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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know? - 창조인가? 진화인가?

우주, 인간, 지구, 그리고 생물계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은 크게 진화론과 창조론, 이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말씀으로 6일 만에 창조하셨다는 이론이며, 따라서 모든 만물의 나이도 성경 역사에 따라 매우 젊을 수밖에 없게 된다. 진화론은 원소, 우주, 생명체, 인간 등이 수십억 년에 걸쳐서 서서히 자발적으로, 그리고 우연히 발전해 왔다는 이론이다.
대개 사람들이 창조론을 부인하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진화론은 논리적인데 반하여, 창조론은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화론은 믿기가 쉽고, 창조론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믿기 어려운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우주, 물질, 원소, 인간 등의 기원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로 돌리는 것은, 실험실 안에서 다룰 수 없는 존재를 가상하여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결코 실험실에서 하나님을 검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창조된 우주와 자연계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는 있다.
진화론자들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데 있어서, 어떤 에너지나 외적 요인이 개입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매우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최근에 이루어진 모든 연구는 한결같이 물질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을 경우, 스스로 조직을 하여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점보 비행기를 보면서, 저렇게 크고 복잡한 기능과 구조를 가진 물체가 어떤 사람이나 기계의 도움 없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우연하게 만들어졌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말이 되겠는가? 현대 과학은 생명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적인 외부 존재가 어떤 정보나 에너지를 물질 속에 넣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면에서, 창조론은 매우 과학적인 논리에 잘 부합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우주와 천연계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도무지 논박할 수 없는 증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뉴턴, 로드 캘빈, 캠프톤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와 천문학자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놀라운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 엄청난 우주계를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우주가 놀랍도록 정확한 계획과 시간에 맞추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들은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신앙 5부: 하나님의 씨를 가진 여자의 남은 자손

하나님의 씨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 전수됐다. 그러나 마지막에 하나님의 씨를 가진, 그리고 하나님의 씨 역사의 진수와 절정을 보여주는 한 무리가 탄생할 것인데, 그들은 곧 여자의 남은 자손, 남은 무리이다.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씨를 가진 무리가 출현할 것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고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섰더라" (계 12:17).
여자의 남은 자손! 말만 들어도 얼마나 가슴 뛰는 위대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인가! 이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이 가능해지고, 이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가 우주에 증명되고, 이 사람들 때문에 믿음의 조상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남은 무리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며,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옹호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여 죽기까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순종할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씨의 능력을 친히 경험하고, 마음속에 구원의 창조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로서,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며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씨의 최종 단계인 열매 맺는 성품, 추수될 수 있는 장성한 성품의 분량을 이룬 사람들이다. 이 여자의 남은 무리의 특징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여자의 남은 자손의 특징

* 요일 3:6~10 -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특징 1. 하나님의 씨가 마음속에 거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 여자의 남은 무리는 하나님의 씨인 말씀으로 산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시므로, 예수님으로 인해 살고, 진리의 말씀대로 산다. 그러므로 말씀의 창조 능력이 마음속에 거하므로 회개와 거듭남과 영적 성장이 생애에 뚜렷이 나타난다. 그들은 하나님의 씨의 창조 능력을 체험하고 사는데, 그 창조의 과정인 구원의 역사가 그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씨가 마음속에 거하는 사람의 특징은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뜻과 명령인 계명을 지키는 생애를 산다는 것이다. 진리가 가르쳐주는 대로 모든 것을 순종하고 진리에 복종하며, 진리가 가르치는 대로 산다.

특징 2. 예수님 안에 거한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 여자의 남은 무리는 예수님의 임재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와 연결되어 있듯이, 이들은 매일 매 순간 주님 안에 거하는 경험을 하며 산다. 마치 에녹이 하나님과 삼백 년간 동행했듯이, 이들의 주님과의 동행은 너무 친밀하고 깊어서 떼어 놓을 수가 없다. 걸음마다, 호흡마다 늘 주님과 대화하는 기도로 하늘과 연결되어 있으며, 비록 이 세상에 거하지만, 하늘의 분위기 속에서 하늘을 호흡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시험이나 시련이 엄습해 오더라도 예수님 안에 거하므로 그들은 시험에 굴복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 안에서 화평과 평안을 얻으며, 고난 중에서도 길이 참고 기뻐할 수 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사단의 공격 화살을 직접 맞지 않는다.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그 화살은 그에게 닿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징 3. 범죄하지 않는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이 성경 구절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난해한 구절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여자의 남은 자손은 범죄하지 않는다. 아니 범죄치 못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씨가 거하기 때문이다. 정말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성경의 대답은 "예스"이다. 성경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했다고 말하며, 또한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성경을 영감의 글로 받을 것인가? 아니면 취하기 좋은 부분만 살짝 취하고 다른 것은 다 부인할 것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씨가, 생명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한 범죄치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곧, 성령이, 생명의 힘이 그 사람을 주관하고 있으므로 범죄치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마귀를 섬기든지, 하나님을 섬기든지 둘 중의 하나만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보좌를 둘로 나눌 수 없다. 우리 마음의 보좌에 사단이 앉아서 우리를 다스리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시든지 둘 중의 하나 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의 보좌에 좌정해 계실 때에, 그분께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과 은혜가 역사 하여 죄의 힘과 유혹과 습관들을 넉넉히 이기고도 남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 "은혜"라는 단어는 힘, 파워(power)라는 뜻으로 쓰여 있다. 은혜는 죄를 승리할 수 있는 힘, 능력이다. 하나님의 씨가 마음속에 거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를 이길 수 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롬 6:14). 어떻게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여 용서받은 사람이,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경험하고 체험한 사람이, 과거와 똑같은 죄의 파워 아래서 종노릇 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나님의 씨, 말씀의 능력, 진리이신 예수님의 능력이 마음속에서 역사 할 때에, 악한 것을 생각만 하여도 싫어지고, 죄와는 인연을 끊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은 생각도 하기 싫고 행하기도 싫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승리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온전히 경험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죄를 승리하는 사람들, 범죄치 못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여자의 남은 자손이다.

특징 4. 의를 행하는 자들이다

성경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의를 행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의를 행하는 자가 될 수 있는가? 어떻게 의를 행하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 의를 행한다는 말은 올바른 믿음, 행하게 하는 믿음을 가졌다는 말이다. 무엇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믿음인가?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예수께서 가지셨던 믿음을 말한다. 예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으며,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을 능력도 주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음을 믿는다. 그리하여 그런 생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가지셨던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심으로 모든 죄와 유혹에 승리하신 믿음이다.
의를 행하는 것은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일한 의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실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되고, 또 우리 속에 계신 예수께서 우리의 의가 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행하고 싶은 소원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의 이끄시는 대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나니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마귀의 아들들도 나타나고 하나님의 아들들도 나타나는데, 죄를 짓는 자는 마귀의 아들이고,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두 가지 유형 중 하나로 굳어져 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마귀의 자손으로 꼴 지어져 가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여자의 자손 하나님의 자녀로 꼴 지어져 가고 있다. 지금은 갈리는 시점이다. 하나님의 인을 받기 위하여 준비되고 있든지, 짐승의 표를 받기 위해 준비되고 있다.
여자의 남은 자손은 하나님의 씨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씨의 역사를 생애에 철저히 경험하고, 그 씨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문 앞 앉은뱅이를 만났을 때, 그들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 곧 생명이 있는 능력으로 그 앉은뱅이를 고쳤듯이, 하나님의 씨를 가진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큰일을 행할 것이다. 그들은 두 번째 오순절 성령(늦은 비 성령)을 받고 나아가 진리를 대담하게 전파할 것이다. 짐승의 정체와 짐승의 표, 그리고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용감하게 외칠 것이며, 바벨론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큰 소리로 불러낼 것이다. 또한, 바벨론의 죄악을 낱낱이 지적할 것이다. 짐승의 표의 환란이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 세계에 하나님의 공의를 증거하고, 온 우주에 하나님의 성품을 고스란히 드러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온전히 이룬 여자의 남은 자손, 그들의 사명은 얼마나 큰 것인가!
우리는 여자의 남은 자손에 포함되어야 한다. 여자의 자손들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을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지막에 짐승의 표가 내릴 때에 세상에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 용감하게 증거할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수께서 이기신 것과 같이 죄와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사람들이다. 하늘은 이러한 성품을 가진 성도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점점 꼴 지어져야 하는 때이다. 세상을 버리고, 세속적인 잡다한 일들과 얽매이기 쉬운 짐들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 우리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자!
이제 준비된 여자의 남은 자손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이 쳐질 때, 모든 독자가 하나님의 인을 받고,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는 여자의 남은 자손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신앙 4부: 하나님의 씨가 무슨 일을 하는가?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후손과 자손으로도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만,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씨는 말씀을 가리킨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시고 진리이시기 때문에 씨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한다. 그리고 씨의 발아시키는 능력을 성령의 역사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씨가 하는 역사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의 씨를 해석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씨 - 말씀

