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편지: 그것이 유혹이 아니었다면

 때때로 생각해 본다. 예수님이 없었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잘 알 수 있었을까 하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어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와 같은 언어로 말해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우리는 아직까지도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가득 차 있던, 사단이 인간의 마음속에 넣어준 하나님에 대한 오해의 검은 구름 - 하나님은 가혹한 재판장같이 무서운 분이시며, 인간들을 벌하기를 좋아하시는 두렵고 엄격한 신이라는 오해 - 의 구름을 단번에 흩어버릴 수 있는 분은 단 한 분, 예수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인간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실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인성을 쓰시고 우리 중 하나가 되는 성육신의 길밖에는 없었다.  빌립보 2장 6,7절의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늘 감동을 주지만,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짧은 구절인 것 같다. 성육신!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비밀은 언제나 우리에게 끝없는 명상의 주제를 던져준다.

아름다운 비밀
 정말 꼭 그러실 필요까지 있었을까?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꼭 우리 인간과 똑같은 인성을 입으셔야 했을까? 이 주제는 유한한 사고를 가진 인간이 추측해내지 못할 무한하고 신비로운 주제이지만, 이 아름다운 비밀은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며, 이 사실은 오늘도 우리를 감격시킨다.  성경은 예수께서 인성을 쓰시고 인간이 되신 놀라운 비밀에 대하여, 그리고 예수께서 입으셨던 인성과 본성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다음의 성경 구절들은 이런 질문에 대하여 대답해주고 있는데, 우리는 이 성경의 구절들을 믿음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히 2:11).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히 2:14). 이는 주께서 진실로 천사들의 본성을 입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씨를 입으셨음이라 (킹 제임스 성경, 히 2:16). 그리고 히브리 2장 18절과, 5장 2절의 말씀들을&&. 신이 인간이 되시다! 인간 어머니인 마리아의 태에 갇혀서 보내신 열 달의 시간들,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한 아이로서의 성장의 단계를 거치시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눅 2:52)던 어린 시절들, 가난하고 순박한 나사렛에서의 청소년기, 그리고 공생애를 위해 하나님과 교통하며 천연계에서 명상과 기도로 준비하시던 청년기의 시간들, 하늘의 선물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니시던 장년의 시간들&&.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 하늘이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그 시간들은 우리가 신을 가장 가까이서 가질 수 있었던 귀중한 순간들이었고, 이 세상은 그분으로 인해 온통 축복의 분위기로 휩싸일 수 있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인 예수님의 실재는 메마르고 척박한 이 지구를 아름답고 풍요로운 꽃과 향기로 뒤덮이게 했고, 그 아름다운 비밀로 인해 이 세상은 이슬에 흠뻑 젖은 초목처럼 하늘의 은총이 충만하게 넘치는 은혜로운 장소가 되게 했다.

우리와 하나가 되심
 성경은 우리의 귀한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인성이 우리와 똑같은 인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얼마나 많은 점에서 같았는가? 범사에서이다. (히 2:17 참조) 범사라는 말은 영어로 in every way인데, 이것은 모든 면에서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신성을 거론하는 것 말고 인성에 있어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으셨다. 신이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감정 - 슬픔, 기쁨, 고뇌, 행복 - 을 느끼시고, 또 우리와 똑같이 육체적인 상황 - 배고프고 피곤하신 - 을 가지셨다.  저명한 신학자인 칼 발트나 에밀 부르너, 또한 루돌프 볼트만이나 오스카 쿨만 및, 20세기 후반의 유명한 신학자들은, 예수님은 인간의 타락한 인성을 가지셨으며, 타락에 의해 영향을 받은, 우리와 같은 유전 법칙의 영향을 받은 분으로서의 예수님의 인성을 공공연하게 지지했는데, 특히 쿨만과 볼트만은 빌립보서 2장 5~8절 말씀에 대하여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쿨만은 종의 형체를 가져 라는 뜻에 대하여 그의 주석에 기록하기를, 종의 형체를 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의 형체, 곧 인간의 타락으로 영향을 받은 한 사람의 형체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빌립보 2장 7절의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에서 사용된 likeness는 원어 Homoiomati 라는 뜻으로서, 겉모양만 똑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같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인성을 쓰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되,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입으시고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또 말하기를,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고 그분의 죄 없으심을 말하고 있다. 이 말의 뜻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 인성과 본성을 입으셨지만, 예수님 속에는 신성의 충만하심이 함께 거하시므로 어떤 악한 감정이나 일과도 관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죄를 이신 순결한 생애를 사셨다는 뜻이다. (요 14:30 참조)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데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첫째로 인간에게 나타나는 감정과 느낌과 경험을 체험하셔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 줄을 아시기 위함이고, 둘째로는 우리도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 수 있다는 모본을 보여주시기 위하여서이다.

그것이 유혹이 아니었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실 때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과 유혹을 받으셨다. 만일 겉모양만 우리와 같은 분으로 오셨다면, 왜 히브리서는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겠는가?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7~8).

 항복할 가능성이 없다면 유혹은 유혹이 아니다. 만일 시험에 굴복할 가능성이 없다면, 시험은 시험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분이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셨더라면, 그는 인간이 시험당하는 것같이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분도 아담처럼, 그리고 모든 사람들처럼 시험대에 오른 자유 행위자였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유혹은 생생한 현실이었다. 그분도 사단의 유혹에 굴복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자유 행위자로서 시험대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유혹이 아니었다면, 육체에 계실 때에 예수님은 고난을 당할 필요가 없으셨을 것이다.

 유혹이 유혹으로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주님은 우리 인간들처럼 시험을 이기기 위해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유혹이 유혹이 아니었다면, 승리를 위해 애쓰실 필요도 없었고, 그러면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 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인성을 쓰신 주님이 견뎌야 할 유혹과 시험이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모본이 되시기 위하여 이겨내야 할 시험들이었다. 만약 타락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었다면, 그분은 인간들이 시험을 당하는 것처럼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예수님께서 인성을 쓰시고 이 땅에 오셔서 몸소 모든 것을 체험하시는 그 위험한 시간들을 보내셨던 것은 우리에 대한 놀라운 사랑 때문이었다. 

생애의 빛에서

강병국 목사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창조하실 때에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어 기능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육체 중의 하나인 뇌라는 부분의 작용을 통해서만 활동할 수 있지요.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의 두뇌 세포는 몸이 흡수하여 만들어 낸 화학물질들의 작용을 통하여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우리의 몸이 놀라워 떨릴 정도로 신묘막측하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진리입니다. 우리의 두뇌의 기능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동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결심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면서도 우리는 많은 경우에 우리의 몸이 바로 이러한 영혼의 역사가 이루어 질수 있도록 근본적인 바탕이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몸이 어느 날 갑자기 파업이라도 하는 날에는 우리는 생각 할 수도 없고 지식을 가져 오거나 이해 할 수도 없는 비상 상황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물론 우리의 몸은 혹사를 당하더라도 절대로 그러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너무나 힘들어 병에 걸리는 일들은 자주 생기고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기초 발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성을 계발하고, 좋은 신앙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먼저 무엇을 잘 돌보아야 하겠습니까? 깊은 기도의 생활을 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반드시 해야 할까요? 이번 호에서는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영성 계발에 큰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가정과 영성: 내가 드리는 기도

은밀히 드리는 기도 : 나는 기도를 합니다. 대개 매일 아침과 저녁 두 차례 기도합니다. 어떤 때는 종일 계속하기도 합니다. 나의 기도는 대개 묵상입니다. 즉 혼자서 조용히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교회에서 단체로 드리는 기도와는 다른 기도를 드립니다. 가족 예배 때에는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며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도 소리를 높여 기도합니다. 그런 때에 내 기도를 들을 수 있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공중에 나는 새들뿐입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5-6).

삼류가 아니신 하나님 : 나는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집안의 안전과 장사의 번영을 비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기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5-26). 나의 하나님은 그 사람이 무슨 장사를 어떻게 하고 있든지 상관없이 교회에 헌금을 많이 바치기만 하면 복을 나누어 주는 성황당의 삼신할머니 같은 분이 아닙니다. 또한 원수를 저주하는 기원을 들어주는 삼류 하나님도 아닙니다. 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의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고자 하는 기도는 일절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기도를 드리는 자에게 형벌을 주십니다. 나의 기도는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감사의 기도 : 나는 하나님께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내게 좋은 친구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부족한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선교 사업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선과 악을 구별하고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며 빛과 어둠을 구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내가 사리사욕에 빠져서 이기심의 노예로 끌려 다닐 때에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나를 구원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새벽에 일어나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나의 기도는 기원의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기도입니다.

사업을 위한 기도 : 나 역시 연약한 사람이기에 감사를 마친 후에는 내 마음속에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아룁니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사업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할 것을 비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를 오직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나의 최선을 다하여 지치지 않고 정진하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내가 처음에 사업을 시작한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정신과 소원이 변치 않고 이루어지기를 비는 것입니다.

