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DId you know?: 참 복음과 변질된 복음

오늘날 교회 안에는 구원에 대한 두 가지 복음이 있다. 한 무리는 진리를 발견하고 생애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는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고 있으며, 또 다른 한 무리는 복음을 오해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여전히 죄와 세속의 노예 상태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있는 가르침과 신앙의 방향이 정확하게 성경과 일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목사의 설교와 신학자들의 가르침이 있는데, 그중에서 어떤 것이 진리이고 어떤 것이 오류인지를 구별할 방법이 없을까? 물론, 이것을 구별하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그것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목사들이나 성직자들일 경우, 평신도로서 그들의 설교와 가르침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각종 가르침과 설교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에 대한 진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매우 열렬한 신앙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진리에 대한 지식은 크게 결핍된 모습을 보게 된다. 진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으므로 무조건 큰 교단에 속한 교회에 다님으로써, 자신의 영적 안전을 도모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비록 정통이라고 불리는 교단에 속한 교회라고 할지라도, 각 단일 교회의 사역자들이 개인적으로 믿는 바가 하나님의 진리와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분들이 어떠한 신학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느냐에 따라서 구원을 설명하는 그들의 설교와 가르침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교회의 이름에 자신의 영생을 맡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각 성직자의 개인적인 영성과 신앙체험에 따라서, 그들이 교인들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달라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 들어온 각종 가르침과 설교들을 성경을 통하여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지적 판단 능력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거나, 인간 지도자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을 팔자나 운에 맡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8:20).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영생에 깊은 관계가 있는 구원에 대한 가르침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어떤 조직이나 직분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함으로써,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그 말씀이 타당하고 논리적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많은 가르침과 설교와 학설이 있는데, 어떻게 평신도들이 그러한 것들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바로 이러한 질문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하여, 이 글을 준비한 것이다. 기독교회 내에 300여 개의 교파가 존재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여러 종류의 신학이 존재하지만, 그 모든 것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기초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독자 이야기: 고백하지 못하는 나

에 실린"고백"이라는 글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는지 모른다.
어린 딸의 고백을 그리스도인 엄마가 담담하게 풀어낸 이 글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닮고자
열망하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 나온다. 참, 예쁘다.
어느 때부턴가 나는 고백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마음에 근심 걱정을 잔뜩 끌어안고 몇 날 며칠을
끙끙 앓기만 할 뿐, 누군가에게 이 맘에 가득한 고민거리를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왜 그럴까? 나에게는 그 어떤 말도 들어줄 수 있는 부모님과 동생이 있고, 진리의 빛을 사모하는 동료가 있고 그리고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계신 데, 왜 나는 고백할 수 없을까?
누군가에게 마음의 짐을 풀어놓으면 혹'나의 잘못을 꼬집어 말하진 않을까?,
'별일 아니라는 듯 넘겨버리진 않을까?','나의 짐이 그 사람의 짐이 되진 않을까?'…
이런 이유 때문인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생각들 속에 내 속은 점점 꼴이 말이 아니다.
여러 날을 그렇게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토록 우울하고 썩은 냄새로 어두운 감화를 끼치는 나.
지나가는 열병처럼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이 우울감. 스스로 다짐하고 붙잡는 나의 의지는
여지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문제의 정답을 나는 알고 있다.
기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단순 명료한 기도. 그저'아버지…!'라고 운을 떼면
내 속의 못난 자아를 어루만져주시고'내가 다 안다, 알고 있단다…'하시며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어 주실 것을, 내 비루한 입술이 아닌 그분의 입술로 나의 기도를 아버지의 기도로
옮겨 주실 것을 알면서도 그 시작이 어렵기만 하다.
내려놓는 훈련을 하고 있다. 갈 바를 알지 못해 그분이 날 놓아버렸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인내하고 마침내 회복되었을 때, 비로소 내 옆에서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음을 알게 된다. 날 사랑하심을
느끼고 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나는 결국 이런 고백을 하게 되는구나.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그에 못지않게 힘든 내가 말했다.'하나님은 죄인인 나를 부르셨다고,
나의 더러움을 그대로 받아주셨다고…'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상한 심령의 그 마음을, 나와 똑같은 그 마음을 위로할 유일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때 성령님이 내 속에서 일하셨을지도 모른다.'너는 알고 있잖니. 그를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니?'고백하지 못하는 나는 그를 통해 내 마음의 짐을, 근심을 고백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 의지해서 조금이라도 나를 포장하려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나의 문제 그 자체를 그대로 여과 없이 고백했다. 그리고 치유 받았다.
하나님의 섭리는 미물인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역사이다.

김예나 (경북 상주)

시사와 뉴스: 성경이 제시하는 자살 방지법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 한국경제닷컴 뉴스는,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인용해 보도하면서, 한국은 정치인부터 연예인, 운동선수, 대학교수, 학생까지, 매일 30명 이상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뉴스에 의하면, 30대 초등졸업자 자살률이, 대학졸업자 자살률의 열다섯 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학 교수 논문은, 연령대별로, 무학부터 대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 인구 사이의 자살률을 비교했습니다. 모든 세대를 통틀어, 30대에서 학력별 자살률 격차가 가장 컸습니다.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남·여 인구와 초등학교까지만 학교를 다닌 남녀 인구, 이 두 집단의 자살 빈도는, 무려 15.3배 차이가 났습니다. 20대의 젊은 인구 집단에서도, 자살 사망률은, 대졸 이상과 초등학교 졸업 학력자 사이에, 7.4배의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학력에 따른 자살 빈도 격차가 가장 적은 70대 인구에서도, 대졸자와 무학자는 2.8배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요즘 한국의 청소년들 중에는 가장 선망하는 대상으로 연예인을 지목하는 청년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선망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들이 자살했다는 기사가 신문지상에 종종 실린다. 한국인들의 자살 통계를 보면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게 차지하는데,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자살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살에 대한 근본 이유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이번 기회에 성경이 제시하는 자살 방지법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자살 방지법

내가 태어난 이유와 인생의 목적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

성경은 이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6~27)
우리가 태어난 이유와 삶의 목적은 살아 있는 동안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구원받는 것이다.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고 자살하지 않고, 돈이 없다고 해서 자살하지 않는다.