✽눅 8:9-11 -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씨 뿌리는 비유),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종종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의 이야기로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그중에서 유명한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예수께서는 "씨"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씨 속에는 생명이 있다. 씨앗마다 그 자체 속에 발아력이 있고, 생명력이 들어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도 생명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하나님의 씨는 변화를 일으킨다. 그 속에는 생명과 능력이 들어 있어서 자를 것은 쪼개고, 찌르고, 잘라 없앤 다음, 새로운 것을 생기게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씨로 말미암아 생기는 변화이다.
씨는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씨에 들어 있는 생명력이 싹을 트게 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 맺게 하는 것처럼, 진리의 말씀도 인간의 마음에 심어져 발아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변화시킨다. 겨자씨 한 개가 비록 미미해 보이는 가장 작은 씨일지라도 후에 자라서 새들이 깃드는 큰 겨자 나무가 되듯이, 진리의 말씀도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지면 사람을 놀랍게 변화시킨다. 진리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생명력이 속에서 발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이 있으므로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밭에 씨를 뿌리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진리의 씨를 뿌리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그분 자신을 가리켜 진리라고 하시며,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요 6:63, 5:24)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그분의 말씀 속에 있는 모든 약속에는 능력, 곧 하나님의 생명이 그 속에 있으므로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약속이 성취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2) 하나님의 씨가 하는 일

1. 발아하게 한다 - 회개와 거듭남

씨가 밭에 심기우는 것은 말씀과 복음이 사람의 마음에 심기는 것을 뜻한다. 씨가 발아하는 것은 영적 생활의 시작을 나타낸다. 그것은 사람이 처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될 수 있고, 또 자신이 땅속에 완전히 묻혀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나오는 거듭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식물의 발아처럼 그리스도인의 영적 신앙생활에도 싹이 트는 발아, 곧 출발점이 있는 것이다. 밭에 떨어진 씨가 발아하여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속에 진리의 말씀이 심어지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시면,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 변화가 생기는데, 그것은 먼저 죄를 통회하고 회개하고 버리는 변화이다. 영적으로 완전히 죽었던 영혼이 새롭게 눈을 뜨고 자신의 죽어 있는 상태에서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와 아울러 일어나는 변화는 거듭남이다. 사람이 믿음으로 말씀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옛 생애를 버릴 때 거듭남이 이르러 온다. 말씀의 능력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하는 것, 주님께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은 창조이다. 창조주께서 넣어 주신 생명은 오직 창조주만이 불러낼 수 있다. 씨가 싹이 트고 모든 식물이 자라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처럼, 영혼이 살아나고 변화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모든 구원의 과정은 창조이다. 구원은 창조이다. 인간이 회개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회개의 마음을 창조해 주신 것이고, 죄를 미워하고, 예전의 생활을 싫어하는 생각도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창조해 주셔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속에도 진리의 말씀의 씨가 심어졌는가? 그 씨가 발아해서 싹이 트고 있는가? 말씀의 능력으로 영혼이 새롭게 살아나는 경험을 우리도 하자!

2. 성장하게 한다 - 성장과 성화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막 4:28).
위의 성경 절을 볼 때 영적인 성장에는 단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씨를 받아들이면 발아의 다음 단계인 성장, 자라남이 수반된다. 그것을 성경은 싹과 이삭과 이삭에 충실한 곡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 난 싹이 갑자기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이제 막 익어가는 이삭이 추수될 만한 곡식으로 성숙할 수 없다. 그러나 싹이 갑자기 이삭이 될 수 없고 이삭이 갑자기 익어 추수될 수 없지만, 싹은 싹으로서 그대로 완전하고, 이삭은 이삭으로서 그대로 완전하다. 하나님께서 단계마다 필요한 빛과 양분을 주실 때 이를 받아들였으므로 그 단계는 그 단계로서 완전한 것이다.
씨 가운데 있는 배종, 배아는 하나님께서 그 속에 넣어 주신 생명력의 전개로 말미암아 자라나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씨가 발아해 자라나는 과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연계 속에 계속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씨에는 생명이 있고 땅에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무한하신 능력이 밤낮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씨는 아무런 수확도 내지 못한다. 마른 밭에 수분을 주기 위하여 비가 내려야 하고, 태양이 온기를 보내 주어야 하고, 땅에 묻힌 씨에는 전기가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식물이 자라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영적인 성장에도 계단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 또한 창조이다. 매일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마음을 창조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곧, 성화의 생애를 살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음으로 매일 계속적으로 자라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싹이 자라나고 이삭이 되는 것을 성화의 경험이라고 한다. 성화는 일생을 통해 이루어야 할 사업으로서, 거듭남과 칭의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삭이 되는 것도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싹이 틀 때 창조주의 능력이 필요했다면, 싹이 자라 이삭이 되는 데도 주의 능력이 필요하다. 성화도 우리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 이 일은 하나님의 성령과 계속 협력하므로 만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의 씨의 역사는 우리의 생애와 삶 속에 하나님의 품성이 이루어지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실제로 하나님의 생명과 품성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창조의 힘은 우리가 매 순간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소원을 넣어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님의 기쁘신 뜻을 행하며 영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성화 된다는 것, 곧 거룩한 생활을 산다는 것은, 매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고, 우리의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또 빛 가운데서처럼 시련과 어두움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보는 대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며, 주저하지 않는 신뢰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사랑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씨가 마음에 심어지고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화가 즐거운 과정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며 자라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3. 열매 맺게 한다 - 장성한 분량의 성품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막 4:28). 씨가 존재하는 목적의 최종 단계는 열매를 맺는 것이다. 열매를 맺어야 그 씨의 궁극적인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곡식이 자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싹을 내고 자라나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사 55:10) 주기 위해서이다. 그것처럼 하나님의 씨도 발아하고 자라나 장성한 분량의 그리스도의 성품, 추수될 수 있는 성품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생애의 목적은 열매 맺는 일이다. 곧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품성을 재현시키고 또 다른 사람에게서도 그 품성이 재현되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생애 최대의 목적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룬 사람, 하나님의 씨가 최종의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온전한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고 하나님의 인을 받아 마지막에 하나님의 증인으로 설 것이다. 그들의 성품은 예수님의 성품처럼 사랑이 많고, 인내하고 기뻐하며, 온유하고 겸손할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생애에는 성령의 열매가 많이 열릴 것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열매 맺는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여 그분과 항상 동행하며, 그분 안에 거하므로 늘 예수님의 능력으로 자신과 죄와 유혹과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며,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이나 시험 속에서도 죄를 짓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성품에는 예수님과 똑같은 성품이 나타나며, 그들의 품성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을 통해 세상에 그분의 품성을 나타내 보이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품성이 그분의 자녀들 속에 완전하게 재현될 때에 자기를 닮은 자녀들을 찾으시려고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이다.

신앙 3부: 당신은 누구의 씨인가? - 두가지 씨(II) -

여자의 후손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너무나 사랑하셨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세워진 구속의 계획은 범죄 후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라는 구속의 계획은 여자의 후손이 와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결국 범죄한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는 구원의 계획이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서 나온 구원의 경륜이었다. 그 구속의 계획 가운데는 여자의 후손(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여자의 후손들도 등장한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고, 여자의 후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과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위해 세상 마지막까지 충성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사람들이다. 지금 많은 사람이 여자의 후손, 곧 마지막 남은 자손의 대열에 참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되고 있으며, 마지막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꼴 지워져 가고 있다. 당신은 누구의 후손인가? 누구의 씨인가?

