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권두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마련하신 구속의 경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만큼 우리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성육신은 신비이자 비밀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셨을까요?
그 이유와 목적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면, 첫째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기 위하여서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타락한 인류들이 변화함을 받아 다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성화된 생활을 살 수 있다는 모본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실지를 아시는 대제사장, 즉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본성을 취하셔서 우리와 같은 시험을 당하시는 생애를 사시는 경험이 구세주의 필수적인 요건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과 계명을 공격한 사단의 고소에 응답하실 필요와 계명을 지키는 삶에 대한 모본을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실 때에 모든 유혹을 이기시고 죄를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같은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죄를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여자의 남은 무리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모든 죄를 승리한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인성을 쓰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속에 복음의 능력을 이루어 주셔서 이런 승리의 삶이 가능하게 하십니다.
이번 호에 실리는 성육신에 대한 연구는 우리를 진리에 대해눈을 뜨게 만드는 기사가 될 것입니다.

강병국 목사

Love Letter_하나님의 바퀴

강 영은                                                                                                          

 

급하시지도 않습니다.
도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바퀴 안에 바퀴가 복잡하게 엉킨 듯한 모습이지만
완전한 질서 속에 당신의 바퀴는 돌고 있습니다.


당신의 빛나는 수레바퀴는
천천히 도는 것 같아도 번개같이 역사를 앞지르시고
조용히 도는 것 같아도 재빨리 세상을 뒤바꾸십니다.


서두르시지도 않습니다.
재촉하시지도 않습니다.
모순에 모순이 얽힌 듯이 보이지만
얼크러진 모습 속엔 당연한 당신의 섭리가 빛납니다.


당신의 지혜로운 수레바퀴는
안 도는 것 같아도 모든 일을 투명하게 밝히시고
멈춘 듯해도 실타래를 풀듯 모든 것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옛날 그발 강가에서
절망 속에 울던 에스겔 앞에 나타난 빛나는 당신의 바퀴,
슬픔의 눈물 어른거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찬란한 빛으로 나타난 당신의 바퀴여!
바퀴 속의 바퀴를 돌리시던 당신의 섭리의 손이여!


오늘 어두운 흑암의 세상에서
믿음의 눈을 열어 당신의 빛나는 바퀴를 봅니다.
피곤하지 않은 당신의 손이 바퀴를 돌리는 것을...


복잡하게 엉켜있는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당신의 손길을 봅니다.
당신의 거룩한 손이 바퀴들 위에 놓여져 있고
하늘의 뜻이 완전한 조화 가운데서 작동하고 있음을…


옛날 보이지 않는 희망으로 애타던 에스겔에 오셨듯이
오늘 잃어버린 희망 앞에 엎드린 우리에게
당신은 살아있는 보좌의 바퀴를 타시고 오십니다.

옛날 낙심으로 좌절하던 에스겔이 보았듯이
오늘 믿음의 눈을 열어 당신의 바퀴를 봅니다.

에스겔의 눈 속에서 다시 불타게 된 소망
우리 눈동자 속에 불이 되어 다시 타오르고,
능하신 손으로 운행하시는 세상의 바퀴,
섭리의 바퀴 속에서
오늘 우리도 바퀴가 되어 함께 굴러갑니다.

제1부_우리를 위해 비우신 하나님

총 제목:인자, 가까이 오신 하나님

모세는 어느 날 불에 타고 있는 떨기나무를 보았습니다. 분명히 떨기나무는 불에 타 없어져야 하지만 나무는 그대로 보존되면서 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였습니다.

이 신비한 장면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상징을 예표해 줍니다. 이것은 인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를 상징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연합을 상징해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육신의 주제를 연구할 때에 우리는 놀라운 사랑의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주제에 접근할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하신 말씀처럼, 겸손하고 주의 깊게 이 주제를 연구해야 합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신비에 대해 함께 나눠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연구는 숨은 진리를 깊이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보상을 가져올 것입니다. – 편집실 –


제 1부: 우리를 위해 비우신 하나님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께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비우시고 사람이 되시다니,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며 겸손인가! 그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 타락한 인간들 가까이 오셔서 죄를 대속하시고 모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속성을 다 비우시고 종처럼 인간을 위해 봉사하시며, 우리 죄를 지시고 죄 자체가 되셔서 십자가의 참혹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렇다면 아들 하나님이 무엇을 비우셨는가?

*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대표적인 속성
1. 전지성(Omniscient):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성
2. 전능성(Omnipotent):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속성.
3. 무소부재성(Omnipresent): 어디에나 계실 수 있는 속성.

1) 전지성을 비우심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의 사실만 보아도 놀라운 일인데, 예수님은 자신을 철저히 비우신 무력한 아이로 태어나셨다.
예수님께서 전지성을 비우신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누가복음 2장 52절 말씀처럼 어린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에 대해 성경은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라고 묘사하였다.
이 성경 구절은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성을 가진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모르는 무력한 아이로 태어나셔서, 자라가시면서 점차적으로 지혜를 터득하신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영어로 이 구절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 우리에게 다가온다.
“And Jesus increased in wisdom and stature” (KJV).
“And Jesus grew in wisdom and stature” (NIV).
예수께서는 자라가시면서 배우시고 지혜가 늘어가셨다.

예수께서는 열두 살이 되어 유월절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희생제물을 보시면서 비로소 당신의 사명을 깨달으셨다. 그 장면을 상상해보라! 열두 살이 된 소년 예수께서는 처음으로 성전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제사장들이 엄숙하게 성전 봉사를 행하는 것을 보셨다. 그분은 제단 위의 피 흘리는 제물을 바라보셨다. 향연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갈 때에 그분은 다른 경배자들과 함께 머리 숙여 기도하셨다. 그분은 그 감명적인 유월절 예식들을 목도하시면서 날마다 그 예식들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셨다. 의식의 모든 행사는 자신의 생명과 관련이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새로운 충동이 그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분은 조용하게 명상에 잠기셨다. 자신의 사명의 신비가 구주에게 공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장면들과 사명을 명상하는 일에 골똘하여 소년 예수님은 부모 곁에 머무르시지 않았다. 그분은 홀로 있기를 원하셨다. 유월절 예식이 끝난 후에도 그분은 여전히 성전 뜰에 남아 계셨다. 그래서 다른 참여자들이 떠나간 후에도 그분은 뒤에 남으셨던 것이다.

사명의 신비를 깨달으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뜻을 행하기 위해 준비하셨다. 어린 예수님의 상태를 보아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입으신, 전지성을 비우신 그분의 겸손을 깨닫게 된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우사 무력한 아이로 태어나시고 지내시고 자라나신 것을 얼마나 놀라운 신비이며 겸비인가!

2) 전능성을 비우심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 5:30).

예수님께서 인성을 입으셨을 때에도 완전하신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쓰시고 우리의 모본이 되시기 위해 입으신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시험을 당하실 때 신성을 사용하시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시고 치유를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신 것처럼, 시험을 당하실 때도 말씀의 능력과 믿음으로 승리하셨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되셨고 시험도 같은 방식으로 받으셨다.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시던 예수님을 보라!

