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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_일상에서 계속되는 영적 침례

 

침례는 영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일상에서 반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죽음과 부활의 반복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앙생활 속에서 영적인 죽음과 영적인 부활이 매일 매 순간 이어지는 것이다. 매 순간의 선택에 의해 하루의 승리와 실패가 좌우되고, 그 과정에서는 끊임없이 영적 죽음과 부활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단의 시험과 유혹을 만난다. 그때 마음속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지금껏 싸운 싸움 중에서 자아와의 싸움이 가장 치열하다. 사단은 육신의 자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좋은 뜻대로 행하도록 부추기지만 성령께서는 자아를 굴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을 호소하신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편을 택하면 사단과 악을 물리치게 된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갈등과 투쟁이 일어나는 그 순간,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고 주님의 편을 선택하는 그 순간에, 우리의 육적인 자아의 포기와 죽음이 일어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삶의 부활이 열린다.

그러므로 침례가 비록 한 번의 예식으로 끝나지만, 영적 의미에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침례 예식처럼 그 죄의 장사지냄과 육적인 자아의 죽음, 그리고 새 삶의 시작과 영적인 부활은 일상생활에서 매 순간 반복되는 것이다. 영적 침례의 반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에서의 영적 침례의 반복이 바로 우리가 걷는 성화의 길이며, 영적 성장의 과정인 것이다.

1) 침례 후에 오는 시험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침례를 받는다고 영적 생활의 걸음걸이에서 갑자기 점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격정적이거나 감격스러운 환희의 감정이 잦아들면 자신의 신앙이 열렬해지지 않고 식은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신앙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신앙은 삶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변치 않는 믿음이다. 어찌 보면 더 바르고 굳건한 신앙은 환희에 들뜬 감정이라기보다는 매일의 생활에서 바르고 선한 의도 속에서 행동하며,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은혜로 부드럽게 인도하며, 친절과 온유로 대하고, 사랑과 동정을 보이는 것이 더 훌륭한 신앙이다. 침례를 통해 공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선포할 때에 사단과 그의 부하들이 분노하여 시험으로 공격할 수 있다. 흔히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로 시험받으시러 가셨다는 성경의 기록 때문에 침례를 받은 후에는 시험이 온다는 말이 정석인양 회자되고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만일 어떤 사람들이 침례 후에 시험을 받게 되는 경우, 그 이유를 굳이 살펴본다면, 그것은 영적인 교만이나 방심, 또는 영적 미성숙 때문임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침례를 통해 자신의 신앙이 이전보다 일취월장하고 믿을 만한 것이라는 자만에 빠지거나, 자신이 한 헌신의 서약에 만족하고 의기양양해져서 이제 자신의 신앙이 스스로 힘으로도 넉넉히 설 수 있을 만한 것이라는 영적 교만에 빠질 경우 시험에 들 수 있다. 또는 침례 시에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감정의 변화와 감격을 맛보다가, 침례 후에 그런 감정이 사라지고 난 후 자신의 생활에서 침례 전이나 후의 그리 큰 변화나 차이를 발견하지 못할 때에 느끼는 실망감이나 영적 미성숙에서 시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기억해야 할 것은 침례는 이제 겨우 첫 발걸음을 떼는 시작이므로 주님을 시야에서 절대로 놓치지 말고 늘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발걸음을 함께 옮겨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만일 침례 후에 더욱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산다면 시험은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2) 침례 후 밟는 성장 계단

