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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땅따먹기 놀이

 포장되지 않은 맨땅에서 놀았던 추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릴 때 놀던 땅따먹기라는 놀이를 기억할 것입니다.

 땅바닥에 커다란 원을 그리고 각자 모퉁이에 뼘으로 반원을 그려 자기 집으로 정해 놓고서, 잘 갈아 만든 사금파리 조각의 작은 망이나 돌을 튕겨 자기 땅을 넓히고, 돌을 튕겨서 세 번 안에 자기 집에 돌아오면 그것이 자기 땅이 되는 땅따먹기 놀이 말입니다. 어릴 때,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져서 땅이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열심히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저녁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면, 땅을 많이 땄던 아이들은 아쉬운 듯 놀던 돌을 던지고, 자기가 따 놓은 넓은 땅을 돌아보고 머뭇거리며 발걸음을 옮기곤 했습니다.  땅따먹기 놀이를 하던 아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땅을 많이 따 놓았어도 엄마가 부르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많은 땅을 따 놓았어도 내일이면 거기에 또 다른 금이 그어지고, 따 놓았던 땅은 놀이를 시작한 다른 아이의 땅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땅을 따 놓아도 결국 그 땅은 내 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지금 세월이 흐르고 문득 돌아보면, 어릴 적 땅따먹기 놀이에서 배웠던 교훈을 잊어버린 듯, 우리는 인생의 놀이에서 더 많은 땅을 따려고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한껏 쥔 채 세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땅을 내놓는 경험

 모든 것을 다 바쳤다고 하면서, 자아를 다 바치고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았다고 하면서, 살다 보면 아무것도 주님께 바친 것 없는 것을 우리는 종종 깨닫습니다. 자아가, 그리고 자신의 욕망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매 순간, 매일의 삶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마치 어릴 적 땅따먹기 놀이 때, 지웠어도 희미하게 남아 있는, 어제 따 놓았던 자기 땅의 금을 보곤 그것이 다시 내 땅인 양 으스대던 아이처럼, 예수님께 다 바치고 나서도 우리는 어떤 것은 우리 것이라고 다시 고집을 부립니다.

 때때로 모든 것을 비우신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 우주의 모든 보화를 가지신, 우주의 모든 것을 통치하시던 창조주께서 그렇게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지니신 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존재하실 수 있었다니&! 어떤 것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 비우셨고, 그리고 자신 하나를 비웠기 때문에 모든 것을 얻으신 그 예수님을 때때로 생각해 봅니다.

 잘 알면서도 한 알의 밀알이 되지 못한 우리는, 아직 밭고랑에 던져지기를 거부합니다. 차디찬 땅속에 들어가 아무것도 되지 않는 그 깜깜한 인내의 시간을 우리는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아무 존재도 되지 않는 그 위대함을 맛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죽지도 않은 채, 진정으로 죽어보지도 않은 채, 벌써 싹을 틔우려 고개를 자꾸 밖으로 삐죽이 내밀려고만 하며&. 그리고 그 갈리지 않은 자아의 뾰족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살을 베어낼 수 있는지 생각하지 못한 채&.

 모든 충만함의 자체이셨던 예수님은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버려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기에&. 버려도 충만함은 거기 그대로 있기에&. 마음속에 충만을 경험한 사람은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아가 완전히 없어질 때에야 비로소 하늘의 존재의 충만함과 하나가 되고, 그릇을 완전히 비워야 그 충만함이 가득 찰 수 있기에&.

 땅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아무리 가지고 있어도 결국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생의 놀이에서 배운 사람은 가난한 마음으로 땅을 내어 놓습니다. 하늘 지혜의 섭리를 통해 얻은 배움을 감사하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없어질 때만이 진정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욕망의 대체
 때때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넓어야 하나님을 모셔 들일 수 있을까 하고&. 우리의 방은 너무 좁아 신을 초대할 수가 없습니다. 버렸다고 하지만 아직도 쌓여 있는 욕망의 쓰레기들로 우리들의 방은 너무 비좁습니다. 아직 주님을 성큼 방 안으로 모셔 들이기에는 치우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아직 마음의 보좌에는 자아가 군림하고 앉아 마음에 들고 들지 않는 것들을 판단하며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부합니다. 주님을 믿고 마음을 바칠 때, 모든 욕망을 다 버렸노라고. 이제는 하나님의 일과 주님을 믿는 일에만 열심을 내고 있다고&. 그러나 마음속 밑바닥에 아직 살아 움직이는 자아가 교묘하게 종교라는 가면을 쓰고 솟아올라 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땅따먹기 놀이가 종교 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 땅을 더 많이 따려던 욕심이 종교적인 욕망과 열심으로 대체된 것뿐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다만, 장소가 세상에서 교회로 바뀌었을 뿐, 더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 더 주의를 끌고 싶어 하는 욕구, 더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 더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 더 존경을 받고 싶어 하는 욕망, 나, 나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은 욕구들을 종교라는 가면 아래 감춘 채, 그리스도인들은 끝없는 욕망 추구의 놀이에 열중합니다. 그 종교적 열심이 오히려 다른 영혼들을 주님에게서부터 멀리 밀어낸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욕망을 종교라는 놀이 안에서 풀어 보려고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합니다.
 비웠다고는 하지만, 아직 자아가 죽지 않은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교회는 커다란 종교의 놀이터가 됩니다. 자기의 욕망을 경건이라는, 봉사 활동이라는, 주님에 대한 열성이라는 명제하에 감추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애를 쓰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점점 따먹어 들어가는 땅 때문에 교회는 점점 비좁아져 갑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5~7).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던 자아가 비워지고, 채워도 끝없이 칭얼거리는 욕망을 버리고 나면, 비로소 형체도 없이 넓어진 호수 같은 마음에 하늘의 것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사람을 빠트리던 욕망의 늪은 막을 수 없이 흘러나는 생명의 샘물이 되고, 영혼들은 그 샘물로 원기를 차립니다.

 우리는 언젠가 돌아가야 합니다. 아니, 누구든 돌아가야 합니다.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엄마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돌을 던지고, 따 놓았던 자기 땅의 금을 지우고 미련없이 돌아서야 하듯,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손에 쥐었던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합니다. 이제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습니다. 엄마의 저녁 먹으라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이젠 정말 따 놓았던 땅의 금을 지워야겠습니다. 손에 쥐었던 사금파리 조각을 내려놓고&.

생애의 빛에서

 이제 이 세상은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위기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파탄의 징조들은 너무나 분명하게 그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과연 이 지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어떠한 위험과 혼란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요? 좀 어두운 표현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고통하는 시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환난의 시대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지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는 우리의 옵션들 중에 하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치가들도 경제학자들도 우리가 직면한 현안들을 더 이상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들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산적된 인류의 문제들은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정직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과 성경을 믿는 신자들은 인간적으로 어떻게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를 논할 때가 아닙니다. 차라리 어떻게 하면 다가오는 환난 때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날개 아래 보호함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할 시간입니다.

 성경은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환난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환난 때에 어떻게 해야 전능자의 보호함 속에 살 수 있는지에 대하여서도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나 그럴지도 모르겠다.가 아닙니다. 성경은, 반드시 그러할 것이요,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따라 살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환난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날개 아래 피할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자들이 보호함을 받게 될 것입니까? 과연 어떠한 자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일까요? 들을 귀가 있는 독자들은 이번 호 기사들 중에서 큰 위로가 되는 말씀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가정과 영성: 나는 신들의 신을 찾았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우 정직하고 성실한 분들이었다. 누구에게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으며 부정직한 수단으로 돈을 버는 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짓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아버지는 유교 학자로서 성현들이 남긴 수많은 말씀을 암송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성장한 나는 매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항상 충성과 효도에 대해서 배웠기 때문에 기독교회에서 가르치는 교훈들이 나에게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윤리와 사상은 기독교의 그것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확신하였다.

 집안 전체가 유교를 믿었지만 동시에 미신에 깊이 빠져 있었다. 조상의 혼이 살아서 우리 가문을 지켜 준다는 조상 신을 섬겼으며 가문의 번영에 도움이 된다는 신들을 찾아다니며 섬겼다. 이런 신, 저런 신을 섬기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신이 존재하는데, 나의 이 작은 영혼으로써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을 만족하게 하기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신들을 섬기지 않으면 집안에 문제가 생기고 벌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기회가 되는 대로 신들을 찾아가 봉사와 재물을 드렸다. 신을 이용해서 가문의 영광과 번영을 지키기 원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구원이 찾아왔다. 친구들이 찾아와서 영어로 예배드리는 교회를 다니자고 했다. 영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나는 즉시로 친구를 따라나섰다. 나에게 기독교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 동안 기독교는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영어를 배우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친절한 교인들을 사귀고 유익한 교훈이 담겨 있는 성경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게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은 내게 진리 탐구가 아니라 즐거운 일요 산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믿으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였고 금전적으로도 희생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기 시작하자 나는 그러한 요구를 정면으로 거절하였다.

