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편지: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새해가 되면 노트에 많은 새 결심들이 적어집니다.   
  막이 오르고 삶의 시간이 시작되면, 그중 어떤 것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웃음을 띠며 막 뒤로 사라지지만, 어떤 것은 잊혀진 채 구겨진 종이 위에 뒹굽니다.  이해에도 어김없이 사람들은 가슴 속에 많은 새 결심들을 집어넣고 옷깃을 여미며 총총히 떠납니다만, 이 한해가 지나 또 다른 삶의 막을 열 때, 그 결심들 때문에 알찬 삶을 살 수 있었음을 기뻐하며 또 다른 새 결심들을 적고자 노트를 펴게 될까요? 

 해마다 그럴듯하게 적어지던 결심들이 빛바랜 일기장 넘어 허무하게 사라진 숱한 기억들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결심과 서원을 적는 일을 망설입니다. 아무리 새로운 결심들을 토해낸다 할지라도, 그래서 그 적힌 노트 장이 책상 위에 빼곡히 쌓인다 할지라도, 결심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가지를 아무리 쳐내도 나무가 변하지 않듯이, 우리의 전 존재가 온전히 바뀌지 않으면 그 약속들은 지켜질 수 없으니까요.


새 덩어리, 새 부대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과감하게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전 5:7)라는 도전 말입니다.  새 덩어리가 되라는 말은 전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라는 말입니다. 옛 덩어리가 아직 조금 붙어 있는 것이 아닌, 옛 덩어리와 새 덩어리가 반반씩 섞여 있는 것이 아닌, 옛것은 자취를 감춘 전혀 다른 새로운 덩어리가 되라는 말입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 존재 전체가 바뀐 새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혼자 수없이 사투하며 노트에 적어 보던 결심들이 지켜지지 못한 약속처럼 슬프게 남아 더는 우리를 비웃을 수 없도록&.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옛것을 개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저것을 고치고, 이 가지 저 가지를 전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샘물이 맑으려면 샘물의 근원이 맑아져야 하듯이, 새 덩어리가 되려면 마음이 온전히 바뀌고 거듭난, 이전 것은 확실하게 사라져 버린 전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에게 수없이 거듭 확인해 보던 약속들이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지켜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7)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양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물과 포도주를 넣었습니다. 양가죽은 아주 부드럽습니다. 거기에 포도주를 담으면 발효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부피가 팽창하게 됩니다.  새 양가죽 부대는 포도주가 발효하는 만큼 얼마든지 거기에 맞춰서 늘어납니다. 그래서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헌 가죽 부대는 안에 당분이나 불순물이 묻어 있어서 가죽이 딱딱해집니다. 그런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면 팽창하지 못하고 터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주도 버리게 되고 가죽 부대도 버리게 되지요.

묵은 것을 버리는 것
 새 덩어리가 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묵은 것, 기존의 것을 모두 버려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그리고 육체적인 면을 다 포함합니다. 거기에는 죄된 자아를 내버리는 일, 악한 습관과 세속적인 취미를 버리는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가진 선입관과 분석하고 비판하는 생각과 눈을 버리는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과 사물에 대하여 고착된 낡은 관념들을 버리는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혀 가져 보지 않았던 새 눈과 귀와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새 양가죽처럼 모든 것을 사랑으로 수용할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새 일을 행하시고 새 역사를 하실 때, 옛것이 남아 있는 딱딱한 그릇은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버리지 않은 묵은 누룩 - 옛 습관, 고집, 그대로 남아 있는 과거의 경험, 아집들 - 은 하나님의 일과 새 역사를 방해하고 막아 도리어 자신의 그릇만 터져 버리는 비참한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새 포도주를 담는 용기로 사용되던 가죽 부대가 시간이 지나 말라 부서지기 쉽게 되어 다시는 포도주를 넣는 데 사용할 수 없게 되듯이, 묵은 누룩을 버리지 않은 딱딱하고 말라빠진 마음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담을 수가 없고, 그 진리가 역사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 부대를 원하십니다. 매일 새로워진 마음 안에 하나님의 새 일과 새 역사가 담기기를 원하십니다.  새 부대가 되도록, 새 덩어리가 되도록 우리는 옛것을 비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묵은 누룩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 자아가 포기될 때, 그래서 죄악의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고전 5:8)들이 버려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수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오직 새 가죽 부대만이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터져버린다는 것을&.

새 포도주

 예수께서 새 포도주와 새 부대를 말씀하실 때 염두에 두시던 유대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마음은 말라붙은 포도주 부대와 같이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생기가 빠진 의식과 유전의 틀에 고착되어 있는 동안은, 그들의 교만한 선민 의식과 자신들의 의로운 행위에 의존하는 율법주의적 신앙에 만족하는 동안은 하늘의 산 진리가 그들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매우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자신들의 의와, 머리를 가득히 채우고 있던 지식, 그리고 충분히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행위에 집착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막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묵은 누룩을 버리기를 원하지 않았고, 새로운 요소가 그들의 신앙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발효시키는 포도주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진리는 낡은 인간 유전의 가죽 부대를 터뜨려 버릴 것이었습니다.

 새 부대가 마련되어야 새 포도주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우리가 허용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새 가죽 부대로, 새 마음으로 만드시고, 그리고 그 안에 그분의 신비한 생명인 새 포도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갑자기 말씀이 가슴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진리가 삶에서 변화시키는 창조의 능력으로 나타나며, 진정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살아 있는 믿음의 행위가 생애를 빛내게 됩니다.

 새 포도주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로 옷 입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새 덩어리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덧입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된 이해,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의 그릇이 새롭게 준비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준비된 새 마음에 새 포도주를 가득히 담아야 합니다. 새로운 페이지에 빼곡히 적어 놓은 결심들이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지켜지지 않은 슬픈 약속들이 되지 않게 하는 길, 그것들이 미소 지으며 찬란한 퇴장을 하게 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새 덩어리가 되는 것, 그리고 새로워진 마음에 새 포도주를 받는 것뿐입니다.

생애의 빛에서

 고통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의 크기가 가중되고 있고 그 양도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범죄한 결과가 기하급수적으로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죄의 역사가 끝나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 악의 역사를 끝내시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창조해 주셔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새로운 시작을 막는 것일까요? 어떻게 해야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수가 있는 것입니까?

 성경에는 복음 사업을 농사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과 뜨거운 여름을 지나며 성장하는 경험과 열매가 맺는 추수기의 일로 말입니다.  추수 때에는 알곡과 가라지로 갈라지는, 즉 의인과 악인으로 갈라지는 경험과 결국에는 가라지를 불에 태우는 일과 알곡을 창고에 들이는 일로 복음 사업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른 비는 씨앗이 자라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고, 늦은 비는 열매가 완전히 익고 추수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내렸던 오순절의 성령은 이른 비로 상징되어 있습니다. 최초에 복음을 전파하고 파종하기 위한 능력으로 내린 것입니다. 초라한 사람들 약 120명이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자, 복음은 온 세상에 확산되는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제는 이 복음의 결과가 추수되어야 하는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짧은 시간 안에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져 끝나 버리는 일이 생겨야 합니다.  첫 번째 오순절 당시에 한 세대 동안에(약 30년) 복음의 씨앗이 온 세상에 뿌려졌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온 세상에 복음이 순식간에 확산될 놀라운 과학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과거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의 크신 역사가 한 번 더 일어난다면 이제는 삽시간에 복음 사업이 마쳐지고 우리는 하늘 본향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성령의 역사를 받을 사람들의 준비입니다. 성령께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안전하게 준비된 종들 말입니다.

 두 번째 오순절이 오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바이블 맨: 아이티 대지진과 같은 대 재앙들을 성경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질문: 아이티의 대지진으로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대재앙들을 성경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하나님께서 특정 지역에 재앙을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려 하심인가요?  아이티에는 의인들도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참 백성도 있을 텐데 왜 그들이 희생되어야 합니까?  천재지변은 하나님의 역사와 상관없이 우연히 발생하는 재난인가요?
 
1. 대재앙을 성경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재난은 예수 재림의 징조 중의 하나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기아과 홍수와 지진 같은 재난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그 빈도가 높아지고 강도가 높아질 것입니다.  바울이 기록한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1-4)
 
 사람들이 평안과 안전을 말할 때, 이 세상에 재난이 오는데, 잉태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같이 올 것입니다. 잉태한 여인은 태아가 나오는 시간이 가까울수록 고통의 주기가 짧아지면서 더 자주 고통을 느끼게 되고, 고통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오시는 재림의 시간이 가까울수록 고난이 더 자주 오고, 그 크기가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러나 고통의 주기와 주기 사이의 시간에는 아무런 고통이 없어서 사람들은 다시 평안과 안전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빛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주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지구 온난화로 인한 대재앙의 현장들이 거의 날마다 신문에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환경 재앙과 치료가 불가능한 온역이 지구 전체를 엄습하는 상황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은 깨어서 주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2. 재난과 고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환경 재난과 온역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의 결과입니다. 무책임한 오염 물질의 방출과 비틀어진 탐욕의 결과로 자연과 동물계가 파괴됨으로써 각종 재난과 질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사단의 책임입니다.  불행과 고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4:6은 하나님의 성품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근본적인 고통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마태복음 13:24~30에서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배우게 됩니다.
 
