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권두언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큰 소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마지막 선과 악의 전쟁이 마쳐지기 위하여 필요한 하나님의 증인들이 속히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 증인들은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는 십사만 사천이며, 여자의 남은 무리로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 세 천사의 복음을 이해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과 진리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로 온전히 성화된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실제적인 삶 속에서 진리가 살아 숨 쉬는 사람, 말 뿐만이 아니라 진리로 성품이 온전히 꼴지어진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성품을 통해 드러나는 진리의 빛 때문에 많은 영혼들이 진리로 나오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예수님의 재림이 한해 더 가까워졌습니다. 2014년은 우리 모두 주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를 완전히 갖추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품의 빛, 진리의 빛 때문에 주님의 재림이 촉진되는 일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이 일이 넉넉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Love Letter_ 겨울 안개 속에서

 

 

그 길은 너무 익숙한 길이었습니다.

길을 잃을 만큼 그렇게 복잡하거나 낯선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만 그 길에서 길을 잃고 몇 번을 헤맸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운전을 하며 지나던 그 한적한 시골 국도에는 늘 똑같은 나무들,

가끔씩 나타나는 늘 같은 건물, 늘 같은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우거진 작은 숲이 나타나 미국 동부 특유의 한가한 풍경을 연출해주지만, 그렇다고 그리 경관이 뛰어난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그런데 그날 그 길의 모습은 정말 달랐습니다.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겨울 안개 뽀얗게 덮인 도로변의 나무 숲들은 마치 동화 속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나라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흰 너울처럼 살랑거리는 겨울 안개는 검은 숲을 하얗게 덧칠해 놓았고, 회색 하늘 아래서 나무와 수풀과 덩굴들은 신비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마다 걸려있는 하얀 안개는 마치 소녀의 목을 두른 꽃 화환처럼 부드럽고, 온 천지는 안개 속에서 새로 단장한 신부마냥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치장되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름답게 변한 길 주위의 모습이 하도 생소해

빠지는 길을 놓치고는 몇 번이나 헤매다가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익숙하던 길의 모습을 바꿔 놓았을까 하고…

 

그것은 안개였습니다.

그리 멋지지도 않고 그리 뛰어나지도 않던 그 길의 풍경을

그렇게 신비하고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만든 것은 안개, 하얀 겨울 안개였습니다.

 

익숙한 길에서 헤맨 사실이 어이없어 헛웃음 지며 돌아오다 갑자기 의아해졌습니다.

하얀 안개로 모습이 싸인 것밖에는 별 치장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 길이 그리 생소해 보였을까?

하얀 안개가 감싼 것밖에는 별 단장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 길이 그렇게 멋지게 변한 걸까?

 

그러다가 갑자기 그 길 모습이 부러워졌습니다.

나도 그렇게 변한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면…

그래서 늘 봐오던 사람들이 변한 모습에 놀랄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입술에서 저절로 기도가 나왔습니다.

하얀 겨울 안개처럼 부드럽게 감싸시는 성령의 은혜로

내 추한 모습도 그렇게 가려질 수 있기를…

변하게 하시는 성령의 손길로

내 모습도 그렇게 곱게 치장해 주시기를…

그리고

성령의 안개로 변한 내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게 되기를…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성령의 일이 되고,

내가 하는 말이 성령의 말이 되고,

내가 하는 생각이 성령의 생각이 되기를…

 

겨울 안개 속에서 헤매던 그 날은 너무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신앙 1부_ 마지막 때 조명을 받을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으며 떠오를 한 백성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그들의 특징을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으며,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남은 무리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온 세계와 우주에 증거하는 증인들이며, 또한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최후의 마지막 남은 한 가지까지 다 바치는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고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포기하지 못할 것이 없으며, 그들의 모든 것, 생계와 재물, 음식과 의복, 평판과 명예, 세상의 안일과 가족, 심지어 자녀까지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번 호 신앙기사에서는 자신이 가진 마지막 최후의 한 가지까지 다 바치며 하나님께 신실했던 성경의 인물들을 조명해 보면서 마지막 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충성심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마지막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에 끝까지 충성하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편 집 실 -

제1부: 마지막 때에 조명을 받을 사람들

연극이나 어떤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는가? 보통 관객석과 무대가 어둡다가 주인공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때 무대 한 군데만 둥그렇게 환한 조명이 비친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것이다. 환하게 비치는 조명, 그리고 숨죽이는 캄캄한 객석!...그 순간은 매우 떨리고 숨을 고르게 되는 장면이다. 조명이 주인공이나 그 배역을 맡은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비치는 그 순간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 그런 숨죽이는 순간이 곧 올 것이다. 갑자기 하나님의 남은 무리에게 환한 조명이 집중적으로 비치는 날이 올 것이다. 마지막 진리의 복음의 진수를 알고 이해하는 하나님의 남은 자손, 여자의 남은 무리라고 공언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세 천사의 복음을 믿고 진리대로 산다고 말하는 우리들에게 환한 조명이 집중적으로 비쳐질 날이 곧 찾아 올 것이다. 그런데 조명을 받는 그 날은 아주 짧은 순간이 될 것이다. 그 중요하고 짧은 순간에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배역을 충실하게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조명을 받으며 서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모든 것, 우리의 생명까지라도 버리며 충성할 수 있는 사람들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으며 떠오를 한 백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온전히 준비된 사람들로서, 그들에게 조명이 비칠 때 하나님의 흠 없는 품성을 그대로 재현하고 보여줄 사람들,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온전하게 완수해 낼 사람들로 그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5]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살짝 비춰 보이실 때가 있다. 조명을 받게 될 때 그 때에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어떤 일이나 사건이나 상황이 연출되고, 시련과 시험이 닥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과연 이 역할을 위해 조명을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를 시험해 보실 때, 그 때 나타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품성이 드러나는가? 어떤 것을 희생하고 포기하더라도, 우리의 모든 것, 심지어 우리의 귀한 생명까지라도 포기하면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모습이 드러나는가? 하나님의 계명과 뜻과 진리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끝까지 충성하는 믿음이 보여지는가? 남은 무리의 특성 중 매우 중요한 것은 충성이다.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증인이며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다. 십사만 사천의 특징 중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라는 구절은 “충성”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 영어로 이 구절은 “And in their mouth was found no guile”(킹 제임스 역)로서, 여기서 “guile”i이란 “간교한 속임수, 두 가지 마음을 품은 것”을 가리킨다.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 충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온전히 바쳐진 마음이 아니라 나누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 곧 두 주인을 섬긴다는 뜻이다. 충성은 두 마음을 품는 것과 반대이다. 하나님께 한마음을 품는 것, 변함이 없는 일편단심의 마음과 믿음은 간교한 속임수의 마음인 두 마음과 반대되는 충성된 마음이다. 충성은 처음에 약속한 것을 끝까지 지키는 것으로“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시 15:4)는 신실한 특성이다. 성경에는 자기에게 마지막 남은 최후의 한 가지까지 하나님께 드리며 충성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중 몇 사람의 예를 살펴보며 우리의 충성을 시험해 보자.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또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바치며 충성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신앙 2부_ 최후의 양식을 포기한 충성

 

아합 왕을 선두로 온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져 국가적으로 하나님께 배도했을 때에 하나님을 위하여 담대하게 홀로 우뚝 섰던 엘리야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엘리야가 건재하도록 뒤에서 선지자를 후원한 한 사람의 충성이 있었기에 그 일이 가능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그 충성스런 사람은 바로 이방 여인 사르밧 과부였다.

