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2

제3부_서원3. 용서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하시기를 즐겨하십니다. 우리가 죄 많고 속절없고 궁핍한 상태 그대로 주님 앞에 나가면, 연약한 상태 그대로 나가 죄를 슬퍼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발 앞에 엎드리면,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팔로 우리를 두르시고 기뻐 우리의 상처를 고쳐 주십니다. 새해에는 예수님을 본받아 용서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은 인간들이 피차간에 대하는 방법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사랑과 자비, 동정심을 가지고 인간을 대하십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용서에 대한 얼마나 귀한 약속의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떠나간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했을 때 어떻게 영접을 받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눅 15:20)고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한 아름다운 용서와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도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완전히 말해 줄 수는 없습니다.

2) 용서한다는 것

베드로가 예수님께 와서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용서하는 일에 결코 싫증을 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시면서,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형제가 우리에게 잘못하면 우리는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 형제가 와서 죄를 자복할 때에 그의 겸비가 너무 부족 하다거나 그가 진정으로 자복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조금이라도 조롱하고 비웃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억양이나 태도에서도 조롱하는 기색이 전혀 나타나지 않도록 하며 그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 더 큰 빚을 지고 용서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 어떤 용서의 이야기

어느 날 어떤 아버지의 외아들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들은 곧 아버지 회사의 부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었고 아버지에게 있어서 아들은 그의 모든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조사 결과 아들의 사고는 누군가에 의한 고의적인 사고로 밝혀졌고 아버지의 슬픔은 복수의 마음으로 변해갔습니다. 하루하루를 증오에 사로잡혀 살다가 그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약 1년이 지난 후에 그는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범인은 부모도 형제도 집도 없는 아직 스무 살도 채 안 된 청년이었습니다. 흉악한 얼굴을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범인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었고 자기를 용서해 달라며 울었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범인은 이 사건 외에도 여러 건의 전과가 있었고 모두 1억이 넘는 돈을 훔쳤습니다. 범인을 보면서 아버지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법정 심문과 조사를 위해 범인과 여러 번 만나면서 아버지는 이 청년에게 좋은 환경과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아버지는 어느 날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범인이 형벌을 받는다고 해서 죽은 아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들이 무슨 소용인가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이 그 범인을 위해서도 흘려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소송을 포기하고 오히려 범인을 변호하기 위해 나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범인은 비교적 적은 형량을 받았습니다. 범인이 수감되어 있는 동안 아버지는 그가 저지른 죄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범인이 훔친 돈들을 갚아 주고 범인이 다치게 한 사람들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수감되어 있는 범인을 찾아가 필요한 것들을 넣어주고 그의 말동무가 되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범인은 자기를 아들처럼 생각한다며 자주 찾아왔던 그 노인의 발길이 뜸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소를 며칠 앞둔 어느 날 한 낯선 변호사가 찾아왔습니다. 변호사는 그 노인이 몇 주 전 질병으로 작고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가 놀램과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에 변호사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노인은 범인을 양자로 삼았으며 그가 법적인 상속자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같은 원수를 상속자로 삼다니!...” 이 엄청난 용서 앞에서 청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그가 출소했을 때에 다시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용서는 그를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용서합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뿐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않으면 우리는 전혀 남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라고 외치시는 한 분을 볼 때에만, 나를 용서하기 위해 지급 된, 이 세상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그 엄청난 용서의 대가를 보아야만 남을 용서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럴 때에 나 같은 사람이 용서받았다면 내가 용서해주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가 어려울 때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 바쳐진 놀라운 희생을 생각합시다! 그분은 아직도 우리를 용서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누군가 내가 피땀 흘리며 모아온 재산을 모두 가져갔을 때, 억울하게 나의 명예를 훼손시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상처를 입혔을 때에, 나 자신에게 한 것은 어느 정도 참아 줄 수 있었는데, 누군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다치게 했을 때 그런 이들을 용서한다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용서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먼저 용서를 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늘 자신의 정당함을 변호하며 잘못은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우리들…. 내가 한 번 더 생각하고, 내가 한 번 더 참아주고, 내가 한 번 더 이해해 주었으면 되었을 것을 못난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겸손히 고개 숙이면 될 일을 내 위신과 명예를 챙기기 위해 며칠 혹은 몇 달을 불편한 관계로 지내는 일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말로는 이미 용서했다고, 화해의 손을 내밀면서 속으로는 이미 저 사람은 내 편이 아니야 라고 단정 지어 놓은 적이 많습니다. 먼저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하면서, 내가 먼저 그 속사정을 경청해주지 못하면서 늘 잘못은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내가 먼저 용서를 빌지 못하면서 그가 먼저 와서 용서를 빌면 용서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부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 * * *
주님, 새해에는 용서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니 용서하는 사람이기 전에 먼저 용서를 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용서받은 사람 그래서 진정으로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