즉시 그것을 잘 개간하였으므로 드디어 골짜기와 언덕의 사면(斜面)들은 많은 수확을 내는 농토로 변했다.

 그들은 진리의 원칙을 집이나 토지나 친구나 친척이나, 심지어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그뿐만 아니라 그 원칙들을 그들의 자녀들과 청년들의 마음에 철저히 새겨 주기 위하여 열성을 다하였다.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성경으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율법의 명령을 신성하게 여기도록 교육을 받았다. 성경의 진리를 확실하게 알고 있던 왈덴스인들은 로마교회를 요한계시록에 있는 타락한 바벨론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결정적인 태도로 교황권의 타락에 저항하였던 것이다. 오랫동안 계속된 박해로 인하여 어떤 사람들은 신앙적인 타협을 하여 그 분명한 원칙을 차츰 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에 굳게 서서 암흑과 배교의 전기간을 통하여 로마교황권의 최상권을 부인하고, 성상(聖像) 숭배를 우상 숭배로 보고 거부하며 참 안식일을 지켰다. 그들은 가장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그들의 믿음을 유지하였다.

3). 왈덴스인들의 교육의 좋은 모본
 왈덴스인 부모들은 인정 있고 자애로우면서도 매우 지혜로웠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을 지나치게 사랑함으로 그들이 방종의 나쁜 버릇을 가지지 않게 하였다. 그들의 앞길에는 시련과 고난, 심지어는 순교자의 죽음이 가로놓여 있었다. 왈덴스인들이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환난을 견디고, 통제에 복종하고,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들은 책임을 지는 것과 말을 삼가는 것과 침묵의 지혜를 이해하는 것을 배웠다. 한마디의 경솔한 말이라도 그들을 찾는 로마 군대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그 말을 한 개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들의 생명 또한 위험하게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진리의 적들이 마치 이리가 먹이를 사냥하듯이 신앙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소와 엄격한 극기의 정신은 그 자녀들에게 유일한 유산으로써 교육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은 진리를 위하여 사는 생애의 소중한 유산을 배웠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애를 훈련시키려는 뜻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배웠으며, 그들의 궁핍은 모두 각 개인들의 수고와 생각과 주의와 신앙으로만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들의 생애는 실로 수고스럽고 고달픈 것이었지만, 그들의 삶은 건전하고 성실한 삶이었다. 젊은이들은 수고와 고난에 단련되어 있었으나 정신과 지능의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더욱 발달되고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4). 왈덴스인들의 교회
 왈덴스인들의 모든 교회는 순결하고 단순한 점에서 사도 시대의 교회와 비슷하였다. 그들은 교황권과 주교들의 최상권을 부인하고, 성경만이 가장 높고 틀림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믿었다. 왈덴스인 목사들은 거만한 로마천주교의 사제들과는 달리,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양떼들을 섬기신 주님의 모본을 따랐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떼를 푸른 풀밭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샘터로 인도하여 먹였다.  왈덴스인들은 인간의 허영과 화려한 교만을 나타내는 거대한 교회당이나 굉장한 수도원 대신에 멀리 뻗은 산줄기의 기슭에나 알프스의 깊은 골짜기에 모였으며, 위험이 있을 때는 큰 바위와 절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에 모여서 그리스도의 종들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들었다. 목사들은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병자를 위문하고, 아이들에게 문답식으로 교리를 가르치고, 잘못하는 자를 견책하고, 다툼을 해결하여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화합하도록 노력하였다. 그들은 평화로운 때에는 사람들이 자원하여 드리는 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어려울 때에는 천막을 만들던 바울처럼 자기의 생계를 자기가 유지할 수 있도록 장사나 그 밖의 어떤 직업을 배워 두었다.

3부 - 왈덴스인들의 선교와 전도

1). 왈덴스인들의 성경 번역
 왈덴스의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목사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일반적인 학문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중요한 과목으로 배웠다. 당시에는 성경의 사본이 매우 귀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 가운데 있는 귀중한 말씀들을 외우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의 여러 곳을 반복하여 암송하였는데,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대부분의 사도들의 편지서들과 함께 암기하였다.

 왈덴스인들은 또 성경을 복사하고 번역하여 기록하는 일도 하였다. 어떤 이들은 전부를 베끼고, 어떤 이들은 그 일부분을 뽑아낸 것에 성경 해석자의 간단한 설명이 첨가되어 있는 것을 베꼈다. 그들은 불굴의 노력으로, 어둡고 깊은 동굴 속에서 횃불의 희미한 불빛 아래 한절 두절, 또 한장 두장 성경을 베끼어 나아갔다. 이런 피나는 수고와 방법으로 성경의 귀중한 번역사업은 진행되었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진리는 순금과 같이 빛났다. 그리하여 성경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하나님의 책에 쓰여진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빛은 비춰졌다.

 왈덴스인들은 유럽의 여러 백성들 중에서 최초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수백 년 전에 벌써 자국어로 필사(筆寫)한 성경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더욱 증오와 박해의 표적이 되었다. 성경의 진리를 확실하게 알고 있던 왈덴스인들은 로마교회를 요한계시록에 있는 타락한 바벨론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결정적인 태도로 교황권의 타락에 저항하였던 것이다.

 사단은 오류와 이단과 미신의 쓰레기 아래 진리의 말씀을 묻어 버리기 위하여 교황권의 사제와 주교들을 통해 역사하였지만, 그러나 암흑 시대의 전기간을 통하여 성경은 가장 기이한 방법으로 손상되지 않은 채로 보전되었다. 성경은 사람의 인을 맞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모든 사람들이, 유년 시대에나 청년 시대에나 장년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연구하는 교과서로 삼으시려고 계획하셨고, 그 계획은 어두운 종교 암흑시대 동안 이 신실한 하나님의 교회인 왈덴스인들을 통하여 실현되었다.