1) 구속의 경륜에 나타난 여자의 후손과 사단과의 관계


그런데 특별히 이 창세기 3장 15절에 처음으로 인류에게 발표된 구속의 경륜, 구속의 계획에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들어 있다. 그것은 사단과 인간 사이에 적의를 두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이다. 원어로 그 의미를 살펴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it shall bruise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창 3:15, 킹 제임스 영어 성경).
영어의 원래의 뜻을 보면 이렇다. "내가 사단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의를 넣어줄 것이다": "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인류의 타락 후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내리신 이 선고는, 선고인 동시에 하나의 예언이었다. 그것은 세상 초부터 세상 종말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에 있을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참가할 선과 악 사이의 대 쟁투를 미리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로 사단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사단과 인간 사이의 원수 관계는 선천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인류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범죄하였으므로 인간의 본성은 악해졌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연적으로 사단과 조화되었다. 죄인과 죄의 창시자인 사단과는 본질상으로 아무런 원수 관계가 존재치 않는다. 둘 다 반역으로 악해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선고를 하신다. "내가 사단과 너희 사이에 적의를 넣어 줄 것이다!" 이 말씀은 곧, 죄를 미워하고 악을 싫어하는 마음을 우리 속에 넣어주실 것이라는, 그렇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죄와 사단에 대한 증오심이 생기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영혼 속에 주입하시는 은혜이다. 만일 예수님의 회개케 하시는 은혜와 새롭게 하시는 능력이 없었으면, 인간은 계속해서 사단에게 사로잡혀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언제나 대기하고 있는 종노릇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새로운 원칙은 지금껏 평화롭던 곳에 투쟁을 일으킨다. 곧 사단과 죄에 대한 적의를 갖게 되는 변화가 생기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죄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는 사단을 거절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단과 인간 사이에 적의를 두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사단을 따르던 사람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절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 나타냈던 것과 똑같은 적의가 나타난다. 죄의 악함을 깨닫고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유혹을 거절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사단과의 사이에 적의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과 사단의 종들은 서로 조화될 수 없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고후 6:14~16).

2) 여자의 후손의 계보가 되는 하나님의 아들들

성경에 첫 번째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창세기에 나온다. 성경 절을 보면서 살펴보자.

✽창 4:25,26 -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는 말씀의 난외 주석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렸더라"라고 되어 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자, 경건한 자들의 계보가 끊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벨 대신에 또 다른 씨인 셋을 주셨고, 셋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들의 계보를 이어가게 하셨다. 그리하여 비로소 셋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 경건한 사람들의 계보에서 약속된 메시아,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께서 나셨다.
✽창 6:1~4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가인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면전을 떠나 먼 곳으로 가서 도시를 건설하고 그의 자손들을 낳아 살게 되었는데, 그들은 바로 악한 자들의 조상이 되었고, 성경은 그들을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시지 않는 육체의 사람들, 곧 사람의 아들들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이며, 그래서 천사와 사람이 결혼하여 낳은 자손이 "네피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자들, 하나님의 후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네피림의 뜻은 "거인", "장수"라는 뜻도 있지만 "포학한 자"라는 뜻을 더 많이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일찍부터 세상에 여자의 후손인 "하나님의 아들들"과 마귀의 후손인 "사람의 아들들"이 두 무리로 분리되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이 계보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영적인 눈을 떠서 보면, 지금 악한 자들은 점점 마귀의 성품을 나타내며 마귀의 자손으로 갈라져서 그의 형상으로 꼴 지어져 가고 있고, 하나님의 씨를 가진 여자의 후손, 곧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꼴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누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곧 여자의 후손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1.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

✽롬 8:14 -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하나님의 아들, 여자의 후손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 위의 성경 절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성경이 가르쳐주는 구원의 교리 중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구절인 로마서 8장 1절을 연구해 보면,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에 대하여 잘 설명되어 있다.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개역 한글 성경). 이 구절을 그냥 읽으면 성령의 인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내용의 성경 구절로 보인다. 그러나 그 원어의 의미를 읽어보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무엇이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하나님 아들들의 생애가 어떠한 것인지 알게 된다.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to them which are in Christ Jes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롬 8:1, 킹 제임스 영어 성경).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 (킹 제임스 한글 성경).
많은 그리스도인이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시인만 하면, 정죄함을 받지 않고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원어를 그대로 직역해 보면 단순히 그런 뜻만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정죄함을 받지 않는 자는 예수 안에 있다고, 예수를 그냥 믿는다고 말만 하는 자들이 아니다. 원어를 보면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않고 성령을 따라 걷는 사람들"(영어;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만이 정죄함을 받지 않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이며,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조건은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애를 사는 것, 성령을 따라 사는 생애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된다. 성경에 성령을 따라 걷는다는 표현은 현재 진행형으로 되어 있다. 그 뜻은 매일 매 순간 중단 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한 번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고, 한 시간만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니고, 중단 하지 않고 계속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속에서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을 부인하고 매 순간 성령을 따라 행하며 사는 사람, 즉 성령을 따라 사는 생애가 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지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으며 살고 있는가?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여자의 후손의 증거를 가졌는지 마음 깊이 살피자!

2.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갈 3:26~29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우리로 하나님께 가납 받게 하는 것은 믿음밖에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과 완전한 의를 이루어 놓으셨지만, 그 구원과 의를 받는 길은 "믿음"밖에는 없다.
성경에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으며,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도 바울도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8, 9)고 명료하게 진술하였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고 의롭게 되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성경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언급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롬 4:3; 창 15:6)다. 아브라함은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가졌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는 "믿음으로...순종하"여 그의 고향을 떠나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여행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아들 이삭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사실이 성경에 나온다. 그의 믿음은 순종하게 하는 참믿음이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산 믿음을 소유했었다는 사실은 그의 순종에 의하여 입증되었던 것이다. 그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이 역동적 산 믿음의 기초 위에서였다. 그러므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순종한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다. 사도 야고보는 진정한 믿음은 행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의 기록을 통해 보여 준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는 것을 "네가 보느냐"(약 2:22),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한 순종과 완전한 믿음의 모본을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믿음이 "예수 믿음"(계 14:12)이다. 우리는 다른 믿음이 아닌, "예수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의지하시고 믿는 믿음으로 모든 시험과 죄를 이기고 승리하셨으며, 우리도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의로운 생애를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과 그분의 의를 진정한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의롭다는 칭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까지 받게 된다. 죄를 통회하고 회개하고 버리며, 예수님과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예수님의 임재 속에서 그분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는 것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는 것이며, 이렇게 참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

3. 거듭남을 경험한다

✽롬 2:28,29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성경은 표면적 유대인이 아닌, 이면적 유대인인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참 자녀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면적 유대인, 곧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조건은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 곧 거듭나는 것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인 여자의 후손의 특징은 거듭난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다...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들이었지만,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이렇게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영적 왕국의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된,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다. 거듭남의 변화 없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신비한 거듭남의 경험이 없이는 하나님의 참 자녀로 입양될 수 없는 것이다.
거듭남은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깨닫지 못하는 과정이다. 믿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고 교회에만 형식적으로 다니는 교인들 중에 진정으로 거듭나고 변화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거듭난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모든 것을 다 바치고 회개하고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 거듭남이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고,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교만하고 화를 잘 내며, 복수하기를 좋아하고 조급하여 참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님만 사랑하고, 겸손하고 온유하며, 인내하고 남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최대의 기쁨이 되는 변화가 이르러 오는 것이다.
세속적이고 죄를 사랑하는 마음을 변화시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며, 그리스도의 말할 수 없는 사랑과 그분의 은혜의 매력과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깨닫게 하여, 영혼이 거룩한 사랑에 젖고 하늘의 신비에 사로잡히게 하는 거듭남은 작은 일이 아니다. 죄인이 이러한 거듭남을 경험할 때, 그의 이전 생애는 가증하고 증오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는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낮추고 마음을 깨뜨리게 되며, 그리스도를 영혼의 생명과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사람은 이전의 쾌락들을 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 새로운 애정, 새로운 관심, 새로운 뜻을 갖게 된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지금까지 그리스도보다 더 좋아했던 것들은 이제 버려지고, 한때는 매력 없어 보이던 영적인 것과 하늘이 이제는 풍부하고 영광스럽게 보이며, 하늘 본향을 영원히 거할 장래의 집으로 생각하게 되어 이 세상의 것들에는 흥미를 잃게 된다. 괴로운 듯 보이던 성화의 길이 이제는 기쁨이 되고, 지루하고 흥미 없던 하나님의 말씀이 꿀맛 같이 달게 된다. 당신은 성령이 늘 마음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진리가 마음에 새겨지는 아름다운 경험, 거듭남을 체험했는가? 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의 뜻을 따라가는 생활을 살고 있는가 스스로 살펴보자.
지금은 사람들이 여자의 후손과 마귀의 후손으로 갈라지는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마지막 시대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음과 성품과 행동이 점점 하나님의 형상으로 꼴 지어져 가고 있고, 마귀의 자손들은 하는 모든 행동과 마음의 의도가 마귀의 것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지금은 누가 누구의 씨인지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없지만, 그 사람이 누구의 씨인지 만천하에 드러나고 갈라지는 것이 짐승의 표이다. 그동안 갈고 닦아 온 성품이 마지막 결정을 해야 할 짐승의 표의 환란 때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를 따라가고 있는가? 당신은 누구를 닮아가고 있는가? 당신은 누구의 씨인가?