예수님은 지상에서 인성을 쓰시고 사실 때에 참을성 있게 날마다 힘써 일하셨다. 예수께서는 인생의 미천한 길을 당신의 모본으로 성결하게 만드셨다. 하늘의 주재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소박한 의복을 입으시고 거리를 다니시며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셨다. 그러나 갈릴리 해변에서 5천 명의 굶주린 영혼들을 먹이시던 이적을 행하셨을 때와 똑같은 능력을 소유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짐을 덜거나 수고를 가볍게 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온갖 재난과 슬픔이 따라다니는 인성을 취하셨으며, 가장 혹독한 시험과 시련을 당하셨다. 하늘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몸소 인성을 쓰신 것뿐만 아니라, 가장 무거운 짐과 가장 미천한 직무를 감당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다는 사실은 천사들에게도 하나의 오묘였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 중 하나같이 되셔서 인간의 수고와 슬픔과 피곤을 경험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우리 중 하나가 되어 순종의 모본을 보이셨다. 이 일을 위하여 그분은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의 삶을 체험하셨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7). 만일 우리가 예수께서 겪지 않으신 어떤 일을 겪어야 한다면 사단은 이 점에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히 4:15)으셨던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을 겪으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제공되지 않은 능력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조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람으로서 시험을 대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써 승리하셨다.

3) 무소부재성을 비우심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

인성을 쓰신 예수께서는 동시에 아무 곳에나 존재하실 수 없었다. 이 성경 구절은 마르다가 그녀의 오라버니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슬프게 예수께 말한 내용이다.

아끼고 사랑하던 제자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받은 예수께서는 곧바로 그곳으로 가지 않으시고 며칠을 더 유하시다가 가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나사로의 병실에 계셨더라면 사단이 그를 이길 힘이 없었을 것이므로 나사로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멀리 떠나 계셨다. 원수가 그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은 그분이 정복한 원수로부터 나사로를 다시 찾아오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나사로가 죽음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셨으며, 고통받는 누이들은 오빠가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오라비의 죽은 얼굴을 바라볼 때에 구주에 대한 믿음이 격렬하게 시험받을 것을 아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이 겪는 투쟁으로 그들의 믿음이 더욱 큰 능력으로 빛나게 될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여기저기에 동시에 존재하시거나 계실 수 없었다. 그것은 인성을 쓰신 까닭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무소부재성을 비우셨다. 먼 길을 흙먼지를 일으키며 수고스럽게 걸어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셨다.

4) 예수님의 겸비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시기로 동의하시는 가운데 나타내신 겸비의 정신은 온 하늘의 천사들과 존재자들도 기이하게 여기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한 사실이 없었다면, 인간이 되기로 동의하신 것이 이렇게 놀라운 겸비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위치를 알기 때문에 이 사실에 놀란다. 우리는 인간의 위치로 오셔서 우리를 손수 만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해, 하늘의 왕의 제복과 왕관과 높은 지위를 내려놓으신 예수님을 매일 명상해야 한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에 인성을 옷 입으셨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연결시키며,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금고리이다. 이 주제는 우리가 항상 명상하며 연구하는 우리의 연구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적인 인간이셨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육신으로 계신 하나님이셨다. 생각하면 할수록 얼마나 크신 사랑인가!

제2부_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셨는가?

앞서 언급했지만,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전에 누구이셨는가를 숙고해 보면 그 사랑과 겸손이 더욱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를 위해 신의 속성을 비우시고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전에 본래 누구이셨는가?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본체로서 영광 가운데 계셨던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모든 천군천사의 사령관이시며 창조자이시고 통치자셨다.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비는 인간의 정신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과 여호와 하나님 되심을 믿지 않으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두 가지 상반된 가르침과 견해가 기독교 안에 존재하고 있는데,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본성이 다른 완전한 신으로서만 이해하는 견해이고, 또 다른 극단적인 견해는 예수님은 다만 인간일 뿐이라는 견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 하나님의 혈육의 아들로서만 설명하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교리는 다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그러한 주장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성경은 예수께서 우리 인간과 똑같은 인성을 쓰시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시는 생애를 사시므로 우리에게 모본이 되셨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하시기 전에 본래 여호와 하나님이셨던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함께 살펴보자.

1)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1. 영존하시는 하나님
장차 태어나실 메시아에 대해 이사야서는 영존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증언한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사 9:6~7).

2. 스스로 있는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이심을 친히 선포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 8:54~58).
여기서 ‘내가 있느니라’라는 표현은 영어로 “I Am”으로서 구약의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이다. ‘스스로 있는 자’란 “I Am THAT I AM”이라는 의미로 여호와 하나님의 칭호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스스로 존재’한다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3~14).

3. 알파와 오메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란 말씀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말씀하신 것인데, 성경은 이 말씀을 예수님에게 적용하고 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계 1:17).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 22:13).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로서 시작도 끝도 없는 분이시다.

이런 표현들을 보면 어떻게 예수님을 창조되신 신이라고 하겠으며 성부 하나님의 혈육의 아들로서만 간단히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믿는다. 그러나 종종 예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시작과 끝이 없고’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이신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 그 근본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는 그렇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오시기 위해 인자가 되신 사실에 대해 감격해 마지않을 것이다!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며 사랑인가!

2) 성경절의 대조

예수님에 대한 표현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표현은 같은 의미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다음의 성경 절을 대조하여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

1. 창조주 하나님

* 출애굽기 20장 11절 -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 요한복음 1장 2~3절 -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은 여호와이시다. 그런데 그분을 요한은 예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약에서는 여호와로 나타나셨음을 알게 된다.

2. 심판주 하나님

* 시편 7:8 –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 요한복음 5장 22절 –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구약 성경에는 여호와가 심판주이심을 여러 군데에서 선포하고 있다. 신약에서도 모든 심판은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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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한 목자

* 시편 23장 1절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요한복음 10장 11절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구약 성경에는 여호와가 선한 목자로 표현되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자신을 선한 목자로 표현하셨다.

4. 처음과 나중되심

* 이사야 44장 6절 –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 요한 계시록 21장 6절 –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구약에서도 여호와가 처음과 나중으로 표현되었고, 신약에서 예수님도 처음과 나중이시라고 선포된다.

5. 구원자 하나님

* 이사야 43장 11절 –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 사도행전 4장 12절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여호와가 구원자이시고 천하 인간에게 오직 예수 이름만이 구원을 준다는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같은 표현들이 수없이 성경에 등장하며, 또한 예수님에 대한 영원성과 자존하심에 대한 많은 말씀이 있다.
시작이 없으시고 영원 자존하신 분인 여호와께서 사람의 아들, 인자 예수 그리스도가 되셔서 우리에게 오셨다는 이 사실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그분의 겸비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3) 하나님으로 존재하심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 전부터 뚜렷한 하나님의 개성을 가지시고 존재하셨으며 하늘 아버지와 하나이셨다. 그분께서는 하늘의 모든 지적 존재자들을 다스리시는 사령관이셨고 천사들의 숭배와 존경을 받으시는 분이었다. 주님께서는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잠 8:22~25)라고 하신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와 하나이셨다는 진리는 놀라운 빛과 영광의 진리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2).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 4:16). 이 말씀 가운데 그리스도의 선재성과 주님께서 우리 세상에 나타나신 목적이 살아 있는 빛의 광선처럼 우리 마음속에 들어온다. 이 땅에서 희미하게나마 그 신비로운 사랑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의 생애에는 감사가 넘치게 된다.

