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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6부_ 환난에서 구원을 얻는 남은 자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1,32).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욜 3:16).

 

요엘서는 재앙과 심판 때에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 곧 남은 자들이 구원을 얻을 것과 하나님께서 세상의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모습과 하나님의 왕국이 회복되어 영영히 설 것을 예언하며 3장을 끝으로 마친다. 요엘서가 흥미 있는 것은 요엘이 기록한 예언이 마치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짧게 압축시켜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남은 자에 대한 언급이나 재앙과 심판의 장면, 그리고 그 구성과 내용과 끝마침이 짧은 요한계시록을 보는 듯하다.

 

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와 남은 자

 

요엘은 여호와의 심판 날을 피하는 자들과 구원을 얻을 자들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와 남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피난처와 산성이 되신다. 그런데 성경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다’는 표현은 단지 하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 단순히 자신을 주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여기거나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한다는 뜻만도 아니다. 그 정확한 의미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또 그분에 대하여 증언한다는 의미이다. 곧 하나님을 위한 증인이 되어 주님을 증거한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 12: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증인이었다. 성경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의 의미가 항상 그분의 역사와 행하심을 선포하고 증거한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그 예를 몇 개 보면 다음과 같다. 

 

*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 = 행사를 만민에게 선포함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사 12:4).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찌어다”(대상16:8).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찌어다”(시 105:1).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분의 이름, 곧 그분의 성품의 영광을 보이며, 그분의 행사를 세상에 널리 선포하는 큰 외침인데, 여호와의 부름을 받은 남은 자들이 바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음과 같은 공식을 성립시키는데, 이것이야말로 마지막 시대에 딱 들어맞는 공식이 됨을 알 수 있다. 

 

*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함 = 큰소리 외침 = 남은 자

* 남은 무리 =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가진 사람들 = 하나님의 행사와 성품을 보이고 증거할 십사만 사천

 

얼마나 요엘의 예언이 마지막 시대에 알맞게 적용되는가!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 재앙과 심판이 올 때 하나님의 교회인 시온 산에서, 그리고 복음이 전해지는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피할 사람들이 생길 것이며, 여호와의 부름을 받은 남은 자들이 여호와의 이름, 곧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증거하고 그분의 행하심을 선포하는 큰소리 외침을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2) 세상에 임하는 여호와의 심판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찌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욜 3:13).

 

3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바벨론에 사로잡혔던, 곧 죄악에 빠져 있었지만 회개한 자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괴롭히던 악의 세력과 무리를 심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요엘이 영감으로 표현한 기록, 곧 “낫으로 곡식을 추수하는” 표현이나 “포도주 틀을 밟는”다는 표현은 요한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의인과 악인의 추수 표현과 똑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계 14:15,16).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계 14:18-20).

 

얼마나 똑같은 표현인가! 의인은 알곡으로 익어 하나님의 곳간으로 추수되고,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에 취해 하나님의 복음을 거절한 악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밟혀 멸망을 당할 것이다.

 

3) 여호사밧 골짜기의 심판

 

드디어 여호와의 심판이 시작된다.

그 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욜 3:2).

열국은 동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찌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욜 3:12).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판을 베푸시는가? 여호사밧 골짜기가 무엇이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벌어진 사건은 역대에 일어난 일 중에 가장 훌륭한 믿음의 선례가 되는 사건이다. 여호사밧 골짜기는 ‘브라가 골짜기’라고도 불리는데, 그곳에서는 큰 전쟁이 있었고, 또한 큰 승리를 기념한 곳이기도 하다. 함께 그 사건을 잠깐 공부해 보자.

 

유다 왕 여호사밧 때에 모압과 암몬 족속이 마온 사람들과 3개국 연합군을 형성하여 쳐들어왔다. 3개 연합군과 대결해야 하는 위기의 상황을 맞은 여호사밧! 유다에는 그 엄청난 수의 군대와 맞서 싸울 군사력이나 능력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극한의 곤란한 상황 속에서 여호사밧 왕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모든 국민을 성전 뜰에 소집하였다. 그는 모든 국민을 금식하게 하고 회개하게 하며 여호와 앞에 간구하고 부르짖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전쟁이…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대하 20:15)는 기별을 보내셨다. 여호사밧은 큰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약속을 믿고 여호와를 찬양하며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 선지자를 신뢰하면 모든 일에 형통하리라”(대하 20:20)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전쟁터에 나아가기 위해 특별한 군사작전을 세운다. 그것이 무엇이었는가?

 

여호사밧은 레위인 성가대에게 찬양복을 입혀 군대 앞에 행진하게 하며 찬양하게 하였다. 그러자 그렇게 두렵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도하고 찬양했더니, 그들이 찬송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암몬과 모압 자손을 쳐서 대 혼란 가운데 서로 쳐서 죽게 하므로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고 다 죽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여호사밧왕과 유대 백성들은 아무것도 한 일도 없이 전쟁은 큰 승리로 끝났다.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나가서 한 일은 다만 골짜기에 널린 전리품을 가져오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그 전리품이 얼마나 많았는지 사흘 동안 거두어들여야 했다. 그래서 무리가 그 골짜기를 “브라가 골짜기, 곧 송축의 골짜기”로 이름을 지었는데, 그 골짜기를 “여호사밧의 골짜기”로 불렀다(대하 20:26). 그러므로 여호사밧의 골짜기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의 현시가 직접 나타난 것을 기념하는 지명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마치 마지막 때에 선과 악의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에서 짐승과 용과 거짓 선지자의 삼중 연합과 여자의 남은 무리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싸울 때에, 기드온의 300명처럼 적은 숫자인 남은 무리가 담대하게 나아가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할 것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 싸움은 여호와에게 속했다”는 것을 믿음으로 믿는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죄를 이기고 승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며, 그러므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짐승의 세력과 싸우는 사람들이다. 이 남은 무리야말로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쟁에 나가 승리한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여 승리할 사람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골짜기라는 의미 있는 곳에서 악인을 심판하시는 것으로 묘사된 것이다.  

요엘서의 마지막 부분은 여호와의 심판이 다 끝나고 유다, 곧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어 영영히 설 것을 예언하며 끝을 맺는다.

 

** 마치면서

 

우리는 함께 흥미로운 요엘서에 대해 연구해 보았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그대로 재현될 구약의 요엘서의 예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엄숙한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며, 그 두려운 날에 서기 위하여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호와의 날에 서기 위하여 어떻게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마지막 늦은비 성령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죄를 회개하며, 또 우리 속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죄악을 알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엄숙한 심판의 시간이 가까이 다가온 이때에, 남은 자가 되어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의 영광을 온 세상에 외치는 증인들이 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축복하시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능력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