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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_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기름을 준비한다”

 

예수님께서는 재림과 세상 끝에 있을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신 후,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의 자세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 첫 번째 비유,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예수님의 열 처녀의 비유 이야기는 흥미로운 전개 속에 깊고도 심오한 교훈을 담고 있는데, 특히 재림이 가까운 시간에 살고 있는 마지막 그리스도인들에게 강한 경종을 주고 있다.

 

1) 열 처녀와 깨어 기다리는 자

 

불이 켜진 등잔과 기름을 담은 작은 병을 가지고 신랑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이 지체하자 피곤해서 잠이 들고 말았다. 갑자기 한밤중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은 황급히 깨어 일어났다. 열 처녀는 등을 들고 나갈 채비를 차렸다. 그런데 기름을 채우는 일을 등한히 했던 다섯 처녀의 등잔의 불이 꺼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신랑의 오심이 그렇게 오래 지체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비상사태를 위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절박해진 그들은 기름을 꾸어달라고 사정을 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등잔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의 행렬과 함께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혼인 잔치의 문은 닫혀 버렸다. 돌아와 문을 두드리는 미련한 처녀들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주인의 말과 함께 문밖 캄캄한 거리에 버려지고 말았다.

 

신랑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두 종류의 처녀는 주님을 기다리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을 처녀라고 부른 것은 저희가 순결한 신앙을 지킨다고 공언하기 때문이다.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기름은 무엇을 표상하는가? 기름은 성령을 표상한다(행 10:38, 눅 4:18 참조).


비유 가운데 신랑을 맞기 위해 나갔던 열 처녀는 모두 다 등잔과 기름 담을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고,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화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을 기다리는 처음 얼마 동안은 그들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볼 수 없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이와 같다. 모든 사람이 다 성경의 지식을 가지 있고 그분이 오실 것을 확신하며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 동안 마음은 시험을 받는다. 그리고 그 시험으로 인해 재림을 맞을 준비가 소홀해지고 잠에 빠지게 된다. 그 시험이란 무엇이며, 우리를 잠에 빠지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재림의 지연과 감정의 고조

열 처녀의 비유는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라고 하여 신랑이 오는 일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지체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재림의 지연을 여기에 살짝 덧붙이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짧은 문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유추해 볼 수 있는가?
왜 신랑이 더디 오는가? 왜 기다리는 자들이 조는가? 혹자는 여기서 문장 앞뒤의 맥락을 보아 슬기로운 처녀들은 졸았고, 미련한 처녀들은 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잤다고 해석한다. 아무튼 신랑은 그들의 기대만큼 빠르게 오지 않았음이 분명하고 그들은 지쳐서 다 졸든지 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처음부터 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계속 그들의 옷매무새를 고치고 등잔의 불과 심지를 다듬으면서 신랑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신랑의 오심은 지체되었고, 그 지연되는 시간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참된 동기와 상태를 드러내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 중에 종말론적인 사상에 치우치는 사람들이 있다. 종말론 사상에 빠진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은 감정의 흥분 상태와 충동적인 감정의 발로이다. 그들의 시각과 신앙의 동기는 자주 재림의 시기와 보상에만 맞춰져 있다. 그것은 시대의 어떤 징조나 현상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매우 불안정하고 얕은 감정적인 신앙이다. 그들은 마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돌밭 같은 마음의 소유자들로서, 처음에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메시지와 징조를 볼 때에 흥분으로 감정이 고조되고 충동적으로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보여주고 버려야 할 것들을 지적할 때에, 진리의 메시지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우상들을 버리고 굴복하는 일을 게을리하게 된다. 그리하여 참된 거듭남이나 성품 변화에 주력하기보다는 더 흥분적이고 더 자극적인 시대의 징조나 예언의 성취만을 요구하게 된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때이다. 세상의 말세의 예언 성취가 우리에게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때와 징조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안 된다. 때의 멀고 가까움에 상관없이 주님을 향한 우리의 충성과 재림에 대한 준비는 변함없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2.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사람들이 재림을 기다리다가 피곤해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생활의 염려이다. 재림의 지연과 기다리는 동안에 겪게 되는 많은 시련 때문에 낙심하는 사람들은 눈을 세상에 돌리게 되고 깨어 있는 일을 중단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이생의 염려로 지치고 재물의 유혹에 기만당해 깨어 기다리는 위치에서 떠나 졸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염려에 취해 깨어 기다리는 일에서 이탈하거나 세상의 번영에 눈멀게 되는 일이 없도록 경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깨어 기다림으로 세상과 분리된 것을 나타내야 한다. 깨어 기다리는 것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서 참으로 순례자며 나그네라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보화를 얻기 위해 열성을 내고 야망을 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깨어 기다리는 열렬한 모습으로 그들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2) 미련한 처녀