 일주일에 하루는 예배를 위하여 따로 구별해야 하며 그날은 공부나 오락을 해서도 안 되고 장사를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희생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어려서부터 유교에 깊이 젖어 있는 우리 가정에서 외국의 신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요구였다. 함께 나온 친구들은 모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지만 나는 홀로 그것을 거절하였다.
 기독교회의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고 십계명 중 둘째 계명도 하나님의 형상을 돌이나 나무에 새기지 말라고 금했지만, 내가 믿고 있던 신은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신이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이지만 내가 믿는 신은 그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신이었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궁지와 허전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다음 주말 나는 교회에 가는 대신에 내가 믿는 신을 찾아가기로 했다. 쇠를 녹여 부어서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금으로 색칠한 우상에게 수없이 절을 하면서 기도하였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종교에 대한 열을 신속히 소멸시키시고 나에게 기독교의 하나님을 강요하는 무리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 할수록 내 속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고 나는 그 음성과 논쟁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그 음성의 진실함을 부정할 수 없었다. 
 너는 어디서 왔는가? 네 부모와 조상은 어디서 왔는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나게 되는가? 네가 믿는 신들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가? 오직 성경의 하나님만이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가? 신들의 신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의 하나님이시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이러한 음성과 싸웠다.

 밤낮으로 나는 양심의 음성과 논쟁을 펼쳤지만 나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동안 내가 믿던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성경의 창세기는 나에게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출발하였는가를 밝혀 주었다. 어떻게 죄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왜 슬픔과 고난이 생겼는지를 규명해 주었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을 이 세상 역사와 대조해 보면서 하나님의 예언이 역사 속에서 정확하게 성취된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세상이 결국에는 어떻게 끝나게 되고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왜 뉴턴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하나님을 믿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돌 우상이나 나무 우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신들의 신을 찾게 된 것이다! 나의 이성과 양심은 신은 하나라는 사실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신들의 신이신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어 나를 보호하는 이상, 정기적으로 사당을 찾아가 절하지 않고 무당에게 돈을 주고 굿을 부탁하지 않을지라도 내게 벌을 내릴 다른 신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더 이상 여러 신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진노를 풀어 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죽은 조상의 혼을 달래려고 좋은 음식과 술을 때마다 준비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복을 빌려고 보기 흉한 죽은 짐승의 머리를 상 위에 올려놓지 않아도 되었다.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누구에게 가서 빌지 않아도 되었다. 단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지혜를 신뢰하면, 그분께서 모든 것을 알아서 인도해 주신다. 그것이 길이든지 흉이든지 화가 되던지 복이 되던지 상관없다.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면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를 믿는 자가 되자 새로운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미신들로부터 자유롭게 된 나의 마음과 영혼은 새를 보고 꽃을 보아도 그 속에서 창조의 신비와 지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고 돈과 학문에 대한 목적이 새롭게 정립되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과 동기가 바뀌었으며 전에는 가치 없게 여기던 것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보아도 다른 사람이 되었으며 가족과 친구들이 나를 보아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죄를 좋아했지만, 이제 의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우상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고 이 세상을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주인인 그리스도께 충성을 맹세하였다.

우상과 하나님의 차이
 우상은 외모를 중시하고 사람의 마음을 압도하기 원하기 때문에 그 겉모습에 금가루를 칠하거나 화려하게 꾸민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도 선을 행하지만, 그 동기는 우상에게 잘 보여서 복을 받고 내세에 더 나은 신분을 얻기 위함이다. 우상을 믿는 종교의 중심에는 우상이 앉아 있어서 신도들로부터 돈과 재물을 거두어들이고 복을 나누어 준다고 가르친다. 오늘날 기독교가 타락하여 하나님을 잘 믿어야 복을 받게 된다는 설교들이 빈번하게 흘러나오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돈과 우상을 섬기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을 바치는 이유는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그분은 항상 나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혹시 내가 실수를 해서 잘못을 범하여도 내 중심을 아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책망하고 원수 취급할지라도 그분께서는 나를 이해하시고 용서하신다. 이것이 그분을 따라가는 동안 내 영혼이 줄곧 평안을 누리게 되는 이치이다. 그러나 내가 육체의 욕심에 이끌려 죄를 범하고 품으면 그분께서는 즉시로 나를 찾아오셔서 양심을 괴롭히시고 성령으로 나를 책망하시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죄를 오랫동안 간직할 수 없게 하신다. 이것이 내가 그분의 은혜에 일생 빚진 자가 되어 따라가는 이유이다.

 바라보는 대로 변화한다는 것은 인생의 철칙이다. 우상은 섬김 받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상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섬김을 받기 원하며 높은 자리에 앉아서 지시하기를 원한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섬김 받기 원하고 높은 자리를 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기를 원하고 당신이 섬기는 사람을 위해서 죽기까지 하신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이것이 교만한 인간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구원의 과학이다. 마음에 교만을 품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받기도 원치 않는다.

 우상은 화가 나면 자신을 섬기던 사람에게 불행과 질병을 가져다 주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섬기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때때로 불행과 질병을 허락한다. 동쪽과 서쪽이 멀 듯, 하나님은 우상과 다르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인간의 구원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구원을 위해서라면 경제적인 어려움도 주시고 때때로 직업도 빼앗으며 질병도 허락하신다. 사람의 마음에 참된 겸손과 온유를 심어주기 위해서 세상에서 천한 멸시를 받도록 하시며 세상에서 티끌처럼 살도록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추구하는 선은 겉으로 드러나는 선이 아니라 속 사람의 선이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하신다. 자녀들의 성장을 위해서 고통을 허락하고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령을 우리는 알지 않는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우상이 행하는 선과 하나님이 행하는 선은 다르다.

 우상은 작은 구원만을 가르치지만 하나님은 큰 구원을 베푸신다. 우상은 가난한 자의 배를 채우고 지위를 향상시키며 그들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라고 말하며 정치를 개혁하라고 요구한다. 우상은 이 세상의 상태를 개량하라고 말하고 도덕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구원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큰 구원을 통하여 죄를 없애신다. 신들의 신인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혀 있던 담이 무너지고 평안을 가져오는 큰 구원이 이루어진다.
 큰 구원을 받아들이면 작은 구원은 저절로 사람의 생애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으면 가난한 자를 위로하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작은 구원을 베풀면서 살아가게 된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 위한 수단으로 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큰 구원이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럽기 때문에 작은 구원을 베풀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신들의 신이신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우상과 잡신들로부터 해방될 뿐 아니라 나 자신에로부터 해방된다. 나를 붙잡고 있던 불안과 두려움과 이기심과 탐욕으로부터 해방되면 드디어 영혼의 평안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세상이 감당하기 어려운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 온 세상은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건강: 육식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

태초에 인간에게 지정된 식물에는 육식이 포함되지 않았다. 노아 홍수로 말미암아 지상의 모든 식물(植物)이 멸절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육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위한 음식물을 선택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인간에게 가장 좋은 식물인가를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창 1:2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형성하기 이전에도 이미 건강에 대한 뚜렷한 원칙이 있었다. 노아 홍수로부터 짐승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방주 안으로 들여보낼 때 이미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으로 나누어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대한 가르침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것이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7:2-5)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식물을 선택하실 때에도 같은 교훈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당신의 소유를 삼으시기 위하여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또한 그들의 훈련을 담당하셨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축복하시고 교훈하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목적에 가장 적합한 식물을 공급하셨는데 그것은 육식이 아니요, 만나, 곧 하늘의 양식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육식이 허락된 것은 그들이 애굽의 고기 가마를 사모하여 불만과 불평을 터뜨렸기 때문이었으나 그것은 다만 잠깐뿐이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에게 질병과 죽음이 초래되었다. 그럼에도, 고기 없는 식사로 제한하는 것이 전혀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육식의 제한이 음으로 양으로 불만과 불평의 원인이 되어 그것이 영구적인 규례가 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을 때에 육식의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해로운 결과를 감소시키기 위한 신중한 제한 아래 허락되었다. 돼지고기의 사용이 금지되고 또한 그 밖의 부정하다고 선언된 짐승과 새와 물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 먹도록 허락된 고기에 대하여서도 기름과 피를 먹는 것은 엄금되었다. 다만 동물이 건강한 상태에 있었던 것만이 식물로 사용될 수 있었다. 찢겨 죽은 동물이나 혹은 그 몸에서 피를 잘 뽑아 버리지 아니한 것은 어떤 동물이든지 식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식물로 제정하여 주신 그 계획을 저버림으로 말미암아 큰 손실을 보았다. 그들은 육식을 열망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거두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성품에 이르지 못하였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은 파리하게 하셨도다(시 106:15). 그들은 세속적 사물을 신령한 것보다 더욱 높이 평가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목적하신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였다.

육식을 버려야 하는 이유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곡식과 야채를 간접적으로 먹는 셈이다. 왜냐하면 동물들이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곡식과 야채에서 섭취하기 때문이다. 곡식과 야채에 있던 생명이 그것을 먹는 동물들에게 들어가고 우리는 그 동물의 고기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에덴동산에서 지정해 주신 식물을 직접 섭취한다면 놀라운 유익을 얻을 텐데!

