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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회사 Episode_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

 

4세기 말 알프스 주변의 왈덴스인들의 지도자 비질란티우스의 시대의 특징이라면 로마 카톨릭의 금욕주의와 그 뒤를 따른 수도원 제도였다.

이 시대에 기독교 세계를 진동시킨 또 하나의 논쟁이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중심 도시이며 동시에 동방 교회의 중심이기도 했던 밀라노는 일곱 번째 날인 안식일을 신성시하고 있었던 반면 로마(교황권)는 그 날에 대한 평판을 나쁘게 하기 위해 그 추종자들에게 그 날에 금식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저명한 학자이며 저술가인 피터 헤일린 박사가 이 충돌에 관하여 매우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비질란티우스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밀라노의 주교였던 유명한 암브로스와 아프리카 주교였던 더 유명한 어거스틴은 둘 다 당시에 흥미로운 상황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암브로스는 그가 밀라노에 있을 때는 토요일을 준수하였지만 로마에 있을 때는 토요일에는 금식을 하고 일요일을 준수하였다고 말하였다. 암브로스의 이 행동이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격언을 낳았다. 어거스틴은 서로 가까이에 있던 아프리카에 있던 두 교회가 하나는 제7일 안식일을 준수하고 하나는 그 날에 금식을 한 사실에 관하여 한탄을 하였다. 아프리카의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의 교회는 17세기까지 안식일을 넷째 계명의 거룩한 날로 준수하였다. 4세기 아비시니아는 광범위한 지역에 선교를 하였는데, 아비시니아의 그리스도인 지도자 무세우스는 ‘세레스국(중국)’의 모든 지역을 여행하였다.

온갖 우상이 교회로 잠입해 들어와 터전을 잡던 시대에 그 수가 증가된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남부의 교회들은 그 색채가 합법적으로 교회법의 보호 아래 있던 교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반면에 국가 경찰력의 지원을 받던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나운 힘의 논리로 인해 사랑의 신조를 버리고 있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오직 성경만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들은 강하게 자라나고 있었으며, 서로 간에도 점점 가까워지는 중에 있었다. 그들의 이순수한 신앙은 아일랜드와 브리튼 섬들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이미 알프스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로부터 순수한 복음을 받았던 사람들의 후예로 초기 라틴어 성경(이딸라역본 A.D.157)을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 처럼 사랑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로마(교황권)에 매이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법을 죽기까지 사랑하고 준수하였다.

“너희를 인도하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노라.”(KJV 히 13:24, 이탈리아에서 보낸 바울의 서신)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에 있나니,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니라”(KJV 계14:12)

이 논쟁의 중심에 있는 금욕주의와 수도원제도는 어떻게 기독교에 자리 잡았을까?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