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_안식일은 토요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안식일이 참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던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들은 안식일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안식일을 지켰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성경의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소위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킨 것이다. 그러한 안식일은 그들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였다. 안식일은 그들에게 구원을 줄 수 없었다. 오늘날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면서도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놓쳤던 그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창조의 기념일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1,2).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창조주이시며 우리가 그분의 피조된 자녀이고 그분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길 원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시며 우리가 그분이 지으신 것들 가운데서 즐거워하게 하셨다. 그리고 창조주께서는 매 일주일 중 하루를 특별히 구별하여 그분을 경배하고 찬송하며 교제하는 날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명하신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 출 20:8-11.


구원의 기념일
신명기 5장에는 출애굽기 20장에 있는 십계명이 그대로 나와 있는데 거기에는 안식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출받은 것은 인간이 죄의 노예 상태에서 구원받은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였으니 구원의 표로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안식일은 구원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구원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성화의 표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 20:12).
구속은 곧 창조다 라는 말이 있다. 안식일은 천지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표징임과 동시에 인간의 죄된 마음과 성품을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으로 재창조한 기념일이요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성도들에게 그들의 창조주와 그들을 구원하신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상기시켜 주는 날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표
“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겔 20:20).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표징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므로 우리는 그분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모여 교제하는 날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레 23:3).
여기의 “성회”라는 말은 “거룩한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이 날은 또한 성도들이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교제하는 날이다.

육체적인 쉼의 날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 일은…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9,1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주일 중 하루는 육체적인 노동과 세상적인 염려로부터 벗어나 쉬기를 원하셨다. 안식일을 통해 마음과 정신뿐 아니라 우리의 육체도 쉼을 누리고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치료와 회복 그리고 선을 베푸는 날
“사람이 …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 12:12).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여러 병자들을 고쳐주셨고 그들을 질병에서 뿐 아니라 죄의 병에서 치유해주시고 회복시켜주셨다. 안식일은 나 자신을 위해 하든 모든 일들을 멈추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날이다. 안식일은 천연계와 이웃과 하나님과 평화스러운 관계를 갖는 시간이다. 안식일을 통해 인간은 이웃과 그리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치유와 회복의 날이다. 우리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막 2:27)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안식일은 즐겁고 존귀한 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사 58:13, 14).
안식일이야말로 그분의 백성들에게 있어 가장 즐겁고 귀중한 날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높이고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며 그분이 주신 놀라운 축복들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안식일의 축복을 어떻게 누릴까?
이 세상에서 누구에게나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시간이다.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노인이나 청년에게나,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유럽사람에게나 아프리카 사람에게나 미국사람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원하면 누릴 수 있도록 안식일을 시간의 개념 속에 두셨다. 그러면 이 안식일의 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 살펴보자. 안식일(토요일)이라는 시간 –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안식일이니…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레 23:3). 위에서 말씀한 일곱째 날이 토요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또한 우리가 어느 나라 어디에 거하든지 “너희 거하는 각 처에서” 지키라고 하셨다. 미국에서는 미국시간으로, 한국에서는 한국시간으로 토요일에 안식일의 거룩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안식일 시간은 금요일 저녁에 시작된다 -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일을 지킬지니라”(레 23:32). 성경은 분명하게 하루의 시작과 끝이 저녁부터 저녁까지라고 말씀한다(창 1:5 참고). 따라서 안식일도 오늘날로 말하면 금요일 저녁(해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해질 때)까지이다. 누가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금요일 오후 시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이 날은 예비일(금요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눅 23:54). 즉 금요일 오후 해질 때가 가까워오자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고 표현한 것을 보아 예수님 당시에도 안식일을 금요일 저녁부터 계산한 것을 알 수 있다. 안식일을 예비하라 - “이 날은 예비일(금요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눅 23:54). 위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을 특별히 “예비일”이라고 불렀다. 안식일을 위해 예비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웃과 화평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그분과 교제하는 날이다. 만일 우리가 대통령을 만나러 가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안식일은 우리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을 뵈러 가는 날인 것이다. 자신을 위한 일을 도모하지 말라 –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3-14). 안식일을 위한 준비 – 안식일은 나 자신을 위한 날이 아니다. 안식일 시간이 다가올 때에 우리는 자신의 유익과 자신의 쾌락을 위한 일들을 멈추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기 전 거룩하지 않은 것들에서 돌아서야 한다. 상업적 거래를 한다거나, 세속적 쾌락이나 사물에 몰두하여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안식일 시간이 되기 전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깨끗이 청소를 해두는 것도 기쁘고 상쾌한 마음으로 안식일을 맞는 방법이다. 안식일이 특별한 날이 되도록, 그리고 안식일에 부산을 떨지 않도록 미리 음식을 준비해 놓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금요일을 “예비일”이라고 부른 것처럼 우리도 금요일이 되면 먼저 안식일을 예비하는 날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외적인 준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준비이다. 거룩한 안식일이 되기 전 우리 마음도 거룩하게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세상적인 염려와 근심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해야 한다. 마음속의 증오나 비통함, 불평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다 씻어내고 가족과 혹은 이웃과 서로 화평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과 평안 속에서 안식일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에 안식일은 이 땅에서 천국의 시간을 미리 맛보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이러한 안식일은 재창조를 경험하는 놀라운 변화와 회복 그리고 축복의 날이 될 것이다.

연구를 마치면서

안식일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문제점을 찾기 위해 연구하던 저는, 안식일에 관해 연구하면 할수록 오히려 이 안식일은 더욱 성서적이고 올바른 진리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거룩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안식일” 하면 율법주의요 이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을 통해 살펴본 바로는 안식일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표징이요, 우리 믿음의 고백이요,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창조주께서 죄가 존재하기 전 인간에게 주신 큰 사랑의 선물입니다.

또한 안식일에 관해 연구하면서 안식일은 단순히 토요일(날짜)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느 날이 예배일인가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충성과 신뢰의 문제요 누구를 경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의 권위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안식일 계명만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안식일의 중요성을 아는 사단이 어떻게 공격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안식일은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보면서 하늘 도성에 들어갈 자들을 일컬어 “그분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계 22:14 KJV). 사단은 오늘날 타협된 진리를 믿는 자들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은 예수의 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저는 이 놀라운 진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진리는 내게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그리고 그분의 오묘하고 깊은 뜻과 사랑을 새롭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안식일에 관한 저의 연구에 동의하십니까? 여러분도 우리의 창조주께서 친히 준비하신 이 놀라운 선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분을 만나는 거룩한 시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 하늘의 시간을 맛보고 싶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