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권두언

 

지금은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할 때입니다.
머지않아 흔들림이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온갖 폭풍우와 시험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시험하고 깎고 다듬어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까지 쉬지 않고 역사합니다.
진리의 말씀에 자신을 비춰보아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회개하며,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의 영으로 새롭게 하심을 입지 않으면 아무도 마지막 흔들림의 때에 안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곧바른 진리의 권면을 받아들여 영적인 표준을 높이며 자신의 생애를 개혁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우리를 흔드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말세의 징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흔들림 중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현상은, 진리가 부족한 영적 상태를 드러내고 또한 진리가 의의 복음과 표준을 제시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순종하기보다는 그것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는 진리가 제시하는 모든 원칙과 요구에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시험하고 계십니다.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모든 시험을 견디고 이긴 자들, 어떠한 대가도 감수하고 참된 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고에 유의한 사람들은 늦은비를 받고 하늘로 승천하기에 합당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흔들림에 관해 연구해 봅니다.
진리에 굳게 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강병국 목사                                                

Love Letter_노을녘에 서서

 

 

강영은                                                                                                   

 

그날도 오늘처럼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겠지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시며,
차마 버릴 수 없어 주저하시며,
당신은 자꾸 뒤를 돌아다보셨지요.


노을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아름다운 도성,
그러나 가슴에 칼을 품은 도성 예루살렘…
선지자들을 돌로 쳐 죽이고,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흘릴 예루살렘은
석양의 지는 빛을 받으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지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당신의 흐느끼는 입술에서
비통한 울음이 터져 나왔을 때
아름답지만 잔인한 그 도성은
당신의 통곡의 이유를 알았을까요?


서산에 지는 태양이
택함 받은 도성을 떠나기 싫은 듯 머뭇거릴 때
회개하지 않는 간악한 그 도성은
사랑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당신의 눈물의 의미를 알았을까요?


그날도 오늘처럼
노을로 온 천지가 붉게 타고 있었겠지요.
감람산에서 사모하며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는 당신의 눈에,
천천히 떠나시며 한 번 더 성을 돌아보시는 당신의 마음에,
지는 해 마지막 광선 속에 빛나던 성전과 망대와 누각이,
자비의 끝을 재촉하며 당신을 밀어내던 백성들의 얼굴이 영원히 슬프게 조각되었을 그날도 말입니다.

당신의 기도와 눈물로 거룩하게 되었던 계곡과 작은 숲들,
당신의 사랑과 치료의 물결로 적셔졌던 마을과 작은 고을들,
이젠 다시 품을 수 없는 성을 뒤로 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시던 당신의 외로운 뒷모습…

하늘의 심판을 부르는 위선과 외식을 책하시던,
보지 못하면서도 본다고 우기던 교만을 책하시던,
돌이키라고 호소하시던 눈물 섞인 목소리…

오늘 노을녘에 서서
붉게 타는 하늘을 바라보며
당신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세상을 향해 오랜 세월 쏟아부으신…
우리의 고집과 반역을 오래 참아주신 당신의 사랑을…


아직도 세상에 길게 드리우는 자비의 손길처럼
지는 태양이 마지막 긴 그림자를 남기는 이 저녁

노을처럼 타는 당신의 사랑이
가슴 깊이 밀려 들어옵니다.

그 때 예루살렘을 향하던 당신의 통곡이
행여 나를 위한 것이 될까
행여 우릴 위한 것이 될까
가슴 졸이며 두 손 모읍니다.

 

제1부_흔들림을 가져오는 곧바른 진리

 

총 제목: 흔들림이 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잘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 신앙이 참된 것인지 시험하고 증명해야 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흔들림의 바람이 많이 불 것인데, 그 흔들림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들을 흔들어 떨어지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시험하십니다. 영혼을 책망하는 하나님의 곧바른 증언으로 각 사람의 신앙과 동기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흔들림과 흔들림이 일어나는 이유, 그리고 그 흔들림에 대비하여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함께 연구해 봅니다. 이 기사가 진리에 굳게 서는 일에 큰 유익이 되는 기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실 –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창조의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새롭게 만든다. 그러나 또한 그 말씀은 각 사람의 동기와 마음을 드러내고 심판하고 시험하여 흔들리게 한다. 예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내가 와서…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요 15:22)고 하셨다. 말씀은 심판한다. 말씀을 순종하는지 하지 않는지, 그것을 안내자로 삼는지, 말씀을 받아들이는 각 영혼의 경우와 반응의 여부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만든다. 말씀은 생명이나 사망, 그리고 구원이나 멸망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며 운명을 결정지게 하고 가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말씀은 그렇게 하는 중에 각 영혼에게 흔들림을 가져온다.

진리는 타협할 수 없는 곧바른 것이다. 곧바른 진리를 전하고 말하는 것을 곧바른 증언이라고 한다. 그것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영혼들에게 전하는 것을 말한다. 때때로 곧바른 증언은 사람들의 마음에 고통과 아픔을 주기 때문에 자주 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나 곧바른 증언을 진실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것은 영혼 속에 회개와 부흥과 개혁을 일으키고 표준을 높여준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세대를 위한 곧바른 증언은 무엇이며, 그것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1) 예수님의 곧바른 증언과 제자들

예수님께서는 항상 곧바른 증언을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영혼이나 단체나 사회를 향해 그들의 상태에 대해 직접 지적하여 말씀하셨고 그것을 고쳐주셨다. 또한, 그들이 당할 앞일에 대해 경고해 주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 앞에 닥칠 고난과 십자가의 시련에 대해 미리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시험과 환난을 경고받지 않은 채 그 사건을 당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미리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여러 차례 말씀하시고 경고해 주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곧바른 증언이 너무 듣기 고통스럽고 싫어서 듣지 않았다. 그들이 현세의 영광을 가져올 메시아의 왕국과 현세의 영광을 꿈꾸고 있는데, 자꾸 반복하시는 그들의 주님의 곧바른 증언, 곧 그분께서 고난과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는 예언과 경고는 너무 듣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 곧바른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들은 그것을 위해 자신들의 영혼을 준비하지 않았고, 그들은 심한 흔들림을 당하고 쓰러질 위기에 처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생애의 모든 꿈과 소망이 끝난 것과도 다름없이 느껴졌던 그때에,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혹시 그들이 기만당하지 않았는가 하는 유혹마저 받던 그 무서운 시련의 때에, 만일 그들이 예수님의 경고와 곧바른 증언을 받아들였더라면 얼마나 그 시련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을까! 그들은 왜 그렇게 절망의 시간을 보냈을까? 예수님께서 가장 친애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못 박혀 돌아가실 것과 제3일째 부활하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단 말인가? 그분께서는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미리 명백하게 말씀하셨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듣기를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할 수도 없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예수님의 경고에 대해 유념했더라면 그들은 일요일 이른 아침에 다락방에서 우는 대신 무덤 앞에 가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만일 그랬다면, 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준 부활의 증언은 직접 눈으로 본 것이었기 때문에 얼마나 강력한 것이 되었겠는가!

