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_흔들림이란 무엇인가?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5~29).

이 성경 절은 하나님이 진동할 모든 것들을 진동시키셔서 변동될 모든 것들을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당신의 계명과 말씀을 선포하실 때에 있었던 진동과 흔들림의 두려운 광경을 묘사한 것이고, 또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흔들려 떨어져 없어질 모든 것들을 언급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이 말씀은 마지막 시대에 진동하여 흔들려 떨어져 나갈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그 흔들림에 관하여 우리에게 경고해주고 있다.

1) 진동과 흔들림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굳게 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전에, 흔들려 떨어져 나갈 만한 것들이 다 흔들려 떨어져 나가는 일이 선재할 것이다. 그것을 “흔들림”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진리와 참된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시험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소돔에 멸망이 이르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세상의 타락상과 죄악이 노아의 때와 소돔의 멸망의 때와 같으리라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임했던 그 심판 때에 살아남은 사람이 그렇게 적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에 충성할 사람이 적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곧 많은 사람이 흔들려서 진리에서 떨어져 나갈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진동치 못할 나라”(히 12:28)를 받는 사람들은 모든 것들이 흔들릴 때 진동하거나 흔들려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들을 영존케 하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때 오직 의롭고 순결하고 참된 것만이 남을 것이다. 시험을 견딘 온전한 의인만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한 모든 것들, 죄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흔들릴 것이며 “진동”될 것이다. 죄와 그에 속한 것은 소멸하시는 불이신 하나님 앞에서 다 타서 없어질 것이며,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하늘과 땅이 있으라고 말씀했을 때와 같이, 그가 진동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없애기 위해 “또 한번”말씀하실 것인데, 이 두 번째 진동으로 마지막 때에는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은 흔들리고 다 제거될 것이다. 그러므로 흔들림이 오기 전에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흔들림에 관한 성경의 언급들

성경에는 흔들림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1.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 13:24~30):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는 이야기로서, 가라지인 쭉정이 신자들이 흔들려 떨어져 나가고, 알곡인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 곳간에 들여진다는 비유이다.

2.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 13:3~8, 19~23): 진리를 받은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유로서, 특히 돌밭이나 가시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환난이나 핍박, 또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흔들려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신실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3.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의 비유(마 13:47~50): 세상 끝에 이르러오는 심판인 선한 자와 악한 자의 분리를 가리키는 비유이다. 그물에 가득한 물고기 중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기고 나쁜 물고기들은 버림을 당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충성스럽고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인지 구별되며, 나쁜 물고기들은 흔들려 떨어져 나가는 유형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4. 양과 염소의 비유(마 25:32~46): 예수께서 오실 때,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는 것같이 구원 얻을 사람들과 멸망에 들어갈 사람들을 구분하시는 것을 가리키는데, 오른편 양의 무리는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고 진리의 편에 선 신실한 하나님의 참 백성을 대표하고, 왼편 염소의 무리는 진리와 하나님의 뜻에서 떨어져 나간 불충실한 사람들을 대표한다.

5. 열 처녀의 비유(마 25:1~12): 이 비유는 예수님을 믿노라고 말하며 기다리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이야기이다. 미련한 처녀와 슬기로운 처녀는 모두 말씀인 등을 가졌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가지고 있는 진리의 말씀대로 실천하거나 순종할 수 있는 힘, 곧 기름으로 상징된 성령의 능력이 없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진리를 순종하고 진리에 안착하는 경험을 한다. 결국, 말뿐인 그리스도인들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흔들려 떨어져 나가 멸망을 받게 됨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비유는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참 백성이 아닌 쭉정이들을 신실한 참 백성으로부터 골라내시고 분리하시는 것에 대한 상징으로 말씀하신 비유들이며, 흔들림을 견디지 못하여 떨어져 나가는 사람으로 묘사된 것이다.

3) 왜 흔들리는가?

“내가 맹렬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아모스9:9).
이 성경 절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체질”이라는 단어는 곡식을 타작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단어로써, 곡식을 흔들어 불필요한 겨나 이물질들, 그리고 깨어진 낱알이 불려 나가게 하는 과정을 말하며, 여기서는 영적인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참백성을 가려내시고 준비시키시기 위해 교회에, 단체와 모임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각 사람들의 생애에 흔들림을 허락하신다.

“체질”이란 말은 흔들림이란 말과 깊은 연관이 있다. “흔들림”이란 동명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것을 이리저리 움직임, 흔들리게 만듦, 신체적 혹은 정서적 동요의 결과로 떨림”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적 의미로서의 체질과 흔들림은,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을 굳게 만들어줄,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흔들려 떨어지게 할 시험과 시련의 과정이 있을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체질과 연관된 말씀은 예수님께서 위기의 시간에 제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밀을 까부르는 것이 곧 체질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체질을 당하듯 그의 믿음이 크게 흔들리고 시험당할 것을 보셨다. 그래서 경고의 말씀, 곧바른 증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주님을 세 번 부인할 그 놀라운 치욕의 사건을 경고해 주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에 대해 주의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으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자신의 영적 상태가 주님께서 진단하신 것보다 훨씬 더 나은 형편에 있다고 자부하였으며, 자신에 대해 낮게 평가하신 예수님의 경고에 대해 속상해하였다. 그러나 만일 베드로가 자신이 그렇게 심하게 흔들릴 것에 대한 주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는 얼마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열렬히 기도하였겠으며, 얼마나 경성하며 깨어 있었을 것인가! 그는 그 시험을 얼마나 의연하게 이겼을 것인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개인적으로 또는 교회 전체적으로, 가끔씩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특별한 믿음의 시련을 통과하게 된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지, 아니면 거친 바다의 흉흉한 파도 가운데 떠내려가도록 버려두셨는지 의심이 들만큼 어렵고 힘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진리 안에 굳게 서는 법을 배우게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백성은 특별한 믿음의 시련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서 흔들림과 체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일은 과거에 여러 번 일어났지만 역사의 마지막 무대에서는 아주 특별한 의미로서 더 큰 흔들림으로 다시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