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회사_도마와 인도에 전해진 복음

 

16세기에는 고아(인도)에 모든 편협과 공포를 드러낸 예수회의 종교재판소가 세워졌으며, 시리아 교회를 교황권 관할구역에 종속시키려고 결정되었을 때, 그 무자비한 기관은 시리아 교회를 위압하고 바벨론으로부터 주교들이 도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런 종속 상태는 1599년에 열렸던 디암페르(Diamper) 종교 회의에 의해 확정되어 거의 두 세대에 걸쳐 로마의 폭정이 계속됐는데, 쿠넨 크로스(Coonen Cross)에서 아시리아 교회의 반항이 일어나기까지 계속되었다.

도마가 인도에서 복음 사역을 했는지는 여러 저자의 논란이 되었고, 논박할 수 없는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 수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광야 교회가 어떤 나라 안에서 고통을 당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인도였다는 주장은 잘 알려진 내용이다. 모든 사람은 누가 그 교회를 창설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A. Mingana는 이렇게 기록한다. “사도 도마가 인도에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동방 교회의 변치 않는 전승이며, 역사가, 시인, 기도서, 전례서, 어떤 저자이든지 도마에 관해 말하는 기회를 얻는 사람은 인도와 결부시키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피 아라비아(Arabia the Happy)와 조코트라 섬에 복음을 전한 후에 그는 코친에서 약간 북쪽 마을인 크랑가노르(Cranganor)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말라바르를 통치했던 군주들 중 가장 강력한 군주가 당시에 주재하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고 교회를 세운 그는 남쪽에 있는 쿨란(Coulan) 성읍으로 여행했다.” (J. M. Neale)

“성 도마가 인도 전체에 복음을 전한 상황은 종종 주목받을 만한 작가들의 의문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우리는 그것이 너무나 많은 증거의 지지를 받는 것을 보게 되며, 그와 같이 탁월한 역사의 권위자들이 보증하는 사실을 신뢰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은 편견이 없는 마음이라면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모든 헬라어, 라틴어, 시리아어 유적들은 성 도마가 인도 제국의 사도로서, 신앙의 횃불을 그가 순교를 당한 먼 지역들까지 가져간 사람임을 증명한다. 어떤 저자들은 그가 멀리 중국까지 가서 사도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였고, 인도에서 성 도마가 복음의 사명을 수행하고 순교한 것은 모든 순교 역사와 고대 전례 문서에 언급되어 있으며, 그것은 가장 순수하고 믿을 만한 그리스도교 전승 자료를 구성한다고 확증하였다.” (M. L'Abbe Huc, 예수회 여행 작가)

“성 도마가 창설자라고 주장하는 인도에 있는 시리아 교회는, 모두가 로마 제국의 바깥 지역들에 있는 독립된 교회들로서, 우리가 나중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인데, 그들은 지금까지 독립된 존재로서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며, 우리는 여러 세기들을 통하여 내려온 그들의 역사 과정에 관하여 무엇인가 알기를 원할 것이다.” (W. F. Adeney)

“아라비아 펠릭스(Felix)와 현재 소코트라라 불리는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 섬에 그리스도교가 확립된 후에 그 거룩한 사도는 크랑가노르(Cranganor)에 상륙했는데, 그곳은 당시에 말라바르 해안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 사는 곳이었다. ... 성 도마는 그러한 소규모 유대인 집단 마을 중 하나가 크랑가노르 인근에 자리 잡게 되었음을 알았다.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열심을 가지고, ...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쳐 개종시켰고 그들의 회당을 그리스도교회로 바꿔 놓았다. 그것이 인도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요람이었다.” (J. D. D'Orsey)

어떤 권위자는 사도 도마 당시에 관하여 이렇게 진술한다. “해마다 이집트에서부터 인도로 큰 배 120척이 항해를 했다.”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은 매년 인도로 보내어진 로마의 주화들이 영국 화폐 50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가치였을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므로 사도 도마가 파르티아와 인도에 복음을 전한 선구자였음을 못 믿을 이유가 없다.

• 사도 바울은 그 당시에 복음을 전파했던 사람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롬 10:18). 그 일이 있었던 오순절에 예루살렘에는 얼마나 많은 나라의 대표자들이 참석했으며, 그들의 특성이 어땠는가 보라.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했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행 2:5, 9~11). 오순절 이야기는 이 방문자들이 자기들의 거주지들과 생활의 중심지로 돌아가서 열렬하게 전파했을 때 바람을 탄 날개처럼 확산되었다.
• 동방으로 복음이 급속히 확산되게 한 또 다른 상황은 유대인들이 아시아 전역에 분산되었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동방을 뒤덮어, 그들이 가지 않은 땅이나 도시는 거의 없었다. 그 자손들은 그들의 거룩한 날들을 자기들의 유대적인 친분 관계를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경축하여 지켰다. 동방으로 그리스도교를 확산시키기 위한 최초의 지성적인 중심지 에뎃사(소아시아 현대의 우르파)에서 그리스도교는 유대인들 가운데서 시작되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그 초기 교회의 대부분을 형성했었다.
• 동방으로 복음을 확산시킨 또 하나의 매개체는 아람어였다. 히브리어, 시리아어, 아람어는 어원이 같은 동족어로서, 후자는 그리스도의 토착 언어였다. 저술가 요세푸스는 동방에 있는 다수의 아람어 독자들 때문에 처음에는 유대인 전쟁사를 아람어로 썼다가 나중에 헬라어로 썼다. 아람어는 파르티아 제국의 찬란히 빛나는 쌍둥이 수도 셀류키아~크테시폰(Seleucia~Ctesiphon)을 포함해 그 나라 전체에 널리 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