 고기는 언제나 최선의 식물은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육식은 영양학적인 면에서뿐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안전한 선택이 아니다. 왜냐하면 동물의 질병이 너무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먹는 것이 어떤 것인지 거의 알지 못한다. 만일 그들이 그 동물이 살아 있을 때에 보았더라면, 그리고 자신들이 먹는 고기의 성질을 안다면 그들은 몸서리를 치며 돌아설 것이다. 사람들은 병균과 암균이 가득 찬 고기를 먹고 있다. 결핵, 암, 그 밖의 치명적인 질병들이 이렇게 하여 전염된다.

 돼지의 세포 조직은 기생충으로 범벅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돼지에 관하여 돼지는 너희에게 부정하니 그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시체도 만지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신 14:8). 이 명령은 돼지고기가 식물로 적당치 못하기 때문에 주어졌다. 돼지는 오물을 먹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오물 청소가 돼지들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의 용도이다. 그 본바탕이 불결하고 온갖 더러운 것을 먹고 사는 동물의 고기가 건강에 좋을 수 없다.

 흔히 몹시 병들어서 주인이 더 오래 기르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동물들이 시장에 끌려 나와 식용으로 매매된다. 그리고 몸무게를 더 나가게 하기 위한 어떤 과정들이 병을 일으키는 수도 있다. 일광과 깨끗한 공기를 차단한 가운데서 집단으로 더러운 공기를 호흡하게 하고 썩은 식물로 살찌게 하므로 온 몸이 곧 불결한 물질로 감염된다.

 흔히 가축들은 먼 거리에 수송되어 심한 고통을 겪고서 시장에 도착한다. 푸른 초장(初場)을 떠나서 덥고 먼지 나고 괴로운 먼 길을 걷고 혹은 더러운 짐차 속에 가득 실려 열이 나고 기진하며 흔히 여러 시간 동안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고 지낸다. 이 불쌍한 동물들은 인간에게 그들의 시체를 제공하기 위하여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여러 곳에 있어서 물고기는 그들이 먹고사는 오물에 의하여 심히 오염되어 있으므로 질병의 원인이 된다. 특별히 물고기가 대도시의 더러운 하수와 접촉하는 경우에 그렇게 된다. 하수 중의 더러운 것을 먹고 살던 고기가 강물에서 떠내려가 물이 깨끗하고 신선한 곳에서 잡히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 고기가 음식에 사용될 때에 위험을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질병과 사망을 일으킨다.

 육식의 결과는 즉시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해가 없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자기들이 먹은 고기가 혈액을 중독 시키고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현대인 중 많은 사람이 육식으로 말미암은 질병 때문에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에 대한 참된 이유에 대해서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나 적다.

 육식에 의한 도덕적 해악은 육체적 질병 못지않게 현저하다. 육식은 건강을 해한다. 그리고 무엇이나 육체에 영향을 주는 것은 마음과 영혼에도 비슷한 영향을 준다. 육식과 관련된 일로서 동물에게 나타내는 우리의 잔인성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 잔인한 일을 하는 자와 그것을 목격하는 자들에게 주는 영향을 생각해 보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동물에 대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친절을 어느 정도로 파괴해 버리는가! 

 말 못하는 동물들이 나타내는 감성이 인간의 그것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에 참으로 신비하다. 동물들은 보고 듣고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고통을 당한다. 짐승들은 고통 중에 있는 그들의 동료에게 동정과 친절을 나타낸다. 많은 동물은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애정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내는 애정보다 훨씬 더 탁월하다. 그들은 그들에게 큰 고통을 주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 애착을 사람들에게 갖는다.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지금껏 돌봐 주던 짐승을 신뢰와 애정이 충만한 그들의 눈을 쳐다보면서 도살자의 칼에 죽도록 그들을 넘겨줄 수 있겠는가? 그 고기를 어떻게 맛 좋은 음식으로 먹을 수 있겠는가?

 체력이 육식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육식을 하지 않고도 신체 조직의 요구를 더 잘 공급할 수 있고 더욱 활기찬 건강을 얻을 수 있다. 곡식은 과실과 견과와 야채와 함께 좋은 피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 요소들은 육식으로는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한다. 만일 육식을 하는 것이 건강과 기력에 요긴한 것이라면 태초에 인간을 위하여 제정한 식물 중에 동물의 고기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육식을 끊을 때에는 흔히 쇠약하고 원기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 많은 사람은 이것을 육식이 필요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육류 속에 자극적인 성분이 있기 때문이며 혈액에 열을 일으키고 신경을 흥분시키는 까닭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고기를 먹고 싶어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육식을 끊어 버리는 것이 마치 술을 단념하는 것과 같이 어렵게 느낀다. 그러나 그들이 개혁하면 더욱 좋은 유익을 받을 것이다. 육식을 끊을 때에는 그 대신에 영양이 있고 맛 좋은 여러 가지 곡식, 견과, 야채, 실과 같은 것을 먹어야 한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육식을 폐하기로 목표를 세울 때가 아닌가? 하늘 천사들의 친구가 되고자 순결하고, 고상하고, 신성해지기를 추구하는 자가 어찌 능히 영혼과 신체에 그토록 해독을 끼치는 것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겠는가? 어찌 능히 하나님께서 지으신 동물의 생명을 죽여 그 고기를 호화판으로 먹을 수 있겠는가? 태초에 인간에게 공급된 건강에 좋고 풍미 있는 식물로 돌아가자.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실행하고 또한 우리 자녀로 교훈하여 가르치며,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우리의 지배 아래 두신 말 못하는 짐승들에게 긍휼을 베풀자.

채식을 외치는 서적 소개
희망의 밥상-제인 구달
많은 사람이 건강을 지키려면 육식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인간의 몸은 해부학적으로 많은 양의 고기를 자주 섭취하는 데 적당하지 않다.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은 장의 길이부터가 다르다. 육식 동물의 장은 짧아서 먹이 중에서 소화되지 않은 것도 부패하기 전에 재빨리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돼 있다. 초식 동물은 식물성 먹이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장의 길이가 길다. 인간의 장도 길다. 따라서 육식을 하면 고기 찌꺼기가 장에 너무 오래 머무르게 된다. 다른 측면에서 봐도 인간은 육식에 적합한 신체 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225쪽)

 제인 구달은 침팬지도 인간처럼 도구를 쓴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침팬지 연구 학자다. 평생 아프리카에서 연구 활동을 했던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는데 유럽과 미국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어 죽는 것을 보고 식량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음식 혁명-존 로빈스
농경지 2.5에이커에서 양배추를 생산하면 23명의 에너지를 충족시킬 수 있다. 감자를 생산하면 22명, 쌀을 생산하면 19명, 옥수수를 생산하면 17명, 밀을 생산하면 15명, 닭고기를 생산하면 2명, 쇠고기를 생산하면 1명의 에너지를 충족시킬 수 있다.(370쪽) 육식을 끊는 행위에는 모든 대륙의 자연을 대대적으로 회복시키는 생태계적 르네상스가 동반될 것이다.(348쪽)

 존 로빈스는 배스킨 로빈스란 세계 최대 아이스크림 회사의 상속자였다. 하지만 가업을 물려받기를 거부하고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생활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끼고 자라 왔던 그의 가족은 늘 비만에 시달렸고, 아버지의 동업자인 삼촌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속 받을 엄청난 부를 거부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로 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그는 1987년에 는 책으로 큰 충격을 줬다. 목축업자들의 주장과 의사, 연구원 등의 주장을 대비시켜 가며 조목조목 육식의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수많은 보고서와 논문, 언론에 나온 기사를 인용했다. 공장식 목축업으로 미국의 농경지가 급격히 황폐하게 됐으며 빙하 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오갈랄라 대수층도 급속히 고갈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게 1,000파운드의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물의 양은 구축함 한 대를 띄울 수 있는 양(뉴스위크)이며 미국 축산업이 배출하는 폐기물은 인간이 배출하는 것의 130배에 달한다.(타임)고 지적하고 있다. 또 미국은 한 가구당 떠안아야 할 축산 폐기물의 양이 무려 20톤에 이른다.고 경고했다.

육식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축우를 포함하여 여타 가축들은 미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곡물의 70%를 소비한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3분의 1을 축우와 다른 가축이 먹어치우고 있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이 기아와 영양실조에 허덕이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등으로 유명한 이름난 철학자이자 집필가이다. 이 책은 육식 문명의 기원부터 왜 인류가 육식을 좋아하게 됐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된다. 이후 산업적으로 육식 문화가 갖는 문제점도 짚어 간다. 그는육식이 지배하는 세상은 앞으로도 선택받은 소수와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하는 다수 간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면서 어느새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라고 썼다.

 육류 소비 증가로 1960년대 이후에는 중앙아메리카 삼림의 25%가 육우 사육을 하는 목초지로 개간됐다고 비판했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브라질의 아마존도 목장을 만들고자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이런 쇠고기들은 소위 선진국으로 수출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서정희

그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나는 가진 것이 없어 보일 때

그는 흥하여지고
나는 쇠하여진다고 생각될 때

그는 사랑받고 있고
나는 아무도 아닌 것처럼 생각될 때

그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나는 그저 뒤에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

바로 그 때 기뻐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고
그 계획은 그분의 뜻이며
그분의 뜻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아시는 하나님
그의 필요를 채우시고
나를 아시는 하나님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은 정녕 진리입니다
오늘도 나는 진리를 보며 기뻐합니다.