하나님의 영적 왕국에 들어가는 표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중단 없는 영적 성장의 과정으로 들어가야 한다. 영적 죽음을 거치고 새로운 부활로 태어난 사람은 이제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 안에서 쉬임없이 자라나야 하며, 그래야 영적 생명이 보존될 수 있다.
베드로 후서 1장에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성장 계단이 잘 나타나 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 밟아야 할 계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주신 보배로운 약속으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어떠해야 하는가 알려준다. 그리스도인이 밟아야 할 성장의 계단, 그리스도인이 올라가야 할 사다리라고 불리는 대표적 구절이 이 장에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 1:4~7).
이 구절은 침례 후에 걸어야 하는 성화의 길, 성장의 단계들을 얼마나 자세하게 지시해주고 있는가! 이 구절을 읽어보면 “이제는 다 이르렀다”고 멈출 만한 곳이 없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단계마다 계속적인 진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한 덕목을 완성하고 난 후에야 다른 덕목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성품의 덕성들은 예수님의 사랑의 샘으로부터 계속해서 영양 공급을 받아서 함께 자라나야 하는 것들이다. 이 성품의 특성들을 이루는 데는 계속적인 진보만 있는데, 예를 들어 “믿음”의 열매를 맺는다고 가정해 보자. 거기에는 “믿음”을 다 이루었다고 말할 지점이 없는데, 그 이유는 믿음이 한 번에 완성을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믿음을 키우면 그다음 단계에는 더 깊고 단단한 믿음을 이루는 과정이 오고, 그다음에는 더 큰 믿음, 그렇게 하여 나중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엄청난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의 성품의 특징인 믿음이나 덕이나 인내나 경건 같은 성품의 열매들은 영적으로 성장하면 할수록 더 질이 좋아지고 용량이 커지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걷기를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생애에서 이 아름다운 품성의 열매들을 맺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매일의 삶에서 이 복된 속성들을 이루어 낼 수가 있다. 이것들은 주님과 함께 걷는 생애 속에서만 맺어지는 열매들이다.

3) 휴식이 없는 성장과 전쟁

영적 자라남에는 중단이나 휴식이 있을 수 없다. 성장을 멈춘다는 것은 퇴보를 뜻하며, 퇴보란 곧 그리스도와 함께 걷기를 중단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매일 하늘로부터 생명을 받고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자라나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영적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이 전쟁에는 휴식이 없다. 날마다 우리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룩해야 한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영적 성장 계단을 계속하여 밟아 올라가고 성품의 모든 덕목들을 이루기 위한 능력을 받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은 계속적이고 끈질긴 것이어야 하며, 단호하고 확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우리는 시험이 올 때 그것에 맞서서 저항해야 한다. 자신을 죽이고 주님께 힘을 구하여 시험과 악한 충동과 의도를 이기는 것, 이것이 바로 삶 속에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며 영적 성숙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을 알기에 게으르지 말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말자!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한다면, 또 진리에 대한 충성이 모든 것을 삼킬 만큼 열렬하다면, 매일의 영적 싸움을 싸우며 나아가는 이 길이 힘들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 전쟁을 계속 치를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가!

4)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약속을 믿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바치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품성을 거룩한 모습으로 꼴지어 주셔서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극복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예수님의 생애는 우리에게 좋은 모본이 되고 있다. 주님은 매 순간 하나님 아버지와 교통하시므로 거룩한 하늘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사셨기 때문에, 악의 세력이 그분의 생각에까지라도 침범할 수가 없었다. 우리도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 속에서 지낼 때에 우리의 생각까지라도 순결하고 거룩해질 수 있으며, 그리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데 필요한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데 필요한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고 그 약속을 개인적으로 적용시키는 일이다. 즉, 그 약속을 주장하고 간구함으로써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은 늘 그분이 하신 약속의 배후에 계신다. 보배로운 약속을 주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성품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은혜와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간구하는 사람들이 되자!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매일 주님의 발아래 앉아 거룩한 교사로부터 배우고, 매일 그분의 본성에 참여할 때에 우리는 사단의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명상하고 그분을 닮기 위해 그분의 생애의 조목조목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때 어떻게 하셨을까?”하는 것이 우리의 명상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주님을 바라보면 볼수록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깨닫게 되고, 우리의 연약함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는 그분의 성품을 닮기를 갈망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는 그분의 성품을, 그분의 의를 달라고 부르짖게 될 것이며, 그때에 주님께서는 그분의 성품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 이런 애타는 부르짖음과 간구가 매일 우리 입에서 터져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