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_황금률의 비밀, 사랑

 

총제목: 황금률의 진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
황금률이라고 불리는 이 아름다운 법칙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 중에 으뜸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윤리와 법칙을 가르쳐주고 있는 이 황금률은, 특히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이루어야 할 사명을 받은 마지막 성도들을 위한 신앙의 정확한 지침과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황금처럼 고귀하고 지키면 모두에게 축복이 되는 이 교훈을 깊이 연구할 때에, 우리는 이 교훈 속에 들어있는 깊은 의미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상과 소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일 황금률을 생애에 실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사람은 정말 넉넉히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황금률 속에는 깊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고, 의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들어있고, 하나님의 심판이 들어있습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황금률 속에 들어있는 깊은 의미를 함께 공부해 봅니다. 하늘 왕국의 법칙이 되는 황금률에 대한 기사가 독자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법이 새겨지는 데 도움을 드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

제 1부: 황금률의 비밀, 사랑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장 12절).

황금률(Golden Rule)이라고 불리는 이 유명한 교훈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에 언급되어 있다. 황금률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애에 반드시 나타나야 할 삶의 원칙과 특성으로, 보석으로 따지면 마치 황금과도 같이 귀중하고 만고 불변의 소중한 진리이기 때문에 황금률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 같다. 황금률이라는 표현을 누가 시작했는지 그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7세기부터 사용되었다고 알려졌는데, 3세기 때 로마의 황제였던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이 문장을 금으로 써서 거실 벽에 붙인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금률은 남에게서 받고 싶은 대접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는 것이다. 남에게서 취급받고 싶은 그대로 상대방을 취급해 주라는 것이다. 황금률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의 다른 곳에서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로 같은 진리의 원칙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은 선한 것이거나 악한 것이거나 간에 분명히 되돌아온다. 우리가 주는 것은 무엇이나 다시 받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축복, 입으로 하는 말, 행동, 감화력 등등, 모든 것은 똑같은 방법으로 되돌아온다. 마치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과 같이… 사랑은 사랑을 부르고 용서와 자비는 용서와 자비를 부르지만, 악은 악을 부르고 보복은 보복을 부른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낙심시키는 일을 거리낌 없이 해 온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통과하게 한 그 땅을 자신도 지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은 갑절이 아니라 네 배나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황금률은 신기한 힘을 가졌다. 정말 베푸는 대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황금률의 비밀과 그 속에 담긴 축복의 법칙들을 연구하고 실천하면 우리는 귀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1) 황금률, 계명의 완성

예수께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 뒤에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덧붙이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 법칙이야말로 계명뿐 아니라 모든 성서의 내용과 예수께서 가르친 모든 윤리와 사상을 요약한 것이라는 뜻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는 로마서 13장 10절의 말처럼, 사랑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황금률을 지키고 실천하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속에 이 위대한 법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거듭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법칙이 생애에서 삶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법칙이 바로 당신이 계시하신 십계명의 본질과 선지자들을 통해 가르치신 진리의 근간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황금률에 담긴 깊은 의미를 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1. 십계명에 나타난 황금률

십계명 중에서 특히 다섯째 계명부터 열째 계명까지를 보면 우리들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떤 관계를 성립하며 살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탐내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받고 싶은 그 친절하고 자비스러운 행위를 남에게 베푼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로 요약되고, 황금률을 지키라는 것으로 집약된다. 황금률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모든 교제 관계 가운데 반드시 실행되어야 할 귀중한 원칙으로 황금률을 제시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황금률을 삶에서 자신의 실제적인 원칙으로 삼는 사람들만이 하늘 영광의 왕국에 들어가기를 기대할 수 있다. 동료 인간에 대한 우리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의 확실한 지표로 나타난다. “그대에게 싫은 것은 이웃에게 하지 말라.” 탈무드에도 랍비인 힐렐(Hillel)의 말로 생각이 되는 이런 말이 나온다. 그리스도인이 동료 인간을 취급하는 방법이야말로 그 사람의 참신앙의 진위를 가려내는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2.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리라. 심판 날에는 한 가지 점에 의하여 판결이 결정될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그리스도를 위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 지극히 작은 자에게 어떻게 행하였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을 위하여 고통당하는 모든 자들 가운데서 나를 알아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우리 주님의 형제들이다. 우리가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예수께서는 이 세상 가족의 일원이 되셨다. 그분은 인자가 되시고 아담의 모든 자녀들의 형제가 되셨고, 자신을 성도들뿐 아니라 모든 죄인들의 형제로 여기신다. 그분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소홀히 취급하거나 지나쳐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편애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영혼을 똑같이 돌보며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우리의 이웃과 형제를 위해 행한 모든 친절한 행위와 자비의 행동은 주님께 행한 것과 똑같이 가납된다. 그리고 이것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사랑, 곧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그대로 행하는 황금률의 실천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왼편에 있는 멸망에 들어갈 자들은 가난하고 고통받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등한히 한 죄악에 대해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배고프고 목말랐던 자는 나였고, 나그네였던 자는 바로 나였다고 말씀하신다. 병든 자가 나였고, 옥에 갇힌 자도 나였으며, 그대들이 풍족하게 차린 식탁에서 즐기고 있을 때에 오두막집에서나 혹은 행인이 없는 거리에서 굶주리고 있던 사람은 나였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대들이 호화스러운 집에서 편히 쉬고 있을 때에 나는 머리 둘 곳이 없었고, 그대들이 값진 의복으로 옷장을 채우고 있을 때에 나는 헐벗고 있었으며, 향락을 추구할 때에 나는 옥에서 신음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심판 때에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실 자들은 신학이란 학문을 알지 못했을는지 모르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원칙들을 마음에 품고 실천한 사람들, 곧 황금률을 실천한 사람들일 것이다.