신앙 2부: 당신은 누구의 씨인가? - 두가지 씨(I) -

씨에 대해 연구를 하다 보면, 성경에는 두 가지 다른 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이다. 이 세상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씨, 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세상에는 두 무리, 뱀인 사단의 후손들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표상된 여자의 후손들이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매우 심각한 시대에 살고 있는데, 바로 이 시기는 여자의 후손과 마귀의 후손이 갈라지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마지막 시대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다른 씨에 대하여 공부해 보기로 하자.

마귀의 후손들

세상에는 마귀의 후손들이 있다. 그런데 마귀의 후손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비 그리스도인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사단의 자녀인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다. 마귀의 자손이라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더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마귀의 자손이라는 선고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성령께 굴복하여 살기보다 자신의 마음대로 살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꼴 지워져 가기보다는 마귀의 형상으로 점점 꼴 지워져 가며 마귀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은 마귀의 자손이 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당신은 누구의 후손인가? 누구의 씨인가?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마귀의 후손들에 대하여 언급하신 기록이 성경에 나온다. 이 말씀은 영적으로 눈이 멀고 완악한 바리새인들과 관원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으로,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거절하고, 진리를 듣지 않고 미워하며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마귀의 자손"이라고 표현하셨다. 또한, 예수님의 초림을 위해 외치던 침례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또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방해하던 박수 엘루마를 향하여, 마귀의 자식이라고 표현한 기록이 나온다.

✽요 8:42~47 -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행 13:9,10 -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마 3:7~9 -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23:33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사람들이었다. 종교에 매우 열성적이고, 성경에 능통하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대하여 스스로 박식하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율법을 철저히 행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예수님에게로부터 마귀의 자식이라는 선고를 받았을까? 또한, 침례 요한은 듣기에도 과격해 보이는 말로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불렀을까? 성경 절을 상고해 보면 마귀 자손들의 특징을 알 수 있다. 다음의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 스스로 마귀 자손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다시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낮추며 회개하고 겸손히 행하자.

마귀 자손의 특징

1. 육신대로 행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에 대해 표현하시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라고 하셨다. 마귀의 자손은 아비인 마귀의 정신을 가지고 마귀의 욕심대로 산다. 즉, 성령의 제어를 받지 않고 육신의 욕심, 즉 육신의 소욕을 따라 자신이 좋은 대로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성령께서 마음에 거하시지 않는 사람은 육신의 정욕에 종이 되어 살게 된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롬 6:16)의 말씀처럼, 사단과 육신의 정욕을 섬기며 자신의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은 마귀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생애에는 질투와 욕심과 악의와 불의의 속임수들이 가득 차게 되는데, 그것을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고 표현하셨다. 살인은 미움에서부터 시작된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거하지 않는 사람의 모든 일을 하는 동기에는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인간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거나 그 사랑에 동조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다. "살인하지 말지니라"라는 계명에는 생명을 단축하는 모든 부정한 행위와 증오와 복수의 정신과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게 하거나, 그들이 해 받기를 바라는 마음과 감정을 품는 것 등을 금해야 할 것과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나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이기심 때문에 돌보지 않거나, 모든 방종이나 불필요한 소모, 또 건강을 해치는 경향이 있는 과중한 노동 등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금해야 하는 명령이 들어 있다. 형제나 이웃에게 복을 끼치지 않고 오히려 남을 해하려는 의도를 가지는 것은 마귀 자손의 뚜렷한 특징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혹시 악한 의도나 육신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욕심이 없는지 살피고 마귀의 자손의 특징을 가지지 않도록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들이 되자!

2. 진리에 대하여 눈을 감은 사람이다

"내가 진리를 말함으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진리 자체이셨다. 예수께서 진리를 확실하게 말씀하신 바로 그 사실이, 그분께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배척을 받은 이유였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겸손히 회개하는 대신 진리에 대하여 눈을 감고 진리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진리를 안다고 공언하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입증하였고, 오히려 그들이 마귀의 자손임을 증거했다.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는다고 공언하지만, 진리가 올 때에 진리를 거절하고 진리가 가르쳐주고 밝히 드러내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리는 독선적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진리는 오류의 거짓을 폭로하며, 거짓 가르침과 행실과 습관을 정죄한다. 오랫동안 믿고 신봉해왔던 어떤 교리나 가르침이 진리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자신의 아집을 버리고 진리에 굴복하며 진리에 순종하기보다는 오히려 진리에 반대하며 대항하여 일어서는 정신은 마귀의 정신이다. 성령께서 마음에 호소하시고 계시는 은혜의 시간 동안에는 그래도 안전하지만, 진리를 계속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 뿐 진리에 의해 성화 되지 않고, 또한 진리가 가르치는 바에 굴복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마귀의 편에 서게 될 것이며, 그들은 점점 마귀의 형상으로 꼴 지워져 마침내 영원히 마귀의 자손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 속에 혹시 진리의 성령에 굴복하지 않는 육신적인 고집이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고 진리에 굴복하며 순종하는 생애를 살도록 하자!

3. 하나님의 음성을 식별하지 못하므로 순종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아들의 기별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행위로는 율법을 지킨다고 공언은 했으나, 그들의 마음으로는 오히려 율법을 범하고 있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참된 순종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귀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모르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참 신앙은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순종함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율법 중의 어떤 계명은 무시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성경은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고, 순종의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약 2:22, 17)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을 아노라 공언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요일 2:4)다고 성경은 선언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한다. 온전히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지키려는 소원과 열망을 우리 마음속에 두도록 하자!

신앙 1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씨란 무엇인가?

얼마 전 신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씨앗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과학자들이, 이스라엘의 고대 유적지 "마사다"에서 헤롯 왕의 요새를 발굴하던 중 세 개의 씨앗을 발견하였다. 연구자들이 발굴에서 찾은 씨앗을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으로 분석해 본 결과, 이것은 대략 2,000년 전의 씨앗이라는 결론을 얻었는데, 그 씨는 다름이 아닌 대추야자 씨였다. 그 씨는 마르고 썩은 것처럼 보여 전혀 그 속에 생명력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을 심어보니, 그 중 한 개에서 싹이 트는 것이 아닌가! 세 개의 씨앗 중 하나를 발아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씨는 2005년도에 심어졌는데, 현재 이 대추야자 씨는 키가 121cm인 큰 대추야자 나무가 되었다고 하며, "므두셀라"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씨앗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씨에는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은 수천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그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그리하여 그 씨는 자신의 씨의 종(種)대로 번식하고 또 씨를 보존하여 자신의 종족을 퍼뜨린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씨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마치 나무나 식물의 씨 속에 생명이 있어 그 씨가 발아하여 자손을 번식시키듯이, 하나님의 씨에는 생명력이 들어 있어 발아하게 하고, 자라게 하고 변화시키는 역사를 이룬다. 또한, 하나님의 씨를 계속 전수하는 한 종족을 탄생시킨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씨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이 흥미로운 주제에 대하여 함께 연구해 보자.

씨 (Seed)

"씨"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식물이나 생물의 씨를 상기하게 된다. 모든 식물의 근본이 되며, 종족 보존과 종족 본능의 근간이 되는 것이 "씨"이다. 씨에는 놀라운 생명력이 들어 있어 이 씨의 생명력을 통해 식물의 발아와 자연계의 생성과 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의 근본 태동의 중심이 되는 "씨"는 매우 중요한 것이 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성경을 연구해 보면, 이 "씨"(Seed)가 영적인 의미로 "후손"과 "자손"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관계된 성경 절을 보면서 공부해 보도록 하자.