동료를 위한 기도 :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나의 부족과 연약함 때문에 그들이 시험받지 않고 걸려 넘어지지 않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문제는 나로 하여금 언제나 열심히 기도하도록 만드는 주제입니다. 나는 내가 소원하고 결심함으로써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실패한다고 할지라도 실망하거나 낙담할 일이 없지만, 나를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내가 하는 사업에 동참한 동료들이 나의 부족과 결점으로 인하여 시험을 받아서 넘어진다면 그것은 정말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족을 위한 기도 : 나는 가족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그들은 참으로 연약한 나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와 안위 외에는 어떤 것도 그들에게 주지 못했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살아가는 나의 가족입니다. 세상에 흔히 있는 오락이나 쾌락도 주지 못하지만 오직 나 하나만을 믿고 따라오는 가족을 위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내가 진리 위에 굳게 서고 의를 위하여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절약하면서 살림을 꾸려가는 아내를 위하여 기도드리는 시간은 정말 내게 귀한 시간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을 쪼개고 쪼개서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거룩함을 향한 정열이 솟구쳐 오름을 느낍니다. 그런 아내에게 따뜻한 말과 친절한 위로를 주기는커녕 더 잘하라고 꾸짖었던 내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참으로 마음이 괴롭습니다. 아내와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터질듯이 불쌍하지만 하나님의 군사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에 오늘도 앞을 보며 전진합니다. 그러므로 홀로 하나님 앞에 앉아서 기도드릴 때, 아내와 가족들 위에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친구를 위한 기도 : 나의 친구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때로는 그 친구의 이름을 들어가며 합니다. 특히 친구들 중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당하는 친구와 가난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또 나와 같은 정신과 신앙을 가진 사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내가 믿는 동일한 진리를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일한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일하는 친구들을 위한 기도를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업은 나의 사업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한 기도 : 나는 내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보다 분명하게 나타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생각나는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기를 기도드립니다. 내 마음이 눈같이 결백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죄인지 알면서 죄에 빠지지 않게 붙잡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여 주셔서 점점 더 밝은 빛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기도드리며, 또 내게 주어지는 빛과 진리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나 같은 죄인은 도저히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기도하기를 폐한 적도 있지만 그분의 은혜를 물리치고 거절할 수 없어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 용서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런 때야말로 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가 큰 음성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 간구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내 참회의 마음에 평화를 주시는 동시에 다시는 그런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결심을 주셨습니다.

 어떤 때는 나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드리는데 그런 기도는 단지 오래 살면서 육체의 쾌락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업을 잘 완수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 깊어서 돈을 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확장함으로써 나의 명예를 높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자금의 결핍 때문에 눈앞에 보면서도 선한 사업을 이루지 못할 때에 너무나 답답하여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돈이든지 물건이든지 간에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때에는 구태여 기도드리지 않아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달랐고 나의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과 달랐기 때문에 간구했지만 응답받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업의 번영을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나와 사업을 궁핍하게 하셔서 나를 더욱 겸손케 하심으로써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 결과 당신의 영광이 더욱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돈을 위한 기도는 더 이상 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사업을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먼저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대체로 내가 드리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는 관음당의 부처 앞이나 마을 앞의 수백 년 묶은 나무 앞에서 드리는 기도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기도입니다.

한 가지 의문 :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도전에 부딪히게 됩니다.기도란 정말로 효력이 있는 것인가?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기도가 응답된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마음가짐이 하늘의 이치에 맞는다면 구태여 기도하지 않아도 신은 당신의 뜻을 행할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종종 나처럼 기도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당황케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은 기도가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앞으로 일어날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예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하기 어려운 일을 하나님께 억지로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간구하는 그것이 돈이든지 사업이든지 기적이든지 은사든지 방언이든지 간에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한 나의 굴복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기도에는 어떤 종류의 이기심과 욕심도 발붙일 틈이 없습니다. 기도란 헌금이라는 뇌물을 교회에 내고 나의 요구를 청탁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므로 우리가 요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우리의 기도를 기다릴 필요 없이 즉시로 베풀어 주십니다.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이유 :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천진한 마음이 흘러넘치는 표현입니다. 마음속에 넘치는 감사의 마음이 흘러넘치는 것이 기도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또한 걷잡을 수 없는 번민과 슬픔의 정이 나눌 곳을 찾다가 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부모와 나누는 대화입니다. 기도는 말을 아름답게 꾸며야 하는 문학도 아니고 과장해서 포장해야 하는 사업 수단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통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에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높은 곳에 홀로 앉아서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무감각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를 부모처럼 돌보아 주시고 마음을 졸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종 하나님과 대화하고 우리의 걱정과 고민거리를 털어 놓을 수 있으며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감사의 말을 전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아는 자식이 부모와 이야기하지 않고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슬플 때나 아플 때 부모의 손길을 그리워하듯이 인생의 생사고락에서 우리는 당연히 기도를 통하여 하늘 아버지를 찾아가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불행 : 세상에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부모 없는 고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친구도 변심하여 떠날 수 있고, 내가 모든 것을 바쳐서 다녔던 회사도 나를 버릴 수 있으며, 나를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연인도 한 줌의 돈과 명예에 마음을 뺏길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와 처자 역시 나를 도와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에는 죽어서 없어지게 될 인간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적막하겠습니까? 우주의 왕이 바로 우리 곁에 계신데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채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하늘의 재판정에 서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가 벌었던 돈과 가졌던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늘의 왕이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조금 더 오래 살고 조금 더 잘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의무가 아니라 특권 :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하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자들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영원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기도할 수 있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될 것이 두렵기 때문에 나는 항상 기도합니다. 죽음이 나의 입을 막기 전까지 내가 드리는 기도는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 1부 - 영성을 계발하는 길 - 1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체, 즉 영과 혼과 몸이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몸과 영혼이 함께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번 호 신앙 기사는 강병국 목사님이 강의한 내용을 구성하여 꾸며보았습니다. 이 기사가 독자 여러분들에게 몸과 영혼이 진정으로 강건하게 되는 길을 가르쳐주는 안내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영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강한 믿음과 영성은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승리로 이끌며, 신앙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 다른 영혼들에게 생명을 나누어줄 수 있게 한다. 영성이 충만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나누어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적인 슬럼프에 빠져서 승리하는 생애를 살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영성과 믿음, 신앙은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영성과 건강은 서로 중요한 관계가 있다. 즉, 인간의 몸의 건강과 믿음 사이에는 중요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이 있다. 육체가 건강한 것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육체의 건강은 우리의 영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육체와 영혼과 마음은 서로 깊은 관련이 있고, 상호 간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므로, 몸과 마음과 정신이 함께 건강해야 적당한 균형을 이루어 강건한 믿음과 영성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영성을 계발하는 방법,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법칙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잘 연구한다면, 육체가 건강하게 사는 법과 영성을 계발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성경이 말하는 건강 법칙이란 무엇인가와,성경이 말하고 있는 육체와 영혼의 건강은 무엇인가, 그리고 영성을 계발하는 길에 대하여 함께 연구하여 보기로 한다. 

영성을 계발하려면

1. 생애 전체가 건강해야 한다 
요삼 1:2 -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은 그의 편지서에서 몸과 영혼과 생애가 모든 일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바란다는 축복의 말씀을 기록해 놓았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기를, 평안하기를, 즐겁기를, 행복하기를, 성화되고 거룩하게 되기를, 영혼과 몸과 생애가 잘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생애 전체가 건강한 것, 이것이 우리의 건강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소원이다.

2. 영혼과 몸이 다 함께 건강해야 한다 
살전 5:23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먼저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또 우리 인간이 전체, 곧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잘 보존되기를 원한다고 기록하였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건강이다.

a. 거룩하게 하시고
 거룩하다는 것은, 너무나 경건하고 거룩해서 잘 웃지도 않고, 얼굴 표정이 경직되거나 어둡고, 점잖게 걷고, 무게를 잡고, 말이 없거나 말을 한다 해도 천천히 하는, 그런 외양적이고 인간의 통상적인 개념의 거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함이란 우리의 생애 전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말한다. 자아는 숨겨지고 마음속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므로 밝고 행복하고 긍정적이고 기쁘게 사는 것을 말한다. 
 거룩함이란, 영혼을 하나님께 굴복시키고, 의지와 생각까지도 주의 뜻에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의 실제 생활의 모든 면을 의미하는 것인데, 세속에서 분리되어 신실하게 사는 것, 자신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 사는 것, 죄의 길에서 떠나 경건하게 사는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하나님의 뜻과 일치된 상태로 사는 것 등을 말하는 것이다.
 거룩함은 생각뿐만 아니라, 말하고, 먹고 마시고 사는 생활의 모든 면, 전체를 가리킨다. 이렇게 자신의 전체를 하나님께 바친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이 그 영혼을 가득 채워서 늘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며, 다른 사람을 순결하게 만드는 깨끗하고 신선한 성령의 샘물이 그 마음속에서 계속 솟아 나오는 것이다. 거룩한 사람은 영성이 충만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깨끗하게 보존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이렇게 질병이 많고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서 정말 몸과 영과 혼이 깨끗하고 강건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성경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b. 영과 혼과 몸
 먼저 영은 무엇이며, 혼은 무엇인가 함께 연구하여 보자. 바울은 영과 혼과 몸이라고 하여 이들을 각각 따로 분리하여 표현해 놓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영과 혼과 몸은 서로 분리된 것인가? 이 의미들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자.