두 번째 자살 방지법

감사하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난 이유와 삶의 목적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깊은 감사의 정신이 샘솟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감사의 정신을 유지하게 된다. 가장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는 연예인들이 자살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조건들이 좋다고 해서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이 세상에 어떤 것도 감사가 빠지면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것도 감사와 합쳐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런데 아무리 천하고 부족한 것도 감사와 합쳐지면 놀라운 의미가 생긴다. 이것이 감사의 위대함이다.
신앙이 아무리 좋아도 감사하지 않으면 신앙이 내게 실제적인 유익을 주지 못한다. 구원이 아무리 귀하고 소중해도 감사하지 않으면 내게 실제적인 행복을 주지 못한다. 믿음, 순종, 좁은 길, 자아부인과 같은 모든 신앙의 요소들도 감사와 합쳐질 때에 비로소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신앙이 감사와 연합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인도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하게 된다.
요즘처럼 경제가 힘들 때, 성경의 하박국 선지자가 보여준 감사의 정신은 우리 모두에게 참된 감사의 의미를 일깨워준다."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자살의 유혹을 받을 수 없다.

믿음과 감사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 영생을 얻는 것이다."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의 뜻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여 하늘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이 땅에서 겪는 잠시 잠깐의 고생과 고난 때문에 자살을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질 놀라운 보상을 아는 사람은 결코 자살할 수 없다. 자살에 대한 유혹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어떤 물건이나 돈을 소유해야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자살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그런 사람은 자동차가 없으면 불행을 느끼고, 좋은 집이 없으면 불만을 품게 된다. 그러므로 복권에 당첨되고, 자녀가 100점을 받아와야만 행복을 느끼는 정신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것을 보면서 만족하는 사람만이 인생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살 수 있다.
감사는 영어로 Thank인데 Thank라는 단어는 Think(생각)에서 그 어원이 왔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생각(Think)을 올바로 하면 감사(Thank)하게 된다는 뜻이다. 가난해도, 직장이 없어도, 고난 속에서도, 생각을 올바로 하면 감사하게 된다는 말이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생각을 올바로 하면 결코 자살할 수 없다.

신앙 제 6부: 마지막에 다시 등장할 초대교회는?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 다시 등장할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를 기다리고 계신다. 초대교회처럼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순수한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 초대교회처럼 충만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 진리로 성화되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온 세상에 증거하고 변호할 사람들의 무리, 짐승의 표 환란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명만 높이고 하나님과 진리를 위해 생명까지 버릴 수 있는 열정을 가진 교회, 바벨론의 죄악을 폭로하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낼 용기 있는 믿음의 사람들, 성품과 입에 흠이 없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어떻게 하면 초대교회같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에 나타날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에 나타날 하나님의 참 백성과 참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하나님의 남은 자손은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계명을 지킨다는 의미는 율법주의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진리의 말씀으로 성화되고 변화되어 성품 속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 차서, 거듭난 심령으로 저절로 계명을 지키는 생애가 살아지는 것을 뜻한다.
거듭난 사람이, 예전의 악한 생활과 교만과 이기심과 재물을 탐하는 마음과 명예를 아직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겠는가? 진정으로 거듭나고 변한 사람이, 아직도 마음속의 보좌에 사단을 앉혀 놓고, 사단이 시키는 대로 사단의 정신을 가지고 똑같이 죄를 반복하며 살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변화된 사람들은 예수님의 임재 속에서 주님과 매일 매 순간 동행하므로, 마음속에 역사 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고, 죄를 미워하고 버리며, 매일 더 깊은 회개를 하며 영적으로 성장하는 생애를 살아간다.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벌 주실 하나님을 두려워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의 사랑이 매우 고맙고, 그래서 전심을 다하여 주님께 마음을 바치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또 그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곧 진정으로 계명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외적으로 나타난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얻으려는, 인간의 의를 내세우려고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와는 다른, 참 마음으로 진정으로 계명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이 될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마지막 남은 자손인가?

2. 예수 믿음을 지킨다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서"예수 믿음"이란 무엇인가? 이 믿음은 그냥 믿음이 아니다. 이 믿음은 예수께서 가지셨던 믿음이다. 이 믿음은 죄를 승리하는 믿음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실 때에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사셨는가? 예수께서는"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요 5:30)라고 하시며,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고 믿는 믿음 가운데 사셨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생애와 믿음은 어떠했는가? 성경에서 찾아보자."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그분은 육체에 계실 때에 매일 하나님 아버지께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왜, 무엇을 위하여 그러셨는가?
예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 행하기를 간절하게 원하셨다. 그리하여 매일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고, 인간의 본성대로 마음대로 행하지 않도록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사단이 유혹하는 대로 자신의 능력과 신성을 쓸데없이 나타내지 않도록, 자신을 드러내지 않도록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사시기 위하여 심한 통곡과 눈물의 기도를 드리셨던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간구였다. 예수님의 소원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의지하고 그분의 뜻대로만 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죄를 승리하며, 죄 없는 정결한 생애를 사셨던 것이다.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죄를 승리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참된 믿음이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내 마음속에 새로운 마음과 영을 창조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다.
참된 믿음이란, 말씀의 능력이 내 마음을 계속 변화시켜 죄를 지속적으로 승리하며 살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다. 마지막 하나님의 남은 자손은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3.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들이다

