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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_성령은 무엇인가?

 

총 제목: 성령을 받는 사람들

기독교 안에 성령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왜곡되어 가르쳐지므로 인해 거짓 성령의 체험이 교회 안에 난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준비된 당신의 참 백성들 중에 성령의 역사를 크게 일으키셔서 하나님의 복음과 진리가 땅끝까지 전파되고 증거하는 일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의 마지막 은혜의 시간이 끝나기 바로 직전에, 아직 바벨론 가운데 남아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불러내는 큰소리 외침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일꾼, 성령을 충만히 받고 나아가 하나님의 사업을 마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지금 성령에 대하여 올바르게 알 뿐 아니라, 진정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성령에 대하여 함께 연구합니다. 이 기사가 독자 여러분들을 성령을 충만히 받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기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1부: 성령은 무엇인가?

이 마지막 시대에 난무하는 온갖 오류와 거짓 가르침들 중에 하나가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다. 또한 현대 기독교회에 가장 혼동되어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성령에 대한 이해이다. 성령은 무엇이며, 성령은 누구인가?

1) 성령은 누구신가?

기독교 안에서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 아니시며, 다만 하나님의 생기나 기운, 능력, 생명의 힘일 뿐이라고 가르치는 주장들이 존재한다. 곧 삼위일체를 교묘하게 부인하는 가르침들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과연 성령은 하나님의 기운일 뿐인가? 아니면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신가?

1. 성령은 인격을 가지고 계시다

성령은 단지 하나님의 기운이나 능력이나 힘이 아니다. 성경은 성령을 비인격적인 어떤 힘이 아닌 한 인격체로 계시한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분을 별개의 인격체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4)라고 말씀하셨다.

2. 성령은 개성을 갖고 계신다

그분은 가르치시고(눅 12:12), 죄를 책망하시고(요 16:8), 교회 일을 지시하시고(행 13:2), 도우시며 중보하시고(롬 8:26), 성화 시키신다(벧전 1:2).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힘이나 영향력, 혹은 하나님의 속성에 의해 행해질 수 없다. 오직 한 인격체만이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

3.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 32). 이런 일은 성령이 하나님이실 때에만 진실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이 말씀을 하셨으므로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다. 성경은 성령과 신적 속성들을 관련시킨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신다. 바울은 그분을 "생명의 성령"(롬 8:2)이라고 했다.
그분은 또 예수님과 같이 진리이시다. 그리스도는 그분을 "진리의 성령"(요 16:13)이라고 부르셨다.

4. 성령은 전능하시다

성령님은 영적 은사들을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고전 12:11)신다. 그분은 어느 곳에나 충만히 존재하신다. 그분은 영원히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실 것"(요 14:16)이다. 그분은 또한 전지하시다. 왜냐하면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고전 2:10, 11)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역들은 성령과 관련되어 있다. 창조와 부활 모두에 그분은 관여하신다. 욥은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 33:4)고 말했다. 또한 시편 기자는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시 104:30)라고 말했다. 바울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고 기록했다.

2) 성령과 삼위일체 하나님

1. 성령 - 삼위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 중에 셋째 위격으로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다.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하게 자존하시는 분이다. 삼위 하나님은 각각 동등하시며, 다만 행하시는 사업의 성격과 기능적인 면에서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에 조력하시는데, 특히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명에 집중하시고 그 구속이 효과 있도록 역사하신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시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입하셨다(눅 1:35). 그리고 침례 시에 예수님의 공중 사역을 인정하셨고(마 3:16, 17),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과 부활의 유익을 인류에게 가져오셨다(롬 8:11). 성령은 구속의 계획을 완수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일하시며, 집행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신다.

성령께서는 창조 시에 창조사업에 밀접하게 개입하셨고, 함께 그 사업에 임재하신 것을 알 수 있다(창 1:2). 생명의 기원과 유지에도 역사하시는데, 그분이 떠나가시는 것은 사망을 의미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신과 기운을 거두실진대,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욥 34:14, 15, 33:4 참조)고 성경은 말한다.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영혼 속에서 재창조의 사역을 이루신다. 우리는 성령의 그 활동을 통해 창조 사역의 추적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업을 창조주 성령을 통하여 개인 속에서 수행하신다. 성육신, 창조, 재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성령은 하나님의 의도를 성취시키려 오신다.