제3부_말씀이 육신이 되신 신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거한다는 놀라운 표현으로 성육신을 기록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 말씀은 거룩하신 존재자이시며 하늘 아버지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존재하셨다. 인류와 천사들이 창조되기 이전에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요한은 모든 사람들이 깨닫고 감화를 받을 수 있도록 단순한 표현으로 이 놀라운 문제를 증거하고 있다. 인간의 육체를 쓰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교리는 신비에 속한 것이며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골 1:26)이다. 이것은 매우 심오한 경륜이고 비밀이다. 우리는 그 비밀을 경이와 감탄 속에서 바라본다. 예수께서 하늘의 본성에 비하여 매우 열등한 인성을 스스로 취하시고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속에 거하시다니! 그분께서 나타내 보이신 겸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겸손이다. 우리는 그 성육신의 이유를 영원이라는 세월을 통해 연구해야 희미하게 깨달을 것이다. 영원한 사랑에 기초를 둔 그 신비를 아주 겨우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1) 성육신의 신비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셔야만 했다는 사실은 실로 신비에 속하는 것이며,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 문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취하신 것처럼 믿게 하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인성을 쓰셨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히 2:14)셨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이었고 인간의 혈통을 따른 다윗의 후손이었다. 주님께서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로 그 신분을 밝히신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세력으로 인해 인간이 타락할 것에 대비하여 태초부터 준비를 해놓으셨다. 구속의 경륜은 인간이 타락한 후에 만들어진 고안책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창조 때로부터 중보자의 직분에 임명되었고, 영원 전부터 인간의 중보자요, 대리자요 설정되셨다. 이 세계가 창조되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을 쓰시도록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5)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때가 차고 하늘의 시계가 그 섭리의 시간을 가리킬 때 주님께서는 베들레헴의 갓난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다.

구속 사업은 그리스도가 당신 자신의 본체에 인성을 쓰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 안에 인성을 이루고 이 타락한 인류를 신성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구속 사업이다. 이제 인류는 예수님 안에서, 마치 그리스도가 하늘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하나가 될 수 있게 되었다. 포도나무와 그 가지가 붙어 있는 것으로 상징되는 이 놀라운 연합은, 유한한 인간이 그리스도의 인격에 연결되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본성에 흡수되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취하신 존재로서 당신의 긴 인간의 팔로 온 인류를 감쌀 수 있으셨으며, 동시에 당신의 거룩한 팔로 무한하신 분의 보좌를 붙잡을 수 있으셨다.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시고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위치로 내려오신 것이다.
죄와 부정을 추호도 알지 못하신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상태에 놓여 있는 인성을 쓰셨다. 이것은 유한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굴욕이었다. 이 얼마나 깊고 진지한 사색과 명상을 요하는 문제인가! 주님께서는 인간들 사이에서 궁핍을 맛보시고 가장 심한 굴욕을 당하시기까지 자신을 굽히셨다. 주님의 가난하심을 인하여 우리로 부요케 하시려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2) 인간의 모본이 되시기 위해

왜 성육신의 방법을 택하셔야 했는가? 인간이 타락한 후에 사단은 인류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주장을 온 우주에 퍼뜨렸다. 이제 하나님의 법은 지킬 수 없는 법이니 무효화시키라는 도전을 받게 되었다. 사단의 주장은 사실인 것처럼 들렸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인성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 기만자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기 위해 그분께서는 인성을 쓰기로 하셨던 것이다. 천국의 대주재이신 주님께서는 인간의 사건을 책임지셨다.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동일한 조건들을 가지시고, 인간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사단의 시험들을 이기셨다.

예수께서는 인성을 가지시고, 매순간 계속적으로 하나님 아버지 안에 연합하여 거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며, 하늘의 능력과 연합될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손수 모본으로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능력과 은혜를 받아 우리도 그 모본을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이렇게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이 거룩한 성품에 참여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취하심으로 인간의 시련과 슬픔 및 인간이 당해야 할 모든 시험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셨다. 죄에 대하여 낯설은 천사들은 특이한 시련 가운데 있는 인간을 동정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쓰시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심으로 시험을 받게 될 모든 영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욕, 조롱, 멸시 및 조소를 감수하셨다. 뿐만 아니라 사랑과 선하심과 자비로 충만한 당신의 복음을 허위 진술하며 악용하는 말을 들으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다고 해서 귀신의 왕이라는 호칭도 들으셨다. 주님의 탄생은 초자연적인 것이었으나 신령한 사물에 대하여 눈이 어두워진 당신의 친 백성들은 그것을 오점과 흠으로 여기고 비웃었다. 주님께서 맛보지 않으신 인간의 쓰라린 슬픔이란 단 한 점도 없었으며, 주님께서 견디지 않으신 인간의 저주란 단 한 부분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죄를 지시거나 시험에 넘어지신 적이 없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고난과 시험과 유혹을 견디신 것은, 우리의 모본이 되셔서 그 자취를 좇게 하시기 위함이었으며, 하나님께로 우리들을 인도하시기 위함이었다.
타락한 인류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슬픔의 인간으로 이 땅에 계셨고, 비애를 맛보셨으며, 당신의 천국을 떠나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모든 교만을 묻어버리게 하고, 우리의 모든 허영심을 부끄럽게 하며, 자부심과 높아지고자 하는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도 남음이 있게 한다. 죄인들의 결핍, 시련, 비애 및 고통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 주님을 바라보라!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러한 고난을 받으시고 영혼의 상처를 입으셨다는 것을 우리 마음에 깊은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하늘 아버지와 아들과 연결될 때에 사단과의 투쟁 속에서도 모든 거룩한 요구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시기 위함이었다. 주님께서는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놀라운 사랑과 성육신의 신비는 우리로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순종하도록 만들기에 넉넉하지 않은가?

3) 사단의 공격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에덴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는 구속의 경륜을 발표하셨다. 이 말씀에 나타난 사단과의 적의의 관계는 단순히 사단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만 국한해서 말씀하신 뜻이 아니었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것이었다. 사단과 그의 천사들은 모든 인류에 대하여 증오심을 느낄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인간 속에 넣어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생기는 죄에 대한 증오심이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생긴 증오심은 초자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이 증오심은 일면 자연적인 것이었고, 그러나 또 다른 면으로는 인성과 신성을 겸하신 주님께 초자연적인 것이기도 하였다. 이 지상에 산 인간으로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완전한 증오심을 가지고 죄를 미워한 자가 과거에 전혀 없었다. 주님께서는 거룩한 천사들에게 작용했던 죄의 기만적이며 미혹적인 세력을 이미 보셨으며 당신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죄를 대적하셨다.
그리스도의 순결성과 거룩하심 및 죄를 짓지 않으신 주님의 의는 육욕과 죄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죄들에 대한 견책이 되었다. 주님의 생애 가운데 나타난 진리의 빛은 사단이 세상을 감싸고 있는 도덕적인 암흑 속에서 밝은 빛을 비추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거짓됨과 기만적인 성품을 노출시켰으며 많은 영혼들의 심령 가운데 있는 부패케 하는 감화력을 진멸하셨다. 사단이 그처럼 극렬한 증오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적한 원인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사단은 그의 타락한 무리들을 이용하여 예수님과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이기로 결심하였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하늘 아버지의 완전하신 대표자로서 그 품성과 실행으로써 사단의 주장을 논박하시기 위해 이 땅에 계셨기 때문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혹하고 무자비한 분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사단은 아무도 멸망받지 않고 회개함으로 모든 자들이 영생하기를 바라시는 동정과 자비심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의 품성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정복하려고 사력을 다 하였다. 그는 인성을 쓰신 주님을 쉽사리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8, 9)고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동요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이 유혹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을 느끼셨으나 우리를 위하여 그 시험과 싸워 이기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인간이 마땅히 사용할 수 있는 무기 곧 강한 권고의 힘이 되시는 당신의 말씀인 “기록하였으되”(마 4:4, 10)만을 사용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을 때 사단은 자신이 패배한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참된 성격이 온 하늘에 드러난 것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의 존재자들과 세계들이 하나님 편에 서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이 완전히 막힌 것을 보았다. 사단은 예수님의 발꿈치 밖에는 상하지 못하였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대쟁투를 종결시킨 승리를 세세토록 증명할 것이다.