2) 우리를 흔드는 곧바른 진리의 증언

우리는 제자들이 범했던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깨우쳐주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현세의 헛된 소망을 지적해주는 주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련의 때에 다 도망가서 주님을 슬프시게 하였다. 제자들이 어떤 주제가 그들의 귀에 듣기 싫은 것일 때 그 증언을 듣기 멈췄던 것을 상기하고, 우리 자신들도 우리의 상태를 지적해주고 고쳐주는 곧바른 진리에 마음을 순복하여 우리의 영적 상태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듣기에 그렇게 즐겁지 않은 곧바른 말씀들과 예언들은 영혼을 교육하고 치료하며, 성장하게 하고 믿음을 굳게 세우도록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권면의 일부이다. 만일 우리가 듣기 좋고 취하기 좋은 부분만을 취하여 편식을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화의 길을 가지 못할 것이며, 앞으로 있을 흔들림의 때에 서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주제가 아무리 불유쾌한 것이라도, 또 그것이 아무리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결점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라도,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교회나 사회의 영적 상태와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영혼이 살게 된다.

우리들도 제자들처럼 진리와 메시지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듣기에 별로 유쾌하지 않은 곧바른 증언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지점에서는 말씀을 듣거나 순종하기를 멈출 위험이 있다. 진리의 말씀이 나 자신을 너무나 부인하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많은 현세의 욕망을 내려놓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인간의 욕심을 버릴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많은 개혁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증언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우리 앞에는 흔들림의 시기가 있을 것이다. 진리에 굳게 선 사람들, 하나님과 산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진리에서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에 충실하게 서서 신의를 변치 않는 것이 곧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이며, 그것이 그 사람을 하나님의 참 교회로 만든다. 신실한 자들은 하나님의 편에 남아있을 것이고, 불신실한 자들은 표면적으로 어떤 교회나 단체에 속해 있다 해도 하나님에게서는 떨어져 나갈 것이다. 충성된 자들은 하나님과 합하여 하나님께 속해 있지만, 불충성된 자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참 백성을 골라낼 것이며 영혼을 키질하고 체질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남아있는 알곡들에서 많은 겨가 날아갈 것이다.

제2부_흔들림이란 무엇인가?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5~29).

이 성경 절은 하나님이 진동할 모든 것들을 진동시키셔서 변동될 모든 것들을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당신의 계명과 말씀을 선포하실 때에 있었던 진동과 흔들림의 두려운 광경을 묘사한 것이고, 또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흔들려 떨어져 없어질 모든 것들을 언급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이 말씀은 마지막 시대에 진동하여 흔들려 떨어져 나갈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그 흔들림에 관하여 우리에게 경고해주고 있다.

1) 진동과 흔들림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굳게 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전에, 흔들려 떨어져 나갈 만한 것들이 다 흔들려 떨어져 나가는 일이 선재할 것이다. 그것을 “흔들림”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진리와 참된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시험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소돔에 멸망이 이르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세상의 타락상과 죄악이 노아의 때와 소돔의 멸망의 때와 같으리라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임했던 그 심판 때에 살아남은 사람이 그렇게 적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에 충성할 사람이 적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곧 많은 사람이 흔들려서 진리에서 떨어져 나갈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진동치 못할 나라”(히 12:28)를 받는 사람들은 모든 것들이 흔들릴 때 진동하거나 흔들려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들을 영존케 하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때 오직 의롭고 순결하고 참된 것만이 남을 것이다. 시험을 견딘 온전한 의인만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한 모든 것들, 죄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흔들릴 것이며 “진동”될 것이다. 죄와 그에 속한 것은 소멸하시는 불이신 하나님 앞에서 다 타서 없어질 것이며,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하늘과 땅이 있으라고 말씀했을 때와 같이, 그가 진동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없애기 위해 “또 한번”말씀하실 것인데, 이 두 번째 진동으로 마지막 때에는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은 흔들리고 다 제거될 것이다. 그러므로 흔들림이 오기 전에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흔들림에 관한 성경의 언급들

성경에는 흔들림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1.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 13:24~30):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는 이야기로서, 가라지인 쭉정이 신자들이 흔들려 떨어져 나가고, 알곡인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 곳간에 들여진다는 비유이다.

2.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 13:3~8, 19~23): 진리를 받은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유로서, 특히 돌밭이나 가시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환난이나 핍박, 또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흔들려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신실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3.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의 비유(마 13:47~50): 세상 끝에 이르러오는 심판인 선한 자와 악한 자의 분리를 가리키는 비유이다. 그물에 가득한 물고기 중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기고 나쁜 물고기들은 버림을 당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충성스럽고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인지 구별되며, 나쁜 물고기들은 흔들려 떨어져 나가는 유형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4. 양과 염소의 비유(마 25:32~46): 예수께서 오실 때,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는 것같이 구원 얻을 사람들과 멸망에 들어갈 사람들을 구분하시는 것을 가리키는데, 오른편 양의 무리는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고 진리의 편에 선 신실한 하나님의 참 백성을 대표하고, 왼편 염소의 무리는 진리와 하나님의 뜻에서 떨어져 나간 불충실한 사람들을 대표한다.

5. 열 처녀의 비유(마 25:1~12): 이 비유는 예수님을 믿노라고 말하며 기다리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이야기이다. 미련한 처녀와 슬기로운 처녀는 모두 말씀인 등을 가졌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가지고 있는 진리의 말씀대로 실천하거나 순종할 수 있는 힘, 곧 기름으로 상징된 성령의 능력이 없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진리를 순종하고 진리에 안착하는 경험을 한다. 결국, 말뿐인 그리스도인들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흔들려 떨어져 나가 멸망을 받게 됨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비유는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참 백성이 아닌 쭉정이들을 신실한 참 백성으로부터 골라내시고 분리하시는 것에 대한 상징으로 말씀하신 비유들이며, 흔들림을 견디지 못하여 떨어져 나가는 사람으로 묘사된 것이다.

3) 왜 흔들리는가?

