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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_하나님의 처방

 

그토록 많은 불행과 파멸을 가져오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에 그렇게 심한 고통과 슬픔을 가져오는 죄! 어떻게 그 죄를 그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죄를 그치게 하는 놀라운 처방을 가지고 계신다. 그 처방과 해결책을 함께 생각해 보자.

 

1)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수 있는 조건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궁금해한다. 성경에 나타난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의 예언과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님은 지금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중보하고 계신다. 왜 그분은 성소에서 중보하고 계시는가? 언제 그분은 중보사업을 마치고 우리를 데리러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그분이 하늘 성소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질 때에 하시던 일을 마치시고 이 땅에 오실 것이다. 다니엘의 계시 가운데 한 천사가 이렇게 묻는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일이(죄가) 계속되어야 합니까?” 그 때에 다른 천사가 대답한다.  “성소가 정결케”(단 8:14)될 때까지…”

좀 더 실제적인 예를 들며 이 주제에 다가가 보자. 한 어머니가 마룻바닥을 닦고 있다. 다 닦았을 무렵 그의 꼬마 아들이 흙 발로 뛰어들어와 마루를 더럽혔다. 또 다시 그 어머니는 마루를 닦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딸이 달려와 진흙 발로 또 마룻바닥을 더럽힌다. 그 어머니는 언제쯤 마룻바닥을 닦는 일을 마칠 수 있을까? 그의 자녀들이 계속 마룻바닥을 더럽히는 한 그 일은 끝날 수 없다. 그것처럼, 만일 우리들이 죄를 짓고 용서받고 또 죄를 짓고용서 받는 일을 계속한다면 예수님의 중보사업이 언제 하늘 성소에서 끝나게 되겠는가? 언젠가는 죄짓고 용서받고 또 죄짓고 용서받는 지긋지긋한 죄의 반복과 그분의 고통스런 중보의 사역이 마쳐져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하셔야 한단 말인가? 그분의 백성들이 더 이상 그들의 죄로 영혼의 성소를 더럽히지 않을 때까지…우리의 성품이 하나님의 계명과 온전히 조화를 이룰 때까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들을 그렇게 사랑하시는 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진정한 용서와 회개를 경험하고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을 순종한다. 한편 악인들은 그들의 양심이 너무 무디어지고 성령의 음성을 계속 거절하여 마침내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들은 더 이상 회개하지 않는다. 의인들은 더 이상 죄를 범치 않고, 악인들은 더 이상 회개하지 않으니 예수님께서 중보 하시기 위해 남아 계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때에 온 세상의 은혜의 시간이 마쳐지고 예수님께서 중보사역을 마치시고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2) 죄를 그치게 하는 처방약

어떻게 인간이 죄를 짓는 일을 그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는가?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5~18). 놀라운 말씀이지 않은가?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는 말씀은 더 이상 죄의 용서를 위해 중보 하실 일이 없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그분의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실제적인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우리는 우리의 자녀 딸이나 아들을 절대로 죽일 수 없다. 누가 “왜 당신은 아들을 죽이지 않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예, 제가 아들을 죽이면 살인죄로 감옥에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저는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든지 사형선고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양심적으로 그런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아들이 저를 화나게 할 때마다 제 아들을 죽이지 않을 수 있도록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겠는가? 결코 아니다.

