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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_ 스데반이 역설한 “손으로 짓지 않은 성소”


교회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골목마다 십자가가 세워지고 작은 교회, 큰 교회, 몇 만 명이 운집하는 대형 교회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교회, 하나님의 진리가 가감 없이 전해지는 교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고 있는 교회는 좀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원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교회는 인본주의와 교회 성장, 그리고 비즈니스 주의에 빠져 비대해진 몸으로 표류하며 오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신이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구원이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붙어 있기만 하면 구원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 건물이 크고, 교인의 숫자가 많고, 선교를 열심히 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그 교회에서 진리가 바로 전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진리와 계명에 대한 순종이 강조되지 않고 수반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당신의 참 교회로 간주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한, 교회가 구원을 보장해 준다는 일념 아래 구원받기 위해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사람들을 당신의 참 백성으로 간주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참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그 교회는 훌륭하게 건물이 갖추어진 유형의 교회라기보다는 무형의 교회입니다. 곧 마음의 보좌에 하나님께서 친히 좌정해 계시는 교회, 하나님과 산 연결을 한 살아있는 교회, 하나님의 계명과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 주님 안에 거하여 열매를 많이 맺는 각 개인이 하나님의 성소가 되는 무형의 교회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번 신앙 기사에서 연구할 교회에 대한 올바른 개념은 이 마지막 시대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참 교회, 참 성소가 되도록 도와드릴 것입니다. – 편집실 -

 

제1부: 스데반이 역설한 “손으로 짓지 않은 성소”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행 7:48-50).

 

“참 교회”에 대해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성서적인 이해와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성경의 인물은 스데반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했던 스데반이 순교할 때에 마지막으로 했던 설교와 증언에서 참 교회에 대한 개념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의 설교의 핵심 주제로 그를 순교하는 지점까지 몰고 갔던 참 교회에 대한 개념은,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양심을 날카롭게 깨웠을 뿐 아니라 현주소를 잃고 표류하고 있는 마지막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도 큰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허를 찌르고 분노를 충천하게 하여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게 만든 참 교회에 대한 개념이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역설한 그 개념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1) 거짓 고소를 받은 스데반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자 복음이 큰 능력으로 전파되었다. 복음 사업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점 더 넓은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오순절 성령을 부어 주실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 (행 2:5)고 있었는데, 놀라운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받아들인 유대인 제자들이 수없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성령의 역사와 사도들과 제자들의 헌신적인 전도 활동으로 인해 초대 교회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인 여러 다른 민족과 이방인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점점 늘어가는 신자들의 수의 증가는 책임 맡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부담이 되었다. 사도들은 집회를 소집하여 성령의 지도에 따라 일곱 집사를 선출하여 교회의 일을 분담하게 하였다.

 

초대 교회 당시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로 뽑혔던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던,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일곱 집사 중에 으뜸 되는 스데반은 경건하고 깊은 신앙의 소유자로서, 유대 태생이었지만 헬라어를 구사할 줄 알고 헬라 사람의 관습과 예절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므로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유식한 랍비들과 율법의 박사들은 자신들이 쉽게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스데반과 공개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그들은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능히 당치 못하”였다. 스데반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했을 뿐만 아니라, 예언을 연구한 사람으로 모든 성경의 예언을 꿰뚫고 있었고, 율법의 모든 내용과 이스라엘의 역사에 박식하였다. 그는 진리를 힘 있게 옹호하고 변호하므로 그에게 도전해 오는 모든 적수들을 완전히 패배시킬 수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스데반의 명석하고 예리한 지혜의 말을 누구도 반박하고 이길 수 없음을 알고는 불타는 증오심을 가지고 그를 징계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 백성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하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려고 계획하였다. 그들은 스데반을 체포해서 산헤드린 앞으로 데려다가 심문을 시작했다. 스데반의 논증을 반박할 목적으로 학식 있는 유대인들이 소환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데반의 죄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거짓 증인들을 고용하여 스데반이 하나님의 성전과 율법에 대해 참람된 말을 한다는 거짓 증언을 하게 하였다. 그 증인들은 “그(스데반)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스데반을 거짓 고소한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교회에 관한 문제였다. 여기서 스데반의 교회에 대한 개념과 유대 지도자들의 교회관이 상충되었다.

 

2) 유효 기간이 끝난 성소와 두 가지 교회

유대 지도자들의 교회관은 무엇이었는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교회와 성전은 그들에게 거의 우상이었다. 그들에게 교회와 성전은 구원의 보장이요, 수단이자 그들의 존재 이유였으며 그들의 종교의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성소 제도는 종말을 고하고 성소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오랜 세월 동안 성소 제도와 표상들을 통해 가리켜 오던 희생제물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자신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지상의 성소 제도는 끝이 났으므로, 이제 그들은 그들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새롭게 보여주시는 새 길, 새롭게 열린 구원의 도와 방식을 따라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성소의 낡은 제도를 붙잡고 있었다.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다는 자만 속에 율법주의와 위선에 빠져있던 유대 지도자들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왔을 때에 그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성취가 그토록 뚜렷하게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적 눈이 멀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성소 안의 희생제물은 필요 없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그때, 성전 안의 휘장이 하늘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한때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했던 곳이 군중의 눈으로 다 볼 수 있도록 열려졌다. 그곳은 하나님의 세키나 영광의 빛이 거했던 곳, 하나님께서 시은소 위에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던 지성소였다. 아무도 이 지성소와 성소를 갈라놓는 휘장을 쳐들 수 없었고, 다만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씩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성전의 지성소는 더 이상 거룩한 곳이 아니었다. 모형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원형과 마주쳤고 큰 희생이 이루어져, 이제는 지상의 지성소가 아니라 하늘 지성소로 가는 새롭고 산 길이 만민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다. 모든 사람은 누구든지 단번에 드려지신 희생제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늘의 칼에 의해 휘장이 찢어져 지성소의 내부가 훤하게 드러나 쓸모없게 된 성소,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버린 성소에서 휘장을 꿰매어 칸을 다시 막은 채, 아직도 이전과 똑같은 제사 제도를 집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유효 기간이 끝난 낡은 성소 제도를 고집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참 교회, 진짜 교회라고 믿고 있었으며, 그들의 교회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구원이 이른다고 스스로 기만하고 있었다.