 

깨어 기다리는 사람은 기름을 준비한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을 가졌지만 기름 그릇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씀을 알고 있었지만 성령이 결핍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은 말씀을 머리로 알기는 하지만 성령의 부재로 말씀을 행하거나 말씀대로 순종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성령의 감화가 없는 진리의 이론만으로는 사람의 심령을 깨우치고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가 비록 성경의 말씀과 약속들에 정통하다 해도 하나님의 영이 진리를 깊이 깨닫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의 품성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차이는 그것이었다. 똑같이 말씀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무리는 성령의 역사 속에서 그 말씀으로 변화되었고, 한 무리는 말씀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을 뿐 그 말씀대로 변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등잔은 불을 밝힐 수 없었다. 미련한 처녀들은 진리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또 진리를 믿는 사람들에게 매혹되었지만, 진리가 요구하는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반석 되시는 예수님 위에 떨어져 저희의 옛 성질을 깨뜨리지 않았다. 처음에 말씀이 좋아서 주저하지 않고 받았지만 그 말씀의 원칙을 실천하지 않았다. 그 말씀의 감화력은 순간적일 뿐이었다.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사람들은 단지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행위만으로 만족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깊이 연구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지도 않으므로 그들의 신앙은 외적인 신앙에 그치고 그 신앙은 점점 형식화되었다. 그들이 자신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그들의 부족을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가서 그것을 채워 달라고 간청할 때는 너무 늦을 것이다. 영적인 은혜와 성령의 역사에 있어서는 아무도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충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품성은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믿을 수 없고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성령을 받을 수 없으며, 더욱이 성령 역사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품성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품성은 위기의 때에 나타난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리고 졸던 처녀들이 잠을 깨었을 때에 누가 준비되었는지 알게 된 것처럼, 심판이 갑자기 임할 때에, 뜻밖의 재난이나 죽음에 직면하게 될 때에, 어떤 위급한 사태가 생길 때에 과연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준비되었는가 드러날 것이다. 머지않아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최후의 큰 시련이 임하게 될 것인데 그때 가서 심령의 부족을 채우기에는 너무 늦게 될 것이다.

 

3) 먼저 기름을 받아야 빛을 비춘다.

 

열 처녀로 표상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재림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중 다섯은 준비되지 않았다. 우리는 “보라 신랑이로다”라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깨어나 텅 빈 기름병에 기름을 넣으려고 하는 방법으로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없다. 그 기름은 지금 준비해야 한다. 비유를 보면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릇에 기름을 담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등불은 기다리던 그 밤 동안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환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신랑이 온 때는 가장 캄캄한 때, 한밤중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재림도 이 지상 역사의 가장 캄캄한 시대에 있을 것이다. 깨어서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은 성령을 통해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을 비춰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며 그것을 받는 자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된다. 그분의 영광의 빛, 그분의 품성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서 비쳐 나오게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는 성령이 필요하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출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도 자기가 받지 못한 것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위한 빛의 전달자가 될 수 없다. 스가랴 4장의 상징에 나오듯이, 등대가 끊임없이 밝은 빛을 내는 것은 하늘의 사자들이 금 그릇에 있는 금 기름을 금관을 통해 성소의 등잔에 넣어 주기 때문이다. 빛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성령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합된 모든 사람 속에는 사랑의 금 기름이 끊임없이 부어져서 그 사랑의 빛이 진실된 행동을 통해 반사하게 된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증거는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사실로 증명될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기름을 공급해주실 때, 우리는 완전한 평화와 사랑의 빛을 반영하게 된다. 생활 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과 향기로 우리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된다. 성령의 금 기름을 매일 공급받는 경험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등잔을 불타게 하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 비치게 하는 성령의 기름이 매일 우리 속에 부어지도록 하자. 그것이 깨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