요한계시록 18장 1절에는 마지막 때에 늦은 비 성령을 충만히 받고 나아가 세상과 바벨론을 향하여 외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역사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옛날 초대교회 때 오순절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온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여 온 땅이 복음의 빛으로 환해진 것같이,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의 참 백성이 늦은 비 성령을 충만히 받고 나아가 큰 소리로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와 재림의 소식을 전할 것이다. 그들은 바벨론의 비밀과 죄악을 폭로할 것이며, 짓밟힌 하나님의 계명을 옹호하고 변호할 것이다.
그렇다면 초대교회가 성령을 받기 위하여 어떤 준비를 했는가?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서로 죄를 고백하였다;

그들은 서로의 잘못에 대해 눈물로 용서를 구하고, 서로 간의 불신을 회개했으며, 자신의 죄를 깊이 살피고 회개하고 통회하였다. 우리도 성령을 받기 위해 열렬히 회개하고 간구하자!

서로의 차이를 없앴다;

그들은 서로의 차이와 이견을 없앴다. 그들은 서로 자신을 낮추고 남을 이해하기를 먼저 했다. 겸손과 양보가 교만과 독선을 대신했다. 그들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 한마음이 될 때,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퍼부어 주실 것이다. 우리도 차이와 편견을 없애고 사랑으로 한마음을 가지자!

복음 사업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간구했다;

초대교회 교인들의 소원은 다른 것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위해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생애와 그분의 나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그들의 말로, 행동으로, 품성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여, 그들 자신을 복음 사업에 적합한 사람들이 되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구하였다. 그러자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그들이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재능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 만들어 주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마지막 곧바른 복음을 효과 있게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성령을 구하자!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 아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명확하게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21).

사랑은 하나님께 근원을 두고 있다.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사랑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사랑은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순수한 사랑에 의해 베풀어지고 이루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풍부한 열매를 맺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양의 일을 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행사했는가를 더 중요시하시기 때문이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거듭나지 아니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사랑의 나무를 생기게 하거나 자라게 할 수가 없다. 사랑의 나무는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마음속에서만 잘 자랄 수 있다. 사랑은 행동이 없이는 살지 못하며, 참된 사랑은 반드시 행위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사랑의 모든 성질이 나타나 있는 고린도 전서 13장만 읽어도 우리는 알 수 있지 않은가? 사랑이 없이는 복음도 힘이 없을 것이다. 사랑의 모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자!

이제 곧 마지막 시대의 초대교회가,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셨던 남은 무리이다. 그들은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계명과 진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성품과 공의로우심을 우주와 세계에 증거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아가 바벨론의 죄악을 폭로하고 그곳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불러내는 일을 할 것이며, 짐승의 환란과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등장할 초대교회! 곧 도래할 영광스러운 성령이 충만한 초대교회, 당신은 이 교회의 일원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한 성령으로 인도하실 한 교회, 한 무리를 가지고 계실 것이다. 그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승리하여 하늘까지 이어지는 교회가 될 것이다!

당신은 이 교회에 참여할 준비가 되었는가?

신앙 제 5부: 유대교회와 현 기독교가 쓰임 받지 못하는 이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불신하므로 맡긴 사명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참 교회로서 쓰임을 받지 못하고 자격을 박탈당했듯이, 현대 기독교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없는 똑같은 상황과 실정에 처해 있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해 초대교회가 새롭게 형성되고 택함을 받았듯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마지막 복음을 바벨론과 온 세상에 전할 또 다른 초대교회가 등장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마지막 교회가 탄생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유대교회와 현대 기독교를 사용하실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유대교회를 버림받게 한 율법주의

하나님께서 유대교회를 사용하실 수 없으셨던 이유는 유대교회를 장악하고 있던 율법주의 때문이었다. 율법주의와 형식주의는 참된 신앙과 믿음과 사랑이 빠져나간 곳에 가장 손쉽게 자리를 잡기로 유명하다. 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그 사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지 않은가?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잃어버렸을 때에, 참된 거듭남과 계속되어야 할 영적 성장이 멈추었을 때에, 그리고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에 나타나는 것이 율법주의이다. 외적인 형식과 가식으로 자신의 신앙 모양을 꾸미고, 겉으로 나타내기 위해, 그리고 참된 경건의 능력의 근원이 되신 분을 잊어버린 채 자신의 힘으로, 외양적인 행위로 구원을 받기 위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매달리는 것이 차가운 율법주의와 냉랭한 형식주의이다.

유대 백성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매우 심각한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들이 예수께서 지적하신 대로"의와 신을 버"렸기 때문에, 쓸데없는 율법주의가 그들의 심령과 종교를 지배했던 것이다."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마 23:23). 유대 백성, 특히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관원들은 의식과 유전의 틀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들의 심령은 예수께서 비유하여 말씀하신 말라붙은 포도주 부대와 같이 마르고 위축되어 있었다. 그들이 율법주의적 신앙에 만족하는 상태에 있는 동안은 산 진리의 소유자들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의가 매우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요소가 그들의 신앙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랑으로 행하며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진정한 믿음은, 의식과 사람의 교훈으로 겹겹이 입혀진 바리새인들의 신앙과는 결합할 수 없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에게 교훈이 필요하기에는 너무 현명하고, 구원이 필요하기엔 너무 의롭다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는 원래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 그들의 조상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세상에서 주셨던 모든 진리는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서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빛났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귀중한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았다. 낡은 유전과 습관과 행동을 비우기 전에는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죽은 형식에 집착하였고 산 진리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돌아섰다. 형식적인 종교와 율법주의는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한다. 율법주의적인 종교는 사랑도, 그리스도도 없는 종교이므로 사람을 결코 구원할 수 없다.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정신에 의해 행해지는 금식이나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 우리 자신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을 살 수 없다. 유대교회는 가장 중요한 사명, 곧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성취할 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바로 유대교회가 버림받도록 만든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기독교는 쓰임 받을 수 없다

