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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_완전에 대한 오해와 정답

 

우리는 완전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질 뿐 아니라, 기독교에 만연하고 있는 완전에 대한 부정적인 개념과 오해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완전에 대한 네 가지 오해가 존재하는데, 함께 짚어보며 우리의 신앙의 신조를 굳게 하자.

1) 완전에 대한 오해

오해 1. 완전은 인간이 이루어내는 진화가 아니다

완전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완전이란 내가 죄를 버리고 열심히 순종하고 노력해서 얻는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곧 자신이 성품을 잘 변화시켜서 내가 이루어낸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완전은 나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 속에서 이루시는 하나님 은혜의 역사이며,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굴복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나 자신이 이룬 것은 결코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에는 인간의 의의 한 올이라도 섞여 있지 않다.

또한 어두움을 조금씩 몰아내 가는 것이 완전이 아니다. 빛은 어둠과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완전은 빛을 하나씩 받아들이고 어둠을 하나씩 몰아내는 것이 아니다. 빛 아니면 어둠이 존재한다. 빛은 완전한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도 완전한 것이다. 불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주셔서 그것을 점점 더 의롭게 더 밝게 되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완전이 아니다. 빛을 받아들이면 어둠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완전한 빛 속에서 더 완전한 빛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은 내가 진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새 사람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완전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며 완전케 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완전한 성품은 완전한 사랑을 가졌다는 의미가 된다. 그 완전한 사랑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완전 역시 우리 자신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의 선물일 뿐이다. 완전한 성품은 모두 예수님의 은혜로 이루어 주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래서 그분께만 영광이 돌려져야 한다.

요한 계시록 19장 8절에는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8)고 기록되어 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영문에는 “의”(Righteousness)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 의(세마포)를 하나님께서 입게 하셨다고 되어 있다. 즉 우리의 의, 우리의 완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오해 2. 나는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다.

두 번째 오해는 완전하게 된 사람은 결코 다시는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완전의 단계에 도달하면 본성적으로 완전해져서 다시는 타락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과 성품의 완전하고 순결한 상태는 우리의 의지를 사단에게 굴복하여 마음에 죄가 들어오면 다시 불완전하고 더럽게 오염되고 만다. 완전은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순결하게 유지되어야만 하며 그러기 위해 하나님과 늘 연결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완전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완전한 성품은 계속해서 계발되고 증진되어 나갈 것이다.

오해 3. 완전에는 하나님의 커트 라인이 있다.

세 번째 오해는 완전에 대한 하나님의 어떤 기준선(커트 라인)이 있어서 열심히 노력해서 그 기준선에 도달한 사람만 하늘에 들어가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못 미친 사람은 다 멸망 당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것은 큰 오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의 생명을 주고 산 영혼들이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커트라인을 놓고 점수대로 커트시키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일 그 어떤 기준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거듭남일 것이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하늘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지막을 사는 우리들에게 요구된 분명한 표준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가지셨던 그 완전한 성품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능력 있는 구속의 경륜을 통해 우리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어 놓으셨다. 우리가 그 구속의 역사에 협력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그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모본으로 보여주신 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살 수 있는 넉넉한 은혜와 능력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백성, 그분의 성품을 충만히 반사하는 백성을 이 마지막 시대에 가지실 것이다.

오해 4. 완전은 점진적인 미래의 일

네 번째 오해는 완전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씩 우리의 잘못들을 고쳐나가고 이 말씀을 저 말씀을 다 순종했을 때에 그것이 완전에 도달한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즉 완전은 미래에 속한 일이므로 지금 완전해질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 안에서 계속 자라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가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없을 것인데, 우리는 하늘에 가서도 계속 완전하신 분을 닮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며, 따라서 미래에 일어날 일도, 먼 미래에 속한 일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성령의 감화에 굴복하므로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의를 소유할 수 있다.

2) 완전의 정답-예수 그리스도

1. 완전을 명하신 완전하신 분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고 말한다. 인간은 죄 되고 불완전하다. 하나님만이 완전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는 한 순간도 완전할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완전을 이루어갈 수 없으며 의를 단 하나라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우리 속에 임재하시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의이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우리 속에 계시는 예수님과 그 의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게 보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주신 흠없는 의, 완전한 사랑이 우리를 완전케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우리의 완전이 아니요 예수님의 완전이며, 예수님께서 그분의 완전하심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완전하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가진 의가 예수님의 완전한 의라면, 만일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이 그분의 완전한 사랑이라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 가운데서 계속 성장해 가야 한다. 점점 더 원만한 광명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완전이란 어떤 의미에서 불완전한 나를 버리고 완전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하게 보시는 것은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완전하신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며,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으며 그분의 의와 사랑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완전케 하시는 분

우리에게 완전하라고 명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라는 약속과 함께 그렇게 되기 위한 모든 은혜와 능력을 주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순결한 사랑과 완전한 성품을 주시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히브리서 12:1절에는 예수님을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로 소개한다. 그러면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그분을 “바라보자”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케 하시는 분을 바라볼 때만 완전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 믿음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그리스도께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 진지하고 열렬하게 구하는 모든 사람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다.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깨닫기 위해 강한 열망을 가지고 매일 주님을 바라보고 찾는 사람들은, 마침내 바라봄으로써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영적 생애가 향상됨에 따라 더욱더 그분의 모습을 뚜렷하고 충만하게 반영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아에게서 눈을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고, 비할 데 없는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명상하며 그분과 교통해야 한다.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성품의 완전함을 명상함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주장함으로, 우리는 주님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3) 완전하신 분의 소원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셨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함을 이루기를 원하셨다. 이것이 그분의 소원이었다. 그 방법은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므로 가능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의 표준에 도달하라고 초청하시고 우리 앞에 그리스도의 품성의 모본을 두신다. 인성을 쓰시고 끊임없이 죄악을 저항하는 생애를 사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신성과의 협력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라도 품성의 완전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 주셨다. 이 사실은 우리도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보증이다. 예수님은 죄와 싸우는 전쟁에 있어서 모든 영혼들이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수 있는 충만한 은혜와 힘을 마련해 두셨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몸소 죄 없는 생애를 사심으로 그분의 능력 안에서 당신의 백성들도 역시 죄 없는 생애를 살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히 13:21).

완전의 정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완전하신 분이시며 그분만이 우리 안에 온전함을 이루어 주실 수 있다. 우리는 완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 안에 거해야 한다. 그 길만이 완전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완전으로 나아오라고 초청하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완전한 그분의 모습, 그분의 사랑의 충만한 모습을 보기를 소원하고 계신다. 날마다 우리의 불완전함을 버리고 그분의 완전하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그래서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반사하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자!


** 마치면서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품성을 온전히 나타내고 증거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소원을 이뤄드리기 위해 우리의 힘과 정성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죄를 짓기보다는 어떤 비난이나 조롱, 고난과 고독과 핍박을 달게 받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매일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증거하는 완전한 믿음과 사랑과 성품을 소유한 한 백성을 가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인들에 의해 이 세상의 죄악의 역사를 마치실 것입니다. 그 귀한 백성 속에 꼭 함께 포함되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