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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_ 에스겔의 계시 III – 성전의 물

 

에스겔은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광스러운 계시를 본다. 바로 에스겔 47장에 기록된 성전에서 나오는 물에 대한 계시이다. 성경절을 한번 읽어보자.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겔 47:1-5).

 

이 계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것은 미래에 회복될 하나님의 교회의 모습이다. 참고로 성경에서 물은 성령을 상징한다. 이 계시는 성령을 상징하는 물이 강같이 되는, 성령이 차고 넘치는 회복된 하나님의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산 성전인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의 백성 각 개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교회란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해지게 하려고 조직된 단체나 무리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성경 속에서의 정확한 교회의 개념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참 백성 자녀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산 연결이 없이는 우리 각 개인은 하나님의 산 성전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미래에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의 교회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계시가 우리에게 어떻게 영적으로 적용되는 것일까?

 

1) 동으로 흐르는 물

 

에스겔이 계시에서 보니 성전에서 물이 스며 흘러나오는데, 나중에는 이 물이 사람이 헤엄쳐야 할만한 강같이 깊은 물이 된다. 그런데 이 물은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왜 동으로 흐르는가? 에스겔 47장 8, 9절을 보면 그 대답이 나오는데,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물이 동으로, 즉 동방으로 흘러가서 아라바와 바다로 이른다고 했는데, 아라바 광야와 그 광야의 가장 낮은 지역에는 죽음의 바다, 사해가 있었다. 그러므로 물이 아라바로 내려가 바다에 이른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생명 강물이 죽음의 바다, 가장 낮고 낮은 땅인 이 세상을 향하여 흘러간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나님 성령의 은혜는 죄 많은 세상을 살리며, 또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세상을 살리는 것이다.

 

2)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

 

그런데, 이 계시를 보면 처음에는 물이 흘러 발목 높이만큼의 물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발목까지 차는 물에서는 헤엄을 칠 수 없다.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칠만한 물”이 되어야 가능하다. 회복된 교회는 성령의 인도함과 충만함에 잠겨 헤엄칠만한 정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물로 비유된 성령님의 인도와 역사와 능력과 힘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를 주관하시고 제어하는 성령님의 힘은 우리 안에 얼마만큼 작용하는가?

 

1. 발목 깊이의 물 - 이 상태는 최소한의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아직 물속에서 헤엄친다기보다는 마음대로 멋대로 뛰어다닐 수 있는 깊이의 물이다. 이 상태에서는 아직 자기 마음대로 산다. 성령님의 인도와 주관, 제어를 받기보다는 나의 계획대로 내 맘대로 사는 영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아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령이 충만한 회복된 교회 상태가 아니다.  

 

2. 무릎 깊이의 물 - 여전히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사는 상태이다. 발목까지 차는 물에서는 마음대로 걷는 것이 수월하지만, 물이 무릎까지 오면 걷기도 무거워진다. 하나님의 진리를 알므로 세상적으로 마음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하나님 성령의 뜻대로 온전히 주관 받고 사는 상태도 아니다. 마음이 있지만, 육신이 약한 걱정만 가득한 상태이며, 인생이 힘겹고 어려운 상태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께 완전히 굴복되어 쓰임을 받는 상태가 되기를 원하신다.  

 

3. 허리 깊이의 물 – 허리 깊이의 물에서는 엎드리면 헤엄칠 수 있다. 자신이 엎드리고 굴복하면 성령에 따라 살 수 있는 영적인 상태이다. 그러나 물에 둥둥 떠서 마음대로 헤엄을 치는 상태는 아니다. 성령이 지배하기는 하는데, 전적으로 굴복하지 않아 때때로 자신이 튀어나온다.  

 

4. 물이 강이 됨 – 물이 강같이 되어야 헤엄칠만한 물이다. 이런 영적인 상태는 성령이 충만한 상태이고, 내 생각보다 성령의 생각과 인도하심에 온전히 이끌려 사는 상태이다. 성령의 주관 하심을 받고, 온전히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생각하고 숨 쉬고 말하며 사는 상태인데, 곧 하나님의 사랑에 푹 잠겨서 사는 참된 신앙의 삶이다. 헤엄칠 때 몸을 온전히 물에 던져야 뜨듯이, 물에 다 맡기고 편안히 있어야 뜨듯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성령의 지배에 맡겨야 하나님 은혜의 강에서 헤엄을 치며 편안히 살 수 있다. 성령에 잠겨야 죄를 승리하고 자아를 이기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 상태인가? 여러분의 삶에서 성령님께서 주도하시는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

  

에스겔은 계시를 보았다. 가물고 메말라 보이는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의 물로 가득 차는 영광스러운 계시를 보았다. 강에는 생물이 자라고 고기가 심히 많아지는 장면이 연출되는데(9,10절), 물고기가 많아진다는 의미는, 많은 영혼을 인도할만한 성령의 충만함과 역사가 회복된 교회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강가 좌우에는 실과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많이 맺어지며 잎사귀는 사람을 살리는 약재료가 된다는 기록이 나온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12절). 이것은 마지막 늦은 비 성령을 받은 사람들로 가득 찬 마지막 교회의 모습을 나타낸다. 실과와 열매를 맺는 나무들은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 변화되고 성화된 사람들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곧 요한 계시록 18장 1절에 나타난 넷째 천사가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으로 땅을 환하게 하는 늦은 비 성령의 운동과 그것에 참여한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