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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회사_ 신성로마제국의 몰락과 왈덴스인들의 공헌


종교개혁이 서유럽에 있는 나라들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되돌려 주었다. 또한 프랑스의 혁명군은 유럽 대륙의 나라들을 옛 로마 카톨릭 제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했다. 인류에게는 완전한 자유와 함께 학문과 과학을 연구할 수 있는 전례 없이 좋은 환경이 주어졌다. 이제 그들은 성취된 예언의 빛 가운데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믿고 그 뜻대로 살고 있음을 온 우주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맞았다. 미국은 헌법에 완전한 종교자유를 명시한 첫 번째 국가였다. 대영제국과 다른 몇몇 국가들도 그들의 헌법에 종교에 대한 관용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국교회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그 국민에게 법적인 권리로서의 완전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프랑스에서 평민들이 봉기하여 귀족들과 성직자들의 전제적 통치를 붕괴시켰다. 그들은 또한 미국의 권리장전을 본떠서 프랑스뿐 아니라 혁명군이 가는 모든 지역에 종교의 자유를 선포했다. 이 혁명은 프랑스군이 로마에 입성해서 교황을 감옥에 가두고, 추기경단을 해산시키고, 로마 시내에 있는 일곱 언덕 중에 가장 유명한 카피톨린 힐에서 종교 자유를 선포한 1789년 5월에 이르러서 그 절정에 달하였다. 바로 이때가 역사에서 1260년의 기간이 끝나는 때였다.

옛 제도를 무너뜨리는 일이 계속되었다. 전쟁의 천재인 나폴레옹은 스스로 프랑스 혁명군의 우두머리가 되어 샤를마뉴와 교황 사이에 맺어진 불법적 연합에 의해 세워진 모든 것을 유럽 대륙 전반에 걸쳐서 다 제거하였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은 1804년에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숨이 끊어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1801년에 프랑스를 위해서 교황과 화친조약을 맺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전승 장군은 교황권에게 이전 왕들에 의해 부여되었던 것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거절했다. 그는 천주교회를 단지 프랑스 사람의 다수가 믿는 종교로만 인정했다. 비록 나폴레옹이 교황권을 여러 다른 면으로도 인정하긴 했어도 이 모든 것은 외교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시도였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카톨릭의 무시무시한 폭정에 시달리던 서방 세계를 그 폭정에서 해방한 일에 대해서 우리는 누구에게 그 찬양을 돌려야 하는 것일까? 그 찬양은 그 어떤 정복자의 칼이 아닌 여러 세기에 걸쳐서 자유와 진리와 성경을 위하여 고난과 피 흘림과 죽임을 당한 광야교회에게 돌려져야만 한다. 이 순교자들의 모본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땅의 법률에 의해 자유가 보장될 때까지 폭정에 맞서서 항거할 수 있는 정신을 심어주었다.

이처럼 콜룸바누스와 그의 후계자들의 정신과 힘이 자유의 정신과 함께 섞여서 켈트족과 고트족과 롬바르드족의 후손들 속에 그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 정신과 힘은 또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한 왕들의 마음속에서 점차로 강해져 갔다. 하지만 암흑시대의 어두운 그늘들을 모두 걷어내고 성서적 기독교를 회복하는 일에 왈덴스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는 유럽의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또한, 근동과 인도와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광야교회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