1. 씨 = 여자의 후손

* 창 3:15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 (Seed)도 여자의 후손 (Seed)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영어 성경 -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it shall bruise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킹 제임스 역)
여기서 "후손"으로 번역된 원어의 뜻을 보면, "Seed"(씨) 라고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은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구속의 방침으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밝히신 최초의 "구속의 경륜"이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어떻게 대속하시고 처리하셔서 인간을 구원 하실지에 대한 대안이 잘 나타나 있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죄의 창시자인 사단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이며, 그리고 구원의 경륜이 결국 타락한 이 세상과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여 회복시킬지에 대한 계획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 대안과 계획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씨(Seed), 곧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는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그의 씨(Seed)인 하나님의 자녀와 후손들이 사단과 죄에 승리하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임이 이 말씀에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경 절에 나타난 "씨"의 의미는 후손이라는 뜻으로, 여자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또한 그분의 후손인 하나님의 자손들을 가리킨다.

2. 씨 = 후손들

* 창 22:16~18 -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여기서도 "씨"가 "후손"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영어 성경에 이 "씨"라고 번역된 단어가 "descendants"(후손, 자손)로 되어 있다. 특별히 이 성경 절에서 주지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영어로 이 문장의 앞뒤의 문맥을 보면, 전자의 "씨"라는 단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씨(단수)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후자에 "씨"는 그와는 다른 씨(복수)인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씨(단수) = 예수 그리스도 씨(복수) = 하나님의 백성

3. 자손 = 씨 = 그리스도

* 갈 3:16 -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 영어 성경 - "Now to Abraham and his seed were the promises made. He saith not, And to seeds, as of many; but as of one, And to thy seed, which is Christ."
이 성경 절에도 언급된 이 자손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여기에도 자손이 영어로 "Seed"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는데, 단수인 "Seed"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씨 = 여자의 남은 자손

* 계 12:17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Remnant of her seed),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위의 성경 절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구절이다. 여기서 씨는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결국 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 세상의 죄의 역사가 마치는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사명을 이룰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렇게 성경에서 "씨"는 후손과 자손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씨"는,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임을 가리키는 것이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창조교실 - 겨울을 나는 똑똑한 소나무

겨울에도 변함없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늠름한 소나무는 기온이 떨어지는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요? 아무리 씩씩한 소나무이지만, 한겨울 영하 18가 넘는 매서운 찬 기운에는 잎사귀가 쇠꼬챙이같이 꽁꽁 얼어 빳빳이 굳습니다. 거기다가 무거운 눈가루 한 그득 뒤집어써 허리가 휘청거리는데, 바람이 불어 줄기를 뒤흔들어대니 소나무는 겨울이면 참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에게는 나름대로 추위를 견디는 방법이 있답니다. 기온이 떨어지면 이들 나무의 세포에는 프롤린(Proline)이나 베타인(Betaine) 같은 아미노산은 물론, 슈크로스(Sucrose) 같은 당분이 늘어나면서 얼음 핵이 생기는 것을 억제합니다. 이런 물질들은 바로 항 결빙(抗 結氷) 물질로 자동차의 부동액 같은 것입니다. 나무들은 겨울을 미리 준비하지요.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일찌감치 이런 부동액을 세포에 비축하여 겨울을 대비하는데, 이것을 담금질(Hardening,야물어짐)이라고 합니다. 담금질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 숲이 동해(凍害)를 입습니다.
혹시 무서리가 내리고 눈발이 흩날릴 때까지 가을배추를 뽑지 않고 오래오래 얼리는 것을 보셨나요? 그것은 날이 추워질수록 많은 부동액이 비축되는 이유입니다. 이 부동액이 사람에게는 영양분이 된답니다. 이런 항 결빙 물질, 즉 부동액 덕분에 솔잎세포의 내부, 세포질에는 얼음결정(Ice Crystal)이 잘 생기지 않고, 생겨도 아주 작아서 세포에 크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세포와 세포 사이의 틈새, 즉 세포간극에만 주로 결빙(結氷)이 되지요. 이 세포 틈에 생긴 얼음 핵이 더 큰 얼음덩이를 형성하기 위해 세포 속의 물을 빨아내니, 세포액의 농도가 짙어져서 빙점(氷點)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포가 얼어 터지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식물의 세포벽은 딱딱한 셀룰로스, 리그닌, 펙틴들이 주성분이라 여간 해서 깨지지 않습니다.
더러운 물은 깨끗한 물보다 잘 얼지 않습니다. 물이 더럽다는 것은 다른 유기물 용질이 많이 물에 녹아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식물세포에도 여러 용질의 농도가 짙어져서 세포가 얼지 않습니다. 저온에 대한 순응이지요.
소나무 외에, 뽀리뱅이, 지칭개, 유채꽃, 파 같은 두 해 살이 식물들도 소나무 잎처럼 부동액에 해당하는 항 결빙물질이 나와 한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이듬해 봄이 되면 꽃을 피웁니다.
추위에 잘 대비하라고 식물들에게도 사랑으로 배려해주시는 분, 그 사랑이 많으신 창조주께서 인생의 추운 겨울을 잘 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겨울 나는 방법으로 독야청청 푸르게 서 있는 소나무, 겨울을 나는 소나무의 지혜와 굳센 자태를 보면 우리도 더 굳은 믿음을 갖고 싶어집니다.

건강과 행복 - 사랑과 건강

과학자들은 사랑과 애정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였다. 쥐를 실험 대상으로 하여 생활 환경을 바꾸어 주고 사교 관계를 변화시켜 줄 경우, 쥐의 체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살펴보았다. 과학자들은 세 개의 분리된 장소에 쥐를 넣어서 생활하도록 하였다.
첫 번째 장소에는 한 마리의 쥐를 넣었고, 두 번째 장소에는 다섯 마리의 쥐를 풀어놓고 쥐들만 생활하도록 하였다. 세 번째 장소에는 다섯 마리의 쥐를 넣되 사람과 사귀면서 생활하도록 환경을 조성하였다. 세 장소의 쥐들에게 같은 시간에 같은 음식을 공급하였다. 다시 말해서, 먹고 자는 환경은 같은데, 그들이 교제를 나누는 환경만 다르게 만들어 놓았더니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1.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첫 번째 장소에 혼자 있던 쥐에게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면서 성격이 예민하고 날카로워지기 시작하였다. 많이 먹지도 않고 움직임도 많지 않았지만, 다른 쥐를 넣어주면 즉시로 공격하여 물거나 죽여버렸다.
2. 두 번째 장소에 있던 쥐들은 일반적으로 쥐에게 나타나는 성격 그대로를 유지하였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잘 때는 서로 붙어서 수면을 취했다.
3. 세 번째 장소에 있던 쥐들은 자기들끼리 있지만, 음식을 넣어주는 사람이 말도 걸고 장난도 치면서 애정을 갖고 대하자 두 번째 장소에 있던 쥐들보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반기는 반응을 나타냈으며 사람이 쓰다듬어 주는 것을 즐겼다.

이러한 실험을 장시간 하면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 개의 분리된 장소에서 동일한 환경하에서 생활했지만, 그들 각자의 수명이 달라졌다. 첫 번째 장소에서 외롭게 홀로 산 쥐는 600일을 살았고, 두 번째 장소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았던 쥐들은 700일 정도 살았는데, 사람과 사귀면서 살았던 세 번째 그룹의 쥐들은 950일 정도 살았다. 과학자들은 쥐가 사람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와 사귀면서 친구들에게는 받지 못하는 사랑과 애정을 받았을 때 수명에 굉장한 영향을 주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연구의 결과 때문에, 일반적인 개의 수명은 평균 10~12년인데 미국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사는 개들은 16년 이상이나 살게 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랑을 받으면서 사는 쥐의 수명이 950일까지 연장되고, 사랑을 받는 개의 수명이 16년까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만약 사람들이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사귀면서 살게 된다면 그들의 건강과 수명이 얼마나 늘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세 부류의 쥐들의 수명이 왜 달라졌을까? 과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을 찾기 위해서 세 부류의 쥐들에게 신체검사를 하였다. 그 결과 세 번째 장소에서 인간과 사귀면서 생활한 쥐들의 몸무게가 가장 무겁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쥐의 신체 부위 중에서 어떤 부위의 무게가 가장 많이 증가하였는가를 조사해 보았는데, 뇌의 무게가 다른 쥐들에 비해서 더 무거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세 부류의 쥐들의 뇌를 해부해 보았는데 세 번째 장소에서 사람과 사귀던 쥐들의 뇌 신경세포는 다른 쥐들의 뇌세포와 달랐다. 사람에게 사랑과 애정을 듬뿍 받은 쥐들은 뇌 신경세포들의 가지가 많이 뻗어나와 섬세하게 얽혀 있었다. 두 번째 장소에서 친구들과 사귀었던 쥐들도 혼자 외롭게 사는 쥐보다는 훨씬 뇌 신경세포가 발달해 있었지만, 사람의 사랑을 받은 쥐들보다는 뇌의 무게가 가볍고 빈약한 뇌신경세포 조직을 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보다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사랑과 애정을 받으면서 친구들과 교제를 나누는 삶이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동물도 먹여주는 음식만 가지고는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다면, 사람은 어떻겠는가? 만약 환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간다면 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신 음식물을 먹으면서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이 있는 산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과 함께 산다면, 환자의 인체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세포 조직 속에 어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까? 환자의 생명이 얼마나 연장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글의 독자 여러분이 직접 경험해 보기 바란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29).