4) 인간으로서 죄를 승리하심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성을 당신 스스로 취하셨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추호도 인간의 죄에 참여하시지 않으셨다. 주님께서 인간을 에워싼 연약함과 약점을 맛보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마 8:17)고 하신 때문이었다. 주님께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이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죄를 아시지 못하였고 “흠 없고 점이 없는”(벧전 1:19)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다. 만약 사단이 그리스도로 가장 작은 죄 한 가지라도 범하도록 유혹할 수 있었다면 그는 구세주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말했듯이 그는 주님의 발꿈치를 상하였을 뿐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있었다면 인류의 소망은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죄 없으심에 관하여 의혹을 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신앙은 지적인 신앙이어야 하며 대속 제물이신 주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심과 전적인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주의 거민들에게까지도 당신의 인성에 나타난 완전한 겸비와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보이셨다. 그분은 가장 미천한 인간까지라도 구원하실 수 있으시며, 거룩한 능력을 인간에게 주셔서 인간이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가 되게 하셨다.

제4부_대제사장이 되신 중보자 예수님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인간의 처지까지 성육신하여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므로 인간이 시험을 받을 때에 어떻게 도우실지 아신다. 그분은 우리를 동정하시며, 유혹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몸소 체험하셨으므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기에 능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고 또한 대제사장도 되신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중보하시고 대속하시는 주님이 계시므로 오늘도 평안함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중보하실 뿐만 아니라 죄를 용서하시고 도말하시는 제사장의 역할도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주님은 그야말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시기에 넉넉하신 분이시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1) 중보자의 자격

중보자란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하는가? 중보자란 서로 충돌하는 사이에서 중재하는 사람을 말한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사 59:2).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고후 5:19)셨다는 것이다. 이 화목은 하나님과 인류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곧 하나님을 죄인에게 화목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하나님께 화목시킨다. 죄인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는 일 없이는 멀어진 하나님과의 사이를 메꿀 길이 없었다.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재자로서 나섰고, 죄로 인해 멀어진 관계를 회복할 화목제물이 되셨다. 예수께서는 인간을 위한 중보자가 되셔서 인간의 부채를 갚으셨다. 그는 인간 대신에 죽으셨으며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쓰시고 인성과 신성 사이에 십자가를 세워 하나님에게서 죄인을 분리시킨 깊은 구덩이를 메꿈으로써 구원과 속량과 속죄가 가능하게 되었다.

하늘의 가장 높은 천사라 할지라도 단 한 영혼을 대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인간을 하나님께 화목시키는 일은, 오직 하나님과 동등하시고 인간을 대신하여 나서서 타락한 세계에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중보자를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었다. 인간의 중보자가 되려면, 첫째 인성을 가져야만 하며, 대표할 인간 가족과의 연결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연결을 해야 하였다. 또한 거룩한 품성으로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하였다.
이러한 자격은 오직 그리스도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 당신의 신성에 인성을 옷 입히신 주님께서는 인간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 위에 오셨다. 주님께서는 인류를 위한 담보물이었고 하나님의 대사였다. 인류를 위한 담보물이라는 의미는, 당신의 의로써 인류를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킨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대사라고 한 것은 타락한 인류에게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셨다는 뜻이다.

2)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

“속죄”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atonement)는 사이가 버그러진 양편을 화목시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 그분의 중보와 대속의 공로를 자신에게 믿음으로 적용시키는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인간의 죄의 기록은 남아 있지만, 화목의 결과로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셨다(고후 5:19).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형벌을 철회하신다거나 죄가 더 이상 그분의 진노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원한 율법의 공로를 여전히 유지하시면서도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용서를 허용하시는 길을 발견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와 의를 유지하시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이 불가피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한 심판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와 죄인에 대하여 심판을 선고하셔야 한다. 이 선고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죄인의 자리를 취하셨다. 여기에 죄에 대한 용서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오묘와 핵심이 깔려 있다. 즉,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하나님의 공의를 합당하게 만족시켰고, 또 하나님은 인간이 죽는 것 대신에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을 기꺼이 받게 되신 것이다. 예수님의 속죄는 공의와 자비를 다 충족시켰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비와 그분의 공의를 모두 드러낸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5, 26).

3) 대제사장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 그리스도가 제사장이 되기 이전에 네 가지 일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성육신하시는 일,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대속의 죽음, 부활하심과 승천하시는 일이 있었다. 하늘로 승천하신 후 아버지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으로 취임하셔서 당신의 보혈의 피를 가지고 속죄사업과 중보사업을 시작하셨다.
그리스도가 제사장이 된 것은 아버지의 권위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는 아들이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영원히 제사장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히 7:28 참조).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우리를 위해 제사장으로서 중보하신다.

예수께서는 인성을 쓰시고 사신 경험이 있으시기 때문에 인간을 이해하실 수 있고, 인간을 위해 중보하실 수 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18).

대제사장으로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중보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히 4:16). 지금 그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시다. 우리는 그분의 중보로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죄를 승리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인류를 사랑으로 이끄시며 소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신다. 우리는 중보자이시며 대언자이시고 간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늘 법정에서 탄원하고 계심을 감사하자!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 마치면서

사단은 하늘에서 최초의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정부를 변경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의 법을 허물고 자신의 정부를 세우고 싶어했습니다. 하늘에서 그리스도를 대항한 전쟁이 점점 더 치열해져 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선을 넘어가 돌아오지 못할 길로 반역한 그는 하늘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제 사단은 온 우주에 하나님의 법은 불공평한 것이며 피조물은 절대로 지킬 수 없는 법이라고 주장을 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가혹한 재판장과 같은 무자비한 분이라는 공격을 받으셨고 누군가 이 주장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우주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도 이 사실은 증명되어야 했습니다.
오해의 그림자로 덮인 하나님의 사랑의 참 모습을 누군가가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단의 주장을 분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성을 쓰시고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하셨습니다.