2. 말씀 속에 증거된 삼위일체

성령의 인격과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움직임들이 기독교에 일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때에 대한 경고의 말씀과 함께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과 미혹을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시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실례는 바로 예수님의 침례 장면이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이 장면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임하시고 아버지의 음성이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즉 침례를 받으시는 예수님과 말씀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비둘기처럼 임하시는 성령 이 세 분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명하신 최후의 지상 명령에 포함된 침례에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명명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 20).

그런데 성령의 인격을 부인하는 주장을 펴는 기독교의 일단의 사람들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침례를 언급하며 성령의 인격을 부인한다. 사도들이 삼위일체, 곧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가 아닌 그냥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으므로 성령은 인격을 가진 분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행 10:47,48).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행 22:16).

왜 사도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고 그냥 예수 이름으로만 침례를 주었을까? 마태복음 28장 19절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라는 문구의 원어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세 분의 이름에 단수를 사용했다. 즉, 복수인 “ονοματα”(오노마타)가 아니라 단수인 “ονομα”(오노마)를 사용한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라는 의미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일체가 아니시라면 마땅히 복수인 ονοματα(오노마타)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복수를 쓰지 않고 단수를 사용한 것은 바로 하나님 세 분이 곧 하나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3. 복합단일 단어로 표현된 삼위일체

세 하나님의 오직 한 이름은 무엇으로 대표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다. 구약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이 없고 다만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수"라는 이름을 취하시기 전, 구약에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실 때는 오직 여호와이셨다. 즉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을 찾는 것과도 같았다. 마찬가지로 신약에 와서도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면, 그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 성령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되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라고 한 이 말을 구약으로 표현하면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는 말씀과 같은 것이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자들은 신명기 6: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는 구절을 자주 예로 제시한다.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히브리어 중에 오직 하나, 단일을 표현하는 단어는 “야히드”이다. 그런데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라는 말씀에서 “오직 하나”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야히드”가 아닌 “에하드”가 사용되었다. “에하드”는 여러 개의 개체가 모여 이룬 통일된 하나를 표현하는 복합단일을 뜻하는 단어이다. 만일 하나님이 세 분 하나님이 아니시고 숫자상으로 오직 한 분뿐이시라면, 성경에 사용된 히브리어가 “에하드”가 아닌 “야히드”가 사용되었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야히드”는 절대 단일어이다. 신명기 6장 4절에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에 사용된 “에하드”는, 성경에서 둘 이상의 사람들이나 단체가 하나가 된 것을 표현하거나 그것이 이룬 한 몸, 한 소리 등에 사용된 단어이다.

창세기에도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을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다. 구약은 하나님의 복수성을 시사한다. 때때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복수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창 1:26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3:22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창 11:7 “우리가 내려가서”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엘로힘”인데, 이 말은 복수이다. 앞서 언급한 신명기 6장 4절의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에서 쓰인 하나님이란 단어도 “엘로힘”인 복수 명칭이다. 그 복수 명칭을 쓰시는 하나님이 곧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신 것이다. 절대 단일을 나타내는 말인 “야히드”는 성경에서 오직 하나인 여호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 일이 없다. 그래서 복수 명칭인 엘로힘이신 그분이 바로 지존자이신 “오직 하나”, 곧 에하드이신 여호와이시다. 여호와라는 말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신약 성경에서 계시해 주신 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로 계시는 엘로힘이신데, 그 엘로힘이신 아버지, 아들, 성령은 다 지존자시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하셨는데, 이것은 당신과 아버지 하나님과는 하나라고 하신 것으로, 분명히 두 다른 개체이지만 하나라고 하신 것이며, 이것이 바로 히브리어로 표현하자면 “에하드”인 것이다.

삼위일체와 성령에 대한 오해는, 지구 역사가 마칠 즈음 다시 한 번 도래할 두 번째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기 위한 사단의 효과적이 방안이다.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진정한 영적 경험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성령에 대한 오해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오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