 종들이 밭에서 가라지를 발견하고는, 좋은 씨만 뿌렸는데 왜 가라지가 생겼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주인은 밤에 잘 때 원수가 뿌리고 간 것이라고 설명하였고, 종들이 그 가라지들을 뽑자고 제의하자, 추수 때까지 놓아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비유를 설명하시는 과정에서 밭은 세상이요.(마 13:38)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이 세상을 죄와 고통이 없는 곳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푸른 풀밭에 꽃들이 만발하고 새들이 기쁘게 노래하며 슬픔과 질병이 전혀 없고 건강과 행복만 가득 찬 곳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원수인 마귀가 이 세상에 죄와 사망과 고통의 씨를 뿌린 것입니다.
 
3. 왜 재난 지역에 있는 의인들과 하나님의 백성들까지 희생되어야 합니까?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의 책임은 사단에게 있습니다. 그가 바로 이 세상에 재난과 파괴를 초래한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하나님의 좋으신 성품을 곡해시켜서 마치 이러한 고통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처럼 오해케 하여 인간들을 자기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인들은 사단이 주는 재난과 고통을 받지 않을까요?  누가복음 13장을 보면 예수께서 18년 동안 온몸이 꼬부라져 있던 한 여인을 고치신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누가복음 13:16은 예수께서 그 여인을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른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딸이었지만 사단 때문에 18년 동안 고통당해야만 했던 여인을 예수께서 구원하시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의인이라 할지라도, 이 지구를 현재 사단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교통사고로 죽고, 암에 걸리며, 테러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지구를 사단의 손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때까지 이러한 사고와 재난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끊임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허락하시는 모든 사건 속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연이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에스겔이 본 게시와 같이 거룩한 손이 바퀴들 위에 놓여 있고 바퀴 안에 바퀴가(겔 1:16)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형편을 잘 아십니다. 우리의 눈이 열릴 수만 있다면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공의가 이 세상에 역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4. 아이티 지진은 하나님의 역사와 상관없는 하나의 우연한 천재지변인가요?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고통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끄시는 기회로 사용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고통을 허락하심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하늘로 인도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에는 고통이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유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성경 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베드로는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 4:12)라고 말했으며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믿기 어려운 말을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 
 
 이러한 말씀 외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들이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고난과 고통은 그리스도인에게 신비스러운 축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시련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성품을 준비시켜 주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마지막 시대 성도들의 특징을 말하면서,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을 자들의 특성 중에서 인내야말로 매우 긴요한 것인데, 야고보는 말하기를 인내는 시험과 시련을 통해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고난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늘을 위하여 준비시키는 데 필요한 훈련 과정입니다.  고난을 수없이 많이 당했던 다윗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67,71)  이 단순한 하늘의 원칙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될 때까지, 사람들은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마다 의심과 불신의 안갯속을 헤매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사랑에 대한 의문의 미로를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절대로 자신에게 시련과 고통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불 가운데로 지나가는 고통과 시험을 허락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불 시험들을 통해서 우리의 모난 성격들과 이기심이 제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품성과 생애를 정결하게 해 달라는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항상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생애에서 죄와 이기심과 무정한 마음을 제거해 달라는 기도를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들을 제거해 내는 수술인 고난과 시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고난과 시련은 죄와 이기심을 제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유일한 방법입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계속되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 성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말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시련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믿음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고난과 시련에서 오는 슬픔과 충격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로 말미암은 감정적 스트레스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뢰와 믿음을 저버려서야 하겠습니까?
 
 고난과 시련을 믿음으로 통과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거나 최선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아니면, 어떤 일도 일어나도록 절대 허용하지 않으신다는 확신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이것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요구하지만, 우리의 영생을 위해서 돌아가신 그분의 사랑을 생각해 보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께서 허락하신 일이 내게 일어났다고 생각한다면, 평안한 확신을 가지고 내 앞에 놓인 고난과 시련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얼핏 보기에는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비극들이 우리의 생애 가운데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비극 저편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비극 저편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전진할 것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생깁니다.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에, 한 사람은 똑같은 시련과 환난을 통과하면서 잘 익은 알곡으로 익어가는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같은 시련과 환난을 통과하면서 그것에 압도되어 불평과 원망을 토해 내는 가라지로 변모해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약속만을 붙들면서 전진해 나가는 거룩한 습관을 익혀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진짜 그리스도인과 가짜 그리스도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어려움은 우리를 예수께 더욱 가까이 인도합니다. 고난과 시련이 아니었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렸을 사람들이 고난 덕분에 하나님을 찾고 진리를 붙잡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의 성품과 신앙의 실체는 평안할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발휘하려면, 평안한 때에 하나님과 긴밀한 개인적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가장 유익하고 선한 것이 아니면 어떠한 고난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원칙을 깨달은 사람들만이, 고난과 슬픔의 순간들을 올바른 자세로 맞이하게 됩니다.

가정과 영성: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

유대인들은 화려한 성전과 장엄한 종교적인 예배의 형식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공의와 자비와 사랑이 결핍되어 있었다. 성전의 화려한 모습과 장엄함이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을 가치있게 여기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겸비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다. 교회가 하늘 왕국의 중요한 원칙들을 잊어버리면 의식은 많아지고, 허영과 형식이 예배를 채우게 되며, 세속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의와 심령의 아름다움은 무시되고 외관에 치중하게 됨으로써 신앙의 단순성은 사라지게 된다.  교인들의 마음이 세속에 의해서 점령당하게 되면 화려한 예배당 건물과 연예 프로그램과 같은 예배 분위기를 좋아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의식과 허식과 과시로 꾸며진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경건과 부흥으로 채워진 교회를 귀하게 여기신다. 그러한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진리를 높이 들어 올리기 원하신다.  교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명이 교회에 맡겨져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세상에 하늘의 생명을 나누어 주어야 할 교회가 그 사명과 목적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다. 교회가 영적으로 병들고 무능해져 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분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떨리는 입술과 눈물 어린 눈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너무나 적다.  사도 바울 시대에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과 생애를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그리스도인은 고결함과 성경의 진리를 분명하게 나타내면서 살아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이다.

 부드러움, 친절, 엄격한 정직, 성실성이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에 새겨져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서 과시하는 정신이 사라진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있는 것들을 사모하고 겸손으로 옷 입어야 하며 사람의 칭찬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  뇌물이나 아첨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비난과 조소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등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고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을 키워내는 곳이 교회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 중에서 당신의 성품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  이 이름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는 이름이다. 그 이름을 가진 자들은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았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받은 사람도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늘의 뜻을 따른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라고 성경이 선언하지 않는 교리를 온 세상이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진리에 대하여 비웃고 조롱할지라도 그것이 진리를 오류로 만들지 못하며 오류를 진리로 만들지 못한다.  진리를 전파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 굽실거리거나 미안해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며, 진리를 은폐하지 말되 가장 합리적으로 제시해야 하며 망설이는 태도를 보여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이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름이다.  그리스도의 피묻은 깃발 아래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모여들 것이다.

건강: 식단에서 육식이 없어져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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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레미 리프킨의 에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가 자신의 저서를 통하여 강조하고자 한 것은 인간의 식단에서 육류를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는 육식의 종말을 강조하는 것일까?  이번 기사에서는 인간의 건강과 행복에 육식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에서 소를 전문적으로 사육하는 곳에서 대개 송아지들은 6~11개월 동안 체중을 불린 후 도살장으로 보내진다. 미국의 13개 주에는 4만 2천 개의 사육장이 있으며, 규모가 큰 200여 곳에서 절반이 사육된다. 최단 시간에 최적의 무게를 얻으려고 성장 촉진 호르몬과 사료 첨가제 같은 약제들을 소에게 투약한다. 
 
 현재 미국의 모든 사육장에서는 95% 이상의 소들에게 성장 촉진 호르몬을 투약하고 있다.  간혹 항생 물질의 잔류물이 사람들이 소비하는 쇠고기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사용되는 제초제의 80%가 육우와 다른 가축들의 사료로 사용되는 옥수수와 콩에 뿌려지고 있다.
 
