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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2부: 더러운 옷과 불에 그슬린 나무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3:2, 3).

 

스가랴 32, 3절에서는 1절에 등장하는 이상하고 흥미로운 장면의 원인과 이유가 확실하게 밝혀지고 있다. 왜 사탄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여호수아를 그렇게 대적하고 있는지의 이유가 밝혀지는 것이다. 왜 사탄이 여호수아를 대적하며 고소하고 있었는가? 그 이유는 바로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의기양양하여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여, 보십시오! 이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 당신의 백성, 그것도 모든 백성의 대표자 대제사장이란 사람이요! 이렇게 형편없는 성품을 가진 시커먼 죄의 옷을 입은 사람이어떻게 이런 죄인이 제사장이 될 수 있고, 또 성전을 짓는 사업을 할 수 있겠소? 제사장이란 사람이 이러니 다른 백성은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은 멸망을 받아 마땅합니다!”

이때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대답이 발해진다.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과연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법정 공방에서 벌어지는 사탄의 고소를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침묵시키시고 해결하실까? , 이제부터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상황을 함께 연구해 보자.

 

1) 성경에 나타난 옷

 

먼저 여호수아가 입고 있던 더러운 옷, 그래서 사탄에게 고소 거리를 제공하게 된 옷에 대하여 고찰해 본 후 연구를 계속해 나가기로 한다. 성경에서 옷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성경에 은 성품이나 행실, 그리고 의와 관련되어 나타나 있다. 옷과 관련된 성경절들은 다음과 같다.   

 

1. 의로 상징된 기록

 

* 64:6 -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 3:5 –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3:18 –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 16:15 –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성경에서 옷이나 예복은 종종 를 상징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창세기 37절과 21절에는 두 가지 옷, 무화과 잎으로 엮은 옷과 가죽옷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이 옷은 둘 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와 타락과 관련이 있다. 죄를 지어 벗었음을 알게 되자 그들은 무화과 잎사귀로 옷을 만들어 벌거벗은 몸을 가리려고 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겠다는 구속의 계획(3:15)을 발표하신 후 가죽옷을 지어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히신다. 여기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뜻이 숨어 있다. 그들은 범죄하므로 빛의 옷을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그 잃어버린 옷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 곧 그분의 의를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무화과 잎으로 엮은 옷, 인간의 의는 그들을 가려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의의 옷만이 그들을 구원해줄 수 있었다. 위의 성경절들을 보면, 이사야는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피력하고 있으며, 그 외의 성경절들에서도 흰옷은 인간이 유일하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편인 하나님의 의를 상징하고 있다.  

 

 

2. 행위나 성품의 상징으로 기록된 예

 

* 19:8 -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59:6 – “그 짠 것으로는 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 3:4 –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 22:11, 12 –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앞의 성경 절들을 보면, 옷은 행위나 행실 또는 성품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깨끗한 옷과 흰 옷, 혹은 예복은 성도의 옳은 행실과 구원받기에 합당한 성품의 상징으로 쓰였다.

 

2) 여호수아와 더러운 옷

 

앞서 우리는 성경에서 시사하는 옷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여호수아가 입고 있는 더러운 옷에 대해 쉽게 유추해낼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 사탄에게 고소거리를 제공해 준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은 바로 그의 죄와 허물, 그리고 죄 되고 부족한 성품을 상징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더러운 의를 나타내고 있었다.

 

1. 여호수아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었고, 사탄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여호수아의 죄 된 성품과 허물과 죄를 낱낱이 들춰내며 그를 고소하고 있었다. 사탄은 그를 대적하기 위하여 담대하게 일어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 받아서는 안 될 이유로서 그들의 범죄를 지적한다. 그는 그들을 그의 포로로 주장하고 그들이 죽임을 당하도록 그의 손에 맡겨지기를 요구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두려움으로 법정에 서 있는 여호수아, 자신의 절망적인 처지를 생각하며 풀이 죽어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광경인가! 여호수아는 사탄의 비난에 대해 답변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볼 때, 그리고 그의 백성의 허물과 죄를 바라볼 때 낙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묵묵히 서서 그의 허물과 죄를 고백할 뿐이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사탄의 비난에서 그 자신이나 그의 백성을 방어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허물이 없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기가 대표하는 백성의 죄를 상징하는 더러운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죄와 그들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받기 위하여 탄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들의 회개와 겸비를 가리키며 죄를 용서하는 구세주의 자비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면서 탄원하고 있었다.

 

사탄이 일어나 더러운 옷을 지적할 때 여호수아는 자신을 바라보며 낙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나 그는 하늘의 중보자께 탄원하고 구주의 공로를 의지하여 열렬히 간구한다. 주님께서 사탄의 참소를 침묵시키고 그의 공격과 계책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부르짖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자들은 여호수아처럼 오늘날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고,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그들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한 용서를 열렬히 간구해야 한다. 그들의 통회와 겸손은, 슬피 탄식할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완전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영적 교만보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훨씬 더 가납될 만한 아름다운 일이다.