 

1) 엘리야의 피신

이세벨의 영향으로 아합과 온 이스라엘은 바알 숭배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그들은 모든것을 공급하시는 생명과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우상 숭배의 배도로부터 돌이키기 위해 일어선 엘리야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였다. 가뭄과 주림과 기근으로 인간과 짐승이 고통을 당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악한 왕후 이세벨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신실하고 무죄한 엘리야는 악한 이세벨의 공격을 피하고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피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엘리야는 한동안 그릿 시내 곁에 있는 산중에 숨어 여러 달 동안 기적적으로 하늘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았다. 그 후 계속된 한발로 시내가 마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방 나라에 가서 피할 곳을 찾도록 하셨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왕상 17:9).

 

2) 택하심을 입은 이방 여인

이 사르밧 과부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선민이 누리는 특권과 축복을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 땅에 엘리야를 위하여 안전한 곳이 없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안전하게 피신하게 하시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살피고 보호하기 위해 택하심을 입은 사람이 바로 이 사르밧 과부였다. 이스라엘이 배도했을지라도 아직 숨어있는 신실한 사람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이방 나라에도 소문과 이스라엘의 역사의 산 증거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그 진리에 대하여 듣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방의 악한 도시 시돈에 속한 사르밧의 이방 여인이 하나님의 선지자가 안전하게 피신할 장소와 공양할 사람으로 선택을 받았을까? 이 여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자기에게 비춰진 작은 빛이지만 그 모든 빛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이었으며 너그럽고 남에게 희생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여인이었다.

두로 가까이 있던 시돈은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로서 그 당시 상업과 무역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었다. 예술과 유흥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었던 시돈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 유명한 곳이었고, 또한 무역으로 인해 각 나라의 소문과 정보가 빠른 곳이었다. 아마 소문을 통해 이 여인은 최근에 임한 기근과 가뭄의 원인이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하나님께 배역함으로 오는 결과라는 사실을 들었을 것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경고를 담대하게 전했던 선지자 엘리야에 대해서도 들었을 것이다. 이방 도시 시돈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혼잡한 바벨론처럼 혼잡한 이 세상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적인 안목으로 볼 때 하나님의 선지자가 접근하기가 어려워 보이고 전혀 안착할 수 없어 보이는 이방 지역 두로와 시돈, 그리고 이 시돈의 사르밧, 사렙다 지방이, 선지자가 안전하게 숨고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일한 도시였다. 즉 선지자가 환영을 받은 곳은 이스라엘이 아닌 시돈이었던 것이다.

 

3) 최대의 시험

하나님께서 이 여인과 교통하셨을까?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일어난 사건의 전말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사르밧 과부에게 성령의 감화를 통해 교통하고 계셨음이 확실하다. 먼 길을 쫓기듯 여행한 후 지친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는 엘리야의 첫 번째 요구는 큰 믿음을 나타내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먼 여행 끝에 허기지고 지친 엘리야는 왜 물만 달라고 했을까? 그는 아마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하나님께서 이 이방 여인을 선택해서 나를 먹이고 공양하게 하신 것인가? 어떻게 이스라엘 여인도 아닌 이방 여인을 택하셨을까? 그래서 머뭇거리다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하고 용기를 내어 물을 가지러 가는 여인을 돌려 세우고 다시 말하기를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그 때 여인의 답이 무엇이었는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이 여인은 하나님 여호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했던 것이 아닌가?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순간 이 여인은 당황했다. 여인이 듣기에 이 얼마나 뻔뻔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요구였는가! 이제 마지막 한 줌 남은 양식, 이것만 먹고는 죽으려는 기막힌 사정에 처한 여인에게 그 소중한 마지막 양식을 자기에게 달라니!

사르밧 과부에게 이것은 최대의 시험이었다. 이 가난에 시달린 과부의 집에 심한 기근까지 밀어닥쳐 비참하게도 하잘 것 없는 음식마저 끊어질 지경이었다. 그녀에게는 여느 여자들처럼 생계에 위협이 올 때 의지할 남편이 없었다. 다만 어떻게 하든 먹여 살려야 하는 어린 아들이 있을 뿐이었다. 가뭄과 기근이 들어 어렵사리 이어가던 하루 품팔이 일거리도 떨어지고, 어디 가서 그녀의 가난이나 굶주림을 하소연할 곳도 없는 이 가련한 여인이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에 처해 있던 바로 그 날 엘리야가 나타난 것이

다. 여러분은 굶주려 본 적이 있는가? 가난과 기아, 굶주림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와 욕구를 위협하는 것이다. 생계 문제는 누구에게나 가장 힘든 시련이 된다. 자기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그 여인의 신앙은 그때 최대의 시험을 받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마치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온 성경 이야기라서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막상 이 일이 우리 자신에게 닥쳤다면 어떻게 했겠는가? 아무리 이 여인이 신실한 믿음을 가졌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사람의 이기적인 요청이 왔을 때 마음속에 어떤 시험이 일어났겠는가? 아니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음식을 더 풍부히 허락해 주시지는 못하실망정, 마지막 남아있는 조금의 가루와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자기를 먼저 달라는 뻔뻔한 사람을 보내시다니!. ..

더구나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어린 아들이 있지 않은가? 굶주림으로 어가는 어린 아들, 이 양식은 그녀의 아들에게 주려고 사력을 다해 지키고 있던 마지막 양식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낯선 손님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주어진 시험은 그 여인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남은 한 가지를 바치라는 시험이었다. 남편도 없이 아들 하나만을 의지하고 사는 가련한 여인에게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을 위하여 비축해 둔 마지막 양식을 바치라는 이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가장 소중한 한 가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과 거의 맞먹을 만큼 극심한 것이었고 큰 믿음이 요구되는 시험이었다.

 

4) 마지막 한 가지를 바친 충성

사르밧 과부는 이제까지 모든 나그네를 친절하고 너그럽게 접대하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서 마지막 최후의 양식을 자신과 아들을 위해 보존하고 싶은 그녀의 인간적인 욕망과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그것을 주라는 성령의 음성이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분연히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자신과 아이에게 초래될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결심하였다. 성령께서 그녀의 마음 속에 자리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이기심을 버리라고 요구하실 때에 그녀는 그 음성에 굴복했던 것이다. 얼

마나 아름다운 충성인가! 자신보다 자식을 더 생각하는 것이 모든 부모나 어머니의 심정이다. 없어도 더 주고 싶고, 더 잘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의 욕심이 아닌가? 그런데 먹을 양식이 떨어져 사랑하는 어린 아들이 먹지 못해 점점 말라가는 모습을 눈앞에 보는 엄마로서, 한줌 남은 가루로 최후의 음식을 만들어 먹은 후 죽어야 하는 절망적인 운명과 현실에 직면한 엄마로서, 이 시험은 얼마나 어려운 시험이었던가! 얼마나 큰 믿음과 신앙을 가져야 견딜 수 있는 시험이었던가!

