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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_서원2.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새해에는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간이 범죄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바로 남을 비판하고 자신을 변명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불리한 입장에 처했을 때나 책임을 회피하고 싶을 때, 혹은 남보다 더 나은 평판과 인정을 받고 싶을 때 비판하게 됩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할 때에 우리가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사신 귀한 영혼을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비판할 때에 우리 하늘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에게는 남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숨은 동기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동기와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결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약점과 잘못에 대해 비판할 때에 우리 자신도 다른 부분에서 똑 같은 약점과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볼 것이 아니라 말씀과 나를 비교해보고, 하나님의 성품에 나를 비추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롬 2:1~3).

1)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아마 우리는 남의 비판에 잘 끼어들지도, 쉽게 판단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을 비판하고 명예를 실추시키고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린다면, 특히 자녀나 가족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린다면 어떠합니까?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정의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나 자신의 분노와 감정을 드러낼 때가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는 그러한 때에도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나타낼 수 있을까요?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함께 맞장 떠서 비판하는 대신에 ‘하나님은 다 아시겠지’라고 믿으며 상대방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시 119:75).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나를 비판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그 사람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며 믿어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롬 14:1).

비판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말은 적게 하고 기도는 많이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잘못됐다고 정죄하고 비판하기 전에 나의 행동과 삶으로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묵묵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마디 비판의 댓글, 제 삼자를 의심하게 만드는 한 마디의 은근한 암시, 상대방으로 부정적인 추측을 하게 하는 제스처와 표정들이 한 영혼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비판의 말을 하기 전, 비판의 행동을 하기 전에 나의 언행이 그 영혼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 것인지, 나의 이 언행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알다시피 비판은 또 다른 강력한 비판을 일으킬 뿐입니다. 말은 적게 하면서 기도는 많이 하고 그 기도한 것을 실천합시다! 그러면 잘못한 사람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그 스스로가 잘못한 것을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2) 비판의 사촌– 불평과 흠잡기

비판의 사촌 정도 되는 것이 있는 데 바로 불평입니다. 비판을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불평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극복하기 전 우리는 먼저 비판의 사촌인 불평을 잡아야 합니다. 불평을 극복하는 방법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주위를 바라보는 대신에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자꾸 하늘로 향하게 해야 합니다. 불평은 비판의 분위기를 가져오지만 감사는 이해와 화평의 분위기를 가져옵니다.

흠 잡는 일도 비판의 한 부분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타인의 결점을 잘 찾는 사람에 대한 설명인데, 품성이나 생활에서 결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을 지적하기 위해 몹시 조급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행동을 마치 눈의 티와 들보와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십니다.

‘침소봉대’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개와 굴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감화를 끼치지 못합니다. 그들은 삶에서 복음의 따뜻하고 친절한 정신을 잘못 나타내며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귀한 영혼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흠을 잡는 사람은 그가 비난하는 사람보다 더욱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일한 죄를 범할 뿐 아니라 거기에 자만과 비평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표준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품성만이 우리의 표준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표준으로 삼는 사람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위치에 놓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요 5장 22절)셨으므로, 사람들의 동기를 비판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의 특권을 다시 찬탈하는 것이 됩니다. 신앙 경험에 사랑이 없으면 예수님도 거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냉랭하고 사랑이 없고, 예수님의 임재의 빛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부지런히 활동하고 그리스도와 무관한 열성을 아무리 나타낸다 해도, 이 부족을 메꿀 수는 없습니다. 타인의 결함을 찾아내는 데 남다른 지각과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과 그런 정신에 빠져 있는 각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3) 가장 좋은 판단은?

사실 우리는 동료 인간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한 치 앞일도 모르는 인간이 동료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판단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가 판단 받기 바라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판단해주는 것입니다. 사단이 누군가를 통해 비판으로 우리를 공격해 올 때, 그것을 나 자신을 살펴보는 기회로 삼고 온유함과 감사함으로 대응한다면 사단의 공격은 수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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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새해에는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가 나를 비판해도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비판하는 대신 기도해주고 불평하는 대신 감사하는 새해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