성육신은 인류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인간에게 구원에 대해 이해를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므로, 주님께서는 인간의 기능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인성을 통해서만 인류에 접근하실 수 있으셨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예비하신 인간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행동으로 실천해 보이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만이 홀로 신성을 대표할 수 있으셨고, 하나님의 참모습을 나타내 보이실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태초로부터 하늘 아버지의 면전에 있었던 분입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나타난 형상이셨던 주님께서만이 이 사업을 성취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언어의 묘사만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순결한 생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순종의 생애, 희생과 사랑의 생애, 그리고 인간이 당하기 원치 않는 굴욕적인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이 인류에게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성에 인성을 옷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지키는 생애를 사심으로
계명을 무효화시키려는 사단의 의도를 분쇄하셨습니다.

큰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통과하셔야 하셨던 시험들과 정신적인 고뇌들은 얼마나 컸을까요? 그분은 얼마나 큰 슬픔과 고통을 견디셨습니까? 우리 주님이 당하셨던 시련과 시험과 유혹은, 그분이 이러한 유혹들에 굴복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 치열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단의 유혹에 하나라도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인성이 믿음으로 신령한 속성과 연합할 때 사단의 유혹에 맞설 수 있는 강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은 사람이 그리스도와의 연결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유혹을 받을 수 없는 분이셨지만,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낮추시어 인성을 취하심으로 시험받는 자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과 동등한 속성을 취하셨는데, 인간의 육체, 인간의 마음, 또한 모든 독특한 속성을 공유하셨습니다. 우리와 동일한 육체를 취하심으로 그분은 인류의 연약함을 체휼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인간에게 속한 모든 불리한 점에 노출된 인생을 사셨습니다.
부유하거나 편하지 않은, 궁핍과 가난과 비천에 처하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호흡해야만 하는 동일한 대기를 호흡하셨고, 사람으로서 우리의 땅을 밟고 다니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이 시험당하는 것처럼 시험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시험은 아담과 하와가 치렀던 시험보다 훨씬 큰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성을 취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죄의 오점을 하나도 남기지 않으신 것을 제외하곤 우리 자신의 속성과 온전히 같은 속성을 취하셨습니다.


그분의 순결하심과 성결하심은 하늘에서 쫓겨난 패배한 원수에 의해 공격을 받으셨습니다.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낮추자, 그분을 이기려고 모든 기만과 거짓의 무기로 무장한 강한 사람들을 선동하였습니다. 사단은 여러 세기 동안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인간을 타락시키고 쓰러뜨리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그런 원수를 만나 전쟁을 치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챔피언으로서, 우리의 구원의 대장으로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셨습니다.

온 하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마련된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정복자 이상의 정복자로서 우리 인간들을 무한히 사랑하심으로 사람이 그분의 공로를 통하여 정복자 이상의 존재들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심도 그렇지만, 예수께서 낮은 자리에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생애를 사시므로 우리의 모본이 되신 것은 우리에게 특히 더 큰 소망과 용기를 줍니다.

우리의 모본이 되시는 그리스도, 우리와 같은 인성을 쓰시고 우리 가까이 오신 인자 예수님을 우리의 시야에서 놓치지 말고, 매일 그분의 모본을 따라 살아갑시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신비와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승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계동향

1. 브렉시트, 영국이 세계화 반대의 시작을 열다.
영국에서 지난 6월 23일 진행된 국민투표 결과 탈퇴는 51.9%, 잔류는 48.1%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뜻하는 단어)가 결정되었다. 영국의 브렉시트가 결정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유럽 은행 주식들은 브렉시트 결정 후 2일간 사상 최악의 폭락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영국의 EU 탈퇴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덴마크, 체코, 핀란드,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도 EU 탈퇴를 위한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국민들은 EU(유럽연합)가 추진하는 세계화가 세계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EU의 ‘무제한 난민 수용 정책’으로 유럽 내 테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불만으로 표출하고 있다. 유럽의 경기침체가 더욱 심각해지고, 유럽 내 테러가 증가하면 EU를 탈퇴하는 국가들은 계속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2. 추락하는 이탈리아 은행, 경제붕괴의 불씨 되나?
유럽 은행들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함께 수익성이 악화되며 올해 초부터 주가가 하락해오다 브렉시트 투표 직후 대폭락했다. 특히 이탈리아 은행들이 위험한데 연초 대비 주식 가격이 거의 80%가 폭락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은행의 부실 대출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정부에서 구제금융을 해주지 않으면 곧 파산할 수밖에 없는 이탈리아 은행들이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유로존 국가들이 올해부터 은행의 부실이 발생하면 일정 규모 이상 채권자(예금주와 채권투자자)들이 손실을 부담하도록 하는 베일인(Bail-in) 제도를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EU 법원은 지난 7월 19일 판결을 통해 부실한 이탈리아 은행들에 정부가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것에 반대했지만,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7월 21일 예외적인 상황으로 이탈리아 정부가 구제금융을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이탈리아 은행들에 구제금융을 허용하여 위기를 넘기더라도 경기침체로 인한 유럽은행들의 수익성 악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부실한 은행들은 유럽 경제에 계속적인 위협이 될 전망이다.

3.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사건이 발생하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한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지난 6월 12일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총기 난사 사건 테러범인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인 ‘오마르 마틴(29)’은 12일 새벽 클럽 ‘펄스’에 침입하여 3시간가량 경찰과 대치하며 49명을 죽이고 53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경찰의 총격에 사살됐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에서 총기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록 지난 6월 20일 상원에서 총기규제 관련법 4건이 모두 부결된 데 이어 하원에서도 표결이 봉쇄되었지만 지난 6월 22일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총기규제 입법을 촉구하며 의사당 바닥에 앉아 연좌농성을 벌였다. 이를 지지하며 지난 6월 23일에는 여러 팝 스타들이 총기 규제를 법률로 제정해 달라며 빌보드에 미국 의회에 부탁하는 글을 올렸다.
총기규제가 이루어질 때까지 이런 비극적인 사건은 계속되고 결국 총기규제가 법률로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총기규제는 환란의 때에 모든 사람에게 국가적인 법률을 강요하는 일이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4. 프랑스 니스 트럭 테러 – IS 테러 주장
프랑스 니스에서 지난 7월 14일 해변 도로에서 프랑스 혁명 기념일 폭죽 행사를 지켜보던 시민들을 향해 19t 대형 트럭이 2km가량을 돌진해 84명이 숨지고 300명 이상이 다친 테러가 발생했다.
이와 관련 이슬람국가(IS)는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IS 선전 매체는 각각 프랑스에서 더 많은 테러 공격을 벌일 것을 촉구하는 선전 영상을 공개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지난 7월 21일 보도했다.
계속되는 잔인한 테러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과 관용의 정신은 사라지고 극단주의에 대한 미움이 커지고 있다.

5. 중국 북부 18년만의 대홍수
중국 북방 6개 성 지역에 지난 7월 18~21일간 집중호우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이들 6개 성의 35개 시 131개 현에서 173만1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13명이 사망, 62명이 실종됐고 6만8천 명이 긴급 대피했다. 가옥 1천200여 채 침수됐고 농작물 피해만 최소 8억4천 위안(한화 1천435억 원)에 달했다. 그동안 경기 부양에 힘써온 중국 정부는 대규모 홍수 피해로 농산물 가격 급등 등이 불가피해 올해 3분기 경제에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홍수와 관련해 "엘니뇨 현상의 영향으로 중국 기후에 이상이 생겨 홍수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간증_주여! 나를 고쳐주소서!