 

창조 교실: 하늘의 여행자 - 새들의 놀라운 비행

 하늘의 놀라운 여행자 중의 하나는 새들입니다. 많은 새가 생식을 위하여, 혹은 겨울철에 양식을 찾으려고 어느 한 나라에서 다른 먼 나라로 비행합니다.

 이 모든 새 중에서도 가장 먼 여행을 하는 것이 북극 제비갈매기(Arctic tern)입니다. 이 새의 크기는 지빠귀 새보다 크지 않은데도, 북극에서 남극으로, 그리고 다시 북극으로 돌아오는 무려 4만 Km의 비행을 합니다.

 또 다른 놀라운 비행자는 짧은 꼬리 섬 새(Short-tailed Shear water 혹은 Mutton-bird)인데, 이 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태즈메이니아 사이의 배스 해협 주변 지역에 서식하는 새로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여름 동안 성장하고 나서 북서쪽으로 비행하여 알래스카 근처의 섬으로 날아갑니다. 그곳에서 가을이 시작할 때까지 머물고,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때는 갔던 길과는 달리 북아메리카대륙의 서해안을 따라 내려와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알을 낳으려고 매년 똑같은 시간에 돌아오는데, 거의 항상 11월 24일에서 26일 사이입니다. 이들의 비행 거리는 자그마치 3만 2천 Km나 된답니다. 또 다른 놀라운 비행사로서 황금 물떼새(Golden Plover)류가 있습니다. 이들은 캐나다와 알래스카에 서식하는데, 알을 깨고 새끼들이 나오고 나면, 어른 새들은 새끼들을 남겨두고 1만 6천 Km나 비행하여 아르헨티나로 떠나며, 항로는 주로 대서양을 건너 날아갑니다. 그 후에 새끼 새들도 성장 후 역시 남쪽으로 날아가는데, 어른들과는 달리 아메리카대륙을 가로질러 날아갑니다. 새끼 새들은 생전에 한 번도 가 본 일이 없는 길이지만, 놀랍게도 정확히 아르헨티나까지 비행하여 먼저 도착해 있던 부모들과 합류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새들이 그들의 항로를 찾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많은 새가 태양과 별들을 기준 삼아 비행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가 회전함에 따라 태양과 별들의 위치가 변하고 또 북반구와 남반구의 별자리가 서로 달라지기 때문에, 전혀 교육을 받지 않은 새들이 어느 곳을 비행할 때 태양이 어디 있고, 별자리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새들이 눈으로 해와 달 등을 보고 방향을 잡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새의 눈을 가린 후 날려 보내는 실험을 했는데, 새들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그냥 비행 방향을 정확히 찾아 날아간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새들의 머릿속에 그런 지혜를 넣어준 분은 누구일까요?

 

신앙: 1부 - 성경이 말하는 환난

 성경의 예언과 세상의 징조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재림 전에 있을 환난에 대하여 알려 주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환난과 마지막 심판의 날에 담대히 서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마지막 날에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할 수 있는, 환난의 때에 하나님 보호의 날개 아래 안전하게 거하게 하는 준비는 무엇일까요?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환난과 환난에서 보호받는 방법에 대하여 함께 연구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예언서인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에는 마지막 시대의 환난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계시록에는 짐승의 표 환난으로 묘사되어 있고, 다니엘서에는 개국 이래로 없던 큰 환난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신 마지막 때에 관한 징조와 환난에 대하여서도 성경은 말하고 있다.

1) 짐승의 표 환난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13:15).

 요한계시록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국면에 전 세계를 뒤흔들 엄청난 핍박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그것은 곧 짐승의 표 환난이다. 요한계시록 13장 후반부에는, 마지막 때에 짐승이 권세를 얻게 되는 장면과 또 권세를 다시 얻게 된 짐승이 짐승의 표를 강요하여 그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이 세상 역사가 마지막에 이를 때에 짐승의 세력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 각 개인의 사생활을 지배하고 강요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짐승의 표 환난이 오는 때와 그 상황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 주고 있는데, 그때는 교황권의 세력, 곧 짐승의 죽었던 상처가 낫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정확한 시기까지 알려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예언의 성취가 가능해지려면 세계 모든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가능하다.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질 것인가? 과거 세상 역사에 관한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었던 예언의 성취를 연구한 사람은, 정확한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때에 예언된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일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 보자.

1. 종교적인 통합을 통하여
 
미국의 개신교회는 선조들의 종교 개혁의 정신을 버리고 타협하여, 교황권의 제도가 기독교에 들여온 오류들을 받아들이고 교리와 복음의 타협을 통해 함께 손을 잡을 것을 예언은 말해 주고 있다. 교황권의 세력은 벌써 오래전부터 개신교회의 활동의 배후에 서서 그들의 하는 일을 북돋아주었으며,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의 연합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써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거짓 성령 운동, 방언, 교리의 차이를 없애고 강조하는 사랑과 연합, 오류의 가르침들을 통해). 그 결과로 개신교 국가인 미국은 교황권을 위하여 짐승의 우상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짐승의 우상이란 타락한 개신교가 자기의 교리와 신조를 강요하기 위하여 정치와 국권의 도움을 구하여, 중세기에 있었던 종교적인 핍박의 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개신교 미국은 머지않아 용처럼 말하고, 교황권의 우상을 세우게 될 것이며, 그때 하나님께 대한 국가적인 배도가 일어나, 이것이 짐승의 표 환난을 불러오게 된다. 짐승의 표를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표, 즉 하나님의 인을 받는 하나님의 성도들은 하나님께 충성하고 진리를 타협하지 않기 위하여 어려움과 환난을 당할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을 잊지 않고 돌보실 것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도덕적인 타락을 막고 원래의 미국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하여 보수파 기독교인들이 정부의 세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더 나아가서는 헌법을 수정하며 우리들의 어느 정도의 자유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통제 정치를 감행해야 한다는 소리와 종교 통합의 정신을 우리는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2. 경제 위기를 통하여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셋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지 말고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짐승의 표는 경제적인 문제와 직결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계시록 13장 16, 17절에는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 하게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못 하게 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사고파는 일까지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어야 이 예언이 성취된다는 것을 유추해 낼 수가 있다. 그렇게 되려면 미국과 세계의 경제가 교황권의 재력에 의존하는 일이 생길 것을 또한 우리는 알 수 있다.
 요즈음의 경제 위기와 침체 그리고 경제 공황설을 접하면서 우리는 이 경제 위기가 짐승의 표 환난을 불러올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제 온 세계는 경제적인 형편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세계 통제 경제 체제로 돌입해 버리게 되었고, 미국을 비롯하여 강국이든 약소국이든 모든 나라마다 부채에 올라앉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온 세계를 하나의 나라로 간주하는 새로운 경제 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곧 파산할 수밖에 없는 나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경제학자가 이번 경제 위기로, 국가의 경제 파산과 함께 실업자의 폭등으로 인한 폭동과 소요를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공공연하게 이런 국가적인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위급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주의 체제의 출현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식 폭락, 전쟁 등이 이런 상황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가운데, 세계 단일 정부주의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고, 심지어 독재 정부 출현 가능성을 비추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프리메이슨과 연관된 세계 경제 부호들의 재력의 힘과 전 세계를 움직일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바티칸 은행의 움직임은 예사롭지가 않다.

2)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
 
그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선지자 다니엘은 마지막 때가 오기 바로 직전에 일어날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은 예수님의 중보 사업이 끝마치고 은혜의 시간이 끝나고 오는 환난이다. 짐승의 표 환난이 있고 큰 핍박이 온 후, 일곱 재앙이 온다. (일곱 재앙은 악인들에게 내리는 재앙이지만, 악인들은 이 재난의 결과를 하나님의 성도들, 즉 인간이 만든 종교의 법을 따르지 않는 남은 무리 때문에 온 것이라고 하여 성도들을 핍박하게 됨.)
 그때는 하나님의 자녀와 사단의 편에 속한 무리가 갈라지고 완전히 결정된 상태이며, 예수께서 지성소에서 나의 피, 아버지여 나의 피를 기억하셔서 저들을 용서하시옵소서.라고 드리는 중보 사업이 끝나는 때이다. 그때 이 세상에 개국 이래로 없던 큰 환난이 올 것이다. 그때는 세상에서 성령의 제어가 떠나고 성령이 떠남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이 없어진 사람들로 인한 폭동과 천연 재해들로 말미암은 엄청난 재난들이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4장 21절에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이 위기 동안에 어떠한 일이 생길 것인지를 설명하셨다.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 24:29).
 누가복음에는,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눅 21:25,26). 10, 1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최근에 들어 기상 이변과 천연 재해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잦은 화산 폭발과 쓰나미 그리고 세계 각처에 점점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진들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께서 경고하신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상기할 수 있다. 또한, 온역이란 제어하기 어려운 전염병을 가리키는데, 특히 세계보건기구인 WHO는 최근 유행하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이상 변이 바이러스들의 출현으로 세계 인구가 수천만 명 죽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각국에 경고한 바 있다.