 영은 영어로 스피릿(spirit)이고, 히브리어로는 루아흐(ruach), 헬라어로는 프뉴마(pneuma)이다. 영(spirit)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영, 영혼, 신, 공기, 바람, 호흡, 생명력 등의 여러 가지 의미로 표현되고 번역되었다. 영은 마음과 정신, 생각, 명상, 기억력, 의지 등을 말하기도 한다. 영어로 폐렴은 뉴모니아(pneumonia)로서, 호흡질환을 가리키는데, 이 단어는 프뉴마와 관계가 있다.

 성경 전도서 12장 7절에는 이 영 이란 단어가 신으로 번역되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여기서 신은 호흡, 생기, 생명력을 말한다.  또 전도서 3장 21절에 쓰인 영(spirit)이란 단어에는 호흡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여기서 쓰인 혼은 루아흐인데 공동번역에는 숨으로 되어있다. 성경에서 영이란 뜻이 많은 부분에서 몸의 기능을 뜻하는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영은 영적인 기능, 즉, 하나님에 대한 신령한 것에 대하여 이해하는 기능을 가리켰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일, 신령한 일에 대한 기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곧,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부분, 신령한 영역, 영적인 부분을 영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두뇌의 세포 즉, 뇌의 기능을 사용하므로 가능한 것이다.  혼은 영어로 소울(soul)이고, 히브리어로는 내패쉬, 헬라어로는 프쉬케이다. 이 단어는 생애, 생명 자체라는 뜻으로, 생명, 감정, 사람의 생명의 본질의 뜻으로 성경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40번이나 영어의 life 생명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마태복음 16장 26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하신 말씀 중에서 목숨이라는 단어는 혼, 영어로 soul 이라는 단어로서 생명, 삶 자체를 말한다. 혼이란 어떤 다른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혼은 나라는 존재가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나라는 사람의 한 가지의 부분과 기능, 즉 몸의 일부분의 기능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혼은 우리의 지성을 가리키고 있다. 알고 깨닫고 분석하는 것, 감정, 입맛, 느끼고 기억하는 영역, 곧 지성적인 부분을 혼이라고 한다. 혼은 깨닫고 분석하는 영역, 지성적인 부분을 말한다. 
 몸은 육체, 피와 살과 뼈, 내부 신체 조직을 말하는 것으로서 헬라어로는 salt즉, 인체의 생명과 호흡을 담고 있는 집을 가리킨다. 몸이 없으면 영과 혼이 존재할 수 있는가? 없다. 몸이 없으면 영과 혼이 따로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몸은 영과 혼이 존재하고 기능하도록 담고 있는 집이며, 몸속에서 영과 혼의 기능이 존재하게 된다. 성경은 몸이 죽으면 영혼도 죽는 것이라고 말한다.

3. 전체가 성화되어야 한다
 사람을 가리킬 때, 영과 혼과 몸은 독자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것들은 서로 각각 다른 하나의 존재들이거나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고, 몸의 모든 부분이다. 즉, 영과 혼과 몸이 합쳐져서 나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과 혼과 몸이 사람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생명력을 불어 넣으시니) 생령(살아 있는 영혼- living soul)이 되었다. 그러므로 영과 혼과 몸이 다 있어야 사람을 이루는 것이다.  성경은 영과 몸이 다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 몸 없이 영혼이 죽지 않고 혼자 영원히 산다는 말은 성경에 없다. 다음의 성경절을 보자.

겔 18:4 - &&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렇게 성경은 영과 몸이 다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서, 인간을 영과 혼과 몸으로 나누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함께 다 거룩하게 성화되어야 함을 피력하고 있다. 그렇다. 성화는 영과 혼과 몸, 세 부분이 함께 되어야 한다. 거룩함은 이 세 부분을 다 포함하여야 하는데, 곧 그리스도인 경험 전체를 포함하여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순결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순결하게 되는 것은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 이것은 영의 순결함, 혼의 순결함, 몸의 순결함이 다 포함되어야 한다.
 영혼을 하나님께 다 바치고 굴복하면, 우리의 지성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순결하게 되는 것이다. 영혼을 순결하게 하는 일, 혼을 깨끗하게 하는 일, 몸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영성이 계발되고 건강하려면 영과 혼과 몸이 건강해야 하며, 그 뿐 아니라 영과 혼과 몸이 함께 거룩하고 깨끗하게 성화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신앙: 2부 - 영성을 계발하는 길 2

 앞의 기사에서 영성을 계발하려면 영과 혼과 몸이 함께 건강해야 하며 이 모든 것들이 함께 깨끗해져야 하며 거룩하게 성화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성화될 수 있는가?

1. 말씀으로 성화된다
요 17:17 -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께 의탁하시며 진리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성경 말씀은 진리이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성화되는 것은 진리로, 말씀으로 되는 것이다. 말씀으로 어떻게 거룩하게 되는가? 그것은 성경과 하나님의 진리와 맞지 않는 우리의 모든 것을 고치는 것, 버리는 것, 그리고 굴복하는 것이며, 이것이 거룩해지는 경험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환상적인 것이 아니다. 거룩한 경험은 내 생애 실제적인 생활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야 한다. 곧, 신앙이 생활 전체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개념이나 깨달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 생각을 바꾸고 동기를 바꾸는 것, 나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말씀으로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것, 성화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벧전 1:14~16 -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이것은 부당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하시는 분이시며, 또 할 수 있는 방법까지 가르쳐주신다.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성경절을 읽으면서, 이것을 믿을 만한 넉넉한 믿음이 없으므로 표준을 낮추고 인간에게 맞도록 의미를 조정하여 믿는다.  즉, 자신이 하나님께 굴복하지도 않고, 거룩하지 않은 것들을 회개하여 버리지도 않으면서,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다고 인정해 주신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거룩하게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하나님께서는 그저 은혜로 다 덮어주시고 눈감아주시는데 왜 그다지 어렵게 살아야 하느냐고 진리의 말씀을 부인하고 덮어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씀으로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2. 순종함으로 성화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죄 많고 공해 많은 세상에 처해있지만,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이 세상에서 강건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모든 진리를 순종해야 한다.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진리를 알게 될 때, 그것을 하나씩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나아가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롬 6:15~18 -그런즉 어찌 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다 된 것인가? 아니다. 로마서 6장뿐만 아니라, 성경은 순종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생활은 죄의 종이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제자리 걸음이나 중간이 없다. 죄의 종이 되든지, 의의 종이 되든지, 사단을 섬기든지, 예수님을 섬기든지, 육체의 정욕을 따라 내 습관으로 살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롬 6:22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위의 성경절은 말하기를,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했다. 구원과 영생은 다르다. 예수님을 믿고 용서와 구원을 믿고, 구원 가운데 있어도, 주님 안에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생애를 살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매일 받는 것이다. 매일 주님 안에서 구원의 경험 가운데 살아야 하며, 그것이 지속될 때 마지막에 오는 것이 영생인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손을 놓기 전에는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주님의 손을 놓고 순종하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산다. 성경은 믿는 자들을 심판하신다고 말한다. 한번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뜻은 정죄 받지 않는다는 뜻으로서, 로마서 3장에 나오는 정죄 받지 않는다는 뜻의 성경절들은 모두 그런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믿는 것에는 순종이 따라야 한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살며 열매 맺는 생애를 살아야 구원이 지속된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오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화된다
 영과 혼과 몸이 거룩하게 되는 것, 흠 없이 온전하게 되는 것, 과연 이 일이 가능한 일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벧후 1:3~4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룩하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그의 신기한 모든 능력을 주셨다고 말한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능력을 이미 주셨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고 믿으면 생명과 건강과 경건에 속한 것이 다 온다. 성경은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성질과 성품은 다르다. 타고난 인간의 성질은 다 다르다. 까다로운 성질, 사나운 성질, 급한 성질, 마음이 좁고 삐뚤어진 성질 등등&&. 그러나 이런 좋지 않은 성질을 가진 사람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거듭나면 새로운 성품을 받게 된다. 어떤 성질을 타고 났든 지를 불문하고, 아무리 후천적으로 배양된 나쁜 습관이 있어도,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역사로 인해 거듭남의 경험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게 된다. 까다로운 사람도 너그러워지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어떻게 몸과 영과 혼이 회복될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 아무리 오랜 신앙 생활을 해도, 진정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또 예수께서 마음속에 임재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면,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진정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이 진정한 신앙, 곧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통째로 뒤바꿀 수 있는 열렬한 신앙인지, 충만한 영성으로 살아서 우리의 생애 전체가 새롭게 바뀌었는지 돌아보고 회개하여야 한다. 우리는 죄의 정욕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피해야 한다. 죄의 힘이 아무리 강하게 우리를 다스리려고 해도 빨리 하나님께로 달려가면,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소원하면, 하나님께서 신기한 능력을 주셔서, 죄를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로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다. 그 능력은 이미 주어져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영과 혼과 몸이 온전히 준비되는 사람들이 되자!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자!  