드디어 그녀의 마음속의 투쟁이 승리로 끝나자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그녀의 귀에 들렸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0-14).

무섭고 절망적인 처지에서라도 그 여인은 마지막 양식을 낯선 사람에게 주라는 성령의 음성에 응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였다.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큰 신앙의 시험을 요구할 수 없었다. 이 사르밧 과부는 자기의 최후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엘리야의 말대로”함으로 최고의 시험에 승리하였다. 그렇다! 그것은 최고의 시험이었다. 이 여인에게 그것은 모든 것, 그녀가 가진 최후의 모든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위해,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양식과 생계 수단마저 버리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당신의 충성심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마지막 환난의 때,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의 때가 올 때에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은 자기의 최후의 양식과 생계와 생명을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바치라는 요구를 받을 것이다. 목숨을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 자신의 안일을 하나님의 진리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 육신의 일을 영적인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 시험에 견디지 못할 것이다.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최후의 생계 수단이 끊어지고 생명의 위협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그 충절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마지막 남은 한 가지, 그녀에게 모든 것이었던 최후의 한 줌의 가루와 기름을 하나님께 바쳐서 충성한 이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는, 마지막 시대에 사고팔고 하지 못할 때에 가난과 굶주림과 생계의 위협 속에서도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록되어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생계가 아무리 어려워지고 생명과 목숨에 지장이 오더라도 마지막 남은 모든 것, 최후의 것을 포기하며 하나님께 충성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신앙 3부_ 최고의 것을 포기한 충성

 

구약에 보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연구해 보면, “충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함께 연구해 보자.

 

1) 입다의 출생

성경에는 사사 입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에 대한 기록은 길지 않지만 거기서 우리가 취할 교훈은 적지 않다. 입다는 많이 알려졌거나 설교의 주제로 잘 사용되지 않지만 그의 이름은 당당하게 히브리 11장에 열거되는 믿음의 조상들 가운데 적을 올리고 있다. 입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사사기 11장 1-3]

기생의 몸에서 서자로 태어난 입다는 가정에서 사람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멸시를 받으며 자라났다. 장성한 후에 그는 결국 집에서 쫓겨남을 당하고 아버지의 기업을 잇지 못할 처지에 놓인다. 여기서 기업을 잇는다는 의미를 잠깐 살펴보면, 이 제도는 이스라엘에만 있던 독특한 전통과 율법에 정한 제도로서, 하나님께로부터 할당받은 기업을 영구히 보존하고 혈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기업을 잇는 제도에는 크게 재산과 혈통 두 가지가 있었는데, 혈통적인 측면을 보면 후손을 남기어 그 가문의 상속자를 남길 자격을 얻는 것이었다. 그들의 자손 중에서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날 수 있다는 특권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업을 잇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집에서 쫓겨난 입다는 돕 땅으로 가서 거했는데, 거기서 힘이 세고 용맹했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그리하여 그는 많은 무리를 이끄는 장수가 되었다.

 

2) 사사가 된 입다

그런데 아버지의 기업을 잇지 못하고 쫓겨난 입다가 이스라엘 족장들의 부름을 받고 그들의 머리가 되는 날이 오게 된다.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자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와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 달라고 부탁을 한다.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사사기 11:5-7]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대답하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우리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반드시 행하리이다.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사사기 11:8-11]

11절의 내용을 보아 입다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미스바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과 함께하셔서 모든 이방 나라를 쳐서 크게 승리를 했던 장소로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적인 기념지였다. 또한 사무엘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통회하며 모든 우상을 제하여 버리고 개혁하므로 하나님 앞에 영적 대 각성을 이룬 곳이며, 또 블레셋을 크게 이긴 기념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미스바에 가서 하나님 앞에 고했다는 의미는, 입다가 신실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이며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자신을 살피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29절] 미스바에서 여호와께 이 일에 대하여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입다는 나아가 암몬 자손과 싸우게 된다 .

 

3) 입다의 서원

그런데, 입다가 전쟁에 나가면서 하나님께 한 가지 서원한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30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32절]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34,35절]

하나님의 신이 입다와 함께 하시므로 그 전쟁은 큰 승리로 끝났다. 입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크게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입다가 승리하고 돌아올 때 그의 무남독녀인 딸이 제일 처음으로 나와서 춤을 추며 맞는 것이 아닌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에 그를 제일 먼저 영접하는 사람을 주님께 드리기로 서원했는데 말이다. 이것을 본 입다는 처음에는 옷을 찢고 슬피 운다. 그런데 여기서 아버지와 딸의 신앙심과 충성심이 드러나는 위대한 장면을 우리는 본다. 그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지만 딸에게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한 것은 결코 취소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딸도 말하기를 아버지가 하나님께 그렇게 서원하셨고, 또 여호와께서 암몬 자손을 아버지의 손에 붙이셨으니 그대로 행하시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신실한 모습인가! 시편 15:1-4절에 나오는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라는 말씀처럼,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않고 지키는 충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모습이 아닌가!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할 때의 장면처럼 말이다.

 

4) 입다는 정말 딸을 번제로 드렸는가?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정말 입다의 딸이 번제물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신학자들 사이에 논란의 여지가 되어 왔다. 그 이유는 37절과 38절에 나오는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라는 표현 때문이다. “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 하겠나이다. 이르되 가라하고 두달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그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가장 정확하게 원어의 의미가 보존되고 번역된 킹제임스 영어 성경을 보면, 이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라는 표현은 그냥 “나의 처녀됨을 인하여”라고 되어 있다. 곧 죽음이라는 의미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또한 39절 하단의 - “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의 영어의 원래의 문장을 보면, “She knew no man” “ 그녀가 남자를 알지 못하니라”는 뜻이지, 그녀가 죽었다는 의미가 강조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은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렸다고 기록하지 않고 단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였다”고만 되어 있다. 만일 정말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렸다면 그 사실이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되지 않았겠는가? 사사기 11장 37-39절에 입다의 딸의 처녀성이 강조되어 나오는 이유는 그녀가 처녀로 평생을 지내게 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하나님께 “올려바침”이 되었다는 것(31절의 “번제”라고 번역된)은, 그녀가 평생토록 결혼하지 못하고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이 된 것을 가리킨다(출 38:8 참조).

입다가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서원할 인물이 아닌 것이, 길르앗 장로들의 청원도 신중히 검토한 후에 받아들이고 전쟁을 위해 미스바에서 여호와께 기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또한 입다가 암몬 왕에게 전한 말(삿 11:15-26)을 미루어 보아 그가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사적도 자세히 알고 있으며, 구약 율법에 대하여 무식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율법에 자녀를 불로 태워 바치는 것은 극악한 죄로 규정(레 18:21, 20:2-5)하는 것을 잘 아는 그가 딸을 번제로 바칠 리가 없는 것이다. 만일 입다가 하나님이 엄금하시는 죄를 범하였다면 그는 저주를 받았을 것인데, 그러나 그 후에도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6년간이나 역사하고 죽었다(삿12:7).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약 성경이 입다를 믿음 장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칭찬하고 있다(히 11:32). 또한 31절에 보면, 입다의 서원이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한 직후에 행해진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신이 임한 입다가 이방인과 같이 사람을 제사로 드리는 일을 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장 40절에 “애곡하더라”란 말의 원어적 의미는, “찬송하더라” “기념하더라”는 뜻으로 인신 제물로 바쳐진 것을 규례로 삼고 기념할 일은 될 수 없는 것이다.