2). 왈덴스인들의 정신과 선교 교육
 왈덴스인들의 어떤 청년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알프스에 비하여 공부하고 연구하기에 더욱 유리한 지역인 프랑스나 이태리 도시들에 있는 교육 기관으로 파견되었다. 이렇게 파견된 청년들은 유혹을 받고, 부도덕한 일을 목격하는 속에서, 위험성이 많은 이단설과 기만적인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교활한 사제들과 대리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받은 그들의 교육으로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넉넉히 이길 만한 품성을 가지게 된 이 청년들은 자신들이 파견된 곳에서 공부를 하며 진리를 조용히 전파하였다.

 그들은 어느 학교로 가든지 함부로 비밀을 드러내는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그들은 크고 헐렁헐렁한 의복을 입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가장 귀중한 보물인 성경 사본(聖經寫本)을 옷 속에 감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수고하여 필기한 성경 사본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회가 있는 대로 의심을 받지 않을 만큼 주의하면서,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성경의 어떤 부분을 보여주었다. 왈덴스인의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이런 목적을 위하여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일을 성실하게 이행하였다.

 왈덴스인 청년들이 비밀리에 전도하는 일로 인해 그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참된 신앙으로 회개한 사람들이 생겨나 성경의 믿음의 원칙이 온 학교에 보급되는 일도 있었다. 교황권의 지도자들이 아무리 세밀하게 조사를 해도 그들이 규정하는 소위 부패케 하는 이단의 근원은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왈덴스 선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암흑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엄숙한 책임을 자신들에게 맡겨주셨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힘을 가지고 로마 천주교회가 사람들에게 메워 준 무거운 멍에를 끊어 버리고자 힘썼다.

 왈덴스 목사들은 누구나 다 선교사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성직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전도자의 경험을 쌓아야 하였다. 이런 경험과 봉사는 무엇보다도 극기와 희생을 요구하였고, 핍박과 시련을 겪고 있던 그 시대에 목사의 사역을 지망하는 사람에게 그 과정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성직에 나아간 청년들은 앞날의 세속적 이익과 번영을 바라지 않고 고생과 위험의 생활을 했으며, 때에 따라서는 순교자의 운명까지도 각오하고 사역을 하였다.

 이 선교사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내어 보내신 때처럼 두 사람씩 파견되었다.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나이 많고 경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였다. 그들은 자기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교훈해 줄 책임을 진 동반자의 지도에 복종하였다. 그 동역자들은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자주 기도하고 협의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서로 신앙을 강화시켰다.

 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사명의 목적이 남에게 알려지게 되면 그 사업이 망쳐질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를 조심스럽게 숨겼다. 모든 목사들은 제각기 일종의 기술이나 직업을 가지고 표면적으로는 어떤 세상의 직업에 종사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실제로는 비밀리에 전도 사업을 계속하였다. 흔히 그들은 장사꾼이나 행상인의 직업을 택하였다. 그들은 그 당시에 먼 곳에 있는 시장에 가지 않으면 쉽게 얻을 수 없는 비단과 보석과 그 밖의 물품들을 가지고 다녔는데, 선교사로서 가면 추방당할 곳이라도 행상인으로 갔으므로 환영을 받았다.

그 들의 마음은 황금이나 보석보다도 더 귀한 보배를 전하기 위해 필요되는 지혜를 얻으려고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도드렸다. 그들은 공들여 베낀 성경의 전부 혹은 일부분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회를 얻을 때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그것을 끄집어 내어 그들의 고객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싶어 하는 흥미가 일깨워졌다. 그러면 그들은 성경의 사본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그 귀중한 성경의 어떤 부분을 즐거운 마음으로 주었다.

4). 왈덴스인들의 선교과 당시의 상황
 왈덴스 선교사들의 활동은 초기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산기슭에 있는 평원과 골짜기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범위를 넘어서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에까지 나아갔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성경의 진리의 귀중한 씨를 뿌렸다. 그리하여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교회가 생기고, 순교자들의 피가 진리를 증거하였다. 그 은밀하고 조용한 가운데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이단과 거짓이 난무하는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도 사람들의 가정과 심령 속으로 영접되고 전해졌다.

 왈덴스인들은 성경에서 과거의 사건뿐만 아니라 장래에 있을 사건과 미래의 시험과 영광을 나타내주는 기록들을 발견하였고, 또한 그들은 만물의 마지막이 멀지않았다고 믿었다. 그들이 기도와 눈물로 성경을 연구할 때, 그들은 그 귀중한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고, 구원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줄 책임을 깊이 느꼈다. 그리고 구원의 계획이 거룩한 말씀 속에 분명히 나타난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위로와 소망과 평안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빛이 그들의 이해력에 비추어져서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줄 때 그들은 그 빛을 로마교황권의 오류의 암흑에 묻혀 있는 자들에게 비추어 주고자 열망하게 되었다.