신앙: 3부 - 산 제사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우리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였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옛날 성소 제도에는 제사 제도가 있었다. 양들을 잡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제사였는데, 이 어린양은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산 제사라는 것은 우리의 전체를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생애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 말이다.  그것은 우리의 시간, 우리가 생각하는 것, 먹는 것, 계획하는 것, 일하는 것, 마시는 것, 돈을 쓰는 것, 남을 취급하는 것 등등 나의 생활 자체 모두를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교회 가서 찬송 부르고 예배드릴 때만 말고, 우리의 평소의 모든 생활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제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전체를 주님께 바치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 이것이 산 제사이다.

1.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1) 성령의 전인 몸을 잘 돌보아야 한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곧, 성령이 거하시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고전 10:31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산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우리의 몸을 돌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다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원하신다.

 앞에서 배웠듯이 영과 혼과 몸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에는 영적인 영의 기능이 있고, 지성적인 혼의 기능이 있으며, 이것들을 담고 있는 집, 곧 혈과 육이 있는 것이 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산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려면,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잘 돌보고 보존해야 한다. 육체가 건강하지 않으면 영적으로도 강건할 수 없다. 몸이 약할 때 우리는 부정적이 되고 영적인 예민성을 잃게 되어 성령의 역사를 알아차리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온전한 산 제사가 되려면, 먼저 육체를 잘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2) 몸과 영성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몸은 신묘막측하게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창조하실 때, 놀랍게 창조하셨다. 위장의 기능을 보라. 위는 음식물이 들어가면 그 음식물들을 부수고 소화액과 혼합하여 반유동성 미즙을 만들어 조금씩 십이지장으로 이동시킨다. 음식물을 즙처럼 만들기 위하여 위는 미세한 연동 작용을 계속하는데, 여기에는 많은 신경들의 작용이 필요하며, 이 신경들이 위장의 운동을 촉진한다. 그런데 위를 혹사하고 잘못 먹어서 위의 기능이 약해지면 몸이 약해지게 되고 그리하여 정신이둔하여 지면서 영성도 맑아질 수 없다.

 우리 몸의 장기 중에 간은 해독작용을 가지고 있어서, 음식물 중의 유해물이나 장내에서의 부패, 또는 발효에 의해서 발생하는 독물을 산화하거나 환원시켜서 무해하고 무독한 것으로 바꾸거나 혹은 체외로 배설시켜 처리한다. 간은 마치 신체의 중요한 화학 공장과 같다. 간은 약물과 다른 이물질들의 대사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간에서 일어나는 수만 가지의 전환으로 인해 독성 물질들을 변화시켜 배출하여 신체에 해가 가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그런데 간이 나쁘면 피가 탁하고 더러워지게 되어 영성이 깨끗해질 수 없다.

 또 신장의 기능은 어떠한가? 신장은 우리 몸의 수분의 양과 농도를 조절한다. 만약 심한 설사나 땀으로 체내에서 탈수가 일어나면 신장은 소변의 양을 줄여서, 또는 수분을 필요 이상 많이 섭취하면 소변의 양을 늘려서 체내 수분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게 된다. 또 신장은 세포 안팎의 전해질 농도를 적정하게 유지시키며, 체내 조직에서 신진대사로 발생한 노폐물을 배설시킨다. 우리의 몸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할 길이 없다. 디자인한 분이 없이 우리의 몸이 이렇게 기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성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생각과 마음만이 아니라, 영과 혼과 몸, 모든 것을 잘 돌보아야 한다. 우리 몸의 왕은 머리, 두뇌이다. 두뇌의 뇌세포의 기능대로 우리는 행동한다. 생각만 해도 몸이 즉각적으로 행동한다. 몸은 정신의 기능, 명령 때문에 움직인다. 뇌사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떤 뜨거운 것을 만졌을 때, 즉시 그것이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고 뇌는 얼른 손을 치우게 하고 입으로는 뜨겁다고 외치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몸의 모든 것은 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몸의 건강은 영성과 깊은 관계가 있고, 몸이 건강해야 정신과 영적인 기능이 모두 맑고 건강하다. 그러므로 몸의 건강은 강한 영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3) 예수님의 생애를 모본으로 해야 한다
 마 3:15~17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내 기뻐하는 자라고 부르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생애, 모든 계획, 곧 먹는 것, 사는 것 등 자신의 모든 삶 자체를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는 삶을 사신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가리켜, 내 기뻐하는 자라고 인정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성령의 충만하신 인치심을 받으셨다.

 그 다음 성령에게 이끌려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 왜 성령께서 예수님을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게 하셨을까? 왜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셔야 했을까?  예수님은 우리의 모본이시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실패한 그 지점으로 가셔서 승리하셔야만 하였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인간이 실패한 그 지점으로 돌아가 승리하시고, 우리에게 승리하신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며 우리로 승리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사단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의 생애는 산 제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모본이다.

2. 예수님의 모본 - 시험과 승리
1) 예수님의 시험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께만 바치시고 말씀으로만 살고 순종하신 예수님의 삶 전체는 우리의 모본이다. 예수님의 시험에 대한 승리를 살펴보면서 교훈을 찾자.

 마 4:1~4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하나님은 예수님을 내 기뻐하는 자라고 부르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생애, 모든 계획, 곧 먹는 것, 사는 것 등 자신의 모든 삶 자체를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는 삶을 사신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가리켜, 내 기뻐하는 자라고 인정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성령의 충만하신 인치심을 받으셨다.  그 다음 성령에게 이끌려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 왜 성령께서 예수님을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게 하셨을까? 왜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셔야 했을까?  예수님은 우리의 모본이시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실패한 그 지점으로 가셔서 승리하셔야만 하였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인간이 실패한 그 지점으로 돌아가 승리하시고, 우리에게 승리하신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며 우리로 승리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사단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의 생애는 산 제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모본이다.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께만 바치시고 말씀으로만 살고 순종하신 예수님의 삶 전체는 우리의 모본이다. 예수님의 시험에 대한 승리를 살펴보면서 교훈을 찾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셨는데, 그때 가장 먼저 받으신 시험은 미각에 대한 시험이었다. 40일은 인간이 금식할 수 있는 한계이다. 40일을 굶으신 예수님께 식욕에 대한 유혹의 힘은 아주 강하게 다가왔다. 사단은 말했다. 당신은 창조주가 아니오? 왜 그렇게 고생을 하고 있소? 흙으로 사람도 만들었는데, 떡을 만들어 먹으면 어떤가? 아버지께서 떡을 만들어 먹어도 뭐라고 안 하실 것이오. 쉽게 사시오. 그렇게 고생을 당하고 희생할 필요가 어디 있소?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순종하셨는데, 시험을 받도록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셨고, 금식하라고 하신 대로 금식하시며 하나님과 교통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금식이 다 끝났으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시 먹으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먹지 않으실 것이었다. 시험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만 살 것이라는 예수님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왜 예수님께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드시지 않았는가? 인간은 식욕에서 타락하므로 범죄를 하게 되었다. 사단은 우리를 칠 때 어디를 공격해야할지 안다. 그래서 첫 번째 공격으로 미각을 쳤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처음으로 받으신 시험도 식욕에 대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시험을 당하셨다. 그리고 승리의 모본을 주시며, 아무리 극한 상황이 오더라도 아버지의 뜻대로만 순종하고 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었다.  예수님의 생애는 우리의 모본이다. 그분께서 사시며 하신 모든 행동은 우리에게 모본으로 주신 것이다. 죄는 오관을 통해서 들어오므로, 죄는 몸을 통해 들어온다. 곧, 먹고 보고 듣고 느끼는 일을 통해 죄가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은 이것들에 대한 시험이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승리하셨고, 우리가 회개하고 굴복할 때 용서해주시며, 예수님의 승리를 우리에게도 주신다.

2) 인류의 시험
인류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를 범하였다. 사단이 처음에 하와를 어떻게 유혹했는가?
 창 3:1~6 -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위의 성경절을 보면 뱀이 가장 간교하다고 나와 있는데, 그것은 뱀이 가장 지혜롭고 아름답고 매력 있다는 뜻이다. 뱀이 지금처럼 징그럽고 못생긴 것이 아니었다. 짐승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머리가 좋은 동물이 처음에는 뱀이었다. 그래서 마귀가 뱀으로 가장해서 하와에게 접근했던 것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넣어주는 것으로 유혹을 시작하였다. 정말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은 계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이 먹음직하고(미각), 보암직한(시각) 선악과를 따서 만져보고(촉각) 먹으니까 내가 이렇게 지혜롭게 되어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이 실과를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신뢰하지 않아도 돼. 거짓말이야! 이것이 사단의 말이었다.

 마귀가 우리를 가장 잘 넘어뜨리는 시험은 먹는 것, 식욕이다. 사람들에게 대부분 먹는 것이 가장 큰 시험이 된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미각), 보암직도 하고(시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더라. 여자는 남자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하다. 여자의 오관은 남자의 오관보다 더 강하다. 미각, 청각, 시각, 촉각이 더 뛰어나다. 육체의 오관을 통해서 죄가 들어온다. 먹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하와는 선악과를 먹었을 뿐만 아니라 아담에게도 주었다. 죄는 여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자는 창조물 중에 가장 아름다웠는데, 모든 것을 만드시고 여자를 가장 나중에 만드신 걸작이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단의 말을 더 신뢰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범하였다. 아담은 가장 좋은 환경에서 가장 건강한 체력으로, 건강한 몸과 지력을 가지고 공해도 없고 죄도 없는 곳에서 유혹자의 시험에 넘어갔다.