 

5) 입다가 포기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성경에 나온 입다에 대한 기록이 짧아서 많은 사람이 그 속에 숨어 있는 심오한 교훈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입다의 처지를 심도 있게 조명해 볼 때에 여기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입다의 슬픔과 한은 기업을 잇지 못하게 된 자신의 슬픈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쫓겨난 서자 출신, 기업을 잇지 못하는 슬픈 처지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을 이끄는 사사와 지도자가 되고 명예가 회복되었다. 아울러 보란 듯이 이스라엘 자손에 이름을 올리고 기업을 이을 수 있고 메시아의 조상 중에 한 사람이 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처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위대한 일을 행한 입다는 기업을 이을만한 조건과 위치를 지니게 되었건만, 하나님께 대한 서원을 지키기 위해 무남독녀인 딸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침으로 그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곧 딸을 결혼시키지 못하게 되므로 자손을 하나도 못 가지게 된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한 그대로 충성 되게 하나님께 자녀를 바치므로 자손의 번창함이나 가문의 창대함, 그리고 자손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희생한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속에는 종족의 번식과 번창이 있다. 특히 구약 시대에는 자손을 많이 낳아 숫자와 세력을 키우는 것이 가문과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이어가는 위대한 평판과 명예를 누리고 가문의 번영을 가지는 것이 그들의 큰 소망이었던 것이다. 옛날이나 현재나 많은 부모에게 자녀들이 우상이 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의 명망과 성공이 그들의 모든 것이 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출세와 명예와 성공을 위해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진리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는가! 자녀들을 세상의 신, 공부의 신, 성공의 신의 제단 위에 바치고 그들을 통한 대리 만족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가련한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입다는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에게 충성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께 맹세한 충성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최고의 것이었던 자녀를 포기하고 세상의 낙을 희생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충성된 사람이 되는 것을 세상의 무엇보다 더 귀중하게 여겼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 최고의 것까지도 포기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서원을 지키기 위해 신실했던 것이다.

입다는 자손의 재롱을 보지 못하고 자손의 번창이 없는 외로운 세월을 보냈다. 구약 시대에 자신의 자손이나 부족이 없는 것은 노년 뿐만 아니라 평생에 힘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 때문에, 메시아를 태어나게 할 자손이 없다는 것은 저주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며, 자식이 없다는 것과 처녀로 평생을 지낸다는 것은 그들에게 별 소망이 없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그러나 입다는 하나님께 대한 서약에 충성하기 위해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을 다 포기했다. 얼마나 신실하고 충성된 사람인가? 여러분은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것까지 다 버리고 희생할 마음과 결심이 되어 있는가?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서 모든 것, 심지어 인간의 기본적인 낙인 자녀까지 포기할 수 있는 충성심이 있는가? 입다의 이야기는 세상의 즐거움과 가족의 화기애애한 삶까지 버리고 하나님께 충성해야 할 마지막 세대를 위해 충성의 모본으로 기록되었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포기할 수 있는 사람만이 마지막에 주님을 위해 서게 될 것이다.

 

신앙 4부_ 최후의 결정을 내렸던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어떤 소중한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순종하는 길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그분을 따르며 충성하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선물은 우주의 모든 것보다 귀한 최고의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신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이다. 그것은 하늘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으며 그것은 하늘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포기와 최후의 결정이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뜻에 순종하고 생애를 개혁하기 위하여, 또한 하나님의 사업의 전진을 위하여 그들의 생애에서 최고의 것을 포기하는 최후의 결정을 내린 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내린 결정은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으며 얼마나 그들의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한 최후의 결정이었을까? 그 이야기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 에스라의 귀환과 사역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오랫동안 고생을 하던 유대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기회와 훼파되었던 성전 재건축과 회복의 시간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다가오고 있었다. 그 귀중한 사명을 위하여 택하심을 입고 헌신한 사람 중에 에스라 선지자가 있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과 영적인 지식에 있어서 뛰어난 신실한 선지자였을 뿐 아니라 당시 메대 페르시아의 학문에도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에스라는 당시 바사의 왕이었던 아닥사스다에게 신임을 받고 있었는데, 평소 에스라를 신임하고 있던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자라면 누구든지 데리고 갈 수 있도록 에스라에게 허락하였고, 또한 성전의 회복에 필요한 재정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성전 봉사자들에 대한 각종 세금을 면제시켜 줌과 동시에 팔레스틴 지방의 행정관과 사법관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까지 에스라에게 부여하였다(스 7:13,15-26 참조).

에스라의 귀환은 오랫동안 어려운 형편 아래 수고한 많은 사람의 마음에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70년 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최초의 유랑인의 무리가 돌아온 이래 많은 일이 이루어졌다. 성전은 완공되었고 성벽도 일부분은 보수되었지만 아직도 성전 건축을 위해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백성들의 쇠퇴한 영적 상태였다. 돌아온 에스라에게 들려진, 유대 백성들의 영적인 쇠퇴, 특히 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죄악과 배도에 대한 소식은 에스라의 마음을 찢어지게 하였다.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회개와 개혁을 호소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열심히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에스라가 가는 곳마다 회개와 부흥이 일어났다.

 

2)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범죄

첫번째 무리로 예루살렘에 돌아왔던 사람들 중에는 여생을 하나님께 바쳐 충성을 다한 사람들이 많았으나 그다음 세대 중 상당한 수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식과 신성성을 잃어버렸다. 책임을 맡은 사람들, 곧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백성들을 영적으로 인도해야 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며 공공연하게 배도하고 있었다. 그 당시 고국에 희망을 걸고 돌아온 유대인들의 생활은 멍들어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성전 건축을 위해 희생하고 힘을 다하여 헌신했지만 계속되는 적들의 방해와 시련과 가난으로 낙심하게 되었다. 특히 지도자층인 제사장들이나 부자들의 횡포가 시작되어 그들의 삶과 경제 상태는 그들의 영적인 상태만큼이나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압박하고 학대하였으며 가난한 자들에게 돈이나 곡식을 빌려주고는 매우 비싼 이자를 요구하거나 빚을 갚지 못하면 그들의 밭과 땅을 빼앗고 나중에는 가난한 동족의 자녀들까지 빼앗아 가 노예로 삼았다. 또한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은 물론 깊은 우상숭배에까지 빠져 있었다. 또한 자녀들은 히브리 방언을 몰라서 에스라가 율법을 가르치고 설교할 때에 성경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죄악은 이방인과의 잡혼이었다. 하나님의 가장 직접적인 명령을 거역하고 이방인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을 우상 숭배로 몰아갔다.

“방백들이 내게 (에스라에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스 9:1,2).

