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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_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드리는 기도의 응답을 바라면서 기도한다. 그러나 기도가 다 응답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보좌로 상달되어 응답을 받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도 있다. 응답받는 기도와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에 대해 살펴보자.

*응답받는 기도, 받지 못하는 기도

1. 믿음은 응답을 부르고 불신은 응답을 방해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가 아니면 불신하는가에 따라 기도의 응답의 여하가 크게 달라진다. 우리는 기도할 때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만일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다면, 성경의 기록대로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약 1:7)야 한다. 기도할 때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행사할 특권이자 의무인 믿음을 활용하지 않고 믿음이 가져다주는 느낌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느낌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우리가 활용하는 것이며, 유쾌한 느낌과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약속된 축복이 실현되고 느껴지기 전에 그것을 붙잡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께 간구한 후, 그 축복을 틀림없이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그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의 말씀의 약속이 우리의 것이 된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우리가 기도의 응답과 그 축복을 실감하기 전에 이미 그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참 믿음이다. 믿음을 활용해야 할 때는 바로 자신이 믿음이 없음을 느끼게 되는 때, 성령의 결핍을 느낄 때이다. 짙은 검은 구름이 우리의 마음을 뒤덮을 때 산 믿음이 흑암을 꿰뚫고 구름을 흩어버리게 해야 할 때이다. 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된 약속들을 의지하는 것이며,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만이 그 영광스러운 약속들을 주장할 수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많은 사람들이 탄원을 하늘의 보좌에 올린 후에 굳센 믿음으로 그 약속을 붙들어야 하지만 너무도 빨리 주님의 팔에서 떠난다. 주님의 약속들은 확실하므로 우리는 우리가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어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응답을 받는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열렬히 기도하였고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그는 일곱 번 비를 위해 주님 앞에 기도드렸고 드디어 구름이 나타났다. 엘리야의 믿음의 기도는 우리의 모본이 된다. 우리는 신실하고 미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분께서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을 굳게 믿으며 우리의 믿음을 행사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응답을 받는다

우리는 구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분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응답받는 조건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그의 뜻대로”(요일 5:14) 응답을 받았다. 그 잔이 거두어지지 않은 것은 우리를 위해서였다. 우리 또한 그렇게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므로 응답을 받을 수가 있으셨다. 우리는 구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분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해야 하며, 자신의 뜻이나 욕망을 버리고 복종하는 마음으로 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시기 전에 그 모든 내용의 완전한 계획이 그 앞에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실 때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한 걸음 한 걸음씩 계획대로 인도함을 받으셨으며 자신의 뜻대로 한 가지라도 계획에 옮기지 않으셨다. 그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정한 시기에 행동하셨으며, 순복하심으로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셨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그 뜻대로만 행동하시며 사셨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주시기를 세 번 기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것이었다. 바울이 이 응답에 만족하였을까? 바울은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크게 기뻐하고 자랑하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순종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응답을 받는다.


3. 이기심은 응답을 방해한다

이타심은 응답받는 기도의 첫 조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성소에서 배울 수 있다. 분향단의 향은 그리스도의 의의 순결하고 거룩한 특성을 표상하기 때문에 이기적인 목적으로 향을 사용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벌을 받았다. “네가 만들 향은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것이니,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무릇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출 30:37,38). 이 구절의 말씀처럼, 향의 이기적인 사용은 이기적인 기도를 나타낸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이기적인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분에게서 단절시킨다. 욥이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위한 이타적인 기도를 드렸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의 속박을 풀어주셨다. 그가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간절히 열망하였을 때에 그 자신이 오히려 도움을 입었다. 우리는 이기적인 목적과 동기로 기도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사람의 동기와 의도를 다 간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기적인 목적으로 드리는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내 뜻과 내 이기심대로 구하는 기도는 응답을 받지 못할 것이다.


