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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_ 예수의 인성에 대한 사탄의 공격

 

예수님의 인성이 이렇게 중요하므로 이 가르침을 변질시키려는 사탄의 공격은 맹렬하였다. 그렇다면 초대 교회 당시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초기에 교부들이 바르게 믿고 알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왜 변질되고 왜곡되었는가?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본성이라는 가르침이 전멸되었는가?

처음에 제자들이나 그리스도교회에 던져지는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이 무엇이었느냐?”라는 것보다 “그가 누구인가?”였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사도들과 제자들을 통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했던 대답, 곧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대답은 이제 온 세상으로부터 들려지게 되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했던 메시아, 곧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탄은 인간적인 철학과 속임수로 하나님 아들의 인성을 공격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1) 첫 번째 사탄의 공격 – 영지주의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한 사탄의 도전 중 가장 강도 높은 것이 영지주의(Gnosticism) 이론의 제창이었다. 영지주의는 예수님의 신성만을 강조하고 믿었다. 사도 요한이 살아 있었을 당시에 벌써 발생했고, 그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했을 만큼 위험하고 교묘했던 영지주의는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증인들이 점점 사라지고 주후 100년에서 200년 사이,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터툴리안 등 신실한 교부들이 교회를 지키던 때에 발렌티누스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다. 영지주의는 예수님의 본성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을 한 학설이었다. 요한의 경고를 먼저 들어보자.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3). 이 성경 절 뿐 아니라, 골로새서 28절에도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2:18-20, 딤전 1:1-7, 딤후 2:16, 벧후 2:1 등에도 이에 대한 주의가 기록되어 있다.

영지주의는 이원론을 주장하며 신비하고 비밀적인 지식, ‘영지’(gnosis)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학설이었다. 이것은 헬라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존재하는데, 선한 신은 정신세계를, 악한 신은 물질 세계 지배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영과 정신은 선하고 육과 물질은 악하다는 극단적 이원론에 근거하여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을 물질을 만든 저급한 신으로 보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을 강조하였다. 선한 그리스도의 영이 악한 인간의 육을 입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꺼렸으므로, 그리스도가 입은 육신은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 실제로 인간의 육신을 입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육신을 영의 감옥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영을 가두고 있는 육을 제어하고 영을 육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으로 과도한 금욕주의나 쾌락주의를 적용하였다. 그들은 가현설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은 말씀이 실제로 육신이 되신 것이 아니라, 유령 같은 존재로 나타나 환영처럼 보였다가 사라진 것이며, 그러므로 십자가 상에서도 실제적인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초기의 신실한 교부들이 초긴장하며 영지주의를 대응했던 이유는 대부분의 영지주의자가 기독교인임을 고백하면서도 초대교회의 정통 그리스도교와는 너무도 다른 신앙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을 주장하던 영지주의는 이설로 간주되어 퇴치되었지만, 338년경 이단으로 정식으로 규정되기 전까지 발렌티누스의 후예들에 의해 활발히 전해졌으며, 그 잔재는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을 강조하는 현대 기독교 교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남아있다.

 

2) 사탄의 두 번째 공격 – 아리안주의

예수님의 신성만을 강조하여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혼란시켰던 영지주의를 이어 다른 이설의 가르침이 등장하였는데, 그것은 아리우스”(Arius, 250-336)에 의해 창설된 아리안주의였다. 아리안주의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성만을 강조하였다. 아리우스(Arius) 256년 이집트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리아의 장로로서, 그는 그리스도는 인간일 뿐이라고 가르쳤던 안디옥의 루키안(Lucian)에게서 수학했다. 루키안은 후에 자신의 주장을 뒤집었지만, 루키안은 아리우스주의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아리우스와 4세기의 거의 모든 아리우스주의자가 그에게서 배웠기 때문이었다. 아리우스는 신플라톤주의에 입각한 가르침을 통해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신플라톤주의는 신성의 절대적 단일성만이 최고의 완전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 한 분만의 유일성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아리우스는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는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다. 곧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일본질임을 부인하고, 다만 비슷한 유사본질이라고 믿었다. 니케아종교회의 325년에 이단으로 정죄 되었지만, 그 사상이 널리 남아 기독교의 가르침을 혼란시키고 있는데, 현재까지도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교파가 존재하므로 그 잔재가 남아서 활동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 문제는 매우 중요하여서 사탄의 공격을 많이 받았다. 이 가르침은 신성을 부정하는 에비안주의, 아리안주의로 약해졌고, 인성을 부정하는 영지주의, 말시온 주의, 아폴리나리우스로 혼란하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수차례의 종교회의 통과하게 되었고, 마침내 680년 콘스탄티노플 회의를 거쳐 기독교는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을 모두 지니셨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본성에 대한 많은 혼란된 가르침으로 인해 기독교는 골치를 앓게 되었고, 이것을 논하는 자체를 혼란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하여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가르침에 혼동이 오도록 만든 사탄의 계략은 성공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기독교는 두 본성을 믿게 되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인성을 취하셨는가 하는 명확한 가르침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원죄설을 기본으로 하는 천주교는 무염시태설을 만들어 죄 없는 육신, 우리와는 전혀 다른 육신과 인성을 타고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게 되었고, 현재 기독교에는 그 가르침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를 명중한 사탄의 공격과 현대에 일어난 신신학의 봉기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진리는 완전히 훼파되었고, 그러므로 “대속”은 있지만 “모본”이라는 진리는 훼손되고 말았다.