 그들은 교황과 신부들의 가르침과 지도 아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육체를 고통스럽게하는 고행으로 죄를 용서받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들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자기들의 행위에 의지하도록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들의 죄 많은 상태와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합당한 자신들을 보고, 구원받기 위하여 심신(心身)을 괴롭게 하였지만 마음의 평안은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의 양심적인 사람들은 교황권의 교리에 얽매이게 되어 무수한 사람들이 친구와 친척들을 버리고 수도원에서 생애를 보내었다. 자주 반복되는 금식, 잔혹한 태장, 밤중의 기도, 쓸쓸하고 차갑고 습기찬 돌 위에 몸을 굽힌 채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먼 길의 순례 여행, 굴욕적인 고행, 무서운 고통을 통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양심의 평안을 얻으려고 헛되이 노력하였다. 그들은 죄의식으로 압박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리시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감으로 번뇌하고 고민하였으며 마침내 기력이 쇠잔하기까지 되었으나 한 줄기의 빛이나 희망조차 없이 무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왈덴스인들은 이처럼 진리를 모른 채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을 나누어 주고,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있는 평안의 기쁨을 알려 주고,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자 갈망하였다. 그들은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과를 속할 수 있다고 하는 교리가 거짓에 기초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사람들이 들은 교황과 신부들의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품성, 심지어 그리스도의 품성까 가혹하고 음울하고 가까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한 인류에게 신부나 성자들의 중보가 필요하리 만큼 동정심이 전혀 없으신 분처럼 표현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들, 이 진리를 아는 왈덴스인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자비의 팔을 펴시고 죄와 근심과 염려의 짐을 가지고 당신께로 오라고 부르시는 사랑과 동정이 많으신 구주를 소개하고자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사단이 하나님의 언약을 볼 수 없도록 쌓아놓은 장애물을 제거하여 버림으로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용서와 평안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왈덴스 선교사들은 열심으로 뜻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복음의 귀중한 진리를 밝히 나타내 주었다. 그들은 매우 조심성 있게 손으로 베낀 성경을 내어 놓았다. 하나님을 마치 보복만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고, 엄격한 심판을 기다리면서 죄짐에 눌려 있는 양심적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었다. 떨리는 입술과 눈물 어린 눈으로, 때로는 무릎을 꿇고, 그들은 죄짐에 눌린 사람들에게 죄인의 유일한 소망을 나타내 주는 하나님의 귀중한 약속을 읽어 주었다. 이리하여 진리의 빛은 암흑에 쌓여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고, 어두운 구름은 사라져 버리고, 마침내 치료하는 광선을 가진 의의 태양이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게 되었다.

 때로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되풀이해서 읽어 주었는데, 그 이유는 듣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올바르게 들었는지 확인하려고 반복해서 읽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다시 읽어주기를 간청한 성경 구절들은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7)라는 말씀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 15)고 한 부분들이었다. 이렇게 왈덴스 선교사를 만난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게 되고, 이 영원한 성경의 진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6). 전도를 받은 사람들의 기쁨
 왈덴스 선교사들의 전도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교황권의 주장이 그릇된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죄인을 위하여 사람이나 천사의 중보가 참으로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참 빛이 그들의 마음에 비취게 되자 그들은 너무나 기뻐서 그리스도는 나의 제사장이시요, 그분의 피는 나의 제물이요, 그분의 제단은 나의 참회실이다!라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자기 자신들을 온전히 맡기고 믿음이 없은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히 11:6 구역),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는 말씀을 되풀이하였다.

 구주의 사랑의 보증은 이와 같이 가련하고 번민에 사로잡혀 있는 심령들이 예전에 미처 깨달을 수 없을 만큼 풍성한 것이었다. 이제 그 성서의 복음이 그들에게 그처럼 큰 안도감을 가져다 주고, 넘쳐 흐르는 밝은 빛을 받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마치 천국으로 옮겨진 듯이 생각되었다. 그들은 이제 인간 대신에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었고 믿음과 신뢰로 구주의 손을 붙잡았으며, 그들의 발은 만세 반석 위에 서 있었다.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구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감옥이나 화형주도 달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왈덴스 선교사들에 의해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읽혀졌다. 어떤 때에는 오직 한 사람에게, 또 어떤 때에는 빛과 진리를 사모하는 적은 무리에게 읽혀졌다. 때로는 밤을 새워가면서 성경을 읽어 주었다. 듣는 사람들은 너무나 감탄하고 놀랐기 때문에 구원의 기별을 깨달을 때까지 그 자비의 선교사들이 성경을 낭독하는 일을 중단하지 말도록 간청하였다.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께서 나의 예물을 받아 주실까?, 과연 내게 대하여 미소를 지으실까?, 그분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실까?하는 말들을 하였다. 그러면 그 대답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말씀을 읽어 주었다.

 그들은 믿음의 손으로 약속을 붙잡고, 기쁨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되었다. 이제는 먼 길의 순례가 쓸데 없다! 이 이상 더 거룩한 성전을 찾아서 고통스러운 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죄 많고 불결한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겠다! 그분께서는 통회하는 사람의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실 것이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아아! 그분께서는 나의 죄, 나의 죄까지도 사하여 주신다.

 성경의 진리를 전해들은 사람들의 마음은 거룩한 기쁨의 물결이 가득 찼다. 사람들은 찬미와 감사로 예수님의 이름을 높였으며, 기쁨으로 충만해진 그들은 진리와 생명의 길 되신 예수님을 찾은 새로운 체험을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증거하고, 받은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후에 진리의 전달자는 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겸손한 태도와 그의 성실성과 그의 열성과 깊은 인상을 남겨 주는 호감은 자주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에 너무나 경탄하게 되고 다음에는 기쁨으로 감격하여져서 압도당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자기들의 집으로 가자고 강권하게 되면, 왈덴스인 선교사들은 또 다른 잃어버린 양떼를 찾아가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혹시 천사가 아니었던가 하고 의심하기도 하였다.