 

신앙: 2부 -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은 언제 일어나는가?

환난에 대한 언급 중에서, 다니엘 12장 1절에 나오는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이 언제 오는지 그때를 알려면 바로 앞부분인 다니엘 11장 끝 부분을 연구해야 한다. 12장으로 넘어가기 전인 11장의 끝 부분의 예언은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이 도래하는 시기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그때를 알기 위해 다니엘 12장 1절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11장40~45절을 함께 연구하여 보자.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를 찌르리니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들어가며 물이 넘침같이 지나갈 것이요.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그가 열국에 그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치 못할 것이므로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잡을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로 번민케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도륙하며 진멸코자 할 것이요,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베풀 것이나 그의 끝이 이르리니 도와줄 자가 없으리라(단 11:40~45).

1. 마지막 때에(단 11:40 상단)
 
이  마지막이란 단어의 영어의 뜻을 보면 at the time of the end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뜻은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마지막 때 곧 말세를 말한다. 이 마지막 때는 다니엘 8장 14절에 기록된 2,300일 예언에 의거하여 1798년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2. 남방 왕의 정체
 
성경이나 예언에서 방향을 가리킬 때 그 기준은 예루살렘인데, 성경에 쓰인 히브리어를 보면 남방이라는 단어는 항상 이집트-애굽과 관련이 있는 단어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의 남쪽에는 이집트가 있었는데, 이 이집트를 다스리던 무신론 세력이 남방 왕으로 표현된 것이다. 계시록 11장 8절에 나오는 예언, 즉 프랑스의 무신론주의 혁명에 대한 예언은 프랑스를 큰 성 또는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이라고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무신론의 대표 국가는 이집트와 프랑스라고 할 수 있다. 현시대의 남방 왕의 실체: 과거에 프랑스를 지배했던 무신론 사상을 가진 현재의 국가는 바로 지금은 무너지고 없는 공산주의 국가들이다. 러시아 혁명을 통하여 무신론 사상은 공산주의 이론의 기초가 되었고,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강한 국가 소련연방을 탄생시켰다. 현시대의 남방 왕의 실체는 붕괴 전의 소련, 공산주의를 가리키는 것이다.

3. 북방 왕의 정체
 
성경의 북쪽 혹은 북방이라는 개념은 항상 바벨론과 연관되어 있다(렘 25:9, 겔 26:7 참조). 그러므로 북방 왕은 바벨론을 가리킨다. 그러나 현시대에 바벨론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영적으로 바벨론의 특성을 가진 종교 단체나 종교 세력을 바벨론에 적용시켜야 하는데, 영적으로 바벨론의 특성을 가진 종교 단체는 로마 천주교의 교황권인 것을 알 수 있다.

4. 남방 왕이 그 (북방 왕)를 찌른 사건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를 찌르리니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들어가며 물이 넘침같이 지나갈 것이요(단 11:40). 마지막 때에(1798년)에 남방 왕(프랑스) 이 북방 왕(교황권)을 찌른 사건은, 1798년 프랑스 혁명 정부의 버티어 장군이 교황 피우스 6세를 체포하여 감옥에서 옥사하게 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황권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교황권의 기세가 꺾였고, 교황권의 제도가 상처를 받고 찌름을 받았으며, 그 이후로 교황권이 상처를 받아 죽게 되어 잠시 세력을 잃게 되었다. 그런데 교황권의 죽게 되었던 상처는 1929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의한 라테란 조약으로 치료되었고, 독립 국가인 바티칸으로서 세력을 회복한 천주교회의 교황권은 남방 왕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암암리에 세워나가게 된다.

5. 북방 왕의 복수
 
40절에는 남방 왕으로부터 일찍이 찌름을 받은 북방 왕, 곧 상처가 나은 교황권이 자신을 상해한 남방 왕에 대해서 복수 및 대반격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찌르리니의 찌르다.로 쓰인 원어 - push의 뜻은 뿔로 찌르다.인데, 비유적인 표현으로 대항하여 전쟁을 하다. 라는 뜻이다.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 성경에서 병거와 마병은 군사적으로 싸우는 힘을 표상하며, 배는 경제적인 무역이나 경제적인 힘으로 표상되어 있다(왕상 1:5, 20:1, 시 107:23, 잠 31:14, 계 18:17~19 참조).

회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마지막 때가 시작된 1798년 이후, 교황권(북방 왕) 이 무신론 세력(남방 왕)을 회오리바람처럼 대적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곧 1982년 교황권이 미국(레이건 대통령 당시)과 손을 잡고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을 붕괴시킨 것이다. 이 일은 다니엘 11장 40절의 마지막 때인 1798년 이후, 북방 왕이 남방 왕을 매우 강하게 휩쓰는 모습, 곧 교황이 공산국가 소련을 빠른 시간에 붕괴시켜서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것을 보여 준 놀라운 예언의 성취였다. 그 일에는 많은 배를 상징하는 막대한 자금과 재력이 들었다.

6. 영화로운 땅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단 11:41).

 옛날의 영화로운 땅은 이스라엘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의 도피처로 선택된 국가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고 또 복음을 전하는 매개체로 선택받았지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거절하여 죽임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나라와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잃어버렸다. 영화로운 땅은 십자가 이후, 즉 마지막 때에 등장하는 영적인 이스라엘 땅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 백성이 피할 수 있었던 도피처가 되었던 땅, 양심을 따라서 자유로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땅, 진정한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 세워진 국가는 미국이다. 그러므로 현시대의 영화로운 땅은 미국이다.

 교황권이 미국에 들어감 : 머지않아 교황권이 미국과 종교적,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어서 동일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함께 일할 것이다. 마치 공산주의의 몰락을 위해서 둘이 하나로 연합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세력과 권세를 잡아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나는 중심 장소는 다른 곳이 아닌, 영화로운 땅이며, 그래서 마지막에 온 세상을 자신의 세력에 넣으려는 교황권이 미국에 들어오는 것이다.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교황권이 미국과 동맹하여 짐승의 표를 온 세상에 강요할 때, 많은 나라에 있는 대부분 사람이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록 기만적인 오류의 가르침과 세속적인 영향력하에 있었을지라도 순결한 믿음을 지키면서 진리의 빛에 순종하는 생애를 사는 존귀한 자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세력의 손에서 벗어날 것이다.

7. 북방 왕이 권세를 잡음
 
남방 왕으로 상징되었던 공산주의가 몰락된 직후, 더 이상 미국을 상대할 만한 나라가 없어졌다. 그(북방 왕)가 권세로 애굽의 금과 은과 모든 보물을 잡을 것이요라는 말은, 짐승의 표가 강요될 즈음, 유사이래에 없었던 경제 파탄이 온 세상을 덮칠 것에 관한 예언이다. 세계의 경제를 조정하는 세계 경제 은행 뒤에는 바티칸의 배후 세력과 프리메이슨과 새 세계 질서(뉴 에이지) 운동 단체들의 음모가 있다.
 사단이 온 세상에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종말의 시간에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표시하는 일곱 재앙이 내려지면서 지구의 대기와 땅과 바다에서 엄청난 천연 재해가 덮칠 것인데, 이때에 세계 경제는 파탄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상황은 사단에 의해서 한층 악용되어서 결국에는 짐승의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할 정도로 악화될 것이다(계 13:17).

8. 동북에서 오는 소문
 
성경에서 동쪽과 북쪽은 항상 하나님 보좌의 위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는 방향 그리고 심판을 상징한다(사 41:25,27; 마 24:27, 렘 1:14,15). 그러므로  동북에서부터 소문이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남은 무리, 곧 짐승의 표를 거절한 자들이 예수 재림의 소식과 복음과 심판의 기별을 놀라운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온 세상에 전파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용사들을 보면서 사단은 교황권을 선동하고, 교황권은 다시 미국의 힘을 이용하여, 짐승의 표를 거절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사형 명령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북방 왕)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베풀 것이나 그의 끝이 이르리니 도와줄 자가 없으리라(단 11:45). 장막 궁전은 전쟁 시에 왕이 막사로 사용하는 텐트(tent)를 가리키는데, 북방 왕은 마지막 전쟁을 치르고자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이 텐트를 세운다. 성경에서 물은 사람들을 말하며(계17:15), 거룩한 산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시온산의 또 다른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참 교회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북방 왕이 사람들과 하나님의 참 교회인 남은 무리 사이에 가로막고 서서 재림과 심판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외치는 기별을 듣지 못하게 막으며 방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단 12:1). 다니엘 11장 후반부의 예언 연구를 통해, 12장 1절의 그때곧 미가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기 위해서 일어나시는 때는 환난의 때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환난의 때가 시작되는 징조는 공산주의의 몰락을 보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니엘 11장 후반부에 나오는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의 성취는 벌써 우리 눈앞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런 예언의 성취를 보아 우리가 어떤 시점에 살고 있는지 깨닫고 영적으로 깨어나 환난을 위한,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맞기 위한 우리의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미가엘은 누구인가? - 성경이 말하는 미가엘
 
그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이 세상에 짐승의 표 환난과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이 올 때, 대군 미가엘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일어날 것에 대하여 다니엘 12장 1절은 언급하고 있다.

