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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Letter_한 해를 마무리 짓는 기도

 

강 영은

 

죽음을 앞두고는 버리지 못할게 없다지요
끝이라고 생각하면 비우지 못할게 없다지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불꽃처럼
아무 소리 없이 스러지는 유성처럼
세월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이 한 해 마지막 달에

주여
시한부 죽음을 준비하듯
우리 모두 뜻깊게 죽게 하소서

무덤에 장사 되었다 하면서도
수없이 고개 들고 일어났던 순간들로
버렸다 하면서도
놓지 않으려고 거머쥐던 날들로
비웠다 하면서도
가슴 한 켠에 서성이는 욕심들로 여울진
이 한 해

주여
생산치 못해 울던 라헬의 통곡처럼
우리 모두 부끄러워 슬피 울게 하소서

함께 있을 날 얼마나 많다고
키재고 돋우고 으스댔는지
같이 나눌 시간 얼마나 길다고
삐치고 켕기고 버성겼는지
아무리 넓다 해도 가는 길 좁은데
얼마나 사랑하며 손잡았는지

주님 따른다며
정신없이 달려온 이 한해 마지막 달에

주여
우슬초 흔들어 떨며
우리 모두 회개하게 하소서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못줄게 없다지요
다시 못 본다 하면 풀지 못할게 없다지요

달랑 한 장 가벼워진 달력을 보며
비워진 숫자처럼 마음 비웠는지
겨울 논바닥에 드러누운 볏짚 밟으며
빳빳한 그루터기 아직 마음에 남았는지

주여
이 한해 마지막 달
사라져 갈 한 해를
갈무리하게 하소서

주여
이 한 해
베푸신 사랑 너무 따습고
받은 은혜 너무 황송해
몸 둘 바 몰라 당신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이 한 해
아무리 당신을 닮았다 해도
당신 곁에 서면
아직 우린 돌연변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당신 사랑 앞에선
아직 우린 빛도 못 내는 희미한 촛불

마지막 달이 없으면 새해도 없다지요
마지막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다지요

그래도 우리에게
끝은 희망이고
기쁨이고
소망입니다.

당신의 용서 속에 한 해를 묻고
당신의 자비 속에 또 한 해를 시작할 수 있기에…


어떻게 하면 죽는 줄은 알아
어떻게든 죽고 싶어
주여
이 한해 마지막 달
장례 치르듯
주님 앞에 우리를 장사합니다

쓰다만 일기처럼 부끄러운
한 해를 용서하시고
밝은 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