현대 기독교는 어떤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전하라고 주신 마지막 경고와 복음의 기별을 전하는 도구로서의 적당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현 기독교는 유대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는 교회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현 기독교에도 율법주의가 휩쓸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 반대인 값싼 은혜주의가 기독교를 장악하고 있으며, 성경의 진리를 왜곡시킨 비진리들이 성행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보편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값싼 은혜와 반쪽 복음, 그리고 비진리의 가르침들에 대해서는 지난 호 월간지들의 신앙기사에서 충분히 다루었으므로 과월호를 참조하기를 바라며 (생애의 빛 홈페이지 www.sostv.net에서 월간지 과월호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면상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반쪽 복음과 오류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의 백성을 양산할 수 없게 만든다. 올바른 가르침과 진리를 알아야 그 진리와 영적 지식으로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 그러나 현 기독교의 가르침으로는 영적 기형아들을 생산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독교 안에 틀린 비진리들 (순종하지 않아도 그냥 은혜로 다 구원을 얻는다는 값싼 은혜주의, 한 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영원구원설, 죄인으로 태어났으니 인간은 결코 죄를 승리할 수 없다는 원죄설, 구원받을 사람은 예정되었다는 예정설, 하나님을 왜곡되게 표현한 영원 지옥설, 성경의 교리와 전혀 맞지 않는 영혼 불멸설 등)이 퍼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사탄의 계략 때문이다. 선악의 대쟁투가 시작될 때, 사탄은 하나님의 계명은 순종할 수 없으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는 죄인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모든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만일 하나님이 죄의 형벌을 면제해 준다면 그분은 진리와 공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사탄은 주장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분의 뜻을 대항할 때 사탄은 기뻐 날뛰며, 사람은 율법을 순종할 수 없으므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자기가 반역한 후에 하늘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에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총에서 영원히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직도 죄인들에게 은혜를 나타내고 계심으로 그분은 공의로우실 수 없다고 참소한다.

그러나 인류가 비록 죄인일지라도 사탄과는 다른 입장에 놓여 있었다. 루시퍼는 하늘에서 하나님 영광의 빛 가운데서 범죄했다. 지음을 받은 어떤 다른 존재들에게도 나타낸 일이 없는 하나님 사랑의 계시가 그에게 주어졌다. 사단은 하나님의 품성을 이해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알면서도 자기 자신의 이기적이고 독자적인 생각을 따르기로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속았으며 사단의 궤변에 의하여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졌다.

사람들은 하나님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죄를 대속하시러 예수께서 오신 것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가 사람들에게 나타났지만, 자비가 공의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율법은 하나님 성품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타락한 인류에게 알맞게 일점일획이라도 변경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변경하지 않으시고 대신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자신을 희생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후 5:19)

그러자 사탄은 또 다른 속임수를 내놓았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공의를 파괴했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기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기독교에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것을 다 덮어주니, 계명을 순종할 필요도 없고, 그냥 은혜로 다 구원해 주신다는 가르침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만일 계명을 변경시키거나 폐기할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변함이 없으며 인류는 이것에 순종함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계명을 확립하신 바로 그 방법을 사탄은 율법을 파괴한 행위라고 주장하며, 십자가에서 계명이 폐했다고 사람들로 믿게 하였다.

현재의 기독교 가르침이 그렇지 않은가? 값싼 은혜주의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현대 기독교에 들어온 오류의 가르침들로는, 사람들이 올바른 진리를 알 수 없고, 그에 따른 올바른 영적 경험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대 기독교의 가르침으로는, 마지막에 하나님의 성품을 온 우주와 세계에 드러내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온 세상에 증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사람들을 준비되게 만들 수 없다. 현 기독교는 불행하게도 유대교회처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는 교회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신앙 제 4부: 함께 생각해보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특징

이제 초대교회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유대인들,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복음 전도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사도들의 전도와 활동으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지고 그래서 이방인들도 같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어 함께 초대교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는, 같지 않은 종교 배경, 같지 않은 인종, 같지 않은 사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룬 특이한 공동체가 되었다. 그들이 한 가지, 곧 십자가에 달려 그들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한 가지가 같았으므로 하나로 연합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함께 모여 교회를 이루고 복음사업에 동참하려고 할 때에, 넘어야 할 장애물과 장벽이 있었다.
새롭게 태동한 초대교회의 형편과 상황, 그리고 교인들의 특징과 활동은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긴요한 연구주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다시 등장시키실 새로운 교회, 곧 과거의 초대교회와 같이 성령의 능력을 충만하게 받고 영원한 복음(계14: 6-12)을 세계만방에 전할 마지막 교회가 태동하려고 하는 바로 그 시점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의 경험이 현재 우리의 경험과 직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함께 이 주제에 대해 연구해 보며, 유익과 교훈을 얻어보자.

초대교회 유대인 신자들이 겪었던 경험

주님의 명령대로 제자들이 제일 먼저 예루살렘에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할 때에, 많은 유대인이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한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제자들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새로운 교회의 일원으로 포함되기 위해 버려야 할 편견과 장애물들이 많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규례들과 의식들을 버려야 했으며, 유대교와 유대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버려야 했다. 또한, 소위 그 당시"새 술"에 취한,"새로운 교"를 받아들인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퍼부어지는 유대교의 극렬한 핍박을 견뎌내야 했다. 초대 교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유대인들이 극복해야 했던 장애와 경험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교훈을 얻어보자.