그런데 정말 기막히게도 이 일에 앞장을 선 것은 대제사장이었다. 곧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가 산발랏의 딸과 결혼하여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것이었다(느 13:28절 참조). 또한 악한 도비야는 제사장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누구인가? 산발랏과 도비야는 성전 건축을 방해하고 귀환한 유대인들을 괴롭히고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음모한 이방인 족장과 사마리아 족속의 대표인물이 아닌가? 그에 더하여 대제사장은 성전의 방 중 십일조와 헌물을 두는 곳에 도비야를 거하게 하였고, 하나님의 성물은 중간에서 이방인 족속들에게 횡령되고 있었다. 그러자 백성들은 제사장들의 부패상을 보고 헌물을 내지 않았다. 그야말로 성전과 성소제도는 이방인들과의 동맹과 잡혼으로 황폐되었고, 지도자들의 나태함과 타락은 백성들의 영적인 배도를 부추기고 있었다.

 

3) 에스라의 통곡과 백성들의 회개

“내(에스라)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스 9:3,4).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이까?”(스 9:14).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배도가 그들이 이방 족속과 섞임으로 더 심해지고 대규모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방 나라에 끌려가 어렵게 배운 과거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이 다시 율법들을 공공연하게 범한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다시 그들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에도 불구하고 배은망덕한 그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에스라의 마음은 의분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 에스라는 엎드려 일어날 줄을 모르며 계속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이처럼 슬픔과 통회로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중보 기도를 드리는 에스라의 모습은 유다 백성들의 양심을 일깨워서 그들로 하여금 회개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 에스라 10장 1절을 보면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범죄하였던 자 중 많은 사람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백성이 심히 통곡하”(스 10:1)였다. 그들은 죄의 흉악함과 죄가 얼마나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큰 장벽이 되는가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의 죄들을 밉게 보기 시작하였으며 하나님을 아프게 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였다. 백성들의 참회는 일시적인 감정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참회에 따른 열매를 맺었다.

 

4) 최후로 내린 결정과 개혁

에스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회개와 부흥의 역사는,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무엇인지, 또 사람이 성령의 역사에 진정으로 굴복했을 때에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는 그 결과를 자신들의 죄를 참으로 회개하고 통회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렸던 최후의 결정에서 보게 되는데, 그것은 육신의 성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내리기 매우 힘든 결정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걸어온 죄악과 반역의 과거에 대해 애통하며 완전한 회개의 열매를 맺기 원하는 헌신과 충성의 표로서 그들은 이 힘든 일을 수행했다. 그 일이 무엇이었는가?

모든 백성이 모여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자신들의 죄와 행실을 슬퍼하고 있을 때에, 스가냐라는 사람이 일어나 그들의 죄를 자복하며 심각한 고백과 함께 그들의 결정과 헌신을 표했다. 그는 자복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스 10:2-4)고 하였다.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스 10:10-12).

그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최후로 내린 결정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그들의 이방인 아내와 자식들을 내어보내는 일이었다. 그들과 결별하고 이별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 일이 쉬운 일이었으며 가능한 일이었을까?

 

5) 마지막 포기와 쓰라린 이별(?)

진정한 회개에는 철저한 개혁이 따른다. 개혁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참된 회개가 아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고 진심으로 회개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직접적으로 어긴 죄, 곧 이방인과의 잡혼을 회개하고 끊어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이제 그들은 마지막 포기와 최후의 결정으로써 그들의 이방인 아내들과 자식들을 내어 보내고 결별할 것을 결정하였다.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오랫동안 정들어 살던 아내를 내보내는 일이 쉬운 일이었을까? 더구나 자신의 생명 같은 자식을 내어보내는 일이 쉬운 결정이었을까?

혹시 이 일이 잔인하고 냉정하다고 생각되는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었느냐고 반문하고 싶은가? 여기서 이방인 아내와 자식들을 내어 버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였는가? 그들이 이방인 여인과 결혼했다는 의미는 그들이 이방의 풍습을 받아들이고 이방인과 똑같이 살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즉, 이방인들이 섬기고 행하는 우상숭배의 의식을 그대로 행하고 그들과 함께 우상숭배를 하며 살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혹은 직접적인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우상숭배를 집 안과 가정 안에 두었다는 말이다. 이제 그들은 그들의 생애의 중심에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우상을 제거하는 일을 시작했다. 곧 현시대의 영적인 의미로 재해석하자면, 모든 죄를 회개하고 생애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며,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개혁과 성화의 길을 걸어가기로 하나님 앞에 온전히 헌신한 것이었다.

쓰라린 이별로 인해 피나는 마음의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었을지라도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어기던 그들의 생애를 회개하고 과감하게 개혁하기 위하여 그들의 사랑하는 이방인 아내와 자식들을 떠나 보냈다. 얼마나 위대한 최후의 결정이었는가! 얼마나 남김 없는 최후의 포기였는가! 그리고그것은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하게 하는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7:37). 그들은 그들의 회개와 개혁을 그렇게 증명하여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그들의 충성을 그렇게 확실하게 증명하여야 했다.

오늘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은 어떤가? 혹시 우리의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에 충성하는 일에 방해가 되거나 거침 돌이 될 때에,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버릴 만큼 우리의 믿음이 신실한가? 우리의 혈연이나 가족이 혹시 우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기로 결심한 그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과 다 헤어짐으로 순종했다. 하나님께 마지막 남은 모든 것, 최후의 한 가지까지 드리며 충성하라는 이 말씀은 얼마나 엄숙한 초청인가? 얼마나 진지한 명령인가?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에 충성된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곧 이세상의 모든 것보다, 재물보다, 음식보다, 평판과 명예보다, 가족이나 혈연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만한 믿음과 충성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에 통과해야 할 환난은 그런 충성과 믿음이 없으면 통과할 수 없는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 우리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 큰 환난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남은 무리인 십사만 사천의 특징 중 하나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것이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 처하게 하시든지, 어떤 것을 포기하라고 하시든지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사랑은 어디까지인가?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충성은 어디까지인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포기하면서 따라갈 만큼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사랑은 강한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충성의 요구를 깊이 생각해 보면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면서 충실하셨던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면서 충성하자!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이 일을 넉넉히 이루게 하실 것이다.

 

세계동향 Top News

 

1. 프란치스코 교황의 치솟는 인기

미국 CNN방송은 작년 12월 24일(현지시각) CNN-ORC 공동 설문조사 결과 미국 가톨릭 신자의 88%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CNN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지율이 하늘을 찌른다”며 “이번 조사 결과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재 미국인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종교인임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앞서 교황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미국 동성애 잡지 애드보케이트로부터 나란히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고, 미국 남성 패션 잡지 에스콰이어는 교황을 2013년 올해 가장 옷 잘 입는 남성으로 선정했다. 이런 교황의 인기를 증명하듯 바티칸 방문객도 교황 취임 이후 3배로 늘었다. 교황에 대한 언론들의 집중 조명에 교황의 인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

 

2. 북미대륙 강추위 및 전 세계 이상 기온현상 발생

1월 7일(현지시각) 뉴욕 기온은 11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미국 뉴욕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일대는 섭씨 영하 37도, 체감온도 영하 50도를 기록하는 최악의 한파로 나이아가라 폭포가 1911년 이후 103년 만에 결빙되는 일이 발생했다. 반면 남미는 불볕더위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북부지방은 영상 50도로 100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으며, 브라질도 1월 첫 주말 체감기온이 50도에 육박하는 등 이상기온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3. 양적완화(QE)축소와 침체하는 미국 경제

지난 한 해 매달 850억 달러 자산 매입을 해온 美 연준은 올해 1월부터 그 규모를 100억 달러 축소하여 매달 750억 달러 자산매입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에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2월 말 3%로 상승했고, 국채 수익률의 상승은 17조 달러의 폭증하는 부채를 가진 미국 정부에 위협이 되고 있다. 연준은 실업률 하락을 양적완화 축소의 이유로 들고 있지만 미국의 고용은 현 실업률과 달리 지난 침체의 최악의 시기와 거의 비슷하다. 이를 나타내주는 미국의 노동시장 참여 인구비율은 35년이래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최근 CNN여론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 70%는 “경제가 대체로 형편없는 상태에 있다고 믿는다”.