“내가 맹렬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아모스9:9).
이 성경 절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체질”이라는 단어는 곡식을 타작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단어로써, 곡식을 흔들어 불필요한 겨나 이물질들, 그리고 깨어진 낱알이 불려 나가게 하는 과정을 말하며, 여기서는 영적인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참백성을 가려내시고 준비시키시기 위해 교회에, 단체와 모임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각 사람들의 생애에 흔들림을 허락하신다.

“체질”이란 말은 흔들림이란 말과 깊은 연관이 있다. “흔들림”이란 동명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것을 이리저리 움직임, 흔들리게 만듦, 신체적 혹은 정서적 동요의 결과로 떨림”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적 의미로서의 체질과 흔들림은,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을 굳게 만들어줄,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흔들려 떨어지게 할 시험과 시련의 과정이 있을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체질과 연관된 말씀은 예수님께서 위기의 시간에 제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밀을 까부르는 것이 곧 체질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체질을 당하듯 그의 믿음이 크게 흔들리고 시험당할 것을 보셨다. 그래서 경고의 말씀, 곧바른 증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주님을 세 번 부인할 그 놀라운 치욕의 사건을 경고해 주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에 대해 주의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으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자신의 영적 상태가 주님께서 진단하신 것보다 훨씬 더 나은 형편에 있다고 자부하였으며, 자신에 대해 낮게 평가하신 예수님의 경고에 대해 속상해하였다. 그러나 만일 베드로가 자신이 그렇게 심하게 흔들릴 것에 대한 주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는 얼마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열렬히 기도하였겠으며, 얼마나 경성하며 깨어 있었을 것인가! 그는 그 시험을 얼마나 의연하게 이겼을 것인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개인적으로 또는 교회 전체적으로, 가끔씩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특별한 믿음의 시련을 통과하게 된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지, 아니면 거친 바다의 흉흉한 파도 가운데 떠내려가도록 버려두셨는지 의심이 들만큼 어렵고 힘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진리 안에 굳게 서는 법을 배우게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백성은 특별한 믿음의 시련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서 흔들림과 체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일은 과거에 여러 번 일어났지만 역사의 마지막 무대에서는 아주 특별한 의미로서 더 큰 흔들림으로 다시 반복될 것이다.

제3부_흔들림의 이유와 단계들

 

많은 그리스도인을 진리에 안착하지 못하게 하는, 그리고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하게 만드는 흔들림이 있다. 흔들림의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와 단계를 함께 살펴보자.

I. 이설과 오류에 의해
II. 곧바른 증언에 반대하는 일에 의해
III. 핍박에 의해


I. 이설과 오류에 의해 흔들림이 온다

우리의 발이 진리에 서지 못하도록 흔들리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이설과 오류이다. 흔들림은 먼저 오류와 이설 때문에 온다. 마지막 시대에는 온갖 종류의 교리의 바람이 불 것이다. 이럴 때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한 사람들은 흔들려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들은 표면상의 신자일 뿐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깨우시기 위해 이설과 오류의 바람이 불도록 허락하신다. 만일 사람들을 영적으로 깨우는 여러 다른 방법과 수단이 실패하면 이설들이 그들 가운데 들어와서 역사하여 겨를 알곡으로부터 분리해낼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성령께서는 그 영혼에게 진리를 알 기회를 반드시 주실 것이다. 각 사람이 진리를 알 수 있는 균등한 기회와 은혜를 모두 공평하게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경고와 책망과 탄원은 각 사람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바벨론의 오류에 빠져 있으면 하나님에 대해 바로 깨닫지 못하게 되고 올바른 영적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참된 복음을 부인하고 그 복음과 진리에 믿음을 합하지 않는 것 또한 오류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재 기독교 안에 널리 퍼진 복음은 변질된 복음이요, 죄 속에서 태어나 죄를 지으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데 방해가 되는 바벨론의 오류들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여 참된 성화를 경험하며 살 수 있다는 복음을 반대하는 것, 그리고 성경 말씀과 예언들을 왜곡하고 지엽적으로 해석하여 이상한 운동을 일으키는 종교적 현상들은 모두 영혼들을 진리로부터 떨어지게 하는 흔들림들이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은 이설과 오류에 미혹되어 발이 미끄러지므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단의 유혹과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에 유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오류나 이설에 빠지는 것은 깊고 진정한 신앙의 결핍으로 인해서 생긴다. 사단이 들여온 이설을 식별하고 대항하는 데 실패함으로 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생애가 일반 세상 사람들의 생활보다 표면적으로 훨씬 나아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애에는 죄에 대한 승리가 없다. 사람이 유혹에 대해서 계속해서 정복당할 때마다, 성품에는 흠이 생기고 그들의 영혼은 날마다 상처를 받는다. 모든 점에 있어서 승리하고 정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에는 시험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오류와 이설들은 우리 각자들을 시험하여서 우리가 진정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와 말씀에 충성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보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II. 곧바른 증언에 의해 흔들림이 온다

하나님의 진리의 곧바른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영혼의 부족과 현 상태가 어떤지를 곧바르게 지적해주며 참된 회개를 촉구한다.
대표적인 곧바른 증언은 참된 증인이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시대의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나타나 있다. 이 메시지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영적 상태에 대해 가감 없는 권고를 주고 있다. 그 권면은 무엇이라고 마지막 교회의 상태를 진단해주고 있는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5~1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직접적이고 강한 권고로 마지막 교회의 상태를 지적하시고 책망하시며 권면을 주셨다.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무 부족이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 교인들의 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진단해주는 곧바른 참된 말씀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귀에 듣기 좋고 편안한 말씀들만 선호한다. 그리고 진리가 버려야 할 것들과 개혁해야 할 것들을 보여줄 때, 그것에 순종하고 버려야 할 것들을 포기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3,4).
이름 뿐의 많은 신자들이 곧바른 진리가 제시될 때에 순종하지 않고 반대하여 일어난다. 자신을 적나라하게 지적해주는 곧바른 권면이 듣기가 싫고 진리가 제시해주는 길로 나아가기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곧바른 증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흔들 것이다.

자신의 신앙이 어떤 과정이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은 성령께서 그들의 생애를 끝까지 주장하시도록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자신이 신앙의 어떤 지점에 이르렀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리하여 자신의 생활에 적정 부분에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하면 영적 자만에 빠지고 나태함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공로나 그동안의 걸어온 경과와 결과들을 보며 스스로 만족한다. 그렇게 되면 더 철저하게 개혁하고 회개해야 할 필요성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영적 성장이 멈추는 것이다. 그들은 참된 권고에 귀 기울이지 않으므로 세상의 유형을 쫓아서 조금씩 표류해 나간다. 그런 시점에 신실한 하나님의 메신저들이 일어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는 곧바른 증언들을 제시할 때, 이러한 곧바른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그 권면에 대항하여 일어난다. 이때에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에 흔들림이 일어나는 것이다.

