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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회사 Episode_ 알프스 왈덴스인들의 전사들

이교의 관습에 반대한 사람들 2

알프스 왈덴스인들의 전사들 - 헬비디우스, 요비니아누스, 비질란티우스

이탈리아 북부의 화려한 도시 밀라노는 서방의 셀틱 기독교와 동방의 시리아 기독교를 이어주는 가교였다. 밀라노는 동방에서 온 성직자들이 함께 모여서 수많은 회의를 하던 회합 장소였다. 이 때문에 안디옥과 밀라노와 골(Gaule, 프랑스)에 있던 교회들의 초기 예식들이 거의 동일하였다. 수 세기 동안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는 로마교회의 성직 계급 제도를 반대하였다. 흥미롭게도 교황권이 라틴 기독교에 새롭게 도입한 것에 대해 두드러지게 반대했던 세 사람은 모두 이탈리아 북부 출신이며, 이들은 헬비디우스, 요비니아누스, 비질란티우스였다.

교회 안에서 이교 관습에 항거한 사람 중에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헬비디우스 1세(A.D. 250~320경)였다. 헬비디우스보다 한 세기 반 전의 저스틴 마터나 적어도 한 세기 전의 터툴리안, 키프리안, 오리겐, 클레멘트 등의 저술들은 보존됐지만 헬비디우스의 저술들과 그에게 호의를 나타낸 글들은 모두 파기되었다. 헬비디우스는 성경의 가르침들을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형태로 전수하고자 애쓴 교회에 속해 있었다. 그는 제롬이 교황권의 라틴어 성경인 벌게이트역을 만들 때 잘못 전해진 헬라어 사본들을 썼음을 폭로한 것으로 유명하다. 만일 제롬이 헬비디우스를 탄핵하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더욱 적었을 것이다.

북부 이탈리아의 널리 알려진 개혁자 중 두 번째 인물은 비질란티우스의 선구자였던 요비니아누스(A.D. 330~390)였다. 그는 학문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박식한 교황권 지지자들이었던 제롬과 어거스틴과 암브로스가 연합 공격을 펼치고도 그의 성서적이고 역사적인 논증들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요비니아누스를 따르던 사람들은 알프스 산맥의 골짜기들에 피난처를 정하고 거기에서 12세기에 힘차게 다시 나타날 복음적 가르침의 생명을 지켰다. 요비니아누스는 성직자의 독신주의와 금욕주의, 성직 계급제도, 성모숭배 등에 반대하였다.

비질란티우스(A.D. 364~408)는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남부에 거하던 고결한 왈덴스인들의 탁월한 초기 지도자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왈덴스 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여긴다. 그의 시대에는 초기 교회에 스며들어온 이교 관습에 대한 저항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혁명적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로 한때 성도에게 전해진 믿음을 유지하고자 갈망하는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남서부에 살던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조직체를 이루었다. 오직 성경에 기초한 진리만을 갈구하며 교회에 스며든 이상한 미신적 행위들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성경에 근거한 비질란티우스의 명쾌한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았다. 비질란티우스는 “종교개혁의 선구자” 또는 “우리 개신교의 초기 선조들 중 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 국가와 연합하지 않은 교회들의 이 새 지도자는 자신의 인생을 사본들을 수집하는 일과 성경을 유포시키는 일, 전도지들과 책들을 쓰기 위해 필기자들을 고용하는 일을 위해 사용하였다. 골 출신의 이 개혁자가 공공연히 책망한 교리들과 행위들은 독신주의, 유물숭배, 촛불 점화, 철야기도, 죽은 자들에게 하는 기도 등이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알프스 교회들은 로마 교황권의 미신적인 새 히스테리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았다. 교황권이 때때로 왈덴스인들에게 박해를 자행할 때마다 그들은 이 지역의 “이단”이 비질란티우스의 무리와 같은 존재임을 선포하였다. 두 세기 후에 중세의 저술가들은 밀라노의 주교인 클라우드가 비질란티우스의 “독”에 감염되었다고 하며 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당시에 아일랜드 교회를 확장하고 있던 아일랜드의 패트릭이 분명 중서부 유럽에서 일어난 이 개혁 때문에 큰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남부 유럽의 비질란티우스는 그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패트릭처럼 광야 교회 초기의 빛나는 별 중의 하나로 여김을 받을 수 있다.

이교의 관습에 반대한 사람들 다음 호에서 계속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