 

4. 유럽의 실업률과 빈곤 수준, 사상 최고치 경신

지금 전 유럽대륙은 엄청난 경제적 혼란에 빠져 있다. 실업률과 빈곤 수준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자동차 판매는 기록적으로 낮다. 전체 유로권 실업률은 사상 최고인 12.1%를 유지하고 있다. 이태리에선 실업률이 사상 최고인 12.7%, 청년 실업률은 41.6%로 올라섰다. 이태리 빈곤 수준은 이제 사상 최고이다. 스페인 청년 실업률은 이제 57.7%이고 그리스 보다 더 높다. 프랑스 실업률은 9분기 연속 상승하여 이제 16년이래 최고이다. 세계 경제 여건이 계속 악화되면서 사회 빈곤층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로권에서 가장 강한 경제국인 독일에서도 빈곤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5. 도쿄전력, 후쿠시마 3호기 멜트다운일 수 있음을 인정

영국의 환경저널 ‘더 에콜로지스트’는 작년 12월 31일 후쿠시마 원전 3호기에서 의문의 수증기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3호기는 2011년도에 폭발한 후 치명적인 방사능에 오염되어 인력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증기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것은 89톤에 달하는 폐 핵연료봉 멜트다운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증기가 발생하는 현상이 멜트다운이 아닐 수도 있지만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은 인류에게 계속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이제는 하늘로_ 마지막 징조와 UFO

 

1. 마지막 징조와 성경의 예언

하늘에 시작된 선악 간의 대 쟁투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깝고, 말세 징조의 예언 성취가 우리의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더욱 열심을 내고 진리에 굳게 서는 경험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택하신 자라도 미혹될 만한 사단의 최대 기만이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계 12:12)

지구 죄의 역사가 끝나가고 있는 이시점에 사단은 인간 마음의 보좌를 차지하고 이 지구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의 인을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전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단이 마지막으로 모든 백성을 자기편으로 이끌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다름이 아닌, “그리스도 강림”의 모방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와 관련하여 마지막 때 사단의 기만에 대해 아래와 같이 예언해 두셨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3,24)

2. 사단의 기만과 UFO

  1) 요즘 자주 출몰하는 UFO

21세기에 접어들어 유난히 UFO를 목격했다는 보고가 잦아 일각에선 이를 외계인(ET)의 지구방문이 임박한 증거라고 믿고 있다. 전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UFO를 목격했다고 주장했으나 최근엔 수백, 수천 명이 보는 앞에서 '미확인비행물체'가 나타나 정부 당국도 군용기나 미사일 발사실험 등으로 둘러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중 가장 큰 화제를 일으켰던 사례는 2010년 7월 9일 중국에서 목격됐다는 UFO. 중국 당국은 UFO 출현으로 즉각 항주 공항을 폐쇄,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금지시켰으나 이 사태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항 폐쇄 수 시간 전 수천 명의 항주 시민들은 그날 밤 대형 발광체를 생생히 목격, 한때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한 2010년 10월 13일 대낮 뉴욕 맨해튼 상공에 나타난 물체도 수백 명이 넘는 인파가 목격했다. 처음엔 실린더 모양의 비행물체 한 대가 나타났으나 곧이어 수천 개로 늘어나 마치 나무 형상을 띠고 있었다. 이 비행물체군은 군용레이더에도 잡히지 않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2) 캐나다 전 국방부 장관의 발언

지난 1963년 캐나다의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폴 헬리어(90)가 외계인의 존재를 재차 언급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월 4일(현지시각) 러시아 TV와의 인터뷰에 나선 헬리어는 “인간과 같은 모습의 외계인들이 거리를 걸어 다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헬리어의 이 같은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5년부터 헬리어는 외계인의 존재를 줄기차게 밝혀왔으며 각국이 이를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헬리어는 “현재 약 80 종족의 외계인들이 확인됐다”면서 “이미 수 천년 동안이나 우리 지구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3) 라엘리안 무브먼트들의 주장

이에 대해 인류의 창조자 우주인 ‘엘로힘’의 메시지를 전하는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UFO는 실제로 존재하는, 바로 우리 인류의 기원 및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외계인들의 비행체우주선’”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엘로힘은 지구보다 2만 5000년 앞선 과학문명과 정신성을 지닌 외계인들로서 오랜 옛날 광속을 초월하는 UFO를 타고 지구를 방문해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를 DNA 합성을 통해 과학적으로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UFO 출현에 대해 “인류의 창조자들(엘로힘)이 그들이 밝힌 진실에 대해 확증을 주고 지구로의 귀환에 대비케 하기 위한 것으로, UFO는 앞으로 더욱더 자주 나타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그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다! 요즈음처럼 UFO라고 알려진 것이 끊임없이 나타나게 되면 ‘때가 왔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4) 교황청의 외계인 영접 프로젝트

UFO 전문가들은 또한 교황청과 UFO의 관련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교황청은 UFO와 외계인의 비밀에 대해 수세기 이상 비밀을 간직한 단체로써 현재 외계인 강림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4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망했을 당시 바티칸 상공에 UFO가 출몰한 바 있다. 이 비행접시가 교황과 그의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러 왔을 가능성에 대해 많은 UFO전문가들은 긍정하고 있다.

또한 최근 교황청 소속 천문학자들은 UFO를 탄 외계인 구세주가 강림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바티칸 천문대의 천문학자 이자 예수회(Jesuit) 신부인 가이 콘솔마노(Guy J. Consolmagno)는 “현 사회는 곧 인류의 구원자들이 될 외계인들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 세계 경제가 붕괴되어가고 있고 또한 예수회 출신의 새로운 교황이 등극한 시점에서 교황청 소속 과학자의 이러한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들은 외계인의 존재와 UFO의 출몰을 언급하면서 곧 지구는 기독교 복음의 새로운 패러다임(외계인 구세주의 강림)을 맞을 준비를 해야할 것이라고 전 세계에 충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3. 사단의 기만과 우리의 준비

사단은 짐승의 표가 내리는 마지막 환란 동안, 택하신 자라도 뒤흔들 만한 속임수, 그 최고의 절정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모습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 사단은 이 땅에 직접 나타나 엄청난 기만의 사건을 통해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할 것이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이 사건은 큰 흔들림과 엄청난 기만의 사건이 될 것인데 사단은 마치 감람산에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설교하시던 사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으로, 혹은 휘황찬란한 초자연적이고 위대한 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군림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정확한 진리와 계명을 뒤집는 발언을 하게 될 것인데, 그는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계명이 변하고 바뀌었다고 선포할 것이다.

