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_아직도 살아있는 계명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최선과 최상의 일을 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울타리를 치시고 우리를 안전하게 기르십니다. 그 행복의 울타리는 바로 하나님의 계명, 십계명입니다.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의 사본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며 그분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가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의 지침을 얻습니다. 계명이 폐해지고 없다는 것은 마치 우리 얼굴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계명은 우리를 인도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의 법도 안에서 행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므로 마음이 그분의 사랑 안에서 쉼을 얻습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의미와 계명을 주신 그분의 뜻과 의도에 대해 연구해 봅니다. 이 기사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


제1부: 아직도 살아있는 계명

아프리카의 한 추장이 거울을 선물로 받았다. 추장은 신기해하며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거울에 비친 사람이 못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는 거울에 비친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인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자기가 자신에 대해 그렇게 비하하여 말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추장은 너무 화가 나서 그만 거울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 후로 추장은 거울을 가질 수 없었고 다시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우리 자신의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 없다면 과연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우리 자신의 얼굴과 모양새를 볼 수 있을까? 예화에서, 거울을 깨뜨려버린 추장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었으며, 얼굴에 묻은 더러운 것을 보지 못하게 되어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기독교에서 계명이라는 단어와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계명은 십자가에서 폐해졌고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계명이란 단어는 마치 빛바랜 구세대의 유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계명은 우리 자신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해주는 몽학선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약 1:2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4).

기독교가 사람들을 구원의 도를 가르쳐주며 하나님께로 가도록 인도해주는 안내자인 계명을 버린 결과를 지금 톡톡히 거두고 있다. 사단의 공격의 목적으로 감행된, 기독교의 ‘계명이 십자가에서 폐해졌다’는 가르침은 기독교에 값싼 은혜만을 강조하는 이상한 현상을 초래하게 하였고, 이렇게 왜곡된 반쪽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성경의 바른 진리를 알지도 못한 채 오류 속에서 방황하게 되었다. 현 기독교의 타락상과 바른 복음에서 벗어나므로 인해 초래된 영적인 혼돈을 보라!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계명은 너무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 삶의 이정표와 길을 찾는다. 계명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1) 예수님께서는 계명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계명이 영원불변할 것이며, 결코 변하거나 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가 존재하는 한 하나님의 율법 계명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며,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며 우주를 다스리는 법칙이 되는 하나님의 법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 5:19).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계명을 강조하시며 계명을 지키는 생애를 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이 드러나 있는 계명을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의 참 자녀의 삶이며, 그것이 곧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되어 있는 그 유명한 산상 설교 중에도 율법을 지키는 생애가 무엇인지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는데, 특히 팔복에 설명하신 원칙들은 계명을 지키는 사람의 생애와 성품에 나타나는 원칙으로써,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살 하늘 시민들의 법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는 율법사의 질문에, 구원과 영생의 조건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확실하게 대답하셨다. 사람들은 율법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에 관한 기록을 읽으면서 “그것 보라. 사랑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으셨는가!”라고 외친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십계명에 나타나 있는 조항들은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관한 계명이며, 다섯째부터 열째까지의 계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련된 계명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계명의 모든 조항이 뜻하는 바이며, 계명을 지키는 자가 사랑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다.

2) 십자가에서 계명이 폐했는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에서 계명이 폐해졌다고 믿는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계명을 폐하기 때문에 더 이상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교회에서 선한 행실과 덕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나 은혜로 덮어주시는 용서에 대해서만 강조하지, 계명을 지켜야 한다거나 계명에 중요성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는다. 그리고 옛 언약인 계명이 폐했고, 새 언약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말 십자가에서 계명이 폐했는가?

1. 십자가에서 의문의 율법이 폐해졌다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 2:15).

