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2

기독교회사_앵글로색슨족의 사도 아이단(Aidan)

잉글랜드의 야만족들에게 기독교 문화의 복음을 처음으로 전해준 것은 켄터베리의 어거스틴이 아닌 일곱 왕국의 골짜기마다 흩어져 살고 있던 신실한 아일랜드의 켈트 사람들이었다. 여기에는 아이단, 피난, 콜만, 맬둡, 디우마 같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켈트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보내진 사도들은 아일랜드의 패트릭, 스코틀랜드의 콜룸바, 웨일스의 디누트였다.

앵글로색슨족에게 보내진 사도는 콜룸바의 켈트 학교 생도였던 아이단이었다. 앵글로색슨족이 점령한 후 약 200년 후 아이단과 사도적 교회는 그 이교도들의 ⅔를 복음으로 정복했다. 아이단이 그의 사역을 시작한 곳은 북동쪽을 차지하고 있던 노섬브리아였다.

“우리는 한때 칼레도니아 지방의 조명등이었던 바로 그 유명한 섬을 걷고 있었다. 그곳은 야만적이고 미개한 종족들에게 지식의 혜택과 종교의 복을 나누어 준 곳이었다.”
Boswell, The Life of Samuel Johnson, vol. 3, p. 147, note.

아이단의 성품과 그가 받은 교육

1. 아이단이 교육받은 이오나 대학은 설비를 잘 갖춘 곳으로 발전하였고 당시 그 대학의 강사들은 모두 저명한 학자들이었다.
2. 이곳의 게스트 룸은 북쪽의 섬과 남쪽의 성지와 세상의 먼 곳에서 온 항해자들로 채워졌는데 그들부터 열심히 지식을 습득했다.
3. 당시에 그는 이교도 땅인 잉글랜드의 일곱 왕국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Fitzpatrick, Ireland and the Foundations of Europe, pp. 26, 154.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 아이단
첫 번째 사건 – 아이단이 부름 받은 배경
복음 전도자를 한 사람 보내달라는 노섬브리아의 왕 오스왈드의 요구에 이오나의 위원회는 생도 중 출중한 한 명을 선택해 보냈는데, 이 생도는 열 정탐꾼처럼 그 흉포한 민족과 장애물들에 관해 불평하면서 즉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위원회는 다른 한 학생을 선택했는데, 그는 앵글로색슨족을 구원하는 일에는 사랑과 온순함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인물인 젊은 아이단이었다.

두 번째 사건 – 노섬브리아 왕 오스왈드의 이력
오스왈드는 청년 시절 초기에 자기 백성이 브리튼인들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게 되었다. 로마교의 폴리누스에 의한 외형뿐인 기독교(천주교)로 자기 아버지가 개종하는 것을 목격했다. 아버지가 죽고 노섬브리아인들이 우상숭배로 빠져든 후 오스왈드는 이오나로 피난하여 살았다. 그 후 백성들이 원하여 다시 돌아가 왕좌에 앉자, 자기 백성들이 콜룸바의 방식을 따르기를 바랐다.

아이단의 선교사역에 관한 교황권 옹호자 린가르트의 기록
“그는 감독의 직분을 받자마자 오스왈드의 왕궁으로 갔다. 모든 사람이 기쁘게 그를 맞이하였으며, 왕은 기꺼운 마음으로 그 선교사가 자신의 모국어로 가르치는 모든 것을 색슨어로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단의 성공은 그의 설교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의 덕행 또한 설교 못지않게 그의 성공의 큰 요인이 되었다. 그는 혹독한 고행, 부에 대한 뿌리 깊은 경멸, 그리고 자신의 의무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한편, 논증들을 통해서는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매일매일 개종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였다. 이렇게 해서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노섬브리아 교회가 불변의 견고한 기초 위에 서게 되었다.”
Lingard, The Antiquities of the Anglo-Saxon Church, vol. 1, pp. 27, 28.

균형 잡힌 품성을 소유한 아이단
“그의 가르침에 있어서 가장 칭찬할만한 부분은 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가 가르치는 바대로 생활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얻으려고 노력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세상의 왕들이나 부유한 사람들에게서 무엇이든지 받으면 그것들을 즉시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즐겨 행하였다. 그는 급한 용무가 있지 않은 한 도회지나 시골을 막론하고 말을 타지 않고 늘 걸어서 다녔다. 그는 이같이 걸어 다니면서 누구를 만나든지,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들이 불신자일 경우에는 그들에게 믿음의 비밀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였다. 만난 사람이 신자면 그는 그들에게 더욱 강한 믿음을 소유할 것과 말과 행동을 통하여 구제와 선행에 더욱 힘쓸 것을 권유하였다.”
베더(Bede), Ecclesiastical History of England, b. 3, ch.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