곧바른 증언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흔들어 갈라놓는다.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회개와 거룩한 성화와 개혁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으로서의 적합성을 갖추게 되지만, 이 진리의 메시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성장을 멈추고 마지막 시련의 때를 위해 준비하는 일에 실패하게 된다.
이렇게 흔들리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은 영적인 타협과 진리에 대한 희석이다. 바로 그럴 때에 뜨뜻미지근한 영적인 상태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III. 핍박과 박해에 의해 흔들림이 온다

흔들림을 가져오는 세 번째 이유는 핍박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가려내시는 방법으로 핍박을 허용하신다. 이때 흔들림은 최고 정점에 도달하게 될 것인데, 이 때에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흔들리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마지막으로 정결케 하실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는 완전히 분리될 것이며 하나님의 편에는 오직 그분께 신실한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준비된 신실한 사람들이 바벨론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러내는 요한 계시록 18장의 큰소리 외침을 하게 될 때, 그것은 세상 역사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 될 것이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계 18:4).

핍박과 박해가 너무나 극심하기 때문에 흔들림의 첫 단계, 즉 교회 안으로 들어온 잘못된 이설과 오류에 휩쓸리지 않고 견디었던 자들이라 할지라도 이때에는 흔들려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 또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에 있는 죄를 지적하는 메시지인 곧바른 증언에 의한 흔들림의 두 번째 단계에서 견딘 자 중의 많은 사람이 이때 흔들려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들의 생명을 요구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참교회가 되고 진리에 굳게 서는 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흔들어 내기 위해 사단은 혼신의 힘을 다 할 것이다. 이 땅에 임할 환난의 시기는 인간의 은혜의 시기가 끝마쳐지기 직전에 있는 시기로서,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심하게 흔드는 시험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수많은 신실한 성도들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모든 것, 생명까지라도 포기하고 바쳐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으로 인해서 투옥당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경배하느냐, 아니면 인간이 제정한 계명을 지키고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서 선택을 해야 하는 엄숙한 시기가 될 것이다. 핍박과 박해의 시험은 극심하여서 철저하고 굳센 신앙을 갖지 않으면 진리를 위해 서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위해 견딘 사람들은 구속함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흔들림의 이유와 단계에 대해 연구해 보았다. 이러한 세 단계의 흔들림의 시험을 통과한 모든 사람들은 하늘에서 살 수 있는 그들의 적합성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충성하고, 모든 죄와 사단의 모든 기만을 극복한 사람들은 이 세 단계로 되어있는 시험을 다 통과할 것이다. 이때 이사야 4장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될 것이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에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사 4:2~4).

제4부_참된 증인의 권고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아멘이시요 참된 증인이 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보내는 기별과 권고가 무엇인가? 무엇을 경고하고 계시는가? 그 메시지는 우리가 우리 자신들의 영적 형편에 대해 크게 기만당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현 영적 상태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련하고 곤고하고 가난하고 눈멀었으며 벌거벗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느끼는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경고해주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참된 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면 “곧바른 증언”의 메시지에 유의하고 그 권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영적 상태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 많은 신자들은 곧바른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항하여 일어날 것인데, 그것으로 인해 흔들림이 오게 된다. 권고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회개하고, 버릴 것들을 다 버리는 철저한 개혁을 하며, 신앙과 생애의 표준을 높이는 것을 볼 때에, 권고를 거절하는 이름만의 뜨뜻미지근한 신자들은 그 메시지를 극단주의요, 광신주의요, 율법주의라고 부를 것이다. 그들은 값싼 은혜만을 주장하며 생애를 변화시키지 않는 왜곡된 믿음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는 정신 아래 “회개와 개혁”이란 말을 좋지 않은 개념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굴복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며, 세속을 극복하고 자아를 버리기 위해 애쓰는 노력이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우상들을 버리려는 노력을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계 3:39)고 호소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주 앞에 겸비하게 낮추고, 회개와 개혁을 갈구하며, 또한 예수님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무능력함을 인식하면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의 무한한 능력의 손에 우리를 온전히 바치고 맡겨야 한다. 마지막 교회의 영적 상태를 치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는 이 참된 증인의 권고에 귀 기울이는 자는 흔들려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권고들을 살펴보자.

1) 금을 사라

하나님께서는 금, 곧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권고하셨다. 금은 믿음과 사랑을 가리킨다. 곧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에 우리는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하시는가에 대한 참된 사랑의 역사를 깨닫게 될 때, 우리의 구원을 위해 마련하신 구속의 경륜에 나타난 놀라운 사랑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변치 않는 사랑에 우리 자신을 드리게 된다. 그럴 때에 우리의 믿음은 강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볼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에 생겨나는 믿음이 곧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많은 것을 이룬다.

마지막 여자의 남은 자손의 특성은 이런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우리가 예수의 믿음을 소유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없다. 또한 우리의 성품에 있어서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않을 순수한 금을 만드는 요소는 믿음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어떤 면들을 지적하는 견책과 책망의 기별을 듣게 될 때, 그것에 대항하여 일어서는 대신에 겸손하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된 생애를 들추어내셔서 회개하게 하시고, 더욱 그분의 성품을 완전하게 반사할 수 있게 하시는 역사에 대해 감사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증인이 될 것이며, 우리가 전하는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에 의해서 뒷받침될 것이다. 금은 불에 의해서 연단된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불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정결케 하는 과정이다. 연단과 시련을 통과하면서 우리의 믿음이 더 강하게 됨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감사드리자!

2) 흰옷을 사라

흰옷은 그리스도의 의이며,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혼인 예복이다. 우리의 영혼에다 입히기 위해 사라고 호소하시는 흰옷은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이며 의롭고 순결한 성품을 대표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심령의 순결을 나타내는 흰옷, 그리스도의 속죄하시는 피로 죄에서 깨끗하게 된 품성을 가져야 한다는 권고를 주셨다.

순결한 흰 두루마기는 본래 타락하기 전에 우리의 시조에게 하나님께서 입혀 주셨던 것이다. 이 빛의 두루마기는 하늘의 순결한 영적 옷의 상징이었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그 빛의 두루마기가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저희를 두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고 그들을 둘렀던 빛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들은 부끄러워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몸을 가림으로 하늘의 옷을 대신하려 했다. 이 일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모든 사람들이 늘 해온 일이다. 그들은 죄로 말미암아 벌거벗게 된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입는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옷으로는 의를 얻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준비하신 옷만이 우리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의의 옷 곧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에게 입혀 주실 것이다.

