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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_ 성육신의 또 다른 이유

 

성령의 인도와 지혜를 구하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세상의 그 누구도 깨닫기 힘든 놀라운 진리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성경은 그것을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비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마련하신 신비한 구속의 경륜 속에 들어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골 1:26), 참된 믿음과 영적 안목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밝혀지고 있다. 다음 성경절은 이 비밀에 대해 가장 직접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그런데 만일 우리가 이 말씀을 표면적으로만 읽는다면, 이 “비밀”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심오한 뜻과 의미를 간과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비밀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    

 

1) 구속의 경륜 - 성육신의 신비한 비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입으시고 이 땅에 강림하셨다. 성육신의 놀라운 신비!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위대한 지성과 지력을 가지고서라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비밀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 비밀이 최근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만세 전부터 만대로부터 감취어져 온 것이었는데, 이제 성도들에게 나타났으며, 이 비밀은 곧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선포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

구원의 경륜에 숨어있는 성육신의 비밀은 만세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만대로부터 감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위대한 비밀의 현시가 이 땅에 나타났다. 요한 계시록 56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이 구절에서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의 영어 원문은 “had been slain” 으로, 이것은 과거로부터 계속 죽임을 당해오신 어린 양이라는 뜻이다. 즉, 어린 양 되신 예수님께서 창세, 태초로부터 계속 죽임을 당해오셨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세워진 구속의 경륜은 범죄 후에 세워진 고안책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그들을 구원할 대비책을 미리 세워 놓으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구 상에 내려가 인간이 되셔서 당신의 생명을 속전으로 내어놓아 인간의 죄를 대신 속하신다는 계획이었다. 이 구속의 경륜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처음으로 창세기 3장 15절에 자세하게 선포되었는데, 곧 하나님 자신이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 사탄의 세력을 파하시고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므로 아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시는 성육신의 비밀과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죽임을 당하신다는 구원의 계획은 인간이 범죄하기 전 창세로부터 세워졌다. 그래서 창세로부터 주님께서는 죽임을 당해오신 어린 양이 되신 것이다. 이 말씀의 뜻이 그것이다.

만일, 우리의 모든 지력을 기울여 깊이 연구하며 우리의 온 마음과 정신을 집중시켜 명상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가 있다면, 하늘과 땅과 이 우주에서 일어난 일 중에 가장 놀라운 일, 곧 하나님 아들께서 성육신 하신 그 신비와 사랑일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주셔서 죄로 죽어가는 인간을 위하여 수치와 능욕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생명의 속전을 치르게 하신 것이다. 하늘의 크신 사령관이셨던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늘의 높은 지위를 버리시고, 하늘 왕의 옷과 왕관을 벗어 놓으시고, 그의 신성 위에 인성의 옷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인류의 모든 고난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고통을 당하시고 고난을 겪으시기 위해 친히 몸을 낮추셨다. 죄로 갈라진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존귀를 받고 부귀와 명예를 누리는 군주가 아니라 종의 형체를 지니시고 사람들을 섬기고 멸시를 받으시는 낮은 계급으로 오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인성의 팔로는 인간을 감싸 안으시고 신성의 팔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보좌를 붙드셔서 둘을 화목하게 하셨다.

그러나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계획 속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했는지 그 구속의 역사는 신비로 남아 있으며, 우리는 다만 예수님의 생애와 역사를 통해 보인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운 자비가 그 신비의 이유임을 희미하게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튼, 우리는 창세 전에 세워진 놀라운 구속의 경륜 속에 숨어있는 성육신의 신비한 비밀 때문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대속의 죽음과 그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오늘 이렇게 숨 쉬며 살 수 있다. 얼마나 놀라운 구속의 계획인가!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인가!

 

2) 대속인가 아니면 모본인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의심하거나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그리스도인 중에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구속의 비밀을 푸는 완전한 열쇠를 손에 쥐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단순하게 대속의 문제로만 보아 넘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극히 단적이고 표면적으로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데에는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 외에 더 심오한 의미가 숨어있다. 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이 구속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획득하는 것이며, 이 열쇠를 찾아 획득한 사람만이 진정한 믿음, 곧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죄를 승리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마지막 참백성과 교회를 탄생하게 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마지막 선과 악의 대쟁투를 종결짓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진정한 믿음 말이다.  

성육신의 비밀 속에는 대속 외에 매우 중요한 관건이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모본이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난 자들의 모본, 곧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본이 되신다는 것이다. 이 관건은 태초에 시작되었던 하늘의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써, 이것이 선과 악의 대 쟁투의 원인과 이유가 되었고, 또 이 쟁투에 종결을 매듭짓는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하늘과 우주의 평화가 실현될 수 없고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날 수 없으며, 사단의 주장이 기만이라는 사실이 증명될 수 없다. 사탄의 기만적인 주장이 무엇인가? 대쟁투의 초기에 사단은 주장하기를,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는 것이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계명을 파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언했다. 하나님은 지킬 수 없는 불공평한 법을 만들어 놓고 피조물들을 강요하시는 분이며, 그래서 사람은 율법을 순종할 수 없고 용서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인 계명을 없애버리려는 사탄의 기만적인 주장을 침묵시키기 위하여, 의심받은 하나님의 공의가 증명되기 위하여 이제 이 우주에 무엇인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죄인의 죄를 속하시는 대속만으로는 넉넉하지 않았다.

세상은 하나님의 법은 지킬 수 있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모본을 요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법에 대한 사탄의 기만적인 주장과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고소를 침묵시킬 수 있는 누군가가 이 세상에 있지 않으면 안 되었고, 하늘 법정에 계류된 하나님에 대한 고소가 끝이 나고 선악의 대 쟁투를 종결짓는 일이 생겨나야 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지침과 악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되는 계명을 지킬 때에 인류의 행복이 어떻게 증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줄 누군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 대속 뿐만 아니라 모본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서 지상에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보여주셨다. 율법이 요구하는 의, 즉 의로운 생애, 그리고 완전한 품성을 보이라는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