 

이제 이 지상에는 두 개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는 크고 웅장한 성전 건물을 가지고 있고 거대한 조직을 가졌지만, 진리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더 이상 같이 하지 않는 눈에 보이는 유형의 교회, 또 다른 하나는 훌륭한 건물도 조직도 없지만, 진리가 그 속에서 가르쳐지고 전파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가 현저하게 함께 하는 하나님의 참 교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교회였다. 한 교회는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세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세와 또 산헤드린이라는 위대한 조직과 정권을 배후로 하며 훌륭한 성전과 의례와 의식들을 가지고 있는 교회였고, 다른 한 교회는 교회의 총회도, 총 지도자도, 그렇다 할 조직과 배후도 없는, 다만 성령의 능력과 역사하심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보잘것없는 교회였다. 그렇다면 이 두 교회 중에 어떤 것이 참 교회였는가? 하나님께서 어떤 교회를 사용하셔서 그분의 뜻을 펴시고 진리를 전파하셨는가?

 

3) 스데반의 참 교회의 개념 – “손으로 짓지 않은 성소”

산헤드린 앞에 끌려간 스데반은 영적으로 눈이 먼 유대 제사장들과 관원들을 깨우치고 싶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스데반이 참람 되다는 비난에 답하려고 재판관들과 마주 섰을 때, 그의 얼굴에는 거룩한 빛이 비치었고,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스데반의 얼굴의 빛을 바라본 많은 사람들은 떨면서 얼굴을 가렸지만, 지도자들과 관원들의 완고한 불신과 편견은 흔들리지 않았다. 스데반은 그가 믿는 진리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에 맑고 감격에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의 변호를 시작하였고 그 음성은 온 공회당에 울려 퍼졌다. 사도행전 7장 2절에서 53절까지는 스데반이 순교하기 바로 전에 그가 믿고 주장했던 진리에 대한 마지막 증언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었는가?

 

스데반은 먼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대 민족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의 증언을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불러내어 그와 언약을 맺으시고 그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셔서 인도하신 역사, 그리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놀라운 역사를 열거하였다. 그다음 그들이 그렇게 위대하게 추앙하며 믿고 있는 모세가 했던 예언,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리라”던 예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사실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또 그들이 이 땅에 강림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예언된 메시아를 거절하고 못 박아 죽인 큰 죄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증언에서 가장 핵심 되는 주제, 참 교회에 대한 개념을 예리하게 피력하였는데, 결국 그 증언과 지적은 그들을 분노하게 하여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하였다. 그 마지막 핵심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굳게 믿고 의지하고 주장하던 그들의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성전과 교회와 조직은 더 이상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참 교회가 아니며,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아와 그분이 전하는 진리를 유대인들이 거절했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지은 성소”에 더 이상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요지였다. 즉, 스데반은 유대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신뢰하던 그들의 율법과 규례와 의식과 성전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하나님께서 더 이상 유대 백성과 함께하실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하며, 그들이 유대 나라의 마지막 은혜의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구원의 복음을 인간의 유전으로 뒤틀고 왜곡시켜,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받는 백성들과 함께 헛된 형식주의에 빠져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다. 그들의 영적 어두움은 너무 심해서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오랜 세월을 통해 예언되고 표상되어 온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못 박아 죽일 정도까지 되었다. 그들이 헛된 구원의 망상 속에 빠져 자랑하고 의지하던 성전은 그들의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으며, 머지않아 그들의 눈앞에서 그것이 초토화되고 파괴될 것이었다. 그들은 눈앞에서 파괴되어 없어져 버릴 교회를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에게서 구원을 바라며,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임재를 지닌 산 성소가 되어야 했다. 이제 스데반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스데반이 죽으면서까지 역설한 참 교회의 개념은 오늘날 맹목적으로 교회의 권위와 가르침에 맹종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에 순종함과 하나님과 산 관계를 맺고 있음에 관계없이,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고, 교회의 녹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교회와 연관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구원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현 기독교인들의 교회관은 매우 위험한 사상이다. 성경이 가리키는 참 교회에 대한 개념은 보편적인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관과 사뭇 다르다. 성경이 참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은 단체나 조직이나 건물이 아니다. 참 교회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여자의 남은 무리로서, 영혼의 성전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고 있는 각 개인이 참 성소이다. 스데반은 성령의 역사로 그 위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 당시에 인간의 안목으로는 전혀 받아들여지기 불가능한 진리를 역설했던 스데반은, 교회나 성전이나 조직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 교회의 조건이 아니고, 그 가운데 있는 진리와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만이 참 교회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증언하다가 위대하게 생을 마감하는 순교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