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회사_왈덴시안 그리스도인들이 당한 박해

 

모든 교회사 연대기에서 왈덴시안들이 가장 잔인한 박해 중 하나를 겪었던 것은 알렉산더 7세(1655-1667, Malta의 종교재판소 출신)의 통치 기간이었다. 다음은 J. A. Wylie가 기록한 것이다.

라 토레의 전경

1655년 1월 25일에, 유명한 가스탈도의 명령이 나왔다. 이 칙령은 루세르나, 페닐레, 부비아나, 브리체라시오, 산 지오반니, 그리고 라 토레(간단히 말하면, 피에몽 평지와 그 수도의 경계선이 되는, 부유한 구역 전체)의 집단공동체에 거주하던 모든 왈덴시안 가정에 내려진 명령으로서, 삼일 이내에 그들의 거처들을 버리고, 봅비오, 앵그로그나, 그리고 로라 계곡들 속으로 은둔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반하면 사형에 처할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자기 토지들을 20일 이내에 로마주의자들에게 팔아야 했다. 하지만 기꺼이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버리기로 맹세한 자들은 그 칙령에서 면제되었다.

그 상황에서, 이 칙령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것을 상상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한겨울이었고, 알프스의 겨울은 더 북쪽 지방의 겨울에 버금가는 테러였다. 그 칙령이 발표된 그와 같은 날에, 어린아이들과 노인들, 병자들과 누워만 있는 자들, 맹인들과 불구자들까지 포함된 전 주민들이 물이 불어있는 강을 건너고, 눈 덮인 계곡들을 통과하고, 얼음으로 뒤덮인 산을 오르는 그 여행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필연적으로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그리로 내몬 그 칙령은 추위와 기아로 그들을 사형시키라는 유죄판결에 다름없었다. ... 이제 그 급류들을 건너고, 그 산길들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는, 이 불쌍한 행렬을 내려다보는 얼음으로 덮인 산정상은 차가웠다. 그러나 박해자들의 심장은 그보다 더 차가웠다. 그들에게 한 가지 대안이 제시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그들은 미사에 갈 수 있었다. 그들이 그것에 편승했는가? 역사가 레제르의 정보에 의하면, 거의 2000명의 회중들이 있었으나,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그 대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른 계곡들의 왈덴시안들은 이 가난한 유배자들을 환영하였고, 기쁘게 자기들의 초라하고 부족한 양식을 그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 전체 공동체가 마치 한 사람처럼 일어서서 떠나는 것을 보고 그들의 대적들은 몹시 놀랐다.

이 처음 불행에 이어 더 큰 재앙이 재빠르게 닥쳐왔다. 왈덴시안들의 일부만이 가스탈도의 그 잔인한 칙령으로 고통 받았다. 그러나 카톨릭 포교성성(카톨릭 포교담당기관)의 고착된 목표는 왈덴시안 전체를 박멸하는 것이었기에, 완전한 배반과 고의적인 잔인함을 아우르며 그 일이 전개되었다.

1655년 4월 17일, 드 피아네자 후작은 한밤중에 비밀리에 툴린을 출발하였고, 15,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그 계곡들 전면에 나타났다. 마침내 한 광풍이 갑작스러운 천둥의 굉음과 함께 들이쳤다. 1655년 4월 24일 새벽 4시에, 라 토레의 성채-언덕에서 한 신호가 떨어졌다. 즉시 일천 명의 암살자들이 학살 작업을 시작했다. 혼돈, 공포, 고통, 재앙이 한순간에 루세르나와 앙그로그나 계곡들 전체에 퍼져나갔다. 비록 그 아수라장에서 광적인 자들이 범죄에 절고, 피에 취했다 해도, 그들이 포교성성의 군사들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그 희생자들이 전력을 다해서 그 언덕들을 올라간다 해도, 그 살인자들이 그들을 추적하였다. 그들이 그 고지에서 굴러 떨어지자, 그 급류들이 곧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계곡들을 따라 피어오르는 그 어둔 연기 속으로 분출되었다. 한 명의 사제이자 수도사가 각각의 부대들을 동행하면서, 그 거주자들이 처형되자마자 집집마다 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아! 반복적으로 귓전을 때리는 그 소리들은 무엇인가? 죽어가는 사람들의 울부짖음과 신음이 메아리쳤고, 주변의 바위로부터 다시 메아리쳤다. 그것은 마치 그 산이 자기 자녀들의 학살로 인해 통곡하는 것 같았다. ‘마을들, 촌락들, 교회들, 대저택들, 농장들 그리고 건물들의 연기로 인해 그 땅은 용광로 같았다. 바티칸의 화염 속에서 모든 것이 타고 있었다.’

그 병사들은 검으로 재빨리 처형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새롭고 게다가 이제까지 들어본 적 없는 고문과 죽음의 형식들을 개발했다. 이날에 누구도 감히 분명한 어조로 이 사람들의 그 모든 역겹고 두려운 행위들을 기록해낼 수 없었다. 그들의 사악함의 전모는 결코 알려질 수 없다. 왜냐하면 결코 그 모든 것을 다 그대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레제르의 무시무시한 기록에서 우리는 다만 몇 가지 경우만 선별한다. 그러나 심지어 이 극소수 사례들도 그것들이 다소 온화하게 기록되었음에도, 우리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간다. 작은 어린아이들이 어머니들의 팔에서 강제로 떼어졌다. 그 아이들의 작은 발은 깍지 끼워졌고, 아이들의 머리는 바위 위로 힘껏 던져 졌다. 혹은 두 병사 사이에 붙들린 채, 아이들의 떨고 있는 팔다리는 우악스럽게 찢어졌다. 그들의 토막 난 시신들은 그 후 길가나 들에 버려져서 들짐승들의 먹이가 되었다. 병자들과 노인들은 거처에서 산채로 화형 당했다. 어떤 이들은 손과 팔과 다리가 절단되었고, 그 절단 부위에 불이 붙여져서 그들의 유혈을 지혈시키고, 그 고통을 연장했다. 어떤 이들은 산채로 가죽이 벗겨졌고, 어떤 이들은 산채로 구워졌으며, 어떤 이들은 내장이 도려내졌다. 혹은 자기 소유의 과수원에서 그 나무에 묶인 후 심장이 도려졌다. 어떤 이들은 두렵게 사지가 절단되었고, 다른 이들의 뇌는 끓여져서 인육을 먹는 사람들에게 먹혔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밭고랑에 못질하여 묶인 후, 마치 사람들이 토양에 비료를 주듯이 쟁기질되어 그 땅에 비료가 되었다. 다른 이들은 산채로 매장 당했다. 아버지들은 목둘레에 자기 아들의 머리를 두른 채 형장으로 끌려갔다. 부모들은 죽기 전에, 먼저 아이들이 폭행당하고 학살당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멈추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레제르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가 없다. 거기에는 치가 떨리고, 혐오스럽고, 괴기스런 행위들이 나오고, 전적으로 그리고 압도적으로 역겹고, 두렵고, 악마 같아서, 우리는 감히 그것을 옮길 수 없다. 속에서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내가 이 어둠의 자식들(어둠의 왕보다 더 검은)의 행위들을 기록하는 동안,’ 레제르는 말한다, ‘손이 떨려, 간신히 펜을 들 수 있었고, 눈물이 억수같이 흘러 잉크와 범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