제 인생은 죄의 문제로 늘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제 소원은 죄가 있는 이상 항상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과자가 너무나 먹고 싶어 아버지 서랍에서 돈을 훔친 적이 있습니다. 평상시엔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놀아주셔서 일찍 퇴근하기를 기다렸는데 그날은 아버지가 “아키라”라고 부르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내 마음의 죄- 죄책감이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가 없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음에 죄- 죄책감이 있는 한 진정으로 의로운 관계를 세워나갈 수가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나를 구원해 주시지 않을 거야, 이런 중죄인이 어떻게…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멸망일거야.’ 이 생각에 밤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죄의 문제와 죄책감으로부터 정말로 해방되고 싶어서 학창시절 착하게 살려고 애썼습니다. 새벽예배 가고 성경 읽고, 학교 기도실(기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곰팡냄새에 완전 창고 같은)에서 죄에서 구원해주시길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죄를 승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재를 뒤집어쓰고 죄를 회개하는 말씀을 읽고, 밤에 공원에 가서 재대신 모래를 뒤집어쓰고 하룻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죄에서 구원해주세요" 그러나 내 삶은 여전히 죄를 승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성경을 배워도 항상 마음은 죄의 노예였지요.

지금껏 저는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침례도 받고 교회를 다니지만 진정한 예수님이 아닌 그냥 예수를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긍휼히 여겨 진정한 복음을 만나는 경험을 해주셨습니다. 2013년 한국 SOSTV의 세미나를 통해서였습니다. 그 세미나 이후 SOSTV JAPAN이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강병국 목사님께서는 「복음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힘이 있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죄에서 이길 힘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또 재창조 해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수없이 실패했기에 ‘또 믿고 실망할 것이면 처음부터 기대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생각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자신에게 절망했을 때, 자신을 보는 것을 그만두고 예수님을 바라볼 때 희망이 생기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제가 고민하는 결점 하나는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주의를 받으면 과민반응을 하게 됩니다. 우리 친할아버지가 굉장히 성격이 급하셨고, 외할아버지도 신경질적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저의 아버지도 얼마나 급하신지... 그러니 저희 집안은 성미 급한 거로 유명한 집안이지요. 이렇게 성질 급한 DNA를 받았기 때문에 정말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누구도 성질 급한 거 원하지 않지요? 그렇지만 성질 내고 “아이고” 하면서 또 성질 내고, 급한 성미는 정말 없애고 싶고 고쳐야 할 질병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정말로 성미가 급한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밥때가 되면 화를 냅니다. 하루에 3번 아침, 점심, 저녁에 배가 고프면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만나고 난 뒤부터 정말로 아버지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재미있는 분으로.... 기적이 일어났지요.

최근에 내 속의 죄와 더러움을 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SOSTV JAPAN은 가족 모두가 스탭으로 선교 일을 하는데 한 사람이 의견을 내면 반드시 다른 의견이 다섯 가지가 나옵니다. 정말로 성격과 기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 일로 일본 지부장인 동생과 심한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싸우고 나면 그렇게 한 나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몇 번을 반복해야 성이 차는지…급한 성미 안 내려고 했더니 또 내어버렸네. 아! 이젠 이 선교사역을 하면 안되겠다’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우울해지고……. “또 반복이라고…이젠 이 반복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또 실패하고 어떻게든 힘내려고 해도 넘어지고…이젠 정말 싫다.”라고 가족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부모님께서 “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만은 의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 자신의 상태는 이렇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확실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경험했으니.... 정말이지 수개월 전에는 그렇게 어둡고 우울해 있던 사람이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그럼 지금 전심으로 하나님께 구해보렴” “아니에요, 지금까지 몇 번이고 구해왔고 계속 기도해왔는데 그 결과가 이런데요. 그렇게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데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게 아니야. 정말로 전심으로 구하는 것조차 사람은 할 수 없단다. 회개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회개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야. 거기에 눈을 떠야 하지 않겠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교만하다는 건데 내가 그리 교만해요?” 이러면서 부모님께 대들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래, 대단히 교만해” 이러시는 거예요. 그 순간 ‘내가 정말로 교만하구나. 나는 자신이 교만한지도 모를 정도로 교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무릎을 꿇고 다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정말로 날 구원해 주세요. 전 하나님께 기도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런데 동생과 심하게 싸우고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 제 마음을 바꾸어 주세요.’ 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그랬는데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지요. 집에 들어와 동생의 그 뻔뻔스러운 얼굴을 보니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동생 얼굴 생김새까지 미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순간 몇 일 전 쓴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기독교인이란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제가 써 놓고서는 이틀 뒤 친동생조차 사랑할 수 없는 자가 되었으니… 정말로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낙심되고 우울하기까지 했어요. 그래서 주님께 진심으로 “불쌍히 여겨 주세요. 구원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때, 처음으로 제가 잘못되고 그런 말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때에도 부모님께 지금까지 한 번도 사과드린 적이 없었다는 것- 입으로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말했을지라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드린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부모님께 “지금까지 못된 아들이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마음이 얼마나 평안한지.... 좀 전까지 동생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미운 마음이 강했는데.... 실은 그 사건의 발단은 동생이 나를 향해 “거짓말쟁이” 라고 말해서 그것이 용서가 안 되었습니다. “거짓말쟁이가 뭔 뜻인지나 아니? 사람을 거짓말쟁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생각해?” “그래, 거짓말 한 두 개 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는 네가 이상한 거야” 이렇게 싸움이 시작되어 용서할 수 없는 마음마저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 전부 내가 잘못했구나. 정말로 난 거짓말쟁이구나’ 라고 인정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새벽 2시인데 동생 방으로 가서 “켄지, 미안해” 라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동생 얼굴을 보니 왜 그리 귀여운지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얄밉고 얼굴 구조상 뭔가 이상하다 할 정도로 미운 얼굴을 하고 있던 동생이 어찌나 귀여운지요. 깜빡이는 눈이 얼마나 귀여운지… 완전히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때 하나의 교훈을 깨달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저 자신이 회개했을 때 처음으로 천국이 마음에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진정으로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동생과의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저의 부족함이 고민되어 어두운 기분으로 생활하고 있을 때쯤 여자 친구와 쇼핑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가 “아키라상! 그 어두운 얼굴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데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읽어보세요.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부싯돌처럼 하라고 쓰여 있죠? 당신의 얼굴은 어떤가요?” 라고 말했다면 난 변명만 했을 겁니다. 하지만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을 진정한 눈으로 바라봐주고 사랑해주는 그녀를 보고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 자신이 싫다, 싫다” 해도 자신을 정말로 싫어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두운 자신이 싫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버리지 못한 것은 마음속 어딘가에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때, “당신, 이것이 틀렸어요. 여기가 잘못됐어요.” 하면 변론을 일으키지만 진실한 사랑의 맘으로 하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천국에 갈 때 천국에서는 결코 죄가 일어날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좌의 주변에 증인인 우리들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것을 증명하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있으므로 전 우주가 그것을 보고 두 번 다시 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에게도 복음의 능력이 임하였고 이제는 넉넉히 죄를 이기고 주님께 매일 영광과 찬양을 돌리며 이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진리탐구_144,000인의 하나님의 목적과 사명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 14:6)

1) 영원한 복음이란?
그렇다면 영원한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에만 기록되어 있는 “영원한 복음”이란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복음이면 그냥 복음이지 복음 앞에 왜 “영원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말씀하셨을까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영원하다는 뜻은 “변치 않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라는 것은 앞으로도 변치 않고 사랑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복음이란 변치 않는 복음을 말하는 것인데,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복음이 변하게 될 것을 경고하며 교훈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복음이 시간을 흘러 흘러가면서 시대의 환경과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서 변질될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참 복음으로 돌아와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복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 14장은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둘러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추수”와 관련된 세상 역사의 마지막 부분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는 예언의 장입니다.

