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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_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는 거짓말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렘 7:2-4).

 

스데반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 가졌던 교회에 대한 그릇된 개념은 구약 당시에도 편만 하게 나타나 있다. 이 문제는 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자주 경고를 하시던 사안이었다. 그런 경고의 메시지가 극명하게 나타났던 시대 중 하나는 선지자 예레미야 시대였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고 진리에서 떠나 곁길로 가면서도 유대 백성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전을 의지하고 있었다.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께 반역하고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유다 백성들을 경고하는 중, 예레미야는 심지어 성전 문 앞에 서서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까지 말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상상해 보라! 교회 앞에 서서 교회에 출입하는 신자들을 막으며 그렇게 말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가를...!

 

그들은 무조건 성전을 믿고 있었다. 그들은 이방 나라를 본받아 우상숭배와 온갖 가증한 죄악을 행하면서도, 그들이 구원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는 성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멸망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마치 엘리 제사장 당시에 이스라엘이 그들의 악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법궤가 있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에 대한 승리가 보증될 것이라는 헛된 생각을 가졌던 것과 똑같은 예였다. 그러나 법궤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구해줄 수 없었다. 남방 유다도 마찬가지였다.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소 봉사를 엄격히 준수하고 성전을 믿을 때에, 그들의 악한 행실로 인해 마땅히 받게 될 공정한 형벌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유대 백성들의 죄악과 잘못된 사상을 바로잡고 곧 이르러 올 멸망을 피하게 하려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로 그들을 경고하였다.

 

1) 예레미야는 정말 매국노였는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것은 요시야 왕의 재위 13년이 되던 때였다. 그 때는 이미 북방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 당한 때였고, 이제 남방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려고 하던 시기였다. 그는 요시아 왕 때 여호와 하나님의 소명을 받기 시작해서, 요시아의 아들 여호야김이 왕위를 물려받은 시기와 또 다른 아들 시드기야가 다시 왕위를 물려받은 후, 결국 유대 민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던 기원전 587년 전후까지 오랫동안 선지자와 예언자로 활동했다. 요시야가 통치자로 있을 동안은 유다 백성들에게 다소나마 희망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이 전쟁에서 죽은 후에는 그들을 올바로 인도하거나 중재할 지도자가 없어졌다. 이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운 초청을 너무 오래 거절하기 때문에 유다에도 북방 이스라엘 나라에 내렸던 형벌이 곧 내릴 것이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백성들에게 전하기 위해 받은 메시지는, 유다가 흥왕하리라는 축복의 메시지도 아니었고, 너희가 잘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리라는 소망의 메시지도 아니었다. 그는 곧 유다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루살렘 성전이 초토화되리라고 경고해야 했다. 다른 예언자들처럼 백성들을 적당하게 위로해 주고 “다 잘 될 것이다” 라고 하거나 민중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했으면 환영을 받았을 것이지만, 그의 메시지는 멸시와 조롱과 핍박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메시지였다. 예레미야 시대의 대다수 다른 예언자들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방식으로 예언하며 백성들과 왕에게 아부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가 바벨론을 물리쳐주실 것이며 유다가 평안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그대로,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했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을 의지하지 말 것과 인간적인 안목에 지혜롭게 보이더라도 애굽을 의지하는 일을 멈추라고 경고했다. 그들은 애굽을 향하여 도움을 구하거나 동맹을 맺거나 애굽으로 도망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의 계획에 겸손하게 순종하여 바벨론에게 순복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형벌과 징계의 막대기가 경해질 것이며, 그들의 순종과 회개로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 회복될 것이었다. 그러나 유다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기보다는 인간의 생각과 지혜대로 행하였고,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예레미야를 애국자가 아닌 매국노로 치부하였다. 아무리 그가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여도 그들이 하나님께 택함 받은 선민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던 훌륭한 성전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시므로 절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예레미야는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하나님을 반역하고 여호와를 슬프시게 하는 죄악을 계속 범하고 있으면서도, 성전이 우리에게 있으니 안전하다는 망상 속에 빠진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성전 문 앞에 서서, 이 성전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낸 죄악을 회개하고 자복하는 일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외쳤다.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2)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고 외치는 현대 교회들

앞서 살펴본 유다의 역사는 비단 예레미야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시대의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는 이와 똑같은 상황들이 재현되고 있다. 그들은 진정한 구원이 보장되는 진짜 성전, 하나님의 참 교회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부인 하면서도, 참 교회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구원의 역사를 바라고 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고 구원의 효력이 없는 빈 껍질만의 외형의 성전이 아닌, 구원의 효력과 보장이 되는 진짜 성전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는 조건과 방법은 실로 단순한 것이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 순종하는 것이었다. 죄를 회개하고 마음이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죄를 이기는 거룩한 생애를 살며 하나님의 임재를 가지는 것이었다.
오늘날 진짜 성전이 아닌, 가짜 성전을 의지하며 교회에 붙어 있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어리석은 신자들이 많다. 그들은 교회를 붙들고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고 외치고 있다. 교회의 권위가 성경의 진리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목사의 판단이 구원의 기준이 되며, 신자의 숫자가 구원의 효력을 더 한다는 헛된 망상 속에 빠진 것이다. 진리 대신 오류가 설파되고, 순종을 강조하는 대신 값싼 은혜로 구원이 주어진다고 가르쳐지며, 십자가가 시작이 아니라 구원의 끝이라는 초보의 가르침이 주류를 이루는 현시대의 교회들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위한 교회의 목적이 이루어질 수 없다. 완전한 복음을 통해서만이 구원의 완성이 가능한데, 그 이유는 완전히 회복된 복음을 깨닫고, 그 복음대로 변화되고 성화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가진 산 성소가 되기 때문이며, 또 그런 참 교회들이 준비되어야 마지막 여자의 남은 무리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가진” 남은 무리가 형성되어야 하나님께서 마지막 선과 악의 대 쟁투를 승리로 이끄실 수 있으며, 그때에야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신 진정한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다.

