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_질문이 생기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궁금해지고 꼭 찾기를 원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생각하고 있지 못하거나 생각해도 막연한 답변밖에 얻지 못하는 이 주제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번 호 신앙기사에서는 어떤 그리스도인이 참된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지게 된 질문과 답변을 통해 함께 성경의 참된 진리를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찾은 놀라운 발견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 편집실 -

1부: 질문이 생기다

저는 오랫동안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딜레마에 빠져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며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구를 정죄하고 싶은 마음도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저는 다만 제가 발견한 것을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저의 마음속에 떠올랐던 질문과 답을 찾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들을 여러분들에게 밝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밝은 빛을 찾아 함께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 진리를 찾아가는 저의 탐구여행에 함께 해주시기를부탁드립니다. - 무명의 어떤 그리스도인 -


난 내 나름대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고 일반 신도들에 비해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새 언약 가운데 있고 은혜 아래 구원받았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믿는 신조의 어떤 부분에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거나 그 질문에 대해 해결되지 않아서 혼란스러운 가운데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란, 소위 “의문의 율법” 아래서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키는, 아직도 옛 언약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고, 그 부분에 대한 확실한 답이 궁색하다는 사실이었다.“ 저들은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폐하신 율법을 애지중지하며 그분의 새 계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가? 왜 안식일을 그렇게 중요하게 앞세우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상하고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사람들이 막상 정직하게 그 주제에 들어가 보면 그 부분에 대한 확실한 대답보다는 막연하고 궁색한 답변만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한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게 되었다. 그 글은 내가 그동안 믿어왔던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나의 믿음을 검증하기 위한 성경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다.

폐해진 계명
그 글은 다음의 글인데, 이것은 1943년 출간된 J. Philip Hyatt 침례교 교수의 글이다.
“예수께서는 새로운 도덕법을 주시지 않으셨다. ... 그분께서는 도덕적 삶을 규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규칙들을 제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시기보다는, 그것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야 할 영원한 원칙들을 선포하시며 우리의 모든 행동을 다스리는 동기와 목적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다.
예수께서는 새로운 법을 제시하지 않으셨으나 또한 구약의 도덕적 가르침들이 정지되었다고 말씀하지도 아니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구약의 의식법과 예법들은 폐지되었으나, 십계명은 폐지되지 않았다.” from God`s Decrees for Moral Living, Oct. 1943, Vol. 57, NO. 10, p.5.
여기에 더해 다음의 요한 웨슬리의 글은 나에게 더 큰 도전을 주었다.
“구약의 희생제사와 성전 예배와 관련된 모든 명령과 의식을 포함하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해진 제사법과 의식법을 우리 주께서는 정말로 폐하러 오셨다. ... 그러나 십계명 가운데 포함되고, 선지자들에 의해서 강화된 도덕법은 그분께서 없이 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수들은... 일격에 모든 계명들을 파괴하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그들은 ‘우리 주께서는 율법에 대해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분께서는 그것을 폐하셨다. 오직 한 가지 의무만이 있는데, 그것은 믿는 것이다. 모든 계명은 우리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from John Wesley, “upon Our Lord`s Sermon on the Mount”, Discourse 5, in Works, Vol. 5(1829 ed.), p. 311, 317.
위의 글들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의문의 율법을 폐하셨지만 도덕적 율법, 즉 십계명은 폐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음의 성경 말씀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
그렇다. 십계명이 폐할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내 마음에 자꾸만 걸리는 것은 그 십계명 속에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안식일은 의문에 속한, 폐지된 유대인의 법으로 알려지지 않았는가? 그럼 십계명 중에 다른 9계명은 유효하나 넷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만 예수께서 폐하시고 대신 그분의 승리의 기념일로서 부활하신 날을 거룩히 지키도록 하신 것일까?
다음의 요한 웨슬리의 글은 나의 의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십계명 전에 존재한 계명
“‘제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그 날은 그대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이다. 그분께서는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그 날을 당신 자신의 것이라고 항상 주장하셨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그분께서는 그 날을 거룩하게 만드셨다. ... 그분께서는 태양이나 달, 천체들과 지구가 존속되는 한, 인간의 자녀들이 이 날을 ‘그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신’ 당신을 예배하는 날로 보내도록 지정하셨다.” John Wesley, “A Word to a Sabbath-Breaker”, In Works, Vol. 11(1830 ed.), p. 164-166.
위의 글을 보면서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첫째, 안식일은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아니었으며 하나님께서 창조 때에 제정하신 날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이날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거룩하게 하신 날이었으며 최초로 기억하라고 명하신 날이라는 것이다. 둘째, 안식일은 창조할 당시에 거룩하게 제정된 것이므로 나중에 유대인들을 위해 주어졌던 의문의 율법에 속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D. L. Moody 목사님은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다음과 같은 글을 기록하셨다.
“안식일은 에덴에서도 구속력이 있었으며, 그 이후로도 항상 유효하였다. 이 넷째 계명은 ‘기억하라’는 말로 시작하는데(영문 참고),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이 법을 돌비에 기록하실 때에 안식일이 이미 존재하였음을 보여 준다. 사람들은 다른 아홉 계명이 여전히 구속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이 한 계명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D. L. Moody, Weighted and Wanting (1898), p46, 47.

그렇다! 그럴 리는 없다!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안식일 계명만 폐지되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만 그것은 폐지된 것이 아니라 일요일로 변경되었을 뿐인가? 현대 기독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안식일이 폐지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부활로 그것을 대치하셨다는 것에는 어떤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수백 개가 넘는 교단들이 어떻게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킬 수 있겠는가? 성경의 명확한 증거가 없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고 명하신 계명을 무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이것은 단순히 날짜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기독교는 일요일을 지키는가? 거기엔 분명히 어떤 근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것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성경적인 확신과 검증이 없이 나의 신앙을 인간의 말이나 전통에 기초하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나의 믿음과 신조를 증명하기 위해 일요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