2) 황금률의 근본은 사랑

황금률은 사랑에서 완성된다. 사랑하지 않으면 황금률을 실천할 수가 없다. 그리스어의 “아가페”란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사랑할 만한 가치나, 명분이나, 사랑하고픈 감정 같은 조건들이 전혀 없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이런 사랑을 이웃에게 가지지 않으면 황금률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애석한 것은 우리에게는 이런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랑을 사랑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매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이 자비의 원칙을 지키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우리는 이 사랑을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얼마나 간구해야 할 것인가!

1. 예수님의 성육신에 나타난 황금률

예수님의 생애야말로 몸소 황금률의 법칙을 실천하고 보여주신 산 모본의 생애였다. 예수님의 생애에 나타난 무한한 사랑과 동정과 자비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나 자격이 없을 때에 퍼부어진 것이다. 예수께서 인성을 쓰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신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를 동정하셔서 시험당하는 자를 도와주시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받고 싶은 대접을 받게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똑같이 느끼시며, 똑같은 상황에 처해보셨던 예수께서는 우리를 더 잘 이해하시고 더 잘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형편에 처하셨다. 그렇게 하는 데는 대단한 위험성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무릅쓰시면서까지 잃어버린 자들을 위해 행하신 모든 사랑과 희생과 헌신은 당신의 생명을 다 주시면서까지 인간을 사랑하신 그 숭고하고 놀라운 사랑에서 기원 되었다. 성육신은 황금률의 극치를 우리에게 현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셨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그분은 자원해서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지상에 계실 때도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에게 더 가까이 오시기 위해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벗어 버리시고 그 대신 사람의 모양과 사람의 형상을 입으셨다. 예수님은 한 인간으로서 땅 위를 걸어 다니셨다.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으로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 우리 주님은 영광과 위엄을 버리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포기하셨다. 궁핍한 가운데서 사람들 사이를 행하시면서 가는 곳마다 축복을 뿌리시며 다니셨지만, 그분은 말 한마디면 여러 군단의 천사들이 호위하고 그분께 충성을 맹세하는 그런 놀라운 분이셨다. 그러나 지상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하였고, 그를 믿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주님을 두른 분위기는 찬양의 노래 대신에 죄와 저주로 오염되어 있었고, 비천함과 궁핍함이 그분의 운명이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용기가 꺾인 자들에게 힘을 주시는 하늘의 사명을 다 하려고 이곳저곳을 다니실 때에 우리 구세주께 축복을 비는 목소리는 별로 없었고, 나라의 위대한 사람들은 멸시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무시하였다. 그것은 우리를 좋은 대접을 받게 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그분의 사랑의 황금의 법칙이었다!

2. 예수님의 희생과 황금률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누리실 수 있는 영광의 풍성함과 불멸의 입술에서 쏟아져 나오는 풍성한 찬양의 소리들, 그리고 그분을 경외하는 찬양에 참여하는 수천 수백만의 하나님의 세계의 많은 음성들과 천사들의 경배를 멀리하신 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취하셨다. 그분의 신성으로 죽음을 가로막을 수가 있었으며, 죽음이 지배하는 곳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분께서는 자원해서 그의 생명을 포기하셨다. 그것은 우리 죄지은 인간들을 그렇게 사랑하시고 생명을 주심으로 불멸의 영생을 주시려고 하심이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담당하시고 그의 거룩하신 영혼 위에 태산같이 밀려온 형벌을 대신 견디셨다. 인간을 영원히 죽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그 생명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으셨다. 그가 죽으신 것은 죽음을 강요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원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겸손이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온 하늘의 보화를 한 선물 속에서 쏟아 놓으신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우리로 아름다운 대접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비천한 대접을 받으신 사랑의 구세주! 우리는 고귀한 희생을 치르신 예수님의 생애에서 놀라운 황금률의 진수를 본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의 발걸음마다 수치와 부끄러움이 따를 것을 아셨지만 그 계획에 착수하신 것은 정죄를 받아 신음하는 세상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그의 몸을 낮추셔야 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거기서도 더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다. 곧 자신을 낮추어서 모욕과 비난과 부끄러운 참소와 능욕을 지셨다. 그분은 자기 땅에 오셨을 때에 그분이 쉴만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그분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이곳저곳으로 도망을 다녀야 하였다. 그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이 그를 팔아넘겼고 그의 가장 열성적 제자 중 한 사람은 그를 저주하고 부인하였다. 조롱을 받으시고 가시관을 쓰셨으며, 채찍에 맞으셨고 십자가를 지고 가신 후, 참혹한 죽음을 맛보셨다.
주님께서 멸시와 천대를 못 느끼시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위해 복종하셨다. 다른 어떤 사람도 느낄 수 없는 쓰라린 비애를 느끼셨고, 순결하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분이셨지만 악한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다. 숭배를 받으시던 구주께서 지극히 높은 존귀의 자리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자기를 낮추시고 내려오셔서 죽기까지 하셨다.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잔인한 죽음, 범죄자로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죽음까지 당하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우리로 더 나은 대접과 좋은 취급을 받게 하시기 위해…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당신은 황금률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가?
만일 우리가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을 생각한다면 조금인들 우리 자신을 높이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을까? 그리스도의 삶과 그 고난과 치욕을 살펴볼 때에, 감히 우리는 마치 아무런 시련이나 수치나 치욕을 당해서는 안 될 사람인 것같이 교만하게 머리를 들 수 있겠는가? 우리가 갈보리를 바라볼 때에 자아를 높이는 정신을 부끄러워하게 되고, 그렇게 행하기 어려운 황금률을 지킬 수 있는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신 이 법칙은 얼마나 놀라운 사랑의 황금률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