미가엘은 누구인가?
1. 미가엘의 뜻: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누가 감히 여호와와 싸울 수 있는가?
2. 천사장 미가엘: 다니엘서 10장 12~14절: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국군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단 10:12~14). 이 성경 절은 다니엘을 돕도록 보내심을 받은 천사가  바사(페르시아)국의 국군의 방해로 저지를 받다가 미가엘의 도움으로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싸움은 실제적인 싸움이나 전쟁이 아니고 영적인 전쟁인 선악 간의 싸움을 가리키며, 사람들의 마음에 성령께서 역사 하시는 싸움을 가리킨다. 여기서 막았다는 뜻은 사람들의 마음이 사단의 역사로 완악해져서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때, 미가엘이 일어나 큰 감동으로 역사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에서 돌아가게 놓아주시고 성전을 짓게 하신 영적인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3. 유다서 9절: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천사장은 천사들이 수종 드는 자를 말하며, 이 구절은 예수께서 모세의 시체를 부활시켜서 하늘로 데리고 가시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4. 미가엘은 사단과 싸우는 분: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계 12:7,8). 미가엘은 사단과 싸우는 분으로 성경에 묘사되어 있다. 미가엘은 예수님의 별명으로 예수님이 마귀와 싸울 때 가지시는 이름, 곧 예수님만 가질 수 있는 명칭이다. 다니엘서에 나와 있는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에도 미가엘이신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전쟁을 직접 지휘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미가엘이 그의 민족을 호위하시기 위하여 일어나실 것이다. 그렇다면 미가엘의 도움을 받고 환난에서 도움을 받을 사람들은 누구인가? 다음 기사에서 함께 연구해 보자.

 

신앙: 3부 - 환난에서 보호받을 사람들

마지막 환난에서 보호함을 받을 자들, 곧 미가엘의 도움을 받을 사람들은 누구인가? 성경은 그 사람들을, 지존자의 은밀한 곳 ,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사람, 밀실에 거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의미에 대하여 함께 연구해 보자.

1) 전능자의 그늘에 거하는 경험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 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 91장).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경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밀한 곳, 즉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펴 놓고 기도하며 주님과 교통하는 경험을 가리킨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는 경험, 내(주님)가 네(우리) 안에 네가 내 안에 거하는 은밀하고 개인적인 영적인 경험을 가지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주님과 교통하는 일을 첫째로 삼고 조용한 골방에서 은밀한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경험이며, 전능하신 자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을 경외함 
 
성경, 특히 시편에는 하나님께서 환난 날에 피할 피난처가 되실 것에 대한 약속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시 27:5). 그런데 성경은 은밀한 곳에 숨김을 받는 사람이 되는 조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 조건은 다름이 아니고,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시 34:7).

 성경에서 경외하다.라는 뜻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다.와 같은 뜻이며, 그 의미는 하나님을 잘 알고 순종한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자기의 사랑하는 독자 아들 이삭까지라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바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신명기 6장 2절도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시편 25장 1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다는 뜻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매우 잘 알고 또 주님과 아주 가까이 지내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알다.라는 뜻은 서로 아주 잘 아는 친밀한 관계, 곧 부부처럼 모든 것을 서로 아는 관계를 가리킨다. 창세기 4장 1절에는 아담이 하와와 동침하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영어로는 Adam knew his wife.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마치 부부가 서로에 대해 다 알고 간격이 없이 지내듯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지내고 가까이 교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친밀하고 가깝게 지내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언약 , 곧 구속의 신비한 비밀과 약속을 터득하게 된다.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만세 전부터 감추어 온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의 소망으로 거하시는 경험이 이루어진다. 곧 언약의 비밀이신 예수님의 임재를 마음속에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대로 산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한다. 곧, 계명을 지키는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삼는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환난 날에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다.

2. 순종하는 남은 무리
  
개국 이래로 없던 큰 환난이 올 때, 대군 미가엘이신 예수께서 네 민족을 호위하시기 위하여 일어나신다. 환난 때에 미가엘의 도움을 받는 자들, 즉 네 민족이라고 지칭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12)들이다. 그들은 생명을 잃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하여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모든 환난을 통과하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무리를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7장에는 마지막에 환난을 통과하고 승리하여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설 남은 무리에 대하여 묘사되어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짐승의 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있다. 요한은 계시에서 보았던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승리한 참 백성에 대해 기록하기를,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장에도 하늘에 들어갈 마지막 무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한글 성경에는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킹 제임스 영어 성경과 성경의 원문에는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계명을 지킨다는 의미는 구원을 얻으려는 방법으로 계명을 지키는 율법적인 사고방식과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또 마음이 새롭게 거듭나는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순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며 지키는 변화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지셨던 똑같은 믿음으로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마음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할 수도 없고, 또 지킬 수도 없다. 새 마음을 받아야 모든 생애의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살고 싶은 소원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음속에 임재하시는 경험 속에서 주님과 하나가 되어 자신의 마음과 의지를 주님께 매일 굴복하며 주의 뜻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죄악의 잔이 가득 차고, 사단의 핍박과 횡포가 세상을 휩쓸 때, 우리의 구원되시는 미가엘이 일어나셔서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무리를 도우실 것인데, 성경은 마지막 남은 무리들의 영광스러운 환희의 승리를 예언하고 있다.

2) 밀실의 경험 - 지성소의 경험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사 26:20,21).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특별한 초청을 하신다. 그것은 환난의 때에 보호함을 받도록 밀실로 들어오라는 초청이다. 짐승의 표 핍박과 사형 명령, 천연 재해의 재난들과 일곱 재앙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함을 받으려면 우리는 밀실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밀실에 거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밀실에 숨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천사의 보호를 받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그분의 임재 속에 거하는 사람은 밀실에 거하는 사람이다.

 영어로밀실이라는 단어는 ch-amber인데, 이 단어의 뜻은 알현실 , 응접실 등의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을 뵙는 곳으로 해석할 수 있다. secret chamber나, tabernacle이나, sanctuary라는 단어는 성소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던 단어이기도 한데, 그중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는 마지막 칸인 지성소를 secret chamber라고도 부르며, 혹은 most holy place라고 부른다. 성소 제도에서 지성소에는 하나님 임재의 영광의 빛인 쉐키나가 비치는 곳이었다. 지성소에는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아 정결케 되지 않은 제사장이 들어가면 죽임을 당하였다. 그곳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거룩한 곳이었고, 아주 은밀한 곳이었다.
 
 마지막 날의 무서운 환난에서 건짐을 받고 보호함을 받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지성소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죄의 정결을 경험하는 것, 하나님의 임재의 빛인 쉐키나 빛 앞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경험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승리하는 경험,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사는 경험을 해야 한다. 환난이 오기 전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경험은 이런 지성소의 경험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우리 생애의 모든 죄와 극복되지 않은 악한 성향들을 드러내시고 그 죄악들을 교정받게 하신다. 우리는 우리 성품의 결점과 죄악이 드러날 때, 그것이 주님의 자비인 것을 깨닫고 주님 앞에 회개하고 성품의 결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 기울여야 할 것이다. 머지않아 주님께서 향로를 던지시고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는 선고를 내리시고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성소에서 나오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서 성소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중보 사업을 하고 계실 동안, 그리고 그 중보 사업이 마치기 전에, 우리는 영혼의 정결 사업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지금은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예수님의 중보 사업을 믿음으로 믿고, 또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구세주를 바라보며, 모든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고 영혼의 정결함을 받고자 힘써야 하는 때이다.
 
 죄를 용서받은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은혜의 능력 속에서 죄의 욕구를 이기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 간사함이 없고 술수를 쓰지 않는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그리고 매일의 생활에서 모든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며, 늘 하나님과 은밀히 교통하고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만이 환난 때에 보호함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사는 것이 바로 밀실의 경험이며, 주님의 임재 속에서 죄를 승리하며 사는 것이 지성소의 경험이다.

신앙: 4부 - 의인은 환난을 면제받는가?

휴거의 가르침과 환난

1) 7년 환난설은 어디에서?
 
성경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라면, 비밀 휴거를 가르치는 세대주의자들이 7년이라는 기간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니엘 9장 24~27절을 문맥을 무시하고 떼어 와서 사용하여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놀랄 것이다.

  다니엘 9장 24~27절에서 떼어 온 7년은 재림의 때에 관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의 초림에 관한 예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70주 예언인데,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그 예언을 그리스도의 재림에 잘못 적용하고 있다. 비밀 휴거를 믿는 세대주의자들은, 의인들은 마지막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지상으로부터 하늘로 데려감을 당하기 때문에, 환난을 모면하게 된다는 전 환난설(Pretribulationism)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없다.
 예수님의 감람산 설교를 살펴보면, 성도들은 오히려 환난을 당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서 그들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 나와 있다. 그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9).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신 말씀은 마지막 날에도 적용된다.