이 하늘의 두루마기에는 사람이 만든 실은 한 올도 섞이지 않았다. 인성으로 나타나신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품성을 나타내셨고 이 품성을 우리에게 나눠 주신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사 64:6)과 같다.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죄로 더럽혀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율법의 모든 계명을 지키셨다. 그는 당신의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칠 때에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연합되고, 우리의 뜻은 그분의 뜻에 합쳐지고, 우리의 정신은 그분의 정신과 하나가 되고, 우리 생각은 그분에게 사로잡히게 되어 마침내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이다.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은 옷이나 죄로 인해 벌거벗은 몸은 보지 아니하시고 여호와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이루신 당신 자신의 의의 두루마기를 보시게 된다.

대제사장인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을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슥 3:4).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가 입고 있던 더러운 옷이 벗겨지고 그리스도의 의를 대표하는 순결하고 흠이 없는 옷으로 갈아입히게 됨을 알 수 있다. 참된 증인의 곧바른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생애 속에 있는 모든 죄들을 가져가시도록 허용할 것이다. 그들은 견책과 책망을 받게 될 때, 그들 자신들의 정결함과 영적 회복을 위해서 주님께 열심으로 회개하며 탄원할 것이다. 곧바른 증언이 마음 깊숙이 들어오게 될 때, 통회하고 죄를 버리라는 음성을 듣게 되고, 그 음성에 귀 기울여 회개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의의 옷을 입게 된다.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흔들려 떨어져 나가지 않을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자손들은 모두 이와 같은 경험과 성품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3)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

예수께서는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신다. 이 안약은 라오디게아인들의 눈먼 상태를 알려주는 권고로써 자신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효약이다. 눈에 바르라는 안약은 성령의 안약으로서 주님의 은혜의 기름이며, 눈이 멀어 어둡게 된 영혼에게 영적 시력을 회복시켜주는 약이다. 우리는 자신의 영적 결핍을 보지 못하는 눈이 먼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영적 시력이 뜨여야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과 원수의 영이 하는 일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식별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진리에 대한 이해와 분별력을 얻을 수 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말하시리라"(요 16:13). 아멘이시요 참된 증인이 되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참된 영적 상태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호소하시면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라고 권하신다. 성령의 안약을 주시기를 간구하자!

제5부_흔들림에 대처하는 우리의 준비

 

마지막 때에 있을 흔들림과 구원받게 될 마지막 남은 무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1) 흔들림에 대비하는 길

1. 매일의 시험에서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흔들림에 대비하여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시험에서 승리해야 한다. 오늘의 시험들은 우리가 앞으로 만날 시험과 시련의 날에 우리가 굳게 견딜 수 있는 완전한 성품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주어진다. 참된 증인의 권면에 주의를 기울이고 모든 시험에 견디고 승리하는 자들은 늦은비를 받고 승천을 위해 적합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작은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용기를 잃고 낙망한다면, 우리는 최고의 시험을 견딜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있을 큰 흔들림의 시기,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매매를 하지 못하게 되는 때, 하나님께 충성하려면 생명을 버려야 하는 시험의 때가 올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타협하고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작은 시험들에서 승리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2. 사랑하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 점에서도 우리에게 완전한 모본을 보여 주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첫 번째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는 그를 핍박하고 살해하는 자들을 위해서 놀라운 용서를 보여주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이와 같은 진실함과 신실함을 갖고 기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채워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한 승리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경험이 될 것이다.

3. 믿음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영웅적인 용기와 순교자의 믿음이 필요하다. 지금은 두려워하여 뒤로 물러나 있거나 우물쭈물하는 태도를 보일 때가 아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련에 견디고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라는 말씀을 실증해 보일 수 있는 용기를 키울 것을 요구하신다(요일 4:18). 망설이는 자들과 불확실한 자들과 겁먹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뽑아서 선택한 사람들 가운데에 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신실한 자들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인데 그들은 아무리 어둡고 암울한 환경 가운데 일지라도 그들의 믿음을 발휘하는데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자연스럽게 생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이런 위대한 특성들을 개발하고 강화시키기 위해서 당신의 백성들을 시험과 시련을 통해서 준비시키시고 계신 것이다. 흔드는 일 외에 사단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 변하지 않는 충성을 바치는 사람은 시험과 시련 속에서 백만 년의 세월이 흐른다 해도 그들의 충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시련에 견디는 신실한 자들 곁에 함께 하실 것이다.

2) 흔들림을 위한 우리의 준비

1. 매일의 기도 생활을 가지자

매일 아침마다 우리는 진지한 마음으로 우리의 생애를 예수께 바쳐야 한다. 모든 시험에 승리할 수 있도록 그날 하루를 위한 능력을 간절히 구해야 하며, 예수님의 성품을 선물로 나누어 주시고 주님의 마음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이면서도 깊은 관계를 맺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매일 드리는 우리의 헌신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절대적인 필수 요건이다.

2. 말씀을 깊이 연구하자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의 진리로 마음을 견고하게 방어한 자들 외에는 아무도 최후의 대쟁투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말씀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은 아무 곳에도 닻을 내리지 못한 채 흔들리며 표류하는 배와 같이 될 것이다. 우리의 매일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영적인 통찰력이 요구된다. 사단의 강력한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의 능력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편 119:11).

3. 듣는 신앙이 아닌 행하는 신앙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뜻을 머리로만, 지적으로만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이 그들 자신의 생활 속으로 젖어들어 오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은 거짓 신앙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진리를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잃어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사실상 이들의 죄는 훨씬 더 막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의무를 수행하는 일은 날마다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생동하고 실행하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늘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는 탄원이 요구된다. 실제적인 믿음이 없이는 언젠가는 흔들림의 과정에 잃어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행하는 산 믿음과 신앙을 가지자.

4.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는 일

우리는 매일 십자가를 지고 멍에를 메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면류관을 받기 전에 먼저 십자가를 지는 경험이 요구된다.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치르신 희생으로 인해서 예수께서는 왕국을 받으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들 각자를 위해서 승리를 상징하는 왕관인 영광의 면류관을 준비해 두셨다. 그러나 그 영광의 면류관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지 않고 멍에를 메지 않는 어떠한 사람의 머리 위에도 쓰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멍에를 메는 일은 오직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그 일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는 말씀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롬 8:28). 그 입에 불평, 불만이 있는 자들이나 하늘에 갈 수 있는 쉽고 편안한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자들, 그리고 어떠한 종류의 시련이나 어려움도 회피하려고만 하는 자들은 결코 큰 흔들림을 견디지 못하게 될 것이다.