»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겪었던 경험과 장애물

선입관을 버려야 했음

초대교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오랫동안 젖어 있던 선민의식을 버려야 했던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장구한 세월을 통해 그들만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고, 그들의 조상이 몸소 체험했던 그 많은 하나님의 역사와 지도하심은 그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되어 왔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기존의 선민사상을 과감하게 버려야 했다. 더는 그들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참 백성이며, 그들만의 특권이었던 복음의 가르침이 유대를 벗어나 온 세상에 퍼져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고 마음을 열어야 했다.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제 그들만이 알도록 허용되었던, 그리고 그들만이 간수하도록 주어졌던 진리와 복음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고 공개되었다. 그들은 복음이 예전에 그들이 멸시하던 이방인들에게 전해져서, 그 이방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도를 믿는 신도가 된 사실, 그리고 하나님의 택하신 교회가 이제 유대 교회가 아니라, 이방인들과 섞인 초대교회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편견과 선입관을 제거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초대교회의 유대인 교인들은 넓은 마음으로, 오랫동안 유대 나라에만 위탁되었던 복음을 다른 민족 이방인들이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기뻐해야 했는데, 이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역사 하신 아름다운 증거였다. 그들은 회개하고 거듭나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좁은 마음과 모난 성품을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과 성품으로 바꾸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핍박의 때에 자신들의 재산과 소유를 다 팔아 서로 유무 상통하며, 형제 사랑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이 아름다운 연합의 정신은 진정으로 흠모할 만한 것이며, 현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정신이다.

제사 제도와 의식을 버려야 했음

초대교회의 유대 교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때 버리기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행해왔던 성전 제사 제도와 의식의 폐지를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제사 제도와 의식과 결례들은 그들 종교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제사 제도 의식의 희생제물의 원형과 실체이신 예수께서 실제로 오셔서, 인간의 죄를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으므로, 이제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 제도는 무가치한 일이 되었다. 모든 상징 대부분은 실체와 원형으로 대치되었다. 그중에서, 마음의 거듭남을 상징했던 육체의 할례의식 또한 버려야 하는 큰 것 중의 하나였다. 할례받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표로 여겼던,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이슈였던 할례가, 이제는 마음의 거듭남으로 대치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일원으로 포함되기 위해 육체의 할례를 받는 일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마음의 거듭남을 경험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에 입교하는 조건이 되었다. 그들의 의식 행하는 일과 오랫동안 관습이 되어왔던 제사제도와 인간의 유전들을 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성령께서 주신 넓은 사상과 신앙의 마음으로 모든 관습과 틀과 고정 관념을 버리고 예수님과 복음에 그들의 모든 것을 전념하였다. 그들은 진정으로 유대인 중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유대교회 본부의 핍박과 지엽적 문제 극복

초대교회 유대 신자 중 많은 사람은 전통을 주장하는 열렬한 유대인들의 핍박과 압박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버림을 받거나 가족 관계에서 끊어지게 되는 일이 많았다. 그들은 특히 기존 유대교회의 조직과 본부로부터 심한 핍박을 받았다. 그중에서 야고보와 스데반 같은 신실한 사람들이 순교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였다. 스데반이 죽임을 당한 후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신자들에게 더 심하고 매우 참혹한 박해가 일어나, 초대교회 신자들은"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행 8:1)게 되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초대교회에 밀어닥친 핍박은 복음 사업을 크게 촉진하며, 복음이 더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루살렘 한 곳에서의 말씀 사역에 큰 성공이 따랐으므로, 제자들과 신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라는 구주의 사명을 생각지 않고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무를 위험이 있었으며, 그들이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는 일만큼 중요한 사업이 없다는 생각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새로 개심한 사람들을 교육하는 대신, 이미 성취한 일에 만족하도록 모든 사람을 이끄는 위험에 빠지려 하고 있었다.
그분의 대표자들이 국외로 흩어져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핍박을 허락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신자들이"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다. 핍박 때문에 흩어졌을 때 그들은 선교적 정신으로 충만하여 나아갔다. 그들은 그들 사명의 책임을 깨달았다. 주께서 그들을 통하여 일하셨고,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병자들은 고침을 받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중에 특히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 사람들과 에티오피아의 내시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역사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복음이 받아들여지는 계기의 첫 번째 문을 열었다."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 8:5~8).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났을 때에, 어떤 이들은 사마리아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발견하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복음의 사신들을 환영하였고, 초대교회 유대인 신자들은 한때 철천지원수였던 사마리아 사람 중에서 귀중한 수확을 하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일선에서 수확되는 영혼들을 돌보아야 하는 사명을 걸머지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의 현격한 차이와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 이해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했는데, 그것은 폭 넓은 안목과 마음과 인격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그들을 더욱 고상하고, 배려심과 이해심이 많은 겸손한 사람들로 변화시키셨고, 초대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성령의 역사는 그들을
더욱 고상하고, 배려심과 이해심이
많은 겸손한 사람들로
변화시키셨고, 초대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

초대교회 이방인 신자들이 겪었던 경험

오랫동안 마음속에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갈급하던 이방인 중에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초대교회에 입교한 이방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좀 더 일찍 복음을 받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흑암 가운데 있는 자기들과 같은 이방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열성에 불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는 쉽지 않은 과정을 겪어야 했다. 우선 그들도 이방 신을 섬기고 우상숭배를 하던 그들의 민족에게서 심한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더 큰 이슈는, 오랫동안 배어 있던 우상 숭배의 습관과 행습에서 벗어나야 했으며, 이방 신을 섬기던 예배 형식에서 배웠던 모든 사상과 생활방식을 완전히 개혁해야 했다. 그들이 그동안 섬기고 배워 왔던"신"의 형상과 모습은 하늘에 계신 지혜와 전능과 사랑의 하나님 성품과 대조적이었다.

