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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_메시아닉 쥬와 대체신학

1.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
본래 메시아닉쥬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유대인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요즘 회자되는 메시아닉쥬는 실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는 상관없는 하나의 교파와 같은 개념으로 현대기독교인들에게 접근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특별히 한국 메시아닉 쥬는 기독교가 유대주의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헬라철학의 오류 위에 세워진 대체신학이라고 언급하며 토라(모세 5경)와 육적 이스라엘의 회복이 성경에 예언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현재 이스라엘 국가가 2,000년 만에 다시 세워지고 또한 이스라엘에서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는 제3성전을 짓기 위한 움직임 등이 그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것이 회복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절기를 지키며 동물희생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실 메시아닉쥬라는 이름보다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절기파” 또는 토라에 언급된 실제적 실천을 주장하기 때문에 “토라파”라고 해야 더 합당한 이름일 것이다.
과연 눈에 보이는 육적 이스라엘의 회복과 토라의 모든 율법(절기와 동물희생제사 등)이 회복되는 것이 성경에 예언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일까? 이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초대교회 당시도 이런 유대주의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러한 주장을 다른 복음이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거짓교사라 하여 사도들과 바울이 신랄하게 경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갈 1:6) 이스라엘에 대한 잘못된 개념 때문에 육적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세대주의 핵심이다.

2. 대체신학
예수님은 혈통적 유대인들에 대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는 마지막 예언을 하셨고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국가적/선민적 유대인들의 운명도 이것으로 끝이 났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열방으로의 흩어짐)는 성경의 예언대로였지만 1948년 육적 이스라엘이 독립한 것은 결코 성경의 예언과는 무관한 것이다. 성경에는 그런 예언이 없다. 이스라엘 국민들도 이제는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있어도 선민으로서의 지위는 서기 70년에 끝났고 그 자리에는 열매를 맺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이방인 교회가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메시아닉 쥬는 대체신학이라고 폄하하는데 이것은 성경의 말씀과 예언을 크게 곡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신약성경은 혈통적/국가적 유대인이 아닌 영적 이스라엘 백성의 출현과 사역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 부활승천 이후 초대교회가 새로이 조직되기 시작했는데 이들 구성원들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열매맺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사도바울은 그들을 새로운 영적이스라엘로 보고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만일 메시아닉 쥬의 주장대로 교회의 자리에 유대인들이 사라지고 이방인들이 새로운 언약백성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 대체신학이라 한다면 대체신학의 창시자는 바로 예수님과 사도바울이 될 것이다.
한국 메시아닉 쥬는 또한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의 회복에 대한 예언을 1948년 이스라엘 독립에 연관지어 설명하는데, 이것은 성경의 해석의 원칙을 잘못 적용한 결과이다. 성경의 예언을 구분하는 데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첫째는 역사적(문자적) 해석이요, 둘째는 묵시적(상징적) 예언해석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바벨론 포로 70년, 애굽의 노예 400년 이런 예언들은 역사적(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들이고 다니엘서와 계시록에 있는 대부분의 예언들은 묵시적(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다니엘서 내에서도 느부갓네살의 일곱 때 등은 역사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 문맥이 실제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적이냐 묵시적이냐를 구분 짓는 것은 예언을 해석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가 된다.

에스겔 37장 마른뼈의 환상도 역사적(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문맥자체가 그것을 당시 실제적 사건에 대한 예언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겔이 예언하던 당시의 북방 이스라엘은 이미 100년 전에 사라졌으며 남방 유다의 멸망은 신속히 다가오는 때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마른 뼈들에 대한 이상은 소망 없어 보이는 유다가 바벨론 포로 이후에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생활은 70년만 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듯이, 에스겔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번영할 때 배우기를 등한히 했던 하나님의 교훈을 역경가운데서 배우도록 허락하셨음을 선포하는 예언이었다. 이것을 저 멀리 2500여년이 지난 이스라엘 독립으로 해석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스라엘 회복에 관한 말씀들을 여기서 모두 열거 할 수 없지만 1948년 회복의 예언이 아니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그리고 소선지서등 모든 회복 예언은 바벨론에서 돌아 올 것이라는 예언이다.