** 마치면서

우리 앞에는 흔들림의 시기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흔들림을 당할 것입니다.
흔들림의 시기 동안 하나님께 자신들의 흔들리지 않는 충성을 입증하는 사람들만이 마지막 남은 무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교회, 백성, 곧 진리와 의가 연합한 정결한 교회와 백성이 준비되면,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기실 것입니다. 그것은 곧 바벨론에 있는 나머지 자녀들을 불러내는 하나님의 마지막 사랑의 초청을 전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8장에 예언된 넷째 천사들이 준비되고, 늦은비의 권능을 받고 바벨론을 향하여 큰 소리 외침을 외칠 때, 그때까지 바벨론에게 기만당하고 있던 하나님의 참백성들이 영원한 복음에 의해 깨어나 오류의 속박을 깨뜨리고 구속의 대열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하늘의 영원한 왕국을 위해서 준비될 것입니다.

흔들림을 이긴 자들, 흔들림을 통과한 자들은 영광스러운 하늘 본향에서 하나님의 장막 속에 거하는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흔들리지 않고 진리에 서 계십니까?
하나님의 편에, 진리에 굳게 서서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는 독자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_기도원에 갈 것이 아닙니다

205-2

진리탐구_144,000인의 궁금한 “3가지” 의문

 

① 144,000인이 등장할 시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가 144,000인이 등장할 시대라는 것에 있어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자신의 거짓과 오류를 최대한 이용하여 144,000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교훈을 혼잡케 하고 있는데, 144,000인은 이 땅에서 사단과 마지막 영적 전쟁을 벌일 하나님 어린양의 군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첫 번째,  세상에서 현재 자신의 교단과 교회 성도만이 144,000인이라고 믿고 있거나 전파하는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단 한 사람도 해당되지 않습니다.두 번째, 그렇다면 지금 중동의 이스라엘이 144,000인일까요? 이것 또한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계속해서 “영적 이스라엘”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성경을 살펴보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오늘날 이 시대가 144,000인 등장할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② 144,000인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그들이 해야 할 사명
144,000인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고 그들이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사도바울께서 하셨던 것처럼 이 세상에 장차 다가올 심판과 영원한 복음을 전할 사명입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행 24:25)

요한계시록 14장 1절부터 5절까지 144,000인을 소개하며 6절부터는 그들이 해야 할 사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5절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그들은 세상 나라와 사람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는데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천국 복음이, 벨릭스 같은 사람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없이 세상 끝까지 전하여질 것이라는 말씀이 다시 한 번 더 증거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6~7절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위 말씀만 보더라도 “영원한 복음”이 전파될 대상이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몇몇 기독교 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동의 유대인들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아닌 게 확실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만 상고하더라도 여러분이 믿고 있는 7년 환란 기간에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이 성경 말씀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성경 예언의 말씀에 인간적인 지식이 얼마나 많이 덧붙여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필 성경은 그냥 복음도 아닌 복음 앞에 “영원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복음을 강조하고 있는지 그 궁금함을 다음 호에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위대한 신앙인들_천부적인 달란트로 찬송시를 지은 여류작가, 화니 크로스비(Fanny Crosby)

 

뉴욕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지 6주 만에 심각한 눈 염증을 앓아 의사의 부주의한 처방으로 결국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왜 우리에게 이런 비극이! 안돼! 받아들일 수 없어!"라고 원망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고난의 골짜기를 걸어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의사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제가 만약 다시 그분을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저는 그분이 저를 시각장애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 몇 번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평생 시각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스러운 섭리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그와 같은 섭리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자서전 ‘화니 크로스비의 생애’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녀는 만약 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해도 그것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또 자신이 앞을 못 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노래들을 쓸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만약 제가 앞을 볼 수 있었다면 제 주위를 끄는 많은 흥미롭고 아름다운 것들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져 결코 수천 편의 시를 지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크로스비 가문은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 집안으로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화니는 자랄수록 청각과 미각, 후각과 촉각이 예민하게 발달했고 손재주가 좋았으며 영리하고 똑똑했습니다. 할머니는 어린 화니에게 성경 이야기를 은혜롭게 들려주며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손으로 만져 보고, 코로 향긋한 향기를 맡게 했습니다. 특히 자연이 움직이는 모습을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필요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라. 그리고 일어난 모든 좋은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해야 한다.” “일이 너무 어렵다고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실 일이 하나도 없다. 자기의 필요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은 능히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란다.” “너의 기도제목이 아무리 엉뚱하거나 가망이 없는 것일지라도 너에게 유익하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설령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 해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얼토당토않는 너의 소망과 기대보다 더 좋은 것을 이미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늘 기뻐해야 한다. 고통과 좌절도 기쁘게 인내하면서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더 좋은 것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지.” 그녀의 외할머니는 성경의 사람이었으며 “기도를 확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열 살 때는 구약성경의 첫 네 권과 사복음서 또 수없이 많은 시를 암송했습니다. 1835년 뉴욕에 있는 맹인학교에서 들어가 교육을 받았는데 교장은 그녀가 자만에 빠지지 않게 주의하라고 3개월 동안 어떤 시도 쓰지 말라는 지시도 했습니다. 이는 어린 소녀에게 큰 시련이었는데 의식적으로 시를 쓰지 않을 때도 시상이 끊임없이 마음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녀는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주었다.”라고 술회했습니다.

그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발생하는데, 1848년에 맹인학교에 콜레라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어 주검의 시신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장례식에서 경험하고, 화니도 이러한 일을 경험하면서 죽음과 그 후의 삶에 대해서 깨닫게 되어 자기 신앙을 돌아보았습니다.

“만일 콜레라가 내 생명을 빼앗아 갔다면 나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했을까?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또 다른 무언가를 하라는 말씀이 아닐까?” 때마침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회개의 시간을 통하여 과거 어두움을 다 씻어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하는 사명의 눈을 뜨게 되어 그날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 당시에 대해 “내 영혼은 하늘의 빛으로 차고 넘쳤다. 처음으로 나는 지금까지 나 자신이 한 손으로는 세상을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님을 붙들려고 노력해 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체험으로 화니는 예수님 사랑에 푹 빠졌습니다.