2) 휴거론을 진단한다
 
휴거론은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또는 미래주의를 지지하는 목사들에 의해서 전파되고 있는 예언 해석과 접목되어서 여러 가지 모양의 오해와 혼란을 빚어 내고 있다. 휴거론을 잠깐 진단해 보자.

1. 면케 하리니의 의미: 비밀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환난이 오기 전에 의인들이 비밀리에 휴거할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요한계시록 말씀을 자주 인용한다. 내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 면케 하리니라는 단어는 성도들이 마지막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휴거하여 지상을 떠남으로써 환난을 모면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말씀을 지켰은즉 & 면케 하리니로 번역된 헬라어(tereo&ek)가 그러한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요한복음 17장 6, 15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원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하시기(tereo...ek)를 위함이니이다. 여기에 예수님의 뜻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원함이 아니요 & 오직 악에서 & 보전하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면케 하리니라는 말의 의미는 악한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죄와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전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두 성경 절에서 말씀을 지켰다.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왔으므로(순종), 시험(환난)의 때에 하나님께서 악으로부터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환난 속에서 지키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네가 나의 말씀을 지켰은즉, 순종하는 사람들, 바로 이것이 대답이다.

2. 면제받음 없이 환난을 통과한 의인들:
비밀 휴거론을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은 과거에도 종종 의인들은 환난을 하나님의 은혜로 모면하였기 때문에, 마지막 시대에도 의인들은 비밀 휴거를 통하여 마지막 환난을 모면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정말 그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바로 왕 때문에 이집트에 내렸던 10재앙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처음 3재앙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하여 이집트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내렸으며, 나머지 7재앙은 이집트 사람들에게만 내려진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재앙으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을 이집트 국경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으셨다. 10가지의 재앙이 모두 끝마쳐진 다음에, 홍해를 가르시는 기적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시대에도 환난과 7재앙을 피하게 하려고 성도들을 먼저 하늘로 휴거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로 지킴으로써, 환난 속에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며, 7재앙과 환난이 끝난 후에야 공중으로 승천하게 될 것이다. 의인들도 재앙에 의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성도의 인내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환난을 통과하여 승리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3. 분리는 세상 끝에 일어남:
마태복음 13장 24~30, 36~43절에 나오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비밀 휴거의 모순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이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 끝에 천사들을 보내셔서 추수하실 때, 오직 두 그룹의 사람들, 즉 구원받는 의인들과 멸망하는 악인들로 나누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의인들이 먼저 휴거를 하여 하늘로 승천할 것이라고 하시지 않고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서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니(30절)라고 하신다.
 
 이 비유의 말씀은 의인과 악인의 분리가 추수 때인 세상 끝에 이루어짐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세상 끝까지 함께 자라도록 놔두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세상 끝이 되기 7년 전에 의인들을 먼저 휴거시킬 것이라고 가르치는 비밀 휴거론자들의 주장과 얼마나 상반되는가! 또한, 의인들이 먼저 비밀리에 휴거 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4. 데려감을 당한다는 의미: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마태복음 24장 40절에 나오는 이 말씀과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는 누가복음 17장 35절에 나오는 이 구절들은 종종 휴거를 믿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된다. 그러나 그 다음 37절을 보면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어디로 데려감을 당하느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주검이 있는 곳이라고 대답하시며, 하늘로 휴거를 당하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것에 대한 의미임을 설명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을 맞으려고 준비하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니 재림을 위해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당부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신앙: 5부 - 책에 기록된 사람만 구원받는다

 그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이 성경 절은 환난의 때에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만 
계시록 20장 15절: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시록 21장 27절: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계시록 13장 8절: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 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시편 69장 28절: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위의 성경절들은 생명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이 환난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것을 시사하고 있다. 생명책은 의인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다. 어떻게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가? 곧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씻음을 받을 때 우리는 의인이 되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실 때,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용서하신다. 그리고는 우리의 죄를 잊어버리신다. 우리를 죄책감에서까지 해방시켜 주시는 진정한 용서를 하시는 것이다. 미가 7장 19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2) 생명책과 기념책과 죄의 책
 
생명책: 영원히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책이다. 하늘에는 사람들의 이름과 그 행위를 기록한 책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의하여 심판의 판결이 결정된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니엘은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라고 썼고, 요한은 그 같은 광경을 묘사하면서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라고 기록했다. 생명책에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섬겨온 모든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그의 성실한 동역자들에 대하여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고 말한다. 다니엘은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의 때를 미리 보면서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얻을 것을 말한다. 그리고 요한은 그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계 21:27)만이 하나님의 성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기념책:
또한 하나님 앞에는 기념책이 있는데, 거기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말 3:16)들의 선한 행실이 기록되어 있다. 믿음에서 나온 그들의 말, 사랑의 행위가 다 하늘에 기록된다. 이에 대하여 느헤미야가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느 13:14)라고 말할 때 그는 이 사실에 대하여 언급한다. 하나님의 기념책에는 의로운 행위가 빠짐 없이 영원히 기록된다. 거기에는 유혹을 물리친 것, 악을 이긴 것, 부드러운 자비로 표현한 말 등이 모두 자세히 기록된다. 그리고 모든 희생적인 행동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고난과 슬픔이 모두 기록된다. 시편 기자는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라고 말한다.
 
죄의 책:
하늘에는 또한 사람들의 죄악을 기록하는 책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구주께서는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고 말씀하신다. 은밀한 목적과 동기도 실수함이 없는 하늘의 기록에는 빠질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고전 4:5)기 때문이다.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사 65:6,7)라. 각 사람의 성실한 행동과 불성실한 행위는 하나님 앞에 심사되고 기록된다. 하늘의 책들에는 각 사람의 이름 아래 그 사람이 한 모든 악한 말, 모든 이기적 행위, 모든 은밀한 죄, 모든 기만 등이 무섭도록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늘의 경고와 견책을 등한히 한 것, 시간을 낭비한 것, 기회를 놓친 것, 선악 간의 감화와 그 결과가 미친 일들이 모두 기록하는 천사에 의하여 기록된다. 하나님의 계명은 심판 때에 사람의 품성과 생애를 측정하는 표준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고 했고, 야고보는 그의 형제들에게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 2:12)고 권면하였다.
 
 심판 때에 기록한 책들을 펼치면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 심판 때에 우리의 대언자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처음 생존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모든 사람의 사건을 제시하신다. 각 사람의 이름이 불리고, 모든 사건이 세밀히 검토된다. 어떤 이름들은 가납되고, 어떤 이름들은 거절된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고 용서받지 못한 채 기록책에 죄를 남겨 두고 있으면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그들의 선행의 기록도 하나님의 기념책에서 지워질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출 32:33)고 선언하셨다. 선지자 에스겔은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 하면 &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겔 18:24)라고 말한다.

신앙: 6부 - 환난에서 구원받았던 사람들

에스더 시대의 위기
 성경의 환난 경험은 그 시대에만 국한된 특별한 경험이 아니며, 마지막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의미심장한 것이 되고 있다. 과거 여러 시대를 통하여 사람들을 통하여 참 교회를 박해하게 한 동일한 정신은 머지않은 장래에 하나님께 충성하는 백성을 향하여 일어날 것이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옛날처럼 지금도 이 마지막 대투쟁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1) 하나님 백성의 시련
 
바벨론에 포로의 조서로 귀환한 후, 미처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 있던 하나님의 백성에게 시련과 위기가 닥쳐왔다. 그동안 유대인들에게 은총을 베풀던 다리오 히스타스페스 왕이 크세르크세스 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었고, 유대인들에게 무서운 위기가 닥쳐온 것이었다. 사단은 메대-바사 나라의 높은 지위에 있는 악한 하만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려고 하였다. 하만은 유대 사람 모르드개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예배하는 자세로 경의를 표하지 않은 데 있었다. 그 당시 왕 다음으로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던 교만한 하만은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대 민족,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에 3:6) 음모하였다. 하만의 거짓 진술에 속은 크세르크세스 왕은 메대-바사 나라의 각 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에 3:8) 모든 유대인의 대학살을 규정하는 조서를 반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반역적이고 나쁜 사람들로 보고되었고, 그리하여 유대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할 날이 정해졌다. 그 음모의 숨은 선동자였던 사단은 참 하나님께 대한 진리와 지식을 보존할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제거하려고 계획했던 것이다.

2) 위기의 때에 구원을 받음
 
메대-바사의 법령은 한 번 선포되면 취소할 수 없었으므로, 유대 민족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멸망할 운명에 놓이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떨며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들은 자녀와 모든 권속을 모으고 하나님께 그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시기를 탄원하였다. 그 당시에 하나님의 섭리로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믿음을 가진 유대 여성 에스더가 메대-바사의 왕후가 되었고,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모르드개는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라고 하였다. 이 위기의 때에 에스더는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특별하게 교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모르드개에게 지시하기를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고 하였다.