 그 제초제는 가축들의 신체에 축적되며, 살충제 또한 쇠고기 덩어리와 함께 인간에게 전달된다.  도살되는 소의 이상적 무게인 1,100파운드까지 체중이 불어나면 성숙한 소들은 비좁은 트럭 안으로 옮겨져 도살장까지의 여정에 오른다. 트럭 안에서 넘어져 다리나 골반이 부서지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 이후에는 이미 우리가 잘 아는 도살장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엄청난 규모로 산업화된 도축 산업
 전국적으로 규모가 큰 도살장들의 위생 상태는 가히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품질 검사관들은 공장에 도착하기 전에 죽어서 시체 온도가 내려가 버린 암소들을 도살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이런 소의 시체들 속에는 녹슨 쇳가루, 부러진 이빨, 손톱과 발톱, 고리, 꼬리표, 송진 등의 이물질을 포함한 채 해체 공정을 따라 이동한다. 

 해체 공정의 속도가 빨라서 소의 혀에 박힌 선인장 가시를 빼낼 수 없으며 조직 속에 있는 암덩어리를 제대로 제거해 낼 시간조차 없다.  가공되는 고기 중 일부는 너무 오래되어 이미 변질된 상태이며, 많은 도축 공장에서는 인산염을 첨가하여 부패 사실을 숨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에서 발견된 2종류의 가축성 질환으로 사람의 질병과도 관련성이 높다는 점이다.

 소 백혈병 바이러스는 소에게 악성 종양을 유발하는데 미국 전역의 축사 중 60% 이상, 전체 암소 중 20%에서 이 질병이 발견되었다. 이 항체는 백혈병 환자들에게서도 발견되었고, 인체 세포에도 감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두 번째 바이러스는  소 면역 부전 바이러스 인데 이는 인체의 바이러스를 악화 및 둔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대규모 가축 사육 기업들의 가축들은 잔혹한 취급을 받았고, 소비자들은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 앞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시작된 산업화된 도살업은 수많은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이런 산업화된 대규모의 도축 산업은 이미 지구의 생태계와 경제 체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식량이 부족한 이유
 
 한 명의 사람이 1년간 생존하려고 할 때 300마리의 송어가 필요하다면, 송어들은 9만 마리의 개구리를 소비해야 하고, 개구리들은 2,700만 마리의 메뚜기를 소비해야 하며, 메뚜기들은 생존을 위해 다시 100톤의 풀을 소비해야만 한다.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가 가축 사육을 위해 소비되고 있다. 사육장의 소로부터 1파운드의 고기를 얻으려면 약 9파운드의 사료가 소모되는데, 이것은 6파운드의 곡물 사료와 부산물 사료 그리고 3파운드의 거친 사료로 구성된다. 
 
 소의 사료 단백질 전환율은 고작 6%에 불과하다. 이는 790킬로그램 이상의 식물성 단백질을 소비해도 기껏해야 50킬로그램에 못 미치는 단백질을 생산한다는 의미이다.    사육장에서 도살될 때쯤이면, 그 축우는 2,700파운드의 곡물을 소비한 상태이며 무게는 대략 1,050파운드 정도 나가게 된다.

 현재 미국에서는 사람이 섭취할 수 있는 1억 5,700만 톤에 달하는 곡물과 콩류, 야채 단백질이 사람들이 1년 동안 소비할 동물성 단백질 2,800만 톤을 생산할 목적으로 가축을 사육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 대풍작을 기록했던 1950년부터 1985년 사이에 미국과 유럽에서 2/3나 증가한 곡물 생산은 사료 곡물 재배에서 이루어졌고, 그중 대부분은 소 사육에 사용되었다.  곡물 재배에 사용되는 1에이커 토지는 육류 생산에 사용되는 1에이커의 토지보다 5배 많은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

 콩류(대두, 완두콩, 렌즈콩)를 심으면 10배 많은 단백질을 생산하며, 잎이 많은 야채를 심으면 15배나 많은 단백질을 생산하고 시금치를 심으면 쇠고기 생산에 사용되는 1에이커의 토지에 비해 무려 26배나 많은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  만약 미국에서 외국으로 수출되는 곡물의 2/3가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축을 사육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대부분의 미국인은 깜짝 놀랄 것이다.  이런 전환이 인간에게 미친 결과는 1984년 날마다 수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어 가던 에티오피아의 사례를 통해 극적으로 입증되었다.
 
 바로 그 당시 에티오피아는 일부 경작지를 아마인 깻묵, 목화씨 깻묵, 평지씨 깻묵을 생산하는 데 할애했다는 사실을 대중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 작물들은 가축 사료로 영국을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에 수출할 목적이었다. 현재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제3세계 토지가 오로지 유럽의 가축 사육에 필요한 사료를 재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아시아인들은 하루 평균 56그램의 단백질을 소비하는데, 그중에서 고작 8%만이 동물성 단백질이다.  반면 미국인들은 하루에 96그램의 단백질을 소비하며, 그중 66%가 동물성 단백질이다.
 
 우리는 지구 인구의 2/3가 주로 채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계 곡물 생산의 1/3이 소와 다른 가축 사육에 소비되고 10년 후에 인구가 20% 증가하게 될 상황에서 벌어질 법한 세계적인 식량 위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10억의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으면서 늘어난 지방을 주체하지 못하는가 하면, 다른 10억의 사람들은 건강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분조차 공급받지 못해 날로 수척해지고 있다. 나머지 35억의 사람들은 단백질 사다리에서 한 단이라도 더 올라가지 못해 안달하면서 구원과 절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전 세계적으로 7억에서 10억의 사람들이 절대 빈곤 속에서 살아간다고 추산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4명 중 1명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으며, 남미에서는 8명 중 1명이 매일 밤 굶주린 채 잠자리에 든다. 
 
  아시아와 태평양 연안에서는 28%의 사람들이 잦은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근동(近東)에서는 10명 중 1명이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오늘날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은 13억 명(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1/3을 육우 및 다른 가축들이 먹어치우는 세상에서 깜짝 놀랄 만한 통계)을 상회한다.  인류 역사상 전체 인구의 20%가량에 이르는 이토록 많은 사람이 영양실조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결론
 지구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3분의 1이 축우와 다른 가축들 사료로 소비되는 반면 거의 10억의 사람들이 곡식 부족으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북반구의 선진국 사람들은 육류 과잉 섭취로 심장발작, 암, 당뇨병 등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의 수가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의 수보다 더 많다면서 풍요병을 지적한다.  지구의 환경도 위협받고 있다.  
 
  
중남미의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열대 우림 지역이 이미 소 방목용 목초지로 개간 중이며 사하라 이남과 미국, 호주 남부 목장 지대에서 진행 중인 사막화의 주된 요인은 소 방목이라고 한다.  일례로 사육장에서 흘러나오는 축산 폐기물의 양을 살펴보면, 소 1만 마리를 사육하는 사육장에서 배출되는 유기 폐기물은 11만 인구의 도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양과 맞먹는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소고기를 먹거나 햄버거를 소비하는 것을 두고 악을 범했다고 말한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현대는 오직 시장의 힘과 실용주의적 목표만이 선택과 결정을 좌우하는 시대이다. 창조에 경의를 표하거나 동료를 존중하고, 환경을 보호하며, 미래 세대의 권리를 보호할 기회들이 거의 없어져 가고 있다.
 
 
 

창조 교실: 향기를 스스로 조절하는 꽃들

 담배꽃, 번식 늘리려 꿀에  쓴맛 섞다. 향기로 곤충 유혹한 후 니코틴 성분 섞어 쫓아내는 꽃 발견        - 사이언스 지 -

 꽃들과 식물들은 아주 이상하고 신기한 짓(?)을 한답니다. 그것은 왕성한 번식을 하려고 스스로 향기와 꿀을 조절하는 것이지요.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이안 볼드윈 박사팀은 식물이 향기나는 물질과 쓴맛이 나는 물질을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내 생식 능력을 최대화한다.라고 2008년 8월 29일 자 미국 과학 저널  사이언스 에 발표했습니다.  벌과 같은 곤충은 꽃에서 꿀을 빨 때 묻은 꽃가루를 다른 꽃에 옮기는 방식으로 식물의 수정을 돕습니다.

 볼드윈 박사팀은 담배(Nicotiana attenuata) 식물의 꽃이 처음 곤충을 유혹할 때 벤질아세톤(BA)이라는 향기 물질을 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곤충이 꿀을 빨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꿀에서 쓴맛을 내는 니코틴이 섞여 나왔습니다. 
 
 연구팀은 담배의 유전자를 조작해 각각 BA 또는 니코틴만 내는 담배꽃을 만들어 보았답니다.  그 결과 벤질아세톤이라는 향기 물질만 내는 꽃은 찾아오는 곤충의 수가 늘었지만, 꽃에 머무는 시간도 늘어 다른 꽃보다 곤충에게 더 많은 꿀을 빼앗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쓴맛인 니코틴만 내는 꽃에는 곤충이 찾아와도 오래 머물지 않고 금방 날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식물은 곤충에게 최소한의 꿀만 주어 보내야 합니다. 한정된 양의 꿀로 더 많은 곤충을  유혹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볼드윈 박사는 식물은 곤충을 유혹하거나 쫓아내도록, 곤충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화학 물질을 필요할 때 정확한 양을 생산할 수 있다.라며 화학 물질로 향기와 맛을 조절해 더 많은 곤충이 다녀가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곤충이 많이 다녀갈수록 꽃가루가 여러 장소에 퍼져 자손이 많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 향기와 꿀의 맛을 조절하는 똑똑한 꽃들을 누가 만드셨을까요?