 사단은 늘 우리를 시험할 때 오관을 통해서 시험한다. 그런데 우리의 미각은 오관 중에 으뜸이다. 아무리 장사라도 먹는 것에는 다 넘어간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가장 연약해진 몸으로, 가장 악조건 가운데서, 가장 굶주린 가운데서 마귀가 유혹했을 때 승리하셨다. 인간은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지 않고 잘못해서 몸이 약해지고, 그래서 혼이 약해지고, 또 영이 약해지고, 그래서 믿음이 약해진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기도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마음은 원이었지만 육신이 약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신앙: 4부 - 산 제사 2

 하나님께 온전한 산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되려면, 성령께서 지배하시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우리에게 모본으로 가르쳐주시고 우리를 위해 승리하셨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영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다.

 고전 15:22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이 실패한 곳에서 예수님은 승리하셔서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 되셨다.

1. 신령한 목과 육의 몸
 고전 15:42~44 -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성경은 육의 몸과 신령한 몸,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이것은 성령의 은혜 가운데서 성령을 따라 살면 신령한 몸이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육체의 몸, 즉 육체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 영이 있고, 혼이 있고, 육이 있는 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거듭난 사람은 몸속에서 기능하는 부분, 즉 지성적인 부분, 영적인 부분이 신령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주관하지 않으면, 우리는 육의 몸이 되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영에 속한 사람이 된다.

 롬8:9~14 -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몸은 집이고, 영이 주인인데, 그리스도의 영이 있고 성령께서 그 영을 주관하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가 우리 생애의 모본이다. 예수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험 중에서도 사단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믿음을 보이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그렇게 살아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죄는 몸을 통해 들어오므로,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절제는 중요하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향방 없이 치는 것같이 하지 않아야 한다. 육체의 오관, 입맛과 정욕은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는 틈새이다. 모든 존재의 기초는 오관이다. 오관을 잘못 다스리면 우리의 영이 죽는다. 바울은 영과 혼과 몸이 거룩하게 흠 없이 보존되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한 산 제사가 되려면 오관을 잘 다스려야 하며, 육체를 쳐서 복종하여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2. 절제를 해야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절제는 육체의 정욕을 쳐서 다스리는 데 아주 중요한 몫을 담당한다. 다니엘 1장 8,12,15절을 보면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경에는 나실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실인은 하나님의 뜻대로 쓰이기 위해 바쳐진 사람을 말하는데, 그들은 머리를 깎지 않고 포도주를 먹지 않았다. 머리를 깎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사는 것을 의미했다.

 다니엘은 유대 나라의 왕족이었다. 유대 나라 총명한 사람들을 바벨론 교육으로 세뇌 교육을 시키려고 할 때, 그는 먹고 마시는 일을 조심하고 절제하므로 하나님의 진리와 교육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성령의 역사를 깨끗이 받기 위해 그들은 작정을 하고 뜻을 정했던 것이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바벨론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들은 그 대신 10일 동안 깨끗한 채소와 물을 먹을 수 있도록 요청하고, 후에 그들의 건강 상태를 시험해보기를 요청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네 소년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10배나 지혜와 지식이 뛰어나게 하셨다. 다니엘은 계시를 받고 몽조를 깨달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고레스 왕 때까지 국무총리로 지냈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직하고 지혜 있고 신뢰심을 얻은 다니엘의 평판은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영적으로 높이 성장하고 싶은가? 영적인 힘을 가지기를 원하는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말씀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싶은가? 영성이 충만하기를 원하면 절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

3. 오관을 다스림
 우리의 몸은 신묘막측하다. 하나님께서 신묘막측하게 만드셨다. 그 중에 오관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오감(5가지 감각 기능) - 시각-눈으로 보는 것/청각-귀로 듣는 것/미각-혀로 맛보는 것/후각-코로 냄새 맡는 것/촉각-손이나 피부로 느끼는 것.  
 육체는 오관을 가지고 있고, 이것들이 기능을 한다. 오관이 없으면 몸은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관을 통해 지식이 생기고 깨닫게 된다. 몸은 지성과 영적인 경험을 담고 있는 집이다. 몸이 없으면 영이나 혼이 없고, 또 몸이 없으면 영과 혼이 기능을 할 수 없다. 오관들을 통하여 몸으로 받아들여진 것들은 우리의 지적인 능력이 된다. 오관들을 통하여 들어오고 받아들여지고 입력된 것들이 두뇌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몸을 먼저 유혹한다. 사단은 오관을 통해 유혹을 하여 우리를 넘어뜨린다. 하와가 시험을 받은 것을 보라. 오관을 통해서(먹음직하고: 미각, 보암직하고: 시각) 유혹을 받았다. 우리가 육신적인 정욕에 넘어질 때, 지성과 영성이 흐려진다. 요즈음 사람들은 오관을 통해 타락하게 되기가 매우 쉽다. TV나 컴퓨터를 통해, 좋지 않은 포르노들을 통해 젊은이들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노아 홍수 당시 사람들은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악하게 되도록 마귀가 만들어 놓았다. 요즈음의 천연 재해와 지구의 온난화 현상은 심각한다. 전 미국의 대통령 후보였던 엘 고어는 앞으로 10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자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인간성과 도덕성의 타락과 말살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정욕에서 왔고, 오관을 잘못 사용하여 마귀가 그것을 통해 타락시켜서 그렇게 되었다.

 요일 2:15~16 -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사람들은 이생의 자랑 - 곧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돈 버는 일 - 때문에 정신이 없다. 교회의 성장, 사람의 비유를 맞추는 것, 비싼 자동차를 탐내는 것, 값비싼 저택을 무리해서 사려는 욕심 등등,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이생의 자랑이다. 이런 것들은 다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하다. 돈을 버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그렇게 하라. 항상 하나님을 먼저,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오관과 깊은 관계가 있다. 육체는 그것이 이롭든지 아니든지를 불문하고, 원하는 것을 먹게 해 달라, 듣게 해 달라, 만지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마귀는 오관을 통해, 악한 광고, 악한 영화들로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우리는 오관에 성령의 파수꾼을 두고 이들의 통로를 잘 지켜야 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오관을 잘 다스려야 할 것이다.

4. 우리의 미각과 음식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를 순종하면 애굽의 질병이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하시며 어떻게 먹고 마시며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다.  유대인들이 먹는 음식 중에 코셔(kosher)라는 음식이 있다. 이것은 지방과 피를 뺀 고기를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동물성 기름을 먹지 말라고 하였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동물성 지방을 먹으면 동맥경화와 고혈압 등 많은 질병이 생긴다. 우리 몸에는 모세혈관이 있는데, 이것은 몸의 각 부분, 세포 하나하나까지 영양분과 산소를 운반하고 공급한다.  특히 뇌에는 모세혈관이 많은데, 산소와 영양이 잘 공급되어야 하나님을 이해하고, 기도도 잘하고, 말씀과 진리를 더 잘 깨닫게 되고 영성이 계발된다. 그러나 기름을 먹으면 모세혈관이 막혀서 영성이 계발될 수 없다. 또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정 먹고 싶으면 기름과 피를 빼고 먹으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유대인들은 코셔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마귀는 인간의 입맛을 타락시켰다. 기름과 피가 들어간 음식을 사람들은 더 좋아한다. 마귀가 미각을 공격하여 우리의 조상이 죄를 짓게 되었다. 인간은 입맛 하나 때문에 타락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인간의 몸을 계속 타락시켜온 음식
1. 육식
2. 자극성 음식
3.마약들
4. 술, 담배, 좋지 않은 약들
5. 좋지 않은 음료들: 차, 커피, 홍차 콜라(특히 콜라에는 커피보다 카페인이 더 많이 들어있다.)


