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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4부: “정한 관”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3:5).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것에서 끝날 것 같은 스가랴서 3장의 계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다음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더 전개된다. 머리에 정한 관을 씌우시며, 그 후에 보장되는 천국 생활의 묘사가 이어지는 것이다. 왜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것에서 계시가 끝나지 않는 것일까? 거기에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매우 깊은 진리의 도가 숨어있는데, 그것은 회개하고 주님께서 입혀주신 의의 옷을 입는 것만으로는, 즉 칭의를 얻는 것만으로는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오히려 구원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십자가에서 구원이 끝난다고 믿는다. 십자가의 보혈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십자가를 믿고 회개하기만 하면 다 된 것이고 구원을 받는다고 기독교에서는 가르친다. 물론 회개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성경은 그보다 더 깊은 진리를 전해주는데,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회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구원 과정에 있어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스가랴 3장의 계시를 보아서도 확실히 알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외에 무엇이 더 있는가? 스가랴 3장의 계시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해준다. “아름다운 옷만으로는 넉넉하지 않다! 머리에 정한 관을 써야 한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5절부터 시작되는 심오한 내용의 이야기를 공부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 이제 5절부터 10절까지 계속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성경의 진리를 공부해 보기로 하자.

 

1)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스가랴의 계시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죄인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실 뿐 아니라, 그에 더하여 머리에 정한 관을 씌우신다. “정한 관"이란 무엇이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

 

1. “정한 관이란 무엇인가?

 

정한 관은 성소 제도에서 제사장들이 머리에 쓰는 관을 가리킨다. 이와 관련된 성경절을 하나 보자.

모세가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웠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8:13).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패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8:9).

레위기 8장에는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아론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제사장 예복을 입히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데, 제사장이 머리에 쓰던 관이 정한 관이었다.

출애굽기 39장에는 관에 대한 더 자세한 묘사가 나온다.

세마포로 두건을 짓고 세마포로 빛난 관을 만들고 가는 베실로 짜서 세마포 고의들을 만들고그들이 또 정금으로 거룩한 패를 만들고 인을 새김 같이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 새기고, 그 패를 청색끈으로 관 전면에 달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39:28, 30, 31).

 

여기서 주의를 집중해서 보아야 할 사실은, 제사장이 쓰는 관은 삼중으로 되어 있었고 관의 전면에 청색 끈으로 묶인 금판이 있는데, 그 금판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 관을 거룩한 관”(39:30, 31 킹제임스역)이라고 불렀다. 이 금판은 청색 끈과 함께 아론의 이마에 얹혔는데, 이것은 대제사장으로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참된 대표자임을 상징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삼중 면류관을 상징하며, 또 구속 받은 자들이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천 년 동안 왕노릇할 때에(20:4, 6) 머리에 쓸 거룩한 면류관을 표상하기도 한다.

 

2. “정한 관을 머리에 쓴다는 의미 성화

 

정한 관을 머리에 쓴다는 영적인 의미는 성화이다. 앞서 성경의 기록을 살펴본 대로 제사장들은 그들이 머리에 쓰는 관 앞에 금판을 붙이고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 글귀는 관을 쓰고 있는 제사장의 앞이마에 와 닿게 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매우 귀중한 영적 의미가 들어 있다. 그것은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 곧 하나님의 자녀와 거룩한 제사장으로 택하심을 입은 성도의 앞 이마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정결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앞이마가 정결하다는 뜻이 무엇이며 그것이 성화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과학적으로 고찰해 보면, 우리의 앞이마 뒷부분에는 뇌의 전두엽이 자리잡고 있다. 전두엽에서는 이성, 판단, 선택과 결정, 의지를 통제 관할한다. 그리고 전두엽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기능은 영성, 도덕성, 의지이다. 그렇다면 앞이마가 정결해진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성령께서는 우리의 전두엽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죄의 유혹이 올 때, 그리고 사단이 우리가 죄를 짓도록 유혹할 때, 사단의 말을 듣고 사단의 편을 택하여 죄를 짓든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께 굴복하여 죄의 유혹을 물리치든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음성을 선택하면 그는 의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되지만, 육체의 소리에 복종하여 살면 악인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 순간 육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음성에 굴복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결정을 할 때, 우리의 앞이마와 두뇌의 생각이 정결해지는 것이며, 이러한 삶이 지속되는 것이 성화이다. 곧 성령 안에서 주님을 따라 걷는 거룩한 생활이 성화이다. 요즈음 기독교에서는 성화를 거의 강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거룩한 생활, 곧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길로 따라 걷는 생활이나 영적인 성장, 또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은 거의 가르쳐지지 않고 있다. 십자가에서 구원이 끝났으므로 믿기만 하면 은혜로 다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가르침은 많은 사람을 멸망으로 이끄는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가까운 마지막 시대를 사는 성도로서, 그리고 성경의 진리를 깊이 연구하는 학도로서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구원은 칭의만 가지고는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칭의가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표라면, 성화는 하늘에 가서 살 수 있는 적합성이다. 곧 하늘의 거룩한 사회에 적응하여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져야 하늘에서 살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회개하고 의롭다는 칭함(칭의)를 받고 거듭나는 것은 구원에서 오직 시작점일 뿐이다. 만일 거듭나기만 하고 자라남이 없이 그 지점에서 멈춘다면 그것은 산 신앙도 아니고 살아있는 신앙의 경험을 하는 것도 아니다. 거듭난 후에는 반드시 자라남과 성장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 성장이 바로 인간의 뇌의 전두엽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매 순간 굴복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삶이며, 그것이 성령께 굴복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화이다. 성화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 곧 성령의 음성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화이다.