4. 의도적인 불순종은 응답을 방해한다

제사장이 여호와 앞에 향을 드릴 때에, 그는 법궤 쪽을 바라보았다. 법궤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은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이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기도는 결코 의무를 대신할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고 말씀하셨다. 조건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약속만을 내세우고 간구하는 자들은 응답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약속의 성취와 축복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을 권위로 사용하지만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표시가 될만한 일들은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 아버지께서 받아들이실 수 있는 조건을 상실한 채 기도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한다면 그것은 마치 우리가 환전 조건에 맞지 않는 어음을 가지고 주님께 가는 것과 같다. 우리가 그분의 약속을 제시하고 그 약속을 이루시도록 구할 때에 만일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다면, 그런 상태에서 주님께서 그런 못마땅한 요구를 들어주신다면 그분 스스로가 당신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5. 악한 마음은 응답을 방해한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죄를 품는다는 말의 의미는 그것을 포기하기 위하여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은밀한 죄는 그분께 나아가는 길에 장벽이 된다. 우리가 진심으로 기도하려면 죄악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악의적인 태도, 은밀한 죄악, 고질적인 성향, 교만, 욕심, 불결, 나태, 중상, 분노, 미움 등 모든 악의 잡동사니들을 포기하도록 결심하고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한다. 악한 마음과 의도로 드리는 기도는 응답을 받을 수 없다.


6. 용서해야 응답을 받는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 중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구절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확실한 명령을 하셨는데,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6:23,24)고 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친구나 이웃에게 허물이 있으면 우리는 그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 그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구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손해를 입힌 그 형제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우리가 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므로 그의 창조주와 구속자에게 죄를 범한 까닭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대방에게 잘못한 것보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더 크게 잘못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라고 묻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일만 달란트의 빚을 용서한 주인과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형제가 우리에게 죄를 범하거든 우리는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 형제가 우리에게 와서 죄를 자복할 때에 그의 겸비가 너무 부족하다거나 그가 진정으로 자복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일곱 번만 용서할 것이 아니고 일흔 번씩 일곱 번,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하여 주신 숫자만큼 용서해 주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말로 다할 수 없는 빚을 용서받은 자로서 얼마나 큰 수치를 범하는 것인가! 우리가 용서할 때에 우리도 용서를 받고 우리의 기도는 응답을 받을 것이다.


*응답이 지체될 때에

믿음으로 열렬하게 드린 모든 기도는 응답을 받는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자신의 진정한 소원을 아뢴 모든 성도들은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도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응답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 만일 우리가 기도에 즉시 응답을 받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믿음을 굳게 붙들고 불신이 들어오도록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면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확신은 강해야 한다. 어떤 기도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똑같이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고안하지 않았던 방식과 기대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우리에게 그것이 가장 필요로 되는 때에 이르러 올 것이다. 응답이 지체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 있는지 살피며 겸손하게 기다려야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요 16:24)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신뢰하면서 말이다. 하나님은 너무도 지혜로우시므로 실수하지 않으시며, 너무도 선하시므로 정직하게 행하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고 남겨 두지 않으신다. 사람은 실수가 많고 연약하기 때문에 비록 정직한 마음으로 소원을 아뢰었다 해도 언제나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 구하거나, 또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만을 구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 지혜롭고 선하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자신의 유익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의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만일, 우리가 영적 눈을 떠서 하나님의 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것을 아시고 우리가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염원대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손해가 될 것은 아무것도 주시지 않으며, 우리가 구했어도 유익이 되지 않는 것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축복만을 주신다. 때때로 어린 자녀들은 부모에게 자기에게 해가 될 어떤 것을 달라고 조른다. 그럴 때 부모들은 자녀가 원하는 그 해로운 것 대신에 유익하고 건전한 것을 준다. 육신의 부모가 그러한데, 그보다 더한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늘 아버지는 어떠하시겠는가? 그분께서는 진정한 믿음으로 드리는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되, 가장 유익한 것을, 그 기도를 드린 자가 가장 필요로 할 때, 기대를 훨씬 초월한 축복으로 퍼부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많은 약속을 지키시는 데 성실하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하는 꼭 그것을, 우리가 구하는 바로 그 때에 받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비록 기도하는 당시에는 주님께서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증거를 현저하게 느끼거나 볼 수 없을지라도 그분께서는 항상 우리를 그렇게 보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록 주님께서 우리를 만지시는 것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분의 손은 사랑과 긍휼로서 항상 우리를 안찰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다. 연약한 인간은 모든 기도가 응답이 된 후에야 그 사실을 느끼는 때가 종종 있다. 믿음의 눈을 떠서 신실하고 미쁘신 주님을 바라보자! 믿음의 기도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