 이 기사는 건강에 관한 기사라기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영성을 더 강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영적으로 민감하고 예민한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들까, 어떻게 죄를 승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성화될 수 있을까, 어떻게 예수님을 더 닮을 수 있을까 하는 영성을 위한 기사이다. 육체에 문제가 생기면 영과 혼에 문제가 생기고 영적으로도 약해진다.  건강하고 정결한 몸속에 정결한 생각이, 힘 있는 영성이 깃든다. 정결한 몸이 되어야 정결한 생각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몸음 계속 타락시켜 온 나쁜 습관들
1. 과식 : 성을 빼앗은 장군이 입맛에는 약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포도주를 과하게 마셔서 객사했다.
2. 간식 : 위는 휴식이 필요하다. 위장을 혹사시키면 안 된다.
3. 과한 당분 섭취
4. 과한 전분 섭취
5. 과다한 단백질 섭취
6. 미네랄, 비타민, 섬유질 섭취 부족(미네랄은 물과 채소에서 얻는다.)
7. 산성 식품 섭취 : 인스턴트 식품, 가공 음식 등
8. 수분의 부족 : 하루 8잔의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5. 침례 요한의 영성의 비결

 예수님의 초림을 위하여 길을 예비한 사람은 침례 요한이다. 요한은 메시야인 예수님의 사업을 위하여 길을 준비하였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는데, 그 당시 그런 복장은 매우 검소한 복장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요한은 아주 단순한 건강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는데, 메뚜기는 발음이 같아서 번역이 잘못되어서 풀에 뛰는 메뚜기로 되었지만, 사실 그 메뚜기는 나무에 열리는 열매로서, 그 당시의 좋은 채식이었다. 그리고 석청은 꿀이었다.
 침례 요한은 다니엘처럼 정결한 음식을 먹고, 성령이 충만해서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예수님의 초림의 길을 준비하였다.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백성들을 준비시킬 사람들은 침례 요한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성령이 충만하여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준비시킬 수 있을 만큼 영성이 강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영성을 강하게 하는 비결은 단순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삐뚤어진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방종하지 않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하였다. 우리의 생활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산 제사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존절히 먹고 존절히 살아야 할 것이다. 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백성인 십사만 사천은 음녀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살아서 승천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사람들은 영성이 강하게 되기 위하여 모든 일에 절제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양과 염소의 비유가 있다. 양은 오른 편, 염소는 왼편에 있어서 인자가 천사와 영광으로 올 때 각기 선고를 받는다.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오른 편은 인정의 표, 권위의 상징, 왼편은 거절의 표였다. 이 양과 염소의 비유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심판을 가리킨다.  양들은 칭찬을 받을 때, 내가 언제 주님께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하는데, 염소는 내가 언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한다. 이것이 의인과 악인의 차이다. 악인은 다 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가끔 하였고, 또 의식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그런 사람 자체가 되지 못했다. 죄의식 때문에, 의도적으로 했으나 신의 성품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의인들은 회개하고 거듭났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였다. 예수님의 마음을 성령으로 받았다. 성품이 변화함 받아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게 된다. 불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배고픈 자를 먹이고, 실망한 사람을 위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주고&&.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의인의 생활이 되었다. 생활 자체가 그렇게 된 사람들이다. 뉴욕의 9.11사태로 애를 많이 쓴 소방대원을 인터뷰할 때, 기자들의 질문과 칭송에 그는 담담히 말하기를, 나는 다만 나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것이 의인들의 마음이다. 내 삶 자체가 예수님 안에 묻혀서 사는 것이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게 된다. 샘물을 막을 수가 없듯이, 의인들의 생활은 그 속에서 살아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기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은혜가 가득 차 샘물처럼 솟아나기 때문에 그것을 막을 길이 없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성화이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영적으로 드려야 하는 산 제사인 것이다.

1. 성화되려면
 어떻게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화될 수 있을까? 성화의 조건을 살펴보자.

a. 하나님을 앙망하라
 사 45:22 -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을 바라보라. 예수님을 바라보라. 낙심되거나 절망되거나 어려울 때 주님을 바라보라. 예레미야 29장 13절에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고 되어 있다. 주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 주님을 바라보라. 이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길이요, 성화의 길이요, 영성을 계발하는 길이다.

b. 바라보고 변하라
 고후 3:18 -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면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한다. 우리의 품성이 예수님을 닮는 품성으로 발전해야 한다. 주님을 계속 바라보고 그분처럼 변해야 한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가? 기도와 묵상과 성경 말씀을 통해서이다. 성경을 계속 연구하고 읽으면 잘못된 생각이 나간다. 진리로 거룩하게 된다.

c.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화된다
 롬 1:16~17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복음은 능력이다. 우리를 변화시킨다.

d. 성장을 위해 노력함
 벧후 1:4~8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성장이 있어야 한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는 영적인 성장이 있어야 하고, 열매가 있어야 한다. 계속 자라나야 한다. 이것은 생각, 영, 몸이 다 포함하여 거룩해지는 것을 말하며, 모든 것이 그렇게 자라나야 한다. 신앙은 온전한 성품을 가지게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덕이 있어야 하고, 또 믿음과 덕만 있어서는 안 되고 진리에 대한 확고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진리의 지식이 없이 믿음만 있으면 광신이 되기 쉽다. 절제하며 인내하고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을 갖춘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야 한다. 성경 베드로후서 1장 10절에는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귀히 여기고 믿음의 성장을 위해 그리고 열매 맺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2. 믿음이 자라나려면
 빌 2:12~13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믿음은 억지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여 마음속에 충동하셔서, 성령이 충만하여 샘물이 솟아나듯이 저절로 되는 것, 그것이 믿음의 행실이고 성화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셔야 하는 것이다. 믿음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자라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이 하면 믿음이 자라나고 영성이 계발되고 성화되며 영적으로 더 자라날 수 있다.

예수를 바라보라
성경을 연구하라
진리와 지식 안에서 기도하라
전도하라


 성경에서 야곱의 경험을 잠깐 생각해 보자. 야곱은 그의 형 에서가 복수하려고 가까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기도하는데, 누가 와서 야곱은 그 사람과 밤새 씨름을 하였다. 나중에 그가 언약의 천사임을 깨닫고 야곱은 끝까지 매달리며 당신이 축복하시지 않으시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하며 그 사자, 그리스도를 놓지 않았다. 마침내 승리한 그는 새 이름을 받았는데, 그 새 이름은 승리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었다.  만일 우리가 권투선수와 싸운다면 질 것이다. 우리는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
 우리는 예수님과 씨름하여 싸우는 경험을 해야 한다. 야곱처럼 예수님과 겨루어 이기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씨름의 결과로 야곱의 환도뼈를 치셔서 평생을 절었으나, 그것은 하나님과 겨루어서 승리한 표였다. 교만하던 꾀쟁이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 안에서 거듭나서 겸손한 사람, 승리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변한 사람, 몸과 영과 혼이 거룩하게 된 사람을 데리러,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을 데리러 오실 것이다. 당신은 양의 무리인 오른 편에 속할 것인가, 아니면 왼편 염소의 무리에 속할 것인가? 매일 매일 성화되기 위해 기도하자!

신앙: 5부 - 몸과 영성의 관계 1

 앞에서 배웠듯이 영과 혼과 몸이 다 건강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몸은 영과 혼이 거하는 것이 집이라고 공부했다. 제5부에서는 우리의 몸과 영성과의 관계에 대하여 연구해 보자.

 성경 고린도전서 3장 16절은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 몸 가운데 뇌를 통해 역사하신다. 그런데 몸이 부절제하여 건강을 잃어버리면, 몸에서 기능하고 있는 영이 어두워진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영적으로 건강하게 될 수 없는 것이다. 몸이 연약해지면 영적으로 올바르게 설 수 없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영이 밝아지려고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몸과 영성과는 깊은 관계가 있다.

1. 성경이 말하는 건강 법칙
 어떻게 하면 강건할 수 있을까? 성경은 온전히 건강할 수 있는 비결을 말해주고 있다.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는 비결이 성경에 있다.

 출 15:26 -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을 순종하면 애굽의 질병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급해주셨다. 옷, 신발, 천사의 음식이라고 불렸던 만나까지&&.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한 어떤 무서운 질병도 그들에게 임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칙 안에 있는 한 모두 건강하고 평안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인 만나를 싫어하고 불평하였다.  그들의 왜곡된 입맛은 하나님이 주신 알맞은 음식, 하늘의 음식인 만나를 싫어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대로 방법대로 하기 싫어하는 완악하고 반항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불순종하였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만일, 차에 가장 비싼 기름이라고 참기름을 넣는다면 차가 가겠는가? 차를 설계한 사람의 주의사항과 법칙을 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대로, 설계자의 주의 사항대로 먹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몸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신묘막측한 기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과 법칙을 순종하기로 선택하며 살아가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이 먹으라고 하신 음식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의 몸에 어떤 음식을 집어넣어야 되는지 다 말씀해 주셨다. 올바로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영과 혼이 맑아져서 두뇌가 명석하고 영성이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성경에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돼지는 소와 달라서 땀구멍이 없고 가는 핏줄이 없다. 돼지의 먹은 것은 다 배설되어 나가지 않아서 살이 찐다. 독소도 배출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돼지는 청소부로 창조하셨다. 돼지는 무엇이든지 먹는다. 쓰레기도 먹는다. 그래서 돼지의 세포에는 많은 세균 덩어리들이 있으므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먹지 말라고 하신 음식들은 다 우리 몸에 해로운 것임을 알 수 있다.

" 하나님이 먹으라고 주신 음식을 살펴보자
 창 1:29~30 -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
 우리 몸은 푸른 채소와 과일과 견과류들을 먹어야 잘 기능되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들이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말씀하셨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설계하신 인간의 몸에 무엇이 좋은지 아시고 그 음식들을 먹으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먹어야 영이 맑아진다. 이 법칙을 깨어버려서 질병이 생기고 노화가 촉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푸르게 창조하셨다. 인간의 눈에 가장 알맞고 시원한 색깔은 초록색이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 살아야 하는데, 인간은 푸른 것을 먹고 살도록 창조되었다.

 창 3:18 -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타락 후에 엉겅퀴가 났다. 사람이 범죄하고 타락하자, 땅도 잘못되어 가시와 엉겅퀴를 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먹어야 될 것은 변함이 없었다.

