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2

제3부_진정한 방언의 목적을 아는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역사는 방언의 은사라고만 알고 있다. 그래서 방언을 받기 위해 애쓰며 기도원에도 가고 금식기도도 한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 방언을 주시면서까지 전달하고자 하셨던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간과해버린다. 방언의 은사가 처음으로 성경에 언급된 것이 언제였는가? 오순절 성령의 역사 때였다. 오순절과 연관된 방언의 소식을 함께 연구해 보자.

1) 오순절의 경험

“오순절 날이 충만히 임하매 그들이 다 한 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니”(행 2:1KJV). 먼저 그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 “한 마음”이 되었다(행 1:14).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바로 전까지도 서로 누가 높은가 다투던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과하면서 고난과 시련을 겪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까지 메시아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하였다(행 1:3). 그 진리들은 새롭게 고리를 지어 연결되었으며,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구속의 경륜의 희미하던 것들을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개인의 구주로서 다시 확신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삶으로 성취된 놀라운 예언들과 그분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깨달으면서 자신들의 심히 이기적이고 죄 되고 교만한 모습들을 발견하고 진정으로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진정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서로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며 하나로 연합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여기에 (이론적인) 진리가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사랑이 있다”라고 말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연합은 그들이 믿는 진리가 참됨을 증명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난 메시아, 자기들을 변화시킨 예수님을 전하고자 소원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중보하시며, 곧 다시 오실 것이라는 이 놀라운 복음을 전하길 원했으나 자신들에게 이 엄청난 진리를 전할 힘이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자신들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깊이 느끼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그 때에 약속된 성령이 그들에게 부어졌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 엄청난 복음을 전해야 할 제자들은 그 나라들의 방언을 몰랐다. 그 때에 방언이 주어져 그 천국 복음이 수많은 나라의 백성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제자들에게 임했던 그러한 성령의 충만은 이처럼 절실한 필요를 느끼며 마음이 정결케 된 자들에게 부어지는 것이다.

2) 방언 사용 목적과 메시지

오늘날 기독교회에 흥행하는 성령의 충만이나 방언은 과연 제자들이 경험했던 진실된 성령의 역사와 동일한 것인가? 슬프게도 현 기독교회에는 많은 경우에 사단이 만들어낸 가짜 성령 운동과 자기 자신조차도 알아듣지 못하는 거짓된 방언들이 난무하고 있다. 방언을 받기 전 제자들이 경험한 것은 무엇이었으며 방언을 통해 그들이 전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 제자들의 경험

1. 그들은 성경의 예언과 함께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하였다.
2. 그들은 말씀을 연구하면서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만났고 자신의 죄 된 모습을 발견하고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였다.
3. 그들은 자신을 겸손히 낮추며 서로에게 죄를 고하고 용서하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여 “한 마음”이 되었다.
4.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고 변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전하고자 소원했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무력함과 그들에게는 진리를 전할 지혜와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성령을 간구하였다. 그 때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고 방언의 은사가 주어졌다.
5. 그들이 말한 방언은 문법이 제대로 갖추어진 다른 나라의 언어였다. 제자들과 외국인들 사이에 통역자가 필요 없었다. 방언의 은사는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6. 그들은 성경을 직접 인용하여 그 시대에 성취된 성경의 예언들을 설명하였다. (행 2:14~36 참조)
7. 제자들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가 참 메시아시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마 1:21) 구세주시라는, 죄에서 구원(승리)얻게 하는 복음을 전했다.
8. 그들은 진리에 대한 증인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말했고 그들 서로의 연합과 변화된 모습은 그들이 믿는 바가 진리임을 증거하였다.
9.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였다. 인간의 성정을 즐겁게 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진리 그대로의 복음을 전했다.
10. 사람들은 제자들의 방언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고 “형제여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진정한 회개의 부르짖음을 발했다.

방언에 대해 더 참고할 것은, 방언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에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하여 내리는 은사라는 것이다. 오순절 날에 있었던 성령의 방언 은사는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이 은사는 다른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은사였다. 이것은 언어의 은사였지, 들음의 은사가 아니었다.

*성경에 나타난 방언의 3가지 기능

1. 첫 번째 예증 : 어떤 사람들은 방언이 “하늘의 언어”로서 오직 하나님과 통역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도행전 2장에서 제자들과 듣는 사람들이 모두 그 설교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11절).

2. 두 번째 예증 :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에게 전도한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다. “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 10:44~46). 사도행전 10장 1절에 보면 고넬료는 이태리 사람이었고, 베드로는 유대인으로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역사에 의하면 로마의 시종들은 여러 나라에서부터 잡혀 온 사람들이었다.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났을 때, 그 두 사람 사이에는 언어 장벽이 있었음이 확실하며, 베드로는 아마 통역관을 세워서 통역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령이 고넬료와 그 집안사람들에게 내려졌다. 그 결과, 그곳에 있던 유대인들과 베드로는 그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성경은 유대인들이 그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로 말하는 “하나님을 높임”의 음성을 들었다고 적고 있다(행 10:46). 후에 베드로는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오순절 날)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행 11:15) 하였다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통하여 고넬료와 그 집안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 날 받았던 같은 방언의 은사를 받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방언의 은사를 받은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은 그들이 전에 전혀 알지 못하던 다른 언어로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3. 세 번째 예증 : 방언에 관한 마지막 예로는 바울이 12명의 에베소 사람들에게 전도한 일이다. 사도행전 19:6절에 말하기를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사도였으며, 가장 많이 선교 여행을 하였던 사람이다(고전 14:18). 성령이 12명의 에베소 사람들에게 임하였을 때에 바울은 그들이 방언하고, 예언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들을 통하여 방언의 은사는 여러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내려진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 4장에는 2장에 나오는 오순절과 유사한 장면이 나타나 있지만, 방언의 은사는 내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모였던 장소가 흔들렸으며 사람들은 성령으로 감동됐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들이 없었기 때문에, 방언의 은사는 내려지지 않았다. 사도행전 4:31절에 말씀하시기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하늘로부터 성령의 방언 은사가 내려지는 이유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전도하기 위한 능력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고 하신 것이다.

3) 인위적인 성령의 역사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인위적인 방법으로 억지로 짜내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고자 성령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성령을 이용하려 한다. 마음이 정결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성령을 구할 때 그 허점을 이용하여 사단은 거짓된 느낌과 흥분을 주고 거짓된 부흥을 일으켜 그들을 기만한다. 그들은 군중심리와 감정적인 흥분과 느낌의 희생자들이다. 성령의 충만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만들어내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확신과 우리 성품에 나타난 사랑이다. 성령은 진리를 찾고 연구하는 자들에게 임하시며, 매 순간마다 성령의 감화에 굴복하는 자들 안에 예수님의 거룩한 형상을 새겨주시는데, 이것이 성령의 가장 큰 역사요 기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자들의 경험이 우리의 경험이 될 때에 우리는 전해야 할 진리를 갖게 될 것이며, 그때에 성령의 큰 필요를 느끼고 간절히 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