3. 절기와 동물희생제사가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인가?
한국 메시아닉 쥬들은 사도들과 초대교회도 절기를 지키고 동물희생제사를 드렸다고 하면서 토라의 모든 율법이 회복되는 것이 성경에 예언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사도들과 초대교회도 절기를 지키고 동물희생제사를 드렸는지 성경으로 확인해 보자.
1)초대교회도 절기를 지켰다는 성경구절에 대하여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8)
이 말씀은 바울이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유월절 날짜와 규례대로 정확히 유월절을 지키자고 말씀한 내용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희생양의 실체로써 우리를 위해 완전한 속죄제사를 치루셨으니 죄악의 누룩들을 버리고 순전한 마음과 정신으로 무교절의 영적의미를 지키자는 말씀이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성력 1월(니산월) 14일 곧 유월절을 그리스도의 수난 기념과 무교절의 영적 의미를(고전 5:6~8) 새 언약에 연관시켜 오랫동안 준수해 왔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절기를 폐하셨기 때문에(엡 2:15, 골 2:14) 새로이 제정된 성찬예식으로써 지켜졌던 것이지(고전 11:23~26) 당시 유대인들과 똑같이 토라에 근거한 유대의 명절로써 희생제사를 드리며 지켜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외의 다른 절기들 역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시고 이루신 표상적 제도였다는 것이 깨달아 지면서 점차 초대교회에서는 절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이들(메시아닉 쥬, 안상홍 증인회 등)의 관점에서는 초대교회가 여전히 절기를 지켰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2)예루살렘 총회 (AD 49년경)_
바울과 바나바는 2년 동안 1차전도 여행 중에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널리 가르쳤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 15:1)하여 그들의 기쁨과 신앙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들이 교회를 소란하게 했으므로 바울과 저들 사이에 많은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고(15:1~6). 안디옥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택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장로들에게 파견하기로 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시 총회를 소집했는데, 이것이 AD 49년경에 열렸던 예루살렘 총회이다.
사도들의 전도로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에게 유대교의 의문에 속한 여러가지 규례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교리적인 문제들이 다루어 졌다. 그때 유대주의 거짓교사들은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절기와 제사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행15:5) 그런 주장에 대하여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의식적인 율법인 할례문제는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15:7) 폐지하기로 결의하였고(15:19~21), 또한 베드로가 이방인들을 전도했던 자기의 경험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모세의 율법)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5:10) 할례나 절기 혹은 제사제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 믿노라 하니라”(15:11). 그래서 총회의 의장인 야고보가 마지막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15:19,20).
이러한 사도행전의 역사적 기록과 사도들의 증언들을 통해서라도 메시아닉 쥬의 주장 “사도들과 초대교회는 절기와 제사를 지냈다”는 주장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오히려 사도들은 이러한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었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행15:24) 당시 모세의 율법(절기와 희생제사)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을 사도들은 마음을 혹하게 하는 자들이라 표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3)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 폐지됨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5)
‘의문’이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도그마’인데 ‘법령’‘교리’라는 뜻이다. 이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하는 제사제도에 관한 법령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 폐지될 수밖에 없었다. 제사를 드리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았던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찢어지면서 성소에서 드려지던 모든 제사제도는 끝났고 제사와 관련된 율법도 폐지되었다.

4) 의문에 쓴 증서가 도말됨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들)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4,16)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소에서 유지되어야 할 의식의 형식에 대한 율법을 주셨는데, 모세는 이 의식 율법을 책에 기록하였다. 이 희생제도에 관한 의식 율법을 신약 성경에서는 의문의 율법 (ceremonial law)이라고 부르는데, 십자가에서 폐지된 율법은 바로 이 의식 율법을 뜻한다. 구약시대의 성소에서 이루어졌던 동물의 희생제도에 대해서 기록한 의문의 율법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서 제사 제도의 목적과 그 완전한 의미가 실현될 때까지만 존재하도록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 실체가 오셔서 희생제물이 되셨으므로 더 이상 표상적으로 양을 잡아 죽이는 희생제도가 불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의문의 율법을 그리스도께서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다고 기록하였던 것이다(골 2:14). 골 2:14~17까지의 전체 내용을 읽어보면, 여기에 나오는 “의문에 쓴 증서”는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절기안식일들(sabbaths)”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절기 제도의 의식 율법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

5) 예언된 의문의 율법의 폐지
다니엘 9장 예언 속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지상의 성소제도가 폐지될 것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였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7)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지상 성소에서 행하여졌던 동물의 희생제도가 그 종말을 고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제사 제도의 종말을 알리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소 안의 휘장을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두 조각으로 찢어지는 놀라운 사건을 일으키셨다(마 27:50,51, 막 15:37~38, 눅 23:45~46).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으로써, 더 이상 동물의 피가 흘려질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로서 새로운 언약을 인치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모세가 제사 의식에 대해서 기록한 증서인 의문의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 마지막 때 왜 절기와 희생제사들 드려야 한다는 다른 복음이 또 다시 등장하는가?
마지막 성경 예언의 성취는 짐승의 표 환란에 초점 맞추어져 있다. 이 환란에서 살아남는 자들을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12)라고 기록해 두고 있다. 선지자들과 그리스도는 헛된 의식에만 사로잡혀 형식적 종교의 나락으로 떨어진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셨고 사도들 역시 새로운 언약백성으로 선민의 지위를 얻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의 정신에 맞는 성품의 열매를 맺을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원의 대주제가 마지막 때 짐승의 표 환란 시에도 적용이 되어 이 마지막 때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품성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계시록은 예언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사탄은 또 다시 초대교회 때 그랬던 것처럼 그의 기만을 펼치면서 믿음과 성품이 아니라 여러가지 의식들을 지키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구원이라고 속이고 있다. 우리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어떤 의식들과 행위제사들을 통하여 마음의 평안을 누리려는 경향들이 있다. 사탄은 우리의 이러한 연약성을 충돌질하면서 그러한 의식과 행위들을 통하여 거짓평안 가운데 우리를 잠들게 하려고 노력한다. 참된 변화와 거듭남을 통하여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생애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러한 유혹과 헛된 가르침에 쉽게 마음을 열고 멸망의 다른 복음을 좇아가게 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늘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오직 마음에 의로운 성품의 옷을 입은 자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으며 돌아다니는 이 때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메시지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지 인간의 헛된 철학과 거짓 가르침인 다른 복음이어서는 안될 것임을 항시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