신앙: 1부 - 오순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예수님의 재림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모든 예언의 성취가 눈앞에 현저하게 이루어지고, 복음을 전파하려는 기독교계의 선교 정신과 열망이 과거 어느 때보다 고무되어 있는 이때,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날 날을 기다리는 신실한 성도들의 간절한 소망과 우리를 하루바삐 만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렬한 소원이 있음에도 재림이 지체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머지않아 과거 오순절에 있었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다시 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에 참여할 사람들이 반드시 준비되어야 하고, 그 사람들이 준비되어야 영광스러운 재림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다가오는 오순절 역사에 참여할 신실한 사람들을 모으고 계십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를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사람이 독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편집실 -
 
 미국의 무디 선생만큼 많은 영혼을 인도하고 교회를 부흥시킨 목사도 드물다. 그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복음적이며 영감 있고 열정적인 설교로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했다. 
 
 그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고, 그의 집회가 있을 때마다 은혜를 받으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한 지역에서 무디 선생를 초청하여 전도 집회를 하려는 준비 모임이 열렸다. 이때 어떤 젊은 목회자가 벌떡 일어나 왜 강사로 무디만 고집합니까? 무디 외에는 설교자가 없단 말입니까? 그가 성령을 독점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존경받는 원로 목회자가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무디만이 성령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 시대에 무디를 독점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다시 오고 있다. 초대 교회 당시, 성령을 받고 온 세상을 복음으로 뒤엎어 놓았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마지막 주님의 재림이 오기 바로 직전 온 세상을 또다시 복음으로 바꾸어 놓을 큰 성령의 역사에 참여할 사람들이 준비되고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재림을 위한 모든 것 - 미국의 예언 성취, 교황권의 움직임, 마지막 때를 위한 사단의 계략과 핍박, 경제적인 위기와 함께 올 짐승의 표 환난 등 - 이 준비되었다 할지라도, 마지막 성령을 받고 나아가 복음의 비밀을 선포하는 큰소리 외침을 할 하나님의 증인들이 준비되지 않으면 이 세상의 죄의 역사가 마쳐지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또다시 재현될 놀라운 오순절의 역사를 체험할 사람들이 준비되어야 한다.  초대 교회의 오순절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그 역사 때문에 이 세상 복음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1) 십자가와 제자들
 십자가는 제자들에게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었고, 대실망과 큰 시련이었다. 예언적 안목을 가지지 못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로서의 사명과 구속 사업 그리고 영적인 은혜의 왕국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세의 영광만을 꿈꾸던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은 그들의 생애에 대단원의 종말을 고하는 사건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눅 23:31)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낙담에 빠져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그들의 주님은 거절과 정죄를 당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그리하여 제자들의 희망의 태양은 졌고 어두운 밤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기 전에 예수께서는 여러 번 제자들에게 미래를 열어 보이려고 하셨지만, 그들은 현세에 눈이 어두워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까닭에 그리스도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제자들은 그분께서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예수께서 수차례 반복하여 내가 죽은 지 제3일 만에 부활하리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현세의 이익과 영광을 가져다줄 메시아를 꿈꾸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이 세상의 왕국을 세우시고 왕으로 취임하시어 다스리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은혜의 왕국을 건설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주님이 운명하셨을 때 완전한 절망에 빠졌고, 실망과 슬픔에 빠진 제자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스승의 죽음이 자신들의 운명이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다락방 문을 굳게 잠근 채 함께 모여 있었다.
 
2)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필요했던 이유
 제자들은 그날도 다락방에 모였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소식과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엠마오의 두 제자가 한 증언은 그들을 더욱 혼란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들은 굳게 문을 닫아걸고 예측할 수 없는 그들의 어두운 미래에 대하여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들 앞에 어떤 분이 나타나셨다. 아무도 문을 두드린 일이 없었고 아무런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자들은 놀라고 어떻게 된 일인지를 몰라서 당황한다. 그리고 그들의 귀에 다른 사람의 음성이 아닌, 바로 그들 주님의 친숙한 음성이 들린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그들은 잔인한 못에 상하신 그분의 손과 발을 보았다. 저희가 매우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기며,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였다. 갑자기 드높은 찬송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믿음과 기쁨이 불신을 대신하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으로 그들은 부활하신 구주를 인정하였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다시 새롭게 예언과 진리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셨는데, 죽기 전에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기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기억나게 하셨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5~48)  
 
 그제야 제자들은 자신들의 사명과 그 사업의 성질과 범위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놀라운 진리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만 하였다.  예수님의 생애에 일어났던 일들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사건들을 가리킨 예언들, 하나님 계명의 신성성, 구속의 비밀에 대한 신비,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능력 등 그들이 목격한 모든 것을 온 세계에 알려야만 하였고, 이 일에 증인이 되어야 하였던 것이다.
 
 제자들은 온 세상 만민에게 은혜의 초청을 전하고 죄인들을 회개시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어야 하였다.  이제 이 세상의 구속 사업이 그들의 복음 전파에 달렸었다. 그런데 이 막중한 사업은 그들의 힘으로만은 불가능하였다. 그 사업을 수행하기에 그들은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하였다. 
 
 그들을 지배하는 똑같은 한 가지 생각은, 그들 자신이 그 위대한 복음 사업을 감당하기에 너무 준비가 되지 못한 연약한 상태라는 것이었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성령을 받는 것이 그들의 간절한 소원이 되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 어떻게 그 엄청난 사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3) 오순절 성령을 받기 위한 준비
 한마음으로 연합되지 않는 곳에 성령이 임하실 수 없다. 곧, 같은 진리의 경험 속에서, 한 성령 안에서 연합하지 않으면 충만한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령을 받고자 참된 회개로 마음을 겸손하게 하였으며, 불화와 최상권을 잡으려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서로의 잘못과 죄를 자복하고, 사랑으로 연합하고 그리스도인 교제를 통하여 하나로 연합하였다.  이 준비의 날들은 깊이 마음을 살피는 날들이었다.
 
 예수님의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명상하면서, 만일 그들이 과거의 3년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그들은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것이며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였다. 그들은 불신의 말과 행동으로 항상 주님을 슬프시게 한 일에 대하여 진심으로 뉘우치고 슬퍼하였다.
 
 고난과 시련을 통과한 후,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이해하고 배우게 된 제자들의 마음에 기억에서 사라졌던 진리들이 다시 떠올랐으며, 이제 그들은 같은 진리의 경험으로 연합되었다.  제자들은 사람들을 만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고, 복음과 그 놀라운 진리를 전하기에 부족함 없는 사람이 되도록, 그리고 죄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할 수 있도록 매우 열렬하게 기도하며 성령을 간구하였다.
 
1. 한마음과 한뜻으로
 제자들의 성령을 받기 위한 첫 번째 준비는 한마음과 한뜻이 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해야 할 사명을 위탁받은 제자들은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일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한 목적, 곧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고 복음을 온 세상 만민들에게 전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기도하였던 것이다. 제자들은 영적인 필요를 느끼고 그 귀한 영혼 구원 사업에 그들을 적합하게 만들어 줄 성령의 능력을 열렬히 간구하였다. 그들은 영혼 구원에 대한 부담에 눌려 있었다.  그들은 비로소 복음이 그들을 통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것을 깨닫고 간절하게 주님께 약속하신 능력을 간구하였다.
 
2. 한장소에 모여
 성령을 받기 위한 두 번째 중요한 준비는 한장소에 함께 모이는 것이었다.  함께 모여 성령을 간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한그룹으로 함께 모이는 일은 성령의 역사를 초청하기에 적합한 일이다.  그들은 한장소에 모여 떡을 떼며 예수님의 명령대로 성령이 임하시기를 간구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행 2:1~3)  드디어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다. 
 
 성령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사모하던 제자들에게 마침내 성령이 충만히 임했으며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그것을 체험하였다.  성령의 임하시는 역사와 감화로 참회와 자복의 기도가 용서에 대한 찬양의 노래와 뒤섞였다. 감사와 예언의 말씀이 들렸다.  마치 온 하늘의 선물이 퍼부어진 듯 충만하게 임하신 성령으로 그들은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사람들이 되었으며, 그들의 변화와 능력을 보고 하늘과 온 세계는 감탄하는 듯하였다. 
 
  제자들에게 비할 데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하늘의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늘의 능력으로 새롭게 날이 서고 하늘 번갯불에 달궈진 성령의 검은 그들의 모든 죄와 모든 불신을 제거하였다.

