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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_ 에스겔의 계시 Ⅳ – 하나님의 도성 “여호와 삼마”

 

에스겔이 기록한 마지막 계시의 장은 48장이다. 이 계시의 장면은 47장 후반부부터 시작되는데, 연구해보면 큰 은혜가 되는 계시이다. 함께 공부해보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 지계대로 이스라엘 십이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겔 47:13).

 

회복된 교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땅과 기업을 나누어주는 장면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면서 에스겔의 계시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열두 지파에게 땅과 기업을 나누어주는 기록은 옛날 여호수아 때에 이스라엘 백성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것과 같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회복된 하나님의 땅, 구역을 가리키는 것이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 땅과 구역을 분배 받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주목하여 볼 것은 48장에 보면, 열두 지파 이름이 나오고 땅을 분배하는데, 땅 중앙 가운데 거룩하게 구별된 땅을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언급되어 있다는 것이다.

유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광이 이만 오천 척이요 장은 다른 분깃의 동편에서 서편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이 일만 척이라”(겔 48:8,9).

 

이 온 땅 중에서 예물로 드리는 땅 곧 레위 지계와 연접한 땅을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길지니라”(겔 48:12).

 

이 구별된 땅은 지극히 거룩한 땅으로서 특별히 성읍과 성의 크기가 묘사되어 있다. 그 땅의 모양은 네모 반듯한 땅으로서(20절), 일만 팔천 규빗의 크기로 나와 있는데, 이 성읍에 대한 묘사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을 따른 열두 대문이 등장한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 땅과 구역에 관한 묘사와 크기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사도 요한이 보았던 계시에 등장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을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묘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에스겔이 마지막에 보았던 계시 속에 나타난 모습은 회복된 새 하늘과 새 땅에 위치할 하나님의 도성이었다! 에스겔이 본 것은 이 땅에 회복될 예루살렘 성이 아니었다. 즉 바벨론 멸망 후, 회복된 이스라엘 나라를 본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 계시에서 보고 기록한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여호와삼마”란 단어이다.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겔 48:35).

 

여호와 삼마” – 히브리어로 ‘삼마’는 “거하다”, “존재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인데,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항상 함께 거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그것도 보통 장소가 아닌 특별한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삼마란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곧 “여호와가 항상 거기에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에스겔의 이 계시는, 요한 계시록 21장에 묘사된 새 하늘과 새 땅에 내려와 상재할 새 예루살렘 도성과 이제로부터 하나님께서 영원히 인간을 떠나지 않으시고 장막을 치실 것과 도성 중앙에 설치될 하나님의 보좌와 성소 되신 어린 양이 함께하실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1-4).

 

에스겔은 계시에서 회복된 교회를 보았고, 하나님의 참 교회이며 성소인 각 개인, 곧 회복된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았고, 새 예루살렘을 보았는데, 그곳에는 여호와삼마, 하나님의 보좌가 함께 장막을 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여호와의 장막이 항상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우리에게 감격스럽고 놀라운 일이 될 것인가! 우리는 얼마나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사모하고 소망하고 있는가!

그러나 그것은 먼 장래의 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온전히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어 그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산 성소가 되면 성취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곧 각 개인이 하나님의 산 성소로 회복되면 가능한 것이다. 여호와삼마는 미래의 있을 것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가지고 주님과 항상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곧 여호와삼마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가진 삶,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삶인가!

 

** 마치면서

 

마지막 시대를 사는 오늘날, 우리는 계시를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의 인생이 엉망으로 어렵게 엉켜있어 보여도, 결국 우리의 인생을 최선의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그래서 우리를 결국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주님 섭리의 손을 보아야 합니다. 또한, 아무리 지금 나 자신이 마른 뼈만 남은 듯이 앙상해 보여도, 그리고 교회와 이웃의 형제들이 마른 뼈 같은 형편없는 모습으로 보여도, 우리 속에 역사하셔서 큰일을 이루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서로 사랑하고, 미래의 변화될 모습을 그리며 서로 격려하는 것이 계시를 보는 믿음입니다. 또한 우리가 거듭나고 변화되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남은 무리와 백성들이 결국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을 믿는 것이 계시를 보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에스겔처럼 계시를 보는 믿음 속에 살아야 합니다. 현재는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을 믿는 믿음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그 계시 속의 영광스러운 모습, 회복된 모습이 우리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믿는 것이 마지막 시대에 필요한 특별한 믿음, 계시를 보는 믿음입니다. 이 특별한 믿음을 통해 그 계시 가운데 나타난 놀라운 일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그 회복된 새 예루살렘에 다 들어가게 되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