 많은 경우에 그 전도자들은 한 번 보이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선교사들은 다른 나라로 갔거나, 어떤 미지의 감옥에서 고생을 하고 있거나, 자기가 진리를 증거한 그 곳에서 이미 죽임을 당한 신세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남겨 놓고 간 하나님의 말씀은 멸절될 수 없었다. 그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역사하고 있었다.

4부 - 왈덴스인들에게 가해진 핍박과 박해

1). 십자군의 정벌
 왈덴스인 선교사들의 전도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와 성경에 대한 각성이 백성들에게서 일어나는 것을 보자, 암흑의 세력도 일어나서 크게 경성하게 되었다. 교황권의 대리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보자 두려워하게 되었다. 교황권의 지도자들은 이런 검소한 행상인(왈덴스인)들의 활동이 그들의 사업에 위험의 전조가 되는 것을 깨달았다. 진리의 빛이 아무런 장애 없이 비추어지도록 허용한다면, 그것이 오류의 짙은 구름을 헤쳐 버릴 것이고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만 이끌리게 되면 마침내 로마교황권의 최상권은 무너질 것을 그들은 알았다. 그리하여 교황권은 그들을 이 지상에서 쓸어 버리기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산간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토벌하기 위하여 무서운 십자군이 파견되었다. 또한 종교 재판관들이 그들과 함께 파견되어 죄 없는 사람들이 이유없이 죽임을 당하는 광경이 자주자주 되풀이되었다. 그리하여 산골짜기에 개간되었던 그들의 비옥한 땅은 거듭거듭 황폐되었으며, 그들이 살던 집과 예배당은 자취조차 없어졌고, 한 때 곡식이 무르익었던 밭들과 순결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살던 그곳은 거친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

 마치 굶주린 맹수가 피 맛을 보고 더욱 사나워지는 것처럼, 교황권 교도들의 분노는 그들의 희생물들의 고난을 보고 더욱 격렬해졌다. 이 순결한 믿음의 증인들인 왈덴스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추격당하고, 골짜기에서도 숨을 곳을 찾지 못하여 깊은 산림 속과 절벽 위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인권을 박탈당한 그 사람들의 도덕적 품성에는 아무런 책잡을 것이 없었다. 그들을 잡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을 온유하고 조용하고 경건한 백성들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의 큰 죄목은 교황의 뜻대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죄의 대가로 사람이 고안해 낼 수 있는 온갖 굴욕과 모욕과 가혹한 형벌이 그들에게 과하여졌다. 한 번은 로마교황권이 그 미워하는 종파인 왈덴스인들을 근절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죽음에 내어 줄 것이라는 포고가 교황으로부터 붙혀졌다. 그들은 게으르거나 부정직하거나 질서를 문란케 한다는 죄로 고소되지 아니하고, 도리어 외모로는 경건하고 성결한 체하면서 실상은 참된 양우리의 양을 속이는 자들이라고 정죄되었다. 그러므로 교황은 만일, 그 유해한 종파가 그들의 신앙을 포기하기를 거절한다면, 독사처럼 짓이겨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이 포고는 교회의 모든 사람과 죄수들에게 이단을 토벌하는 십자군에 참가하도록 하였는데, 십자군에 가담하면 다음과 같은 특권이 주어졌다. 십자군에 참가한 자들은 일반적이거나 특수한 것을 막론하고 온갖 종교적 형벌에서 면죄되고, 마땅히 행하기로 선서한 것들도 면제되고, 비합법적으로 얻은 어떤 재산도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이단자들을 죽이는 그 일에 가담함으로 모든 죄에서 사유함을 받는다고 보증되었다. 그것은 성경의 진리를 믿는 왈덴스인들에게 유리하도록 체결된 모든 계약을 취소하게 하고, 그들의 종이 되었던 사람들은 그 상전의 집을 나가게 하고, 누구든지 그들을 도와주는 일을 금지하였고, 아무나 그들의 소유물을 빼앗을 수 있게 허락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장 무서운 비극이 연출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던 백성, 왈덴스인들은 그들에게 미친 여러 세기의 박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내와 성실로 견디었다. 그들 자신은 물론, 어린 아이들과 가족들이 모두 토벌을 당하여 비인도적인 학살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귀중한 진리를 선포하기 위하여 전도자를 파견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잡혀서 죽임을 당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의 피는 이미 뿌린 씨에 물을 주게 되어 결실을 가져다 주었다. 이와 같이 왈덴스인들은 개혁자 루터가 나기 수세기 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증거하였다.

2). 종교 재판소
 로마교회가 최초로 종교재판관들을 임명한 것은 왈도파, 곧 왈덴스인들의 전도와 그들의 설교 때문이었다. 교황 이노쎈트 3세는 자신의 영향권 내에서는 사람들의 신앙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종교재판소들을 세우고 어떤 수도사들을 종교재판관으로 임명하여 이단의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하고 유죄 선고를 내리도록 하였다. 종교재판관들은 모든 나라에 파견되었으며, 그들의 세력은 제한을 받지 않았고, 그들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왈도파가 가르치는 믿음을 가졌거나, 또는 로마교회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성경을 그대로 따르는 독자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지면 그의 목숨과 재산은 끝장이었다. 종교재판소에서 일반적으로 집행되는 고문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그곳에는 늘 무시무시한 살인도구들이 있었고 죄수들의 뼈와 사지를 늘어뜨려 어긋나게 하는데 쓰여지는 도르래와 밧줄, 뺀찌 등등 무서운 기구들이 있었는데, 몇 주일이고 고문을 하다가 결국에는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 그런데 그들이 이단자들을 이렇게 고문을 한 이유는, 그들이 소위 말하는 이단(성경대로 믿는 기독교)을 믿는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여, 그들이 이단을 믿는 것을 포기하게 해야 지옥이나 연옥에 가서 받을 형벌이 감해진다고 믿고 그 고문이 이단자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이었다.