신앙: 2부 - 오순절 성령의 역사에 나타난 기적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7,13)
 
예수께서는 일찍이 제자들에게 내가 떠나가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약속된 성령의 축복을 받게 되리라는 신호였다.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성령의 임하심을 기다려야 했는데, 성령의 임하심과 능력이 없이는 그들에게 맡겨진 막중한 임무인 복음 전파 사업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순절이 이르자 하늘로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놀라운 성령의 능력이 준비된 사람들에게 퍼부어졌다. 

 초대 교회 당시 있었던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현재 기독교를 휩쓰는 거짓 성령의 운동과 흡사한 것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을, 다만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기적을 행하며, 방언을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며, 성령 운동의 정확한 목적을 알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오해이다.  참된 성령의 임하심과 성령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더 깊고 광범위한 의미가 있다. 진정한 성령 운동의 의미와 목적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정확한 개념에 대하여 함께 연구해 보자.

오순절 성령의 기적들
1) 방언의 은사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리비아인 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4~11)

 "성령의 역사" 하면 사람들은 방언만을 떠올린다. 물론 오순절 당시 성령의 부어 주심에 방언의 은사가 뒤따랐다.  방언은 그들의 행하는 역사가 하늘에서 온 선물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고, 방언의 은사로 그들은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방언의 은사가 필요한 확실한 목적과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왜 방언이 필요했는가?

1. 방언의 목적

 그 오순절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고 있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에 분산되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 자신이 거주하게 된 나라의 언어를 배워서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대인들이 이때에 예루살렘에 와서 종교 잔치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사용하는 서로 다른 모든 언어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 의해 나타났다.  이러한 언어의 다양성은 복음 선포에 큰 장애가 되었다. 그들이 꼭 들어야 할, 그리고 이해해야 할 복음의 소식과 참된 진리가 언어의 장벽으로 말미암아 방해를 받았던 것이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의 명절로서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이다. 이날은 로마 제국의 곳곳에 퍼져 있는 모든 진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예루살렘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날인데, 그 당시 적어도 15개 이상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날을 택하셔서 방언의 은사를 제자들에게 내리심으로써, 그곳을 방문 중인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모국어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하셨으며, 개심의 경험을 한 수많은 사람이 오순절의 복음을 듣고 제자들이 전한 새로운 복음을 가지고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방언의 목적은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함이었는데, 그중에 먼저 나타난 특징은 듣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복음을 듣게 된 것이었다.  물론 말하는 사람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되는 것도 방언의 은사에 포함되어 있지만, 말하는 사람이 자기의 언어로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께서 함께하셔서 듣는 사람이 자신의 방언으로 듣고 이해하게 되는 면도 포함되어 있었다.  복음을 듣던 많은 사람이 외치기를,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라고 한 것을 보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 자신 혼자로는 일생 이룰 수 없었을 일을 그들을 위해 해 주셨는데, 그것이 방언의 은사였고 방언의 은사를 통해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는 자신이 성령의 능력을 가졌다는 증명이나 과시를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어졌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방언의 특징
A. 듣는 사람들이 자기의 언어로 듣게 됨
B. 방언(외국어)을 말함 
 성경은 방언을 언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선물인 방언의 은사를 주시는 것은 실제적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마 28:19)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명령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한두 가지 정도의 언어밖에 모르는 제자들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겠는가?  비록 제자들이 총명한 사람들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들 대부분은 교육받지 못한 문맹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려면 방언의 은사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언어를 말하게 하는 초인간적이고 신비스러운 언어의 은사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이 성경 절들을 통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 방언 또는 언어는 하나의 표적으로서,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고도 그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김을 의미한다.  즉, 전에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언어로 유창한 설교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경에는 방언을 말한 예가 사도행전 2, 10, 19장에 3번 나온다. 이 성경 절의 예를 잘 살펴보면 방언의 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제 여러 다른 사람들의 언어들을 정확하게 말하면서 널리 외국에까지 진리를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초자연적인 선물은 세상에서 그들의 사명이 하늘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성령의 은사로 말하는 제자들의 언어는 그들의 본국어로 말하든지 외국어로 말하든지 깨끗하고 간결하고 정확하였다. 

2) 복음 전도의 파워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2:40~41)  오순절 날에 있었던 성령의 역사의 기적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복음 선포의 설득력과 힘이었다.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하루에 수천 명이 회개를 하게 되었는데, 이 일은 성령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놀라운 기적 중의 하나였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설교를 잘하고 능력이 있다 해도 그 기별을 듣고 하루에 수천 명이 회개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선포되는 기별에는 능력이 있었다.  그 기별은 생사를 결정하는 엄숙한 기별이었으며, 그 진리의 선포는 듣는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험의 기별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을 회개시킨 복음 기별의 능력과 파워는 그들이 전하는 기별이 하늘에서 왔다는 증거로 나타났으며, 성령이 아낌없이 충만하게 부어 주심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행 4:1,4,33) 
제자들이 나아가 은혜의 기별을 선포하였을 때, 많은 사람이 그 기별의 능력에 굴복하였다. 

 
예수께서 지상에 살아 계시던 당시 주님의 기별과 인도하심에 호기심을 가졌지만, 사람의 눈을 무서워하여 공공연하게 드러내 놓고 믿지 못하던 많은 제사장의 무리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교회는 각처에서 모여 온 회심자들로 가득 찼다. 뒤로 물러갔던 사람들이 다시 회심하였고, 죄인들은 하늘의 값진 진주를 구하며 신자들과 연합하였다. 그리고 복음에 대해 가장 혹독하게 반대하던 사람들도 진리를 깨닫고 복음의 옹호자들이 되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역사였는가!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의 형제들에게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들 사이에는 한 가지 관심사밖에 없었고, 한 가지 경쟁적인 주제로 다른 모든 문제가 사라졌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나타내고, 주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었다.

 성령을 받고 나아가 외친 사람들의 수고로, 진리의 말씀을 받고 또 자신들의 마음을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케 한 그 소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에 자기의 생애를 헌신한 사람들이 교회에 날로 증가하였다. 
어떤 위협으로도 그들을 제지하거나 두렵게 할 수가 없었다.

 성령께서 임하신 결과로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거룩한 은혜의 기사가 나타났다. 
약한 자가 그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슥 12:8)라는 예언이 마침내 그들에게 영광스럽게 성취되었다.

3) 치유의 은사와 기적
 성령의 역사의 현저한 증거 중 또 한 가지는 병 고침과 치유의 은사였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수많은 병자가 고침을 받았다. 그런데 그 당시에 나타났던 치유의 은사는 요즈음 기독교에서 일어나는 거짓 치유의 은사와 전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성령의 임하심의 결과로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행 2:43)났는데, 병 고침을 받는 은사에는 항상 먼저 하나님의 진리 말씀이 앞서서 전해졌고, 그곳에는 항상 참된 회개와 개혁이 뒤따랐다.  곧, 죄의 참회와 죄에서 돌이켜 새롭게 사는 헌신의 생애가 병 고침과 함께 수반되었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는 말씀과 또 주님께서 성령을 받은 자들이 후에 주님의 일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고 하신 말씀도 이루어졌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 14:12)  사도들은 하나님 말씀의 효과적인 전파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여 &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29~31)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행 5:12,15,16)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다. 병 고침과 치유의 은사를 보고 하늘의 능력의 부으심을 확신한 사람들은 이 기별과 성령의 운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실하게 믿게 되었다. 제자들이 권능으로 병을 고치는 놀라운 이적을 행한 것처럼, 사람들이 자신을 성령의 지배에 맡길 때 하나님은 능력 있게 일하실 수 있으시다. 

 성령의 약속은 어떤 시대나 어떤 족속에게 제한되어 있지 않다. 주님께서는 성령의 거룩한 감화가 세상 끝 날까지 그분을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오순절 때부터 지금까지 보혜사 성령은 자신을 주님과 그분의 사업에 온전히 바친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 성령은 권고자로, 성결케 하는 자로, 인도자로 그리고 증인으로 함께 하신다.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들은 매일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며, 구세주의 사랑과 그 구원하시는 은혜를 더욱 힘 있고 분명하게 세상에 증거할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신앙: 3부 - 온 세상에 한 번 전파되었던 복음

1) 복음 전파를 위한 무대가 준비되었었다
 초대 교회 당시 오순절에 내린 성령을 통해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되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무대를 준비해 놓으셨었다. 복음이 짧은 시간 안에 수월하게 전파되기 위해 갖추어졌던 중요한 무대는 그 당시 정치적으로 세계를 장악하여 제패하던 로마의 통치였다.
 
 로마의 세계 통일은 온 세계에 한 문화, 한 언어(헬라어) 그리고 주된 교통수단이었던 실크로드의 활성화를 가져왔고, 이 모든 여건은 복음이 짧은 기간이었던 약 30년 안에 온 세상에 전파되도록 촉진하는 주요 매개체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는 이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갖추어져야 했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복음 전파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성령의 부어 주심이었고,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의 그릇이 준비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물론 온 세상의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지만,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한 가지 과제를 이루어 놓으셨는데, 그것은 이 세상 땅끝까지 전해져야 할 복음 전파 사업을 위해 필요한 주님의 증인들을 만들어 놓으시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임무를 위하여 제자들이 택함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락방에 모였던 신실한 소수의 성도 120명, 회개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비워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경험한 진실한 성도들을 통하여 위대한 복음 전파 완수를 이루셨다.