 

2) 정한 관과 하나님의 인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상고해 보아야 할 것은, 정한 관과 마지막 남은 무리가 받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 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과 어린 양의 이름이 이마에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성품을 의미한다( 33:18~23 참조). 그러므로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의 성품 안에 재현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이 바로 스가랴 3장의 계시에 나오는 정한 관을 머리에 쓴다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므로 주님의 성품이 우리의 앞이마(전두엽)에 재생된다는 의미이다. 곧 성령께 지속해서 굴복된 의지를 가지므로 죄를 승리하고 점점 더 하나님의 성품으로 꼴 지어져 가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거듭난 마음을 계속 유지하고 매 순간 성령과 교통하므로 죄를 이기며, 사단의 유혹이 올 때 매번 올바른 편(성령의 음성을 듣는 편)을 지속해서 선택하므로 영성과 도덕성과 의지력이 온전하게 꼴 지어져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그것이 앞이마가 정결하다는 뜻이고, 그런 사람의 앞이마에 하나님의 인이 쳐지는 것이다.

 

3) 주어진 아름다운 약속

 

여호수아의 머리에 정한 관을 씌우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에게 아름다운 한 약속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대적을 받고 있는 죄 많은 인간을 대표하는 여호수아를 사탄의 고소에서 건져주시고 용서하셨다.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셨다. 이제 그 자신의 죄와 그의 백성의 죄는 용서되었고, 이스라엘은아름다운 옷으로 입혀졌다. 곧 그리스도의 의가 입혀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다시 그분의 제사장으로 인정하셔서 머리에 정한 관을 씌우신다.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여진 관은 제사장이 쓰는 것이었고, 비록 이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제 다시 하나님의 성소에서 그분 앞에 봉사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았다. 정한 관을 씌우실 뿐만 아니라, 창조의 능력과 은혜로 앞이마에 하나님의 성품이 재현되도록 도와주시기까지 하시는 것이다. 그 후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약속이 여호수아에게 보장된다. 그런데 그 약속은 성화의 생애를 사는 전제와 조건 아래서 주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약속은 바로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3:7, 10)는 것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이며 무슨 약속인가? 이 약속은 바로 빛나고 영광스러운 천국 생활을 보장하시는 구원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며 뜰을 지킨다는 말은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왕노릇하며 영원히 구원과 영생의 복을 누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한다는 말은, 대속죄일을 지나 모든 죄를 용서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큰 기쁨 속에서 천국 생활을 표상하던 장막절을 지키며 잔치를 베풀고 서로 초대했던 것처럼, 하늘에서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여 주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있는 천사들과 영광스러운 무리에 들어가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며 살 것이라는 약속이다. 단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그렇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곧 지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산다면, 성화의 길을 따라 산다면 그렇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얼마나 정확한 진리인가!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게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놀라운 약속을 발표해 주셨다. 그 또 다른 약속은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3:8)는 약속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그것은 장차 너의 죄를 대속할 구세주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약속인데, 그 구세주는 죄에서 인간을 구속해줄 뿐만 아니라 친히 성육신 하셔서 인간으로서 살아보심으로 인간을 어떻게 도와주실 줄 알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정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인간을 잘 변호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그 구세주는 연약한 인간이 죄를 승리하고 살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며, 연약한 인간을 다시 거룩한 제사장으로 만드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구세주이신데, 그런 분이 메시야로서 이 땅에 태어날 것이라는 보증과 약속이었다.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이 용서를 받은 것은 장차 올 구주를 믿는 믿음에 의한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그분의 도를 준행하고 그분의 율례를 지키면 그분의 공로에 의하여 그들은예표의 사람이 되고, 세상의 나라들 가운데서 하늘의 택한 자로 높임을 받을 것이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소망, 우리의 의와 구속이 되신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와 구속을 통하여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고 제사장으로 회복되어 하늘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공부했듯이, 스가랴 3장에 기록된 짧은 계시 속에는 하나님의 구속의 비밀의 계획과 그 계획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취시키시는 방법과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자비로우신 사역, 우리를 고소하며 멸망시키기 위해 애쓰는 사단의 공격, 그리고 믿음으로 주님을 붙잡고 회개하는 인간들을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와 죄인을 다시 거룩한 제사장으로 회복시키시는 놀라운 방법이 이보다 더 고무적이고 희망적으로 쓰여진 기록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이며 사랑의 역사인가!    

 

** 마치면서

 

스가랴 3장에 기록된 계시는 마지막 시대의 성도를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늘 법정에서는 죄인인 우리 인간들을 위해 사탄의 고소를 막으시며 중보하고 변호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죄 된 행동이 얼마나 사탄의 고소거리를 많이 만들어 주고 있으며, 우리의 부족한 성품과 말로 주님께 욕을 돌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더 엄숙하고 신실하게 돼야 할는지요! 영적인 대속죄일에 사는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고 회개하며 마음의 순결을 위하여 탄원해야 할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더러운 옷을 벗기라는 명령이 내리고,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는 선고를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머리에 정한 관을 쓰고 다시 주님의 제사장의 직분을 맡아 일할 수 있도록 지금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을 겸비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3장의 계시를 통하여 오늘도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계십니다. 아무리 더러운 옷을 입었을지라도 내 앞으로 나오라고그러면 내가 그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고그리고 정한 관을 씌우며 너를 구원하리라고

오늘 스가랴 3장의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감사하면서 회개하며 주님께 마음을 헌신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은혜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인 지금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시렵니까? 그래서 정한 관이 우리 머리에 씌워지도록, 하나님의 인이 우리 앞이마에 쳐지도록

스가랴서 3장에 나타난 계시의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의 이야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