진리의 원칙과 말씀에 서기보다는 감정적인 느낌에 신앙의 기초를 둔 사람, 성경 말씀보다는 눈에 보이는 이적과 초자연적인 현상에만 관심을 둔 사람, 자아가 죽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소원 대신, 자신의 영적인 능력과 힘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다 이 기만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진리에 굳게 서지 않고 옆 사람들을 따라 그냥 맹목적으로 예수를 믿던 사람들은 다 이 놀라운 기만에 속아 넘어가게 될 것이다. 자다 깰 때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의 진리 위에 우리의 터를 굳게 세워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고수해야 할 때이다.

 

진리 탐구_ 7년 환란을 해부한다

 

성경은 세상의 어느 종교경전보다 유일한 내용이 많이 있는데 크게 살펴본다면 첫 번째는 인류와 세상 역사의 “창조”기록이고 또 하나는 “예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언”은 무엇입니까? 예언(豫言)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다가 올 일을 미리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신이나 그와 포함된 어느 종교 경전도, 또한 신접했다는 어떤 사람도 앞일을 정확히 말하거나 전해줄 수 없으며 그들은 단지 추측하고 추정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정확하고 분명한 예언을 말씀하시면서 그분의 “신(神)”되심을 인간들에게 나타내시고 확증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사 41:22,23)

그러므로 올바른 예언은 올바른 하나님을 믿고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는데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을 왜 주셨습니까? 단지 그 분의 신 되심을 나타내시기 위해서입니까? 사실 그러한 부분은 작은 부분입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실 것이며, 또 어떻게 인도하시고 어떤 방법으로 보호하실 것을 나타내는 신앙의 나침반이 되어 거짓과 죄가 관영한 세상에서 정결하게 살 수 있게 빛으로 인도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올바른 예언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표준이며, 거짓을 분별할 수 있게 하며, 담대한 믿음과 올바른 영적 싸움을 준비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님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예언은 그 도를 지나쳐 어느 교단은 “광신”적인 단체가 되기도 합니다. 또 어느 교단들은 공포와 두려움의 종말론적 재림을 전파하며 자신들의 부(富)를 축적하며 재물을 챙기기도 합니다. 그 재림의 중심에 가장 유명하게 전파되는 교리가 여러분들께서 익히 잘 알고 있는 “7년 대환란 전(前) 휴거”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7년 대환란 전(前) 휴거”의 이야기가 거짓인지 아니면 진리인지 그 참된 가치를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냐고 되묻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여러분들께서는 오늘날 특별한 영성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계시나, 천사들이 전해주었다는 계시나,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계시 등을 아무 의심 없이 믿고 있으나, 정작 그보다 더욱 중요한 예수님의 계시를 읽고 듣고 그 가르친 것을 지키는 경험을 해 보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반문(反問)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1,2)

오늘날의 세상이 주님의 재림이 얼마남지 않은 노아의 시대와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세대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예언의 말씀에 더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말씀에 기록된 재앙보다 더 큰 재앙을 받을 것이며, 이 예언에 말씀에서 제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지 못할게 될 것입니다.

“7년 환란 전 휴거”가 얼마나 많은 말씀을 더하고 제하고 있는 교리인지 여러분들은 이 글들을 통해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7년 환란 전 휴거”가 어떠한 진리를 가리게 되었는지 또 무슨 말들을 더하게 되었는지 그 문제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회사 Episode_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

 

4세기 말 알프스 주변의 왈덴스인들의 지도자 비질란티우스의 시대의 특징이라면 로마 카톨릭의 금욕주의와 그 뒤를 따른 수도원 제도였다.

이 시대에 기독교 세계를 진동시킨 또 하나의 논쟁이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중심 도시이며 동시에 동방 교회의 중심이기도 했던 밀라노는 일곱 번째 날인 안식일을 신성시하고 있었던 반면 로마(교황권)는 그 날에 대한 평판을 나쁘게 하기 위해 그 추종자들에게 그 날에 금식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저명한 학자이며 저술가인 피터 헤일린 박사가 이 충돌에 관하여 매우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비질란티우스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밀라노의 주교였던 유명한 암브로스와 아프리카 주교였던 더 유명한 어거스틴은 둘 다 당시에 흥미로운 상황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암브로스는 그가 밀라노에 있을 때는 토요일을 준수하였지만 로마에 있을 때는 토요일에는 금식을 하고 일요일을 준수하였다고 말하였다. 암브로스의 이 행동이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격언을 낳았다. 어거스틴은 서로 가까이에 있던 아프리카에 있던 두 교회가 하나는 제7일 안식일을 준수하고 하나는 그 날에 금식을 한 사실에 관하여 한탄을 하였다. 아프리카의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의 교회는 17세기까지 안식일을 넷째 계명의 거룩한 날로 준수하였다. 4세기 아비시니아는 광범위한 지역에 선교를 하였는데, 아비시니아의 그리스도인 지도자 무세우스는 ‘세레스국(중국)’의 모든 지역을 여행하였다.

온갖 우상이 교회로 잠입해 들어와 터전을 잡던 시대에 그 수가 증가된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남부의 교회들은 그 색채가 합법적으로 교회법의 보호 아래 있던 교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반면에 국가 경찰력의 지원을 받던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나운 힘의 논리로 인해 사랑의 신조를 버리고 있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오직 성경만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들은 강하게 자라나고 있었으며, 서로 간에도 점점 가까워지는 중에 있었다. 그들의 이순수한 신앙은 아일랜드와 브리튼 섬들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이미 알프스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로부터 순수한 복음을 받았던 사람들의 후예로 초기 라틴어 성경(이딸라역본 A.D.157)을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 처럼 사랑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로마(교황권)에 매이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법을 죽기까지 사랑하고 준수하였다.

“너희를 인도하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노라.”(KJV 히 13:24, 이탈리아에서 보낸 바울의 서신)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에 있나니,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니라”(KJV 계14:12)

이 논쟁의 중심에 있는 금욕주의와 수도원제도는 어떻게 기독교에 자리 잡았을까?

다음 호에 계속

 

Healing story_ 편두통

 

어린 시절, 할머님께서는 자주 아버지 넥타이로 인디언처럼 머리를 동여매고 계셨습니다. 할머님께서 인디언이 되시는 날은 심한 두통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싶을 때 하시는 행동입니다. 이처럼 우리네 어머님 중에서 두통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어린 학생들까지도 두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편두통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 정의

편두통은 일측성, 박동성 통증이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되고, 메스꺼움이나 구토, 빛이나 소리 공포증이 나타나는 특징적인 두통을 말합니다. 대개 10~40대에 시작하며 때때로 50대의 폐경기 여성에게 발병하기도 합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3배 정도 많으며 약 80%의 환자가 두통으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고 합니다.

2. 증상

반복적인 발작성 두통 : 약 50%는 심장이 뛰듯 욱신거리는 박동성이고 머리 한쪽이나 전체, 눈까지 아파 옵니다. 그 외에 조이는 것 같거나 터질 것 같은 느낌의 통증이며 망치로 때리는 듯, 바늘로 쑤시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시작되며 반복적으로 재발하는 경향이 있고 빛이나 소리에 노출되었을 때 더욱 심해지는데 보통 수 시간에서 이틀 정도 지속되다가 서서히 호전되며 구토하거나 수면을 취하면 완화되기도 합니다.