 에스더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법을 알았고,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사는 믿음 있는 딸이었다. 그녀는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는 밀실의 경험을 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러므로 환난의 때에 두려움 없이 굳게 설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법은 왕이 부르기 전에 왕후가 어전에 나타나면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금식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과 교통한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왕 앞으로 나아갔다.  하나님께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기이하게 일하셨다.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라는 왕의 조서가 나라 각 지방에 속히 전달되었다. 사형 명령 속에서 떨던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통하여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다.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에 8:17). 위급한 상황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셨다.

3) 다시 재현될 에스더의 위기
 
하나님의 남은 백성에 대하여 마지막에 공포될 짐승의 표의 법령은 아하수에로가 유대인들에 내린 법령과 매우 비슷한 것이 될 것이다. 사단의 권세를 받은 짐승의 세력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적은 무리, 곧 인간이 만든 종교의 법과 대중의 습관과 관례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소수의 무리, 대궐문의 모르드개와 같이 하나님께 절개를 지키는 적은 무리의 사람들에게 분노할 것이다. 정치와 재력이 있는 세상의 권세가들은 마지막 남은 무리인 하나님의 참 백성을 대적하려고 짐승의 세력과 연합할 것이다. 하나님의 참 백성을 핍박할 통치자들과 종교인들은, 그 짐승의 표 법령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려는 사단의 음모인 것을 알지 못한 채, 국가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 사회를 정화한다는 좋은 명목하에 그 법령을 시행할 것이다. 말로만 주님을 섬기노라고 공언하던 표면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늘 세상의 관습과 대중의 의견을 따르던 습관 그대로, 하나님의 진리의 편보다는 세상의 인기 있는 편을 택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참 자녀는 어떤 위협 - 재산과 집을 빼앗길 것이라는 위협, 안일과 명예를 잃고 생명까지 위험해질 것이라는 위협 - 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그분의 뜻에 순종하려는 굳은 결심을 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명의 위협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하는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핍박과 고문의 고통을 받는다 할지라도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서 끝까지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할 것이다.

신앙: 7부 - 죽음에도 굴하지 않았던 사람들

 

경배의 강요
 
생명의 위협 아래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한 다니엘의 세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 충성할 의무를 가진 남은 무리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보여 주셨던 큰 우상의 꿈은 하나님과 세상을 주관하는 하늘의 권세를 깨닫게 하려고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에 아직 세속적 야심과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이 남아 있던 느부갓네살은 영원히 설 강대국으로서의 바벨론을 상징하는 금신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으로 경배하게 하였다.

 신상을 경배하기로 정한 날, 수많은 군중이 두라 평지에 운집하였다. 왕의 명령에 따라 우렁찬 악기 소리가 들릴 때에 전 군중은 금신상에게 절을 해야 했다. 그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풀무불에 던져져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포고가 내려졌다. 그러나 거대한 금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는 군중 중에는 하늘의 하나님께 욕을 돌리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세 사람이 있었다. 승리로 상기된 느부갓네살 왕에게 감히 그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받는 왕의 총애와 명예를 투기한 박사들이 왕에게 그들이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대죄를 범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그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끌어오라고 명하였다. 왕은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고 물었다. 왕은 위협적으로 그들을 군중과 연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왕은 극렬히 타는 풀무를 가리키면서 그들이 왕의 뜻을 순종하기를 계속 거절한다면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변하지 않는 충성심
 
그러나 이 히브리 세 청년들은 하늘의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심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앙을 확고하게 증명하였다. 신상에 절하는 것은 예배하는 행위였으므로 그들은 그런 충성의 표시는 하나님께만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라고 왕이 위협했지만 헛수고였다. 왕은 하늘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돌이킬 수 없었다.

  그들은 침착하게 풀무를 바라보면서,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라고 말하였다. 또 그들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부언하였다. 왕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7배나 더 뜨거워진 풀무불 속에 던져졌다.

구원을 받음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자녀를 잊지 않으셨다. 그분의 증인들이 풀무에 던져졌을 때에 구주께서는 몸소 그들에게 나타나셨고, 그들과 함께 불 가운데 거니셨다. 자기를 무시한 사람들이 완전히 죽었으리라는 생각으로 풀무 쪽을 바라보던 왕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왕은 놀라 묻기를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였다. 놀라서 자신의 위대함과 존엄함을 잊은 느부갓네살은 보좌에서 내려와 풀무 앞으로 나아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아, 나와서 이리로 오라!고 부르짖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많은 군중 앞에 멀쩡하게 걸어 나왔다. 주님의 임재가 그들을 보호해서 해를 받지 않도록 해 주었고 그들을 채운 족쇄만이 불타 없어졌다. 그처럼 장엄하게 세운 커다란 금신상을 잊어버리고 사람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었다. 겸손해진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강요될 경배
두라 평지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당한 경험은 마지막 시대에 다시 재현될 것이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계 13:12). 마지막에 하나님의 남은 무리에게 주어질 시험도 경배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에게 경배할 것인가 하는 것이 마지막 우리에게 닥쳐올 시험이다.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첫 번째 짐승(교황권)은 정치 세력과 결탁하고, 경제적인 면에서 사람들을 통제하여 하나님의 법 대신 인간이 만든 법과 자신의 종교를 강요할 것이다. 그것이 짐승의 표 환난이다. 마지막 시대에 형성되는 짐승의 우상은 첫 번째 짐승의 모습(Image)을 닮은 것으로서, 정치적 힘을 이용하여 종교의 교리나 가르침을 강요할 것인데, 이를 거절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가혹한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계시록 13장에 언급된 짐승의 우상을 세운다는 말은,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에 교황권이 로마 제국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강요하는 교리를 거절하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던 것처럼, 미국 정부와 종교가 손을 잡고 중세기 때에 교황권이 행했던 종교적 핍박의 모습(Image)을 재현할 것이라는 뜻이다.

환난을 견딜 사람들
 
하나님의 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사단의 분노가 절정에 달할 때, 그리하여 마침내 국가의 법령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죽이라는 사형 명령을 집행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밀실에 거하는 경험을 한 사람들만이 두려움 없이 설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생명이 요구된다 하여도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에 충성하겠다는 굳센 믿음을 가진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보호하실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시대처럼, 주님께서는 세상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도 의를 위하여 확고부동하게 서는 사람들을 위하여 능력 있게 일하실 것이다. 히브리 세 청년과 함께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행하셨던 주님께서는, 그분의 자녀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함께 계실 것이며, 주님의 한결같은 임재로써 그들을 위로 하시고 지지하실 것이다.
 

 환난의 때, 곧 개국 이래로 없었던 환난의 때에도 하나님의 참 자녀들은 확고부동하게 설 것이다. 사단이 모든 악의 군대와 합세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도 중 가장 연약한 사람도 멸할 수 없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사람들은 보호함을 받을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장 작은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실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환난은 우리에게 큰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 어떤 핍박이나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를 지금 평안할 때에 우리는 배워야 한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는 새로 도래할 새 하늘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강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흐르고, 정금거리와 열두 가지 과실을 맺는 생명나무가 있는 곳, 밤이 없고 햇빛과 등불이 필요없는 곳, 하나님의 장막이 친히 사람과 함께 거하시는 회복된 아름다운 새 하늘과 새 땅! 과연 그 아름다운 곳에 누가 들어갈 것인가? 그들은 모든 환난을 이기고,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충성이 증명된 사람들, 곧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다(계 22:14).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생명을 걸고 충성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만이 환난의 때에 구원을 받을 것이다. 전능한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경험, 밀실의 경험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 경험을 하려고 노력하는 독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질문과 답변 : 십자가가 성서적 건강 법칙을 변경시켰나요?

 하나님께로부터 최초에 받은 식단은 과일과 견과류와 곡물과 채소 등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고기를 허용하셨지만, 어떤 동물들은 부정한 것으로 특별히 구별하셨습니다.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부류의 동물들을 부정한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새김질을 하지 않고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모든 짐승들(신 14:7),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모든 물고기와 물에 사는 어족들(신 14:9), 썩은 고기와 물고기를 먹고 사는 모든 새 종류(레 11:13-20), 그리고 거의 모든 기어다니는 것들(레 11:21-27)입니다.

 하나님께서 고기를 허용하시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법칙에 따르면, 지금 어떤 사람들이 먹고 있는 고기 중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돼지, 다람쥐, 토끼, 타조, 장어, 게, 조개, 새우, 오징어 등등.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돼지고기를 너무나 좋아한답니다. 내가 그것을 먹는다고 해서, 하나님은 나를 멸망시킬까요?

 성경은 이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육당할 자가 많으리니,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 돼지고기와 가증한 것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66:15-17).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한 법은 구약 시대에 광야에서 주어졌던 법이 아닌가요? 그것은 오직 유대인들을 위한 법이며, 십자가에서 폐해지지 않았나요? 결코 아닙니다. 모든 동물들은 창조 때부터 이미 부정한 것과 정한 것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그 구분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식물들이 창조 때부터, 어떤 것은 꽃으로, 또 어떤 것은 채소로 구분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구 상에 유대인이 형성되기 전에 동물에 대한 구분이 존재하였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노아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방주 안으로 동물들을 불러모을 때, 정한 동물은 7마리씩, 부정한 동물은 2마리씩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창 7:2-3).

 예수께서는 돼지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성경에 나타난 건강법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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