이방인 신자들이 버리고 또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들은 배우려는 태도와 겸손이 필요했고, 계속적인 성장이 필요했다. 그들이 비록 한 성령을 받았지만, 성령 안에서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들은 세속적인 습관과 생활을 다 버려야 했으며,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모습과 거룩한 생활을 살아야 했다. 정결하지 못한 음식을 먹고 음주하며 방탕하던 식생활의 습관을 버려야 했고, 이제는 복음과 함께 받아들인 원칙, 곧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과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위해 정결하고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들은 생활 전반적인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기 위한 개혁을 시작했고, 그 일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참된 개혁과 세속적인 모든 것을 버리는 신앙의 태도는 현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신앙 제 3부: 초대교회의 태동

주님께서 이루고자 이 세상에 오신 사업은 완성되었다. 인류를 위하여 충분하고도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이루어놓으신 구속 사업과 복음의 비밀을 온 세상에 전할 사명을 그분의 자녀, 곧 새로운 교회에게 맡기셨다."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 20). 예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그들을 도울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과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제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의 임재는 제자들에게서 떠나고 있었으나, 성령이 그들에게 충만히 임하여 그들을 도우실 것이었다. 구주께서는"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5)라고 하셨다.

새로운 교회로의 발돋움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난 뒤의 빈자리는 컸다. 그러나 그들은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서 성령의 부어 주심을 기다렸다. 그들은 한가롭게 기다리지 않았다. 성경의 기록은 그들이"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눅 24:53)였다고 말하고 있다. 제자들은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면서, 참된 회개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서로의 잘못을 고하며, 그들의 불신을 자복하였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교회로 쓰임 받기를 원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들이 상기되자, 기억에서 사라졌던 진리들이 마음에 다시 떠올랐으며, 구주를 오해한 자신들을 책하였다. 예수님의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명상하면서, 그들은 그들의 생애로 그리스도 품성의 아름다움을 증거할 수만 있다면 너무 힘들어서 하지 못할 수고나, 너무 커서 못할 희생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과거의 삼 년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그들은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만일 그들이 주님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깊이 주를 사랑하는지를 보여 드리고자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였을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불신의 말과 행동으로 항상 주님을 슬프시게 한 일에 대하여 슬퍼하며 뉘우쳤다. 그러나 그들은 용서를 받았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들은 한 교회로서, 세상 앞에 담대히 주님을 시인하고 주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전함으로 그들의 불신에 대해 속죄하고자 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고 싶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모본대로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되고 싶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만나기에 적합하게 되도록, 그리고 매일의 교제에서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잘 인도할 수 있도록 매우 열렬히 기도하였다. 불화와 최상권을 잡으려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서로의 차이를 없애고, 그들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그리스도인 교제를 나누면서 서로 친밀해졌다. 이 준비의 날들은 깊이 마음을 살피는 날들이었다. 제자들은 영적인 필요를 느끼고서 저희를 영혼 구원 사업에 적합하게 해 줄 거룩한 정열을 달라고 주께 부르짖었다. 그들은 영혼구원에 대한 부담에 눌려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교회로 택함을 입고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여야 할 사명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능력을 간구하였다.

오순절 성령의 임하심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다. 드디어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비롯하여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던 120명의 사람이 다락방에 모여, 서로의 죄를 고하며 회개와 고백과 찬양과 기도로 시간을 보내며 성령을 간절히 기다릴 때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성령이 충만히 임했으며 모든 사람은 그것을 체험하였다. 하늘은 문을 열고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의 새 교회에게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퍼부어 주셨다. 성령의 감화로 참회와 자복의 기도가 용서에 대한 찬양의 노래와 뒤섞였다. 감사와 예언의 말씀이 들렸다. 놀라운 성령의 감동과 능력이, 비할 데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랑에서 우러난 아름다운 감화가 성령을 받은 초대교회의 사람들을 둘러쌌다. 새로운 교회, 초대교회가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그들 하나하나는 성령의 불로 점화된 불꽃이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3, 4

불의 혀 모양은 제자들에게 내려 주신 선물의 상징으로서,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이제까지 알지 못하였던 언어들을 유창하게 말할 수 있게 하였다. 이제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한 재능과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였다. 예루살렘에서 열리던 종교 축제에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참석하였는데, 그들은 여러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각각 다른 나라의 언어를 정확하게 말하면서, 복음의 진리를 선포했다. 사람들은 놀랐다.
제자들과 베드로가 하는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과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는 말을 듣고 떨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 설교들은 그들의 심금을 울렸다. 사도들의 말은 예리한 화살과도 같이, 영광의 주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의 무서운 죄를 깨닫게 했다.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들은 베드로의"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는 설교를 듣고, 회개했으며, 메시아의 사명과 오신 목적, 그분 나라의 성질을 완전하고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제사장들이 가르친 유전과 미신을 마음에서 제거하고, 대신 구주의 교훈을 받아들였다."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이렇게 초대교회는 먼저 개심한 유대인들로 시작되었다.

신앙 제 2부: 초대교회의 초석이 세워지다

초대교회의 초석은 사실상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택하실 때 놓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위대한 사명을 가진 교회를 탄생시키시기 전에, 먼저 기초를 놓으셔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먼저 진리를 받은 유대인들에게서 시작되어야 했다.
메시아의 오심을 사모하고, 그 예언을 늘 연구하던 진실한 사람들이 예수께서 부르신 열두 제자이다.