유전력 : 편두통 환자의 50% 이상이 부모들도 편두통을 경험한 과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장 장애 : 환자의 50~90%가 호소하며 구역질, 구토, 소화불량은 두통과 더불어 가장 힘들어하는 증상으로 흔히 환자 자신은 체해서 머리가 아픈 것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시각 장애 : 물체가 뿌옇게 보이거나 일부분이 안 보이기도 하고 시야가 흔들려서 책을 볼 수 없기도 합니다. 별빛이나 지그재그, 까만 점, 색채를 띤 원이나 공 모양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증상은 열 명에 하나꼴로 나타나지만, 매우 진단가치가 높은 증상입니다. 대개 두통이 사라질 때쯤이면 없어지며 짧게는 5분 이내, 길게는 몇 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감각 이상이나 운동 장애 : 신체 일부분의 감각이 둔해지거나 저리며 눈이나 사지 마비, 일시적인 언어장애가 오기도 합니다.

3. 진단

그러나 위의 증상은 뇌출혈 등 심각한 뇌 질환에서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자가 진단에 의존하지 말고 심한 편두통이 지속해서 나타난다면 반드시 전문의(주로 신경과)를 찾아가 진찰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자가 처방에 의한 진통제의 남용으로 약물 중독이 되거나 반복되는 심한 두통으로 우울증, 성격 변화, 직업 상실 등을 초래 할 수 있습니다. 편두통은 대부분 합병증이나 후유증 없이 낫는 병이지만 간혹 뇌졸중, 시력 소실 등이 젊은 나이에서 올 수 있기에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두통일지를 쓰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두통의 양상과 시기, 정도를 간략하게 적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지는 두통의 유발요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4. 유발 요인

머릿속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기에 편두통이 발생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편두통 환자의 2/3 이상이 하나 이상의 유발 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음식물에 대한 Allergy : 전체 환자의 25%는 음식에 대한 Allergy로 온다는 연구발표가 있습니다. 그럼 주로 어떤 음식들이 문제를 가져올까요?

▶술(특히 적포도주), 초콜릿, 우유, 계란, 치즈, 감귤류, 튀김, 커피, 홍차, 콜라, 카페인이 들어간 약품, 밀가루 종류, 고기, 청어, 바나나 등 사람마다 매우 다양합니다. 또한 질산나트륨(소시지, 햄 등의 육류가공품의 발색제로 사용됨), 미원, 무설탕 감미료 등의 식품첨가물들은 특히 십 대 아이들에게 더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2) 불규칙한 생활 : 밤늦도록 자지 않는 일, 낮잠이나 늦잠, 식사를 거르는 것, 격렬한 운동, 과로 등 24시간 생체 리듬을 깨뜨리는 생활습관이 원인이 됩니다. 제 남편은 아주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인데 결혼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두통을 호소하거나 그로 인해 약을 먹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슨 일을 시작하면 무리가 되더라도 끝을 봐야하며 보통 새벽 1~2시를 넘기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그로 인해 젊은 시절 오랫동안 편두통으로 고생했으며 늘 가방 안에 약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생활 습관을 배우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10년간 심하게 고생하였던 편두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벌써 30년 넘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3) 기타 : 짠 음식이나 당분을 많이 먹은 후에 나타나는데 1976년, 조사한 결과 편두통 환자 12명 중 10명은 짠 음식을 먹을 때 편두통이 일어난다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그 외에 날씨의 변화가 심할 때, 높은 고도, 정서적 스트레스, 화를 내는 경우, 긴장과 우울증,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 연기에 노출된 경우, 여성의 경우 월경 때나 갱년기 때 나타납니다.

5. 치료와 예방

편두통이 얼마나 곤혹스럽고 힘든지는 아파보신 분만 아십니다. 그러나 저처럼 심한 편두통도 생활 습관을 건강하게 바꾸면 완전히 치료될 수 있습니다. 모두 용기를 내십시오.

(1) 두통을 유발하는 모든 생활 습관 및 식습관을 제거합니다.

(2) 가장 좋은 것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제시간에 적당한 잠을 자고 밥을 먹음으로 24시간의 생체리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자신의 체력에 맞는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하고(일반적으로 걷기) 충분한 수분섭취를 함으로 정서적 안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합니다.

(4) 일단 심한 두통이 발생하면 조용한 환경에서 주변을 어둡게 하고 잠을 잡니다. 때로는 명주 수건으로 귀 위의 옆머리를 적당한 세기로 묶어주거나 종이봉투에 얼굴을 묻고 숨쉬기, 손발을 뜨거운 물과 찬물에 교대로 담그거나 샤워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5) 너무 심한 경우 임시로 약을 먹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아닙니다.

본 기사는 여병주 의사(가정 천연치료 연구 소장)가 출연하는 SOSTV 기독교 방송(www.sostv.net)의 <라이프 토크>프로그램을 발췌하였습니다.

 

신앙 칼럼_ 15분의 기적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매일 15분씩 말씀을 들으라(성경 읽기).

매일 15분씩 하나님과 이야기 하라(기도).

매일 15분씩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라(전도).

매일 15분씩 희생적인 사랑의 행동을 보이라(사랑 실천).

그러면 너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복음 전도자 빌리 선데이를 만든 신앙의 원칙입니다.

선데이는 지독한 가난으로 고아원을 전전긍긍하다 14세 때 청소부로 일하면서 간신히 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학교에서 야구를 배우기 시작하여 시카고 화이트 삭스에 입단할 정도로 성공하지만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던 1886년 어느 주일날, 빌리는 집회에 참석했다가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합니다. 이때 그는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말씀하신 “15분의 신앙의 원칙”을 떠올리고 일생동안 지켜 “15분의 기적”으로 승화시킵니다.

선데이 목사는 1891년 YMCA 전도사로 시작하여 미 전역을 누비며 수많은 영혼을 일깨웠습니다. 1910~1920년대, 그의 설교는 시대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미국에 들끓던 술집들이 문들 닫고 술에 찌든 젊은이들이 복음을 듣기위해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선데이 목사가 방문한 도시마다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필라델피아 집회 39,331명, 보스턴 집회는 63,484명, 뉴욕 집회에서는 98,264명, 시카고 집회에서는 49,163명, 1893년부터 1935년까지 공식적인 집회만 548회가 열렸고, 그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90만 명이 넘습니다.

그의 죄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로 유명했습니다. “나는 죄와 싸우겠다. 발이 있는 한 죄를 차버리겠고, 주먹을 가지고 있는 한 죄를 쳐버리겠고, 머리를 가지고 있는 한 죄를 받아 버리겠고, 치아를 가지고 있는 한 죄를 물어뜯겠다. 내가 늙어서 주먹도 치아도 힘도 없다면 영광의 내 집을 들어갈 때까지 잇몸으로라도 죄를 이기겠다.”

하나님은 적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15분의 헌신, 아니 그보다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모할 때 그를 종으로 부르시며 하나님 자신이 친히 만들어 가시는 놀랍고 위대한 역사에 동참시켜 주십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응답할 수 있도록 늘 깨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네이버 카페 <킹스메신저>, www.KINGSM.net

 

이현맘의 채식 요리_ 채식 감자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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