3). 프랑스와 이태리에 있던 왈덴스인들이 당한 박해
 교황은 왈도파(왈덴스인)들의 신앙이 계속 퍼져나가는 것을 보자, 로마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증오스러운 종파를 영원히 지상에서 종식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는 왈도파를 그들의 골짜기에서 끌어내려고 크레모나의 대집사 알베르트 카피타나이스를 프랑스로 보냈고 대규모의 군대를 일으키는데 성공하였다. 군인들이 왈도파 사람들을 잡으려고 알프스의 어느 골짜기에 도착했을 때 집들은 비어 있었고 사람들을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그곳 사람들이 벌써 군인들이 오는 것을 알고 동굴이나 바위에 숨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온갖 수단을 다하여 그들을 찾아내고 추적하여 많은 사람들을 잡아 낭떠러지에서 거꾸로 떨어뜨려 죽게 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비밀 통로를 이용하여 동굴에 피해 있었다. 군인들이 그들을 붙잡을 수가 없게 되자, 동굴을 찾아내어 어귀에 나무를 쌓아 놓고 큰 불을 질렀다. 동굴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연기와 열로 질식되어 죽었다. 불이 다 탄 후 동굴을 뒤지자 1,000여명이나 되는 시체가 발견되었고 그 가운데 대부분은 여자들과 어린이들이었다. 이 공격에서 죽은 사람들은 3,000명에 달했다.

 그 외에도 알프스 산의 북쪽인 이태리 북방으로 가서 산 사람들, 알프스의 또 다른 산맥에 사는 사람들도 이와 유사한 핍박들과 죽음을 당하였다. 긴 세월 동안 많은 어린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 아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주 골짜기를 습격하는 십자군 (무서운 죄를 지은 죄수들로 구성된 군대로서, 만일 그들이 이단을 믿는 크리스챤들을 많이 죽이면 용서해 준다는 조건으로 만들어진 군대) 에 의해 무섭고도 매우 잔인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불타는 신앙은 칼로도 화형으로도 창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이태리 북부 산으로 도망하여 가서 산 왈덴스 사람들 중, 후에 그들의 후예들의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그들은 땅을 갈고 파서 농업이 번창하였고 얼마간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예의 주시를 하던 로마 투린의 대감독은 결국 그들의 피난처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군대들을 보내어 많은 난폭한 짓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그러나 왈덴스인들의 수가 많아 때때로 파견된 군대가 그들의 저항을 받아 포기하고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수백 년을 그칠 줄 모르는 박해가 계속되었지만 그들의 신앙과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1650년 로마 의회는 희년을 맞아 신앙을 전파하고 이단들을 파괴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법을 통과시키는 중, 왈도파 사람들을 상하고 괴롭게 하려는 법과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유난히 심하게 추운 겨울에 왈도파 모든 주민과 이미 공개된 지역사람들은 삼일 안에 그들이 로마교회로 개종하지 않으려면 그들의 집을 떠나 산으로 은퇴하라는 것이었다. 놀라운 이야기지만,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주저하지 않고 그 조건들을 수락하였다. 그들은 우리는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 한 분만을 믿는다. 그리고 성경을 따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대로 구원을 얻는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어떤 교리와도 타협할 수 없으며, 어떠한 세력도 우리를 우리의 신앙에서 떠나게 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그들의 거처와 집들을 포기하였고, 눈 속에서 강을 건너며 어렵게 급류를 통과하여 동굴이나 불쑥불쑥 내민 바위 아래 안식처를 마련하였다. 
 
 15,000명의 군대가 즉시 그 골짜기로 파견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거기를 떠나려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고 야만스럽게 살해되었다. 남은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 땅을 강제로 빼앗기게 되었고 피드몬트의 다른 도성에 있는 감옥에 감금되었다. 12,000이나 넘는 남녀 성인이 어두컴컴한 토굴에 갇혀서 가장 잔인한 취급과 고문을 받았다. 그들은 아주 형편없는 빵을 먹었으며 썩은 물을 마셨다. 그들의 유일한 침대는 맨 돌이나 썩은 짚이었다. 그들은 일부러 사람들을 매우 빽빽하게 차게 했기 대문에 열병과 다른 질병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교회로 개종하려는 의사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신앙을 계속해서 고수하였다. 그러한 취급을 받는 가운데 몇 개월 안에 그들의 수가 12,000명에서 3,000명으로 감소되었다. 그러나 동굴 안을 늘 채웠던 찬송소리는 그들의 기도와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4). 종교 개혁의 씨를 뿌림
 핍박하는 일에도 막대한 경비와 인원이 요구되자 싫증이 난 박해자들은 왈도파의 나머지 남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정배를 가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에 강제로 행군하여 가게 되었고, 또 매우 빨리 재촉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죽었다. 그리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스위스와 핍박이 덜한 곳에 가서 정착하게 되었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고 죽었지만, 그러나 결국 그들의 이러한 고난과 시련, 또 죽음을 불사한 신앙의 열정, 수없이 흘려진 귀한 순교의 피 때문에 후대에 저 위대한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그들의 열정 때문에 귀중한 성경을 우리가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 성경에서 비쳐 나오는 진리를 믿고 깨달아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핍박을 피해 여러 나라로 흩어진 신실한 왈덴스인들은 위클리프 시대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의 씨를 뿌렸는데, 그 운동은 루터 시대에 이르러 한층 더 깊고 넓게 자라났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계 1:9) 모든 고난을 즐거움으로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마지막 시대까지 계속하여 진행될 것이다.