요한계시록 10장 7절에도 기록되기를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변질하여 오류가 있고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 혼잡해진 바벨론의 복음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변함없이 지켜 내려온 복음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도 본래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해 오신 영원한 복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셨습니까? 오늘날 성경의 복음이 원래의 의미에서 퇴색되고 세상과 많이 타협되어 참 진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영원한 복음은 인류가 범죄하였을 때 잃어버렸던 생명을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함으로 범죄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롬 16: 25~26)

복음은 우리를 죄로부터 회개시켜서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죗된 생활을 씻고 새로운 마음을 받아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바로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역사하실 때 가능하며 사람의 힘으로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복음이라고 전해지는 수다한 말들은 변질되고 변개되어 있으며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의 생각과 입맛대로 변형된 다른 복음입니다. 우리를 주님의 말씀대로 예수의 믿음으로 계명을 사랑하고 순종해 나갈 수 있게 이끌어 주고, 나를 변화시켜주는 능력을 가진 복음이 바로 영원하고 변치 않는 복음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영원한 복음을 믿고 순종하며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세상과 타협한 다른 복음을 믿고 순종하며 살고 계십니까?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Healing Story_디톡스-녹즙과 레몬관장

밭에서 들어오시는 어머니 품에는 토마토, 호박, 가지, 옥수수가 한 아름입니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지만,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한 가득합니다. 밭을 만들고 씨를 뿌릴 때는 힘이 들지만, 이렇게 하나씩 따오는 재미에 봄이 되면 다시 밭으로 나가게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창1:29)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천연계는 건강한 식품 창고이며 천연 약국이기도 합니다. 창조주께서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 속에 우리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성분들을 듬뿍 넣어 주셨습니다. 그 성분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것 중에 녹즙으로 짜서 마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국 최고의 녹즙 전문가였던 강원대 고 함승시 교수는 녹즙에는 가열 처리되지 않은 신선한 상태의 미네랄, 비타민, 각종 플라보노이드 계통, 폴리페놀 계통 성분들이 흠뻑 들어 있으며, 다양한 실험을 해 본 결과, 항산화 효과를 비롯해서 항돌연변이효과, 면역증강효과, 항암효과 등이 굉장히 강하게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또한 생채소를 그대로 먹으면 소화흡수율이 17%에 불과하지만 녹즙으로 마시면 그 흡수율은 67%에 이른다고 합니다.

* 녹즙 효능
- 강력한 항산화제
우리 몸의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 산소는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에 풍부하게 함유된 항산화 물질은 활성 산소를 제거해 주고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공급하여 간을 해독시켜 줍니다.
- 해독작용
녹즙과 과즙 속의 효소 또는 비타민, 미네랄 등은 체내 독성 물질들을 해독하고 배출시켜 주기 때문에 혈액 정화작용을 하게 됩니다. 정화한 피는 저항력을 좋게 하므로 인체 내의 모든 염증균 등을 처치하게 됩니다.
- 면역력 증가
백혈구, 혈소판의 증강과 T세포의 작용을 3배로 증가시켜 자가 면역력을 극대화시켜 주므로 우리 몸이 스스로 질병을 치유할 수 있도록 유도해 줍니다.
- 체질개선
녹즙의 풍부한 알칼리성 미네랄과 혈액 중의 산성요소를 중화하는 작용들은 산성체질을 알칼리성 체질로 바꾸어 줍니다. 그에 따라 면역력이 증가되어 알레르기, 간염, 감기 등과 같은 각종 질병이 예방 치료됩니다.
- 노화방지
피부의 주름이나 각질, 시력저하, 만성피로감 등은 모두 노화 현상들입니다. 녹즙은 세포를 활성화해 주므로 노화를 지연시켜 줍니다.
- 장청소
녹즙 속 무기염류와 알칼로이드 성분들이 장 속의 노폐물을 깨끗하게 용해시켜 배출시키기 때문에 정장작용을 합니다.
- 암 예방과 항암치료
숙명여자대학교 약학과에서 항암 성분이 많다고 알려진 녹즙이 발암물질을 어떻게 배출시키는지 실험해 보았습니다. 첫날은 태운 고기를 먹고 녹즙을 마시게 한 후에 소변으로 배출되는 발암유발물질의 양을 측정해 보았고, 사흘 후에는 태운 고기를 먹고 가짜 녹즙을 마시게 한 후에 똑같이 발암유발물질 배출량을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가짜 녹즙을 마셨을 경우에는 발암유발물질이 48시간이 지날 때까지 천천히 몸 밖으로 배출되었지만, 녹즙을 마셨을 경우에는 발암유발물질 배출량이 12시간 후일 때 최고조에 이르렀다. 즉 녹즙이 발암유발물질을 몸 밖으로 신속하게 밀어내는 작용을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녹즙 마시는 요령
1. 녹즙은 짧은 시간 내에 짜내고 되도록 빨리 마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2. 녹즙 종류는 3~4가지 내로 하되 채소와 과일을 함께 먹지 않습니다.
3. 한 번에 다 마시지 말고 천천히 침과 섞어서 마시도록 합니다.

* 대표적인 녹즙
1. 당근 60% + 시금치 40%
-당근에 들어있는 베타카로틴은 활성산소를 제거하여 세포의 손상을 막아주고 조직을 정상화 시켜주기 때문에 질병 예방과 노화방지, 항암효과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노안, 야맹증, 백내장을 예방해줍니다. 빛의 명암을 조절하는 로돕신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로돕신이 많을수록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볼 수 있습니다.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A는 이 로돕신의 구성성분이 됩니다.
-잇몸출혈, 치주염 등 잇몸 질환에 도움이 됩니다.
-장 속에 축적된 노폐물을 내어보내고 장벽을 수리해서 재생시켜 주므로 장청소를 해줍니다.
-시금치에는 베타카로틴, 비타민 A, 루테인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우리 눈의 중심에는 사물을 잘 보이게 해주는 황반이라는 조직이 있는데, 이것의 구성 성분이 루테인입니다. 루테인이 부족하면 황반변성, 황반부종 등의 안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2배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시금치에 풍부의 루테인은 망막조직을 보호해 시력 저하를 막는 것은 물론 각종 안질환까지 예방해줍니다.
2. 당근 40% + 샐러리 25% + 시금치 20% +파슬리 15%
-질환에 따라 시금치 대신 민들레, 상추 등 다른 것을 대체해도 좋습니다. 파슬리는 칼륨이 많으므로 신부전이나 혈액투석 중이신 분은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시신경 계통의 활력을 주므로 2~3개월 안에 시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수술 전 백내장인 분에게 유익하고 모든 근육의 경련 증상을 완화시켜 줍니다.
-샐러리에는 유기 염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더운 여름철 많은 땀을 흘려 기진맥진한 분에게 샐러리즙을 마시게 하면 금방 멀쩡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당근 60% + 비트 20% + 오이 20%
-비트에는 안토시아닌과 베타인이라는 알카로이드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성분들은 종양을 없애며 암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비트에 포함된 베타시아닌 성분이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역할을 하는데 토마토보다 8배에 달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적혈구 생성능력을 향상시키고 조혈작용을 왕성하게 하여 빈혈 예방에도 좋습니다.
-비타민과 나트륨, 칼슘, 섬유소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있습니다. 
-혈당수치를 조절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히 해주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므로 혈관질환 예방 효과가 높습니다.
-오이는 천연이뇨제입니다. 규소와 유황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탈모예방에 좋고 손톱을 튼튼하게 합니다.