부모가 자신 아들을 죽이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이유에서이다. 내가 내 아들을 죽이지 않고자 노력하기 때문이 아니다. 아니, 내 아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런 생각조차 할 수도 없다. 왜 그런가? 사랑하기 때문에… 내 아들에 대한 사랑의 법이 내 마음에 새겨진 것이다. 내 마음에 기록되어 내가 내 아들을 대할 때마다 아들에 대한 그 사랑이 나를 주관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꿔서 말해보자. 만일 누가 “왜 당신은 살인죄를 짓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예, 그것은 십계명의 여섯째 계명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죄를 지으면 지옥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습니다. 그리고 지옥보다는 하늘나라에 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죄를 안 짓고자 애써 참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법을 지식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다. 그분의 법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두뇌에만 지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죄를 이길 수 있느냐고 묻는가? 하나님을, 예수님을, 죽도록 사랑함으로써이다. 자기의 생명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함으로써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이 우리 마음과 생각에 온전히 기록됨으로써이다. 그 때 우리는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게 될 것이고 그 순종의 결과로 우리의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고 하셨다. 내가 아들을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죽일 수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범죄치 못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법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게 할 수 있을까?

 

3) 마음에 계명이 쓰이게 하려면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는 것을 우리는 새 언약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법이 우리 마음에 기록되게 할 수 있을까? 그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 때에 그분의 사랑의 법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에 기록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에 대한 성경 지식을 아는 것을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모세는 돌비에 쓰인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40일간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모세는 40일간 시내 산에 있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웠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6). 모세는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분의 영광, 즉 그분의 성품을 보게 되었다. 모세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그분의 성품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닮게 되었던 것이다.전능하신 하나님, 그러나 오래 참으시고 자비로우신 자상하신 하나님,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의 법을 돌비에만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모세의 마음과 생각에도 기록하셨던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마음으로,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을 알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될 때까지 그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모세처럼, 에녹처럼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분을 개인적으로 사귀어 알아야 한다. 사귄다는 것은 법적인,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실제적인 마음의 관계이다. 우리는 그분과 법적인 관계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적으로 마음을 나누는 깊은 사귐을 갖고 있는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분의 말씀속에서 그분을 만나야 한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 그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기도를 통해 우리 생각에 그분을 모셔야 한다. 그분을 바라보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을 바라보는 데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있는 것처럼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해 그분을 바라보자! 그분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서 흘러넘쳐 도저히 감출 수 없을 때까지 그분을 바라보자! 그렇게 되면 사도바울의 성경 구절이 우리에게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자. 하나도 남겨놓은 것이 없이 다 드리자. 그래서 그분께서 우리 마음에 그분의 법을 기록하시게 하자. 우리 마음을 다른 것이 점령하지 못하게 하자. 하나님께서만이 차지하시게 하자. 항상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자. 그분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을지언정 죄를 지으므로 그분을 슬프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지 말자. 이것만이 온 우주에서 죄를 없애는 방법이며 그분의 고통을 없애고 속히 죄의 역사가 끝나게 하는 길이다.

 

** 마치면서

죄를 승리하고 이겨야 하는 의무가 여자의 남은 무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옳고 그 법은 지킬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하나님의 증인들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죄를 그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죄를 좋아하면서 어떻게 죄를 그치겠습니까?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 예수님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만 죄를 그칠 것입니다. 죄를 그치게 하는 하나님의 처방은 사랑입니다. 죄를 그치게 하는 하나님의 처방은 죄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가 사랑하는 주님을 그토록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은 죄를 그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죄를 이길 힘을 얻기 위해 주님께 쉬지 않고 기도할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 속에 매일 매 순간 살아가므로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자신이 매일 죽는 경험을 하는 사람, 진정한 거듭남의 경험을 지속하며 사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는 하나님의 법이 기록됩니다. 그 사람은 이미 생각하는 방향과 살아가는 방향이 하나님과 같은 방향이 되어 있고, 성품과 인격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죄를 지으라고 해도 짓지 않을 것입니다. 악한 것이 무엇보다 싫고, 죄의 추악함과 흉악성이 너무 싫어서 죄를 혐오할 것이며, 매일 하늘의 순결을 간구하며 살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를 얼마나 좋아하십니까?
여러분은 죄를 그치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증오심을 넣어주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대한 여러분의 사랑은 죄를 증오할 만큼 강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하늘의 처방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처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하나님의 은혜의 힘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키시어 죄를 그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