5부 - 종교 개혁의 밑거름이 된 왈덴스인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와 신앙을 고수하기 위하여 치룬 왈덴스인들의 희생과 순교의 피는 헛되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이 보존하고 전한 진리의 씨앗들은 교황권의 거센 반대와 사단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멀리까지 퍼지고 싹을 틔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세기 동안 그들이 피로 적셨던 진리의 씨는 그 위대한 종교 개혁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왈덴스인들을 제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유식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언어로 여러 시대 동안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왈덴스인들로 인해 성경이 번역되었고, 사람들이 자국어로 된 성경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진리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왈덴스인들과 같은 하늘의 사자들이 파견되어 전한 진리가 사람들을 일깨우게 된 것이었다.

1). 종교 개혁의 새벽별, 영국의 위클립
 14세기에 영국에서 종교 개혁의 샛별이 나타났다. 존 위클리프(JohnWycliffe)는 영국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국을 위한 개혁의 선구자였다. 그가 허락을 받아 로마교에 제기한 큰 항의는 결코 침묵시킬 수 없을 것이었다. 그 항의는 마침내 개인과 교회와 국가의 해방을 가져오는 투쟁을 빚어냈다. 위클리프는 대학 시절에 이미 놀라운 재능과 학식뿐만 아니라 그의 열성 있는 신앙으로 명성이 높았다.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그는 모든 방면의 학문에 통달하고자 애를 썼다. 그는 스콜라 철학을 공부하는 동시에 교회법과 국법, 특히 자기 나라의 법률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지식의 근본으로 삼은 경건한 사람이었다.

 위클리프는 대학에 있을 때 성경 연구를 시작하였다. 초기인 당시에는 성경이 고어(古語)로만 되어 있었으므로 학자들은 진리의 근원으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무식한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 길이 막혀 있었다. 위클리프는 성경 연구에 뜻을 두고 학교에서 학과를 공부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그것을 연구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스콜라 철학이나 교회의 가르침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항상 부족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이전에 얻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었다. 거기서 그는 구원의 계획을 깨달았고,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업에 바치고 자기가 발견한 진리를 전파하기로 결심하였다.

 위클리프는 후세의 다른 개혁자들처럼 그의 사업의 초기에는 자기가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는 고의적으로 로마교에 반대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리에 투신하게 되자 그는 필연적으로 거짓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로마교가 사람의 유전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을 보고 성경을 저버린 신부들을 담대하게 질책하고 성경을 백성들에게 돌려줄 것과 성경의 권위를 교회 안에서 다시 한 번 확립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재간 있고 열성 있는 교사요 웅변적인 설교자였으며, 자기가 전한 진리를 자기의 일상 생활로써 실증하는 삶을 살았으므로 그의 해박한 성경 지식, 그의 논증의 설득력, 그의 변함없는 용기와 성실성 등은 일반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를 얻었다. 그래서 로마교에 편만한 불법을 눈으로 목격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종래의 신앙에 불만을 가졌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감출 수 없는 기쁨으로 위클리프가 밝히 제시한 진리를 받아들였다. 

 왈덴스인들이 외롭게 이어 온 진리의 빛은 마침내 위클립에게 옮겨졌고, 유럽의 최고 명문인 옥스포드 대학의 가장 유능한 학자요 국왕의 궁중 사제였던 위클립은 왈덴스인의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정립하여 선포했다. 그는
(1)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그리스도시며, 교황은 적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선언했다.
(2) 연옥을 부정하고 성자 예배와 유물 숭배를 반대했으며,
(3) 화체설(미사를 드릴 때, 그 떡과 포도주가 진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이론)을 공박했으며,
(4) 고해성사와 교회의 무류를 부정하고,
(5)
구원은 인간 공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고 가르쳤다.
(6)
1382년, 금서였던 성경을 라틴어에서 영어로 번역하여 백성들의 영적 안목을 회복시켰으며,
(7) 왈덴스인의 본을 따라 롤라드로 알려진 평신도들을 훈련시켜 전국을 순회하며 전도하게 했다.

2). 종교개혁의 큰 별, 마틴 루터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연옥 교리를 소개하여 속죄의 필요를 역설한 중세 천주교회는 고해성사와 함께 고행을 강조하며 면죄부로 자신의 죄의 형벌을 감면할 뿐 아니라, 연옥에 있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신속히 천국에 보낼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로마 천주교회의 배도와 잘못된 가르침은 이미 요한 허스가 일으킨 개혁에 자극을 받아, 행함이 아닌 믿음에 의한 구원을 체험한 젊은 신부요 신학 교수였던 마틴 루터로 하여금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들게 만들었다. 루터는 그 동안 자신의 신앙적 양심을 괴롭혀 온 로마 천주교회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95개조 논제를 1517년 10월 31일 정오에 위턴베르그 성당문에 게시하였는데, 이로써 세계 역사를 바꾼 대종교개혁의 막이 올랐다. 마틴 루터는 즉시 교황권에 의해서 이단으로 고발되었으며, 신성 로마제국의 국회로 소환되어 1521년 4월 18일 심문을 받고 그의 주장을 포기하도록 요청받았으나 이를 담대히 거부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분수령을 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신성 로마제국에 잡히면 화형에 처해지는 이단의 선고를 받은 루터의 대표적 가르침은, (1) 신앙의 최종 권위는 로마 교회의 전통이나 권위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성경에 있으며, (2)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사람의 선행이나 로마교회의 사제가 나누어주는 공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의며, (3) 구원은 그러한 믿음을 통해 누리는 오직 은혜로 주신 선물이며, (4) 또한 신자들은 신부나 사제를 통하지 않고도 직접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만인 사제직을 제창했고, (5) 연옥 교리와 함께 그것을 뒷받침하는 영혼 불멸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조건적 불멸을 가르쳐 부활신앙을 강조했다. 루터의 개혁은 개신교 신앙의 기초를 놓으며 개신교 신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3). 그 외의 종교개혁 운동
Æ 독일에서 루터가 개혁을 시도하는 동안 스위스에도 철저한 종교개혁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경건한 로마 가톨릭의 사제요, 학자며 애국자였던 쯔윙글리는 성경을 연구한 결과로 얻은 확신에 따라, 로마 가톨릭의 이교적인 예배의식과 면죄부 제도를 전면 부정하고, 극도에 달한 성직자들의 도덕적 퇴폐를 공박하는 대담한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화체설을 반대하고, 성만찬의 빵과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기념이라고 가르쳤다.