* 레몬 관장
-육식, 인스턴트, 과식 등의 식습관으로 인해서 우리 장에는 숙변이 쌓여 있습니다. 숙변이 가득하면 장운동이 느려지고 장의 융모를 통한 영양분 흡수율이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숙변에는 각종 유해균이 가득하기 때문에 장 내의 독소를 끊임없이 각 몸의 장기(특히 간)로 퍼트리게 되는데 이는 만성적인 피로와 면역력 감퇴로 이어지게 됩니다.
-레몬의 주석산이나 구연산 같은 물질은 용해력이 뛰어나 신체에 아무런 부작용 없이 효과적으로 장의 숙변을 청소하고, 간을 통해 혈류를 타고 혈관과 임파선까지 들어가서 끈적끈적한 점액질 독소와 노폐물까지 녹여버리는데 이것이 레몬 관장의 핵심입니다.
-1.5리터의 물에 레몬 2개를 즙을 내어 레몬 관장액을 만듭니다. 관장액의 온도는 체온과 비슷해야 하고 주입 속도는 대략 15분 이내에 다 들어가도록 천천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관장을 처음하거나 장이 약한 사람은 200~300cc 정도 주입되면 마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너무 참지 말고 화장실에 가서 배변을 본 후에 다시 관장액을 주입하도록 하면 됩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들, 사랑이 식어가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주님 오시는 발걸음이 들리는 듯합니다. 녹즙으로 육신의 건강을 돌보는 것 못지않게 우리 영혼의 디톡스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나를 정결하게 하옵소서’ 무릎 꿇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들의 허물을 보며 나의 허물로 내 이웃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고개 숙여 주님께 여쭤봅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만 계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독교회사_찬송가와 교황 기독교 역사 에피소드

중세 암흑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찬송을 하였을까? 그들은 세속적인 방식으로 노래하는 것에는 결코 관심도 지식도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 중보, 재림을 노래하였으며, 이것은 기댈 것 없고 목숨이 원수들의 칼끝에 달려 있는 이 땅에 소망 없는 그들의 유일한 낙이었다.
한창 그들과 그들의 책들이 불태워지고 있을 때 원수들은 그들이 화형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춤을 추며 하나님을 조롱하였다. 그래서 주님의 자녀들은 원수들이 춤을 출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느리게 찬송하였다. 하지만 느린 찬송에도 화형대에 몸을 맡긴 그들의 온 마음은 불타오르는 진리에 대한 사랑과 창조주이시며 구주이신 주님을 사모함이 더욱 간절하였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허례와 사치로 가득 찬 마음으로 세속의 부요함과 권력욕을 불태우던 진리의 원수들은 찬송 속에서도 허식과 자랑으로 가득 채워졌다. 사악하고 혐오스런 경쟁심으로 가득 찬 로마 카톨릭의 찬송들은 특별한 임명받은 자들만의 전유물로 평민들은 부를 수도 없는 법령을 만들고,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의 야망을 후원해 줄 사탄을 찬양하면서 그들의 하나님으로 스스로 속이고 있었다. 그들 중에 대교황으로 불리는 자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하나님 아버지 어둔 밤이 지나(통일찬송가 68장, 새찬송가 59장)
이 노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마그누스(Gregorius Magnus, 540~604)가 작사한 것이다. 그는 로마 카톨릭의 초대교황이며 카톨릭은 대교황으로 부른다. 공식 문서에서 스스로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라는 칭호를 교황으로서는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그 이유는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자신을 가리켜 ‘세계 총대주교’라고 칭하자, 이에 반발하여 교황권이야말로 교회의 최고 권위임을 재확인시키기 위해서였다. “베드로좌는 모든 교회의 우두머리이며 전체 교회의 관심과 수위권이 베드로의 후계자에게 위임되어 있다. 따라서 교황은 신앙의 머리이다. 각 주교는 해당 지역에서 저마다 사목권을 유지하지만, 교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레고리오 1세는 북유럽의 비(非)기독교 백성들(로마 카톨릭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도 로마 교황권에게는 이교도였다)에 대한 교회의 전교 활동을 조직화하여 이를 독려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레고리오 선교라고 불리는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족 이교도들(실제로는 당시 이미 존재하던 성경을 믿는 아이단의 잉글랜드 광야교회를 대상으로 함)에 대한 포교였다. 그레고리오는 수도원장으로 있을 당시 로마 시내 광장을 거닐던 중에 우연히 잉글랜드에서 온 포로들이 노예 시장에서 매매된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로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잉글랜드를 위한 전교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하게 확신한 그레고리오는 교황 펠라지오 2세에게 청하여 일단의 선교사들을 이끌고 잉글랜드로 향한다는 허락을 받았으나 실패했다. 교황직에 오른 이후에도 그레고리오는 잉글랜드에 대하여 집착하였다. 597년에 그는 자기 수도원의 수사들을 선교사로 임명하여 잉글랜드에 파견하였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이런 칙령을 내렸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착한 사람들에게 권위를 주시어 그들을 통해 당신의 자비를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다. 그대들의 사목지로 맡겨진 잉글랜드가 바로 그 경우이다. 그대들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강복은 또한 그대들의 손을 통해 사목할 백성들에게도 내려질 것이다.” 그리하여 캔터베리의 어거스틴과 그의 동료 수도사 40여 명은 잉글랜드 로마 교회의 창시자들이 되었다. 잉글랜드 교회는 대교구 두 곳과 교구 열두 곳이 설정되었으며, 캔터베리 교구를 수좌 교구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잉글랜드의 그리스도인들을 회유와 협박으로 개종시키려다 실패하자 전쟁으로 인종청소를 유도하였다. 그레고리오 1세는 잉글랜드에서의 전교 활동이 모종의 성공을 거두자, 네덜란드와 독일에도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고 이에 위배되는 모든 이교 및 미신을 제거하는 것은 그레고리오 1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더불어 이는 그가 교황으로 재임하는 기간 내내 유지된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였다.

사람은 똑같은 말을 해도 그의 마음에서 나온 표현이기에 서로 다르다. 사탄은 교황 그레고리의 이 노래를 모든 사람이 부르게 하면서 당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이교도로 여기면서 그들을 자신의 수하에 복종시키는 것에 전염했던 그레고리의 치적을 높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속임으로 희석되는 것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다. 이 사탄의 작품을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영감 받은 찬송이라며 목청껏 부르고 있는 것을 보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채식요리_수박 열무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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