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_황금률에 들어있는 용서의 법칙

 

황금률에 기본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말해주신 것인데, 바로 용서의 법칙이다. 그 법칙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줄 때만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법칙이다. 예수께서는 주의 기도문을 가르치신 후,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부언하셨다.

1)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벌을 준다

용서하지 않을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벌주게 된다. 세상의 심리학자들도 조언하기를, 용서하지 못할 때에 마음과 몸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므로 용서하는 것은 잘못한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남을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심리적으로 자신이 먼저 치유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심리학 박사 프레드 러스킨은 “용서란 평온한 감정이다. 그런 감정은 자신의 상처를 덜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고 그 사건에서 피해자가 아닌 승리자가 되었을 때 생겨난다”고 말했다. 마음속에 나에게 상처 입힌 사람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여유가 없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가 없다. 진정한 용서를 통해 마음의 평화로움을 느끼고, 상대방을 향한 미움에서 자신을 놓아주어야 내가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용서는 남을 위해 베푸는 이타적인 마음인 동시에 자신에게 베푸는 사랑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자비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끊어 버리게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 한 그들을 용서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물론, 회개와 고백으로 마음을 겸손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도리이긴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사람이 그 실수를 고백하든지 하지 않든지 간에 긍휼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누가 우리에게 아무리 심한 상처를 줄지라도, 불만을 품거나 상처를 받은 자신을 동정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용서받으려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

2) 정말 용서할 수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용서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거듭 잘못을 하고 죄를 고백할 때에 너무 진저리가 나서 너무 많이 용서하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 17:3, 4)고 하셨다. 만일 어떤 형제가 우리에게 죄를 범하거든 우리는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 형제가 와서 죄를 자복할 때에 그의 겸비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그가 진정으로 자복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일곱 번만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 곧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하여 주신 숫자만큼 용서해 주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남을 용서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용서할 수 있을까? 그 비결이 무엇일까? 그 비결은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악한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내가 주님 앞에 얼마나 흉악한 죄인이며,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여러 번 용서해주셨는가를 깨달으면 된다.
예수께서는 그 교훈을 주시기 위해 “용서하지 않는 종”에 대한 비유를 말씀해 주셨다. 한 왕이 일만 달란트라는 거액의 빚을 진 종을 불러들여 빚을 갚으라고 하자 그는 떨면서 왕의 발 앞에 엎드려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고 탄원하였다.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마 18:23~35절 참조).

비유에서 왕이 베푼 용서는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 하심을 나타낸다. 종을 불쌍히 여기고 빚을 탕감해 준 왕은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죄를 범한 인간은 죄의 선고 아래 있게 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신성을 인성으로 가리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생명을 버리셨다. 그리하여 각 사람에게 피로 사신 용서를 값없이 제공해 주셨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

3)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비유에서 빚을 탕감받은 종이 자기 동료에게 어떻게 했는가? 그는 일만 달란트에 비하면 너무나도 형편없이 적은 금액인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고 옥에 가두는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에게는 자기를 용서해 준 주인의 모본을 따를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는 자기가 받은 자비를 베풀 기회를 져버렸다. 그는 조금만 더 참아 달라는 동관의 호소에 유의하지 않고 악하게 대접하였다. 이 은혜를 저버린 종은 마음속에 오직 동료가 자기에게 빚진 적은 금액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가! 자신이 하나님께 지은 죄를 다른 형제가 자기에게 지은 죄와 비교한다면 일만 달란트 대 백 데나리온, 거의 백만 대 일이나 되는데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다. 그가 비록 한때 죄의 용서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할지라도, 현재 그가 나타내는 각박한 정신은 그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분리했고 죄 사함을 받기 전과 똑같은 형편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회개를 부인했고 그의 죄는 마치 그가 회개하지 아니했던 것처럼 그에게 머물러 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이 비유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하나님의 자비와 인간의 몰인정을 대조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용서는 공로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로써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그 사랑을 내 것으로 삼았는지 아닌지를 증거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하셨다. 용서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그렇게 함으로 결국 자기의 용서의 희망을 내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의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야 한다. 어떤 것으로도 용서하지 않는 정신을 변명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을 간구하면 우리의 마음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가까이 끌리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자비와 사랑의 물결이 그 사랑과 용서를 받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다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흘러들어 간다. 이것은 마치 서로 주고받게 되는 황금률의 법칙이 서로의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것과 같이 되어 진정한 용서라는 기적을 낳게 만드는 것이다.


** 마치면서

예수님의 생애는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황금률의 진수를 보여준 생애였습니다. 친절하고 예의 있고 사려 깊으신 예수님의 부드러운 말과 행동은 많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이끄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황금률이 고스란히 드러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가 취급받고 싶은 대로 남을 취급하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한다면, 그곳이야말로 예수님이 거하시기 기뻐하시는 천국이 아닐까요?

황금률을 실천하려면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신다면 우리 마음에는 사랑의 결핍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면 우리는 동료 인간들과도 사랑의 금고리로 연결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가지셨던 긍휼과 동정심이 우리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궁핍한 자들과 불행한 자들이 우리를 찾아오기까지 기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시던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처럼, 궁핍한 자와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있는 곳에 빛이 넘치게 비칠 것이며, 우리가 있는 곳에 사랑이 넘칠 것입니다.

사랑의 황금률을 실천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 주위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체험해 보십시오! 그러면 황금률 속에 들어있는 거짓말 하지 않는 황금의 법칙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분이 있는 곳에 축복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황금률을 실천하는 여러분이 있는 곳은 작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