1864년 그녀는 저명한 찬송 작곡가이자 출판가인 윌리엄 브래드버리를 만나 첫 복음성가 ‘저 하늘에 빛나는 우리의 본향’을 출판했는데 출판사에서 그녀가 지은 시 한 편에 1~2달러(당시 달러 가치) 정도만 지급했기 때문에 생활은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앞으로 51년 동안 하나님께 이끌려 찬송 8000여 곡을 지으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마음 상태가 최적에 도달할 때까지 늘 회개하고 기도하며 “나는 시 쓰기에 앞서 기도해요. 좋으신 주님께 내가 쓰려는 시에 영감을 달라고 요청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고는 찬송가를 써 본 적이 없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화니 크로스비를 잘 모른다 해도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녀가 지은 많은 찬송을 부르며 큰 은혜를 받으며 그 찬송들이 비록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영혼의 눈으로 본 영의 세계가 그의 펜을 통하여 아름다운 찬송시로 나타났습니다. 화니는 찬송가를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의 노래”로 예배자 자신의 체험과 관련을 지어 찬송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에 아주 소중하게 역사하였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용서가 있다오.” “나를 지나가지 마소서.” “주께로 내가 옵니다.” 찬송가 대부분을 1인칭으로 써서 부르는 자들이 그 찬송의 사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당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던 복음 전도자 무디와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자신이 경험한 간증과 찬양으로 수많은 이를 주님께 인도했습니다. 맹인이며 95년의 생애를 살면서 대략 8,000여 찬송시를 쓰고 일반 서정시도 1,000여 편 이상을 쓴 시인이며, 교육자이며, 음악가인 그녀는 하프와 오르간 연주가로도 유명하고 간증 설교자 겸 강연자로도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녀는 인류역사에서 최고의 기독교 찬송 시인이며 위대한 탐험가요 위대한 승리자였습니다. "금빛 찬란한 아침에 주님 다시 오실 때 주의 영광 내가 친히 보겠네…" “주가 맡긴 귀한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천국 아침 맞을 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쁜 마음으로 얼굴 대하리…” 그의 영안으로 보는 주님의 모습에 그녀는 절망과 슬픔이 아닌 기쁨과 감격의 인생길 95년을 찬양 속에 살아갔습니다.

Healing Story_땀-아, 시원하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마에서 비 오듯이 땀이 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온몸은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젖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선풍기 앞에 앉아서 더위를 식혀보려고 애를 쓸 때보다 오히려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시원한 물에 샤워까지 하고 나면 얼마나 상쾌한지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아마도 시원하게 흘린 땀방울은 더운 여름날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인 듯합니다.
 
* 땀
- 체온 조절을 위해 땀샘에서 분비되는 액체입니다. 땀의 분비량은 하루에 600∼700mℓ이지만, 여름철이나 운동을 할 때에는 10ℓ까지도 된다고 합니다.
- 성분 : 99%는 물이며 나머지는 나트륨, 염소, 칼륨, 질소 함유물, 젖산, 요소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 땀샘
- 사람의 신체에는 약 200~400만 개의 땀샘이 있으며 6.5㎠당 약 77개의 땀샘 구멍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인체 부위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발바닥에 가장 많으며 등에 가장 적다고 합니다. 태아 시기의 3.5개월에 땀샘이 처음으로 생기며 8개월에 어른의 땀샘과 비슷한 모양으로 완성됩니다.
- 종류
(1) 에크린선 : 에크린선은 땀샘 대부분을 차지하며 점성이 약합니다. 전신의 피부에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겨드랑이, 손바닥, 발바닥에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2) 아포크린선 : ​아포크린선은 사춘기에 활성화되고 끈적끈적한 점액을 분비하며 일반 땀보다 단백질, 지방과 같은 유기물이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피부에 있는 정상 세균 층에 의하여 분해가 되면서 불쾌한 냄새가 발생하게 되는데, 액취증과 음취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아포크린선은 에크린선보다 숫자가 적으며, 겨드랑이 밑이나 젖꼭지, 배꼽, 외음부, 항문 주위 등에 분포되어 있고 특히 겨드랑이에 많습니다.
  
* 땀의 기능
(1) 체온 조절
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체온의 조절입니다. 체온이 상승하면 체온 조절 중추인 시상하부를 통해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땀의 분비가 시작됩니다. 땀이 증발하면서 피부 표면을 냉각시켜서 체온이 감소하게 됩니다.
(2) 노폐물 배설
(3) 피부 보습
피지와 함께 피부 표면을 보습해 주어서 피부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해줍니다.
(4) 물건을 잡을 때 접착력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 땀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같은 양의 땀이라도 온도 차이로 나오는 땀과 운동을 하면서 흘리는 땀은 조금 다릅니다. 체온조절을 위해 흘리는 땀은 수분만 빠져 나가고 지방과 탄수화물은 연소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운동을 하게 되면, 몸에 저장되어 있던 탄수화물과 지방이 연소되면서 신체에 열이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이때, 올라간 체온을 내리기 위해서 땀을 내보내게 되는데 그 땀이 증발하면서 피부표면을 냉각시켜 체온이 감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흘리는 땀은 체온을 조절하고 노폐물을 배출시켜 주며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건강한 몸을 만들어 줍니다.  

* 땀은 왜 짠맛이 날까요?
신체 활동량이 많아져서 몸에 열이 발생하거나 주변 온도가 28℃ 이상으로 올라가게 되면, 체온의 상승을 막기 위하여 땀샘으로 체액의 유입량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때에 땀샘은 체액에 함유되어 있는 염분을 붙잡아 저장하고, 체액보다 염도가 낮은 땀을 피부를 통하여 몸 밖으로 내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땀을 흘리게 되면 염분을 저장하는데 무리가 생기게 되며 결국 땀과 함께 염분이 함께 배출됩니다. 그래서 땀을 처음 흘릴 때에는 짠맛이 거의 없지만, 땀이 증가할수록 짠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굳이 맛을 보지 않더라도 땀을 흘린 후에 마르면, 피부나 상의에 하얀 소금끼 얼룩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땀이 나는 초기에는 수분만 잃지만 땀이 지속될 때는 수분과 염분 손실이 동시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땀 배출이 적을 때는 혈액의 염도가 상승하여 갈증이 나고 물만 더 마시면 되지만 땀을 많이 흘리는 경우에는 염분과 수분을 동시에 공급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 땀에 대한 오해
땀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땀을 많이 흘리면 좋다고 생각하여 사우나, 찜질방, 반신욕 등으로 무리하게 땀을 배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땀샘에 노폐물을 배출하는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땀에 의한 노폐물 배출은 땀 분비량에 비해 아주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양의 땀을 흘리더라도 노폐물 배출량은 매우 적은데 비하여 체액 손실량은 크다는 말입니다. 체액 손실은 혈액의 점도는 높이고 순환하는 혈액량은 줄어들게 하므로 그에 따라 소변 생성도 감소하게 됩니다. 따라서 피부로 소량의 노폐물이 배출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신장을 통한 대량의 노폐물 배출은 감소하게 되므로 결국 체내 노폐물이 더욱 증가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나친 운동(특히 여름 운동)이나 사우나, 찜질, 반신욕 등으로 지나치게 많은 땀을 배출시키는 것 보다는 등에 땀이 조금 흐르는 정도의 적당한 운동이 좋습니다.

