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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_사랑과 증오심의 파워

 

인간에게는 어떤 것에 생명을 바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두 가지 동기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과 증오이다. 인간은 사랑하는 무엇인가를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반면, 끓어오르는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생명을 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랑과 증오는 동기 부여를 하게 하는 막강한 것이다. 영적인 면에서 선과 악의 전쟁을 살펴보더라도 우리는 그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그분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시지만, 증오심의 대부 사단은 그의 증오심으로 인해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반역을 꾀하며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해 일하고 있다. 설사 영적인 면이 아니더라도 인간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아도 우리는 그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사랑과 증오 때문에 얼마나 수많은 일들과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가! 특히 증오심 때문에 일어나는 강력한 범죄들을 보면, 증오심이 인간 속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증오심?

만일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는 죄에 대한 사랑이 죄에 대한 증오심으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죄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죄를 버리거나 승리할 수 없다. 죄를 증오하게 하는 그 힘만이 죄를 버리고 승리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아는가? 하나님께서 죄를 이기기 위해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신 증오심이 있다는 사실을…. 그 증오심(?)에 대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처음 선포하신 구원의 계획, 복음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놀라운 복음이었다! 그 복음을 함께 읽어보자.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개심(enmity)을 두리니, 여자의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KJV). 여기에 적개심, 증오심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어디에 적개심을 두시겠다고 하셨는가? 사단과 여자 사이에, 사단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에, 사단을 따르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 적개심을 넣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적개심이야말로 죄를 승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2) 복음 속에 들어있는 새 원칙

인류의 타락 후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내리신 이 선고는 복음인 동시에 하나의 예언이었다. 그것은 세상 역사의 시작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사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을 선과 악의 대쟁투를 미리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원수가 되게 하리”라고 선언하셨다. 이 원수 관계는 선천적으로 되지 않는다. 인류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으므로 그 본성이 악해졌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히 사단과 조화되고 반목하지 않게 되었다. 죄인과 죄의 창시자인 사단 사이에 아무런 원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단과 인간은 둘 다 반역으로 악해졌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그들의 힘을 모으는데 협력하게 되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특별히 간섭하지 않으셨을 것 같으면 사단과 인류는 동맹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대항하였을 것이며, 인류는 사단과 원수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반대하는 일에 계속 연합하였을 것이다. 사단은 천사들을 반역에 가담시켰던 것처럼 인류를 범죄하도록 유혹하여 하나님을 대항하는 싸움에 협력하게 했다. 그런데 사단과 여자와 그리고 그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원수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복음이 선포된 것이다. 이제 인간의 본성을 타락시키려는 사단의 노력은 방해를 받게 되었으며, 인류는 사단의 세력을 저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사단과 죄악에 대한 증오심을 일으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영혼 속에 주입하시는 은혜이다. 이렇게 인간을 회개하게 하는 은혜와 새롭게 하는 능력이 없었으면, 인류는 계속 사단에게 사로잡혀 그에게 종 노릇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 속에 들어있는 새로운 원칙이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복음의 선포는 지금껏 죄에 매여 죄악 속에서 사단과 조화를 이루며 살던 인간의 마음속에 투쟁을 일으켜 새로운 삶이 가능하게 만들었는데, 곧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인간의 마음의 지배자요 폭군인 사단을 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죄를 사랑하는 대신에 미워하고,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죄의 세력과 죄의 정욕을 정복할 수 있는 새 탈출구가 열린 것이다. 복음을 통하여 하늘의 새 원칙이 역사하게 된 것이다.

 


3) 죄를 증오한다면?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개심(enmity)을 두리니.” 여기서 “적개심”이란 원어적 의미는 서로 미워하고 혐오하여 합할 수 없는 마음을 말한다. 만일 우리 마음에 죄에 대한 적개심이 있다면, 죄를 몸서리칠 만큼 혐오하고 도저히 죄와 하나 될 수 없는 마음이 주어진다면 죄를 이기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쉬워질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죄에 대한 증오심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증오심은 어떻게 생기는가? 일반적으로 증오심은 누군가가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 큰 해를 끼칠 때에 온다. 누군가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대상을 죽게 했다고 가정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이 무섭게 일어나는 것이 상례이다.

어쩌면 우리는 죄를 너무도 쉽게 짓는지 모른다. 별생각도 없이 우리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만일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의 가족 중 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리게 된다면 어떨까? 우리가 쉽게 죄를 지을 수 있을까?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나의 죄 때문에 죽을 병에 걸려 고통당해야 한다면 그래도 무심코 죄를 지을 수 있을까?

한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한 남자아이가 관속에 누워있었다. 관 곁에는 슬픔에 싸여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이 서 있었다. 그 아빠와 엄마와 친척들은 흐느껴 울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그 아이의 아빠는 다른 아빠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애통해 했다. 그 전날, 이 아빠는 출근하려고 차고에서 차를 후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어린 아들이 아장아장 걸어서 아빠를 따라 나갔고, 아빠가 후진하여 나가던 차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그것도 모르고 후진을 하다가 아들을 본의 아니게 죽이게 된 것이다. 물론 사고였지만 자기의 실수로 사랑하는 아들을 죽게 한 그 찢어지는 듯한 아빠의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 그 아빠는 자기의 조심성 없는 운전 습관을 얼마나 후회하고 자기 자신을 혐오했을 것인가? 여러분은 그 사건 후 그 아빠가 아무 생각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후진시켰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에게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면 차를 후진할 때마다 얼마나 조심하고 또 조심했을 것인가?

 

4) 십자가가 주는 죄에 대한 증오심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듯 그를 위하여 애곡하며, 사람이 자기의 처음 난 자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듯 그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리로다”(슥 12:10). 갈보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거기에는 죽임을 당하신 한 분이 보인다.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 우리의 창조주, 온 우주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께서 돌아가셨다. 우리의 지은 죄가, 즉 우리가 그분을 죽였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듯이” 그렇게 슬퍼하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갈보리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죄가 사랑하는 주님께 무엇을 하였는지를 보게 된다면 우리는 죄를 증오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심판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죄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더 이상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고 회개하게 될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너(사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겠다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죄에 대한 증오심, 그것은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놀라운 파워이다.

사람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죄가 얼마나 흉악한 것인지 알게 된다. 바로 영광의 주님을 징벌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말로 다할 수 없는 따뜻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배은망덕과 반역으로 일관된 생애를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그는 가장 좋은 친구를 버리고 가장 귀중한 하늘의 선물을 모독해 온 것이다. 계속해서, 그것도 직접,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상처를 받아 피가 흐르는 그분의 심장을 찔러 온 것이다. 그는 넓고 어둡고 깊은 죄의 심연에 의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어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낀다. 이런 슬픔과 애통은 죄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죄를 드러내시는 것은 죄에 대한 흉악성을 보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명상하는 데 매일 많은 시간을 바쳐야 한다. 예수님의 생애 중에서 특히 그분의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좋겠다. 우리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분의 크신 희생을 깊이 생각할 때에,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더 많이 일어나고 그분을 그렇게 고통 중에 돌아가시게 한 것이 우리의 죄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어 죄를 몹시 증오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