사랑이 인간의 질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마이애미 대학 병원에서 사랑에 대해 실험을 하였다. 이 대학병원의 소아과에서는 조산아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두 개의 조산아실이 있는데, A조산아실에 입원치료한 아기들이 B 조산아실에 입원하여 치료받은 아기들보다 회복이 매우 빠를 뿐 아니라 체중도 빠르게 늘어났고 건강이 매우 향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의사들이 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 애를 썼지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두 조산아실을 같은 조건과 환경에서 운영하였지만, 항상 A 조산아실에 입원한 아기들이 훨씬 더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였다. 똑같은 종류의 약을 똑같은 양으로 아기들에게 투여하면서 똑같은 음식물을 공급했지만, 결과는 항상 A 조산아실 아기들이 좋게 나왔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간호사가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연구원이 듣게 되었다. "A 조산아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성격이 매우 밝습니다. 항상 아기들에게 애정을 표현해 주기를 좋아합니다. B 조산아실 간호사들도 실력이 좋지만, 그들의 태도는 항상 직업적입니다." 실험을 하던 연구원들은 간호사의 말이 정말 맞는가를 실험해 보기로 하였다. 한 조산아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에게 하루에 15분씩 세 번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들을 어루만져주도록 업무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다른 조산아실에 있는 간호사들에게는 이런 일을 하지 않도록 지시하였다. 그렇게 한 결과, 정말 놀라운 일이 생겼다.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준 아기들의 건강이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 결과가 A 조산아실에 입원한 아기들의 회복 속도보다는 빠르지 않았다. 왜 그럴까? 실험에 참가한 간호사들은 의사가 지시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사랑과 애정없이 시간에 맞추어서 만져주고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A 조산아실의 간호사들은 정말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누가 시켰기 때문에 아기들을 안아주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안아주고 싶었기 때문에 안아주고 사랑을 나누어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놀라운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지구에 사는 병든 인간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분의 애정과 동정을 느끼면서 살아간다면, 그들 마음은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곧바로 병든 세포를 치료하고 건강을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회복시킬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그리스도인의 질병 치료법이다.

시골생활 - 신뢰의 공과

신뢰의 공과

(이 글은 지난 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부모님의 삶이며, 또 친구들입니다. 그래서 저의 부모님은 좋은 친구들을 찾아서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선여울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곳은 큰 강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 강에서 수영하는 것도 배우고 침례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물론 수침 목사는 저의 형이었습니다. 강에 들어가서 형과 저는 수영도 하고 침례 받는 연습도 하고 넓은 바위 위에서 예배도 많이 드렸었지요.
겨울에 날씨가 좋다가 갑자기 추워지면 강물이 투명하게 언답니다. 투명한 얼음이 50cm 이상 되게 얼면 유리 같은 얼음 위에서 놀기도 하고 썰매도 많이 탔습니다. 썰매를 타다 보면 얼음 아래로 고기떼들이 노는 모습도 보인답니다. 또 얼음 위에 눈이 오면 썰매가 다닐 길만 눈을 쓸어낸 다음에 그 길을 따라 썰매를 타는 것도 재미있었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염려를 많이 하셨었지요.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가 제일 위험합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는 쩡~ 쩡~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금이 가지요. 어떤 곳은 더 일찍 녹는데 잘못 건너가다 얼음 아래로 빠져서 물살에 쓸려 들어가면 큰일 나는 것이죠. 한 번은 제가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 강을 건너다가 얼음이 깨지면서 빠졌는데 다행히 무릎 정도 빠졌을 때에 아래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았답니다.
그 강에는 작은 버드나무들이 많이 있어서 소 두 마리를 끈을 길게 만들어서 강가에 묶어놓곤 했었습니다. 한번은 저희가 교회를 갔다 오는데 강 건너를 보니 저희 소 중에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그 옆에 묶어 놓았던 소 한 마리가 넘어져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끈이 발에 감겨서 잘못 넘어지면 소가 죽는 수도 있습니다. 말 못하는 소지만 자기 옆의 소가 넘어진 것을 보고 동료를 구하고자 안절부절못했던 것입니다.
선여울에 있을 때에 저희 두 소가 첫 새끼를 갖게 되었습니다. 소도 저마다 성격이 있지요. 저희가 흰 소라고 부르는 소의 송아지는 털 빛깔이 아주 뽀얗고 좋았습니다. 저는 강가에서 그 송아지들과 달리기도 하고 뛰어놀곤 했습니다. 한번은 송아지의 꼬리를 뒤에서 잡아당기다가 갑자기 송아지가 뒷발로 차는 바람에 얼굴을 맞았습니다. 그때 얼마나 아팠는지 혼자서 얼굴을 잡고 엉엉 울었었답니다. 또 소 젖이 탱탱하게 불었을 때에 살짝 누르면 젖이 쭉~하고 나왔습니다. 그럼 저는 그것을 입을 벌리고 받아먹기도 했는데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맛본 우유였던 것 같습니다.
송아지가 있어서 재미있게 노는 것은 좋았으나 한번 이 소 네 마리가 뛰기 시작하면 막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저희 밭 옆에 동네 분이 도라지를 심어 놓은 밭이 한 번은 저랑 형이 강가에 소를 풀어놓고 모래 있는 곳에서 놀다가 쳐다보니 소들이 안 보였습니다. 그래서 얼른 달려가 보니 소들이 그 도라지 밭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도라지가 막 싹이 올라온 때라서 소가 밟은 곳은 싹들이 부러졌습니다. 며칠 뒤 그 밭 주인 아주머니가 와서 아버지께 뭐라고 안 좋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희가 잘못한 것 때문에 아버지가 그 벌을 받으시는 것을 보고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 모른답니다.
한 해에는 큰 홍수가 났습니다. 비가 3일 밤낮을 계속 왔습니다. 강에 시뻘건 물이 흘러내려 오기 시작하더니 금세 물이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통나무들, 드럼통들, 오리들, 나무 뽑힌 것들 등 이것저것이 물에 떠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에 잘 때에는 쿵쿵하면서 돌들이 굴러가는 소리도 들린답니다. 4일째 되던 날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날 잠에서 깨어났는데 이상하게 파도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가보니 저희 집에서 불과 1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강물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마당을 밟으니 마당이 물에 불어서(?) 쑥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하시는 말씀이 옥수수밭이 다 떠내려갔다기에 나가보았습니다. 강 옆에 있던 옥수수밭은 떠내려간 밭도 있고 그나마 붙어 있는 밭도 모래가 옥수수를 덮어버렸습니다. 감자밭에도 사태가 나서 흑이 감자를 덮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강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놀랍고 신기한 광경을 입을 벌리고 한 참을 구경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어이없고 힘이 빠져서 누워 계실 아버지를 보려고 방문을 열었을 때에 저는 부모님께서 무릎을 맞대고 열렬히 기도하시는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은 어린 제 마음속에 어떤 큰 인상을 주었습니다. 홍수가 나서 이제 먹을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혀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옛날 광야에 식탁을 베푸셨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광야에 식탁을 베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고 놓지 않는 한, 그분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훈련하셔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는 한, 그분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를 책임지고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면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앞에 있는 절망과 패배를, 역경과 고난을 소망과 승리로, 기쁨과 감사로 변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을 신뢰함을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이 시골생활의 목적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요!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가정과 영성 - 성경과 미니 스커트