 

** 예수님의 올바른 인성을 지지한 근대의 신학자들

183-2

그 모든 헛된 이론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시켜 완전한 복음을 믿고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큰 역할을 담당할 마지막 백성을 준비시킬 마지막 현대진리의 탄생을 막는 사탄의 공격과 계략이었다. 여러 세기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입으셨던 인성이 아담의 타락 후의 인성과 같다고 믿는 것은 이설로 간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칼 발트(karl Bart), 에밀 부르너(Emil Brinner), 루돌프 볼트만(Rudolf Bultmann),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로빈슨(J.A.T. Robinson) 및 20세기 후반의 가장 유명한 신학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진리를 올바로 주장했는데, 곧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와 같은, 아담의 타락 후의 본성을 입으셨다는 교리를 지지했다. 칼 발트는 저 유명한 <로마서 주석>의 저자로서 1934년에 출판된 기사를 통해 이 교리를 지지한 발언을 한 첫 번째 사람이었으며, 앞에 언급한 신학자들은 각각 자신의 저서와 기사를 통해 이를 증명하였다.

** 사벨리우스주의 - 성령은 기운이다?

여기서 잠깐 참고로 사벨리우스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삼위일체설을 부인하고 성령을 인격을 가지신 분이 아닌 그냥 ‘기운’과 ‘힘’(force)으로 주장하는 사벨리우스주의는 3세기에 사벨리우스가 주창한 사상으로 삼위일체의 세 위격의 하나님을 한 하나님으로 보며, 그 한 하나님께서 역사적으로 각각 다르게 현현하셨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하나님으로, 그다음에는 성자로, 그다음에는 성령으로 나타났다는 “양태설”을 주장한다. 후에 성부와 성자, 성령을 동일 본질로 보지 않으며 피조물로 보는 이설로 변질하여 내려왔다.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사탄의 공격으로 나타난 이설들은 이 진리를 땅에 파묻어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이 준비되는 일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 명료하고 정확한 진리를 알게 됨이 얼마나 큰 특권이며, 이것은 얼마나 소중한 진리의 유산인가! 이 진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우리의 의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어깨가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 마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본되심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진리는 세 천사의 복음에 가장 중요한 골자가 되는 중심 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진리를 올바로 터득하고 경험하는 사람들만이 마지막 여자의 남은 무리로 준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인을 받는 마지막 백성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살과 피와 인성, 곧 죄의 연약성을 가진 똑같은 육신을 쓰셨지만,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신의 능력으로 "육신에 죄를 정하"셨고 죄를 파쇄하셨습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구원이 있고 우리의 승리가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사람, “새 영과 새 마음”을 받은 새 언약에 들어간 사람, 율법이 마음에 기록되는 거듭난 경험을 한 사람은 예수님이 승리하신 것처럼 죄를 승리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은혜가(도)…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롬 5:21)는 경험을 할 것입니다. 이런 경이로운 경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수많은 제자 안에서 재현되고 체험되어야 하는 경험입니다. 그리하여 어린 양의 성품과 그리스도의 완전한 생애가 우리들의 생애에서도 재현되고,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을 변호하고 옹호하는 증인들이 탄생하게 되어 이 세상의 역사가 마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소망의 중심,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정복하신 것처럼 죄와 세상과 자신을 정복할 수 있다는 진리, 또한 그것이 가능하도록 능력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그것을 믿는 ‘예수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이렇게 귀한 현대진리를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예수님의 인성을 함께 공부하고 나서, 이 귀한 진리가 우리 생애에서 이루어지고, 그분의 모본이 우리 성품과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