십자가에서 폐해진 것은 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문의 율법이었다. 그러면 의문의 율법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하자 구원의 계획을 발표하시고, 앞으로 오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제사 제도를 주셔서 그것을 통해 믿음을 표현하고 죄를 용서받는 길을 마련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소 제도와 의식에 대한 지시를 주셨고, 모세는 그 의식 율법을 책에 기록하였다. 이 희생 제도에 관한 “의식 율법”을 신약 성경에서는 “의문의 율법”(ceremonial law)이라고 부르는데, 십자가에서 폐지된 율법은 바로 이 의식 율법이었다.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의 원형이셨던 예수께서 구속의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에 이제 성소 제도와 성소에서 드려지는 희생제물은 소용이 없게 되었다. 이제는 단번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신, 표상이 아닌 원형의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었으므로 성소 제도는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된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폐하신 것은 이 의문의 율법이었다. 아울러 이스라엘 백성이 생활 전반에 걸쳐서 지키던 규례들, 특별한 성일이나 유월절 같은 종교적 절기들, 절기와 안식일이 겹치는 연례적인 절기들 같은 규례들이 폐해졌다. 이런 매년 절기들은 경배드리는 날로 지정되었는데, 의식적인 절기 안식일들은 현대의 크리스마스 날처럼 주일 중 아무 날에나 떨어졌고 그들은 그 절기와 기념일들을 지킨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던 많은 의식들과 규례와 절기들이 모두 십자가에서 폐해졌다.

2. 십계명은 폐해지지 않았다

십자가에서 폐한 것은 십계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두 돌판에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은 하나님의 도덕적 품성과 그분의 뜻이 기록되어 있는 도덕률(moral law)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모든 의무가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법은 결코 폐하거나 변할 수 없다. 십계명의 율법에 대해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고 기록하였고(시 119:89), 예수님께서는 천지가 존속하는 한 이 십계명은 보존되리라는 사실을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계명은 그분의 보좌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는 의문의 율법을 종식했지만, 도덕적 율법인 십계명은 폐하지 않았다. 오히려 십자가는 계명이 폐할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의 정죄에서 인간을 구속하시고, 그 계명을 어긴 값을 치르시기 위해 세워진 것을 보여준다. 계명을 지키는 일은 예수님의 생명을 요구할 만큼 중요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계명을 폐하신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필요가 있었겠는가? 계명을 그렇게 쉽게 폐해버리실 수 있으셨다면, 계명을 폐하시고 그냥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지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율법을 범한 인류들의 죄를 대신하여 그 고통을 당하시며 죄 값을 치루실 필요가 있었겠는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계명이 있기 때문에 죄가 성립되는 것이고, 죄에 대하여서 하나님의 율법은 사망을 선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들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명을 폐하시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시고 높이신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쉽게 계명을 폐하여 버리실 수 있는 일이었다면 예수께서 그렇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통하여서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았어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완전케 세우신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3) 끝까지 강조된 계명

계시록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의 기록인데도 불구하고 계명을 행하고 지키는 일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다음의 성경절을 보자.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 계시록 22:14 킹 제임스 한글 성경 )
“Blessed are they that do his commandments, that they may have right to the tree of life, and may enter in through the gates into the city”(킹 제임스 영어 성경 )
참고: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역 한글 성경 )

이 성경 구절은 보통 성경과 킹 제임스 성경의 확연히 다르게 번역된 부분 중에 하나인데, 아주 중요한 교리를 말해주고 있으므로 이 원어의 뜻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계시록 22장은 새 하늘에 대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는 장이다. 마지막 선악의 대쟁투가 끝나고 새 하늘에 들어갈 사람들의 자격을 말하는 이 부분에서, 그 사람들은 계명을 행하는 자들, 지키는 자들이라고 되어 있다. 성경의 원문은 분명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계명을 행하는 자,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계명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마지막 장, 제일 중요한 마지막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계명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우리에게 언급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5 ). 또한 사도 요한은 기록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한일서 5:3)고 하였다. 성경은 계명은 폐지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명을 지키는 자가 마지막에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4) 언약과 계명

여기서 또 한 가지를 짚고 가자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언약이 계명이라는 틀린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언약은 십계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약이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대하여 세워진 상호 간의 약속이다. 계명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도덕률이지, 상호 간에 맺어진 약속이 아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이 언약이 될 수는 없다.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맹세한 약속을 말하는 것이지 십계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새 언약 하에서 믿음과 율법 사이의 관계를 이렇게 분명히 나타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3:31).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다. 곧 연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 없으므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과 은혜로 믿는 사람들을 변화시키시고 새 마음을 창조해 주시어, 그 계명을 마음과 생각에 쓰시므로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하셨다.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쓰이는 것이 곧 새언약에 들어간 사람의 특징이 되는 것이다. 계명은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없다. 다만 죄를 보여주어 고침을 받도록 하나님께로 인도할 뿐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롬 8:3,4) 하시는 것이다.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주의 계명을 지키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