성경으로 옷 입는 문제에 대해서 어떤 선을 긋는다는 것은 매우 힘들 뿐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매우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게 한다. 옷 입는 문제에 관해 엇갈린 견해들은 많은 목회자로 하여금 이 주제를 매우 다루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시켜 왔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 사람들로부터 율법주의자라는 지목을 받기 때문에 조심한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눈에 보이는 외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 때문에 목회자들은 의복 문제를 다루기 꺼린다.
그러나 이 주제에 관하여 적어도 몇 가지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먼저, 의복을 입는 문제는 실제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문제이다. 세속적 유행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을 좀먹는다. 유행을 따르는 일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 널리 퍼지고 있으며, 사단은 유행을 통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다. 오늘날 유행하는 유니섹스(Unisex: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기 어렵게 입는 옷차림), 상반신을 노출하고 다니는 복장, 허벅지를 드러내는 치마가 사람들의 마음과 영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출된 인체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이나 행동으로 죄를 범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정직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앤 랜더즈(Ann Landers)는 신문에 싣는 자신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여학생의 편지를 소개하였다.
"친애하는 앤 랜더즈 여사님께, 저는 대학 4학년의 여학생입니다. 허벅지가 훤히 보이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의자나 소파에 앉아서 수치스러운 부위가 보이지 않게 하려고 짧은 치마를 자꾸 끌어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여자로서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합니다. '내가 제대로 앉았지?' 혹은 '아무것도 안 보이지?'라고 서로 물어보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남자아이들이 이상한 눈으로 그런 모습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납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

많은 여성은 자기들이 입는 짧은 미니스커트에 관한 비평을 모두 악한 생각을 하는 더러운 남자들의 탓으로 돌려 버린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남자들의 잘못일까? 몇 달 전 텍사스 주에서 전도회를 개최하고 있을 때 어떤 그리스도인 남자가 상담을 요청하였다. 그 사람은 천주교 신자였는데 개신교인으로 개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가 구원받고 경건한 생활을 살아가기 원한다는 소망을 말한 다음 자신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내 직업은 미용사인데 날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미용실에 찾아옵니다. 나는 자신의 생각을 순결하게 지켜 주시도록 기도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내 생각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킬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멸망시키실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그 남자 미용사에게 깊은 동정을 표했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 남자와 청소년들이 직면하는 똑같은 문제로 때문에 씨름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더러운 놈팡이 탓"이라는 말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육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남자의 경우, 타고난 육적 본성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서 더 많은 투쟁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는 여성과는 전혀 다른 성적 욕구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남자를 만드실 때에 매우 빨리 자극될 수 있는 민감한 성적 본능을 소유한 존재로 만드셨다. 그와 반면에 여성은 쉽게 자극되지 않는 성적 본능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다. 여성은 만지는 것과 부드러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졌지만, 남성은 보는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졌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세우신 결혼관계를 통하여 남편과 아내의 성적 본능은 합법적으로 자극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을 유의하라. 하나님께서는 남자의 성적인 정서가 가정의 침실 밖에서 자극되도록 의도하지 않으셨다.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여성에게 정숙함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주었으며, 그래서 여성은 자신의 몸을 자기 남편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노출하지 않도록 계획하셨다.
결혼과 성적인 정서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아름답고 완전한 것이었지만, 사단은 여성들의 정숙함을 모조리 파괴하려고 애써왔다. 사단의 치밀한 전략에 휘말려서 여성들은 도덕적인 굴레를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랄 정도의 반나체 의복들이 유행이라는 이름 아래 온 세상에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도 거리에서나 텔레비전 앞에서 여성의 나체 장면을 보도록 시험받고 있다.

노아의 때와 인자의 때

세상이 이렇게 변함에 따라서 현대인들은 노아 홍수 전의 사람들처럼 타락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37). 노아의 때 사람들의 마음 상태는 어떠했는가?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니" (창 6:5). 우리는 오늘날 이 말씀이 얼마나 완전하게 성취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외설책이나 포르노는 합법적이 되었으며, 텔레비전은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외설적인 드라마와 영화로 가득 차 있다. 동성애도 그것을 추구하는 자들뿐 아니라 대부분 정신과 의사들에 의해서 정상적인 행위로 인정되고 있다.
두려운 사실은 이러한 것들이 교회 안까지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교회 안에서도 무릎과 허벅지가 보이는 것을 용납하게 되었다. 아무도 그러한 것들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을 말하는 사람은 율법주의자로 몰아가는 것이 현대 기독교회의 형편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쁜 생각을 하도록 이끌리기가 쉽다는 것을 명백히 말씀하셨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7, 28).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시험에 빠지도록 자극하는 옷을 입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을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한 여성이 이웃에 사는 여자 친구의 남편이 정신적인 간음을 범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옷을 입고 있을 때, 그 여인이 사랑의 법을 잘 지켰다고 할 수 있을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는 말씀 속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닐 때, 거리마다, 교회마다 죄를 지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사실을 마귀는 잘 알고 있다. 복음의 능력을 깊이 경험하지 못한 남자들은 그런 유혹에 저항할 힘이 없다.

여성들도 정신차려야 한다

남성의 성적 욕구에 대해서 무지한 어떤 여성들은 남자들은 당연히 자제력을 가지고 정신적인 상상력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남성의 본능 속에 두신 중요한 차이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본능은 어떠한 인간의 노력이나 결정에 따라서 바뀔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헌신에 의해서 조절될 수 있으나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협조해 주어야 한다.
미니스커트를 만들어낸 패션 디자이너 메리 퀜트(Mary Quant)의 의기양양한 공언을 들어보라. "나는 섹시하다. 나는 남자들을 좋아한다. 나는 인생을 즐긴다. 짧은 옷은 남성을 유혹하기 원하는 여성들을 상징한다."
사단에게 사로잡힌 사람의 증거 가운데 하나는 옷을 벗어젖히는 것이다.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거라사 지방의 무덤 곁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었던 귀신들린 가련한 사람이 그러했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눅 8:27). 나중에 그가 악령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그는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아래 앉"았다고 묘사되었다(35절).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보인 그의 행동은 다시 옷을 입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정신적 및 정서적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도덕적 의지가 너무나 약해져 있다. 할리우드의 흥행자들과 음탕한 작가들, 외설적인 디자이너들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이 죄에 빠져서 떠내려가고 있다. 교회 안에서조차 정숙함과 고결함이라는 단어는 낯선 것이 되었다. 유명한 신문 논설위원인 포올 하비는 범죄 통계와 짧은 치마의 유행이 놀랄 정도로 정비례하고 있다고 시사했다. 미연방 조사 당국의 범죄 기록철은 강간 사건의 수가 치마 길이가 짧아지는 것과 거의 정비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미국 50개 주의 법률 강화위원들은 미니스커트와 성범죄와의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했다. "짧은 치마가 성범죄를 몰고 오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법률 강화위원들의 반응은 91%가 "그렇다"라는 답이었다. 어떤 큰 도시의 청소년 교도관이 종합해서 본 견해에 의하면 "개인들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어떤 성범죄는 그들의 감각적 감지력에 의해 일어나는데, 여성들이 입는 노출이 심한 옷은 그러한 성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캐나다 토론토의 "Tuesday"라는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읽어보자. "91%의 토론토 경찰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성이 정숙하게 옷을 입는 자매보다 강간의 희생자가 되기에 훨씬 쉽다." 미니스커트가 여성의 패션에 도입된 1964년 이후부터 미국에서의 강간사건은 68%가 증가했으며, 영국에서는 90%나 증가했다고 경찰 전용 출판물인 "The Law Officer"는 말했다. Toronto's Mora1ity Squad의 조지 고우 씨는, "짧은 치마는 의심할 여지 없이 여성에 대한 범죄를 유발하는 요소임이 틀림없다. 밤거리에 차에서 내린 후에 어떤 남자에 의해 쫓기고 있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에게 있어서 그녀의 무엇이 그 남자를 유혹했는지는 별로 의문을 제기할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뉴욕 시에 있는 툼스 교도소의 의사인 루첸스타인 박사(Dr. Luchenstein)는 12년 동안 17만 명의 수감자들을 상대로 일했는데, 그는, "소위 정욕으로 인한 범죄가 놀랄 정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내 생각에는 주요한 원인이 제거되기 전에는 그 증가 상태는 계속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한마디로 말하면 그 주원인은 현시대의 복장 스타일이 정숙하지 못한 데 있는 것 같다. 정숙하지 못한 복장은 그러한 복장을 한 사람이 얼마나 순진한지와는 관계없이 범죄를 선동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다"라고 말했다.
한가지 유의해야 할 사실은, 모든 남성이 성욕의 포로들이라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개인적인 결정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며, 각 사람은 자신의 판단과 의지력으로 선택할 책임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에 대한 어떤 변명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유행을 변경시킬 수 없다면, 짧은 치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으로 옷을 입고 세상의 유행을 대적하는 것이다.