3. 푸른 것을 먹어야 하는 이유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하신 밭의 채소, 푸른 채소에는 엽록소, 곧 클로로필이 들어있다. 식물의 이파리가 햇볕을 받으면 탄소동화 작용이 일어나는데, 그때 만들어지는 것이 클로로필이다. 밭의 식물들은 다 엽록소인 클로로필을 가지고 있다. 이 엽록소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것이다. 엽록소, 클로로필이 소화되면 헤마틴으로 변하는데 이것은 헤모글로빈을 형성한다.

 헤모글로빈은 적혈구의 구성 성분이다. 피는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골수에서 만들어진다. 클로로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탄소, 산소, 질소, 마그네슘 등등이다. 그런데, 한 개의 적혈구에는 200~300개의 헤모글로빈이 들어있다. 헤모글로빈 속에 들어있는 요소는 탄소, 산소, 질소, 마그네슘들로서, 엽록소에 들어있는 구성 성분과 같다. 그러므로 푸른 색 채소, 씨 맺는 채소와 열매들은 피를 만든다.

 영적으로 초록색은 의를 상징한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풀 같은 우리가 햇빛인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의가 생긴다. 곧 의로워지는 것이다. 몸이 이롭게 되기 위하여 엽록소가 필요하듯이, 우리가 영적으로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보좌의 색깔은 초록색이다. 에메랄드빛이다. 요한은 계시 중에 하나님의 푸른 보좌를 보았다.

 계 4:2~3 -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깊은 바다를 보면 초록색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그 속에 플랑크톤이 있기 때문이다. 플랑크톤은 바다에 떠다니는 초록색 부유생물로서, 모든 바다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기본이 되며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이 되는 물질이다. 식물 플랑크톤의 주요 구성 원소는 수소, 산소, 질소, 황, 인, 칼슘, 마그네슘, 철, 탄소 등으로 바다에서 사는 고기들의 영양 공급원이 되고 있다.

 성경에는 비늘 있는 생선만 먹으라는 기록이 있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된다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미국의 해군 조종사들의 매뉴얼 책에는, 해군병사가 바다에 떨어지거나 비상착륙하여 바다에 있게 될 때, 구출될 때까지 바다에 있는 물고기를 잡아먹어야 하는데, 그때 비늘 없는 고기를 먹지 말고 비늘 있는 생선을 잡아먹으라는 지시가 있다. 비늘이 없는 물고기, 메기, 갈치, 새우, 조개 등등은 콜레스테롤이 높고 대부분 바다의 청소부들로써 쓰레기들을 먹는다. 특히 새우는 콜레스테롤이 높다. 메기와 갈치 등 비늘 없는 물고기들은 물 속 깊이 산다. 바다의 쓰레기나 죽은 고기들을 먹고 살고 있다. 그런데 비늘 있는 물고기들은 바다 위에 살아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4모든 질병을 이기고 치료하는 방법
a. 알칼리성 체질을 만들라
 질병은 우리 몸이 산성 체질이 될 때 생긴다. 몸이 알칼리성 체질이 되어야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우리 몸은 알칼리가 되도록 창조하셨다. 병균과 암은 산성 체질에서 자라난다. 우리의 몸이 알칼리일 때는 모든 성인병, 모든 퇴행성 질병들, 그리고 백혈병이나 암도 이길 수 있다. 잘못 먹는 습관, 좋지 않은 것을 먹는 습관, 부절제한 생활, 저항력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생활 방식 등을 고치고, 모든 질병이 발생하기 쉬운 산성 체질을 알칼리성 체질로 만들어야 한다. 채식을 하면 알칼리성 체질이 되고 고기를 많이 먹으면 산성 체질이 된다.

b. 개혁하라.
 질병을 이기고 치료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병을 치료하려면, 무엇이 하나님의 방법인가, 내가 하나님의 법칙과 뜻에 맞는 생활을 살았는가를 돌이켜보고, 그 질병을 초래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야 한다. 구원받기 위해서 회개해야 하듯이, 우리 몸이 회개하여야 질병이 낫게 되어 있다.

 회개란 죄에 대하여 슬퍼하고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고치고 개혁하는 일이 동반되어야 진정한 회개이다. 그것처럼 몸이 개혁을 해야 한다. 물론 하나님께 병 낫기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반드시 우리는 우리의 몫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안수 기도 받고 병이 나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할 의무를 하지 않아도 낫는다고 믿는 것이다. 병이 낫기 위해서는 병을 초래한 잘못된 부절제의 습관과 하나님의 자연 법칙을 어긴 일들을 회개하고 올바른 건강 방식의 삶으로 돌이키고 개혁하여야 한다. 병이 걸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다시 올바른 법칙으로 돌아오면 된다. 올바로 먹고 올바로 살면 된다.

c. 긍정적인 정신과 감사
 질병에 걸리면 감사해야 한다. 암이 걸려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힘든 직장을 놓고 쉬게 되었으니 참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질병이 걸려서 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해야 한다. 죽음을 위해 준비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한다. 암은 스트레스로도 온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 안에서 쉬라. 주님!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나의 생명을 주님께 다 맡깁니다! 목숨을 포기하면 낫는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은 죽는다. 예수님 안에서 죽는 것이 왜 무서운가? 잠시 후면 잠에서 깨어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얼굴을 뵈며 영원히 살 것이다. 만일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겠지만, 우리가 개혁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올바르게 살면 병은 낫게 되어있다.  

신앙: 6부 - 몸과 영성의 관계 2

 건강한 몸을 가지려면 피가 깨끗해야 한다. 건강한 몸과 강한 영성은 깊은 관계가 있으므로 깨끗한 피를 가지면 영성이 맑게 된다.  레위기 17장 11절을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또 레위기 7장 22~27절에 보면, 소나 양이나 염소, 즉 동물의 기름을 먹지 말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1. 육식과 산성 피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가 먹기 싫어서 애굽의 고기 가마를 생각하고 불평하자, 그분께서는 고기를 주셨다. 새들이 많이 몰려오게 하셔서 그들이 살아 있는 새를 잡아먹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사람들은 고기가 이빨 사이에 있을 때에, 고기가 소화되기도 전에 불뱀에 물려죽게 되었다. 영적인 의미로 그 뜻은 죄에 물려서 죽은 것을 상징한다. 영적으로 약해져서 항상 죄에 지고 영적으로 죽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동물의 피와 기름은 우리 몸에 아주 해롭다. 동물성 고기를 먹으면 채소를 먹은 동물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직접적으로 채소를 먹는 것이 낫다. 쇠고기, 돼지고기 등을 통해 섭취하는 동물성 지방은 포화지방산으로 몸에 나쁜 LDL 콜레스테롤을 혈관에 쌓이게 해 동맥경화, 고지혈증 등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육식을 위주로 하는 유럽과 미국인들에게 대장암, 췌장암, 간암 등이 많은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동물성 지방의 과잉은 물론, 단백질이 너무 많으면 체액이 산성화되어 면역력, 저항력을 떨어뜨리고, 지방간, 고지혈증을 일으키며, 필요 이상 몸에 쌓인 아미노산은 유해산소, 일산화탄소 등 독성 산소와 결합해 암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또한 죽은 후 시간이 많이 지나서 유통 판매되는 동물의 피는 썩은 것이며 몸에 들어가면 독소가 된다.

2. 피의 기능과 효과
 건강한 뼈와 활발한 소화를 통해 만들어진 피가 우리 몸의 세포에 주는 효과와 기능을 살펴보자.
산소를 운반해 준다.
수분을 준다.
영양분을 운반해 준다.
 노폐물을 가져온다.
독소 제거

 질병을 막으려면 몸과 피가 알칼리성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채소를 많이 먹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산성 피는 불필요한 지방질을 만든다.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하지 않으신 것을 자꾸 먹는 것은 산성 체질을 만드는 것이고, 질병을 부른다. 산성 피는 산성을 처리하기 위하여 지방을 만든다. 지방이 산성을 없애기 때문에 산성 체질을 가진 사람은 살이 찐다. 알칼리성 체질을 가진 사람은 잘 비만에 걸리지 않는다.

3. 음식과 건강의 관계
 블레일렉 의사는 2007년 8월 6일자 과학 잡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건강과 뇌의 기능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 놀라울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최근에 발견했는데,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 몸에 퇴행성 질환을 불러들이는 것이 발견되었다. 치매, 파킨슨 병, 동맥질환 등등.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의 행동과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생각을 맑게 해주고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만들어준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부정적인 요소들을 만들어준다. 고단백 음식, 피가 섞인 붉은 고기들과 치즈와 피자들을 먹으면 우리 두뇌에 손상을 일으킨다. 한 연구에 의하면, 고기를 먹는 것은 이러한 피의 동맥질환이나 심장병 등을 300% 증가시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 몸은 1초에 1100~1500만개의 적혈구를 만든다. 채소 속에 함유되어 있는 엽록소는 좋은 피를 만들고, 좋은 피는 알칼리성 세포를 만들어주어 면역력이 강한 몸을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병이 걸리면 약을 먹어서 치료하려고 하지 말고 먹는 것과 사는 방식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건강한 몸으로 먼저 만들고 개혁하라. 우리 몸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치료력이 있다.

