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_우리 믿음의 활용

 

성경은 우리가 믿음을 가져야 할 것에 대해서 보다는 믿음을 길러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고 있다. 아무도 이미 받은 믿음을 기르지 않고서는 그 받은 믿음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이 더욱 자라고"라고 말씀한다(살후1:3).
다시 반복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스스로 그 말씀 하는 것을 이룰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 하신 것을 이루게 하려고 오직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을 연습하고 그런 믿음을 활용하는 것이 곧 믿음을 기르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선물, 믿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엡 2:8) 이 선물을 모든 사람에게 주신다는 말씀이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롬 12:3).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이 믿음의 분량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자본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 자본을 가지고 증가시키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이 자본은 사용하는 만큼 늘어나며 활용하기만 하면 매우 잘 자라나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롬 10:9). 이처럼 믿음 곧 믿음의 말씀이 바로 모든 사람에게 매우 가까이 있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에 그들은 사단에게 굴복하여 사단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는 죄로 기우는 성향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인간과 사단 사이에 연합과 평화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 이 연합을 부수고 이 평화를 깨뜨리셨다. 주님은 그의 말씀으로 이 일을 하시고 사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창 3:15). 하나님만이 여자의 후손과 사단의 후손 사이에 혐오감을 넣어줄 수 있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던들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단과 연합하였을 것이다. 타락한 천사들과 타락한 인간 사이에는 본래부터 적의가 없었다. 둘 다 배도를 통해서 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악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항상 악이 선을 대적하며 연합을 이룬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 사단을 혐오하는 능력이 없어진다. 하나님의 개심시키는 능력이 날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역사하지 않는다면 신앙심이 없어지고 오히려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인이 되는 것보다 사단의 포로가 되기를 선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죄와 사단에 대한 혐오감을 넣어 주신다. 그런데 이 일은 말씀의 능력이 마음에 역사할 때에만,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할 때에만 일어난다.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으로 각 사람의 마음 속에 넣어주시는 사단에 대한 혐오감과 악에 대한 증오심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을 갈망하게 한다. 이와 같이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사단에 대한 적의와 악에 대한 증오심을 심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주신 믿음의 선물이다. 이것은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이며 모든 사람들의 입과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으며 그 믿음을 키워나가는 것은 각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모든 세상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신 그 믿음을 행사하자. 이 믿음을 행사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복음의 과학이다.

2)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의 의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른다. 성경에 아브라함에 대하여 기록된 것은 믿음이 무엇이며, 믿음은 그 믿음을 가진 자에게 무엇을 행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무엇을 어떻게 믿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 아브라함은 80살이 넘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늙었으나 아이가 없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다(창 15:5).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 말씀 하신 일을 기대하였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러나 사라는 그의 기대를 하나님의 말씀에만 두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위하여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창 16:2). 그 순간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신뢰하는 믿음에서 빗나가기 시작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끝까지 바라고 의존하는 대신 사라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아이가 태어나기는 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사라에게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서 생긴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도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후사를 삼으시지 않았다. 그런 후에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시고, 약속하신 후손을 통하여 그를 "열국의 아비"가 되도록 할 것이며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후손과 언약을 세우는 일에 관하여 계속 말씀하셨다. 또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꾸셨다. 왜냐하면 사래도 약속하신 후손을 통하여 "열국의 어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영케 할찌라. 그가 열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창 17:15-21).

이 모든 일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사라는 약속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데에 있어서 오직 그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사라는 그의 계략은 단지 불화와 고통만을 가져오고 약속의 성취를 지연시킬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들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하게 붙잡지 못했으며 그러므로 이제 그 모든 계략을 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지금 아브라함은 아흔 아홉 살이 되었다. 그러므로 어쨌든 이것은 말씀의 성취가 어느 때보다도 더 요원한 것같이 보였으나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하고 보다 큰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그대로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무엇을 의존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그 말씀 하신 바를 이루시도록 완전히 그 말씀에 매달렸었다. 그들 자신들의 모든 행위와 책략과 계획과 노력을 버리고 그 말씀 하신 일을 이루시게 하려고 오직 믿음에 의지하고 오직 말씀에 매달리고 완전히 그 말씀에만 의존하였다. 드디어 그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여 약속해주신 자손이 태어났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다시 말하면 인간은 무력하지만 말씀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므로 기적이 일어났다.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히 11:11). "그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성취되었다. 이것은 참된 믿음을 가르치는 성경의 교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브라함에게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로 여기셨다. 그러나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25).

자신들의 모든 행위와 계획과 노력을 거부하고 인간적으로 완전히 무력한 가운데서 그 말씀 하신 일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사람들은 모두 믿음에 속한 자들이며 믿음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의로 복을 받을 자들이다. 믿음을 행사하는 법을 아는 것 이것이 복음의 과학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의 과학은 과학 중의 과학이다.

3) 시험을 통해 자라는 믿음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스마엘을 낳게 하였던 모든 불신의 계획을 완전히 청산하고, 오직 믿음 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했을 때에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태어났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노선과 참된 믿음에서 벗어났었지만, 이제 오직 말씀과 참된 믿음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믿음은 시험을 통과하고 이겨야 비로소 의롭게 되는 믿음이라고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믿음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을통과하는 것은 믿음을 자라게 한다. 이제 이삭을 얻었으나 이삭까지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시험이 다가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아브라함은 오직 말씀만을 신뢰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삭을 받았다. 이삭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자손이었다. 이삭이 태어난 후에 하나님은 그 말씀을 확증하시면서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다(창 21:12). 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이르러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할 것이며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하신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는데 지금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니 어떻게 된 일인가?
만일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면 그를 통해서 모든 민족을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될 것인가?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하게 많을 것이라는 약속은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아브라함은 전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기로 하고 이스마엘을 내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정도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고 이삭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나 다름없이 느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면서 이삭을 드렸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이 말씀과 조화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 말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그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였다. 그는 그 말씀을 믿었고 그 말씀을 따랐으며 이런 말씀의 조화나 설명이 꼭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믿었다. 아브라함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리라! 전에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지만 내가 행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말씀으로만 돌아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약속의 자손 이삭을 주셨다. 그런데 이제 약속의 자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겠다! 하나님이 처음에 기적으로 이삭을 주셨으니 기적으로 그를 다시 살려주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를 번제로 바칠 때에 그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그를 다시 돌려주실 수 있는 기적은 오직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는 기적인데,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하실 수 있으시므로 그렇게 행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할 것이며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자손이 될 것이라고 내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삭을 다시 살리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행하신 일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나의 몸과 사라의 몸이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삭을 낳을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수 있으시므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으로 믿고 여호와를 찬양하겠다!”

이제 그의 마음은 정하여졌다. 아브라함은 일어나서 종들과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을 향하여 사흘 길을 갔다. 사흘째 되던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4, 5). 누가 갈 것인가? "내가 아이와 함께 … 가서" 그러면 누가 다시 돌아올 것인가? "내가 아이와 함께 …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간 것처럼 꼭 그와 함께 돌아올 것을 기대하였다. 얼마나 큰 믿음인가!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 그 다음에 이삭이 잿더미에서 살아나 함께 돌아올 것을 기대하였다. 왜냐하면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자손이라 칭하리라 또는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약 2:23). 더 나아가서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고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 4:23~24).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가져다주는 믿음이다. 이것이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며 이것이 복음의 과학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