열두 제자가 택함을 받은 이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며, 하늘의 진리를 온 세상에 선포하고, 인류를 위한 구원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하는 사업을 수행할 사람들을 택하실 때, 유대 산헤드린의 학식 있는 사람들이나 웅변가, 혹은 율법사들을 택하지 않으셨다. 주께서는 세상을 움직일 그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는 일에 독선적인 유대 교사들을 제쳐놓으시고, 그 첫 번째 그룹으로서 비천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선택하셨다. 이 사람들을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로 훈련하시고 대표자들로 교육하기로 작정하셨다. 왜 주께서는 볼품없고 교육도 많이 받지 못한 무식한 어부들을 택하셨을까? 그 이유는, 그들은 당시의 유전과 그릇된 관습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 나라에 가르쳐지고 있던 가르침과 종교 교육은 죽은 헛된 것이었다. 인간이 만든 복잡하고 쓸 데 없는 규례와 유전들이 하나님의 산 진리와 아름다운 복음을 사장시키고 있었으며, 단순한 진리의 말씀은 제사장들과 랍비들의 이해하기 어렵고 모호한 해석과 복잡한 주석 설명 때문에 오해되고 있었다. 의식과 형식에 치우친 죽은 종교가 사람들의 마음과 영적인 시각을 어둡고 혼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예수께 택함을 받은 제자들은 랍비들의 가르침으로 마음이 굳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하늘의 지혜와 놀랍고 귀한 진리로 교육을 받는다면, 성령의 은혜로 꼴 지음을 받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는 순수한 믿음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예수께서 부르실 때, 그들의 모든 소유와 집을 버리고 주님을 따를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메시아를 고대하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과 마음을 아시고 이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이 일이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지상에서 대표자가 될 교회를 조직하는 일에서 첫 단계가 되었다. 그들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될 것이었으며, 구약 당시에 열두 족장이 이스라엘의 대표자였던 것처럼, 열두 제자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복음 교회, 초대교회의 대표자와 초석이 될 것이었다.

제자훈련 시간들

특별한 사명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삼 년 반 동안 이제까지 세상에 알려진 교사 중 가장 위대한 교사의 교육을 받았다. 예수께서는 개인적인 교제와 감화로 제자들을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일꾼들로 훈련하셨다. 날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걷고 대화하면서, 피곤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주시는 격려의 말씀을 들었고, 또한 병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나타내시는 능력을 보았다. 그분은 그들과 산허리에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고, 때로는 해변이나 길을 거니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들을 알려 주셨다. 또 제자들을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가 어떻게 백성을 가르치는지를 보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지상 봉사의 기간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온 인류에게 구원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그분은 비록 유대인이셨지만, 자유롭게 사마리아 사람들과 접촉하시고, 그 멸시 받는 백성을 존중하심으로 유대인의 바리새적인 관습을 무시하셨다. 그분은 그들의 집에서 주무셨고, 그들의 식탁에서 잡수셨으며, 그들의 거리에서 가르치셨다.

주님께서는 인종 간의 벽을 허시고, 종교적인 편견을 무너뜨리시고 복음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을, 무언의 봉사와 행동으로 가르치셨던 것이다.

시련과 고난을 통해 탄생한 새 교회

제자들이 비록 랍비들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에 완전히 물들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과 종교관에는 당시 랍비들의 가르침이 섞여 있었다. 제자들 역시 현세의 영광을 만족하게 할 메시아를 고대하는 잘못된 메시아 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여러 번 예수께서 강조하시고 설명하셨지만, 그들은 그들의 귀에 들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는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아니, 그것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예수께서 세상에서 위대한 왕국을 건설하리라는 기대를 꺾고, 그럴 만한 모든 능력을 갖추신 스승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바리새인들에게 잡히게 허용하시고 치욕스러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일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현세에 대한 욕망과 욕심으로 마음이 혼미한 그들은 예수님의 뜻하신 바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예수님이 운명하셨을 때에 완전한 절망에 빠지고 처절하게 낙심하였던 것이다. 제자들의 희망의 태양은 졌고 어두운 밤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생전에 예수께서는 여러 번 제자들에게 미래를 열어 보이려고 하셨지만, 그들은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큰 시련과 고난이었다. 그들의 모든 것과 전 생애를 걸었던 헌신이 물거품처럼 헛되게 사라진 듯이 보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그분은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분께서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에서 오랫동안 계획되어 왔던 그 놀랍고 영광스러운 예언의 성취, 곧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셔서, 타락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죽음을 죽으시므로 세상에 구원이 이를 그 놀라운 예언의 성취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하늘이 그렇게 고대해 오던 영광스러운 구원의 경륜이 십자가에서 성취되었건만, 그 영광스러운 사건이 제자들에게는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치욕스러운 사건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련과 고난을 통과해야만 무엇이든지 정결해질 수 있다. 제자들에게 닥쳤던 이 고난과 시련은 새로운 교회,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초대교회의 사전작업에 불과했다. 시련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그들은 그들의 헛된 욕망 때문에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었던 하늘 구속의 경륜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불순물은 다 타서 없어지고 인간적인 욕망은 다 사라졌다. 그들의 마음은 이제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새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이 되었다.

새롭게 뜬 눈으로 바라본 사명

실망과 슬픔과 낙담에 빠진 제자들이 다락방에 함께 모여 문들을 굳게 닫고, 불투명한 미래와 그들의 신변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부활하신 구주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주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놓인 위대한 사업을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고자, 사십일 동안 지상에 머물러 계시면서 지금까지 그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설명해주셨다. 예수님의 초림,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거절한 일, 그리고 그분의 죽음에 관한 예언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분은 그 모든 것이 성취된 것을 보여 주셨다. 주님은"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을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5~48)라고 부언하셨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경험을 얻었다. 이제 그들은 그들에게 맡진 사업의 성질과 범위를 깨닫고, 또 그들에게 위임된 진리를 한 교회로서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교회가 되어, 그들이 목격한 모든 일과 평화의 복음을 전해야 하였고, 회개와 구주의 능력을 통한 구원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증인들이 되어야 했다. 이 은혜의 복음은, 첫째는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에게 전해져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새로운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목격하고 전할 초대교회로서 세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온 세상에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 사명을 완수해야 했다.