끈적거리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땀조차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마련하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와 내 주변 사람들로 인하여 짜증이 날 때에 이러한 것조차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주신 것임을 믿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회사_교황 바오로 4세의 종교재판

 

바오로 4세 통치 기간에, 왈덴시안 교회를 박해하려고 종교재판가들이 로마에서 파송되었다. 교황의 종교재판 소장, 알렉산드리니 추기경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산 섹스토(San Sexto)의 거주민들을 추격했다. 주민들은 고문자들을 피해 이미 도피하였다.

“그들을 추격하여 산 속의 덤불숲과 동굴에 있는 은신처까지 몰아가면서 그 군대는 그들 중 다수를 살육했다. 도망친 사람들은 마치 들짐승처럼 피에 주린 하운드견들에게 쫓겼다. 한 그룹의 도망자들이 아펜니노 산맥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거의 접근 불가한 산 속의 피난처였고 그 군대는 그들을 제거하는데 실패했다. 그 후 그 총독이 칙령을 내렸는데, 그는 이 분리주의 그리스도인들을 박멸시키는데 정신없는 자로서 ‘산을 기어올라 왈덴시안의 근거지들을 공격하는 작업을 기꺼이 수행하겠다는 모든 산적들과 폭도들과 범죄자들에게 사면을 약속했다.’ 이 칙령에 충성하여 아펜니노의 비밀통로에 아주 익숙했던 폭도 패거리들이 모여들었다. 숲길을 헤치고 큰 암벽들을 기어오른 후 산 정상의 바리케이트로 사면에서 돌격하여 그 불행한 왈덴시안들을 학살했다. 이렇게 산 섹스토의 주민들은 박멸당했다. 어떤 이는 칼에, 어떤 이는 불에, 또 다른 이들은 피에 주린 하운드견들에게 찢겨 죽거나, 기아로 굶어 죽었다”(Wylie).

극도의 공포 분위기가 이태리 전역과 카톨릭 지배하에 있는 다른 국가들에서 형성되었다. 종교재판소들이 고용한 스파이들이 일체의 의심 가는 “이교적” 행동들을 고발했다.
“한 무더기의 고용된 스파이들이 이태리 전역에 흩어져서, 그들에게 주어진 추천장을 이용해 각 가정들을 출입하면서 교묘하게 사람들의 신뢰를 샀다. 그들이 이런 방법으로 얻은 비밀 정보를 종교재판가들에게 넘겼다. 그들은 가지각색의 인물들을 가장하여, 박식한 자들과 문맹자들을 쫓아다녔고, 궁정이나 수도원에서 동일하게 발견되곤 했다.”(M'Crie).

바오로 4세 치하에서 금서 목록은 더 확대되고 엄격하게 강제되었다.
“그 목록의 확정으로서 교황청 칙령을 선포하고, 아울러 그것이 효과적으로 실행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지체 없이 대리자들이 이태리의 여러 지방들로 급파되었다. 정죄된 책들의 운명은 이교도들에 대항하여 선언된 것과 동일했다. ... 불속에 던져진 책들의 수는 어마어마해서, 그것을 한 곳에 모두 모은다면 트로이의 화재에 비길 수 있을 정도였다. ... 이 기간 동안 수색은 너무나 엄격히 실행되어, 금지되 있는 책들을 발견할 목적으로 가택방문들이 지정되어 있었다. 만일 그것들을 불 속에 던지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지정된 기한에 제출하는 것을 잊은 사람들은 책을 땅에 파묻거나, 집 안에 철저히 숨기는 예방조치를 취했다.”(M'Crie).

바오로 4세의 기간에 수백 명의 성경신자들이 살인적인 박해로 죽어갔다. 만탈토, 산 시스토, 라 구아르디아의 왈덴시안 마을들은 파괴되었고, 그 주민들은 잔인하게 고문당했다. “산 시스토는 불태워졌다. 온갖 폭행당한 여자들과 아이들은 그 산맥을 따라 흩어졌는데, 거기서 그들 대부분은 사로잡혀 코센자로 압송되었다. ... 약 백 명의 나이 든 여인들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전체 포로는 1,600명을 헤아렸고, 그들 모두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Lea). “어떤 이들은 탑 꼭대기에서 던져지거나 절벽 위로 거꾸로 내동댕이쳐졌다. 다른 이들은 철 채찍으로 찢겨졌고, 마침내 활활 타는 막대기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송진을 온 몸에 바르고 산채로 화형 당했다. ...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노예 갤리선으로 끌려갔다.”(Wylie). 1561년 몬탈토에서는 “마치 양우리처럼 그들도 모두 한 집에 갇혔다. 형 집행자가 와서 그들 중 하나를 끌어내, 자신의 얼굴을 냅킨(벤다)으로 가린 후, 그 집 근처의 벌판으로 끌고 가 무릎을 꿇리고 칼로 그의 목구멍을 잘랐다. ... 이런 식으로 88명의 모든 남자들이 도살당했다.”(Wylie). “좀 다루기 힘든 이들은 갤리선으로 보내졌고, 사역자들과 지도자들은 화형에 처해졌다. 이들 중 다섯 명은, 그들의 고통을 오래 지속시키고 무시무시한 표본으로 삼기 위해, 전신에 송진을 바른 후 산채로 화형시키기 위해 이미 코센자로 압송되었다. 도망자들을 포획하기 위해 머리 당 10크라운의 보상금이 제공되었고, 그들은 날마다 끌려왔다. ... 15세 미만의 모든 아이들은 왈덴시안 정착촌으로부터 최소한 8마일 이상 떨어진 카톨릭 가정들로 뿔뿔이 흩어졌고, 다른 계급과 혼인이 금지되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박해가 지속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1561년 12월 12일자 그 총독이 보낸 편지에도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죄인들의 재판에 관해 암시하고 있다.”(Lea). 라 구아르디아와 산 시스토와 그 주변 지역은 불에 태워져서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다. 발견할 수 있었던 모든 속어로 된 성경 역본과 서적들은 종교재판소들에서 파괴되었다.

채식요리_열무 토마토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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