복음 전파를 위해 준비되었던 세상의 무대

 그 당시에 온 세상이 한 나라의 통치 아래 통합되어 있었다. (로마)  세상이 한 가지의 언어로 통일되어 있었다. (헬라어)  여행의 자유가 있었고, 교통이 편리해져 있었다. (로마의 비단길과 우편로)

 사람들이 가식과 무의미한 종교의식에 지쳐 있었고, 참 진리와 살아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갈망하고 있었다.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흩어진 유대인들이 절기 때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죄의 잔이 찼다.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라도 복음의 능력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님의 교회는 타락하여 깊은 어둠 가운데 있었다. 진리보다 형식과 인간의 유전을 강조하며 따르고 있었다.
 
오순절 당시 온 세상은 진리의 빛을 갈망하고 있었고, 메시아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방인들 사이에 성행하던 이방 종교 가운데는 미신과 오류가 난무하고 있었고, 유대교에는 형식과 의식이 진정한 복음과 진리를 가리고 있었다. 
 
 이 모든 흑암의 일을 멸하시고, 진리의 빛을 밝혀 놓으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제자들은 참된 복음을 이 땅에 전파하여야만 하였고, 그 복음 사업의 효과적인 전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무대를 준비해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기 위하여 역사하셨던 감동적인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섭리가 많이 있었다.

2) 복음 전파를 촉진한 핍박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받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허락하셔서 복음 전파가 더 멀리까지 이루어지게 하셨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참 교회,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핍박이 밀어닥쳤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자처하는 교회의 조직은 더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가 아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들의 제사 제도를 통하는 의식을 고수하지 않는 새로운 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를 통한 용서와 구원을 믿는 그리스도교를 핍박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핍박은 복음 사업을 크게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루살렘에서의 복음 전파와 말씀 사역에 큰 성공이 따랐기 때문에, 제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라는 구주의 사명을 생각하지 않고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무를 위험이 있었다.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새로 개심한 사람들을 교육해 내보내는 대신, 이미 성취한 일에 만족하여 안주하려는 위험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제자들이 국외로 흩어져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게 하시기 위하여 핍박을 허락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신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다.

 핍박 때문에 흩어졌을 때, 그들은 선교 정신으로 충만하여 나아갔다. 그들은 그들 사명의 책임을 깨달았고, 굶주린 세상을 위한 생명의 떡을 가지고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떼어 주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을 강권하심을 깨달았다.  주의 성령께서 그들을 통하여 일하셨고,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을 성취했다. 이 하나님의 대표자들이 복음을 선포하러 나아갔을 때, 전에는 결코 본 일이 없었던 하나님 영광의 계시가 드러났고, 거룩한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진동시켰다. 그리하여 단 한 세대 내에 각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

3) 고난과 박해를 넘어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사도들의 전도 사업와 봉사의 결과들은 정말 영광스러웠다. 그들은 학문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의 사업에 대한 그들의 헌신은 전적인 것이었고, 성령의 가르치심 아래 그들은 맡겨진 큰 사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모든 설교의 주제였고,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그 유일한 이름이 높임을 받았다. 부활하신 구주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 수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아 복음을 받아들였다.

 제자들의 생애는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졌다. 은혜와 진리가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동기를 고무시키고, 행동을 제어하였다. 이기심은 사라지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심연에 잠긴 그들에게 있어서, 여호와의 명예가 그들의 명예가 되었고, 여호와의 진리가 그들의 진리가 되었고, 그들은 전력을 다하여 복음 전파 사업을 위하여 투쟁하였다.  복음 사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도들이 그들의 사명을 성취한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으로였다.  그리스도교를 확장시키는 일에는 고난과 쓰라린 슬픔이 따랐다. 제자들은 끊임없이 빈곤과 비방과 박해에 직면하였지만, 자신들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을 기뻐하였다.

 복음 사업에 최선봉에 선 사람들은 차례로 원수의 손에 쓰러졌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고, 야고보는 칼에 죽임을 당하였고, 바울은 목 베임을 당하였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요한은 정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교회는 성장하였다.
 
 
새로운 일꾼들이 넘어진 사람들을 대신하고 건물에는 돌에 돌이 첩 놓이게 되어 진리의 탑은 점점 높아졌다.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라는 성전은 서서히 올라갔으며, 그리하여 변치 않는 하나님의 진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예스럽게 우리에게 전수되었다.

 이 귀한 진리는 마지막 시대에 한 번 더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  초대 교회 오순절 성령의 역사 시대인 사도 시대 이후의 여러 세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성전 건축은 결코 그쳐진 적이 없다.  오랜 세월을 거쳐 오류와 미신의 어둠을 뚫고 쏟아져 나오는 빛나는 진리의 산 돌들이 있다.
 
 
진리를 간직한 이 귀중한 보석들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더 밝은 빛을 비출 것이며, 소중하게 전수된 하나님의 진리의 능력을 증명할 것이다.  바울과 다른 사도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산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성전 건축에 그들의 역할을 이행하였다. 그러나 건물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이 진리가 온전히 회복되고 온 세상 끝까지 전해져서 세상 만민들이 모두 구원을 얻도록 다시 한 번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그런데 그 막중한 사업을 할 사람들은 마지막 세대인 바로 우리들이다.

신앙: 4부 - 지금도 무대가 준비되어 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끝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오순절 당시 성령의 역사로 복음이 한 번 온 세상에 전파되었듯이, 예수님의 재림 직전 마지막 시대에 다시 한 번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벧후 3:9)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복음이 누구에게나 다 전파되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게 하신다.

 오순절 당시에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고 확산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그 당시와 같이 복음이 확산될 수 있는 상황과 무대가 준비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초림하셨을 그때에 때가 다 차 있었고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무대가 잘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임하도록 모든 여건과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지금 현재도 이 세상은 예수께서 다시 재림하시기 전 복음의 전파가 이루어지도록 모든 여건과 무대가 완전히 준비되어 있다.  현재 이루어지는 세상의 모든 예언의 성취와 징조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성경의 예언들이 다 이루어지는 시간이며 예수께서 오실 시간이 임박했다. 때가 찬 것이다!  
 
복음의 전파와 확산을 위해 준비된 현시대의 세계 무대
1) 정치적 무대: 세계화(global) 시대의 도래  
 오순절 당시에 온 세상이 한 나라의 통치 아래 통합되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세계도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아니, 통합되었다기보다 이 지구촌은 이제 하나의 작은 마을(village)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같은 정치적 이념과 협력 그리고 모방과 유대관계로 말미암아 세계의 정치는 하나로 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강국들의 영향력(미국 같은 나라)은 매우 커서 사실상 세계를 제패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어떤 경우에는 UN조차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온 세계의 경제 문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상호 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각국 간의 공동 경제 체제의 협약과 글로벌 경제 체제로 인해 현시대의 각국 정치와 경제는 하나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2) 한가지 언어
 오순절 당시 헬라어가 세계 공통어가 될 만큼 한가지 언어로 통용되고 있었는데, 현대에는 영어(English)가 세상의 공통어가 되고 있다. 영어를 하면 세계 어느 곳에 가도 언어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성경과 모든 진리의 말씀들이 번역되어 있어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손쉽게 구하게 되어 있다.

3) 여행의 자유와 편리한 교통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지금은 말세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이 성취된 시대이다. 현시대는 비행기 여행 시대를 지나 로켓과 인공위성의 시대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제는 우주의 다른 위성(planet)으로의 여행도 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달이나 화성 탐사를 지나 이제는 새로운 별이나 은하계를 발견해 내는 놀라운 과학과 교통의 발달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4) 예언의 성취
 마지막에 대한 예언들을 기록해 놓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말세에 관한 예언 중 짐승의 표 환난 한 가지 외에는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다. 짐승의 표 환난이 시작되면 이 세상에는 더 이루어질 예언이 없으며 곧이어 예수님께서 재강림하시는 사건이 오게 된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이 세상의 마지막을 알리는 주요한 예언들이 이미 성취되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말세의 시작: 다니엘 8장과 9장의 2,300일 예언의 성취
교황권의 부활: 계시록 13장의 죽게 되었던 짐승의 상처가 나은 일
미국의 예언: 계시록 13장의 새끼 양 같은 짐승의 출현과 새끼 양이 용처럼 말하는 일
짐승의 우상을 세우는 일: 계시록 13장에 짐승을 위한 우상이 세워지는 일
일곱 나팔과 셋째 화: 계시록 11장에 기록된 셋째 화의 예언의 성취가 시작됨
공산권의 무너짐: 다니엘 11장 40~45절의 예언 성취 등

5) 통신의 발달
 세계가 하나로 통일될 수 있는 중요한 여건 중의 하나는 통신의 발달이다. 옛날에는 말과 마차와 우편이 통신 전부였지만, 이제는 인공위성으로 인한 통신의 발달과 TV와 인터넷 그리고 컴퓨터와 이메일의 사용으로 지구촌의 모든 일이 몇 초 안에 다 중계되고 소식이 전해진다. 통신의 발달이야말로 복음 전파의 가장 효과적인 매체이다. 원하기만 하면 통신으로 복음을 삽시간에 다 전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되어 있다.

