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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회사_몽골 그리스도교와 교리와 신조

 

몽골의 통치자들이 오랫동안 지배적인 호의를 가지고 동방에 있던 교회를 대우한 것은 몽골 그리스도교의 교리들이 아시리아 교회의 가르침과 같았음을 암시해 준다. 그것은 이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후기 역사들을 고찰해 보면 더욱 그러함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권력의 시작은 중요한 사실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으로부터 그들의 통치 초기 몇 년 동안에 그들이 접촉했던 그리스도교가 어떤 유형이었는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우리는 유명 인사였던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을 생각하게 된다. 프레스터 존의 이름은 1,000년경에 아시아 타타르에서 일어난 혁명과 관련되어 있다. 신뢰할 만하고 신실한 다수의 작가는 케레이트 족(Keraits)의 한 왕이 그리스도에게로 개심했다고 말한다. 그 왕은 존(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그와 그의 백성 수천 명이 동방 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다. 그의 나라는 성장했고, 계승되는 각 통치자도 역시 존이라 불렸다.

약 2세기가 지난 후에 칭기즈칸이 그 마지막 왕을 정복했다. 그 승승장구하던 몽골의 추장은 죽임을 당한 성직자 왕의 딸과 결혼을 했기 때문에 동방 교회의 가르침은 몽골인들 사이에 큰 영향력을 주게 되었다. See Neander, General History of the Christian Religion and Church, vol. 4, pp. 46-50.

모셰임(Mosheim)은 그 기독교 왕국의 부(富)와 힘과 행복에 관한 보고를 듣고 깊은 감동하였다고 말한다. 포르투갈 왕은 프레스터 존의 외교정책이 아비시니아 사람들의 외교정책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아비시니아에 사절단을 보냈다. Mosheim, Institutes of Ecclesiastical History, b. 3, cent. 12, pt. 1, ch. 1, par. 7, note 12.

그 공사관들은 아비시니아인들 가운데서 프레스터 존에 관하여 보고된 내용과 흡사한 많은 것을 발견했다.

러시아가 정복될 당시에 그 나라는 끊임없이 서로 싸우면서도 명목상으로는 주요 군주나 황제의 공통 종주권 아래 다스림을 받던 수많은 작은 독립 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Pott, A Sketch of Chinese History, p. 81.

칭기즈칸의 군대들에게 파괴된 도시들은 사람의 눈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몽골의 지휘관은 그의 패망한 원수들에게 수없이 말했던 것처럼, 자기는 “하나님의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칭기즈칸은 그의 군대가 동쪽으로는 중국의 북부 제국을 정복하고 몽골의 다른 군대는 인도의 북서부 지역을 정복하고 있는 동안, 그 자신은 러시아의 한 부분을 황폐시키면서 동시에 볼가 강 상류 지역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 전투 중에 죽음이 그에게 이르렀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박해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들 가운데 케라이트(Kerait)라는 여인은 기독교인 태생이었으며 프레스터 존(Prester John, 중세 아비시니아 또는 동방 나라에 그리스도교 국가를 건설했다는 전설상의 왕)의 가까운 친척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Huc, Christianity in China, Tartary, and Thibet, vol. 1, p. 129.

칭기즈칸은 중국으로부터 시작하여 헝가리와 폴란드까지 이르는 자기의 광활한 제국을 자기 세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셋 가운데 하나인 오고토이(Ogotai)는 자기의 부친을 계승하는 왕 중 왕으로 선택되었다.

오고타이는 1241년에 사망했다. 왕자들은 새로운 황제를 선택하기 위해 전쟁터로부터 소환되었다. 그들이 모이는 동안 왕후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 쿠유크(Kuyuk)가 선택되도록 열심히 노력했고, 그녀의 노력은 그가 선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쿠유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으며 그의 평생에 그의 영토 내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명성은 매우 높은 수준에 있었다. Mingana, “Early Spread of Christianity,” Bulletin of John Ryland's Library, vol. 9, p. 312.

밍가나는 그의 진영이 교회 지도자들, 성직자들, 그리고 학자들로 가득했으며, 카다크(Kaddak)라는 이름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그의 국무총리였다고 말한다. 쿠유크 치하에서 칭기즈칸과 오고타이의 통치 특징이었던 대량 학살과 황폐는 즉시 종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쿠유크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최고 통치자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몽골인들의 분노가 더 확산하지 않았고 유럽도 황폐됨을 모면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