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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_지상에서 치르는 혼인 예식, 침례

 

침례는 하나님께 신앙과 믿음을 고백하고 자신을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바치는 엄숙하고 아름다운 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침례를 영적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표로 삼으시고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옛 생애를 청산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공식적으로 증거하는 침례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상징이며, 자신의 생애를 하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권위로 인정을 받기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하는 구별의 표가 됩니다. 침례는 주님과 함께 믿음의 발걸음을 떼는 시작이 됩니다. 침례 속에는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심오한 영적인 의미와 교훈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침례의 참된 의미를 살펴봅니다. – 편집실 -


제 1부: 지상에서 치르는 혼인 예식, 침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함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3, 4).

새로운 탄생! 주님과 함께 떼는 첫 발걸음, 침례! 누구나 침례에 대한 감격스러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마음이 벅차고 뜨거워지며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는 침례 예식…환희와 감사에 차서 하나님을 큰 소리로 찬양하고 싶었던 그 감동의 순간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침례식이 거행될 때 수침자나 그곳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룩한 하늘의 분위기와 감화를 느낀다. 흐르는 눈물과 감동으로 가슴이 그렇게 벅차게 되는 이유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침례식에는 성령께서 특별한 감화로 임재하시며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천사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그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여 함께 감격과 기쁨을 나누기 때문이다.

‘침례’라고 하면 연상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하얀 예복으로 곱게 단장한 신부가 행복에 겨운 미소를 띠며 결혼식장으로 발걸음을 떼는 장면이다. 침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하나가 되는 영적 예식이다. 영원한 하늘의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 전에, 이 지상에서 주님과 산 연합을 이루는 혼인 예식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침례가 우리를 씻거나 그 물이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하는 침례는 결혼 예식과 같이 이전 생애에서 돌이켜 자신의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영히 연합함을 공중 앞에 선포하는 것이다. 함께 침례의 깊은 영적 의미를 되새겨보자.

1) 침례, 그 장사와 부활의 의미

침례는 죽음이다. 침례는 죽는 것이다. 침례는 옛 몸과 옛 생애와 모든 옛 것들을 물속에 장사지내는 것을 상징한다. ‘침례’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바프티조(baptizo)”이다. 이것은 ‘물에 담그다’, ‘물속에 가라앉히다’라는 의미가 있다. 사람이 죽어 장사 지낼 때는 그 주검을 살짝 가려 덮지 않고 완전히 그 대상을 덮어버린다. 그것처럼 침례를 받을 때도 몸이 완전히 물속에 잠기도록 아래로 눕혀진 후에야 물 위로 나오게 한다. 이것은 죽음, 곧 물속에 모든 것을 장사지냄의 상징이다.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세상의 욕심과 정욕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살던 옛 생애, 예전의 삶을 포기하여 물 속에 장사지내고 새로운 몸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고백하며 그 사실을 공중 앞에 선언하는 것이다. 침례는 세상을 엄숙하게 포기하는 예식이다. 죄된 생활과 세상을 버리고 이제는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분을 위해,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대로만 살아가는 정결한 신부가 되겠다고 약속하는 혼인 예식인 것이다.

침례는 또 부활이다. 물 무덤에 옛 자아를 묻어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부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서 장사되신 것같이 물속에 장사되고, 그분의 부활을 본받아 물에서 일으킴을 받는 것을 상징한다. 물에서 일어난 사람은 이제 신랑되신 그리스도와 완전히 합해지고, 앞으로 죄된 생애를 살지 않고 예수 안에서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가겠다는 서원 속에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제 그의 생애는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졌다고 선언된다. 그는 죄에 대해 죽었고, 유전적이며 배양된 죄악으로부터 정결케 된 것이다. 이제 새롭게 일어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첫발을 떼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 3:1~3). 새로운 피조물이 된 기쁨, 새로운 생애로 들어가는 첫걸음을 떼는 행복은 얼마나 큰 것인가!

2) 침례, 주님과 맺는 엄숙한 약속

침례는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 맺어지는 엄숙한 서약이다. 물이 수침자를 덮을 때에 온 하늘이 보는 앞에서 쌍방이 언약을 맺게 된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엄숙한 맹세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이제 이후로 내 생명을 삼위 하나님의 생명에 합치시키고, 육체 가운데 사는 나의 삶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명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삶이 되게 하겠다는 맹세이다. 마치 결혼 서약을 할 때 공중 앞에서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그에게만 충실하겠다고 맹세하듯이, 천사들 앞과 사람들 앞에서 주님께만 마음을 바치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만 살 것을 서약하는 것이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단과 그에 속한 모든 관계를 끊어 버리고, 이제부터 예수님과만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그 새로운 관계 속에서 다시는 자만과 방종하는 삶을 살지 않고 주님만 위하여 살기로 공적으로 선언하며 계약을 맺은 것이다. 침례를 받을 때 우리는 주께서 쓰시는 도구로 바쳐진다. 침례 서약은 많은 뜻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수침자는 세상에 대하여 죽었으며, 이제부터 그는 주님을 위해 살고, 자기에게 맡겨진 모든 역량을 주님을 위해 사용할 것이며,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요, 그 나라의 신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라는 것을 시인한다는 의미이다.

침례는 자기의 인격 전체와 소유 전부를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기를 결심하는 서약이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침례를 통해 진실한 언약을 맺은 사람들을 받으신다. 그분들은 침례식이 있는 곳마다 임재하시고, 세상을 포기하고, 영혼의 전으로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는 수침자들을 가납하신다. 이 수침자들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고 그들의 이름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주님께서는 침례를 받는 사람들이 당신께 진실하겠다고 약속하는 그들의 충성의 서원을 하늘책에 기록하신다. 그들은 스스로 세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왕국의 법을 지킬 것을 선서하며,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유전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부정직한 방법들을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을 걷는다.

3) 침례, 졸업이 아닌 시작

한 가지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사실은, 침례는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졸업이 아니고 다만 그리스도인 생애의 첫걸음을 떼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침례는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생의 시작이다. 첫 발자국을 뗀 다음부터는 성장과 자라남이 필수적이다. 사도바울의 간증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는 고백이 삶 속에서 실제로 체험되어야 한다.
한 가지 주지하고 있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태어난 아기가 갑자기 잘 걸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비틀거리고 쓰러지기도 하고 많은 실패를 거듭하지만, 주님의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인내로써 주님을 따라가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패하거나 쓰러진다고 하여 결코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말자! 쓰러지지 않는 것이 의인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의인이라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 24:16).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어떤 완전을 향해 달려가는 지점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떤 한 부분을 이루고 또 다른 한 분야를 성취하면 그만큼까지의 완전과 완성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떤 지점에 다다르면 완전과 완성을 다 이루었다는 착각과 영적 교만에 빠지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착념해야 할 사실은, 사람이 어떤 공로나 행위나 행적을 쌓는다 해도, 아무리 의로운 생애를 살았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털끝만큼의 의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의는 인간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우리 속에 거할 때에 의가 되는 것이다. 완전한 의는 우리 속에 임재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의 손을 잡을 때에 빠지지 않고 물 위를 잘 걸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매 순간 주님을 놓치지 않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 의를 경험하는 것이며,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던 경험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이루는 좋은 실례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모든 유리한 조건과 기회와 특권을 주셔서 풍부한 그리스도인 경험 가운데 자라나게 하신다. 우리들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배우지는 못한다. 매 계단마다 조금씩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나아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이 되는 것이며, 그 배움이 우리를 더 큰 하늘 학교에 입학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침례는 졸업이 아니고 시작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