우리 몸을 알칼리성으로 만들어주는 식품들
( 창 1:29~30) 씨 맺는 모든 채소들, 과일들, 곡류들, 견과류, 콩, 호도, 아몬드 등 .....채식이 우리 몸에 충분한 스테미너를 주는가? 그렇다. 소는 콩과 채소만 먹어도 힘이 세다.

4. 음식과 수명
 창세기 5장에는 우리 조상들의 수명이 나온다. 인간은 노아 홍수 이후부터 고기를 먹었다. 홍수 전, 채소와 과일, 그리고 곡류와 견과류들만 먹은 사람들은 1000년 동안 살았다. (무드셀라 969세, 야렛 962세, 노아 950세)  그런데 고기를 먹은 후부터 수명이 단축되었다. (셈600세, 아르박삿 438세, 아브라함 175세, 다윗 70세). 인간의 수명은 고기를 먹은 후부터 점점 단축되었는데, 육식으로 인해 질병이 오고 몸이 왜소해지고 작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노아 홍수 이후에 육식을 허락하신 이유 :
a. 채소가 없으므로 임시로 육식을 허락하셨다. 그 당시에는 그래도 고기가 깨끗한 편이었다. 다시 농사하여 채소를 얻을 때까지 고기를 먹도록 하셨다. 
b. 하님께서 죄인이 죄를 지며 너무 오래 살아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은혜로 수명을 단축시키셨다.

5. 몸을 알칼리성으로 만들어주는 요인들
 질병을 이기고 건강한 몸을 가지려면, 그리하여 깨끗하고 맑은 영성을 가지려면 우리 몸을 알칼리성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몸을 알칼리성으로 만들어주는 요인들이 있다. 함께 살펴보자.

a. 선한 말 : 잠 16:24 -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즐거운 마음, 선한 말, 좋은 말은 약이 되어 우리 몸을 알칼리성 체질로 만든다. 나쁜 말을 하고 화를 내면 산성 피를 만들고 산성 체질이 된다.
b. 마음의 즐거움 :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긍정적인 생각, 감사, 찬송은 우리 몸에 양약이 된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근심 걱정이 있다. 돈이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즐거움을 주신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즐거움과 평안과 행복이 있다. 오늘 괴로움은 오늘에 족하다.
c. 웃음과 포옹 : 사랑하고 포옹하고 웃으면 알칼리성 체질이 된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위로하고 포옹하라. 그리고 많이 웃어라. 이 방법은 돈이 들지 않는데도 많은 사람이 하지 않는다.
d. 좋은 음악 : 아름다운 음악은 우리 몸을 기쁘게 하고 약이 된다. 즐겁게 찬송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매우 좋다. 그것은 심신을 치료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늘 기쁘게 찬송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 자연 속의 삶 : 자연 속에 사는 것, 나무숲을 거닐고 흙을 밟는 것은 우리 몸을 알칼리성으로 만드는 데 큰 효과가 있다. 도시의 공해를 떠나서 신선한 공기를 자주 마시도록 하자. 산소는 우리 몸의 산성 물질을 알칼리로 빨리 환원시킨다.
f. 부드러운 마사지 : 경직된 근육을 풀고 이완하는 것이 좋다. 혈액순환이 활발하게 잘 되어야 몸이 알칼리성이 된다.
g. 걷는 일과 노동: 밭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일하는 것은 건강에 놀라운 효과가 있다.
h. 꽃을 보는 일 : 아름다운 꽃은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를 상기시켜 주며, 능력 있는 창조주의 솜씨에 놀라고 감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 몸에 엔돌핀을 나오게 한다.
i. 진실한 친구와의 대화 : 영적으로 통하는 친구와의 좋은 대화는 우리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j. 엽록소를 많이 섭취하는 것 : 엽록소를 많이 섭취하려면 생채소와 푸른 채소들을 많이 먹어야 한다. 야채 주스도 이롭다. 또 단 맛을 내는 것 중에 스테비아(stevia)는 식물에서 뺀 당분의 액체로써 설탕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무리 먹어도 해롭지 않고 엽록소가 많이 들어있다.  

베드로의 계시
 이제 어떤 분들은 베드로의 계시를 말하면서, 예수께서 모든 짐승들을 정결하게 하였다고 말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사도행전 10장을 펴서 함께 읽어보도록 하자.

 10장 전체를 읽는 사람마다 이 계시는 먹는 음식물에 대한 계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당시에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관념을 바로 고쳐주기 위해서 베드로에게 이 계시를 주신 것이었다.  자, 이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베드로를 그의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고넬료는 몇 사람에게 명하여 베드로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바로 그때 베드로도 비몽사몽간에 다음과 같은 계시를 보게 되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발을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나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행 10:11-16.
 여기서 우리가 먼저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베드로가 이 계시를 받았을 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돌아가시고 승천하신 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전히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십자가 이후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였던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자, 이제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자. 베드로가 이 계시를 받자마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그를 찾아 왔다. 이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이 사람들을 따라가라고 말씀해주셨고,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을 따라 고넬료의 집에 갔던 것이다. 베드로를 보자,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엎드려 절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라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하면서, 자신이 본 계시의 뜻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행 10:28. 
 
 베드로가 보았던 계시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리지 말고 모두 먹으라는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인 고넬료의 부름을 받고 그의 집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계시인 것이다. 이방인을 더 이상 부정하고 속된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신앙: 7부 - 진정한 건강의 길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의 법칙,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순종하고 따르면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출 15:26 -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법을 성경에 다 기록해 놓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치료법을 따르면 영과 혼과 몸이 다 건강해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시고 우리가 이것을 받아들이고 따르기를 원하신다.

 육체는 정신과 영혼이 품성 향상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유일의 매개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인간의 육체의 힘을 약화시키고 타락시키기 위해 그의 유혹을 집중시키고 있다. 만일 사단이 이 점에 성공한다면 인간을 죄악에 굴복시키기 쉽게 된다. 우리의 타고난 육체적 경향이 더 높은 능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면, 자연히 파멸과 사망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고차적인 하늘의 능력이 육체를 다스리고 복속시켜야 한다. 정욕은 하나님의 지배에 순응하는 의지의 지배를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된 지성의 힘이 전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죄인을 대속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식욕의 방종이 육체적 쇠약을 초래하고 감수성을 마비시켜 거룩하고 영원한 사물을 분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아신다. 인간의 방종이 도덕적 능력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인간이 진정으로 건강해지려면, 방종의 생애에서 극기와 자아희생의 생애로 돌아와야 하는 것, 곧 마음과 정신과 영혼의 개심이 필요한 것을 주님께서는 아신다.

 그릇된 습관과 죄된 생활에 방종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에 굴복하고 그 진리가 마음속에 작용하게 될 때, 이때까지 마비되었던 것처럼 보이던 그 사람의 도덕력은 재생될 것이다.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예전보다 더욱 깨끗한 이해력과 지성을 소유하게 된다. 곧,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거듭날 때, 신체적 건강까지도 그리스도 안에서 향상되기 때문이다. 진리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사람 위에 내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은 건강이요 활력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영혼의 성전을 더럽혔지만, 이제는 우리의 모든 힘을 다 기울여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성을 회복시키라고 부르신다.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아무것도 죄를 깨닫게 하고 마음을 회개시킬 수 없다. 죄악의 습관과 좋지 않은 부절제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그들을 얽매고 있는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활력을 빼앗아가는 습관에 계속적으로 방종하는 동안에는 인간의 몸을 하나님께서 가납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바치기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성전이고 건물인 인간의 몸은 귀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의 건강을 위해 우리는 주의 깊은 노력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통하여 신의 성품이 충만히 반영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분께서 부여하신 지성을 활용하기를 기대하신다. 심신의 능력과 감정이 최상의 능률에 도달할 수 있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우리에게 허락된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나의 일생이 가장 유익한 삶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동료 인간들의 유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이런 목적들을 위하여 쓰일 때에만 인생은 가치가 있다.  창조주께서 부여해 주신 모든 기능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을 행할 수 있게 되기 위하여 완전의 최고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계발되어야 한다.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을 확립시키고 유지시키는 일이 우리의 의무인 것이다. 우리는 인체의 산 기계의 어떤 부분이라도 혹사하거나 남용함으로 정신과 신체의 어느 한 기능이라도 위축시키거나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절제, 곧 일의 절제가 필요하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일상 생활에서 절제를 실천함으로 그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살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표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당신의 아들을 주셨다. 주께서는 인간이 그저 평범한 동물적인 만족을 위하여 살지 말고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위하여 살 수 있도록 영적, 육체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마련해 놓으셨다.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우리는 우리의 생애로 하나님이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야 한다. 곧, 영과 혼과 몸이 강건하여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다.  누가 문들을 통하여 하늘 도성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모든 것을 이긴 사람, 식욕과 정욕과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린 사람들만이 하늘에 들어갈 것이다.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도록, 그리고 항상 승리하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이 계심을 감사하며 영과 혼과 몸을 온전히 흠 없게 보존하는 사람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