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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_완전하라는 명령

 

총 제목: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꿈과 소망: 완전으로의 부르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출발을 합니다. 매주 교회에 가고, 설교와 가르침을 들으며 교인으로 교회 안에서 자리 잡아 갑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봉사 활동하고, 헌금 드리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고백하고 십자가의 용서를 믿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착하게 살면 된다고 여기면서 그 상태에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그리스도인의 목적지는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히 6:1,2)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목적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확실한 목표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완전한 데”는 어디이며, 무엇일까요?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목표와 꿈인 완전에 대해 연구해 봅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기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


제 1부: 완전하라는 명령

열심히 살기는 사는데, 그리고 열심히 믿기는 믿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표류하고 있다. 마치 목표를 잃은 배 같이… 기독교 안에서 영적인 바른 좌표를 제시하는 복음이나 영적인 바른 경험을 가르치는 교회를 찾아보기가 거의 힘든 시대가 되었다. 대신 영적 나태와 영적 표준의 퇴보가 특징을 이루는 영적 무감각 시대가 기독교에 열렸다. 오늘날 기독교가 당면한 가장 큰 위기는 그 위기를 인식조차 못하는 영적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영적인 무감각한 상태 중에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매우 중대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완전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필요성, 그리고 그 진리의 심각성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목표, 곧 그리스도인이 다다라야 할 완전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목표의 상실은 기독교에 영적 나태함과 타락을 초래하고 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더 이상 추구해야 할, 더 이상 이르러야 할 이상이나 목표가 없는데,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더 성장한단 말인가? 뚜렷한 목표의 제시 없이 어떻게 더 뜨거운 그리스도인으로 변할 수 있단 말인가?

1) 완전에 대한 명령

누군가 여러분을 “모자란 사람”이라고 부른다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이다. 모자란 것, 불완전한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불완전하다’는 것은 떳떳한 것이 아니고 부끄러운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불완전함에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일까? 왜 완전이란 말을 들으면 괜히 부담스러워 하고, 마치 하나님 앞에 불경죄를 지은 것처럼 불편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완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완전이 무엇인지 모를 뿐 아니라, 완전이란 우리 자신 스스로 힘으로 이루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잠 20:7)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불완전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 대해 높은 이상을 가지고 계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상은 인간의 가장 높은 생각이나 이상이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명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 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지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만일 그 일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면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명령하고 지시하실 때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 일이 가능하도록 모든 것을 제공하시며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이 명령은 일종의 약속이다. 이 일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도록 우리를 도우시며 힘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은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이다.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며, 회개하고 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모든 자에게서 죄를 분리시키시는 회복의 사업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는 각 영혼에게 성령을 주셔서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만반의 대비책을 세우셨다.


2) 인성을 쓰신 그리스도의 모본

그리스도인들은 그 이름과 같이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이상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인성을 쓰신 예수님의 생애가 완전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도 그 생애에서 완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셨고 우리와 같은 육신이 되셨다.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신 이유 중에는 우리가 이해해야 할 매우 중대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본이 되시기 위해 인성을 쓰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난 자들의 모본,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본이 되신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기만적인 주장을 깨뜨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는 것이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계명을 파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지킬 수 없는 불공평한 법을 만들어 놓고 피조물들을 강요하시는 분이며, 그래서 사람은 그분의 법을 순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인 계명을 없애버리려는 사탄의 기만적인 주장을 침묵시키기 위하여, 의심받은 하나님의 공의가 증명되기 위하여 무엇인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죄인의 죄를 속하시는 대속만으로는 넉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은 지킬 수 있는 것이며,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모본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줄 누군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우리의 모본이 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보여주셨다. 계명이 요구하는 의, 곧 의로운 생애와 완전한 품성을 보이시므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신 것이다.

3) 가능한 약속

예수님은 인성에 동참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없는 생애를 사셨고 성품에 흠이 없으셨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으나 죄 없는 생애를 사셨다(롬 8:3). 이 예수님의 품성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여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고 하셨다. 여기서 “두루 행하여”라는 말의 영어 본문을 보면, “I will dwell in them, and walk in them”이라고 되어있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 살고 거하시며 함께 걸으시겠다는 뜻이다. 마음 속에 예수님이 계신 사람, 예수님과 함께 살고 예수님과 항상 동행하고 같이 걷는 사람의 생애는 어떤 생애일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는 명령과 약속이 실현되는 삶이 아닐까? 주님의 지속적인 임재는 온전하라는 명령과 약속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과 생애는 모든 회개하고 믿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있는 곳에 찾아오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본성을 취하시고 승리하신 것은 우리로 당신의 본성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성으로는 하늘의 보좌를 붙드시고, 인성으로는 우리를 붙드신다. 그리고 당신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품성의 영광에 이르라고 우리에게 명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며 결론지으신 마태복음 5장에는, 먼저 천국 시민의 원칙과 법칙(팔복)이 먼저 나온다. 그 다음 의롭다는 것, 의가 무엇인가를 설명해주시고 보여주셨는데, 그리스도인의 실제적 삶에서의 의무에 대해서 언급하셨다. 곧 원수와 핍박하는 자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마음을 지니라는 것이다. 이 일은 우리 인간 속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능력과 사랑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고 소개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살 때에 우리 속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성이 꼴 지워진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주님의 임재를 통해 전달되어 그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비쳐 나오기 시작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하늘의 평화가 깃들고 그 사람은 하늘의 분위기에 둘러싸여 산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것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창조하시고 우리 안에서 그분의 완전한 형상을 보기 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보증이며 약속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을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그분 안에서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만일 어른이 어린아이처럼 작은 일을 가지고 울고, 조금만 힘들어도 업어달라고 하고, 떼쓰고 무서워한다면 완전한 어른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좀 모자란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단이 옆에서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을 비웃지 않겠는가?

누구든지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완전하심을 매일 본다면 자신의 불완전함을 혐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완전하시고 흠이 없으신 예수님을 닮고자 소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완전한 데로 나아갈 수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명령하셨다. 우리 안에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하신 형상을 회복시켜 주신다니 이 얼마나 큰 약속인가!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신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소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