6) 참된 진리와 하나님을 구함

 현시대처럼 모든 종류의 종교와 교리와 이론들이 난무하는 시대는 과거에 없었다.  인간이 만든 유전과 진정한 복음에 반하는 오류들이 기독교를 휩쓸고 있으며, 거짓 성령의 운동이 신실한 신자들을 기만하고 있다.  기독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인간의 여러 가지 다른 가르침들로 혼합된 교리들을 설파하고 있어 혼란스러운 시대이다.  세상의 진실한 사람들은 순수하고 진정한 복음과 진리와 신앙을 갈망하고 있다.  오순절 당시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종교의식에 지쳐 있던 사람들, 메시아를 거절한 가식적인 유대 종교와 이교의 미신과 위협에 지쳐 있던 자들이 복음을 듣고 기뻐하였듯이, 현대에도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지친 자들이 복음과 진리를 갈망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7) 죄의 참상

 이 세상의 범죄의 참상은 가상할 만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저질러지는 범죄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해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천륜을 거스르는 범죄들이 태연하게 머리를 들고 있으며, 정신 구조에 이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범죄가 지구촌을 채우고 있다.  범죄의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조차 이제는 웬만한 범죄 수준 아니면 충격조차 받지 않는, 마음이 무디어진 상태가 된 것이다. 정말 이제는 죄악의 잔이 다 찼다. 예수께서 오실 때가 다 되었다.

8) 부절제와 타락
 
 예수님 초림 당시에 사단은 자신이 세상을 장악하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귀신 들린 자들이 그렇게 많았고 잘못된 오류의 가르침과 미신의 가르침들에 묶여서 사는 가련한 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자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다.  교회는 어둡고 믿는 자들은 잘못된 예언의 해석으로 정신이 혼미해져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잘못된 가르침에 의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을 엉뚱하게 믿고 있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이 모든 것을 타파해야 했다.  그 당시 로마와 헬라의 문화는 사치와 부절제와 도덕적 타락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로마 나라 통치의 종말은 엄격한 의미에서 사치와 부절제와 타락으로부터 기인하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이 땅에 두 번째 오시려고 하는 시점에 처한 세상의 타락상은 이전 세상의 수십 배, 아니 수백 배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치와 부절제와 부도덕의 죄로 인해 예수님의 초림 당시처럼 마귀의 영에 미혹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부절제로 사람들의 몸이 너무 약해져서 온전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성령의 거하실 수 없는 정신 상태에 빠져 있다. 
또한, 부절제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건강과 저항력이 너무 약해지고 공해와 항생제의 남용 탓인 새로운 병균의 출현이 인간의 과학을 앞서고 있다. 그리고 제어할 수 없는 전염성 있는 질병의 유행은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또한, 창조주의 권위에 도전하는 복제와 유전자 조작, 의술들은 이 세상에 마지막이 가까움을 알리는 경종이 되고 있다. 주님께서 오셔야 할 시간이 다 찼다.

9) 경제적인 몰락

 미국을 거점으로 시작한 경제의 몰락과 공황 수준에 다다른 현재의 경제 상황은 많은 사람을 두렵게 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실업률을 보라! 그리고 미국의 실업률과 주(state)들의 파산을 보라. 구제 금융으로 막아 보려고 하지만 역부족인 경제 몰락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들을 난관에서 구해 줄 어떤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 같다. 위기 상황이 오면 아무리 좋은 사회라고 할지라도 갑자기 무법 세상으로 변할 수가 있다. 전기만 24시간 나가도 약탈, 방화가 일어나며, 무법천지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무법 사태를 막고자 독재나 사회주의 체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는 것이다.

 경제적인 위기는 짐승의 표 환난을 부추기고 있다. 마지막 남은 한 가지 예언의 성취, 짐승의 표 강요의 무대가 준비되어 가고 있다.   지금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해야 할 때이다. 복음을 땅끝까지 짧은 시간 내에, 한꺼번에 전할 기회가 왔다. 
예수님께서 이제 곧 죄와 상관없이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을 데리러 오실 것이다. 그러나 그 바로 전에 복음이 이 세상에 사는 누구에게나 전해져야 하며, 그렇게 될 수 있는 무대가 이제 다 준비되어 있다.

신앙: 5부 - 마지막 증인이 생겨야 끝이 온다

왜 예수님의 재림이 이렇게 지체되고 있는 것일까?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고, 모든 무대가 다 준비되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다리고 계시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재림을 연기하고 계시는 것일까?  죄의 잔이 아직 다 차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예정된 시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천국 복음이 아직 온 세상에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는 구절은 예수께서 남기신 마지막 선포이자 명령인데, 그것은 이 세상 끝까지 천국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끝이 온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만일 천국 복음이 아직 온 세상에 다 전파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이 일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아무리 빨리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매일 태어나는 약 33만 명의 신생아의 숫자를 따라잡을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의 숫자는 여전히 엄청난 숫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언제 천국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예수께서 오실 수가 있게 될 것인가?

1) 증거되기 위하여?
 마태복음 24장 14절을 깊이 살펴보면, 거기에는 두 가지의 이중적인 의미가 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데에는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먼저 증거되기 위하여.이다. 증거된다.는 구절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복음대로 생애를 증명하며 사는 하나님의 증인의 탄생을 예고하는 구절이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하는 것도 예수님의 재림을 충족시키기 위한 조건이 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위한 증인들이 탄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마지막을 위하여, 그리고 예수 재림을 위하여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성령의 큰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모든 준비를 다 마치셨다. 이제 필요한 것은 증인들이다.  곧, 마지막 시대에 있을 큰 성령 운동에 참여하여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과 힘을 온 세상에 증거하고, 하나님을 세상과 우주에 변호할 증인들만 준비되면 되는 것이다.

2) 증인들

 성경은 마지막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사단과 싸워 마침내 승리할 남은 무리, 즉 하나님의 증인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과연 온 세상과 우주에 하나님의 입장을 변호하며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증인들이 나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하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오시기 직전, 지구에서 살 마지막 세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흠이 없는 한 백성을 가지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 일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저술하고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이들에 대하여 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그들은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 마지막 사단과의 투쟁에 증인으로 설 사람들이며, 또 큰 환난을 견디고 나오는 자들로서,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아 공중에서 홀연히 변화되어 주님을 맞을 사람들인데, 그들은 이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있으며(계 7:2~3),  또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으며(계 14:1),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며,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으며, 사람 가운데 구속을 받아 시온 산에서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사람들(계 14:1~5), 곧 십사만 사천 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3) 증인들의 사명과 필요성

 이 마지막 남은 무리의 가장 중대한 사명은 증인으로서의 사명이다. 그들은 우주에 하나님을 변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 하나님의 명예, 그리스도의 명예는 그분 백성의 품성을 온전케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 연관된 것은 우리의 명예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호와 그분의 성품이다. 그러므로 증인들이 준비되어야 하늘에서 성령의 큰 역사가 임할 것이고, 그 증인들이 준비되면 하나님께서 최후의 대쟁투와 환난을 허락하실 것이며, 그제야 세상 끝이 오게 되는 것이다. 이 증인들은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 즉 가장 어렵고 견디기 어려운 시험과 시련과 고통 그리고 짐승의 표 핍박과 환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이다.  과거 역사상 인간이 결코 겪어 본 적이 없는 시험과 고난을 통과하면서도 그들은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며, 죄와 유혹을 이기고 승리한다. 그러므로 이 남은 무리 증인들 앞에서는 그 아무라도 죄에 대해 변명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때문에 사단의 고소는 잠잠해지고, 하나님의 법이 옳았고 공의롭다는 것이 온 우주에 증명된다. 증인이 없으면 사단이 고소한 하늘에 걸려 있는 소송 사건은 끝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증명하는 일이 지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증인이 준비되는 것은 지구의 역사를 마치는 장에 있어서 중차대한 몫을 담당한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롬 3:4) 여기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은 고소가 취하되다., 무죄를 선고받다., 명예가 회복된다.라는 의미이다. 하늘에서 시작된 선과 악의 대쟁투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사단의 고소가 끝이 나야 하고 취하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명은 의롭다는 것이 증명되고 하나님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보좌의 명예를 걸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성취할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약속하실 때 그분은 언제나 그분의 이름을 담보로 내놓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예와 보좌는 그분께서 마지막 세대인 남은 무리를 통해 무엇을 이루실 것인가에 달린 것이다.