Æ 또한 루터나 쯔윙글리보다 더 철저한 개혁을 원하는 일단의 개혁자들이 스위스의 쮜리히에서 일어났다. 재침례파, 혹은 형제들로도 알려진 이들은,
(1) 신앙의 유일한 근거로 깊은 성경연구를 강조하고,
(2) 국가와 교회의 철저한 분리를 주장했으며,
(3)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할 수도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베푸는 로마가톨릭의 의식인 유아세례가 비성경적인 것이므로 무효라고 선언하고, 성인 신자에게 침례를 다시 베풀었기 때문에 재침례파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4)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죽음을 수면과 같은 무의식 상태라고 가르치고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을 강조하는 신앙을 받아 들였다.
(5) 교회로부터 각종 성상들과 이교적 의식들을 일체 제거할 것을 주장하고,
(6)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고 맹서를 금했으며,
(7) 전쟁을 반대하고 무기 사용을 금했으며, 핍박을 받을지라도 대항하거나 원수를 갚지 않았으며,
(8) 모든 교회는 신자들이 자율적으로 믿고 다스려나가는 회중제도를 택했다.

Æ 철저한 가톨릭 신봉 국가였던 프랑스는 루터의 개혁 신앙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대대적인 핍박을 시작하였다. 루터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던 20세의 젊은 청년 요한 칼빈은 핍박을 피하기 위해서 스위스로 피난하여 제네바를 중심으로 신정정치까지 베풀며 루터의 개혁과 양대 주류를 이루는 개혁을 추진시켰다. 칼빈이 강조했던 점은,
(1) 신앙은 성서에 기초해야 하고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성서신앙을 강조하고,
(2) 창조와 구속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했다.
(3) 예배 의식에서 중세 로마교회의 우상적이고 이교적인 요소를 일체 배제하여 개신교 예배의 기초를 놓았다.
(4) 은총만을 치우치게 강조한 루터와는 달리 의와 성화의 표준으로 율법의 기능을 적절히 강조했다.
(5) 교회행정에 있어서는 감독제도와 회중제도의 중간인 장로제도를 채택했으며,
(6) 루터와 쯔윙글리보다 성만찬의 영적 의미를 한층 깊게 했다.
(7) 교육을 강조하고 직업을 소명으로 가르치는 등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이 왈덴스인들이 진리를 위하여 치룬 희생은 세상에 종교개혁 운동과 많은 위대한 개혁자들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빚어내었다. 그것이 가능하였던 이유는 왈덴스인들의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었고, 그것이 현재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존재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왈덴스인들로 인해 시작된 이 종교개혁 운동은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왈덴스인들의 신앙과 희생을 바탕으로 시작된 이 종교개혁 운동은 진리의 더 밝은 빛을 깨닫고, 그 빛에 온전히 순종하고 진리로 온전히 성화된 한 백성, 곧 성경 요한 계시록 14장 12절이 말하는 마지막 백성들이 태어나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 사람들은 현대 왈덴스인들이며,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현대 왈덴스인들을 찾고 계신다.

6부 - 현대 왈덴스인들을 찾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노아 홍수시대 이전부터 거슬러 올라가 믿음을 지켜온 노독들의 생애와 그 신념에 대하여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 믿음장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모세는.... 그들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었고 믿음으로 타락과 부패를 헤치고 나아간 자들이었다. 그들은 믿음으로 승리하였고 믿음을 가지고 핍박과 죽음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이번 왈덴스인들의 신앙과 생활, 그리고 그들이 종교사에 미친 영향들에 대한 기사들을 살펴보며, 히 11:33-40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위의 성경절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싸워온 선조들의 생애를 한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믿음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믿음은 어떤 논리를 인정하는 동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살아 있는 삶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믿음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믿음은 능동적인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진리가 타협되거나 바뀌어지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아니한다. 왈덴스인들이 가진 믿음은 이렇게 살아있는 믿음이었고, 그들의 전도를 통해 종교 개혁을 일으키게 된 개혁자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도 바로 이 살아 있는 믿음이었다. 알면서도 가만히 중립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사실상 믿음을 가졌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1. 믿음의 마지막 주자
 히브리서 11장에서 말하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사상이 있다. 그것은 이 지구 역사의 믿음의 싸움에 있어서 마지막 주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주자가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 믿음의 싸움이, 아니 계속되어 가고 있는 종교개혁의 사업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인 왈덴스인들은 목숨을 다하여 진리를 발견하고 내세우며 보존하여 왔다. 그들은 진리를 위하여서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하는 일을 즐거이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그 결과를 바라보기만 하였지 아직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모든 믿음의 싸움의 결과와 끝은 세상의 종말에 살고 있는 마지막 주자인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40절 하단).