 

 

2. 인간의 대표 여호수아

 

하늘 법정에서 사탄의 고소를 당하고 있는 여호수아는 표상적으로 죄지은 인간을 대표하고 있다. 여호수아처럼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사탄의 비난에 대답할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렸던 이스라엘 백성은 매우 결함이 많은 허물투성이의 민족이었다. 현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허물과 부족이 많은 사람이다. 사탄은 자신이 인간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한 죄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는 그 죄들을 가장 크게 과장하여 제시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나와 나의 사자들은 추방하시면서 동일한 죄를 범해 온 이 사람들은 구원을 하실 것입니까? 안 됩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당신의 보좌는 의와 공의로 설 수 없을 것입니다. 공의는 그들을 정죄하는 선고가 내리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사탄이나 그 부하들과 같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가운에서 그분의 면전에서 스스로 반역하여 죄를 지었지만, 인간은 사탄의 속임에 빠져서 죄를 짓게 된 것이다.

 

법정에 서 있는 여호수아의 처지는 우리의 처지와 얼마나 같은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사탄은 기뻐 뛰며 이렇게 소리친다. “저들을 보라! 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저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우리를 향한 사탄의 고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하늘 법정에서는 지금도 이런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우리가 죄를 범하고 실수할 때마다 주님께서는 수치를 당하시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 욕을 돌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존절하게 살아야 하겠는가!

하나님의 인정받은 백성이 더러운 옷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서 있는 이 계시의 장면은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을 회개하게 하고 마음을 깊이 살피게 해 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품성의 모든 결함과 하나님의 표준에 이르지 못하는 모든 연약한 점 때문에 사탄이 인간을 정복하고 파멸시키기 위하여 들어올 수 있는 문이 열린다는 것과 또 우리의 모든 실패와 결함이 사탄에게 그리스도를 비난할 기회를 준다는 것을 기억하고 죄를 정복하고 승리하는 일에 더 큰 열성과 열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3) “불에 그슬린 나무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겸손하게 탄원하고 있을 때 참소자 사탄에게 놀라운 선고가 발해진다. 사탄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책망과 선고가 내려지는 것이다.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말일까? 누가, 왜 불에 그슬린 나무인가?

 

그슬린 나무의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불에 그슬린 나무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현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다. 이 악한 세대 속에서 죄에 오염되고 죄의 영향을 받으면서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수아처럼 매 순간 사탄의 고소를 당하며 하나님 앞에서 냄새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초라하게 서 있는 존재들이다.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탄의 시험과 유혹은 얼마나 강한가!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를 멸망시키기 위해 온갖 계략을 다 사용하며 시험한다.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주님을 따라가는 길에 온갖 어려움과 장애물을 펼쳐 놓는다. 그리하여 고난의 불과 시험과 고통 가운데서 신앙을 포기하도록 유혹하며 멸망의 불 속에 집어넣어 태워버리려고 애를 쓴다. 사탄이 온갖 술수와 흑암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덮어서 멸망시키려고 하는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개입하신다. 비록 그들이 죄를 범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불에서 나무 조각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인류를 끄집어내셨다. 너무 뜨거운 풀무불 속에 계속 두면 그분의 연약한 자녀가 너무 상해서 살아남지 못할까 봐 그들을 불 속에서 얼른 꺼내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에 그슬린 나무인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가 다 타서 없어지도록 강하게 공격하며 달려든다. 그러나 주님의 눈은 그분의 백성을 주시하신다. 그들의 고통은 크며, 시련의 풀무의 불꽃은 마치 그들을 다 태워 버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불 속에서 연단한 금처럼 나오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하게 반사하기 위하여 그들의 세속적 마음은 연단의 불 속에서 제거되고, 불신은 극복되고, 믿음과 소망과 인내가 계발되도록 주께서는 고통의 불을 이용하신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에게 결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들은 사탄처럼 그들 자신을 악의 지배에 완전히 맡기지는 않았다. 주님의 백성은 죄를 버리고, 겸손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다. 거룩한 중보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보시고 구원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와 실수와 배은망덕 때문에 가장 크게 모욕을 받아 오신 분, 그러나 그들의 눈물 어린 회개와 통회를 아시는 분께서 일어나셔서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내가 이 영혼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버렸다! 그리고 그들을 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시며 사탄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성을 입으셔서 사람과 연결되셨고, 또한 당신의 신성으로써 하나님과 일체가 되셨다. 그분의 무한하신 능력과 은혜의 도우심은 시련의 불 속에서 신음하는 영혼들, 연약하여 죽어가는 영혼들, 그러나 그들의 죄로 마음 아파하며 통회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손을 뻗는다. 이제 그들을 멸망시키려고 달려들던 대적 사탄은 책망을 받는다. 비록 불에 타다 남은 나무토막처럼 되었지만, 결코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고 그저 냄새나는 영혼으로서 고개 숙이고 있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지만, 그리고 아직 상처투성이요 불로 인해 검게 탄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통회하며 주님께 나오는 겸손한 사람들은 중보자 예수님의 눈에 그분의 보혈로 구원을 받는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