권두언

성경은 알곡과 가라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추수 때에 가서야 그 정체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알곡들은 거두어져 창고에 들여지고 가라지는 골라내어져서 불에 태움을 당합니다. 이러한 일이 세상 끝에 일어나리라고 예수께서 비유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는 자들이 알곡이고 믿지 않는 자들이 가라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 중에서 알곡과 가라지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곡은 원래의 좋은 씨를 받고 자라난 열매입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원수가 중간에 덧뿌리고 간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씨를 가졌느냐 하는 것은 믿는 자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성경은 처음 시작부터 여자의 씨와 뱀 곧 사단의 씨가 서로 원수가 되어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과 사단의 후손들 간의 싸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전쟁을 의미합니다.
지구 역사의 결국에는 하나님의 씨를 가진, 즉 예수 그리스도께 붙은 남은 무리들과 사단의 씨를 가진 마귀의 후손들 간에 최후의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대전쟁이,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단의 자녀들 사이의 싸움으로 판가름나게 되지요. 하나님의 구속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는 의인들과 사단의 품성을 지니고 있는 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전쟁으로, 과연 하나님과 사단 중에 누가 옳고 의로운 것인가가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사단이 각각 어떠한 자들을 생산해 내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이, 결국에는 이 지구 상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씨를 가진 자들과 마귀의 성품을 가진 뱀의 후손들과의 전쟁으로 종결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씨를 가진 자들입니까? 하나님의 씨를 가졌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번 호는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편지 - 겨울, 아름다운 침묵의 계절에

잿빛 하늘 밑 떨어진 낙엽 위를 걸으면서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겨울은 참 슬픈 계절이라고...
앙상한 가지 끝에 부는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겨울은 참 허전한 계절이라고...
한 장 남은 달력을 만지작거리며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겨울은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처럼 허망한 계절이라고...

그러나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겨울은 찬란한 봄의 빛나는 도약을 위해 잠시 쉬고 있는 아름다운 침묵의 계절이라고...

마치 곧 들려질 큰소리 악장을 위해 소리 죽여 연주되는
교향악의 조용한 앞 마디처럼,
마지막 한 번의 큰 숨 뒤에 이제 곧 태어날 생명을 기다리는
고요한 산실의 전율처럼,
지금, 텅 빈 벌판처럼 훵해 보이는 겨울의 가슴 속에는 아름다운 생명의 회오리바람, 흐드러지게 풍요로울 추수 마당이 춤추고 있습니다.
머지않은 봄, 곧 돌아올 희망의 계절에 움트게 될 생명의 씨를 품고 있으니까요!

Æ Æ Æ Æ

한 해를 마쳐가는 모퉁이에 서서,
사라져가는 시간의 발뒤꿈치를 바라보는 당신의 겨울은 어떤가요?
후회와 실망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
가뜩이나 짧아진 해를 더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더 자랐어야 할 키를 재어보며 미처 못 다다른 성숙의 눈금에 닿아보려고 안타까운 발돋움을 해보고 있지는 않은가요?
세월이 흐르면 그래도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변화를 꿈꾸면서
체념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올 한 해, 가슴 속에 겨자씨만큼 조그만 생명의 씨 하나 심겨지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바람 만큼 자라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한 해는...
자신의 바람만큼, 이웃의 바람만큼, 아니 하나님의 바람만큼...

우리의 발걸음은 아무렇게나 구르는 돌에도 자주 채였고,
어쩌다 쓰러지면 편편하지 않다고 길만 나무랐고,
함께 가자고 내미는 손을 뿌리치고 혼자 걸어보겠다고 뒤뚱거렸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함께 가야 할 인연이었습니다.
이 길은 혼자 갈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풀 수 없이 엉킨 긴 뭉치의 실타래처럼,
고리고리 연결된 긴 사슬처럼,
조약돌 던져진 호수의 파문처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 묶인 채
사랑과 아픔을 주고받으며 함께 걸어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 엉켜진 삶에서 번져오는 파문이 크든 작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이 자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서로를 통해, 그리고 그 엉킨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함께 얽혀 있기에 파생되는 여러 가지 일들은
주님께서 우리로 지나가게 하시는 또 다른 연단의 불이었습니다.

때로 그 과정은 여느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겨울처럼
슬픔과 허전함과 허망함을 느끼게도 했지만,
지나간 삶을 뒤돌아보는 지금,
우리의 가슴은 때늦은 설레임으로 일렁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가슴 한가득 심겨진 하늘 생명의 씨앗,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머지않아 발아할 생명의 씨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참 바쁜 한 해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밭이 아직 싹을 틔우고, 이삭을 맺히고, 추수에 충실한 곡식을 낼 만한 옥토가 되지 못했기에...
큰 흙덩이를 걸러내는 일은 그분께도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아의 교만과 자존심의 덩어리는 너무나도 단단하게 뭉쳐 있어
손으로 들어 올리기에 버거울 만큼 무거웠을 테니까요.
네, 단비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똘똘 뭉쳐진 덩어리가 떠오를 때마다 촉촉이 적셔주시는 성령의 비는 단단한 흙덩이들을 녹여내기에 충분히 부드러웠습니다.

마음의 밭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이기심과 욕심의 돌멩이 또한 들어내기 어려운 것이었을 겝니다.
골라내지 않으면 단단히 박혀 밭을 망칠 욕망의 돌멩이들...
네, 사랑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종으로까지 낮추시고 한 벌 걸칠 옷도 없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은
밭을 고르는 손을 찌르고 상하게 하는
모나고 딱딱한 돌멩이들을 걸러내기에 충분히 따뜻했습니다.

뽑아내야 할 미움과 증오의 잡초도 많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우리의 밭에는...
여기 저기 솟아나 밭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잡초들,
마치 끝까지 뽑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은 억센 잡초 풀들은 미움과 갈등의 뿌리로 땅 속 깊이 얽혀 있어 밭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네, 용서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 바위틈으로 떨어져 내린 피 섞인 땀방울과 못 박는 로마 병정을 향해 드리시던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주님의 기도는,
오랜 세월 박혀온 원망과 미움의 잔뿌리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뽑아버리기에 충분히 뜨거웠습니다.
한 해가 다 가는 모퉁이에 서서
이제 거의 옥토로 변해가는 우리의 밭을 보시며 미소 띠우시는 하나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가슴 속에 절절한 염원으로 심겨진 생명의 씨
힘차게 고동치며 발아하고 있으니까요.
곧 예쁜 싹 틔우고, 멋진 이삭 맺히고, 탐스런 열매 맺을 계절이 돌아오니까요.
변할 거라는 희망, 주님의 능력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과 믿음의 씨는 지금 발밑에서 요동하며 풍요로운 수확의 마당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더 탐스러운 꽃송이 맺힐 것입니다. 지금 꽃송이 비록 작아도...
더 탐스러운 열매 맺힐 것입니다. 지금 열매 비록 작아도...

겨울을 슬픈 계절이라 말하지 마십시오.
겨울을 헛된 소망의 종착역이라 말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머지않아 힘찬 태동으로 천지를 진동시킬 생명의 씨 가슴 속에 심겨져 안으로 안으로 익어가는 조용한 성장의 계절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 찬란한 도약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아름다운 침묵의 계절이라고...

한 해가 가는 시간, 이렇게 뒤돌아보며 마음 가득 감사가 넘치는 것은,
우리 가슴 속에 심겨진 생명의 씨앗 때문,
그리고 그 씨 곧 자라나 새들이 깃들 가지 많은 큰 나무가 될 것이라는 소망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