 빛이란 점진적인 것이다. 아침의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잠 4:18). 하나님을 알기 시작한 자가 단번에 진리를 다 꿰어 차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요구된다. 진리를 이해해 나가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예수께서 세워 놓고 가신 초대 교회는 그 진리를 알고 실천하는 면에서 완전하였었다. 그들은 온전히 회개하였으며 성령을 충만히 받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 후예들에게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돈에 대한 사랑과 권력에 대한 다툼과 정치와 타협하고 진리를 쉽게 변조시켜버리는 일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중세기에 진리는 그 빛을 잃게 되었다. 이 세상은 암흑 속으로 깊숙하게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왈덴스인들과 같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진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치면서 저항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전도와 진리의 빛을 통하여 위대한 종교 개혁자들이 일어나 종교 개혁을 부르짖으며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에 관한 것이었고 또한 그 진리들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깨닫게 되며 구원을 얻게 되는 기초석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2. 계속되는 종교개혁 운동

 진리의 빛이 점진적으로 밝아지는 것처럼 종교개혁자들도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더 밝은 진리의 빛을 비추었다. 곧 그들의 개혁운동을 통해 진리의 빛이 조금씩 더 밝게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역사의 흐름과 그 성정은 진리를 단번에 소화하거나 개혁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원만한 광명에 이르기 위하여 계속 진리를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진리의 빛이 온전한 분량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전진되어야 한다. 왈덴스인들의 신앙이 밑거름이 되어 탄생한 종교개혁자들이 시작한 진리의 개혁은 그 후예들에게 와서 중단되어 버렸다. 중단은 후퇴를 뜻하는 것이다.

 구속의 역사는 모든 진리가 회복되었을 때, 그리고 교회가 그 모든 진리를 회복한 후에 그 회복된 진리로 인하여 성결케 될 때에 그 끝이 이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곧 하나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통하여서만 하나님이 보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삐뚤어지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진리의 빛은 온전한 분량까지 전진되어 나가야 한다. 아직도 채 개혁되지 못한 채 감추어져 있는 진리들이 여전히 그 빛을 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그 진리롤 온전히 성화된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 마지막 교회가 준비될 때에, 곧 어린양의 신부가 준비되는 때에 예수께서 신랑으로 재림하시게 되는 것이다. 그때에야 하나님께서 사단과의 전쟁에서 진리로 승리하시게 되는 것이다. 진리가 어두움을 이기고 승리한다는 사실이 온 우주에 증명된 이후에 끝이 오는 것이다.

3. 마지막 주자의 사명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 전기를 발견하기 전까지 인류는 어두움의 노예로 살고 있었다. 전기의 발명 이후에 인류는 밝음의 자유를 누리며 얼마나 많은 발전을 도모해 왔는가! 교회의 사명은 진리를 완전하게 다시 회복하는 데 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마지막 주자들이다. 개혁자들의 후예들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주자인 우리의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 교회를 성장시키어 큰 건물을 짓는 것일까? 현세의 정치 체재를 바꾸기 위하여 노동자들과 함께 농성을 벌이는 일일까? 아니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자선하는 일에 온 정력을 기울이는 일이란 말인가? 물론 그러한 일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업은 교회의 사명에 있어서 지엽적인 일이다.

 교회의 사명은 진리를 고수하고 가르치는 일에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우선 순위를 바꾸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체험해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 믿음은 단순한 동의나 인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그 은혜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고, 주님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며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으로 변화되도록 우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복음을 온전히 체험한, 죄를 이기는 순결한 성품을 이룬 한 백성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들이 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는 이 시대적인 사명과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예수께서 곧 오실 것이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마지막 주자들이다. 우리는 새로운 진리들을 발견하거나 듣게 될 때에 빛으로 빛으로 전진해 나가는 용기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마치 왈덴스인들이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듯이, 우리도 진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우리의 평판이나 이익을 버리고 충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1620년도에 청교도들을 미국으로 떠나 보내는 마당에서 설교한 청교도 지도자 로빈슨 목사의 고별 설교 내용을 다시 음미해 보도록 하자!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제 곧 헤어지게 됩니다. 제가 여러분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기회를 주시든 아니 주시든, 저는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여러분들에게 책임을 부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이 쓰시는 방법을 통하여 무엇이든지 여러분에게 드러내시는 때는, 일찍이 나의 봉사를 통하여 드러난 진리를 여러분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십시오. 왜냐하면, 제가 확신하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말씀으로부터 쏟아져 나올 더 많은 진리와 빛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미 알려졌거나 장차 알려지게 될 진리의 빛을 따라 주님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동의한 여러분의 서약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여러분에게 알려지게 될 빛과 진리가 무엇이든지 그것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나님께 서약하고 또 서로 약속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더욱 조심하도록 간청하는 것은 여러분이 진리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은 먼저 그것을 성경의 다른 진리들과 비교하여 달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계는 극히 최근에야 그처럼 두터웠던 적그리스도적인 암흑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단번에 완전한 지식이 모두 터져 나오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대 왈덴스인들을 찾고 계신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라도 불사하면서 싸우던 과거의 왈덴스인들처럼, 점진적으로 밝혀지는 진리의 빛을 따르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따르기로 결심하는 현시대의 왈덴스인들을 찾고 계신다. 아직도 계속 중인 종교개혁 운동에 참여하고, 그 진리의 빛으로 마지막 세상을 환하게 비출 종교개혁의 마지막 주자들을 말이다. 당신은 현대 왈덴스인인가? 당신은 진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하며 따라갈 열정을 가진 사람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현대의 신실한 왈덴스인들로 만들어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