신앙 제 1부: 초대교회가 탄생되어야 했던 이유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맡기실 새 교회를 찾고 계셨다. 그때, 역사의 한 획을 그으면서 초대교회는 별처럼 등장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던 선택 받았던 유대인으로 구성된 교회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복음을 전혀 모르다가 개종한 이방인들로만 구성된 교회도 아니었다. 초대교회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각각 다른 종교의 배경과 문화적 차이를 지닌, 서로 다른 인종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였다. 그러나 한 성령 안에서, 한 진리 속에서, 한마음과 한뜻을 가지고 출발하여 활동한 교회였다. 그들의 사명과 목적은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그분의 뜻과 진리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이었다. 초대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주 후 30년부터 4세기 초까지의 교회를 가리키지만, 여기서 조명해보고자 하는 부분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친히 받은 제자들과 사도들이 시작한 교회, 또 그 가르침과 전도를 듣고 진리를 받아들였던 초기의 교회이다. 그렇다면 왜 초대교회가 태동해야 했을까? 하나님께서는 왜 초대교회를 탄생하게 하셨는가?

유대 교회가 버림을 받은 이유

오랫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택함을 받는 특권을 누렸다. 하나님께서는 복음과 진리의 빛이 그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 전해지도록 그들을 빛의 전수자로 삼으셨다. 놀라운 은총과 특권과 사명을 받았던 이스라엘!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복음과 그분의 뜻을 전하기 위해 택함을 받은 교회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바라시던 가장 중요한 사명, 곧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를 영접하고 그분의 진리를 받아들여, 한 국가로서, 한 교회로서 준비되어 하나님의 크신 뜻과 진리를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 그리고 세계만방에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온전한 모본과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야 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한 국가로서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른 교회가 필요하셨다. 더는 기존의 교회인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실 수가 없으셨던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와 교육을 받았던 이스라엘 교회가, 하나님의 목적과 사명을 이루지 못하고 쓰임을 받지 못하는 교회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당시의 유대교회는 형식과 인간의 유전과 의식에 얽매여 있는 영적으로 죽은 교회였다. 그들은 그들의 헐벗고 가련하고 눈 먼 영적 빈곤을 의식과 율법과 규례로 채우고 있었다. 선민의식 속에 싹튼 교만이 그들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으며,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사상과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귀중한 진리를 타민족들과 나누기보다는 높은 장벽을 쌓아 다른 사람들이 진리와 구원의 기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으며, 다른 민족을 멸시하고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또한, 율법주의가 진정한 신앙을 방해하고 있었으며, 형식과 인간이 만든 규례가 유대교회의 믿음을 잠식하고 있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없는 죽은 신앙은, 더 많은 율법 지키기와 의례로 백성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다.

영적 산 능력이 죽은 이스라엘 교회! 오랫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과
교육을 받았지만 한 교회로서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유대 교회는,
복음이 만방에 전해져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쓰임을 받을 수 없었다.

메시아를 거절하게 된 이유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왔던 유대 백성이 메시아를 거절할 수 있었는가?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잘못된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잘못된 교육과 헬라 문화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영적 사고방식이 왜곡되어 있었으며, 현세의 세속적 영광과 권세와 부를 너무 추구한 나머지,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고난을 당하시며, 인간을 죄의 권세로부터 구속하셔서 인간의 마음속에 영적 은혜의 왕국을 건설하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현세에서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로마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구원하며, 유대 국가를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하고 힘 있는 나라로 만들어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구속주로 오셔서 고난을 당하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사 53장, 시 22장 등)을 간과하고, 미래에 영광 중에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기대와 희망에 걸맞지 않게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들이 거절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영광스러운 나라가 임하기 전에 먼저 마음속에 이루어져야 하는 은혜의 왕국을 건설하러 오신 예수님을 거절하므로, 복음으로 온전히 변화되어 복음의 능력을 세계에 나타내 보여야 했던 유대인들은 준비되지 못하여 버림을 받게 된 것이다.

복음은 땅끝까지 전해져야 했다. 하나님의 뜻과 진리가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 가르치신 진리의 말씀과 기별이 온 세상 곳곳에 전해져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준비되었다면, 그들을 통해 아름다운 복음의 기별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들과 모든 이방인에게까지 전해지도록 계획하셨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구속의 경륜과 복음으로 구원을 받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메시아를 거절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이 거룩한 사명을 성취할 수 없었으며,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없었다. 이제 하나님께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는 사명을 완수할 다른 새로운 교회,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초대교회는 그렇게 해서 태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생애의 빛에서 드리는 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교회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용하시는 교회를 자꾸 바꾸어 오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편견으로 편애하시는 분이신가요? 물론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축복하신 교회들이 자꾸 진리를 배반하거나 세상과 타협하여 나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오죽이나 답답하시겠습니까?

기독교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시대마다 당신께서 택하셨던 자들을 할 수 없이 포기하시고 또다시 진리에 충성하는 신실한 백성을 찾아 나서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참으로 쓸쓸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우리를 구원할 진리이지, 사람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큰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진리와 뜻대로 따라가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무가치한 사람들입니다. 지나간 역사에서 진리와 하나님의 교회를 반대하고 핍박한 자들은 세상에서 이름이 있고 인정받으며 살던 훌륭한 자들이었습니다.

옛날 유대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배반하였으며 메시아를 거절하였습니다. 참된 복음을 거절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할 수 없이 다시 교회를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빛을 온 세상에 전파하여 모든 이가 영생을 얻게 하는 진리를 공평하게 소유하여야 하는 사명, 곧 유대교회가 가지고 있던 그 사명을 다른 교회를 통해서라도 성취하셔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방인들을 불러들여서라도 말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참 엄숙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발행인  강 병 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