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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신앙인들_ 창조과학의 아버지 헨리 모리스

 

1859년에 찰스 다윈에 의해 발표된 '종(種)의 기원'을 통해 ‘진화론(進化論)’은 세계학문 전반의 지축을 뒤흔들면서 신앙과 신학에 대한 사상 최대의 타격을 가했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조차도 성경을 회의적인 눈으로 보기 시작했으며, 급기야는 이 배경 속에서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이 등장하였다. 이런 신학적 사조는 여러 형태의 신(新) 신학으로 발전되면서 복음과 정통신학에 큰 도전을 주었으며, 결국 유럽을 중심으로 한 신학계는 자유주의 신학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고 영국과 독일의 교회들은 인본주의, 진화론, 자유신학의 영향으로 날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1925년 그 유명한 스콥스 재판(Scopes trial) 이후로는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로 공인되어가고, 모세의 창세기를 포함한 오경은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신화 정도로 취급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창조론을 주장하고 있는 책은 극히 드물었다. 교과서들은 진화론에 의해서 완전히 점령당해 버렸고, 과학에 의해서 협박당하고 있던 대부분의 교회는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을 회피했다. 자유주의 교회들은 오래전부터 진화론으로 완전히 물들어 있었고, 성경을 믿는 많은 교회도 수십억 년의 오래된 연대와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에 굴복 되어 있었다. 과학이 오래된 연대를 사실로서 입증했다고 생각하고, 그 당시 믿는 과학자들의 모임이었던 ASA(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마저도 진화론 일색의 색채로 바뀌게 되었고, 신학자들은 진화론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간격이론(gap theory) 및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과 점진론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 등 타협이론들을 정론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인본주의적 진화론과 자유주의 신학의 위세에 눌려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던 보수 복음주의에 숨통을 터 준 사람이 헨리 모리스이다. 그는 모든 과학자들이 참 과학에 반하여 거꾸로 가고 있을 때, 즉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고 성경은 틀렸다고 말할 때, 굽힘 없이 과학을 통하여 성경의 기록이 사실인 것을 이 세상에 증거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의 책 ‘성경과 현대과학(The Bible and Modern Science)’은 이러한 것을 바꾸기 시작했고 헨리 모리스 박사와 존 휘트콤 박사가 1961년에 함께 저술한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 라는 책을 통하여 잠자고 있던 교회를 흔들어 깨웠다. 또 대학을 졸업한 새로운 세대의 크리스천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많은 사람은 그 책의 출간이 현대 창조과학 운동(modern creationist movement)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 책은 오래된 연대에 반대되는 증거들과 한 번의 전 지구적인 대홍수 격변을 찬성하는 과학적인 명백한 증거들을 제공했다. 모리스와 휘트콤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홍수 기록과 일치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화석기록과 지질학적 지층들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라, 진화론자들이 진화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과학적인 증거들이 대홍수를 동반한 격변설적 개념으로 해석할 때 더 합리적으로 해석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당시 자유주의 및 복음의 세속화에 의분을 느낀 헨리 모리스 박사는 계속해서 1967년, 창세기와 노아 홍수를 계시된 말씀 그대로 믿는 창조과학자들의 모임인 CRS(Creation Research Society)를 진수시키고, 1970년, 버클리 대학의 생화학자였던 듀안 기쉬 박사와 함께 창조과학연구소 ICR(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을 설립하여 창조과학의 기반을 닦으며, 미국 전역의 대학교에서 진화론과의 대 접전을 벌였다. 창조과학자들의 성경에 대한 확신과 공인된 과학적 지식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라 세계적으로 ‘진화보다는 창조가 더욱 과학적이다’라는 사실을 알렸다. (한국의 창조과학회는 1981년 출범). 이러한 창조과학자들의 활약은 결국 오하이오 주를 시작으로 하여 미국의 많은 주(州)에서 과학 교과 과정에 ‘창조론’을 포함하는 성과를 이루게 된다. 문자적 성경 해석과 기독교관을 견고히 하며, 진화론적 과학과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는 성경적 창조론, 과학적 창조론, 젊은 지구 창조론(young-earth creationism)을 지지하는 수천의 주석을 포함하는 'the New Defenders Study Bible' 등 60여 편의 그의 책들은 일반 독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 후 새로운 일단의 창조과학자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BSA(Bible-Science Association)와 CRS(Creation Research Society) 같은 새로운 기구들이 조직됐고, 창조과학 운동을 지지하는 무수한 클럽과 단체들이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며 성장하게 되었다. 헨리 모리스 박사는 하나님에 의해서 사용됐던 현대 창조과학 운동의 모세이며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랐던 한 사람에 의해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결코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늘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렸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였다. 그의 개인적인 인내심, 근면성, 성결함, 그리고 그의 책들에서 볼 수 있는 지혜로움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그들을 강하고 용기 있게 만들어서, 진정한 과학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들이 안주하고 있던 땅들을 떠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루터를 들어 쓰셔서 타락으로 치닫던 중세 카톨릭 교회에서 종교개혁을 일으켜 참 신앙과 말씀으로 돌이키셨듯이, 후대에 헨리 모리스 박사를 지명하여 부르셔서, 인본주의적 진화론과 성서비평학의 영향으로 자유주의로 떠내려가던 미국의 기독교에 다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믿으려 하는 근본주의 및 보수 복음주의의 새 물결을 일으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