4) 증인들의 성품과 준비
 이 지구를 위한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계획에 지연이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사단의 고소를 공박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성호와 계명을 변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야 하기 때문이다.  증인들이 나타나 이 일을 해야 이제 다 되었다!라는 선고와 함께 세상 끝이 올 수 있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증명하는 일은 다른 것이 아닌 성품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성호와 명예를 변호하는 일은 바로 그분 백성의 성품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 속에 완전하게 재현될 때 하나님은 그분의 소유를 찾으시려고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2절에 보면 남은 무리는 예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예수 믿음이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되지만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가? 예수께서는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라고 하시며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지하는 생애를 사셨다.  하나님 아버지와 혼연일체가 되어 사신 예수께서는 지구 상에 계실 때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그분의 성품을 옹호하셨다.
 
 예수께서는 증인이 되셔서 그분의 생애와 성품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은 선하고 그분의 성품은 사랑이라는 것을 보이셨다.  그분은 생각으로라도 죄를 짓지 않으시고 순결한 생애를 사셨다. 그렇다면 과연 끊임없는 반역 속에 살아온 죄된 인간이 예수님이 사셨던 것처럼 생애와 성품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며 계명을 지키는 생애를 살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할 수 있으셨다지만, 인간은 할 수 있는가? 대답은 Yes이다. 이 일은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이 일은 가능하다.  우리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굴복하여 새 마음을 받을 때,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임재하실 때, 우리는 죄와 악한 것을 미워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자연스럽게 살게 된다.  거듭난 사람이 의도적으로 고의적으로 죄를 품고 하나님께 반역할 수 있는가?  예전의 생애 그대로 죄의 종이 되어 살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진정한 거듭남은 마음속에 사랑으로 쓰인 새 계명을 가지게 하고, 머리와 마음에 새겨진 사랑의 새 계명인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여 그 뜻대로 살고 싶은 열망이 넘치게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성품이 거듭난 사람 속에 재현되는 것이다.

5) 현대 오순절 성령 운동은 더 큰 능력의 운동이다

 현대판 오순절 성령 운동이 오고 있다. 이 두 번째의 성령의 역사는 첫 번째 오순절 성령의 역사보다 훨씬 더 크고 놀랍고 능력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역사로 말미암아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삽시간에 복음 사업을 마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이 현대판 오순절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계 18:1)  이 성경 절에 나오는, 천사가 큰 권세를 가지고 그의 영광으로 땅을 환하게 하는 사건은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현대 오순절 큰 성령의 운동을 가리키고 있다. 온 땅이 그의 영광으로 환해진다는 뜻은, 그 운동의 능력과 힘이 온 세상을 뒤엎고도 남을 만큼 영광스럽고 놀라운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 오는 오순절의 역사, 곧 현대 오순절 성령의 운동은 첫 번째의 것보다 더 놀랍고 크고 힘있는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 계시록 18장의 운동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성령의 운동으로 인한 큰소리 외침이며, 이 외쳐지는 복음의 기별로 온 세상은 구원과 멸망 양자 간에 선택하게 될 것이며, 이 일 때문에 사람들이 영생을 위해 준비되고 결정지어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남은 무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성령을 받고 세상에 나아가 외칠 때, 주의 영광으로, 즉 그들 속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과 빛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환하여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큰소리 외침을 듣고 무엇이 참된 복음이며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며, 바벨론 속에 있는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 무너진 바벨론과 죄악에서 나오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현대판 오순절 성령의 영광스러운 운동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자기들 속에 이룬 하나님의 종들이 나가서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외치는 운동인데, 이렇게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이 성령의 큰 능력을 힘입어 큰소리 외침을 하게 될 때, 준비된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나오게 되며, 이 외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환난의 시기를 잘 통과할 수 있도록 활력을 주고 준비시키게 될 것이다.  그때에 온 세상은 그들이 전하는 마지막 능력 있는 기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해질 것인데, 이것이 현대 오순절 성령 운동이 될 것이다.

6) 현대 오순절 성령의 역사에 참여할 사람들이 준비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잔잔한 성령의 역사로 각 개인 속에 역사하신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계 곳곳에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준비되어 가고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준비시키고 계시다.  말씀을 통해서, 고난을 통해서, 시련을 통과하며 정결함을 입는 과정을 겪게 하셔서, 또 겸손하게 낮추는 법을 배우게 하셔서, 오류에 빠져서 복음의 진수를 보지 못하던 영적 눈을 뜨게 하셔서, 때로는 재물과 명예를 거두어 가심으로, 그리하여 영적으로 깨어나 이 세상의 헛됨과 영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심으로 그분의 백성을 준비시키신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마지막 성령의 운동에 참여할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분의 놀라운 성령을 부어 주시기 위하여 준비된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성령을 받기에 넉넉하도록 마음을 비운 깨끗한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마지막 성령을 받고 담대하게 나아가 바벨론의 죄악을 경고할 용기있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도처에 하나님의 증인들이 준비되어 가고 있다. 성령 받을 준비를 마쳐 가는 사람들이 준비되고 있다. 독자 여러분은 하나님의 증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가? 마지막 성령의 큰 운동에 참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가?

 독자 여러분은 진실로 예수께서 속히 오시기를 바라는가? 온 세상에 복음이 빨리 전해져서 이 세상 복음 사업을 마치고 속히 하늘에 가기를 원하는가? 이 지구의 끝이 오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기를, 또 죄와 고통이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라는가?
경제적인 어려움과 혼란을 벗어나고, 온갖 범죄, 아동 학대와 끊임없는 폭력, 부정직과 부정에서 벗어나고, 부조화와 갈등이 심한 현실 사회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가?  이 모든 문제에 끝을 낼 수 있는 단 한 가지 해결책은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죄의 역사가 끝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위하여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증인이 준비되어야 한다.  현대 오순절이 다시 오고 있다!  앞으로 오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이전 오순절에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럽고 놀랍고 힘있는 성령의 운동이 될 것이다.  당신은 이 성령의 운동에 참여할 준비가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증인들을 모으실 때,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 참여하는 독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만남

서정희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기 원했을 때
주님께서는 조용히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죄의 가시들로 덮여 뻗뻗이 마른 나를
나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이기심의 가시
무지의 가시
교만의 가시
거짓의 가시
배반의 가시
시기와 질투의 가시
더러움의 가시가
나를 안고 계신 그분의 가슴과 손
나를 아시고 이해하시는 그분의 이마
그리고 나를 위해 먼저 걸어가셨던 그분의 발을
깊이 깊이 찌르고 있건만
그분은 나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정녕
십자가의 못은 내가 박은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침묵으로 눈감으시며
나를 위해 흘린
동정의 눈물과 뜨거운 피는
내 가시들을 덮어 주었고
나는 나의 가시들이 부끄러워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길 바랬습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내게 죄에서 돌아서야 함과
예수님만을 따라가고 싶은
소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죽어서도 나를 잊지 못해
삼일 만에 다시 일어나신 주님
하늘로 가셨던 이유는
내게 승리와 온전함 주시고자
그분의 피로 기도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나를 위한 끊이지 않는 기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그분을 따라가게 한 능력이었습니다.

나 같은 자에게
희망과 생명 주시고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신 주님
보답할 길은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며
그분을 닮는 길밖에 없음을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알았습니다.

질문과 답변: 하늘나라는 정말 존재하나요?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우리가 거할 곳인 하늘을처소(place:장소)라고 부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뉴욕은 한 장소입니다. 하늘도 뉴욕처럼 실제적인 장소가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한 장소를 준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셨고,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 장소로 데려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늘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살펴보면, 그곳은 실제적이며 가장 흥미로운 곳입니다. 앞으로 있을 영광스러운 신세계의 수도를 새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데, 예수님과 바울의 증언에 따르면, 그것은 지금 건설 중에 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고 계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위하여 마련하고 계신 성은 어떻게 생긴 성이며, 언제 그 준비가 끝날 것인지 의문이 생기지요?

 요한계시록 21장 2절을 보십시오."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요한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별들의 세계 저 건너 편에 있는 낙원에서 여러분과 저를 위하여 저택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언젠가 그 눈부시게 빛나는 성이 바로 이 지구 위에 내려와 의인들의 영원한 거처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성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까요? 요한계시록 21장 16절을 보면,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둘레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를 환산해보면, 그 크기는 미국의 5개주, 즉 버지니아, 콜롬비아, 펜실베니아, 뉴저지, 로드 아일랜드를 합친 정도의 크기가 될 것입니다.  그 성은 완전히 정사각형인데, 둘레가 12,000 스타디온(1,500마일 혹은 약 3,000Km)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성의 한 면이 375마일(약 750Km) 정도 되는 것이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거대한 성벽 안에 뉴욕만한 도시가 450개 정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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