 

3) 진짜 성소가 되기 위한 우리의 회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백성들의 죄악을 고발하셨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참 성소가 될 수 없었던 죄악과 이유를 열거하셨다. 그들이 지적 받은 그 시대의 죄악은 현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는데, 이런 죄악을 회개해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참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교회로 만든, 예레미야 2장에 열거된 유다의 죄악 기록을 비추어 현시대의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적용해 보자.



1. 하나님의 땅을 더럽힌 죄 – 교회 내의 오류의 범람

* 예레미야 2:7 -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원래 하나님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이것을 영적인 의미로 보면, 처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본래의 토양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영적으로 성장시키기에 충분한 영양이 있는 기름진 토양이었다. 진리가 충만하고 아름다운 구속의 복음이 충분히 깃들어 있고, 섭취하기만 하면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해주고 구원을 주기에 충분한 양분을 가진 토양이었다. 그러나 그 땅은 더럽혀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시며, “내 땅을 더럽히고”라고 하셨다.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다”는 말은 토해내고 싶을 정도로 아주 혐오스럽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지금 현재 교회들의 토양은 어떤가? 설교단에서 전파되고 있는 가르침들은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로 더럽혀진 것들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순수한 복음과 진리에서 떠나, 인간의 학설과 유전이 마구 섞여 변질된 복음과 가르침이 현시대 교회에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유다가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의 땅을 더럽혔듯이, 하나님보다 인간을 더 숭상하고, 인간의 목소리 듣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보다 더하며, 재물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과 세속을 더 사랑하여 교회인지 세상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된 것이 현대의 교회들의 형편이다. 현대 교회는, 아니 우리들은 이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 진리에 순종하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있으면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 각자가 진리로 온전히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가진 산 성소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다.

 

2. 지도자들의 죄악 – 신자들을 잘못 인도함

* 예레미야 2:28 –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당시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올바른 제사를 드리고 또한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할 책임을 진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깊은 의미와 거기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맛보아 알므로, 자신이 먼저 깨달은 의미를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에 더하여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가 되어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면서 우상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현대 기독교의 영적 지도자들은 어떠한가? 성경의 진리에서 완전히 떠난 변질된 복음을 잘못 가르칠 뿐만 아니라, 영적 소경이 되어 신자들을 오히려 더 흑암으로 인도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대부분의 목사들이 성경의 진리에서 설교 강목을 연구하기보다는, 현대 철학자나 명상가들이나 심리학자들이 쓴 서적들을 참고로 하여 이방의 정신적인 가르침과 철학들을 그들의 설교 내용에 담아내며, 신자들의 질적 영적인 향상보다는 교회 성장과 경쟁에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가? 바알의 무익한 가르침들이 가르쳐지는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들의 영적 부흥이나 개혁은 거의 바랄 수 없다. 성경의 순수한 진리에서 떠나지 않은 말씀과 자신의 생애 속에서 먼저 역사한 진리의 능력을 전파할 때만 그 복음은 강력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3. 생수의 근원을 버린 죄 – 거짓 성령 운동

* 예레미야 2:13 -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 때에 그 속에 활동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우리는 정결함을 얻게 된다. 생명수는 예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으로, 성경에서 물은 종종 씻으시는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스가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정결 사업을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슥 13:1)으로 표상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도 성령을 표상한다.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샘물을 맛본 적이 없었다. 생수를 주시는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을 인도하시기를 원하셨건만 그들은 영혼을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하고 활력을 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그들의 갈증을 결코 채워줄 수 없는 세상의 터진 웅덩이에서 물을 찾았다.

 

현대도 마찬가지이다. 진리가 선포되지 않고 거짓 오류의 복음이 전해지는 교회에서 영혼들은 영적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세상 사물에 몰두하는 대다수의 신자들로 가득 찬 교회, 성령의 부흥하게 하시는 능력이 떠난 교회들에서는, 거룩한 진리가 줄 수 있는 축복을 받지 못해 갈증을 느낀 사람들이 영혼의 갈증을 거짓 성령의 흥분적이고 광신적인 운동으로 풀어 보려고 노력한다. 하나님의 성령의 심오한 감화와 역사를 통해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며,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살게 되는 변화가 부재하게 되면, 자연히 영혼의 굶주림을 채우고 대신 만족시켜 줄 거짓 성령 운동에 끌리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거짓 기적과 감정적인 흥분과 열광은 있지만, 성령으로 인해 일어나는 생애의 진정한 변화나 거듭남, 또한 거룩한 생활에서 나타나는 지속적인 죄에 대한 승리는 찾아볼 수 없다. 한번 거짓 성령 운동에서 정서적인 흥분과 거짓 평안의 기만 속에 빠지게 되면, 중독 현상이 일어나, 어떤 흥분이나 감정의 고조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성령이 떠났다고 믿게 되므로, 조용하고 차분한 심령 속에 역사하시는 진짜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고, 진리에서 떠나 점점 더 광신적인 거짓 성령의 역사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매일 정결하게 하시는 성령의 샘물, 영혼의 갈증을 채워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마시는 경험을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내재하시는 사람은 그 속에 절대 마르지 않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의 샘을 가지고 있다. 성령의 임재와 진정한 역사야말로 참 교회를 시험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